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구자운
손으로 어루만져
사물을 보는
좋지 못한 습관의
희생이 되어 버린
담벼락 흙의
무너진 어둠.
묵중한
사물의 모서리.
꿈틀거리는 그림자.
어둠에 길들이는 일은
언제까지라도
잇달아 일어나는 騷音에
헷갈려서
걸을 수 없이 된
침울한
얼굴 표정을 생각케 한다.
헌 외투.
찢어진 신문지.
빈 병의
쪼각에 찔리어서
오는
바람의 상처 자욱.
거짓말은 여기
살고 있다.
시름 어린 손을
서로 잡는 것은
좋은 일일까?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노랫소리는 흐른다.
그러면 아무도 없는
이 틈사리에
나무 이파리들이 일제히
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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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박용래
종달새는
빗속에 울고 있었다
각시풀은
우거져 떨고 있었다
송사리 떼 열짓는
징검다리 빨래터
그
길섶
두고 온
日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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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서정주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색 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웨
혼령 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도라...
아무 병도 없는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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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성낙희
돌아왔구나
노오란 배냇머리
넘어지며 넘어지며
울며 왔구나.
돌은
가장자리부터 물이 흐르고
하늘은
물오른 가지 끝을
당겨올리고
그래,
잊을 수 없다.
나뉘어 살 수는 더욱 없었다.
황토 벌판 한가운데
우리는 어울려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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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손동연
개나리
노오란 덧니가 반짝인다.
햇볕도 앞가슴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무용 시간이 끝났는지
신발주머니를 든 채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유치원 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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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송수권
언제나 내 꿈꾸는 봄은
서문리 네거리
그 비각 거리 한 귀퉁이에서 철판을 두들기는
대장간의 즐거운 망치소리 속에
숨어 있다
무싯날에도 마부들이 줄을 이었다.
말은 길마 벗고 마부는 굽을 쳐들고
대장간 영감은 말발굽에 편자를 붙여가며
못을 쳐댔다.
말은 네 굽 땅에 박고
하늘 높이 갈기를 흔들며 울었다
그 화덕에서 어두운 하늘에 퍼붓던 불꽃
그 시절 빛났던 우리들의 연애와 추수와 노동
지금도 그 골짜기의 깊은 숲
캄캄한 못물 속을 들여다보면
처릉처릉 울릴 듯한
겨울산 뻐꾸기 소리.....
집집마다 고드름 발은 풀어지고
새로 짓는 낙숫물 소리
산들은 느리게 트림을 하며 깨어나서
봉황산 기슭에 먼저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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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오탁번
겨우내 살이 오른 딱정벌레 작은 알이
봄 아침 눈을 뜨고 나무 밑동 간질일 때
그리움 가지 끝마다 새잎 나며 보챈다
버들개지 실눈 뜨는 여울목 아지랑이
눈물겨운 물거울로 꿈결 속에 반짝일 때
이제야 견딜 수 없는 꽃망울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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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유자효
봄은 축제일의
한바탕 불꽃놀이.
오래 사는 삶을 지겨워 말기
삶은 언제 시작해도 축제인 것을.
나는 내 인생의 제왕
내 집은 나의 왕궁
자연은 나의 영지.
왕궁의 불꽃처럼
나의 영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자연의 풀꽃.
오래 사는 삶일수록
오히려 축복하기
봄은 생명의 축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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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2 / 윤동주
봄이 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 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는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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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이수익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버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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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1 / 이영도
낙수 소리 듣다 미닫이를 열뜨리니
포근히 드는 볕이 후원에 가득하고
제가끔 몸을 차리고 새 움들이 돋는가
아이는 봄 따라가고 고요가 겨운 뜰에
맺은 매화 가지 만져도 보고 싶고
무언지 설레는 마음 떨고 일어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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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이일
봄은 作亂軍
부질없은 作亂軍이오
꿈을 한 구루마 실어 가지고 단닙니다
밤이면 집집이 드나 드지오
한밤에 困 하게 잠든 청춘에게
꿈을 잔득 퍼부어주고 갑니다
그러지 않어도 꿈만은 청춘시절
아츰에 이러나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터문이 없는 꿈을 실컷 뀌었으니
혼자 생각하고 싱긋 웃기도 하지오
부질없는 꿈 구루마를 끌고
도적놈처름 살금살금 단니는 놈이
실없는 作亂軍 봄!
청춘을 놀리는 봄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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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정지용
외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黃昏이 붉게 물들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으로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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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한하운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 꽃 이른 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서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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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허영자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몸을 풀어라
죄스런 봄날
피여, 피여.
파아랗게 얼어붙은
물고기의 피,
새로 한 번만
미쳐라 달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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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 문인수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면서
누가 밤중에 깜깜한, 찬 부엌으로 내려갔다.
군불 한소끔 더 때고 들어왔다.
잉걸 화롯불도 새로 들여온 것 같았다.
나도 선잠을 걷고 화롯불 앞에 쪼그려 앉고 싶었던 것처럼
방금 자리 뜬 저 아이들처럼
이글이글 올라온 이 한 무더기 동백꽃 쬐어보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또 먼 땅속에서 두런두런거리는 것 같다.
아직은 때때로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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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 문인수
절을 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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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 강민숙
꽃 피는 소리
하늘 가득하다
살랑살랑
나비 한 마리
바람을 부채질하며
꽃잎 위에
슬그머니 날개 접는다
나도 몰래
두 손 모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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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 엄혜숙
사람들은 동그라미 하나씩 빚으면서 살고 있다
둥근 식탁과 저 붉은 무덤이 맞닿아
가둔 만큼의 바람과 햇살을 향유한다는 것을
葬地에서 보았다
안갯속에 수많은 소리들이 웅성대고 있다
세상 끝 어슴푸레 내려다보이는 길섶
허연 소금꽃 같은 아버지 비틀거리며 걸어가신다
허공에 기대어 땅 밀쳐내던 마지막 잎새의 젖은 눈과 마주친다
파랑에 지친 빈 바랑 내려놓고
돌아가 쉴 곳 두리번거린다
바스락 소리 낼 것 같은 굽어진 허리
햇살은 더 큰 햇살 속으로 숨어 버리고
움켜쥐어 봐도 바람만 가득
담긴 손이 힘없이 떨린다
굽어보이지 않던 날들이 일제히 고개 디민다
생과 사의 문지방 너머
개나리꽃 노랗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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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 정지용
윗 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 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황혼이 붉게 물든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에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
+ 봄눈 /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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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 정호승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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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봄 / 박형권
두 젊음이 다리 끝에서 아지랑이를 피워올린다
연애질하고 있다
눈빛 마주칠 때 참꽃 피고
손닿을 뜻할 때 개나리 벙글어지고
내일 들에서 쑥 캐는데
너 나올래
불쑥 오지 말고
늑대처럼 침 흘리며 빙글빙글 둘러서 다가올래, 할 때
목련꽃 흐드러지고
동네가 눈을 틔우는 마늘 싹만해서
봄비 기다리는 마루 끝에 앉아서도
아닌 체 서로 끌어당기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의 좋은 시절도 복숭아꽃 피었고
복숭아털 같은 최루탄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잘 모르는 자유, 노래하다 지치고
전자석처럼
문득 나를 끌어당기는 여자가 있었다
이제는 예쁘게 노는 모습에 참으로 눈이 부시기 시작하는 나이
해줄 것은 없고 시계를 한 시간씩 되돌려놓으면 그것도 부질없다
봄은 노루 꼬리보다 짧으니 힘껏 하는 만큼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고
속마음은 제비꽃처럼 부리가 뾰로통해지고
그때 그 나이인 저 아이들 믿고
봄을 맡겨도
괜찮을까 하며
겨울이 능구렁이 꼬랑지를 담부랑에 남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꽃봉오리로 팬티를 해 입고 싶은
봄이
쑥 캐는 년 궁둥짝만큼 염치없다
봄은 저 아이들 연애질하게 오는 것이니 행여 나비처럼도 밟지 마시라
봄, 봄 해봐도 젊음 속의 봄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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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 / 안현미
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한다
망할 놈의 봄비
망할 놈의 제비
그 봄에 한 여자가 아프다
봄이 두 개라면
봄이 두부 라면
그 봄에 한 여자가 웃는다
자신이 끌고 다닌 바퀴 달린 가방처럼
테두리가 사라지고 있는 영혼처럼
다시 테두리로 되풀이되는
다시 테두리만 되풀이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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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용택
비가 오네요
봄비지요
땅이 젖고
산이 젖고
나무들이 젖고
나는 그대에게 젖습니다
앞강에 물고기들 오르는 소리에
문득 새벽잠이 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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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문중섭
잊었던 누나의 수줍음같이
조용히 내리는 비
자우룩한 젊음의 對岸에 초롱 불빛 향수가 껌벅인다.
솜털처럼 포근한 어머님의 손길이
오늘따라 봄비 되어 내린다.
흙 내음에 겨운
꽃망울을 열고 환히 비쳐드는 모습
연푸른 창살에 자장가로 번진다.
아쉬운 사연들이
명주실에 매달려 온몸에 젖어 감기면
太古林을 홀로 걷는 내 상념에의 발길은 사뭇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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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에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젖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어린 묘목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붐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늦봄 싸돌아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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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 김사림
아침 식탁 위의
냉잇국에서
봄은 천천히 다가온다.
한나절 강가에는
겨울을 헹구는 아낙네들이
왁자지껄 …… 원을 그리고
해그름쯤 뒷뜰에는
묵은 독을 부시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봄은 활짝 웃는다.
============
+ 소주 / 정진규
봄에는 살냄새가 진동해서 자꾸 도망만 다닌다 머물 수 없다 이미 지쳤다
어제는 井邑까지 가는 동안 새살 드러낸 들판의 흙들도 그냥 지나쳤다
살냄새가 너무 짙었다 구름처럼 피어 있는 벚꽃나무 하나도 그냥 지나쳤다
살냄새가 너무 짙었다 대숲 하나와 높은 까치집 하나만 공들여 보았다
그들은 살냄새가 없어서 깊게 머물렀다 하루에 한 번씩 술을 마셔야 하는데
술도 소주 2홉이 가장 적당했다 소주는 언제나 깡마른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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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에 / 황동규
이제 너와 헤어지는 건
강물이 풀림과 같지 않으랴
어두운 한겨울의 눈이 그치고
봄날에 이월달에 물이 솟을 제
너와 나 사이의 언짢음도 즐거움도
이제 새로 반짝이리 봄 강물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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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봄 봄 / 류인순
뭉쳐 있던 찬바람
눈부신 햇살이
살살 비벼 풀어주니
사륵사륵 봄 향기
창가에서
나풀나풀 춤추고
살며시 다가와
어깨 툭툭 건드리는
명주바람 유혹에
뽀송뽀송한
봄 향기 끌어안고
하루를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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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서리 / 임영준
얼마나 더 시린 봄을 보내야만
너를 지울 수 있을까
화사한 햇살이 어지럽기만 한 것은
우수 가득하던 네 눈망울 때문일까
꽃 바람 흐드러지는 거리에서도
설움이 그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넘치는 봄
도심을 거닐며 꽃말을 속삭이던 너
비바람도 달콤하게 감기던 날들
되돌릴 수 없는 난분분한 추상들이
몸서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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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소식 / 목필균
먼 산에 초승달 떠오르듯
네가 오려나 보다
쏟아지는 금빛 햇살에
잔기침 소리 잦아들고
굳어진 관절도 기지개 켜는 이즈음
꽃눈 틔우는데
속울음소리 없이
그 향기 만질 수 있을까
찬바람에
으슬으슬 몸살기 나는데
네 숨결 가랑비에 젖어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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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소식 / 송정숙
꿈을 꾸었다
달달한 초콜릿 먹는 꿈
부시시 일어나 앉아
달달함으로 남겨진 여운
조용히 들어 봐
찬바람 속에서 들리는 함성
언 땅 헤집는 기쁨의 소리
문턱만 넘어오면 네 곁이야
조금 남겨진 어둠
아파트 난간 대롱일 때
뚝배기 된장찌개 보글보글
겨울 견디어 온 봄은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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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은 / 이태극
진달래 망울 부퍼 발돋움 서성이고
쌓이던 눈도 슬어 토끼도 잠든 산속
삼월은 어머님 품으로 다사로움 더 겨워.
멀리 흰 산 이마 문득 다금 언젤런고.
구렁에 물소리가 몸에 감겨 스며드는
삼월은 젖먹이로세, 재롱만이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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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째 봄 / 이병률
나무 아래 칼을 묻어서
동백나무는 저리도 불꽃을 동강동강 쳐내는구나
겨울 내내 눈을 삼켜서
벚나무는 저리도 종이 눈을 뿌리는구나
봄에는 전기가 흘러서
고개만 들어도 화들화들 정신이 없구나
내 무릎 속에는 의자가 들어 있어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앉지를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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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기상 / 김은식
봄은 작은 풀씨를 깨우기 위해
간밤에 비를 내렸다
생명인 양 묻어 두면 싹을 틔우는 봄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을 틔우려 하네
담장 옆에
번지듯 돋아나는 새싹들
언 땅을 녹이고
근심의 돌을 밀치고
아침 햇살 앞에 기지개를 켠다
봄은 일제히 돋아나, 번지는
희망, 그리움, 기다림의 씨앗들로
우리 가슴에 묻어 둔
해묵은 풀씨의 이름들을 깨우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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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노동 / 김광협
우리 서귀포 보리밭에
종달새가 백그라운드
뮤직의 주자(奏者)가 되어
봄의 노동에 끼어들 때,
항구의 연락선
고동 부우부우 울어
귤 팔러 육지 갔던 비바리가
보리밭 색깔 투피스를 입고
허위대 큰 나비처럼 내린다.
우리 서귀포 하늘 위에
귤꽃 향기가 은은한 고전(古典)이 되어
봄의 영화(榮華)에 뛰어들 때
바다에 흰 갈매기떼
볕살같이 선잠에 취했던 젊은 장정(壯丁)은
우거진 녹음의 수염을 하고
향그러운 나무처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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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던가 / 정경임
봄이던가.
연둣빛 물감 스르르 풀려진
어수룩한 새들은 취한 듯 졸고
성장을 멈췄던 그대 노래
푸른 이파리로 녹아 선명하게 재생되는
봄이던가.
소멸로 치닫던 사랑
새살 돋듯 살아나고
낡은 걸음에 엮인 망각을
웃음으로 털어 내며
맑은 언어들이 한껏 아침 식탁에 오르는
봄이던가.
민들레 꽃씨처럼 가벼워져
한 맘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는
그리고 말간 햇살 화살처럼 날아와
심장에 파스텔 톤으로 깊이 박히는
봄, 봄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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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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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간다 / 김은령
오봉순, 삼십 대, 나이 정확히 모름
경북 경산시 하양읍 동서 3리, 이장님의 눈총과
배려 속에 마을회관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여자
남편, 가끔 보이기도 함
출생 내력, 알지 못함
한글을 모를뿐더러 숫자 개념이 없어
시간제로 일하는 단순노동의 임금을
종종 떼어먹히는 줄도 잘 모름
유일한 희망이자 낙은 그날 번 일당으로
마을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맥주 한 병 사 마시는 일
아이 셋, 또래와 같이 학원도 보내야 하고 컴퓨터 사 달라고 졸라
당분간 맥주 한 잔 포기한다고 구멍가게 집 아줌마와 이장님께 선언함
대추 꽃 피는 마을
마을회관 높은 방 벽과 벽 사이 삼각의 꼭짓점
거미, 집을 짓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막
기진맥진한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투명한 알 지금 부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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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간다 /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 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 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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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맞이 향연 / 박성환
용트림 기지개로
겨울 커튼 거두고
활짝 창문을 열어
여명의 찬란한 빛
한 아름 품어 안고서
봄소식 전해주는
지저귀는 동박새
봄의 서막 전주곡에
오색 빛 구애 날갯짓
춤사위 흥을 돋우네
따스한 봄빛 속삭임
움트는 초록 이파리
알록달록 꽃 가슴은
봄 향수 퐁퐁 터뜨려
코끝은 마냥 싱그럽고
심술꾸러기 봄바람은
봄 처녀 치맛자락 들쳐
뽀얀 속살 헤쳐도
살짝궁 연분홍 미소
봄맞이 향연이어라
-------------------------------
+ 봄 바다에서 / 박재삼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 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것가.
2.
우리가 소싯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편 문 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확실히 그 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 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언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 달아 젖느단 것가.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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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의 회상 / 이외수
밤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 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 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 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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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의 저녁 / 박주택
저 저무는 저녁을 보라
머뭇거림도 없이 제가 부르는 노래를 마음에
풀어놓고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봄비에
얼굴을 닦는다, 저 저무는 저녁 밖에는
돌아가는 새들로 문들이 덜컹거리고
시간도 빛날 수 있다는 것에 비들도 자지러지게
운다, 모든 약이 처방에 불과할 때
우리 저무는 저녁에는 꽃 보러 가자
마음의 목책 안에 고요에 뿌리를 두고
한눈파는 문들 지나 그림자 지나
혼자 있는 강 보러 가자
제 몸을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시간은
물을 맑히며 정원으로 간다
구름이 있고, 비가 있고 흰말처럼
저녁이 있다 보라, 일찍이 나의 것이었던
수많은 것들은 떠나간 마음만큼
돌아오는 마음들에 불멸을 빼앗기고
배후가 어둠인 저녁은 제 몸에
노래의 봄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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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셨네 / 오광수
볕이 너무 고와 창문을 여니
언제 오셔서 입히셨는지
마당 앞에 어린 쑥들의 맵시가 곱습니다.
살가운 마음은 그냥 가시질 않고
홀로선 목련에게도 향기 한 움큼 쥐여주고
진달래에겐 님의 고운 입술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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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봄에게 / 오순화
봄은 착해서 좋다
잎이 난 자리 잎이 나고
꽃이 핀 자리 꽃이 피고
속이지 않고 숨기지 않는 깨끗한 얼굴
돌아서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아는 너는
언제나 젊은 미소였다.
봄은 희망이어서 좋다
돌 틈 사이 굽이치는 계곡에도 괜찮다 괜찮다
바람을 다독이며 엄마의 미소 같은 얼레지 꽃이 피어나고
폭풍우에 여윈 들길에도
굳건히 일가를 이룬 꽃다지
아장아장 콧노래가 정답다.
봄은 사랑이다.
가만히 있으면 왠지 미안할 것 같은 설레임
난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난 너를 위해 무엇이든 되고 싶어
한 줌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
성실한 몸짓으로 새록새록 돋아나는 행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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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강가에 와서 / 박영식
때 묻은 우리네 삶
하루쯤 밀쳐두고라도
아지랑이 아른대는
강둑 길을 걸어보자
새 봄을 맞는 강물...
일상의 궂은일은
없었던 걸로 흘려놓고...
서투른 몇 줄 詩心도
반짝이지 않느냐...
아득히도 그리운 이의
이름이나 외며 걷자
휘파람
저 환한 음색이
눈물겹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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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는 이유 / 오보영
내가 네게로 오는 건
다
너를 위해서다
날 기다리는 네게
날 필요로 하는
네게
기꺼이 다가가
네가 원하는 따사함을
듬뿍 안겨주기 위해서다
또한 내가
네게로 꼭 가야만 하는 이유는
네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해서다
겨우내 숨죽이며 지냈던
네게
포근한 온기를 전해
새싹을 돋워주기 위해서다
푸른 꿈 펼쳐나갈
네 삶을
보다 활기차게 응원하고 싶어서다
난 너를 많이 사랑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두를
네게
다 넘겨주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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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어느 봄날 / 권금주
목련꽃 몽우리 봄빛 머금으면
싱그러운 봄 결 따라
연둣빛 덧칠할
그리움 만나러 가야지
프리지어 봄 향기 너울거리면
숨겨둔 사랑 하나
미루어두었던 소망 하나
노란 꽃잎 위에 얹어놓아야지
어설픈 첫사랑 설렘도 느껴보고
감추어두었던 추억도 꺼내놓고
지금은 간곳없는 옛길 따라
나지막한 돌탑 하나 쌓고 와야지
내 그리움처럼 꽃바람 부는 날은
어둠을 깨우는 총총한 별 하나
가슴에 품고
마냥 새워도 두근거릴
어느 봄날의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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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푸른빛 그리움 / 전현숙
푸르를까요
이토록 그대 그리움이 푸르를 수 있을까요
마음은 젖어
눈동자까지 촉촉하게 적시고 있지만
햇살 좋은 날
광활한 보리밭 맑은 기운처럼
그대만 생각하면
푸른 잎새 봄바람에 흔들리듯
온 가슴이 하늘하늘 싱그럽게 살랑거려요
그토록 마음을 시리게 했던
지난 여정마저도
꿈속에서 잠시 내렸던 장맛비같이 느껴져요
어쩜 이렇게 하늘향기에 묻힌 것처럼
영혼의 협곡까지 달아오를까요
그대, 나의 순정이여
달큰한 봄바람이
그대와 나눈 첫 입맞춤처럼
내 가슴을 휘청이게 해요
그대, 그 푸르른 생기 감도는
너른 하늘 같은 가슴이
아지랑이처럼 하냥 아른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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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감기 들린 둑길 / 최동호
조청같이 진한
녹차 한 잔 마시고
빈속에 한 줌 찻잎을 씹는다
바늘 돋은 혀 찻잔에 대고
언 강 속에 흐르는
푸른 물로 은빛 아가미 같은 가슴을 적신다
버들 피리 비늘 같은
까치 소리 풀잎 편지 전하며 강 언덕 너머에서
감기 들린 목구멍 같은 봄 둑길을 걷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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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과 봄밤과 봄비 / 김소월
오늘 밤, 봄밤, 비 오는 밤, 비가
햇듯햇듯 보슬보슬 회친회친, 아주 가이업게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봄밤,
비야말로, 세상을 모르고,
가난하고 불쌍한 나 이 가슴에도 와주는가?
한강, 대동강, 두만강, 낙동강, 압록강,
보통학교 삼학년 오대강의 이름 외이든 지리시간,
주임 선생 얼굴이 내 눈에 환하다
무쇠다리 위에도, 무쇠다리를 스를 듯, 비가 온다.
이곳은 국경, 조선은 신의주, 압록강, 철교,
철교 위에 나는 섰다. 분명치 못하게? 분명하게?
조선 생명된 고민이여!
우러러보라, 하늘은 가맣고 아득하다.
자동차의, 멀리, 불붙는 두 눈, 소음과 소음과 냄새와 냄새와,
조선인, 일본인, 중국인, 몇 명이나 될꼬…….
지나간다, 지나를 간다, 돈 있는 사람, 또는 끼니조차 빠뜨린 사람
사람이라 어물거리는 다리 위에는 전등이 밝고나
다리 아래는 그늘도 깊게 번 듯거리며
푸른 물결이 흐른다, 굽이치며, 얼신 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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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시작되는 계절 / 용혜원
뚝방 양쪽에
개나리 군단이 열 지어
봄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봄을 알리는
수천수만의 병사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입 모양이
똑같은 걸 보니
봄이 오는 걸
모두 다 환영하고 있다
노란색으로 물든
뚝방길을 지나노라면
연방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 준다
봄, 봄, 봄은
꽃으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아! 나도 사랑에
불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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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구자운
봄 / 박용래
봄 / 서정주
봄 / 성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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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손동연
봄 / 송수권
봄 / 오탁번
봄 / 유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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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2 / 윤동주
봄 / 이수익
봄 1 / 이영도
봄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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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정지용
봄 / 한하운
봄 / 허영자
3월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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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문인수
봄날 / 강민숙
봄날 / 엄혜숙
봄날 / 정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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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 정호승
봄밤 / 정호승
봄 봄 / 박형권
봄봄 / 안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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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김용택
봄비 / 문중섭
봄비 / 이재무
봄은 / 김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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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 정진규
봄날에 / 황동규
봄 봄 봄 / 류인순
봄 서리 / 임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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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식 / 목필균
봄소식 / 송정숙
삼월은 / 이태극
몇 번째 봄 /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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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상 / 김은식
봄의 노동 / 김광협
봄이던가 / 정경임
아지랑이 / 이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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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김은령
봄날은 간다 / 안도현
봄맞이 향연 / 박성환
봄 바다에서 / 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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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회상 / 이외수
봄비의 저녁 / 박주택
봄이 오셨네 / 오광수
착한 봄에게 / 오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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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강가에 와서 / 박영식
봄이 오는 이유 / 오보영
꿈꾸는 어느 봄날 / 권금주
날 푸른빛 그리움 / 전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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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감기 들린 둑길 / 최동호
봄과 봄밤과 봄비 / 김소월
꽃으로 시작되는 계절 / 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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