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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자 ~

최두석 시 1

+ 마늘

마늘을 까면 손가락이 싸하게 아리다
그 아린 느낌을 즐기러
부러 맨손으로 마늘을 깐다
아리다 못해 아플 지경이 되도록

혀로 느끼는 맛만큼
손끝의 느낌 또한 내게 소중하다

통마늘을 짜개
기름 두르고 살짝 구워 먹는다

손끝의 아린 느낌 다음에 오는
혀로 느끼는 아릿한 맛
이어지는 알싸한 뱃속

자극을 피하는
절집의 수행과는 거꾸로 가는 줄 알면서도
마늘 없는 밥상은
터무니없이 허전하다

아무래도 나는 마늘 중독자다
마늘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까마득한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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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

절에 가면 스님의  설법을 듣기보다
물맛을 보는 버릇이 있다
얼마나 맑고 시원한 지 맛보며 그 절집의
수행의 분위기를 가늠해본다

폐사지에 가서도 남은 탑이나 축대보다
샘이나 우물의 자취를 먼저 살핀다
정갈한 샘이  솟고 있으면
아직 그 절의 기운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

수돗물로 몸을 씻고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생수를 마시며
샘도 우물도 없는
대도시에서 속되게 살면서
절간에 가서는 진정한 생수를 찾는다

목마름을 적시는 물맛을 보며
경전 구석에 박힌 지당한 말씀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 있는 말에 대한
갈증을 대신 달래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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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통

물안개 피어오르는
철원 민통선 안 샘통에서
두루미가 물을 마신다
물잔을 들 때 가끔 떠오르는 마음속 그림

입과 부리는 다르지만
두루미도 물을 마셔야 산다는 걸
긴 목을 깊이 숙였다가 사뿐히 들어 올리는
우아한 동작으로 보여준다

온천이 솟아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샘통
겨울을 나는 두리미에게
샘통은 곧 숨통이다

이제는 몇 마리인가 헤아릴 정도로
회귀한 목숨이 된 두루미
철원평야의 벼 이삭과 샘통을 찾아
만 리 하늘길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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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물길을 말길과 통하고
말길은 숨길과 통한다

물길이 제대로 열려야
모든 생명이 고르게 숨쉴 수 있다

말길이 제대로 열려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된다

우리 몸 어디에 생채기가 나도
피가 스며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어디나 몸속에는 실핏줄이 통하고 있다

세상의 물길과 말길과 숨길은
몸속 핏줄과 통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 숨술 수 있다

시인이란 자신의 말길을 열어
세상의 물길과 숨길과 
은밀히 소통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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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물고기가 시원하게 숨쉬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강물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실댄다
그렇지 못하면 강도 병들어 죽어간다

생김새는 딴판이지만
붕어는 붕어대로
메기는 메기대로
미꾸라지 미꾸리자대로
물속에  숨쉬고 헤엄치며
제 본연의 모습으로 강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미꾸라지보다 한층 날쌔고
기다랗고 미끈한 장어는 어떤 녀석인가
태평양 복판까지 헤엄쳐 가서
떼를 지어 산란하고 사정한 뒤
장렬하게 죽는 장어는 
대를 이어 바다의 생기
강으로 몸고 오고 강의 생기
바다로 풀어놓는다

강과 바다를 가로막은
영산강 하구둑에서
영산강 장어는 다 어디 갔나 생각하니
슬픔은 깊어지고 외로움은 진해진다
가을걷이 끝나고 둠벙을 품어
진흙투성이로 장어 잡던 동무들 생각하니
외로움은 깊어지고 슬픔은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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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꽃

숲 그늘이 짙어지기 전
봄맞이하듯 피는 풀꽃이 있다

조출하고 수수하지만
별을 우러르며 소망을 빌거나
별빛을 가슴에 품으며 그리움을 견딘 자
한 번쯤 무릎 꿇고
눈여겨볼 만한 꽃이다

원래 소망은 낮은 자리에서 조출해야
마음의그늘에 뿌리내려
꽃피울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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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밥나무가 밤나무가 되었다니
예전에 밤나무는 밥이 열리던 나무이다

밥은 곡식의 씨앗으로 짓는다
씨앗 속 숨은 힘이 정자가 된다고 한다

밤꽃이 짙게 정액 냄새 풍기는 것은
밤나무의 성 생활이 왕성해서이다

밤이 자손을 번창하게 한다고 믿어왔기에
제사상에 생밤을 깎아 올린다

대대로 집터에 밤나무 심어온 내력이 있어
음복할 때 먼저 생밤에 손이 간다

맨 처음 움집에 밤나무 심은 이는 아무래도 
까막득한 내 윗대 조장일 것 같다

밤나무에는 밤이 열리지만
너도밤나무나 나도밤나무에는 밤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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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몇 해 전에 군산 비응도에서 줄다리가를 하였다
줄의 한쪽은 꽃게 수만 마리가
바닷물에 달을 굴리다 말고 나타나
집게발로 잡고 힘을 쓰고
다른 쪽은 포클레인이 줄을 감아 걸고 잡아당겼다
꽃게 편이 졌고 새만금 제방을 막게 되었다

몇 해 전에 부안 해창갯벌에서 줄다리가를 하였다
줄의 한쪽은 낙지 수만 마리가
바닷물에 달을 굴리다 말고 나타나
뻘밭에 몸을 박고 힘을 쓰고
다른 쪽은 포클레인이 줄을 감아 걸고 잡아댱겼다
낙지 편이 졌고 새만금 제방을 막게 되었다

새만금 제방 위로 난 미끈한 도로 위로
자건거 타고 파도소리 가르며
씽씽 속도를 즐기는 이여
당신은 그때  어느 편을 들고 얼마나 힘을 썼나
아니면 그냥 구경꾼이거나 방관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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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나리

간혹 외톨이라는 느낌에 시달릴 때
불현듯 떠오르는 꽃이 있다
화사하면서도 해맑은 솔나리

하루 종일 걷고 걸어야 오를 수 있는
공륭능선이나 남덕유 암봉에
천상에서나 내려온 선녀인양 피는 꽃

옛적 선녀를 떠나보낸 나무꾼이
지게를 벗어 던지고
오르고 올라 만난 꽃

하여 꽃 피는 철이 오면 늘
세상일 벗어 던지고 산을 오른다
선연한 분홍 꽃빛으로 마음을 물들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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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

솜다리야 
설악산 솜다리야 미안하다
영화 속의 꽃과 노래 에델바이스는 알아도
너를 까맣게 모르고 지내서

나치의 추격을 피해
알프스를 넘긴 가족의 희망처럼
맑게 빛나는 에델바이스
영어로 노래까지 부르면서
무명옷 입고 너를 솜다리라 부르던
약초꾼의 살아온 이야기는 모르고 지내지

솜다리야
솜털이 보송보송한 솜다리야
우뚝 솟은 암봉 바위틈에 뿌리 내려
절경을 완성하는 솜다리야
거친 비바람과 험한 눈보라를 견뎌내고
어여쁜 꽃 피우는 비결을 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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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수승대에 들려 맨 먼저
곤혹스럽게 떠오른 속담이다

당시에는 호랑이가 살았을
덕유산 위천 계곡
바야흐로 물에 드는 거북바위를 두고
퇴계가 붙인 이름이 수승대搜勝臺란다
그걸 증명하는 퇴계의 한시가  새겨져 있고
그 위 아래 옆 뒤에
바위를 둘러 빼곡하게 새겨진 이름들
자리를 다투듯 획의 크기를 다투듯
형제의 부자가 함께 새겨진 이름들

그 이름의 주인들 다 한때는
위세 부리며 떵떵거리던 자들이리라
술동이는 기본이고
기생까지 데리고 와 시화를 열고
석수장이를 시켜 잘난 이름을 새겼으리라
아무래도 훗날을 알 수 없는 퇴계 이 선생이
선봉할 것 없는 시로
쓸데없는 짓을 한 탓이리라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솔의 기품에
멀리 미치지 못하는 시들
바위에 붙어 자리는 이끼보다 못한 이름들
아 함부로 바위에 시를 새기지 마라
아 외람되이 바위에 이름을 새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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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눈

수많은 눈을 숨겨두고 있어서
플라타나스는 함부로 마구 잘려도
줄기와 가지의 상처에서
곧잘 새 움을 틔운다

봄에 뭉툭한 플라타나스가
여름이면 다시 무성해지는 것은
숨은눈의 왕성한 생명력 때문인데
그래서 곧잘 가로수로 간택된다

그렇다면 줄기와 가지의 절단은
숨은눈의 행인가 불행인가
도시의 가로수로 간택된 것은
플라타나스의 행인가 불행인가

아쉬움괒 조바심 사이에서
상처받을 일 많아
쓰리고 아린 자리에서 기어이
새 희망의 움을 틔우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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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꽃

내 하는 짓 못마땅하여
마음속에 가시를 세우는 이여
그대와 나 사이의 울타리에
탱자꽃 피네
촘촘한 가시 틈새에서
젖빛 뽀얗게 흐르는 꽃이 피네

가시를 피해 너울너울
호랑나비 날아와 춤을 추다
알을 낳네
탱자잎 먹고 살진 애벌레
무럭무럭 자라 번데기가 되고
다시 호랑나비 되어  날아오르네

내 하는 짓 못마땅하여
마음속의 가시를 버리는 이여
그대와 나 사이의 울타리에
탱자가 익네
촘촘한 가시 사이에서
탱탱한 탱자가 금빛 향내를 풍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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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

그냥 풀이름이라지만
도대체 피와 나물이 어떻게 만나니?

피와 나물이 만나 피워낸
금빛으로 빛나는 꽃을 보면
까마득히 현기증이 날 때가 있다

독 품은 잎까지 
나물이라 부르며 뜯어 먹던
주린 배의 백성과
허기진 백성의 피를 빨아
금관을 쓰고 금똥을 누던
왕과 벼슬아치들이 문득 생각나서

고비마다 굽이마다
피 흘리지 않은 역사가 어디 있으랴
꺾으면 바로 피가 스며 나오는
한국사의 책갈피에 꽃아둘 만한
금빛 피나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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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속리산 덕유산 오대산
주왕산 청량산 가지산 두타산....
예전에는 학이 깃들여 알을 품었으나
이제는 학소대(鶴巢臺)만 남은 산
학소대에 가면 학을 찾는다 바보처럼
사라진 지 오래인 줄 뻔히 알면서도
눈은 충암절벽 소나무 넘어 하늘을 보고
귀는 따다닥 부리 부딪는 소리 듣는다

산 좋고 물 맑은 계곡
충암절벽에 붉은 알을 품어야 하는데
그래야 절경의 풍경이 완성되는데

학소대에 가면 늘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옛 그림이나 자수 속에서 평화롭게
장생을 구가하며 넘놀던 학이
전설만 남기고 영영 사라진 것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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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

넓고 두터운 잎으로 햇살을 듬뿍 받으며
꽃망울 터뜨리는 함박꽃나무 그늘 아래 앉아
다소 이른 더위를 식히는데
나무는 한창 좋은 계절을 주저 없이 만끽하고 있다

함박꽃나무 그늘 아래 계곡물도 좋아
주인 잘못 만나 고생 많은 발을 씻는데
땅속 깊이 벋은 뿌리들은 신나게 수액을 길어 올리고
벙그러진 꽃송이는 맑고 깊은 향내 스스럼없이 뿜어
낸다

생글생글 환히 웃는 꽃송이 보고
숨결에 생생히 스미는 꽃내음 맡으며 문득 돌이켜보니
아 나는 제대로 시원하게 함박웃음 한번 웃지 못하고
너무 많아 조심하고 웅크리고 살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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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길가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울쑥불쑥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어
사람들과 친해보려 하는데
꽃을 보고도 한동안 알아보지 못하였네
막연히 좀 색다른 씀바귀라 여기면서

처음으로 고들빼기를 안 것은
꽃이 아니라 김치로였네
잎과 뿌리를 함께 먹을 때
아삭하게 씹히면서 혀에 감기는 쌉싸름한 맛
밥맛 돋우는 별미로 아껴 먹었네

김치로만 알고 먹다가
꽃을 안 것은 한참 나중이라네
늦은 봄날 길가에서 흔히 만나는 꽃
노랗게 빛나는 꽃 이름을 처음 듣고서는
세상의 한 귀퉁이가 문득 환해졌네

꽃과 김치 사이의 안개가 걷히고서
고들빼기 김치 맛은 한층 각별해졌네
김치 한 가닥 밥숟갈에 얹어 먹으면
언제라도 밥상머리에 꽃이 아른거리네
참 고맙고 귀한 밥상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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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괭이눈

풀꽃 보러 산에 다니다 보면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아름다움에 취하게 되는 꽃이 많아
맨눈으로 잘 모르고 지나치다가
카메라 렌즈로 키워서 볼 때
황홀해지는 꽃도 많다

가령 금괭이눈의 오밀조밀한 꽃을 보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풀의 입장에서 결코
작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벌이나 나비를 부르려고
가녀린 줄기에 비해 오히려 큰 꽃을 피운다
꽃이 필 때 잎까지 금빛으로 빛나는 금괭이눈은
열매 맺힐 때 초록으로 변한다
몸집이 작기에 온몸으로 꽃이 되는 것이다

땅이 풀릴 무렵 골짜기에 몸을 낮추고
햇살에 빛나는 금괭이눈을 들여다보노라면
내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에 큰 대를 앞세우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습관처럼 큰 것을 숭배해온 잘못도
참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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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승마

깊은 산 숲속에서 눈빛승마 만나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다가가 들여다보는 이가 있다
카메라를 들고 초점을 맞추는 건 나중 일이다

꽃대에 하늘나라의 눈이 내려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고
햇살에도 녹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는 그에게
눈빛승마는 꽃산행에 입문하게 한 꽃이다

아마추어면 어떤가 나는 그의 팬이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 자주 들려
그와 함깨 숨죽이며 보았던 수많은
꽃의 표정을 되새긴다
천진한 감동으로 아름다움을 대하는
경건하고도 섬세한 눈의 꽃 사진들

그러면서 한약재 승마의 효능을 생각한다
내장에 갇혀 있던 양기와 독기를
밖으로 분출시켜 풀어낸다는 승마의 약효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타나는 그의 꽃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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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소년 시절 산속에서 도라지를 보면
꽃은 안중에 없고 뿌리만을 탐냈었다
워낙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므로

어머니가 도라지 농사를 짓기도 했는데
흰빛 보랏빛 초롱이 어우러진 꽃밭이 휘황했지만
어디까지나 맛난 나물이 우선이었다

남녀가 스리살살 꼬드기는 노래 「도라지꽃」은 
부르지 않고 듣기만 했다
식욕과 성욕은 어떤 관계인가 생각하면서

도라지를 맨 처음 꽃으로 숨죽이며 만난 것은
휴전선 부근 지뢰밭에서였다
금단의 땅에 뿌리 내린 채 선연히 핀 꽃

이후 도라지꽃은 내 마음속에서 문득문득
한 송이 꽃초롱으로 빛을 내며 한들거린다
폭약과 쇠붙이를 뿌리로 감싸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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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부추

두메부추는 광막한 고비
스템 지역에서
가장 환하게 눈에 뛴 꽃

한국에서 같으면 귀한 채소일 텐데
몽골인들은 먹지 않고
낙타나 염소가 즐겨 먹는 풀

마늘쫑 대신 부추종을 씹었다
두메부추를 풀로 여기던 유목민
채소로 여기면 농경민이라 생각하며

몽골 여해을 떠나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내 몸속에 흐르는 유목의 피였는데
막상 확인한 것은 농경의 피였다

웅녀의 신화 속 마늘과 쑥은
실상 유목이 농경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먹거리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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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이꽃

허기질 때 그만인 두부 한 모
도톰하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다가
고소한 맛 음미하며 문득 묻는다
혀에 감기는 이 두부 한 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콩꽃이 피었나
얼마나 많은 벌이 닝닝대었나

너울너울 눈앞에 어른거리는 콩꽃
콩꽃을 떠올리며 다시 묻는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
내 일용할 양식을 위해 지상의 곳곳에서
얼마나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니
얼마나 수많은 벌들이 닝닝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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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바람

손돌이여
강화도 뱃사공들의 영적 조상이여
그대의 목을 밴 왕은 누구인가
몽골군에게 쫒긴 고려왕 고종인가
후금군에게 쫓긴 조선왕 인조인가

그대의 이름을 딴
김포의 덕포진에는 고종이라
강화의 광성보에는 인조라  소개되어 있는데
그대가 목숨 바쳐 구한 왕은 누구인가

적을 피해 염하를 건너는 뱃길
아슬아슬 험한 물길을 타든 그대의 노질
섬이 아니라 육지로 되돌아가는 듯한 노질
왕은 자꾸 물길을 거스르라 명하고
그대는 도저히 명을 받을 수 없겠지

의심 많고 성급한 왕은 목을 베라 하고
죽음 앞에 선 그대는
물그릇이자 밥그릇인 바가지 하나
강물에 띄우면서 유언을 남겼다지
바가지 따라가 무사히 강을 건너시라고

전설 속 용렬한 왕이 누구이든
그대의 한숨은 차가운 돌개바람으로 변하고
그대의 이름 붙은 손돌바람은
겨울이 닥칠 때마다 이 땅의 구석구석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뺨을 때리며 불어댄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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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배소리

멸치야 갈치야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에야 술배야
가거도 어부들의 고기 잡는 소리를
밥상머리에서 환청으로 듣곤 한다

벼야 조야 배추야 시금치야
콩아 닭아 김아 마늘아 날 살려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놓인 밥과 반찬에 따라 가사를 바꿔 부르며
숟가락 젖가락을 들곤 한다

그토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소화가 되겠는냐 핀잔하는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이에게 권하고 싶다
술배소리 음미하며 한 끼 먹어보라고
그래야 음식마다 맛이 새롭고
먹고사는 일이 더욱 생생하게 소중해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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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살이꽃

산길 가다가 좋은 꽃밭 만나면
살살이꽃이 어디에 숨어 있나
숨살이꽃이 어디에 숨어 있나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있다
마치 산삼 찾는 심마니처럼

깊은 산 희미한 산길 가다가
멧돼지 가족이 파해쳐놓은 꽃밭 만나면
녀석들도 살살이꽃 혹은 숨살이꽃 찾아
밤중에 주둥이로
쟁기질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고
늙은 무녀의 목쉰 노래로
귓가에 맴돌며 피는 꽃
상처에 문지르면 살이 돋아 살살이꽃
가슴에 문지르면 숨이 트여 숨살이꽃

산길 가다가 그윽한 꽃내음 맡으며
향내가 숨결에 스미고
핏속에 번지는 느낌이 좋아
잠시나마 그 꽃을 두고 살살이꽃 혹은
숨살이꽃이라 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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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홍련

옛적 아라가야의 땅 함안에 와
고혹적인 연분홍 연꽃 앞에서
꽃의 숨결 호흡하네
고려 때의 연못을 발굴하면서 수습한
씨앗을 싹 틔웠다는 이야기 속의 꽃

현대판 전설의 꽃 가까이 보며
칠백 년 동안 기약 없이 기다리던
씨앗은 땅속 어둠에 묻혀
어떻게 잠자고 숨쉬었을까
꿈결처럼 아득히 아릿하게 그려보네

지상의 햇살 누리며 시 쓰는 자로서
지면에 발표는 되었으나
가뭇없어 사라지는 수많은 시편들 가운데
몇십 년 몇백 년을 묻혀 있다
발굴되어 새로 꽃피울 시를 상상하네

숨구멍이 막힌 씨는 썩는다네
말에 숨구멍 만드는 이가 시인이라면
곳곳에 은밀하게 숨구멍이 있는 시라야
오랜 세월 움틀 날 기다리는
씨가 되리라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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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

앉은 부처도 아니고
앉은 부채가 어디에 있나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소리 해맑은
천마산 골짜기에 와
부처의 불꽃 두르고 언 땅에서 솟은
앉은 부채의 꽃을 본다

부채가 어떻게 앉아 있나
너의 이름을 어색해하는 것은
글쟁이의 쓸데없는 자의식 탓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와 맞닥뜨리며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너의 삶은 위태롭다
헤아릴 수 없이 유구한 너의 터전에
스키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수시로 등산객들의 발길이  침범한다
나는 너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한없이 가녀린 목소리로 호명할 뿐

이름이야 어떻든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든 없든
송이마다 부처로 피어나 봄을 부르는 꽃들
함부로 짓밟아서는
이 땅에 자비가 없다는 것을
한없이 자낮은 목소리로 읊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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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어린 날 세상 모르고 행복했던 순간
나는 원숭이처럼 자두나무에 올라가 있었네
자줏빛으로 달게 익은 자두를 한 알 두 알
느긋이 골라서 따 먹고 있었네

그때 나는 큰집에 맡겨져 있었고
그곳은 오래된 우물이 있는 큰집의 뒤안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두 그루의 자두나무를 옮겨 다니고 있었네

밥상머리에 늘 앉히고 먹이던 큰아버지는
사라호 태풍에 난파된 배를 타고 먼 길 가시고
큰어머니와 사촌누나들이 함께 살던 집
들여다보면 우물 속 이끼처럼
우중충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때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은 것이
자두나무가 요술을 부린 것처럼 기이하다네
그때 내가 품은 의문은 고작
손오공은 왜 자두가 아니고 복숭아를 따 먹었을까였
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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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몸국

몸국을 먹으면 자꾸 곱씹게 된다
몸이 몸을 먹는다는 말을
모자반의 제주 말이 ᄆᆞᆷ이라지만
아래아를 소리 내지 못하는 내 입은
식감 좋게 오돌오돌한 몸을 씹는다

그러면서 배지근한 국물 맛을 본다
돼지 등뼈를 오래 고아낸
느끼하다가 구수해지는 감칠맛
고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낼 수 없는
오랜 옛 조상부터 대대로 탐내온 맛

수렵시대부터 전해온 풍속인 양
돼지 잡아 잔치하는 날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던 몸국
혼삿날이면 갓 잡은 돼지 창자는 우선
신랑의 접시에 회로 올랐다 한다

세상 어디에 가도 고기든 채소든
몸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있을까마는
바다의 모자반과 육지의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몸국은 건더기와 국물 모두
몸이 몸을 먹는다는 말을 곱씹게 하는 음식

제주 땅을 밟으면 늘
뒷골목 토박이 식당 찾아
뒷간 밑에서 꿀꿀거리는 똥돼지를 떠올리며
몸국 한 사발 든든히 먹고
비지땀 흘리며 살아갈 앞날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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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나물

예전에 씨앗이 짚신에 붙어
산길을 걸었다 하여 얻은 이름 짚신나물
예전에 염소가 먹는 풀잎
사람도 먹어 얻은 이름 짚신나물

걸어서 고개 넘는 대신
질주하는 차로 터널 지나가기 바쁜 세월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 좋아해
살찌는 게 걱정인 나에게

나물아 나물아 짚신나물아
너는 새삼스레 무슨 말을 하려
병아리 혀 같은 꽃 피우고
고개 넘는 산들바람에 하늘대느냐

속도와 재물의 신을 외면한 채
어느 누구도 탐낼 일 없는 소박한 꽃 피워
그냥 천성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너의 말
이파리 뜯어 씹으며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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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향이 은근히 깊고
자세히 눈여겨보면 아리따운 꽃을 피운다
여린 가지 끝 젖빛 꽃숭어리
물론 마구 잘린 생울타리가 아니라
숲에서라야 제 모습이 나타난다

울망졸망 검게 여문 열매를 보고
남녘에서는 쥐똥나무라 부르지만
북녘에서는 검정알나무라 한다고 한다
약으로도 쓰고
차로 달여 먹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꽃내음을 그윽히 맡고
차를 달게 마시려면
쥐똥이라 부르면 안 되는가
아마도 이름으로 하여 향과 맛을 망칠 수 없으리라
약효야 무슨 상관이랴만

하지만 나는 계속 쥐똥나무라 부를 것이다
누군가 생긴 대로 부르기 시작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말을 꺼리지 않으리라
입맛에 거슬리는 차는 마시지 않고
좋은 향내는 이름에 방해받지 않고 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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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숨골

옛적 심심한 설문대할망이
바윗돌을 어리저리 굴려
나무더러 붙잡고 서 있으라 한 곶자왈
원시의 숲속을 걷다 보면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제각기 맡은 바위가 있다는 듯
나무뿌리가 바윗돌을 휘감고 있는
숲속에는 무언가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약속이나 한 듯 곶자왈에는 으레
무언가 다른 공기를 뿜어내는 숨골이 있다

제주의 허파라 불리우는 곶자왈에는
땅속 깊이 수맥까지 숨골이 통해 있어
추운 날에는 따스한 기운을
무더운 날에는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
숲속의 온갖 나무와 풀을 자라게 한다

예전에는  화전도 일굴 수 없어
원시의 숲이 남아 있는 곶자왈에 가면
식나무 앞에세는 식나무에게서
산수국 앞에서는 산수국에게서
새삼스럽게 숨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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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늪구비

모래톱과 자갈톱이 없는 강이 무슨 강인가
여울도 소도 없는 강이 무슨 강인가
암반을 발파하며 강바닥을 마구 파헤쳐놓은
여주 바위늪구비에 와서 든 의문이다

온갖 생명의 자궁 같은 습지를 등 뒤에 두고
유유히 굽이치는 강변길을 걸으며
풍광과 이름이 어울린 아름다움
가장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던 바위늪구비

버들 숲에 휘파람새 울면 우는 대로 좋고
강변에 쑥부쟁이 피면 피는 대로 좋아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머리 식히고 위로받고 돌아갔거니

강이 얼마나 많은 목숨의 집이고
얼마나 하염없는 입들의  젖인가 생각하며
물소리 바람소리에 스스럼없이 섞이는
새소리 풀벌레소리에 마음 씻었거니

강으로부터 여울과 모래톱을 빼앗은 죄를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 것인가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온갖 물고기와
새와 풀벌레의 원혼들은 어떻게 달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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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딸기

얼마나 하염없는 세월이 흘렀을까
딸기나무가 가시를 얻기까지는
노루나 산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딸기나무는 얼마나 고된 싸움을 벌였을까

얼마나 하염없는 세월이 흘렀을까
딸기나무가 가시를 버리기까지는
노루나 산양이 없는 울릉도가
딸기나무에게는 지상의 낙원이었을까

그런데 막상 가시투성이 딸기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천국에 갈까
세상에 새콤달콤 딸기 맛을 선물하기 위해
가시를 단 죄밖에 없는 딸기나무는

노루와 산양이 뛰노는 낙원의 언덕에서
가시를 버리고 기꺼이 순한 먹이가 될까
천국의 식탁에 더욱 맛있는 딸기와
딸기술을 올리고 싶은 딸기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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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 보신탕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의견공원에는
개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개는 늘 코를 벌름대며 보신탕 냄새를 맡는다
보신탕으로 이름 높은 맛집이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불길 번지는 풀밭에 만취한 채 곯아떨어진
주인을 구하느라
시냇물에 몸을 담그고 와 불을 끄다 죽은
옛이야기 속 개를 생각하며
부러 오수까지 찾아와 개고기 수육을 씹는 사람들의
너털웃음과 술잔 부딪는 소리를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

자신이 충성한 주인의 오묘한 마음을 읽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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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 유천

공들여 좋은 차 만들고
차로 격을 높여 사람들과 만나고
차로 참선을 하던
초의의 자취를 찾아 일지암에 들러
그가 차 끓이던 샘물을
유천乳泉이라 부른 마음을 더듬어본다

부처가, 우유 바다를 휘저어
세상 만물을 창조한 비슈누의 아바타라서?
아마 이런 흰두교도의 이야기는
초의의 뇌리에 없었으리라

세상 만물을 기르는
생명의 기운이 샘에서 솟아나서?
두루 들어맞는 말이로되
지나치게 크고 넓은 생각이다

스님으로 늙어가면서도
어머니의 젖내음을 잊지 못해서?
그래 바로 그거야,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어떤 지극한 공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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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연폭포

서귀포 천지연에서는
오리도 물닭도 논병아리도
사람을 피해 날아가지 않는다
짐짓 가까이 다가와 사진 찍기 좋게
자세를 잡는 녀석도 있다

심지어 사람을 아주 꺼리는 원앙까지
평화롭게 자맥질을 하고 날개를 말린다

새에게 축복의 땅이라 말하며
폭포는 원시의 날처럼 힘차게 떨어지고
늘푸른나무 숲 위로 무지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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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희망

꽃을 드는 마음으로 촛불을 든다
더 이상 어둡게 살 수 없으므로
동무와 함께
연인과 함께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든다
서로 불을 옮겨 붙이듯이
서로 희망을 밝히기 위해

꽃을 드는 대신 촛불을 든다
광장을 가득 채운 남녀노소
거스를 수 없는
인산인해의 촛불을 든다
도대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검은 권력의 온갖 거짓들
낱낱이 드러내 불살라버리기 위해

무수한 이들의 가슴에서 이글대는 불꽃이여
그러나 끝끝내 꽃의 눈높이에
촛불의 눈높이를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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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 암수바위

남해도 가천마을에 가면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다랑이논 사이로
만삭의 암바위를 거느리고
근사하게 잘생긴 수바위가
무람없이 불끈 서 있는데
예로부터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섬사람들이
무엇을 빌었는지 증언하며 서 있는데

이 바위가 영험한 숨은 이유는
파도가 은근히 뒤설레는 밤이면 바다로 내려가
앞물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멸치 새우 가자미 등이 떼 지어 몰려와
다투어 산란을 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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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과 까치밥

까치가 까치밥 쪼아 먹는 걸 보고
나는 쫀득쫀득
달콤하게 감칠맛 나는
곶감을 꺼내 먹는다

까치밥이 더 맛있을까
곶감이 더 맛있을까

까치가 더 맛나게 먹을까
내가 더 맛나게 먹을까

수많은 감은 곶감이 되고
겨우 까치밥을 몇 알 받들고
겨울 하늘 우러르는 감나무에게
철없는 아이처럼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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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금송

퇴계가 직접  설계한
세 칸 집 도선서당 마루에 앉아
선생의 제자가 되어 풍광을 굽어보며
하늘에 대한 외경을 배우려 하는데
눈앞의 금송이 자꾸 거슬린다

나무야 무슨 죄 있으랴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뻔뻔스럽게도 우뚝하다
왜 박정희는 일본의 자랑인 금송을
하필 퇴계의 서당 앞에 심었을까

총칼로 지배하던 그가 아끼던 나무라니
차라리 국립묘지에 있는 그의 묘역으로
옮겨 심었으면 좋겠다
서원의 한 구역 서당 앞에서 금송은
퇴계의 진심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하지만 서당과 서원은 다르기에
앞으로 금송은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왕이 현판을 내려 당당해진 서원이니
어찌 대통령의 기념식수를 마다할까
오히려 두고두고 감읍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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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를 찾아서

야고야 야고야
너 어디 사니?
고향은 한라선 기슭이지만
지금은 서울 상암동에 살아

야고야 야고야
너 어디 있니?
난지천변 갈대밭에서  어정거리지 말고
계단을 계속 밟고 하늘공원으로 올라와

야고야 야고야
너 어디 숨었니?
바람에 살랑대는 억새꽃만 보지말고
고개 숙여 억새밭 그늘을 봐

너는 탐라국의 어여쁜 공주
나는 너와 눈 맞추러 온 사내
그런데 너는 억새가 얼마나 좋기에
억새뿌리에 붙어 하늘공원까지 이사 왔니?

(쓰레기가 쌓이고 쌓여
강산이 변해 생긴 산언덕에
제주에서 들여온  억새를 심어
공원을 꾸몄으니 이르기를 하늘공원이라)

그런데 야고야 야고야
예로부터 한강의 꽃섬으로 소문난
난지도는 도대체 어디로 이사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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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가물치

삼대째 우포늪 어부 노기열 씨는 통발을 들어 올리며
"인자 낙동강 붕어가 우포 붕어 얼쭈 다 됐을 낀데" 한다.
지난여름 범람한 강물이 우포늪으로 넘칠 때 들어온 붕
어의 기름내가 가셨을 거라는 뜻이다. 그는 잡아 온 미꾸
라지와 붕어와 가물치를 양식장으로 파놓은 각각의 둠
벙에 넣어준다. 몇 년 전부터 그의 그물에는 주로 블루길
이 잡히고 그걸로 가물치를 길렀다. 가물치 양식은 그의
쏠쏠한 부업이다. 산후조리에 가물치가 최고라는 오래
된 믿음 때문이다. "죽어도 죽은 괴기는 안 먹는다카이,
그라이 사료를 우째 묵겄노?" 그의 가물치에 대한 자랑
이다. 자꾸 자연산만 찾는 이들에겐 자신의 양식장 가물
치가 늪에서 갓 잡은 가물치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같은
물에 같은 먹인데 늪에서 사는 놈들은 굶주려서 부실하
다는 거다. 은근히 소문난 그의 집 붕어찜을 먹으며 뼈를
가려내는 나에게 머리째 씹으란다. 무청과 함께 오래 줄
인 붕어찜을 가시 하나 남김없이 먹으며 나는 문득 그의
강인한 낯빛에서 가물치의 어룽거리는 무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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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돌핀샘

천마산 정상 턱밑 옹달샘
돌핀샘의 물맛은
특히 봄날에 각별하다
천마산이 품은 수많은 봄꽃들 때문이다

깜찍하게 눈을 헤집고 피는 너도바람꽃
은은한 푸른빛이 일품인 노루귀
햇살을 금빛 술잔으로 받아 마시는 복수초
봄바람에 부푼 처녀 같은 엘레지
잎에 점이 오종종한 점현호색
냉이의 미모를 보여주는 는쟁이냉이

어여쁜 꽃으로 마음을 씻으며
산을 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꽃들을 피우는
샘의 타고난 운명이 기꺼워서이기도 하다

지상에 온갖 샘이 솟아
시내가 되고 강을 이루어 바다로 가는 동안
어떤 행운을 만날지 우여곡절을 겪을지
어디서 얼마나 더러워질지
물살의 갈래만큼 제각가이겠지만

얼마나 각별한 맛인가
꽃목을 적시는 샘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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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와 제비꽃

팬지는 팬지이고
제비꽃은 제비꽃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게
학교나 아파트 화단에 심은  팬지를 보면
산속에서 마주친 온갖 제비꽃 떠오르네
노란 팬지를 보면 노랑 제비꽃
흰 팬지를 보면 남산제비꽃 금강제비꽃 태백제비꽃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네

제비꽃의 원예종이 팬지라는 말 처음 들었을 때
한동안 생뚱맞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네
하지만 사람의 손을 타면 딴판으로 바뀌는 게
어찌 제비꽃만이랴 하는 생각에
꽃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에는
팬지를 보면 제비꽃의 야생을 길들여온
원예의 오랜 역사 되짚어보네

비닐집에 서 길러 화단에 빼곡히 심은
팬지의 부담스럽게 크고 화사한 꽃을 보면
산속에서 마주친 온갖 제비꽃
조출하게 상큼한 모습 선연히 떠오르네
하지만 호젓한 산속에서 제비꽃 만나
야생의 풋풋한 숨결 느끼다 보면
화단의 팬지는 전혀 안중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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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와 향나무

예전부터 능소화와 향나무는
양반집 정원에서 함께 자라던 나무
요즘도 향나무 곁에 능소화를 심어
능소화가 향나무를 감고 올라가 피우는 꽃
여름날의 아취로 즐기는 이 있다

남의 취향에 대한 왈가왈부는
세상의 어리석은 일에 해당되지만
능소화를 담장이 아니라
향나무 같은 생나무에 올려 피운 꽃 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주렁주렁 매달려 나팔을 부는 꽃만 보이고
향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은 보이지 않는가
꽃다운 꽃 피우지 못하는 향나무는
화사하게 눈길 끄는 능소화에게
옥죄여 죽어도 좋단 말인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것은
능소화 같은 덩굴나무의  생태이니
조물주를 탓할 수밖에 없겠지마는
정원을 가꾸면서도까지 신의 뜻을 시험해보는
원예의 취향에는 공감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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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은행나무

지상의 약속 같은 금빛 이파리로
이 땅에서 가장 경건하고 풍성하게
세례를 베푸는 나무가 있다
온몸이 옹이투성이인 나무

망한 나라를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이
실감 날 정도로 우람하여
나무의 수많은 겉가지의 나이테에
나의 나이의 눈금을 맞추어보기도 하고

신화 속 생명나무처럼
천 살이 휠씬 넘었는데도 해마다
예닐곱 가마의 실한 열매 맺어
갓 구운 햇은행을 성찬으로 맛보며
나의 게으르고 무기력한 나날에 대해
고해하고 참회하기도 하는데

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워
낙엽의 세례을 받으며
기운을 얻으려 찾는나무가 있다
옹이조차도 당당한 기품이 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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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 할매부처

아마도 석공의 어머니가 모델이 아닐까
웃고 울며 세월 살아본
아이도 두엇은 낳아 길러본 여인네의 표정이 살아
있다
그 손맛으로 무친 나물 백반 한 상 간절히 얻어먹고 싶
어진다

시고 떫고 달고 맵고 짠 세상살이의 맛을
칼로 자르듯 끊어내기보다
두루 보듬어서 우리고 식히는 부처가 있다는 게 고
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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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에서 물숨까지

얼마나 오래
잠수하느냐에 생계가 걸린
제주도 잠녀들의
숨비에서 물숨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아무리 탐나는 소라나 전복이 보여도
숨이 차면 포기하고 올라와
호이호이 숨을 비워야지
자칫 욕심이 지나치면
물숨을 먹고 죽는다

그러니까 잠녀들에게
숨비에서 물숨까지는
눈 한 번 깜박일 사이의
팔 한 번 휘저을 거리이나
그 거리 조절을 잘해야
상군이든 하군이든 잠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은 골프 치고 포도주 마시면서
얼굴도 모르는 애꿏은 이들에게
물숨을 먹이는 자들이 있다

수명 다한 배를 무리하게 개조하고
복원력이 바닥날 지경으로 화물을 실어
주로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
삼백사 명을 익사시킨 세월호의 침물은
돈에 눈먼 자의 탐욕과
검은 권력이 부른 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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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를 심으리랏다

바야흐로 단풍 드는 산길 걷다가
톡 토독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들으면
귀가 환해진다
어떤 새로운 길이 열리는 음악처럼

산길에 구르는 토실한 도토리 보면
적당한 빈터 찾아 슬쩍 먹기도 하겠지만
운 좋은 도토리는 싹이 돋아
우람한 참나무로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인데
'내일 세상을 뜨더라도
오늘 도토리를 심겠다'는
거둘 곡식도 과일도 없이
가을을 사는 나의 말이다.


_________ *50

ㅡ  숨살이 꽃 

마늘
물맛
샘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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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개별꽃
밤나무
새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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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나리
솜다리
수승대
숨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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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꽃
피나물
학소대
함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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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금괭이눈
눈빛승마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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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부추
살살이꽃
손돌바람
술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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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살이꽃
아라홍련
앉은부채
자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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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몸국
짚신나물
쥐똥나무
곶자왈 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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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늪구비
섬나무딸기
오수 보신탕
일지암 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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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연폭포
촛불과 희망
가천 암수바위
곶감과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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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금송
야고를 찾아서
우포늪 가물치
천마산 돌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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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와 제비꽃
능소화와 향나무
용문사 은행나무
경주남산 할매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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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에서 물숨까지
도토리를 심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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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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