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16) 썸네일형 리스트형 양동림 시 ===>+ 거울 1 제가 궁금하나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나요? 저를 들여다보세요 온통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저를 바라봐 준다면 저는 언제나 당신만을 따를게요 ---------- + 거울 2 나는 알고 있다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모두 나에게는 관심이 없음을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나를 감추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만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의 좋은 점을 찾기를 원하지만 나의 역할은 그들의 단점을 비춰주어 그들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게 하는 것 거기서 보람을 느끼는 나는 거울이다 -------- + 나이 뱃살이 두꺼워지는 만큼 돋보기가 불룩해지는 만큼 부고 알림이 점점 빈번해지는 만큼 내 생각보다 아이들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만큼 ---------- + .. 양균원 시 ===>+ 조율 나무그늘 무게에 가슴이 눌리는 언뜻 무수히 얻어맞는다 장맛비 잠시 그친 후 접은 우산 짚고 돌계단 오르려는데 잊고 지내던 하늘에서 누군가 물벼락 서늘히 쏟아낸다 수천 잎이 한꺼번에 부리는 물통 늙은 은행나무가 오직 내게 베푸는 세례 그리하여 느닷없이 씻기면 좋으련만 지난가을에도 그랬다 몰래 영근 과실들 늦은 태풍에 허공을 치더니 누런 과육으로 바닥에 드러눕더니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겨우내 시간을 쟀다 고요를 흔드는 한 그루 팬터마임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흉중흉내를 아무래도 감상할 수 없다 오락가락 날씨가 형성하는 여름 한낮 불협화음 조율이 필요하다 -------- + 포옹 초저녁 나무그늘을 딛고 내게 왔다 가누지 못할 무게에 뒤뚱대는 몇 발짝 너는 달려들고 나는 얼결에 무릎 한짝 땅에.. 유영금 시 ===>+ 새 누가 흐린 하늘을 자꾸 닦아내고 있다 무섭게 파래진다 새파란 물줄기가 주르륵 산마을을 흠뻑 물들이겠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희끗희끗 숨은 깃털 놀랄 일이다 사월 저무는 날,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울다 날아오르던 한 마리 새, 새가 푸른 가난을 질끈 짜 하늘을 닦고 있다 ---------+ 속달 그리움 나풀나풀 머리에 꽂고 초벽 사이 아슬아슬한 풀다리를 건너 숨이 노랗게 달려오는 누이야 어쩌자고 내 집 앞을 서성이느냐 일곱 살 네 마당에 가마니에 감겨 깨지 않던 나를 찾는 거냐 빨간 머리핀을 받으러 온 거냐 돌아가라 네게 줄 초막은 아직 짖지 않았다 머리핀도 준비하지 못했다 초막 빼곡히 앵속자를 심어 꽃내가 시끄러울 때까지 시인의 강에 함께 흘러라 아부용 넌출넌출.. 서상규 시 ===>+ 박쥐 그도 포유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검게 때 낀 옷을 비막飛膜으로 접고 막대그래프로 다리를 세워 발자국들이 지나는 지하도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생이 뒤집힌 빈 주머니로 허기가 일상이 되어 쥐의 몸통으로 엎드려 있다 햇살이 고양이 털 무늬로 발톱을 숨긴 바깥세상을 피해 그림자의 동굴 속에서 마른 쥐꼬리 같은 손을 내밀고 있다 손금에 절망의 궤적이 음각된 굴레를 드러내놓고 있다 마치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는 그가 꿈속에서 날개를 펼친다 철길에 뻗은 회귀선을 따라 관자놀이에 새파란 정맥을 일구며 유년시절을 향해 날아간다 밤하늘이 따스하게 품은 달빛으로 앙상한 흉곽 가득 양력을 부풀려 닿은 간이역 어둠의 발음으로 쉰 목젖을 감싸며 사투리가 정겹게 흘러나온다 어머니가 청색으로 물든 눈물을 닦.. 양성우 시 2 ====>+ 남포리 흐린 창밖에 희끗희끗 성긴 눈발이 날리고 마당 끝의 옷 벗은 나무들이 쓸쓸하다 무슨 까닭으로 서글픈 여러 생각들이 여기까지 따라오는 것이냐 살을 에는 찬바람이 언 늪을 휘저으며 건너오듯이 거듭하여 길 위에 넘어져 파인 상처들마저도 차라리 문들 걸고 한 시절을 소리 없이 이 비탈에 숨을까 어느 한 곳 마음을 둘 곳이 없어 헤매다가 잠시 머무는 외진 남포리 아무리 지우려고 몸부림처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 얼굴들.... 마치 잠든 것처럼 고즈넉한 마을에 희끗희끗 성긴 눈발이 날리고 뒷 숲에서 우는 새소리가 들을수록 처량하다 ----------- + 미호천 오늘도 고기비늘같이 햇살에 반짝이며 미호천 물은 흐르는구나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지난날들이여 뒤돌아보면 후회스러운 것이 어디.. 양성우 시 1 =====>+ 꽃소식 얼어붙은 앞강물은 언제 풀릴까 아직은 마당가 담장 밑에 흰 눈 더비가 수북하게 쌓여 있어도 벗은 나무 잠든 숲에 직박구리 멧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고 얄밉고 심술궂은 추운 바람이 일찍이 찾아들 줄 몰라도 길고 짙은 산그늘에 집마다 일찍이 문은 닫히고 아무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아도 청승맞은 그믐달과 안쓰러운 잔별들의 밤이 지나간 뒤에도 어느 구름의 터진 틈으로 쏟아져 내리는 따사로운 햇살 한 줌이 없어도 천 리 밖의 꽃소식에 내 가슴이 설레다니 오래전 남의 손에 먼 길로 떠나간 이들이 살아서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것같이 ------------ + 숨은 길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걸어가는 숨어 있는 길 늪이 있고 헝클어진 갈대숲 너머 벼랑 밑 그늘 깊은 곳 가시나무 우거지고 길고 마.. 문무학 시 2 ===>+ 꼭 약속이다 다짐이다 지키고 이루어야 할 감거나 다물거나 아무 지게 힘주라고 '꼭' 자는 갈고리 두 개 옥죄어서 하나다. --------- + 근根 한글 '근' 자는 줏대 있는 글자다 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꿋꿋하게 '근' 자다 뿌리가 될 수 있는 건 흔들리지 않는 거다. -------- + 앎 '앎'자는 '알아감'을 줄인 말 아닐까 사는 일 그것이 곧 알아가는 일일 텐데 살 만큼 산 듯도 한데 왜 이리도 어둡냐. -------- + 잠 '잠' 자는 참 살뜰히 보살펴 주는 글자 오늘도 그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자라고 편히 자라고 베개 하나 받쳐준다. ======+ 별것 사는 게 뭐 별거냐고 버릇처럼 되뇌이다가 '별것'처럼 쩝쩍대고 한참을 만져보니 험한세상 살아있는 건 별것인 게 분명해 .. 문무학 시 1 ====> + 4월은 4월은 서럽더라, 사람임이 서럽더라 녹색 군단의 거침없는 침공 앞에 숨소리 낮출 수밖에 없는 4월은 서럽더라 ------------+ 나무는 그 어떤 이름이라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그 어디 뿌리 두어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나무는 하늘과 땅 사이 젤로 순한 생명입니다. 나무를 노래하는 것은 무례고 오만입니다 그냥 있는 그만으로 위안이요 위엄이다 나무는 사람의 언어 그 너머에 있습니다. ------------ + 내일은 비바람에 수 없이 흔들리기도 했었다 뻗었던 가지마저 꺾이어도 보았다 그 설음 피가 되어서 내 온몸 돌았다 사랑도 증오도 한 가슴에 끓는 것 삭히면 사랑이고 뱉으면 증오인걸 아직도 좁은 가슴은 익혀내지 못한다 차라리 버리면 외려 다 가지는 것 풀 한 포기 쓰다듬고 나무 한.. 이전 1 2 3 4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