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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봄

봄비에 관한 시 2

+ 봄비 /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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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병호

아직 엄마의 젖도 먹을
힘도 없을 텐데
눈도 옳게 뜨지 못했는데
몹쓸 비가 간난아기의 울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구나

빗소리에 놀란 간난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아직도 남은 추위에
감기가 걸리지 않을까
엄마의 따뜻한 품속에 안겨
깊은 잠이 든다

봄비는 마른 가지에 붙은
겨울을 녹이는 듯 
아랑곳없이 봄을 재촉하고
꽉 다문 땅 끝 입술을 적시며 
생동의 발걸음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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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김석진

비가 그쳤네
햇빛이 반짝어리네
세수한 산과 들이
수군거리오
"어이 시원하구려."
"어이 시원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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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김세영

간밤 빚은 은하의 눈물 
촉촉이 젖은 봄 물 머금고
초록빛 싱그러움 그렁그렁

옹골차게 돋아나다
푸른 물 주르르 흘릴 것 같은
봄 눈망울 초롱초롱

마치 아기의 눈망울 같아
아니면 맑은 호수 같아
'풍덩'하고 빠져도 좋을
어느새 훌쩍 다가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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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김소월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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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박목월

조용히 젖어드는
초가지붕 아래서
온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월곡령 삼십 리
피는 살구꽃
그대 사는 마을이라
봄비는 와서

젖은 담 모퉁이
곱게 돌아서
모란 움 솟으랴
슬픈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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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박유라

봄비, 희고 조그만 이빨을 반짝인다
푸르스름 안개가 피어 오르는
저녁 식탁 위
능선들이 부드러운 산
윗입술과 아랫 입술 사이
목젖을 간당거리며
햇마늘 밭을 씹고 녹차 잎 새순을 씹고
강아지 한 마리 조용히 눈 감는
저 아슬한 길 끝
연둣빛 바다 잘근잘근
속절없이 부서져 내리는 봄,

사이렌이 내 입속 노랗게 중앙선을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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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박희자

맑은 하늘이
흩어진 구름을 돌돌 뭉쳐서
마침내 비를 내린다

허공 떠돌며 기웃거리는 미세먼지를 씻고
침묵에 잠긴 가로수 나뭇가지를 흔들며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로 빗물을 흘러내린다

베란다 난간을 두드리며
겨우내 앉았던 검은 먼지를 밀어내고
희뿌연 유리창을 닦는다

골목을 걷다 돌아보니
길을 따라오는 빗줄기가
때 묻은 내 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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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방원조

실바람 아지랭이
몰래 숨기고
언 세상 녹이려고 보슬비 와요

소곤소곤 봄 얘기
풀어 내리면
고개 내민 새싹은 세수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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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아려 -ㅁ 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ㅡ
이제는 젖빛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노나!
아, 안올 사람 기두르는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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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선미숙

내 작은 창을 두드리며 봄이 옵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잊지 않고 옵니다.

지독하게 춥고 길었던 한철을 견뎌내며
오랜 기다림에 지쳐가던 나무들은
머지않아 파란 웃음으로 반기겠지요

길가에 풀잎도 가녀린 몸을 일으키며 
겨울을 털어 냅니다.
뺨을 스치는 찬바람은 
가슴에 스민 봄을 어쩌지 못합니다.

깊게 얼었던 땅을 뚫고 
돋아나는 싹이 더욱 푸르듯
아팠던 만큼 다져진 마음에 찾아올 사랑은 
이제 철부지가 아닐 듯합니다.

눈을 뜨게 해준 아픔이 고맙습니다.
내가 버린 그 세월이 나를 키웠습니다.
원망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비와 함께 고운 임도 봄을 안고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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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오세영

꽃 피는 철에
실없이 내리는 봄비라고 탓하지 마라.
한 송이 뜨거운 불꽃을 터뜨린 용광로는
다음을 위하여 이제
차갑게 식혀야 할 시간,
불에 달궈진 연철도
물속에 담금질해야 비로소
강해지지 않던가.
온종일
차가운 봄비에 함빡 젖는
뜨락의
장미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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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오정현

엄마의 술병은 손바닥만 한 방에서
엄마가 잠들어 있는 머리맡을
오래된 술친구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술병에 봄비가 촉촉이 내릴 때면
엄마의 눈가에도 비가 내렸다.

거리를 헤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빗방울이
엄마의 술병을 채우고
꽃바람 부는 밤바다에서
술병은 꼬꾸라져 철썩거렸다.

나는 술을 따르다
확 쏟아 버렸다.

엄마의 술병은 영취산에
진달래꽃을 피우러 가고 없는데
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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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용혜원

봄비가 내리면
온통 그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상을
활짝 기지개 펴게 하는 봄비

봄비가 내리면
세상 풍경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도
흠뻑 봄비를 맞고 싶다
내 마음속 간절한 소망을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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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유순예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에는
비가 내립니다
아버지의 고추밭에도
비가 내린다 하십니다.
그 덕에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낸 고추모를
내다심을 준비가 다 되었다 하십니다
야위었던 저수지가
볼 살이 도톰해졌다 하십니다
봄이면 입맛을 잃어버리는
아버지 허기진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하십니다.
그 비에  밥 한 공기 다 비웠다 하십니다 
 
빈 마당에서 홀로 늙어가는
배나무가 파릇해졌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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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가원

살짝이
살짝이 오세요

서두르지 말고
달려오지 말고
돌아보지도 마시고

사뿐사뿐
사뿐히 오세요

그대 오시는 길에
예쁜 꽃잎 다칠까 봐

그대 오시는 길에
그 꽃잎 아플까 봐

그대 오실때
그 꽃잎 떨어질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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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우걸

그것은 신의 나라로
열려있는 음악 같은 것,

불타는 들을 건너서, 얼음의 산을 넘어서
돌아와 가슴에 닿는
깊은 올의 현악기.

텅 빈 벤치에서도.시멘트 벽 속에서도

수 없이 잊어야 했던
가난한 이름들을

이 밤에 모두 부르며
봄비는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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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재무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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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춘오

말라버린 나무는 모두 죽은 줄 알았다 
겨우내 숨 죽인 몸짓 
삶을 상실한 줄 알았다 
가지를 꺾는다, 가지는 허연 속살을 보인다 
흰 피를 흘린다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은 
찬 바람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봄비에 속살을 내보인 가지 끝 
처녀젖멍우러럼 튀어 오른 새순을 본다 
아! 아직 삶이 남아 있구나 
그렇게 뻗대며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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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정동숙

주린 배 움켜쥐고 
소리 없는 울음 삼키며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 소리에 기대어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 보지만

한껏 찡그린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쏟아 낼 듯한 하늘은
인색하리 만큼의 
동냥젖을 내주고는 

마른 목적실 겨를도 없이
정체돼 있는 구름 사이로
파랗게 미소짓고 있다

또 기다린다
속절없이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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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정민기

바람의 손을 빌려 
빗방울을 훌훌 털고 일어난 
꽃잎이 환하다 
산자락은 커튼처럼 안개를 치고 
철 지난 늦잠을 자고 있다 
언제 찾아왔나! 작은 새 한 마리 
울고 간 흔적이 비친다 
임시로 열어놓은 우산 아래, 
지구에서 가장 예쁜 꽃을 심고 
나 지금 그 꽃을 위해 거름이 된다 
창문에 너의 생각 실루엣처럼 놓고 
이내 빗방울처럼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오늘 나는 비를 맞으며 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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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정소진

너를 능가할 연애 선수 아마 없지 싶다
경직된 여인의 몸을 안심시키듯
요란하게도 아니고 강하게도 아니고
낮은 목소리로 불러내는 맑은 환희
굳은 마음 푸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속속들이 놓치지 않는 달달한 애무로 
얼어붙어 쌩한 고집마저 녹이는 솜씨 좀 보라지

네가 일으켜 세우는 저, 저 상큼한 연애세포들
너 다녀간 곳곳마다 새 생명 파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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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정진규

실눈을 뜨고 반쯤 잠든
나른한 슬픔에게
떠나 버린지 너무나 오랜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향기에게
삼 년째 내 방에 걸려 있는
복역 중인 내 친구
때 묻은 그의 모자에게
잉크가 나오지 않는 만년필에게
값싼 볼펜에게
미구에 가득히 비어버릴 나의 지갑에게
몇 평 나의 땅문서에게
여린 나뭇잎들 몰래 핥고 지나가는
바람의 쓸쓸한 탐욕에게
방안 가득 엎질러진 꿈
꿈을 혼자서 쓸어담고 있는
낡은 나의 언어에게
자꾸 엎질기만 하는 넘치게만 하는
나의 언어에게
새 바구니 하날 다시 줍시오
십 년 넘게 주문해도 주시지 않는
인색한 나의 하느님에게
오, 나의 모든 슬픔들에게
나를 버리라고 떠나가라고
봄비!
하루 종일 속삭인다
믿을 게 없다고 기다려야 소용없다고
함께 살자고 책임지겠다고
봄비!
하루 종일 속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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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정찬열

촉촉한 봄비
대지를 적신다.
일깨우려는 새 생명에
갈증 든 나뭇가지 적시어 흔드는 비
보리밭 들녘의 봄을 훔쳐 깨운다.

깨어나려고
일찍 뜬눈을 부지런 떤다
칼칼한 목 줄기 허기진 새벽
보리밭도 누런 잎을 탈탈 털고 일어선다.

한눈팔던
잡초들도 덩달아 일어나려 기를 쓴다.
얼굴에 둘러쓴 먼지 털어내려고
기지개를 켜면서 눈망울 크게 뜬다.

세월이 배달한 나뭇가지에
새잎을 틔우는 실눈을 뜨고는
늦잠 든 바람에 실려 오는 봄비
산과 들을 헤매며 부활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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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최원정

낮게 드리운 하늘이 
들고 온 반가운 소식 
봄비 

젖은 흙내음 벗삼아 
새순 돋고 
가지마다 움트는 
초록의 탄성 

겨우내 얼었던 마음 
봄비 맞고 
녹여 없애면 

메마른 가슴 
촉촉함으로 
사랑의 싹 틔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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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함민복

슬몃 내리는 비 
반가워 양철지붕이 소리 내어 읽는다 
씨앗은 약속 
씨앗 같은 약속 참 많았구나 
약속을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 
가장 그리운 사람이라고 
내리는 봄비 
마른 풀잎 이제 마음 놓고 썩게 
씨앗은 단단해졌다 
언 입 풀려 수다수러워진 양철지붕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가 
온몸 가죽 비틀어 빗방울을 턴다 
택시! 하고 너를 먼저 부른 씨앗 누구냐 
꽃피는 것 보면 알지 
그리운 얼굴 먼저 떠오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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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허난설현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찬바람이 장막 속 숨어 들을제
뜬시름 못내이겨 병풍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장 위에 지네

봄비는 보슬보슬 찬바람 숨어들 제
뜬지름 못내 이겨 병풍을 기대서니
담장 위에 살구꽃 지며 갈 길 몰라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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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홍명여

오랜 침묵을 깨는
격정의 선율
늑골 깊숙이 파란이 일고 
촉촉이 스미는 리듬에 맞춰 
진통하는 대지
지구는 숨죽여 지켜보는데

풀싹,
어둠을 뚫고 일어서는 
저 여린 당참,
방울방울 맺히는 초록빛 꿈 
그대!
봄이다
찬란한 그리움이다.

=============
봄비 / 홍수희

사랑 때문에
울고 싶은 날이다

사랑 때문에
젖은 유리창이 되고 
싶은 날이다

추억상자를 조심스레 
열기만 열면

스프링처럼 간단히 
튀어 오를 것 같은

너의 웃음소리 
오간 데 없이

꽃은 피는데 자꾸 
피는데 지치도록 
그리운 얼굴 때문에

하루 왼종일 
빗물에 젖어 울어보고 
싶은 날이다,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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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황경식

붕괴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물어 뜯겨서가 아니라
흔들림에 의해서
조금씩 금이 가고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잿빛 할미꽃잎 위에
봄비가 내린다

무너져 내리던 젖은 언덕을
한없이 또 무너져 내리게 하며
아무런 色도 머금지 않은
봄비의 혓 바닥끝에서
충혈된 붉은 꽃망울과
초록 잎사귀들 울고,
샛노란 망치질 하며

병아리 잔등 위에도, 봄비는
잔혹하게 떨어진다
주머니 바깥으로 나와 흔들리는
우리들의 따분한 손목 위에도
핏물처럼 스며 번지는 봄비
우리의 영혼을 천천히 녹이는 봄비
色色의 눈물을 흘리며

담장 너머 빨래들이며
쉴 곳을 잃고 놀란 나비, 망연자실이다
피다 만 백목련, 자목련도 망한다
꿀을 탐할 수 없는 벌들도 풀죽으리라
폭포처럼 일시에 쏟아지는 色이여
푸른 깃발 힘껏 지상으로 휘두르며
불온한 煽動 밤새 꿈꾸는 봄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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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황동규

조그만 소리들이 자란다
누군가 계기를 한금 올리자
머뭇머뭇대던 는개 속이 환해진다
나의 무엇이 따뜻한지
땅이 속삭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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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단상 / 이승복

막 깨어나는 새싹 곁에
봄비가 내리는 오후
생각의 껍질을 벗어
눈감아 침몰하는 나
내게서 사랑은 조용히 
먼발치서 흔드는 몸짓
외줄 타는 철 지난 낙엽 
애달파했던 허기짐에 
몰래 귀동냥하는 사랑
후조의 숨바꼭질 사랑 
붉게 그대의 향기가 
신기루 되어 보이는 
가슴 차고앉은 빈자리 
그림자로 따라 붙는 
고운님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봄비가 내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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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그친 뒤 / 남호섭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빨리 달리는 건 산 안개다. 

산 안개가 하얗게 달려가서 
산을 씻어내면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잘 생긴 건 
저 푸른 봄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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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오는 날 / 민병도

참 오래 버티어 온 가등마저 잠든 새벽,
유난히 춥고 어두운 기억의 집을 버리고
우리는 빈들에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생을 마친 먹감나무 조용히 산에 기대고
젖어 오는 무게만큼 발걸음이 무거울 때
올올이 잣아 올리는 뜨개질로 배를 띄었다.

이 땅을 찾아오는 비단 깔린 봄길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꿈속까지 따라와서
마침내 깊은 잠 깨운 법구경(法句經)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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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린 뒤   / 이정록  

개 밥그릇에
빗물이 고여 있다

흙먼지가
그 빗물 위에 떠 있다

혓바닥이 닿자
말갛게 자리를 비켜주는
먼지의 마음, 위로

퉁퉁 불은 밥풀이
따라 나온다

찰보동 찰보동
맹물 넘어가는 저 아름다운 소리

뒷간 너머,
개나리 꽃망울들이
노랗게 귀를 연다

밤늦게 빈집이 열린다
누운 채로, 땅바닥에
꼬리를 치는 늙은 개

밥그릇에 다시
흙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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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소리에 / 최병향

보이지 않는 진동이 
마법의 순간처럼 흐르고 있었네

겨울이 풀려날 즈음, 신기하게도
온몸의 세포가 느린 행진을 시작하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살갗 위 비늘들이 
서서히 떨어져나가는 시점에

스멀스멀 온기가 온몸으로 살아나듯
채 마르지 않은 
낱말들이 미동하듯 흘러내리고 있네

목마름에 눈뜨려는 빗소리를 
기다리지 않은 생명 어디 있겠는가
소리마저 미끄러지듯 봄비가 흘러내리네

끌어안듯 속내까지 흠뻑 적시며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장맛비보다
겨우내 묵혀둔 머릿결 잔잔히 빗어 내리듯
소리마저 외롭다고 서툴게 뒤척이는 
그래서 흠모하며 집중하는 봄비인가 보네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어 
꽤 오랜 시간을 다듬은 순간,
누구라도 기다림을 살필 자유는 있는 것

봄비가 소리처럼 내리고 있네
소리가 봄비처럼 내리고 있네,
이 비 그치면 눈을 뜬 새싹들은 
펴지 못한 날개를 다독일 테고 
먼데 소리로 닫혀있던 눈과 귀도 불러들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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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젖어 / 이경욱 

보슬거리며 내리는 빗방울이
내 작은 어깨 위로 흐르면
난, 그대의 가슴으로 파고들고픈
구멍 꿇린 마음이 된다
어쩌면 어제의 아픔보다
오늘의 행복함에 젖고 싶어서일까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대를 더욱 생각게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말을 품은
그대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어제처럼 오늘도 비가 내리면
난, 그대의 생각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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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의 시샘 / 주응규

봄 너에게 나 얼큰하게 취해
내 마음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날
봄 그대 와 나를 시샘하는 비가 내린다

비야 너 내리는 것은 나 알 바 아니지만
활짝 피어난 고운 님 다칠 세리
나 안절부절못한단다.

비야 너로 인하여
내 님 다치면 안 되는데 어찌하면 좋으니

내 맘이 어찌할 바 몰라
비가 우리를 갈라놓기 전
나 한잔 커피에 봄 향 가득 풀어 넣어
내 너를 마셔 고이 간직하련다.

봄아
비가 너를 쓸어 가기 전
나 너를 내 몸 안에 품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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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오신 봄비 / 오광수

창밖에서 들려오는
꿈결같은 이 소리는
자박자박 마당 밟는
그리운 님 발 소린데
반가워 너무 반가워
날으듯 문을 여니
별님 달님 숨긴 밤이
내 님도 숨겨놓고
먼 길 걸어온 봄비만
마루에 앉아 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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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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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는 저녁 / 유성순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두 개의 촛불 향초가 하나
사각 틀에 갇힌 보고 싶은 얼굴
불러도 대답 없는 그리운 얼굴

어둠 사이로
밤 벚꽃 활짝 미소 짓지만
하얀 목련꽃 서러운 눈물짓는다.

어둠이 깊어가는 밤
하늘은 바다에 빗물을 뿌리고
바다는 가슴으로 눈물을 삼킨다.

촛불도 꺼지고 향촉도 사라지고
봄비 속에 찾아온 낯익은 얼굴 하나
내 가슴에 사랑의 그리움 심어놓고
어둠이 깊어가는 밤 
봄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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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립니다 / 김지순

상큼한 미소로 다가와 
유혹하던 그대 있었습니다 

서늘한 바람처럼 
한없이 흔들어 놓은 그대 있었습니다 

파란 잎 뾰족하게 내밀며 
제가 봄이에요라고 말하는 그대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좋아하고 
잿빛 하늘을 좋아하고 

신선한 바람을 좋아하는 
그대가 아닌 내가 오늘은 있습니다 

흐린 하늘 너무도 예쁜데 
가슴은 텅 빈 벌판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에 비가 내리는 걸 아는 걸까요 
지금 봄비가 내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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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립니다 / 김하인

봄비가 내립니다
이렇게 비 오면 우산 펴 들듯 내 키와 몸집에 맞는 사랑 펴들 수 있길 바랍니다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아픔에 마음 젖고 가슴 적셔지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보고픔 펴들고 당신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당신을 작은 하늘 삼아 세상 속을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부디 내 그리움 나팔꽃처럼 활짝 펴 들고 가는 길 끝에 당신 마중 나와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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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그리고 꽃비 / 이호정

바람 불더니 꽃잎 날리고
진자리에 비가 앉습니다

뜨락에 핀 라일락
꽃향기 찬비가 시샘하는지
온종일 향기를 지웁니다

창가에 앉아서
네가 좋아했던 봄비를
내가 좋아 했던 찬빗방울을
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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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저녁 / 안중환

차가운 눈물 
방울져 흐르는 
유리창을 넘어 

멀리서 
아주 멀리서부터 
낮게 깔리어 
느릿느릿 걸어 들어오는 
저 지친 기적소리 

흐느끼며 떠나는 
그대의 마지막 
긴 한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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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오후 / 이승복

막깨어나는 새싹 곁에 
봄비가 내리는 오후 
생각의 껍질을 벗어 
눈감아 침몰하는 나 
내게서 사랑은 조용히 
먼발치서 흔드는 몸짓 
외줄 타는 철 지난 낙엽 
애달파했던 허기짐에 
몰래 귀동냥하는 사랑 
후조의 숨바꼭질 사랑 
붉게 그대의 향기가 
신기루 되어 보이는 
가슴차고앉은 빈자리 
그림자로 따라 붙는 
고운님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봄비 내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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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심장이다 / 현영길

잠자는 영혼 뿌리 단비 주고
연인 우산속 사랑 꽃피고
멈춰 울고 있는 강물 희석 주고
하늘 사랑 빗줄기 되어 흐르는
그대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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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과 봄비 / 오규원

오래된 붉은 양철지붕의 반쯤 빠진 못과 반쯤 빠질 작정을 하고 있는 못 사이
이미 벌겋게 녹슨 자리와 벌써 벌겋게 녹슬 준비를 하고 있는 자리 사이
퍼질러진 새똥과 뭉친 새똥 사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또닥또닥 소리를 내고 있는 봄비와
또닥또닥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봄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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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맞는 두릅나무 / 문태준

산에는 고사리밭이 넓어지고 고사리 그늘이 깊어지고
늙은네 빠진 이빨 같던 두릅나무에 새순이 돋아, 하늘에
가까워져 히, 웃음이 번지겠다
산 것들이 제 무릎뼈를 주욱 펴는 봄밤 봄비다
저러다 봄 가면 뼈마디가 쑤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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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가슴에 내리고 / 목필균

그대가 보낸 편지로
겨우내 마른 가슴이 젖어든다

봉긋이 피어오르기전 꽃눈 속에
눈물이 스며들어, 아픈 사랑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겨울 일기장 덮으며
흥건하게 적신 목련나무
환하게 꽃등 켜라고
온종일 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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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봄비 내리는 날의 기억 / 문충성

꽁꽁 얼어붙었던 하늘아
참았던 울음 탁 터놓아
엉킨 실타래 풀려나가듯
내리는 솜털 같은 첫 봄비
하늘아, 조금 성급했니?
무지개도 먼 산에 걸어두고
봄바람도 먼 들판에 재워놓고
꽁꽁 얼어붙었던 땅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거라
가슴속에 키워온
모든 슬픔의 씨앗들
죽어 살던 고통의 뿌리들
연초록 빛으로 꽃 피어나게 하라
솜털 같은 첫 봄비 내린다
온갖 새들아
비 내리는 하늘로 파닥파닥
모두 나래 활짝 펴 날아오르라
새봄 새파랗게 찢어놓아라
이승의 끝을 절룩여온 봄바람아
무지개야 하늘 가득 차오르라
봄 나비들아 나를 깨워내다오
저 아득히 먼 연둣빛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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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라고 믿고 싶은 비가 오는 날 / 오광수 

조금 맞으며 걷겠다.
아직은 큰 용기가 없어서
옷깃은 세우고 고개는 조금 아래로 숙이고
혹여나 흙탕물이 바지에 튀는 게 싫어 살살 걷겠다
그렇지만 청승스런 모습으로 보이는 건 싫다

 큰길로 나오자
쫓기는 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도 건널목 신호등이 빨간색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황색신호야 금방 바뀔 테니까

가로수가 모델 같은 포즈로 젖은 나신(裸身)을 드러낸다
내민 젖꼭지들은 꼭 우리 푸들 것만큼 작은데,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소망들을 보게 할까?
경이로움에 얼굴을 드니 안경이 빗물에 잠긴다

 이것이 봄비라고 믿고 싶다
들판에서 요동치는 삶의 춤판을 정말 보고 싶고
겨드랑이 속으로 허락 없이 들어오는 따슨바람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비를 맞고도 아내가 걱정하던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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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김병호
봄비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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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황동규
봄비 단상 / 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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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린 뒤  / 이정록 
봄비 소리에 / 최병향
봄비에 젖어 / 이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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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의 시샘 / 주응규
밤에 오신 봄비 / 오광수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오는 저녁 / 유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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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립니다 / 김지순
봄비가 내립니다 / 김하인
봄비 그리고 꽃비 / 이호정
봄비 내리는 저녁 / 안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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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오후 / 이승복
봄비는 심장이다 / 현영길
양철지붕과 봄비 / 오규원
봄비 맞는 두릅나무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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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가슴에 내리고 / 목필균
첫 봄비 내리는 날의 기억 / 문충성
봄비라고 믿고 싶은 비가 오는 날 /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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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관한 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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