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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겨울

겨울 시 모음 4

+ 밤 눈 / 김광규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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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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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돌 하나를 던져 본다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쩡 쩡
돌의 튕기며, 쩡,
지가 무슨 바닥이나 된다는 듯이
쩡, 쩡, 쩡, 쩡, 쩡

강물은 쩡,

언젠가는 녹아 흐를 것들아, 쩡
봄이 오면 녹아 흐를 것들아, 쩡, 쩡
아예 되기도 전에 다 녹아 흐를 것들이
쩡,쩡, 쩡, 쩡, 쩡

겨울 강가에 나아가
허옇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얼어붙은 눈물을 핥으며
수도 없이 돌들을 던져 본다
이 추운 계절 다 지나서야 비로소 제
바닥에 닿을 돌들을
쩡 쩡 쩡 쩡 쩡 쩡 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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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 이채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제 차가운 겨울강이 되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추위는 몸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는 것이라고
겨울강은 제 가슴도 보이지 않고

저 강물 소리없이 깊어가듯
당신과 나도 그렇게 꿈을 꾸며
하루 하루 깊어가는 것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송이 만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강바람 따뜻한 날
한마리 새가 분명 날아 올 것이라고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눈물을 모두 제 가슴에 가두고
겨울강은 유달리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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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 하나 사라져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 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을 건너는 이삿군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으니
어머님 한분만 오시쟎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은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하늘에 푸른 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치 한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나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나온다
어느날 목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번 못 하고
친구들의 손 한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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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 김기택

넝마와 깨진 플라스틱, 썩은 음식마다
불꽃들은 튼튼하게 뿌리박고 피어 있네
귀찮았던 무게들이 이렇게 뜨거웠었구나
고약했던 냄새들이 이렇게 환했었구나
남김없이 불을 빼내고도 여전히 차가울 공기 속에서
불을 다 삼키고 나면 더욱 튼튼해질 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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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 복효근

감나무 끝에는 감알이 백서른 두 개
그 위엔 별이 서말 닷 되

고것들을 이부자리 속에 담아와
맑은 잠 속에
내 눈은 저 숲가에 궁구는 낙엽 하나에까지도 다녀오고

겨울은 고것들의 이야기까지도 다 살아도
밤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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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닭이라고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 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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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 김완하

얼음 계곡을 가슴에 품고
불덩이 하나 뜨겁게 삼킨 산,
침묵하고 침묵하는 저 산자락이
잡목들 싸리나무 함께 기르는
저 넉넉한 모성의 산자락이
이렇게도 나무들 발가벗겨
혹독한 바람 앞에 몰아세우다니
그 뿌리를 얼음에 파묻다니
기어이 차고 올라가 하늘 한 자락
저토록 선명하게 자를 수 있다니

하늘과 닿은 저 분명한 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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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 정연복


산은
늘 말이 없지만

겨울산은
더욱 고요하다

저 큰 몸집으로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도

제 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양

있는 듯 없는 듯
영원을 살아가는

온몸이 너른 가슴이고
다소곳한 귀일 뿐

말없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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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 정일근

첫눈 맞고 있는 겨울산을 보면
흰털 세운 한 마리 산짐승 같으니
부드럽게 웅크린 등줄기나
가슴께로 바짝 당겨놓은 살진 허벅지
이놈아, 하고 톡톡 치면
웅크렸던 몸 기지개 한 번 펴고는
산길 따라 세차게 달려갈 것 같으니
이 땅 어느 산을 올라도
모든 길은 백두에 닿는다는
백두대간의 큰 꿈을 아는가
첫눈 내리는 날 한반도 모든 산줄기들
흰털 하얗게 곧추세워
하얀 능선 위를 달려가고 있으니
그놈의 등에 덥석 올라타는 꿈이여
겨울산과 한 몸의 날렵한 산짐승 되어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튼튼한 등뼈를 밟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즐거움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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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 도종환

올해도 갈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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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 이윤학

잃어버림을 곰곰히 생각하는 중이다
체중 조절을 위해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하는 중,
갈수록 둔탁한 소리가
관절 사이를 옮겨다니며 일상을 괴롭힌다

오늘에야 부끄러움도 제 얼굴로
익숙하다 제 살을 제 몸으로 부딪치며
다시 떠보일 눈을 감고 있다

가늘고 긴 겨울,
뚜렷한 획을 긋고 있는
침묵의 힘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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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 이해인

내 목숨 이어가는
참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눈 감아도 트여오는 
백설의 겨울 산길
깊숙이 묻어 둔
사랑의 불씨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넘치는 은혜의 바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
오는 세월
기도하며 지새운 밤
종소리 안으로
밝아오는 새벽이면
영원을 보는 마음
해를 기다립니다
내 목숨 이어가는
너무 고운 하늘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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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 정연복

나무도 엄연히
살아 있는 목숨인데

겨울 추위가
어찌 고통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인내심으로
버티는 거지.

쌓인 폭설에
덩치가 큰 나무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걸 보면

나무라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니지.

긴긴 겨울
모진 북풍한설

온 힘을 다해
눈물겹게 견디면서

새봄의 연초록 새순을
몸 속에 기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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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래 /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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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래 / 이해인

끝없는 생각은
산기슭에 설목으로 서고
슬픔은 바다로 치달려
섬으로 엎드린다
고해소에 앉아
나의 참회를 기다리는
은총의 겨울
더운 눈물은 소리없이 
눈밭에 떨어지고
미완성의 노래를 개켜 들고
훌훌히 떠난 자들의 마을을 향해
나도 멀리 갈길을 예비한다
밤마다 깃발 드는
예언자의 목쉰 소리
오늘도
나를 기다리며
다듬이질하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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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마음 / 이상화

물장사가 귓속으로 들어와 내 눈을 열었다
보아라!
까치가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서 울음을 운다
왜 이래?
서리가 덩달아 추녀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가
내야 반가웁기만 하다 오늘은 따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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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사 / 목필균

긴 겨울
눈 속에서 묵언 수행 중인
대윤사에는

숫눈 위 쌩한 바람 소리로
명상에 잠기는 성엽스님

제 몸 부딪히며
수런대는 대나무들
독경소리 들으며
사철 다향을 가꾸는
부지런한 전처사님

입으로 지은 구업도
가슴에 얼룩진 상처도
평정심으로 돌려놓는
대각전 부처님이

정갈한 풍경소리로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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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안부 / 반기륭

쨍쨍쨍
깨질듯한 얼음판에서

물귀신이 두렵지 않던
시절이 아슴아슴
뇌리속으로 다가오는구나

겨울이면 얼음지치기로
한나절 몽땅 소모해버리던

동심의 시절이
목구멍에 걸려
사레를 할 듯 하구나

콧잔등에서
피가 주르르 흐르며
핏멍울이 온몸을 칭칭 감고

며칠 끙끙
소리를 이끌며 학교가던
모습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구나

이젠 지난
추억의 길 모퉁이에서 그 시절을
반추하며 겨울 안부를 묻는다

그 때 흉터는 아직도 건재한지
아니면 수술 자국만 희미하게 남아

지난 시절 불러
가끔 희희덕거리지는 않는지

겨울이 가기전
우체통에 겨울 안부
한 무더기 푹 찌르고 가려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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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채비 / 정하선

바람은 차고 아침 서리 매서워져
텃밭 무 걷이를 했습니다.
어떤 것은 아내의 매끈한 종아리 같고
어떤 것은 큰아이 장딴지처럼 굵고
옛적 나의 젊은 아버지가 하던 방식으로
무릎팍 길이만큼 땅을 파고 묻습니다
그늘에 앉아 아내와 무청도 엮습니다
한겨울 눈이 폭폭 내려 쌓이면
시래기 무청과 땅에 묻어둔 무를 꺼내
서억-썩 썰어 넣고
아직 도축장 도장이 파랗게 찍혀
돗바늘 같은 털이 숭숭 남아 있는
돼지고기 한 근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내면
먼 데서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개 짖는 소리도 컹컹 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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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편지 / 김현태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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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편지 / 반기룡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남해 바닷가
그리움의 열병이 마구 망치질 하면
더욱 달려 가고픈 마음의 고향

오늘 문득 그곳을 생각하며
그대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너무 소식 전한지 오래되어
손은 굳었지만 마음만은
용암처럼 펄펄 끓어 오르지요

올 들어 처음 써보는 편지이기에
맞춤법도 사랑스런 단어도
삼삼하게 피어오르진 않지만
그대 향한 그리움은
쨍쨍 깨지는 얼음처럼 바삭거려요

함께했던 추억의 그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리움이 뭉글몽글 피어오르네요

겨울의 초입에서 쓰는 이 편지는
그대에게 바치는 나의 전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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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포구 / 장석남

잎 가지지 못한 삶이 서 있고
사람 없는 집들이 즐비한 길 위로
밭이 있고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밭을 포도밭으로 만들고 있지만
길들이 모두 집에 와 닿는 저녁이 와도
빈집들은 이 마을을
빈 마을 이외로는 만들지 못한다
잎 가진 삶이 다 유배당한
겨울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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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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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엔 / 홍해리

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눈이 천지 가득 내려 쌓이고
수정 맑은 물소리도 들려오는데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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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로등 / 목필균

때로는 지켜보는 사랑도 가슴 저밀 때가 있다.
마주 향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겨울 밤 맨발로 서서 남의 발등을 비추는 가로등.
밤안개에 번지는 그 불빛이 더욱 슬퍼질 때가 있다.
영원히 시들지 않은 종이꽃 처럼, 시들지 않았어도 품을 수 없는 그 사랑의 향기. 
그 질긴 목숨만큼 길게 아파서 지켜보는 눈도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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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까마귀 / 김현승

영혼의 새

매우 뛰어난 너와
깊이 겪어본 너는
또 다른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
호올로 남은 것은
가까워질 수도 있는
언어는 본래
침묵으로부터 고귀하게 탄생한

열매는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12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굳은 책임에 뿌리박힌
나의 나뭇가지에 호올로 앉아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멀뚱거리다가

벽에 부딪쳐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로
까아욱
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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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담쟁이 / 정찬일

저 수많은 잔뿌리 좀 봐
담쟁이가 꿈속을 오르고 있어
길 한 모퉁이 콜타르 먹인 판자를 차고 하늘 오르는 담쟁이 좀 봐
판잣집도 오래 견디다 보면 잔뿌리 내리며 담쟁이가 오르고 있어
오르는 일만으로도 한생애를 다 보낼 수 있겠군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수맥이 다 마른 담쟁이의 아랫도리
그 아래로 하교길 아이들의 웃음소리
내 어릴 적 울음소리도 가끔씩 들려
내게도 길이 있었지
무심히 자란 계절의 그림자를 다 떨치고
딱딱한 겨울 햇살 속으로
푸른 실핏줄을 다 드러낸 담쟁의 길
불량한 겨울바람이 지나다가 툭 건드리면
줄기 끝으로 치올린 생장점들이 잠에서 막 깨어나
한 계절 파랗게 터뜨려버릴 것 같은 담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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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담쟁이 / 최영희

봄날에 지녔던 푸르던 꿈과 소망
길을 가다
담장에 달라붙은 겨울 담쟁이 앞에 발을 멈춘다
내가 살아온 길만큼
담쟁이 살아 낸 길도 복잡하다
생각에 잠긴다
볕을 따라 오르다
밤에는 달을 보고 별을 보고
앞만 보고 살아 냈을
핏기 마른 가슴, 연민으로
코끝이 싸아-하다

부서지는 겨울 햇살
빨랫줄에 삶아 빤 옷가지를 털어 넌다
내 낡은 팬티가 햇살에 웃고 있다
담벼락에 매달린
마른 담쟁이, 그 싸아-한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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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꿈 / 김춘수

겨울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살과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게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煙炭가스는 가만히가만히
주라기紀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市民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홋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기 공룡恐龍의
순금純金의 손을 달고
서양西洋 어느 학자學子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주라기紀의 새와 같은 새가 한마리
연탄煙炭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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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에서 / 정석권

겨울 산
마른 나무들
행복하다

버릴 수 있는 것
모두 버렸으므로

메마른 나무들
의연히 서 있는
겨울 산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눈앞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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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양수리 / 목필균

낯익은 그림자 하나
눈을 맞으며 서있다.
그는
여름부터 앓고 있던 양수리가
서서히 소생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움이란 무심한 세월도 잊고
선명한 빛깔로 일어서는 것.
잊혀질 시간마다 나타나서는
베어진 상처로 피를 보이며
강의 흐름을 타고 있다.

강으로 달려온 겨울은
거대한 얼음덩이를 안고
처절한 몸부림으로 울고 있는데.
머무를 곳 없는 사람은
제 그림자를 안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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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회상 / 오광수

당신이
손 내밀 때 왜 내가 잡질 못했던가?

뿌옇게 색이 바랜 아쉬움 들을
가슴속에다 억지로
밀어 넣어도
회상(回想)의 실핏줄을 타고 튕겨나와선

가끔씩 가끔씩 심장을 꼬집으며
덮어두었던 노래를 열고
가슴을 데우려고 하지만
굳어진 현실의 시간 앞에선
그저 아랫입술만 꼭꼭 씹습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그 고백들은
이제는 탁한 숨소리가 되어
가슴이 아닌 세월에다 불을 붙이며
한 줄 나이테로
사라지는 오늘,

당신이 손내밀때 잡지 못했던 손은
지금 주머니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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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 최영희

돌아앉은
도시의 숲에선
새들이,
가난한 새들이 울고 있다

허름한 골목
군고구마 장수의 드럼통 속에선
하루 분의 불꽃,
타는 불꽃이
얼음 새 되어
작은 굴뚝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새는, 새는
낮은 산 구름이 되고

비탈져 오르던 언덕배기
그곳엔, 먼 옛날
우리들의 이야기
눈이 되어 하얀 눈이 되어
지금도 가난한 우리들의 지붕 위에
하얀,
이야기로 내린다
가난했던 우리들의
긴,
겨울 이야기

화롯불 다독이며
옛 이야기 들려 주시던
할아버지,
그리워지는 날
어찌 또, 눈은 저리도,
저리도 오는가
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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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대장 / 신달자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安樂)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이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뜨거운 차를 분배하고
당신이 누른 초인종 소리에 나는 답한다

어서 오세요
이 겨울의 잔치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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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라산 / 정호승

맹인들이 한라산을 오른다
흰 지팡이를 짚고 눈 속을 헤쳐
한라산에 사는 백록을 만나러 간다
한란의 꽃줄기 같은 안마사 김도
하모니카를 불며 하루종일 지하철을 떠도는 김씨도
국립서울맹학교 국어교사 박 선생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한라산을 오른다
눈 밟는 소리가 맑다
바람을 타고 눈발이 흰 지팡이를 따라 밝게 사선을 긋는다
나는 잠시 그들의 발 아래 눈처럼 밟힌다
밟힌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할 때는 처음이다
어리목에서 내려온 노루들이 그들의 뒤를 따른다
어느새 성산포가 뒤따라 올라온다
백록이 서둘러 걸어 내려와 손을 잡는다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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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 윤보영

들판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그대에게 글을 적을 수 있게
하늘이 배려했나 봅니다
그림까지 곁들여 적고 보니
들판보다 더 넓은
내 마음이었네요

오늘처럼, 매일
그대 생각하며
글만 적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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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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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저녁 / 김소월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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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겨울 엽서 / 홍해리

토요일엔 하루 종일 기다리고
일요일은 혹시나 하지만
온종일 소식도 없고,
바람에 슬리는 낙엽, 낙엽,
나겹나겹 낮은 마당귀에서 울고 있다
내 마음 앞자락까지
엽서처럼 와서
그리움만 목젖까지 젖어
네가 눈가에 맴돌고 있지만
성긴 날개로는 네게 갈 수 없어
마음만, 마음만 저리고 아픈 날
솟대 하나 하늘 높이 세우자
뒤뚱대는 여린 날갯짓으로
네가 날아와 기러기 되어 앉는다
비인 가슴으로
나도 기러기 되어
네 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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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리스도 / 김남조

오늘은
눈덮인 산야를 거닐으시네
눈같이 흰 옷 입으시고
눈보다 더욱 흰
그 옛날 물위를 걸으시던
강줄기도 얼어
오늘은
수정의 빙판 걸으시네
울고 싶어라
머리칼도 곤두서는
율연(慄然)한 추위에

물과 땅의 모든 깊은 곳으로부터
보혈을 섞어 빚은
새 봄의 혈액을
한 없이 자아 올리시는
설일(雪日)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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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게 / 권달웅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귀를 자르겠다.
사나운 바람을
듣지 못하도록,
눈이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혀를 자르겠다.
모진 추위를
말하지 못하도록,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겠다.
고통받고 살아가는
들어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추운 세상을
네가 알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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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길 / 최영희

수북이 낙엽으로 쌓인 숲 속 길
이제는 성근 가지로선 나무들
난, 지금 그 쓸쓸함 마져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어느 詩 낭송회장에서 노(老) 시인이 불던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을 떠올리며
푸른 날 새들의 살아 낸 이야기로 가득한
전설 같은, 내 가슴엔 아직은
그들의 이야기가 수런수런 들리는
빈 숲 길을 걷고 있다
은행나무 검은 가지 사이로
아슴히 비치는 햇살
추억으로 가득한,
내가 사랑한 바다도
이제는 하늘의 조각구름 가득 싣고
먼 여행을 떠나고

내게 주어진 고적한 이 시간이여!

나는 지금 나의 나에게 묻고 싶다
내 삶에서 그토록 사랑한 것이 무엇이며
지금도 목말라 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초겨울, 마지막
어미를 쫓아 길을 떠났을 산새소리
가슴이 젖어 오고
길가에 저 감나무도 아직은 곰 익은 감
떨구지 못하고 있구나
겨울로 가는 하얀 새벽 길
다 하지 못한
뭉쿨~한, 이 그리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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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의 시 / 남진우

저녁마다 우리 집엔
안개와 함께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는 먼 나라의 이상한 소식을 하나씩 전해준다
철새들이 가로지르는 텅 빈 하늘엔 간혹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알리는 상형문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지평선을 푸르름을 지우며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가 잔잔한 음성으로 말한 것들이 모두 땅거미 속으로 스며들고 나면
아무도 없는 집은 정적으로 붐빈다

겨울, 대지의 관이 닫힌다
서리 내린 길 위를 허기진 개들이 어슬렁거린고
해시계는 더 이상 마을로 가는 길을 가르키지 않는다
죽은 자의 눈꺼풀을 쓸어내리며 다가오는 빙하기의 어둠
흰 눈송이들이 물려와 내 의식의 빈터에 쌓이는 밤
나는 유리창 옆에 서서
어둠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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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두물머리 / 나상국

한 무리의 행락객 철새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발자국마저도 휑한 두물머리

사백 년의 나이에도
거칠게 불타오른 느티나무의 열정
한 잎 나뭇잎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모로 두러 누운 색바랜 풀들이
너을 너을 춤추던  쓸쓸한 강둑
강한 비바람이 몰려왔다가
스스로 몸을 낮추어
한 바퀴 돌아보고
에둘러 떠나간 두물머리

노만 덩그러니 남겨진 배 한 척
사공 잃은 황포돛배 
새벽 안개에 갇혀
쨍쨍 강울음 소리에
머리채를 낚아채인듯
무릎 끓는다

금강산 골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북한강
태백산 검룡소를 힘차게 박차고 발원한 남한강
처녀 총각 만나듯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깊은 포옹으로 한몸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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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에게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벋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을 듣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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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마을 / 최하림

가을이 저물 대로 저물어 꼭지가 떨어지고 나면
돌담의 맨드라미와 피마자들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뒤안 우물도 말라붙어 소리를 죽인다
추수를 끝낸 농부들은
쇠스랑과 쇠갈퀴 써레 괭이들을 헛간에 가지런히 넣고 빗장을 지르고 나서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네거리로 나간다
여인들도 그림자를 끌고 마당을 지나간다
시월과 십일월은 잠시 숨을 죽이고 골목을 빠져 나간다
검은 까마귀들이 날개를 치며 논두렁에 내려앉다가 올라간다
아이들이 동구길에서 아우성친다 머리가 파르스름한 사미승이
논두렁 건너 소나무 숲길로 걸음을 재촉하며 간다
아직도 한 뼘쯤 해는 서산에 남아 있고
네거리에서 사람들은 넘어가는 해를 일없이 보고 있다

==================
하얀 계절의 일기 / 오광수

어제 이 강가에서 만났던 노래는
반짝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돌틈속에 숨었답니다.
모질게 구는 바람이
무서워
조롱 조롱 그렇게 숨었답니다.

하얗게 하얗게 쌓인 눈밭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도
남은 낱알 찾던 철새의
소리도
숨구멍만 조금씩 내놓은 채
빠끔이 숨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한 움큼씩 고운 햇살을 주면
천사들의 따스한 손길
따라
뾰족 뾰족 생명들이 고개를 들고
숨었던 소리가 날아다니고
초롱 초롱 보고픔이 꽃이 필 테지요.

앙상한 나무를
마구 때리는 바람도
이젠 지쳐 힘이 없나 봅니다.
숨바꼭질했던 나무의 새 순들이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껍질을 벗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겨울잠을 깨우는 봄 / 이해인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잠시 쉬고 나면 새 힘을 얻는 것처럼
겨울 뒤에 오는 봄은
깨어남. 일어섬. 움직임의 계절
'잠에서 깨어나세요'
'일어나 움직이세요'
봄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소녀처럼
살짝 다가와
겨울잠 속에 안주하려는 나를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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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뉘우치다 / 안도현

이 세상을 점점이 묘사하며 내리는 눈송이

이 풍경 한쪽 구석에다 내 이름 석 자 쓰고
붉은 낙관이나 하나 꽝, 찍어 버려?

너, 이 도둑노옴!
무엇을 더 가지겠다는 거냐?

내 이마를 후려치고 가는 눈발의 회초리

내 마음 문득 어둬 산수유 열매 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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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읽는 하얀 편지 / 오광수

당신을 향해 기도하고 잠이 든 시간
밤새도록 당신이 써 보낸
하얀 편지가 하늘에서
왔습니다.

잠 든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걸음 소리도 내지않고
조용히 조용히 그렇게 왔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큰지 온 세상을 덮으며
"사랑해!"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당신도 내가
그립답니다.
당신도 내가 보고 싶답니다.
당신도 내가 너무 너무 기다려 진답니다.

새 날을 맞이하며 창을 여는
순간부터
한참을 일하는 분주한 낮시간에도
당신은 언제나 나를 생각한답니다.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 눈물 방울져 떨어지면
닿는 곳 점 점이 쉼표가 되어
쉬어가면서 읽고 또 읽습니다.

넘어져 하얀 편지속에 폭
안기면
당신은 나를 더욱 꼬옥 안고
"많이 사랑해!" 하는 느낌이 옵니다.

하얀 편지를 읽는 이 행복한 시간.

마음속에서 피어난 하얀 입김으로
"나도 당신을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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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 김시천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깊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천지사방 고요히 내리는 눈발과 함께
세월이 남기고 간 그림자는 마냥 길고 적막한데
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사람 하나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눈 내려 쌓일수록 밤은 깊어져
나마저 보이지 않는 외딴 산 마을
촛불 하나 켜지는가
보고 싶어집니다

-----------------------------------
겨울로 가는 바닷가에서 / 오광수

꿈같은 사랑의 미련 때문에
하얗게 진이
다하도록
파도가 발버둥을 치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까맣게 흔적이 없는 늪에 앉아
푸념조차 퇴색해버린
몽돌을 붙잡고
묻고 또 물으며
지난 계절의 흔적을 뒤져봐도

당신이 내게 한 황홀한 고백이,
내가 당신에게 속삭이던
밀어가
까만 젖꼭지 같은 잔돌이 되어
이제는 좌르르 다른 소리를 내는데

아침에 보이던 환한 얼굴은 어디 가고

머리칼로 물기 가득 뿌리면서
잔뜩 몰려온 바다 안개들이
날름날름 그 소리마저도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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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이 남긴 스케치 / 오광수

모과나무 서 있는 마당 한쪽
이젠 더 갈 곳 없는
가을 사연 몇 장이
모질게 따라오는
찬바람을 피해
하얗게 몸을 숨기며
퇴색의 잠자리에 들고 있다

널어놓은 빨래들은
북어같이
흔들거리고
며느리가 많이 떨었던 모양.
소죽 삶는 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다
이 집 어른 마실 갔다오기 전에

저걸 걷어야 할 텐데......

잠깐 따스함에 마당에 떨어진
뒹굴고 있는 고드름 몇 조각 위로
넘어가는 햇볕이
마지막 빛을 뿌리고
곧 불어올 차가운 눈바람만 믿고
아직 달려있는 추녀 끝의 몇 놈은
의기양양 뾰쪽한 날을
세운다

지붕 위로 흰 연기 뭉실
동네에는 밥 냄새로 가득한데
"손님. 방이 따시남유?"
호롱불 피워오는 주인의
목소리에
객 앞으로 달려오던
산골 땅거미가 마루 밑으로 들어간다


_________ *55


밤 눈 / 김광규
첫 눈 / 이정하
겨울강 / 박남철
겨울강 / 이채
--------------------
겨울날 / 김광섭
겨울 밤 / 김기택
겨울밤 / 복효근
겨울밤 / 신경림
---------------------
겨울산 / 김완하
겨울산 / 정연복
겨울산 / 정일근
초겨울 / 도종환
---------------------
겨울나무 / 이윤학
겨울 나무 / 이해인
겨울나무 / 정연복
겨울 노래 / 오세영
------------------------
겨울 노래 / 이해인
겨울 마음 / 이상화
겨울 산사 / 목필균
겨울 안부 / 반기륭
------------------------
겨울 채비 / 정하선
겨울 편지 / 김현태
겨울편지 / 반기룡
겨울 포구 / 장석남
-------------------------
연탄 한 장 / 안도현
이 겨울엔 / 홍해리
겨울 가로등 / 목필균
겨울 까마귀 / 김현승
----------------------------
겨울 담쟁이 / 정찬일
겨울 담쟁이 / 최영희
겨울밤의 꿈 / 김춘수
겨울산에서 / 정석권
----------------------------
겨울 양수리 / 목필균
겨울의 회상 / 오광수
겨울 이야기 / 최영희
겨울 초대장 / 신달자
----------------------------
겨울 한라산 / 정호승
눈 내리는 날 / 윤보영
눈 내리는 밤 / 강소천
눈 오는 저녁 / 김소월
----------------------------
초겨울 엽서 / 홍해리
겨울 그리스도 / 김남조
겨울나무에게 / 권달웅
겨울로 가는 길 / 최영희
------------------------------
겨울 저녁의 시 / 남진우
겨울강 두물머리 / 나상국
겨울 나무에게로 / 황지우

겨울로 가는 마을 / 최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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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계절의 일기 / 오광수
겨울잠을 깨우는 봄 / 이해인
겨울 산에서 뉘우치다 / 안도현
겨울에 읽는 하얀 편지 /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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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옆에 서 있으면 / 김시천

겨울로 가는 바닷가에서 / 오광수
겨울여행이 남긴 스케치 /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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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시 모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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