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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자 ~

최두석 시 2

+ 매미

매엥 매엥 매엥 매에ㅡ
무더위와 싸울듯이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들으며
막상 매미는 대포소리에도 반응이 없는
귀머거리라는 파브로의 주장이 떠오른다

아파트 창틀까지 붙어
잠을 깨울 정도로 극성스럽다는 것은
귀를 가진 사람들의 반응일 뿐
암매미의 고막은 시끄러운 청각이 아니라
떨리는 촉각으로 울리는지 모른다

나무의 수액은 어떻게 매미의 피가 되며
살 떨리는 매미의 성감은 과연
얼마나 미묘하고 야릇한 감각일까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맛보는 망울들이
어떻게 호응하여 조화를 부리는 걸까

멋대로 상념의 날개를 퍼다가 문득
나는 허물을 어디에 벗어둔지 모르고
정작 심금은 어떻게 울리는지 모르고
한 마리 말매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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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개비

두물머리 갈숲에서 개개비가 운다
바람에 흔들리고 갈대 위에 앉아
개개비도 바람에 흔들리며 운다

두 발로 갈대를 꼬옥 붙잡고
주황빛 입 한껏 벌리며 운다
간절하게 짝을 찾는 것이다

갈대처럼 물가를 좋아하는 개개비
갈대를 엮어 둥지 틀고
나는 잠시 갈대가 되어
물에 발을 잠그고 강가에 서본다

삐죽 솟은 나의 상념의 줄기 붙잡고
온몸을 떨며 개개비가 운다
간절하게 구애의 노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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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고라니에게도 영혼이 있니?'
고나리의 뼈를 발라먹는
독수리를 보며 든 의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천수만에서
독수리는 검은 사제복 입은 신부처럼
엄숙하고 꼼꼼하게 지상의 장례를 집행한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독수리에게도 영혼이 없을 리 있나
고라니도 마찬가지겠지'
배부르게 먹고 느긋이 쉬다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선회하는
독수리를 보며 든 생각이다

어떤 종교로도 해소하기 힘든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독수리는 묵묵히 태연하게
야생의 장례를 집행하며 보여준다
조장鳥葬의 풍속이 생겨난
연원을 아득히 더듬어보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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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새

나이 들어 몇 해 동안
동백꽃 피는 철이면
오래된 동백숲 순례하며
동박새를 찾는데
보이지 않네

젊은 날 연인과 함께
동백꽃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나 잘 보았는데
일부러 다시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네

매화 꿀 빨거나
산초 열매 쪼는
동박새는 간혹 보이는데
동백꽃 꿀 빠는 모습은
보이지 않네

동백꽃 아무리 잘 피어도
동박새 없으니 허전하네
빛나는 눈동자의 순간은
가뭇없이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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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부기

뜸 뜸 뜸 뜸 뜸
논바닥에 깔리듯이 저음으로 우는
뜸부기를 찾는다
수컷 뜸부기는 벼포기 사이로 고개 내밀어
붉은 이마판을 살짝 보여주고는
또다시 숨어서 운다
암컷 뜸부기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농촌에 흔하여
김매다 알을 꺼내먹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뜸부기
뜸부기야, 어디 숨었니?
동틀 무렵 임진강변에 나와
뜸부기와 숨박꼭질한다
숨바꼭질이라도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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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황새

먹황새야, 어디 숨었니?
화순적벽에 와서 먹황새를 찾는다

먹황새가 좋아하는 높은 암벽 아래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곳
여기저기 두루두루 둘러보아도 자취가 없고
어느 소나무 아래 바위 그늘에 숨었는지
먹는 것도 거르고 낮잠에 빠졌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찾는 것 포기하고 무작정
길목에 앉아 기다린다
예전에는 산 좋고 물 맑은 계곡 암벽에
둥지 틀고 새끼를 길렀으나
이제는 겨울날 대여섯 마리 일가족만 도래하는
귀한 손님, 먹황새가 숨바꼭질 그만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를 기다린다

한 나절이 지나도록 기다리다
기다리는 것마저 잊고 있다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하늘을 보니
하얀 배에 검게 빛나는 날개 활짝 펴고
길게 뻗은 붉은 부리로 바람 가르며
먹황새 가족이 날아와
빙빙 돌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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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ㅡ나희덕에게

만수산 무량사에 가거든
영산전과 부도밭 사이를 걸어요
온 생애를 길에서 보낸 자의 발걸음
잠시라도 흉내 내면서

얼마나 세상이 못마땅했으면
얼마나 속을 끓였으면
영정마자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까
영산전에서 벙거지 쓴 영정을 보고

생애의 마지막 인연이 수습된
부도밭으로 가서
부도의 깨진 자국 어루만져요
상처 많은 사내의 흉터를 만지듯이

얼마나 많은 강과 시내를 건넜을까
탁류를 거슬러 맑고 차게 자신을 지키려
스스로 유배의 길로 내몬 
떠돌리 시인 김시습

만수산 무량사에 가거든
영산전과 부도밭 사이를 걸어요
온 생애를 길에서 보낸 자의 영정과
사리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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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잎 하나에 꽃 하나
그 사이를 잇는 호리호리한 꽃대

꽃술에 
이슬방울 잘 머금는
초가을 산들바람에 춤을 추는

눈으로만 보고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되는 어여쁨이 있다

이제 막 풋풋한 소녀에서
청초한 처녀로 바뀌는
립스틱도 처음 발라보는

혼자서 몰래 좋아하고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아리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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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수리

온갖 곡식이 영글고
물고기의 살이 오르는 가을은
물수리가 찾아오는 철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낚시가 금지된 팔당호에서
물수리가 잉어를 낚아채 날아오른다

잉어가 몸부리칠수록
발을 손처럼 쓰는
물수리의 발톱은 살 속 깊이 박힌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도 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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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집 안의 화분에 난이 벙글었는데
굳이 바람꽃 보러 설악으로 떠나는
속내는 정작 무엇일까
때 되면 분갈이도 하고
채광과 습도를 맞추며 보살핀 난이
새침하게 피어 맑은 향내 풍기는데
온몸으로 비바람 맞는 능선에서
바람에 제멋대로 흔들리는 바람꽃 보고파
수고롭게 먼 길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웅하는 아내의 농담 섞인 진단은
바람둥이의 바람기가 도져서란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바람꽃 보며
바람 따라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싶은 걸까
내 몸속 바람기와 뒤섞여 흐르는
유목의 피와 농경의 피는
얼마나 서로를 거스르고 싶어 안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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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산골짝 응달에는 아직
얼음이 덮어 있는데
봄을 부르는 꽃은
역경을 디디고 핀다는 듯
변산바람꽃 피네
세상에 희망처럼 오는 봄
함께 부른다는 듯
어느새 나도바람꽃 피고
뒤이어 나도바람꽃 피네
충만한 봄기운은
새의 핏속에 스민다는 듯
꿩의바람꽃 피네
봄바람 제대로 쏘이면
가슴 속에서 회오리가 인다는 듯
회리바람꽃 피네
가슴  속 회오리 달래다 보면
그리움도 아쉬움도
홀로 삭일 수밖에  없다는 듯
홀아비바람꽃 피네
이 땅의 봄은
온갖 바람꽃 피며 왔다가
온갖 바람꽃 지며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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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이 산으로 가도 뻐국
저 산으로 가도 뻐뻐꾹 뻐국
뻐꾸기소리 듣다 보면
남도 잡가 「새타령」을 부르는
구성진 목소리와 함께
뱁새나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나는
뻐꾸기의 잽싼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마다 듣는 귀가 달라서
쑥꾹새라고도 하는
뻐꾸기소리 듣다 보면
뻐꾸기 울음에 설움에 싣고 한을
얹는
시인들의 시와 함께
먼저 깨어나 등으로 다른 알을 밀어내는
뻐꾸기 새끼의 집요한 몸짓이 떠오른다

둥지 밖으로 알을 밀어낼 때
뻐꾸기 새끼의 등에는
어떤 촉감이 올까
자신보다 휠씬 몸이 클 때까지
뻐꾸기 새끼를 먹여 기른 뱁새는
자신의  새끼가 갑자기 뻐꾸기가 되어 날아갈 때
어떤 환영을 볼까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한 짓과
모르고 한 짓은 얼마나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냥 본성으로 돌리기엔 꺼림칙한
모성애에 대한 뻐꾸기의 능멸이
수많은 영상으로 잡힌 오늘날
그걸 모르고 지은 시와 노래는
앞으로 어떻게 읽히고 불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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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국채

이름을 알고 잎을 보기까지
잎을 보고 꽃을 만나기까지
각각 십여 년이 걸린 풀꽃이 있다

동강 벼룻길로 백운산을 오르다가
뻐꾹채를 몇 번 보았는데
아쉽게도 꽃 피는 때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늘 일이 먼저였고
동강을 굽어보며 백운산에 오른 건
드물게 한가한 날을 택해서였다

몇 번이나 뻐꾹채는 나의 한가한 시간을 외면하였다
오로지 뻐꾹채 피는 때에 맞추어 산에 오르자
비로소 휘황한 꽃송아리를 만날 수 있었다

뻐꾹채는 나에게 벼랑을 등지고 피는 꽃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에게만
싱그러운 어여쁨을 보여주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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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산수유 한 줌 발라 먹으며
묵은해 보내는 내게
경계하듯 우짖는 직박구리야
너의 혀에도 산수유는 떫고 시니?

눈 속의 붉은 열매 쪼아 먹으며
산수유꽃 환한 꽃그늘에서
짝 찾을 날 기다리는 직박구리야
네게도 무슨 후호할 일 있니?

열매는 선물로 베풀고
가지마다 무수한 꽃눈을 단 채
추위를 견디는 나무의 마음을
직박구리야 너는 짐작이나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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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북간도 명동촌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서
맑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있었다

서울의 온돌방에서
교토의 다다미방에서 시를 쓰면서도
마음속 길을 따라 우물을 찾아가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곤 하였다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
의문의 주사를 맞고
나날이 수척해가는 자신의 몰골도
그 우물에 비추어 보았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날
캄캄한 밤하늘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
빛을 뿌리며 우물 속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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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멸종의 위기 잘 넘기기를 바라는
저어새는 강화도 갯벌의 깃대종

파도의 힘을 시험하는 듯한
서해 바닷가 바위섬 위에
나뭇가지나 풀줄기로 엉성하게 지은
저어새 둥지를 보다 보면
지상에 마음대로 다리 뻗은 방 한 칸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진다

새끼는 어미의 부리를 물어 먹이를 조르고
어미는 삼킨 물고기를 토해 새끼를 먹인다
밥주걱을 입에 물고 태어난 듯한
저어새의 기다란 부리를 보다 보면
먹고사는 일의 엄연함에
새삼 입술을 깨물게 된다

갯벌 물골에서
주걱 부리를 휘저으며
분주히 먹이를 찾는 저어새 따라다니다가
쫒기는 물고리 잽싸게 찍어 먹는 백로를 보면
늘 얌체가 이기는 세상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진창처럼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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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
  ㅡ 파랑새로의 환생을 꿈꾼 한하운을 생각하며

파랑새의 날개는 매혹적인 비췻빛
햇빛의 방향에 따라 오묘하게 변한다
하지만 파랑새처럼 푸른 옷을 입고 싶진 않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화사하기에

파랑새는 타고난 곡예비행사
가볍게 솟구치고 세차게 내리꽃고
잽싸게 방향을 튼다
하지만 팔 대신 날개를 달고 싶진 않다
손으로 하는 일상의 일들 포기할 수 없기에

파랑새는 솜씨 사냥꾼
넓적한 부리로
날아다니는 잠자리 매미 풍뎅이 등을 잡는다
이런 곤추을 사람이 먹지 않아서 다행이다
파랑새가 농사에 도움을 주어서 다행이다

파랑새가 행운을 부른다는 말은 믿지 않으나
파랑새가 사는 마을은 행복할 것 같다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울고
풍뎅이가 잎을 먹는 마을은 평화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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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독수리

겨울이면 신탁을 전하러 오는 새가 있다
금빛 갈기깃을 세운 가검독수리
나는 부러 추운 날을 골라
천수만으로 신의 사자를 만나러 간다

'가슴을 활짝 퍼고 야생의 심장을 느껴라'
예로부터 전해오는  진리인 듯
신탁의 내용은 해마다 다르지 않지만
내게는 늘 새로운 계시처럼 신선하다

검독수리는 신탁만 전하고
제물은 스스로 사냥해서 마련한다
어떤 날은 기러기를 어떤 날은 고라니 새끼를
젯상에 올린다

제를 울린 뒤 살코기를 뜯는
검독수리의 부리를 보며
신탁을 전하기 위해 그가 지나온
험준한 산맥과 광막한 벌판을 떠올린다

배를 채우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검독수리를 보며 생각한다
나의 심장에는 알타이산맥에 터 잡고 살던
돌도끼 부족의 피가 몇 방울 흐르고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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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바위

강화도 선두포구 앞에는 썰물 때면 갯벌 위에 서 있다
가 밀물 때면 허리까지 잠기는 바위가 있어 사공들에게
물길 안내한다.

옛적에 정수사의 스님을 찾아온 여인이 있었다. 아기
를 업고 지아비 찾아온 여인은 움막에 머물며 출가한 사
내를 기다렸다. 조개를 캐먹고 살던 여인은 어느 날 갯벌
에 물 때 모르고 나갔다가 밀물에 휩쓸려 죽었다. 그녀가
죽은 자리에서 솟아났다는 각시바위는 곁에 아기바위까
지 데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저어새가 찾아와 각시의 어깨나 머리 위
에서 짝짓기 한다. 나뭇가지나 풀줄기 물어 와 둥지 틀고
새끼를 기른다. 너구리나 족제비가 넘보기 어려운 바위
위의 옹색한 둥지에서 지상의 희귀한 목숨이 자란다. 사
리 때 바다가 그득히 차오르면 간혹 물에 잠기는 둥지도
있다. 갯골에서 부리 휘저어 망둥이나 게를 잡아먹고 살
다가 멀리 타이완까지 날아가 겨울을 나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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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줄박이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곤줄박이의 열매 쪼는 소리가
목탁소리처럼 숲을 울리고 있다
껍질이 단단하고 매끈한 때죽나무 열매들
갈라진 나무 줄기 사이에 두고
두 발고 모두어 쥔 채
부리로 연신 쪼아대고 있다
때죽나무 열매를 쪼려고 생겨난 듯하다

좋아하는 때죽나무 열매를 받들듯이 쥐고
금이 가는 껍질 틈새를
뿌리로 세차게 내리찍으면서도
고래를 좌우로 깊게 젖히면서
계속해서 주위를 살핀다
작고 약한 곤줄박이가 천적을 피하는
습관이 된 몸짓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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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

설악산 마산봉에 금강초롱 보러 갔다가
진드기에게 물렸다
드물고 귀한 금강초롱 잘 보았는데
발목을 진드기에게 물렸다

청초하게 고혹적인 금강초롱 본 것으로
행복한 하루였는데
발목에 붙어 피를 빨고 있는 진드기를
발견한 것은 이미 사흘이 지난 뒤였다

물린 자리에 염증이 생기고
주위의 살갖이 부풀면서 가려왔다
가려운 곳을 긁으니 더욱 가려왔고
주위의 살갖이 잔뜩 성을 내었다

못견디게 가려울 때면 금강초롱을 떠올렸다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금강초롱
그걸 채집하여 학계에 보고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을 떠올렸다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염증은 계속 덧났고
가려움을 참으며 골똘히 생각하였다
금강초롱의 학명을 하필 하나부사*로 지은
제국대학 교수 나카이의 심리의 밑바닥을.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는 강화도조약 후 조선 주재 초대 공사로 일하면서 일본의 조선 병탄 과정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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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비꽃

예전에 곤드레만드레 술꾼이
허청대며 고개를 넘을 때면 나타나
밤새 씨름을 하자고 덤비던
도깨비는 다 어디로 갔나
젊은 과부 집에 몰래 슬며시 드나들다가
새벽닭 우는 소리에 놀라
금방망이를 두고 달아난 도깨비는
그 후 어찌 되었나 묻는다
곶자왈을 걷다가 만난 산수국에게

특별한 은총은 기대하지 않고
쉽사리 신에게 기대고 싶지도 않은 자로소
유달리 당 많은 제주에서는 왜
산수국을 도체비꽃이라 부르나 묻는다
곶자왈에서 푸른 불 밝힌 산수국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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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구나무

등구나무가 등구나무인 것은
마을에 뿌리 내리고 살며
길 떠나는 이를 멀리 배웅하고
돌아오는 이를 먼저 반기기 때문이다

등구나무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팔 벌려 다정히 맞이한다
좀처럼 등을 돌리지 않는다

숲속의 팽나무나 느티나무는
등구나무가 되지 못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살아야
그늘이 넓고 깊은 등구나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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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에게

비애야 
꿈틀거리는 애벌레야
내 속에서 살고 싶으면
얼마든지 들어오렴

내 마음의 숲속
여린 풀잎이거나
거친 나뭇잎이거나
식성대로 갉아 먹으렴

배부르게 먹고
자고 싶은 데서 자고
뒹굴고 싶은 대로 뒹굴고
네 집처럼 멋대로 살려무나

더 이상 가눌 수 없고
딩굴 수 없을 만큼
네 몸이 무거워지면
나는 너를 고치로 가두겠다

계절이 바뀌면 너는
고치를 뚫고
황홀한 나비가 되어 휠휠
내 눈길 밖으로 날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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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본다

가까이할 수도 어루만질 수도 없는
새를 본다는 것은
새와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

새를 쫒아다니는 게 아니라
새의 습성과 영역을 알아
길목에서 미리 기다리는 것

멀리 날아간 새를 아쉬워하고
가까이 다가온 새의 노래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새가 경계하지 않고
마음껏 춤추고 짝짓기 하게
인기척을 죽이는 것

새를 본다는 것은
종마다 서로 다른 부리를 확인하는 것
그 부리로 무얼 먹나 궁금해하는 것

먹어야 사는 생명이
팔 대신 날개 달고서
얼마나 더 자유로울 수 있난 살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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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

격정으로 출렁이는 파도보다
바위의 침묵이 그리운 날
우뚝 솟은 바위산을 오르네
암봉을 타며
바위의 침묵을 쪼아
연꽃 피워 부처를 미소 짓게 한
옛적 석공을 생각하네

바위의 완강한 침묵보다
파도의 출렁이는 말이 그리운 날
파도소리 거친 바다로 가네
알몸으로 파도를 맞으며
청아한 피리소리로
거친 파도 잠재워 세상을 화평케 한
옛적 악공을 생각하네

그러다가 지상의 방방곡곡
암반을 뚫고 해맑은 샘이 솟는 곳
시내가 흘러 유유히 강이 되는 곳
강이 흘러 바다와 뒤척이며 만나는 곳
성지인 듯 순례하네
세상의 온갖 목마름을 적시는
간절하게 귀한 말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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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또폭포

가슴에 야심을품고
거칠 것 없이 사는 이여
제주가에 가거든
엉또폭포엔 가지 말게나
무슨폭포가 한 방울 없느냐고
속은 게 분하다는 듯이
투덜댈 게 분명하니

세상의 변방에 살면서
바래버린 꿈을 아쉬워하는이여
제주에 가거든
바닷가만 걷지 말고
엉또폭포에 다녀오게나
가서 일 년 중 며칠
폭우가 쏟아질 때나 드러나는
장쾌한 위용 상상해보게나

혹시 모르지 
운이 좋으면 암벽 위를 나는
송골매까지 만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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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

그대와 함께 갔던 산길 걷는데
휘파람새 우네
말할 수 없이 간절한 노래
휘파람으로 부른다는 듯이

휘이 후이잇 호로로로 후잇

추억을 되새기며 산길에서 서성이는데
휘파람새 우네
숨 막하게 차오르는 그리움
휘파람으로 날려보낸다는 듯이

휘이 후이잇 호로로로 후잇

새잎 돋는 나뭇가지에 앉아
휘파람새 우네
이별도 우중충하지 않게
슬픔도 영롱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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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이야기

옛적부터 한반도 근해에는 거북이 산다. 그 거북은 동
해 남해 서해를 넘실넘실 물결 타고 돌아다닌다. 먼바다
로 나가는 일은 드물고 갯바위에 앉아 쉬며 파도를 맞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 심심하면 강을 거슬러 올라 산골짜
기 폭포에서 물을 맞기도 한다.

예전에는 동해로 멀리 돌아 만주 송화강을 거슬러 오
르기도 하였다. 한번은 기마부대에 홀로 쫓기는 청년을
등에 태워 건네 주었다. 대대로 그 나라 왕들의 무덤
속 돌벽에는 신성한 거북을 그려 현무라 하였다.

또 한번은 동해 감포 앞바다 갯바위 근처에 힘차게
자맥질하며 헤엄을 쳤다. 우연치 않게 그 갯바위는 몇 해
전에 서거한 왕을 화장해 뿌린 곳이었다. 하여 왕의 혼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킨다는 전설이 생겨났고 그때부터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다시 또 한번은 곰솔 숲과 모래밭이 좋은 삼척 해안을
지나는데 눈을 씻고 볼 정도로 아리따운 여인이 해당화
향내를 맡고 있었다. 그래 그 여인을 등에 태워 신나게
울릉도 여행을 다녀와서 보니 사람들이 작대기로 물을
치며 여인을 돌려달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또다시 한번은 여수 오동도 앞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놀았다. 바다의 음악에 맞춘 그 파도타기를 유심히 지켜
본 장수가 거북선을 만들었다. 얼마 후 남해는 십만 병사
가 수장되는 전쟁터로 변했고 거북선은 진도와 부산 사
이의 바다를 누비면서 청사에 빛나는공을 세웠다.

이 땅의 곳곳에는 걸출한 인물의  공을 기려 세운 비가
많은데 오석의 비 만으로 아쉬울 때는 화강석에 거북을
새겨서 그 위엄을 빛내곤 하였다. 수많은 돌거북 가운데
경주에 있는 무열왕비의 귀부는 당당하고 힘찬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조각한 걸작이다.

넘실넘실 물결 타는 재주가 빼어나 거북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섬과 해안을누비며 다니다가 때로는강을 거
슬러 오르면서 살고 있다. 가령 남해로 불쑥 튀어나온 돌
산도 금오산이나 한강이 임진강을 맞이하는 오두산은 거북이 자주 찾은 것을기념해 생긴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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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할미꽃

강은 흘러야 강이고
꽃은 피어야 꽃이라고 말하는 듯
동강할미꽃 피네

수만 년 동안
강과 산이
밤낮으로 만나 빚은 절경
절벽을 수놓는 꽃

댐을 막아
절경을 수장시키려던 시절
때맞추어 세상에 나타나
아름다움의 가치를 증언한 꽃

강은 한없이 젊고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동강할미꽃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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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잠

삵 같은 천적 피하기 위해
얕은 물에 발을 잠그고 자는 두루미는
추위가 몰려오면
한 발은 들어 깃 속에 묻는다

외다리에 온몸 맡긴 채
솜뭉치처럼 웅크린 두리미의 잠

자면서도 두루미는
수시로 발을 바꿔 디뎌야 한다
그래야 얼어붙지 않는다
그걸 잊고 발목에 얼음이 얼어
꼼짝 못하고 죽은  새끼 두루미도 있다

한탄강이 쩡쩡 얼어붙는 겨울밤
여울목에 자리 잡은
두루미 가족의 잠자리 떠올리면
자꾸 눈이 시리고 발목도 시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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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와 숭어

노랑부리백로가 어린 숭어를 찍어 올려
부리 속에 집어넣는다
백로는 숭어를 보고 숭어는 백로를 본다
백로와 숭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마주친다

백로의 눈도 또렷하고
숭어의 눈도 또렸하다
백로도 숭어도 오직 보는 일에만 집중한다
기쁨이나 두려움은 눈빛에 스며들 틈이 없다

숭어의 꼬리지느러미는 물방울 튀기는데
백로의 부리는 완강하고
강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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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벌레

산책길에 만나는
복사나무에 복숭아가 익어서
꽃 필 때부터 기대한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서
따서 한입 베어 무니 벌레가 나오고
다른 복숭아를 베어 무늬 또 벌레가 나오고
예닐곱 개의 복숭아를 시험해보아도 다
벌레가 들어 속살을 파먹고 있다

과수원 농사꾼을 애먹이는 해충
복숭아심식나방 애벌레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열매 속에 잠입해
복숭아를 먹이이자 집으로 삼고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한 세월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벌레에게는 복숭아가 전부이지만
나에게는 여러 먹거리 중의 하나
하지만 벌레나 나나
태고로부터 전해지는
복숭아를 탐하는 맛망울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상념이 불쑥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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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나무

추위에 몸과 마음이
옴츠러들거나 헛헛해질 때
활기를 얻으려 찾아가는 나무가 있다
열매를 거두어가지 않는 산수유나무

몇 번 눈 맞은 뒤에도 가지마다
선홍빛 열매 조롱조롱 달고 있는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어느새 새들이 찾아온다

직박구리나 물까치나 떼로 날아와
열매를 따 먹으면
산수유나무 주변은 어느새
흥성한 잔치가 벌어진 것 같다

때로는 까치들이 날아와
다른 새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까치밥에 함부로 부리를 대지 말라는 듯
한껏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산수유나무가 맺어준 인연으로
난생처음 만난 새도 있다
큰부리밀화부리와 대륙검은지빠귀를 본 날은
연인을 본 듯 마구 가슴이 뛰었다

나도 새들을 흉내 내어
시고 떫은 열매를 따 먹는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다는 듯이
가지마다 올망졸망 맺힌 꽃눈을  본다

겨울날 산수유나무 아래 서 있다 보면
문득 경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산수유나무를 통해
새를 사랑하는 신의 뜻이 드러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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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랑나비

두위봉 능선길에서
산비장이 꽃에
산호랑나비가 날개를 퍼고 앉아
꿀 빠는 걸 지켜본다
꽃의 붉은 빛과
나비의 검고 노란 무늬가 선명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붉고 파란 무늬가 있는
나비의 뒷날개가 뜯겨져 나갔다
어떤 새의 공격을 받았을까
뒷날개의 무늬를 주고 가까스로
목숨 구하는 장면이 어른거린다

나비도 악몽을 꿀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나를 비웃듯이
산호랑나비는 유유히 날아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빤다
급기야 온전한 모습의 짝을 만나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드디어 짝짓기 한다

앞으로 이 산호랑나비는
어느 잎으로 날아가 알 낳을까
궁금해하며 산길 가다가
문득 어느 후배 여성시인과 나를 엮는
염문을 떠올린다
전혀 다른 두 친구로부터 들은 염문의
아니 땐 굴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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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호랑나비

화이산 골짜기
얼레지와 현호색과 꿩의바람꽃이 피어
미모를 다투는 꽃밭에서
봄의 요정 같은 애호랑나비 한 쌍
향내 맡으며 꿀을 빨다가
이 송이 저 송이 온갖 꽃송이
너울너울 넘놀며 춤울 추다가
서로 꼬리를 맞대고 짝을 짖는다

이 혼례를 숨 막히게 훔쳐보는 풀이 있다
나비가 찾지 않는 소박데기 꽃을
발치에 숨겨둔 족도리풀
그런데 혼례 후의 애호랑나비는
얼레지와 현호색과 꿩의바람꽃은 제쳐두고
족도리풀만 찾아다니며 알을 낳는다
부화한 애벌레는 족도리 풀잎 갉아 먹으며
고물고물 굼실굼실 자라리라
족도리꽃은 찾지 않는 애호랑나비
족도리풀만 먹는 애호랑나비 애벌레
도대체 지상의 아름다움은
봄날의 환상 같은 애호랑나비처럼
무엇을 먹고살며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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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주목

예로부터 화랑부터 의병까지 왕부터 무당까지
기도하려 오르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태백산 장군봉 천제단 주변에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전설의 주목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는 껍질을 벗기 전 젊은 나무도 있고
이미 뼈대만 남은 고사목도 있다
삶의 충동과 죽음의 인력 사이의 팽팽한 줄다기리기를
견디느라
온몸이 심하게 뒤틀린 나무가 많다

나의 전생의 어미가 겨울잠 자고 나왔을 듯한 몸통에
죽은 가지가 산 가지보다 휠씬 많은 기이한 몰골들이
마치 온몸으로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이토록 절실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어떤 조각가도 도저히 새길 수 없다고 보이는데

이제 삶의 충동과 죽음의 인력 사이의 줄다리가를
몸으로 느껴야 하는 내가 천제단에 올라
기도의 제목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각자 살아온 생애처럼 기이한 모습의 주목들을 어루만
지며
기도하는 자세만 흉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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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꽃등에

크고 우람한 것 찾는 이들에겐
눈에 띄지 않을
하찮은 미물이다

산풀꽃 보러 다니다가
사진을 찍으면서
뒤늦게 알게 된 작은 곤충이다

비행술이 좋아
정지비행을 즐기는 벌처럼 보이지만
독침이 없다

어여쁜 꽃을 만나
곁에 머물다 보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이른 봄 복수초 꽃에서도
늦가을 구절초 꽃에서도
쉬어가는 과객이다

신의 명을 받아
어여쁜 꽃이 피어나게 하는
숲의 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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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새야, 훨휠

팔짝 풀짝 새끼 황새가 뛴다
파닥  퍼덕 날갯짓하며
둥지 위에서 나는 연습을 한다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니
네 마리가 돌아가며 뛴다
비좁은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팔짝 폴짝 새끼 황새가 뛴다
황새공원에서 방사한 황새 한 쌍이
공들여 길러낸 귀한  새끼들이
황새가 사라진 지 어언 반세기만에
다시 이 땅의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황새공원이 가까운
예산군 광시면대리 둥지탑 위에서
복원된 황새의 상징인 듯
다리에 가락지를 낀 채
텃새 황새의 새로운 시조가 되려는 녀석들에게
나는 소리 죽여 외쳐본다
황새야, 날자 훨훨 날아보자꾸나

생태농법이 시행되는
광시면 지역을 제외하고
이 녀석들이 좋아하는
개구리 우렁 미꾸라지 드렁허리 등을
어느 개울이나 논바닥에서 찾을까 걱정하며
나는 다시 한번 외쳐본다
황새야, 날자 자유롭게 훨훨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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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 염전에서

누구의 눈물이었을까
누구의 피였을까
저 햇살에 빛나는 소금 한 톨은

세우젖이 되거나
꼴뚜기젓이 되거나
간장게장이 되거나
저 햇살에 빛나는 소금 환 톨은

다시 누구의 눈물이 되어
흐느끼게 하고
누구의 피가 되어
심장을 뛰게 할까

아무런 상처 없이
상어 아기리도
고래 뱃속도 통과해왔을 저 소금 한 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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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봄날

꽃이 피어 향내로 나를 부를 때
기꺼이 꽃에게 다가가리
어여쁜 빛깔과 은근한 향내에
눈을 씻고 코를 씻다가
때맞추어 벌이 날아오면
꿀맛이 얼마나 좋은지 물어보리

새가 울어 소리로 나를 부를 때
기꺼이 새와 눈 맞추리
새의 노래에 귀를 씻다가
때맞추어 날아온 짝과 함께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앞날을 축복하리

드물게 찾아오는
청명하먼서도 따사로운 봄날
꽃이 피고 새가 울 때
부러 새삼스럽게
더 즐거운 일 찾지 않으리
더 긴한 일 만들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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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 멧비둘기

서릿발 쪼는 놈 본 적이 있다
살얼음 차고 날아오르는 놈 본 적도 있다

공릉천에서 보는 멧비둘기는
잽싸고 날렵하기가
도시의 공원에서 뒤뚱대는 놈들과는 사뭇 다르다
날갯짓마다 가볍게
힘이 실린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런 느낌의 이유를
가까운 장명산에서 찾은 적이 있다
공릉천을 굽어보는
수리부엉이가 자주 머무는 소나무 아래에는 맷비둘기의 깃털이 흩어져 있었고
수리부엉이의 펠릿에는
멧비둘기의 뼈가 뭉쳐져 있었다

밤이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죽음
죽음이 늘
멧비둘기들의 삶을 단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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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에 기대여

아무리 잘 물든 단풍나무라도
낱낱의 잎사귀를 들여다보면
흠 없는 잎은 없다
멀리서 보면 눈부시게 휘황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구태여
가을날 잘 물든 단풍나무를 찾아
기대어 서는 것은
상처 많은 삶을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충충하게 늙지 않기 위해서다

때 맞추어 잎 떨구지 못하고
얼어붙은 잎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는
얼마나 추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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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락꼬리마도요

긴 다리로 겅중겅중 걷다가
길게 굽은 부리로 게 구멍을 찌르는
마도요의 창자는
다리나 부리보다 얼마나 더 길까

숨기운이 부리를 통과하며 울리는
수정 구슬 굴리는 듯 영롱한
마도요의 노래는
과연 어떤 악기로 흉내 낼 수 있을까

봄이면 서해 갯벌 거쳐
시베리아까지 가서 새끼 기르고
가을이면 다시 서해 갯벌 거쳐
호주까지 날아가는 알락꼬리마도요

마도요로 하여금 해마다 머나면
여행 떠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마도요의 부리를 갯벌에 맞추어
길게 굽힌 숨은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이 전능하신 신의 것이라면
거대한 제방으로 가로막아
갯벌을 마구 없애는 사람들은
마도요에게 얼마나 가혹한 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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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물떼새

만약에 몸이 죽어 넋은 남아
다근 생명으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

흰 배와 검은 날개가 선명하고
부리와 눈이 붉게 빛나는
유부도 검은머리물떼새

목도 짧고 다리도 짧아
웅크린 자세로 뒤뚱뒤뚱 걷는
갯마을 어부 같은 새

갯바위에서 굴을 찍어먹거나
갯벌에서 동죽을 꺼내먹으며
물때에 맞춰 살면서

봄이면 마음에 드는 짝과 함께
서해 무인도로 나가
바위틈에 알 낳아도 품고 싶다

가을이면 유부도 갯벌에
잘 기른 새끼들 데리고 돌아와
휘파람 불며 함께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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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꺼끼재를 지나며

탄광이 카지노를 바뀐 사북
꽃 꺾으러 오르는 이 많았다는
꽃꺼끼재를 지나며 묻는다

꽃을 함부로 꺾는 이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한다는 말은
얼마나 참인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가
꽃도 함부로 꺾는다는 말은
얼마나 참인가?

각시취는 각시취 나름으로
쑥부쟁이는 쑥부쟁이 나름으로
온몸의 힘 모아 꽃을 피우는데

예쁜 꽃을 보면 꺾어
꽃다발 만들어
연인에게 바치기를 즐기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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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무릎 꿇지 않는다

팔 대신 날개 달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도 땅에 내려서는
무릎 꿇지 않는다

쉴 때도 잠잘 때도
외다리로 설지언정 무릎 꿇지 않는다
자세를 바닥에 붙여 낮출 때에는
사람의 팔처럼 다리를 앞으로 접어
제 몸을 받들듯이 안는다

알 품으며 몸을 한껏 낮추면서도
새는 무릎을 팔꿈치처럼 쓴다
앞으로 접은 다리로 알을 감싸거나
다리 위에 알을 올려놓고
부리로 굴린다

새끼를 품을 때도
새는 무릎을 앞으로 접는다
날개를 펄쳐 품던 어미새가 몸을 일으키면
다리 위에 새끼들은 앞으로 퉁겨나간다
그렇게 새끼들은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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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와 빌로오드재니등에

천마산에 올라
어여쁘게 핀 노루귀 곁에 앉아
함께 봄볕 쪼이는데
빌로오드재니등에가 날아와
노루귀의 꽃가루를 먹고 꿀을 빤다
재니등에는 노루귀를 찾아 기쁘고
노루귀는 재니등에가 찾아와 반갑다

얼음이 남아 있는 골짜기
분주히 날갯짓하는 재니등에는
털복숭이라는 게 닮았다
마치 요정 같은 재니등에를 보니
내 몸을 재니등에처럼 작게 하여
함께 요정놀이를 하고 싶어진다

노루귀의 꽃술 사이에
긴 빨대를 꽂은 채 날갯짓하는
재니등에의 요정놀이에는
성적인 쾌감이 있는 것 같다
이 요정놀이를 통해
노루귀는 씨앗을 맺고
재니등에는 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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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에는 미치광이가 많다

미치광이라니
참 버거운 이름의 풀꽃도 있다
사람도 소도
잘못 먹었다간 미쳐버린다고 경고하며
천마산 골짜기에는 미치광이가 많다

마을 근처나 밭둑에 났다면
쓸모없는 독초라고 뽑혀 나갔겠으나
산골짝에 자라나 나물로 뜯지 않고
야생화로 캐가지 않고 버려두니
천마산에는 미치광이가 점점 더 많아진다

제 나름으로는 봄이 왔다고
자줏빛 요정의 종 같은 꽃 피우지만
얼레지와 현호색과 꿩의바람꽃의
아리따운 자태에 반한 사람들은
거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미치광이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작은 요정의 종소리 들으며 묻는다
얼마 만큼 독을 품고 세상을 살아야
남에게 휘둘리거나 미치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만의 꽃 피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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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산수유나무 아래에서

이 땅에서 가장 기품 있게 잘 자란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봄을 맞는다
헤아릴 수 없는 나이지만 늙을 줄 모르는
구례 산둥 할머니산수유나무
세상에 봄소식은 내가 알린다는 듯
백만 송이 꽃 한꺼번에 피우고 있는 나무

갓 벙근 꽃송이에 날아와 안기는 꿀벌들
닝닝거리는 소리 듣다 보니 문득
까마득한 옛날로 돌아간 것 같고
돌담가에서 어떤 가슴 부푼 처녀가 웃는 것 같고
그 처녀는 산수유 바르느라 이가 붉은데
그 홍니*가 시집 가서 낳은 따님 가운데
내 먼 욋대 할머니가 있는 것 같고

그 할머니의 따님의 따님이
대를 이어 집안에 봄을 불러온  분들인데
그 모계의 어머니들이
젖먹이를 안고 산수유나무 아래 둘러서서
함껙 입을 모아 축원하는 소리 듣는다
부디 봄을 밝고 싱싱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맞이하게 해 주시라고.

*홍니 : 산수유는 열매에서 씨를 발라내고 과육만 말려서 한약재로 쓴다. 예전에 산수유 농가에서 씨를 입으로 발라내는 일은 주로 계집아이들이 맡아 하였고 그 일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 이가 닳으면서 붉게 변색된 처녀를 홍니라 하였다.


_________ * 50


ㅡ 숨살이 꽃
ㅡ 두루미의 잠 


매미
개개비
독수리
동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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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부기
먹황새
무량사
물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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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리
바람꽃
바람꽃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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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채
산수유
윤동주
저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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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각시바위
검독수리
곤줄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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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
도체비꽃
등구나무
비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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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본다
어떤 시인
엉또폭포
휘파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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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이야기
동강할미꽃
두루미의 잠
백로와 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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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벌레
산수유나무
산호랑나비
애호랑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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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주목
호리꽃등에
황새야, 훨휠
곰소 염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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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봄날
검은머리물떼새
공릉천 멧비둘기
단풍나무에 기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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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락꼬리마도요
꽃꺼끼재를 지나며
새는 무릎 꿇지 않는다
노루귀와 빌로오드재니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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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에는 미치광이가 많다
할머니산수유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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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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