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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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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에 관한 시 5 + 장마 / 고운기 개구리가 운다 검은 구름 떼에 밀려 여름 해도 일찍 졌다 나는 어느 산골에 묻혀 담배에 불도 붙여 보고 해 지면 다니기 힘들어 발길을 빨리 거두던 어머니 패랭산 넘어 어두워 캄캄해지기 전 길 모퉁이엔 언제 나타나시나 마음 졸이던 생각도 나는 해 보고 긴 여름해가 지치도록 끝나도 엄마의 모습만 보이며 좋았는데 끝내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있더라 끝내 기다려야 할 것이 내게는 있더라 여름 해 떨어져 어둡고 구름 떼 하늘에 깔렸는데 개구리는 운다 장대비가 쏟아지리라고? ---------------------+ 장마 / 김대식 흐리고 해 나고 비가 오기를 반복한 장마가 어느 날엔 무서운 폭우를 쏟아댄다. 하늘엔 웬 물이 저렇게도 많은지 미처 대비하지 못한 물난리에 그 피해 심하다. 어떤 ..
장마에 관한 시 4 + 장마 / 고진하 폐허의 담벼락 아래, 성스런 신의 병사들이 지구의 왼쪽 관자놀이를 찢는 총성이 울리고 그 피와 살을 받아 핥는 시퍼런 잡초와 갈까마귀의 혀가 비릿하다. 골고다, (우주 배꼽?), 거기, 여전히 신생아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지? 안 보았어도 좋을, 흥건히 피에 뜬 조간을 보며 질긴 탯줄을 씹듯 간신히 조반을 삼켰다. 장마가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 장마 / 김근배 오듯 오지 않습니다 오지 않는 듯 옵니다 가는 듯 가지 않습니다 가지 않는 듯 갑니다 가는 날과 가지 않는 날, 시간의 그 새로 비가 가고 옵니다 비탈길 위태롭게 선 나무 발치, 넘어져 넘어져 부러지고 흔들리는 가지 휩쓸려 갑니다 시간의 그 새로 청개구리 어린 울음 매달고 오고 갑..
장마에 관한 시 3 + 장마 / 강희창 바깥은 온통 빗금 투성이다 뜨거운 욕망을 숨긴 울매미처럼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채 은신처로 빨려 들어갔다 전선은 종잡을 수없이 이동 중 막하 섣부른 선택은 금물임 비는 앙가픔이라도 하듯 본디 욕심 이상 쏟아부었다 반발하는 우울 두분자 분노 한 방울 낮은 곳을 찾아 어디든 강림하사 쓸어가야 할것은 모두 쓸어 가야지 터전을 잃고 쓰린 가슴속 까지도 비는 이미 분별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시계추는 물을 먹은 듯 무겁다 나름의 기대치는 승산이 없지 갈증은 습습한 틈바구니에 웅크린 독버섯처럼 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모든 인내는 전선 뒷전에서 종종 걸음중 은신처에 탕난 욕망들은 쨍한 햇살이 장막을 가르자 원래 모습으로 단숨에 복귀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과장은 심해지고 아무리 잃어도 지킬 것은 ..
장마에 관한 시 2 + 장마 / 강정식 방송국마다 피해 속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300mm 이상 내린 살인적인 호우로 서울의 서쪽이 침수되고 물에 잠겼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벌써 3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단다 늦은 아침을 꾸역꾸역 먹으며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느긋하게 소파에 가로누워 TV 화면을 강 건너 물 구경하듯 바라보며 깜박깜박 낮잠 속으로 다시 빠져 든다 비는 계속 전국 온 사방에 쏟아지고 겹겹으로 자동차들이 처박힌 시장 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사망자 수는 이미 40여 명을 넘었다 맥없는 잠도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7호선 운행이 중단되고 도심의 신문사가 물에 잠기고 사망자 수가 50여 명을 넘은 것 외에는 아무 일이 없나 보다 100mm 이상의 비가 더 예상된다지만 ..
장마에 관한 시 1 + 장마 / 강현덕 바람에 누운 풀잎 위로 바쁜 물들이 지나간다 ​물속에서 더 짙어진 달개비의 푸른 눈썹 ​세상은 화해의 손을 저리 오래 흔들고 있다 ----------------------- + 장마 / 고진하 폐허의 담벼락 아래, 성스런 신의 병사들이 지구의 왼쪽 관자놀이를 찢는 총성이 울리고 그 피와 살을 받아 핥는 시퍼런 잡초와 갈까마귀의 혀가 비릿하다. 골고다, (우주 배꼽?), 거기, 여전히 신생아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지? 안 보았어도 좋을, 흥건히 피에 뜬 조간을 보며 질긴 탯줄을 씹듯 간신히 조반을 삼켰다. 장마가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 + 장마 / 김민서 ​비 온다 끊어진 듯 이어지고 잦아들다 격해지며 ​비 온다 오로지 한 길로 ..
7월 시 모음 5 + 7월 / 나병춘 미루나무 아래 서 있으면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 들린다 옷가지 다 벗어부치고 바람 더불어 한없이 쏟아내리는 하얀빛 물살 소리 이파리 닮은 퍼런 고기떼 투망 속에서 발광하는 눈이 뒤집힌 생명들의 아우성 소리 아마도 미루나무는 전생에 폭포수였나 보다 수직 암벽 아래 혼자 목을 가다듬던 소리꾼이었나 보다 쏴아 바람보다 더 큰 소리로 발성을 가다듬던 저 시퍼런 혓바닥을 보아라 유월 미류나무 아래 서면 폭포수보다 더 찬란한 목소리 나무의 벌거벗은 음성이 따가운 햇볕을 가린다 빈 하늘 황홀한 물보라 달뜬 가슴을 적신다 -------------------+ 7월 / 박기숙 짙푸르게 말간 하늘을 보아라 푸르디푸른 하늘 위에 그림을 그려보자. 하얀 암수 두 마리의 양이 서로 껴안고 포옹을 하는 듯하더니..
7월 시 모음 4 + 7월 / 강민경 마을을 넘어오며 포도송이 알알에 땡볕이 박힌다. 작정이라도 한 듯 장맛비 계곡 흔들어 물살 세우고 초록담 둘러쳤다 산마다 죽죽 뻗어 오른 나무들 너울너울 춤추며 7월을 의논을 한다, 축제에 대하여 요동하는 숲 나는 후덥지근한 흙내에 땀방울 쌓아두고 부르는 이 없이도 펄펄 나는 숲 속 대나무로 하늘 가득 푸른 꿈 퍼올려 포도송이 익어가는 마을이 된다. -------------------+ 7월 / 고은영 헐떡이다 말 염치없는 하루가 어지럽다 습한 대기에 뜨겁게 접지한 태양의 숨결 뜨거운 화염은 골반을 거쳐 빈곤한 다리에 머물고 질겅질겅 한낮을 씹어 젖히며 쇄골을 핥던 더위가 늘어진 가슴으로 와 안녕을 묻는다 오늘처럼 찬란한 햇살을 본 적이 있나요? 아이들의 맑은 언어가 자장가처럼 가까이..
7월 시 모음 3 + 7월 / 김안로 다시 올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릴 참이다 발을 헛디딘 지난 세월은 잊어라 너의 노력이 정당하다면 이동의 대가로 나를 만나리라 오롯이 긴장감으로 저장해 가는 빛의 맛, 열매 -------------------+ 7월 / 조미자 기대와 설렘도 사그라들었다 그저 느슨해진 마음 꽃구경 끝난 줄 알았는데 동산 자락에 자귀꽃이 청사초롱 불을 켰네 맨살에 훅훅 찌는 햇볕을 두르고 시장가는 길 다리 위에서 잠시 멈춘다 냇물에 무성한 수초들 사이로 오리 한 쌍이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자맥질을 한다 발 담가 볼까? 웃음남기고지나는 시장 골목 낮은 담장 위로 우거진 대추나무 감나무 초록 잎에 초록 열매 아직은 잎에 가려드러나지 않아도 살펴보니 보인다 살이 오른다 장마는 비켜 가고 목이 탈 텐데 장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