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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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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 3 + 등칡 벌목이 금지된 오대산 계곡 천년의 숲에서 등칡을 본다 등칡은 버드나무와 거재수나무를 타고 올라가 승리의 색소폰을 불고 있다 아니 색소폰처럼 둥글게 굽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등칡은 자기가 감고 올라가 신세 진 나무를 옥죄어 죽인다 등나무나 칡덩굴보다도 훨씬 거칠고 모질다 등칡이 감고 올라간 버드나무와 거재수나무는 온몸이 뒤틀린 채 신음을 뱉어내고 있다 톱과 도끼를 든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등칡의 모습에서 생생하게 나무의 폭력성을 본다. ---------- + 살구 살구 먹고 싶다고 누구에겐가 가만히 말하고 싶은 날 있다 뱃속에 애가 생긴 것도 아닌데 살구 먹고 풋풋해지고 싶은 날 있다 시다고 하기엔 달콤하고 달콤하다고 하기엔 신 살구 도시로 나가 학교 다니던 시절 살구 먹고 싶어 시골집에 간..
최두석 시 2 + 매미 매엥 매엥 매엥 매에ㅡ 무더위와 싸울듯이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들으며 막상 매미는 대포소리에도 반응이 없는 귀머거리라는 파브로의 주장이 떠오른다 아파트 창틀까지 붙어 잠을 깨울 정도로 극성스럽다는 것은 귀를 가진 사람들의 반응일 뿐 암매미의 고막은 시끄러운 청각이 아니라 떨리는 촉각으로 울리는지 모른다 나무의 수액은 어떻게 매미의 피가 되며 살 떨리는 매미의 성감은 과연 얼마나 미묘하고 야릇한 감각일까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맛보는 망울들이 어떻게 호응하여 조화를 부리는 걸까 멋대로 상념의 날개를 퍼다가 문득 나는 허물을 어디에 벗어둔지 모르고 정작 심금은 어떻게 울리는지 모르고 한 마리 말매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개개비 두물머리 갈숲에서 개개비가 운다 바..
최두석 시 1 + 마늘 마늘을 까면 손가락이 싸하게 아리다 그 아린 느낌을 즐기러 부러 맨손으로 마늘을 깐다 아리다 못해 아플 지경이 되도록 혀로 느끼는 맛만큼 손끝의 느낌 또한 내게 소중하다 통마늘을 짜개 기름 두르고 살짝 구워 먹는다 손끝의 아린 느낌 다음에 오는 혀로 느끼는 아릿한 맛 이어지는 알싸한 뱃속 자극을 피하는 절집의 수행과는 거꾸로 가는 줄 알면서도 마늘 없는 밥상은 터무니없이 허전하다 아무래도 나는 마늘 중독자다 마늘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까마득한 후손이다 ---------+ 물맛 절에 가면 스님의  설법을 듣기보다 물맛을 보는 버릇이 있다 얼마나 맑고 시원한 지 맛보며 그 절집의 수행의 분위기를 가늠해본다 폐사지에 가서도 남은 탑이나 축대보다 샘이나 우물의 자취를 먼저 살핀다 정갈한 샘이  솟고 ..
피천득 시 # 피천득 시 + 너 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 + 가을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 수가 하늘이, 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 + 고백 정열 투쟁 클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 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 + 눈물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 + 단풍 단풍이 지오 단풍이 ..
최승자 # 최승자 시 + 생각은 생각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마음은 몸에 깃들이지 않고 몸은 집에 거하지 않고 집은 항상 길 떠나니, 생각이 마음을 짊어지고 마음이 몸을 짊어지고 몸이 집을 짊어지고 그러나 집 짊어진 몸으로 무릉도원 찾아 길 떠나니, 그 마음이 어떻게 천국을 찾을까. 무게 있는 것들만 데불고, 보이는 것들만 보면서, 시야에 빽빽한 그 형상들과 그것들의 빽빽한 중력 사이에서 어떻게 길 잃지 않고 허방에 빠지지 않고 귀향할 수 있을까. 제가 몸인 줄로만 아는 생각이 어떻게 제 출처였던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을까. ----------------------------- + 근황 못 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생..
정채봉 -2 # 정채봉 시 모음 이해의 손길 ㅣ 오늘 ㅣ 사랑을 위하여 내 마음의 고삐 ㅣ 그땐 왜 몰랐을까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ㅣ 바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하여 ㅣ 생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해의 손길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쉬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하여서는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을 읽어 주셔요.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당신의 따뜻하고 참된 '이해의 손길'이 어둡고 가팔진 산길에서도 사랑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길눈'이 되어 줄 거예요. ------------..
천상병 # 천상병 시 ​푸른 것만이 아니다 ㅣ 편지 ㅣ 새 나무 ㅣ 강물 ㅣ 날개 ㅣ 광화문 근처의 행복 ---------------------------------------------- 크레이지 배가본드 ㅣ 구름 ㅣ 그날은 기쁨 ㅣ 길 ㅣ 나의 가난함 ㅣ 넋 ---------------------------------------------- 마음 마을 ㅣ 새 ㅣ 행복 ㅣ귀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푸른 것만이 아니다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듯이 안 보일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삼월 사월 그리고 오월의 신록 ..
정채봉 #정채봉의 시 그는 ㅣ 갈대 ㅣ 가난한 사람에게 ㅣ 마음의 사막 ㅣ수선화에게 ------------------------------------------------------------------------------------------------------------------------------ 어떤 사랑 ㅣ 강변역에서 ㅣ 끝끝내 ㅣ 까닭 ㅣ연어 ------------------------------------------------------------------------------------------------------------------------------ 슬픔으로 가는 길 ㅣ 봄길 ㅣ 강물 ㅣ 미안하다 ㅣ 가을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