시인 마당 (95)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승태 시 2 ㅡ 사소한 구원 ---제 1부---+ 북리北里 산 높고 골 깊어 우물 같은 곳 임란 때도 목숨은 살 수 있다고 어진 백성이 숨어들던 갑둔이나 귀둔 더 이상 꼴 보기 싫으니 내 눈에 띄지 말라고 유배 보내는 강원 산간 하고도 마가리 동학 전쟁 때 야반도주로 숨어든 내촌 백우산 아래 나의 씨족들이나 나의 씨족보다 먼저 온 마의태자나 고려 적 폐족들이 성을 바꾸고 숨어 산다는 곳 주먹으로 받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불씨 하나씩 가슴골에 품고 나무 하나하나에 말이나 붙이고 살아왔거니 혼잣말 일구어온 이깔나무나 떡갈나무들 인정을 찾아 먹을 것을 찾아 헤매 돌았다는 벌거벗은 조상은 어쩌다 혹한과 척박의 땅에 정착했는가 순록처럼 두터운 털도 곰처럼 긴 동면도 없이 농사지을 땅도 없이 돌이나 줍고 불에 불을 놓아.. 한승태 시 1 ㅡ 바람분교 ---1부 ---+ 가물 일렁이는 물결에 여보, 라고 기대본 적이 있다 당신 물살과 눕고 싶었으나 연줄마냥 팽팽했다 당신의 등에 가닿으면 썰물은 저만치 달아났다 당신에게 등 돌려 누우면 밀물은 눈동자에 차기 시작 했다 빗방울 흐르고 눈물방울 흘러 땀방울에 가뭇없고 쌓여가는 부채는 뱃살로 늘어가고 말들은 말라갔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물이랑 높은 파고가 몰아쳤다 궁싯거려도 달의 창백蒼白에 조금씩 허물어지기도 했다 손을 잡은 기억이 시계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검버섯은 눈가에서 자라나 온몸으로 가물거렸다 입었던 옷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사이 먼 곳에서 오는 별빛은 눈 밑에 차곡차곡 쌓여서 잠자리에 같이 포개쳐도 가닿는 해안의 체위는 달랐다 빠져나간 온기의 말들이며 말하지 않아도 그 깊던 .. 기형도 시 2 ㅡ 시 모음 + 꽃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 풀 나는 맹장을 달고도 초식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동물이다 긴 설움을 잠으로 흐르는 구름 속을 서성이며 팔뚝 위로 정맥을 드러내고 흔들리는 영혼으로 살았다 빈 몸을 데리고 네 앞에 서면 네가 흔드는 손짓은 서러우리만치 푸른 신호 아아 밤을 지키며 토해낸 사랑이여 그것은 어둠을 떠받치고 날을 세운 네 아름다운 혼인 것냐 이제는 뿌리를 내리리라 차라리 웃음을 울어야 하는 풀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보자 발을 얽고 흐느껴보자 맑은 .. 기형도 시 1 ㅡ 입 속의 검은 잎 ---Ⅰ---- + 그 날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서 金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서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 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 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 서 육체로 넘어 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 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송수권 시 4 ㅡ초록의 감옥 ㅡ남도의 밤 식탁 ㅡ사구시의 노래 + 대구大口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가덕포항 어디쯤 대구가 돌아왔다고 한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장날은 아버지 하얀 두루마기 걸치고 장 가음으로 그 입이 큰 대구를 사오시곤 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들 모여 두레상 받고 안팍으로 불을 밝히면 삼동三冬이 환했다 '눈 온 대구 비 온청어'라는 경상도 식담처럼 대구 심리라 했다. ----------+ 떡살뉘네 집 잔치떡이냐 근친떡이냐 송기 절편에 은은히 뜬 격자格子 무늬 아가 아가 체하련 숭늉부터 마셔라 동티 나련, 꺼몋게 배꼽만 남은 오백 년 한숨이 물 넘듯..... , 물 넘들.... , 힘센 잉어 한 마리 휩떠 꼬리치며 승천하는 이 율동감 뉘네 집 잔치떡이냐 근친떡이냐 빈 절구에 물 넘듯 달빛 속에서도 아른아.. 송수권 시 3 ㅡ 초록의 감옥 + 강 이 겨울에는 저무는 들녘에 혼자 서서 단호한 믿음 하나로 이마를 번뜩이며 숫돌에다 칼을 가는 놈이 있다 제 섰던 자리 벌판을 두동강 내어 어슬어슬 황혼 속으로 걸어가는 놈이 있다 보아라 저 방랑의 검객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들고 또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드는 건 힘이다 누가 저 유연한 힘의 가락 다시 꺾을 수 있느냐 누가 저 유연한 힘의 노래 다시 부를 수 있느냐 우리는 어느 산굽이 또 한 바다에 시퍼런 금이 설 때까지 흐득흐득 지는 잎새로나 숨어 유유히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저 검객의 뒷모습이나 지켜볼 일이다. -------+ 달 아침에 나가 보면 호젖한 산길을 혼자서 가고 있었다 오빠수 떼들의 진한 울음처럼 발아래 꽃잎들이 짓밟혀 있고 한밤 내 저민 향내 오.. 송수권 시 2 ㅡ 사구시의 노래 + 봄 ㅡ그 붉은 황톳길 2 언제나 내 꿈꾸는 봄은 서문리 네거리 그 비각러리 한 귀퉁이에서 철판을 두들기는 대장간의 즐거운 망치소리 속에 숨어 있다 무싯날에도 마부들이 줄을 이었다 말은 길마 벗고 마부는 굽을 쳐들고 대장간 영감은 말발굽에 편자를 붙여가며 못을 쳐댔다 말은 네 굽 땅에 박고 하늘높이 갈기를 흔들며 울었다 그 화덕에서 어두운 하늘에 퍼붓던 불꽃 그 시절 빛났던 우리들의 연애와 추수와 노동 지금도 그 골짜기의 깊은 솦 캄캄한 못물 속을 들여다보면 처릉처릉 울릴 듯한 겨울산 뻐꾸기 소리... 집집마다 고드름 발은 풀어지고 새로 짓는 낙숫물 소리 산들은 느리게 트림을 하며 깨어나서 봉황산 기슭에 먼저 봄이 왔다 ----------+ 빈집 오래도록 잠긴 저 문에 누군가 빗.. 송수권 시 1 ㅡ 남도의 밤 식탁 + 퉁*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