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 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 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 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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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밭 / 김수복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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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비 / 이병률
작은 새가 와서
벚나무에 앉더니
벚꽃을 하나씩 따서
똑똑 아래로 떨어뜨리네
새가 목을 틀어가며
꽃들을 따서 떨어뜨리고
눈물 떨어지는 속도로
뚝뚝 떨어뜨리는 것은
그 나무 밑에 사랑을 잃은
누가 하염없이 앉아 있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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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씨 / 서정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 하나의 유리이슬이 되어야지.
은해사 솔바람 목에 두르고
내 가슴의 서쪽으로 떨어지는 노을도 들고
그대 앞에 서면
그대는 깊이 숨겨 둔 눈물로
내 눈 속 들꽃의 의미를 찾아내겠지.
사랑은 자기를 버릴 때 별이 되고
눈물은 모두 보여주며
비로소 고귀해진다.
목숨을 걸고 시를 써도
나는 아직
그대의 노을을 보지 못했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시를 위해
나는 그대 창 앞에 꽃씨를 뿌린다.
오직 그대 한 사람만을 위해
내 생명의 꽃씨를 묻는다.
맑은 영혼으로 그대 앞에 서야지.
============
+ 꽃잎 / 이정하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
+ 개 화 / 안도현
생명이 요동치는 계절이면
넌
하나씩 육신의 향기를 벗는다.
고이 펼쳐 둔 뒤란으로
물빛 숨소리 한자락 떨어져 내릴 때
물관부에서 차 오르는 긴 몸살의 숨결
저리도 견딜 수 없이 안타까운 떨림이여.
허덕이는 목숨의 한 끝에서
이웃의 웃음을 불러일으켜
줄지어 우리의 사랑이 흐르는
오선의 개울
그곳을 건너는 화음을 뿜으며
꽃잎 빗장이 하나 둘
풀리는 소리들.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별무늬같이 어지러운 꽃이여,
이웃들의 더운 영혼 위에
목청을 가꾸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내일을 노래하는 맘을 가지렴.
----------------------
+ 봄길 / 곽재구
매화꽃이 피면
다사강 강물 위에
시를 쓰고
수선화꽃 피면
강변 마을의 저녁 불빛 같은
시를 생각하네
사랑스러워라
걷고 또 걸어도
휘영청 더 걸어야 할
봄 길 남아 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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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 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
+ 동백 / 강은교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
+ 목련 / 류시화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 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 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 목련 / 정호승
목줄을 끌고
내가 개를 끌고 가지만
실은 개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다
봄이 왔다고
목련을 보러 가자고
개가 나를 끌고
백목련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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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꽃 / 남정림
누가 너를 보잘것없다 했느냐
잠깐 피었다 지는 소임에
실핏줄이 훤히 드러나도록
솜털이 요동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했는데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도
햇살 한 줌 머무르는
변두리 골목 귀퉁이를 데우는
너는
하늘이 눈물로 키우는 꽃
=============
+ 찔레 /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가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만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리 늘 말을 잃어 갔다.
-------------------------
+ 개나리 / 이은상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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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 / 이해인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 나온
네 잎의 별 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 뜨렸구나
내가 가는 봄맞이 길
앞질러 가며
살아 피는 기쁨을
노래로 엮어내는
샛노란 눈웃음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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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락 / 정연복
봄이 한창인 4월이나
5월 늦봄
가지런히 균형 잡힌
네 개의 잎
하양이나 연보라, 진보라의
다채로운 빛깔
은은히 짙은 향기로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관상수.
원래 이름은 참 재밌게도
미스 김 라일락(Miss Kim Lilac)
가지에 빽빽이 달린 꽃봉오리가
오곡 중 하나인 수수 이삭과 닮아
'수수꽃다리'라는 우리말 이름도 있다네.
꽃말은 첫사랑의 아름다운 맹세,
순결, 혹은 젊은 날의 초상
향이 무척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한자로는 정향나무
한방에서 정향나무 꽃봉오리는
가슴앓이와 구토증을 치료하는 약재라네.
모양과 빛깔
쓸모를 두루 갖추고서도
거만 떨지 않는
수수함으로 더욱 다정히 느껴지는
너의 향기 맡으며
첫사랑 그 시절이 생각난다.
==============
+ 라일락 / 조병화
당신, 라일락 꽃이 한창이요
이 향기 혼자 맡고 있노라니
왈칵, 당신 그리워지오
당신은 늘 그렇게 멀리 있소
그리워한들 당신이 알 리 없겠지만
그리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오
어차피 인생은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거
떨어져 있게 마련
그리움 또한 그러한 것이려니
그리운 사람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련가
당신, 지금 이 곳은
라일락 꽃으로 숨이차오
-------------------------
+ 민들레 / 남정림
한평생 그대를 앓았어요
처절한 그리움의 형벌에
온밤이 떨며 울었지요
민들레 홀씨처럼 실바람에도
흩날려 떠돌았던 아픔
내 안에 있는 그대에게
닿을 수 없었던 아픔
화석처럼 남아
하양 소금꽃을 피워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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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안부 / 강인호
당신 없이도 또 봄날이어서
살구꽃 분홍빛 저리 환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찾아갔을
분홍빛 오늘은 내 가슴에 듭니다
머잖아 저 분홍빛 차차 엷어져서는
어느 날 푸른빛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당신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내 추억도
이제 다 스러지고 말았을지도 모르는데
살구꽃 환한 나무 아래서 당신 생각입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저 분홍빛이 그대와 나
우리 가슴속에 찾아와 머물다 갈런지요
잘 지내주어요
더 이상 내가 그대 안의 분홍빛 아니어도
그대의 봄 아릅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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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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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 나태주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쓸쓸한 날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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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 신석종
좋아요
보고만 있는데도
눈물 나려고 합니다
예뻐서요
가녀린 여인이
한복을 입은 것 같은
그런 청초함이 보여요
이 작은 꽃에서요
몇 걸음 위에
진달래랑 생강나무꽃도
숨죽인 채 아까부터
여기만 보고 있어요
말 한마디 못 하고
마음에 품고 있나 봐요
연보라 이 꽃을요
사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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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 / 신경림
얼마나 장한 일이냐
꽃과 잎 꺾이면 뿌리를 그만큼 깊이 박고
가지째 잘리면 아예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 흙과 돌을 비집고
더 멀리 더 깊이 뿌리 뻗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피해서 꺾이지 않고
숨어서 잘리지 않으면서
바위너설에 외진 벼랑에
새빨간 꽃으로 피어나는 일이
---------------------------
+ 4월의 꽃 / 남정림
4월의 꽃밭에서
가장 반가운 꽃은
꽃 피우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꽃
4월의 꽃밭에서
가장 달콤한 꽃은
꽃 피우며 온몸으로 아팠던
그 꽃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그 꽃
바로 너
================
+ 개나리 꽃 / 도종환
산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앞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
+ 개나리꽃 / 정연복
함께 무리 지어
도도한
진노랑
빛의 물결
개나리꽃
덤불 속에 섰다.
방금 전까지
슬픔에 젖어 있던 나
졸지에
희망의 한복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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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첩 부근 / 조병화
견디기 어려워, 드디어
겨울이 봄을 토해 낸다
흙에서, 가지에서, 하늘에서,
색이 톡 톡 터진다
여드름처럼
-----------------------------
+ 봄까치 꽃 / 이해인
까치가 놀러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
+ 몸짱 씨앗 / 이정인
요것 좀 봐!
잠자는 척하면서
팔운동
다리운동
숨쉬기운동
부지런히 했던 거야.
안 그러면
이 쪼그만 게
흙덩이를 번쩍
어떻게 들 수 있었겠어?
----------------------------
+ 이 꽃잎들 / 김용택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이 까닭 없는 분노 아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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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아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고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
+ 벚꽃의 열반 / 정연복
꽤나 오래 심술궂던
꽃샘추위의 눈물인가
미안한 듯 서러운 듯
살금살금 내리는 봄비 속에
이제야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총총 떠나는
아기 손톱 같은
벚꽃들
한 잎 두 잎
보도에 몸을 뉘어
오가는 이들의
황홀한 꽃길이나 되어 주며
말없이 점점이
열반에 들어
세상 한 모퉁이
환히 밝히고 있다.
행여 그 꽃잎 밟을까봐
조심조심 걸었네
부러워라
부러워라
뭇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서도 가만히 웃는
저 작고 여린 것들의
순결한 마침표
==================
+ 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었다 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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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의 노래 / 정연복
내가 있어
세상이 밝으니
기분 참 좋다
많이 많이 행복하다.
나의 생
비록 짧지만
온몸 바쳐
한 점 불꽃이 되리.
온 세상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사랑의 불
활활 지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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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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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는 봄엔 / 용혜원
봄 꽃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봄 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 걸
봄 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
+ 봄꽃 피는 날 / 용혜원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사랑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
+ 봄은 왔는데 / 이정하
진달래가 피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 담 모퉁이에선 장미꽃이 만발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겨울이었지요, 눈 쌓인 내 마음을
사륵사륵 밟고 그대가 떠나간 것이
나는 아직 겨울입니다
그대가 가 버리고 없는 한 내 마음은 영영
찬바람 부는 겨울입니다
===================
+ 꽃 먼저 와서 /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
+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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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는 봄엔 / 용혜원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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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앗 하나가 / 문근연
꼼틀 꼼틀 태기가 있었나 보다
햇볕의 담금질로 해산할 모양이다
어둠을 꼬박 지새운 길에서
산통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고 있다
은하수 같은 꿈을 왈칵왈칵 쏟아 놓고
꽃밭인 듯 가슴 졸인 머리를 빠끔히 내민다
해산의 꿈들이 어둠을 헤엄쳐와
줄줄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탄생
꽃잎 하나 살며시 열고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가슴으로 빨려들 듯 봄이 반짝인다
==================
+ 풀꽃의 노래 / 이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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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가 필 무렵 / 복효근
매화가 핀다
내 첫사랑이 그러했지
온밤 내 누군가
내 몸 가득 바늘을 박아 넣고
문신을 뜨는 듯
꽃문신을 뜨는 듯
아직은
눈바람 속
여린 실핏줄마다
핏멍울이 맺히던 것을
하염없는
열꽃만 피던 것을.....
십 수 삼년 곰삭은 그리움 앞세우고
첫사랑이듯
첫사랑이듯 오늘은
매화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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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에 밟힐까 새싹이 밟힐까
사뿐사뿐 걸어요
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
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
꽃잎이 되어, 바람이 되어,
나는 날아요, 당신께 날아가요
나는 꽃바람을 들었답니다
당신이 바람 넣었어요
꽃을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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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꽃들엔 / 김명수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
+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바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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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지어의 눈물 / 임계자
맑은 향기 그리며
천진난만한 프리지어야
꽃방울 맺힌 너의 향기
천사의 눈물 되어
추위에 떨고 있구나
어쩌다 어미품을 떠나
너의 날개가
벽을치며 부러지려 하니
가여운 프리지어야
이른 봄 추위가
아직 너를 힘들게 하니
슬픈 옷 벗어버리고
천사의 날개짖으로
물방울 맺힌 아픔을
프리지어야 날려보내렴
온실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단다.
너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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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 반칠환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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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 김남주
마을 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꾹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 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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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시 모음
봄 / 김광섭
꽃밭 / 김수복
꽃비 / 이병률
꽃씨 /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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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 이정하
개 화 / 안도현
봄길 / 곽재구
봄꽃 /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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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 강은교
목련 / 류시화
목련 / 정호승
풀꽃 / 남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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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 레 / 문정희
개나리 / 이은상
개나리 / 이해인
라일락 /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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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 조병화
민들레 / 남정림
봄 안부 / 강인호
산유화 /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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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 나태주
제비꽃 / 신석종
진달래 / 신경림
4월의 꽃 / 남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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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꽃 / 도종환
개나리꽃 / 정연복
경첩 부근 / 조병화
봄까치 꽃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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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짱 씨앗 / 이정인
이 꽃잎들 / 김용택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벚꽃의 열반 /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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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보니 / 김시천
봄 꽃 피는 날 / 용혜원
봄꽃의 노래 / 정연복
봄은 왔는데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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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먼저 와서 / 류인서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 피는 봄엔 / 용혜원
씨앗 하나가 / 문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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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의 노래 / 이해인
매화가 필 무렵 / 복효근
봄봄봄 그리고 봄 / 김용택
우리나라 꽃들엔 /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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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프리지어의 눈물 / 임계자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 반칠환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 김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