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여름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처서에 관한 시 + 처서 / 김상아 창가 문틈 사이 사반사반 울리는 피아노 음률의 웨딩마치에 맞춰 연미복 입은 채 나직이 밝고 오는 신랑의 발자국 소리 꽃향기 몰고 오는 분명, 어제와 다른 ㅂ ㅏ ㄹ ㅏㅁ 어제 이글거리며 타오르던 뜨거움 오늘 아침, 불어오는 한 조각 라밴더향기로 고요히 잠들다 꽃길 걸어온 그대에게 계단 밟고 올라 말간 손 건네며 주저없이 말하리라 - 당신만 따라갑니다 - ------------------- + 처서 / 김오민 후두둑 비가 내린다. 빗방울을 몰고 온 바람이 이제 나를 떠다밀기도 잡아당기기도 한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창 앞의 토마토 잎새가 구름을 베고 누운 하늘을 보고 있다. 여릿여릿 말갛게 걷혀가는 서녘 하늘에 나를 헹구고 이제 내가 바람을 떠다밀기도 잡아당기기도 한다. .. 더위에 관한 시 3 + 더위 / 박경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냉동고에 물수건 넣었다 냉찜질을 한다. 37도 38도 계속 오르는 수은주 선풍기 에어컨 다 동원 올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이다. 겨울엔 핫팩 여름엔 냉팩 물수건을 목에 걸고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죄를 생각해 본다 ----------------------- + 더위 / 정은희 한들 한들 바람도 불지도 않고 습한 공기도 땅 속에 깊이 배인 열기로 숨이 차다 머리 위가 뜨거워서 함박가지 흘리는 땀들로 따가워서 이 더위가 사라지길 뜨거운 하늘을 보다가 눈부신 태양을 만나지고 이 더위를 이길 수는 없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어도 보고 피해 다니고도 보고 더위를 받아 들어야 하니 힘들다 마음으로 외운다 나만의 주문을 걸어본다 이.. 더위에 관한시 2 + 폭염 / 김명철 내 안에서 그가 기둥처럼 넘어진 후 여름내 열병을 앓았습니다 열꽃들 지천으로 꽃잎을 펼쳤습니다 하얗게 들떠다니다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여름도 백 년 동안의 맹독을 뽑아내려는지 신도시 곳곳에서 혈맥을 터뜨렸습니다 사내는 완강한 여름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습니다. 왜에 그랴아? 난 에미 잡아먹구 애비도 쥑인 년이여어 독주를 마시는 사내를 향하여 공사장 밥집 여자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불화살 속에서 ㄷ자로 철근만 구부리는, 허리를 펼 때마다 허공에 지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올리던 사내 그때마다 나도 그의 옆에 꼿꼿이 서 있고 싶었습니다 한밤, 돌아서는 사내의 검붉은 등 뒤로도 여름은 무릎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름 한복판에 난 상처는 다시 오는 여름마다 더 깊고 넓게 번진다고들 하였습니다 겨울.. 더위에 관한 시 1 + 더위 / 김정현 더위 먹은 트럭 한 대 고속도로에 길게 누웠다. 따라 오던 택시도 덩달아 발랑 눕는다. 트럭과 택시가 눈 맞아 세상을 내동댕이쳤다. 잔뜩 실은 짐 길바닥에 부려 놓고 트럭과 택시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구경꾼의 시선도 뜨거워진다. 구급차 지나간 자리에는 트럭도 택시도 주인을 잃고 검은 땀 길바닥에 쏟아 놓는다. 소리 없이 번지는 더위를 따라 ------------------ + 더위 / 심종은 사방 돌아다니며 쪽문까지 열어 젖혀도 해갈되지 않는 찜통 더위라 땡볕에 주춤거리기만 해도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구슬땀. 아무리 서늘한 바람 그리워 길 떠나도 인파에 떠밀리면 더위만큼이나 솟아나는 짜증. 복중에 옷을 낱낱이 벗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자연파괴와 물질 문명.. 8월 시 모음 4 + 8월의 서정 / 권오범 늦둥이 한 둘 낳아 여봐란듯이 업고 어상반하게 늙어가는 옥수숫대 여남은 뙤약볕에 파마한 곱슬머리 처녀들 흐벅진 포대기 태를 보아 시집보내도 되겠다 어지간히 둔탁해진 분신들 때문에 팔이 활처럼 휜 채 애면글면하는 모과나무에서 말매미가 변써 타전하는 사랑노래 숭덩숭덩 저며 헤살 놓는 쓰름매미 맥문동이 꼬치꼬치 쌓아 올린 자줏빛 꿈이 옥구슬 목걸이로 영글어 곤댓짓하고 호박이 걸음걸음 퍼질러 낳아놓은 자식들 나 몰라라 뻔뻔스럽게 고개 들고 담을 넘는 뒤란 감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하다못해 푸새들마저 삶의 보람을 요령껏 조랑조랑 매달고 태평스럽게 건너는 성하의 강 나만 열대야에 주리 틀려 어리숭하다 ---------------------------- + 8월의 정사(情事) / 고은영 기.. 8월 시 모음 3 + 8월 / 김귀녀매미소리 때문에 피를 토하는 8월 모과나무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나무 밑둥치엔 매미가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한데 무슨 생각 저리도 깊이 할까 한 여름 뙤약볕에 바람이 바스락 남기고 간 매미허물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 저리도 깊이 할까 오지도 않은 내년 여름 미리 염려하며 요동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의 속도도 재지 못한 채 8월 무더위는 지나가고 작열하는 태양아래 매미소리만 애처롭다 매미 울음은 긴 여운을 남기며 천길만길 흩어진다 내 생애 다가오지 않을 저 울음소리 ------------------- + 8월 / 오세영 8월은 분별을 일깨워 주는 달이다. 사랑에 빠져 철없이 입맞춤하던 꽃들이 화상을 입고 돌아온 한낮, 우리는 안다. 태양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저 눈부신 하늘이.. 8월 시 모음 2 + 8월 / 김사인긴 머리 가시내를 뒤에 싣고 말이지 야마하 150 부다당 들이밟으며 쌍, 탑동 바닷가나 한바탕 내달렸으면 싶은 거지 용두암 포구쯤 잠깐 내려 저 퍼런 바다 밑도 끝도 없이 철렁거리는 저 백치 같은 바다한테 침이나 한번 카악 긁어 뱉어주고 말이지 다시 가시내를 싣고 새로 난 해안도로 쪽으로 부다당 부다다다당 내리꽂고 싶은 거지 깡소주 나발 불듯 총알 같은 별을 뚫고 말이지 쌍, --------------------- + 8월 / 노정혜 8월 닮아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8월 숲 닮아 시원한 거늘이고 싶다 8월 바람 닮아 가슴속 까지 시원하게 뚧어주는 바람 8월 닮아 여름 가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8월은 더위 삭혀주고 논밭에는 풍성한 가을 주렁주랑 8월 더워도 좋아 좋아 --.. 8월 시 모음 1 + 8월 / 고은영 뜨겁기도 하여라 풀들이 내지르는 향기 이 화폭 가득 번지는 욕정 잎새와 잎새 사이 청춘의 푸른 정기 힘차게 약동하는 그대의 손끝에 생명은 환희를 그리는 초록빛 전언 말과 말이 손을 잡고 가슴과 가슴이 열정을 쏟아 날개를 펴면 화르르 날아와 착지하는 행복한 그대 얼굴 -------------------- + 8월 / 반기룡오동나무에 매달린 말매미 고성방가하며 대낮을 뜨겁게 달구고 방아깨비 풀숲에서 온종일 방아 찧으며 곤충채집 나온 눈길 피하느라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푸르렀던 오동잎 엽록체의 반란으로 자분자분 색깔을 달리하고 무더위는 가을로 배턴 넘겨줄 예행연습에 한시름 놓지 못하고 태극기는 광복의 기쁨 영접하느라 더욱 펄럭이고 있는데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