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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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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시 모음 3 + 5월 / 곽상희 꽃 내만 맡고 엎드려 더듬더듬 꽃밭을 헤매다가, 눈먼 사람 그만 지팡이 하나 품에 안고 멀리 치달리고만 싶었으리라 그렇게 혼줄 다해 믿었던 것들이 그토록 익숙하던 소금끼 저린 소리들이 그리운 눈동자에 사무쳐서 밤 깊은 여정으로 떠날 때 너를 따라가면 심장이 꿈꾸는 눈 먼 는개비의 향기를 만날 까 너여, 우리는 언제 주어진 운명으로 자유로우랴 오래 견뎌온 이름이 되어서야 그 이름 살아온 내력의 속뜻 알 수 있듯 어제 심은 풀씨앗 텃밭에서는 장애의 세상을 돌보는 고와서 낮은 꿈의 산들이 조심조심 웅성거리고 시인의 상상 안에서 해풍으로 단련된 파도가 비단실로 찢어지며 꿈꾸는데 5월이여, 5월이여! -------------------- + 5월 / 박얼서 높푸른 하늘 품에 청렴한 네 모습 여..
5월 시모음 2 + 5월 / 나태주 아름다운 너 네가 살고 있어 그곳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너 네가 웃고 있어 그곳이 웃고 있다 아름다운 너 네가 지구에 살아 지구가 푸르다 -------------------- + 5월 / 남정림 5월이 찬란한 것은 봄의 문턱을 넘어서는 옹알이 때문이지 햇살을 유혹한 대지 위에는 옹골찬 풀꽃의 잔망스러운 옹알이가 수런거리고 각진 시간을 견딘 은사시나무 위에는 솜털 열매 익어가는 싱그러운 옹알이가 살랑거리고 아기 구름 서성거리는 하늘 위에는 땅의 봄이 궁금해진 종알대는 옹알이가 술렁거리지 5월이 찬란한 것은 살아서 꿈틀대는 살아보려 옹알거리는 두툼한 생명의 향기가 넘실거리기 때문이지 -------------------- + 5월 / 문추자 오월은 붓털이 그리는 액자 속의 터치와 흡사하다 아..
5월 시모음 + 5월 / 권경업 물오른 보릿대궁 하늘대는 밭고랑 끝에 산자락은 버선발을 살며시 올려놓고 짙푸른 짧은 치마 수줍다고 얼굴 가리네 재넘어 영마루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 칡 캐는 아이들의 마음은 짓궂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며 푸르른 오리나무 숲으로 가네. -------------------- + 5월 / 김상현 나와 봐 어서 나와 봐 찔레꽃에 볼 부벼대는 햇살 좀 봐 햇볕 속에는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려고 멧새들도 부리를 씻어 들어 봐 청보리밭에서 노는 어린 바람 소리 한번 들어 봐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애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애 -------------------- + 5월 / 김태인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 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 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
봄비에 관한 시 3 + 봄비 / 고은 물결이여 네가 잠든 물 우의 고요에 봄비는 내려와 죽는다. 물 우에 물속의 어둠이 솟아올라도 물결이여 네가 담든 물 우에 받는 봄비로 먼데까지도 봄비로 먼데 바위까지도 봄이게 한다. 아 너와 내가 잠든 물 우에 여기에서 한 덩어리가 바위가 침묵으로 떠오른다. --------------------- + 봄비 / 김영준 투신하여 내 몸을 꽂고 나면 어느 만큼 지나 그 자리, 구멍마다 제 이름 달고 투항하는 풀잎 그렇게 온갖 것들이 일어서고 난 후 드디어 그 눈짓 속에 파묻히는 나무 3월 지나며 어디선가 잦은 꿈들이 뒤척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꿈속에서 많은 이름들이 가방을 열고 나온다 --------------------- + 봄비 /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
봄비에 관한 시 2 + 봄비 /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 + 봄비 / 김병호 아직 엄마의 젖도 먹을 힘도 없을 텐데 눈도 옳게 뜨지 못했는데 몹쓸 비가 간난..
봄비에 관한 시 + 꽁치 / 박유라 봄비 속에 문을 연 생선가게에서 꽁치 사려- 외치는 소리 한 접시 너를, 안개 스미는 저녁 내내 또드락또드락 먹고 싶다 물미역 한 장에 바다를 펴고 그 위에 미나리 향을 살짝 찍어 발라 알맞게 깊어진 토막 한 입 크게 씹어먹고 싶은 너를, 나는 아무 슬픔도 없이 간간하게 허기를 뿌려둔다 어둠은 벌써 솜이불처럼 내려 먹어도 먹어도 바람이 스미는 저녁 식탁 내내 꽁치 비에 젖는 목소리 비애 젖는 목소리 --------------------- + 봄비 / 강계순 참혹하게 쓰러졌던 나뭇잎 위에 색색이 천을 놓아 하나씩 하나씩 궁핍의 겨울을 꿰매는 손 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만유의 어깨 위에 내려 빈혈의 혈관을 채워 주고 서릿발 같던 하늘 비단 안개로 닦아 내어 천지에는 자근자근 ..
봄꽃에 관한 시 +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 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 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
4월 시 모음 3 + 4월 / 박종숙 숨죽인 빈 공간을 차고 새가 난다 물오른 나무들의 귀가 쏟아지는 빛 속으로 솟아오르고 목숨의 눈부신 4월은 유채꽃향기로 가득하다. 아름다워라 침묵만큼이나 안으로 충동질하며 온 피 걸려 생명의 진액으로 타는 4월의 하늘이여. 다만 살아있음이 눈물겨워 -------------------------- + 4월에는 / 이명희 4월의 하늘은 친절하고 햇살은 상냥합니다 담장에 기대인 목련의 성근 가지에도 하얀 꽃이 피고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운 소식들이 한꺼번에 들려올 것 같습니다 쌀쌀한 마음을 거두고 포근한 무릎을 내민 그대의 살 내음에 취하고 싶은 날 내 맘의 위안이고 희망인 그대를 만나기 위해 땅을 일궈야 하겠습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뿌려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인연으로 시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