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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시 2 ㅡ 사소한 구원    ---제 1부---+ 북리北里 산 높고 골 깊어 우물 같은 곳 임란 때도 목숨은 살 수 있다고 어진 백성이 숨어들던 갑둔이나  귀둔 더 이상 꼴 보기 싫으니 내 눈에 띄지 말라고 유배 보내는 강원 산간 하고도 마가리 동학 전쟁 때 야반도주로 숨어든 내촌 백우산 아래 나의 씨족들이나 나의 씨족보다 먼저 온 마의태자나 고려 적 폐족들이 성을 바꾸고 숨어 산다는 곳 주먹으로 받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불씨 하나씩 가슴골에 품고 나무 하나하나에 말이나 붙이고 살아왔거니 혼잣말 일구어온 이깔나무나 떡갈나무들 인정을 찾아 먹을 것을 찾아 헤매 돌았다는 벌거벗은 조상은 어쩌다 혹한과 척박의 땅에 정착했는가 순록처럼 두터운 털도 곰처럼 긴 동면도 없이 농사지을 땅도 없이 돌이나 줍고 불에 불을 놓아..
한승태 시 1 ㅡ 바람분교 ---1부 ---+ 가물 일렁이는 물결에 여보, 라고 기대본 적이 있다 당신 물살과 눕고 싶었으나 연줄마냥 팽팽했다 당신의 등에 가닿으면 썰물은 저만치 달아났다 당신에게 등 돌려 누우면 밀물은 눈동자에 차기 시작 했다 빗방울 흐르고 눈물방울 흘러 땀방울에 가뭇없고 쌓여가는 부채는 뱃살로 늘어가고 말들은 말라갔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물이랑 높은 파고가 몰아쳤다 궁싯거려도 달의 창백蒼白에 조금씩 허물어지기도 했다 손을 잡은 기억이 시계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검버섯은 눈가에서 자라나 온몸으로 가물거렸다 입었던 옷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사이 먼 곳에서 오는 별빛은 눈 밑에 차곡차곡 쌓여서 잠자리에 같이 포개쳐도 가닿는 해안의 체위는 달랐다 빠져나간 온기의 말들이며 말하지 않아도 그 깊던 ..
기형도 시 2 ㅡ 시 모음 + 꽃 내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 풀 나는  맹장을 달고도 초식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동물이다 긴 설움을 잠으로 흐르는 구름 속을 서성이며 팔뚝 위로 정맥을 드러내고 흔들리는 영혼으로 살았다 빈 몸을 데리고 네 앞에 서면 네가 흔드는 손짓은 서러우리만치 푸른 신호 아아 밤을 지키며 토해낸 사랑이여 그것은 어둠을 떠받치고 날을 세운  네 아름다운 혼인 것냐 이제는 뿌리를 내리리라 차라리 웃음을 울어야 하는 풀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보자 발을 얽고 흐느껴보자 맑은 ..
기형도 시 1 ㅡ 입 속의 검은 잎 ---Ⅰ---- + 그 날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서  金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서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 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 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  서 육체로 넘어 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 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3월 시 모음 5 + 3월 / 박상현 계곡마다 녹아내리는 꽃눈 소리 곤 한잠 속에 등이 가려워 일어나 앉는다 짧은 팔에 가려운 부위는 손이 닿지 않는다 옻을 닮은 봄이 등에 붙어 잠을 깨우고 있다 긁으면 긁을수록 번져가는 가려움처럼 3월이 흑백의 대지 위에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 3월 / 손병걸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이라고 쉽게 말들을 하곤 해 ​그러나 창을 연 건 언제나 투명한 저 바람의 손길이야 막힌 망막을 녹이듯 바람은 어디든지 있는 힘을 다해 틈을 만들곤 해 ​안과 병동 창 너머 씨앗 한 톨이 언 땅을 뚫고 세상을 환히 박힌 키 작은 저 새싹도 그래 이맘때면 저마다의 이름으로 혹은, 이름 없이도 ​몸을 여는 모두가 새로운 계절이야 손끝으로도 볼 수 있는 온통 푸른 봄날이야..
3월 시 모음 4 + 3월 / 김용호 방긋 웃는 꽃들이 향기로 얼굴 내미는 3월 나도 향기로운 그리움 내 밉니다. 우듬지에 핀 진달래 꽃향기 내미는 3월 향기로운 당신의 그리움 내밀면 나는 꽃처럼 예쁜 마음으로 맞이하렵니다. 꽃의 존재는 푸짐한 향기 꽃의 존재는 푸짐한 미소 우리는 꽃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3월 / 김정숙 산수유 아래로 흐르는 위험한 해빙의 소리 쩍쩍 입을 벌린다. 스스로 발 묶은 겨울나기 바람 함께했던 계곡이 술렁인다는 소문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무거운 육신 애써 기지개를 켠다 툭툭 갈라져 나가는 사랑의 잔해들 불우한 천재의 반짝이는 이론처럼 객관성 획득하지 못한 채 묻혀서 녹아내리라 짧게 절규한다 힘겹게 움튼다 아직은 거친 겨울의 가장자리 어설픈 해빙이 서로에..
3월 시 모음 3 + 3월 / 용혜원 봄이 고개를 쑥 - 내밀기에는 아직은 춥다 ​겨울이 등을 돌리고 확- 돌아서기에는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다 ​뼈만 남은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연초록과 꽃들의 행진을 눈앞에 그리며 기다림과 설렘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땅속에 햇살이 따사로운 봄을 기다리는 새싹 눈빛이 가득하다 -------------------+ 3월 / 이외수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있으면  원고지 속으로 진눈깨비가 내립니다  춘천에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은 꽃이라는 한 음절의 글자만  엽서에 적어 그대 머리맡으로 보냅니다  꽃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이 있나요  한글 중에 제일 꽃을 닮은 글자는  꽃이라는 글자 하나뿐이지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 가득 차 있는 햇빛 때문에  왠..
3월 시 모음 2 + 3월 / 김태인 아지랑이 밟으며  들로 산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녀석  때 구정물 뒤집어쓰고 코 풍선 불며  탱자나무 둔덕 잔디에 누워 깜빡 잠들고  가시에 찔려 꼼짝 못 하고  탱자나무에 걸려 있는 봄볕  가시 하나 뽑아  부풀려진 풍선에 심술  지나던 하늬바람  숨어 있던 풍선 속 겨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 3월 /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고향 밭에 콩이라도 심어 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 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 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 날 연둣빛 꿈 -------------------+ 3월 / 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