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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봄

봄 시 모음 5

+  / 오세영

봄은 
성숙해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 

​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은 
피곤에 지친 춘향이 
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 

​눈뜬 저 우수의 이미와 
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 

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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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혜원

겨우내 눈보라 몰아쳐도
바람이 불어와도
잠잠하기만 하던 빈 들판에
새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초록이 물들고 있다

​겨우내 기다려 온 봄이
일순간에 온 들판에 퍼지고 있다

​봄이 오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포근한 햇살이 퍼지는
봄 하늘 아래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꽃향기가 내 가슴에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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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김용호

와서 좋고 머물러 주어서 더 좋고
따뜻한 품 안에 안길 수 있어 좋은 봄날

​돌담 옆에 기억해도 좋을 문장보다 아름다운
산수유꽃이 쓸모 있게 피어 있어 아름답습니다.

​돌담에 산수유꽃 그림자가 비스듬히 기대고 있어
그 간격 사이 나도 꽃나무가 되어
기대어 서 보고 싶은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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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박효찬

하얀 가슴
봄바람에 일렁거린다

​웅크리고
따스한 봄볕에 익어
훈훈한 남녘바람
온몸 맡겨놓고
흔들흔들
가지마다 새싹 돋음
기쁨으로 행복으로
꽃망울 열어
온 세상
파아란 하늘
곱게 수놓는 날
그날은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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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오순화

그대
기억하나요.
언 땅을 호호 불며 고개 드는 새싹들의 노래를
봄비가 저리도 촉촉하게 적실 줄을 예전엔 몰랐지요.

​그대
기억하나요.
우리 곁에 봄이 있다는 것을.
꽃비가 저리도 곱게 내릴 줄은 무심 몰랐지요.

​그대
기억해 줘요.
겨울이 봄을 기다릴 줄 알았기에
우리는 그 이름을 인내라고 부르며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꿈들을

​그대
기억해 줘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힘겨운 날에도
우리를 살게 했던 그 봄이 있었음을.

​울먹거리듯
보슬비 내리는 길을 따라 푸른 향기 돋아나는 봄날
노오란 생강나무 꽃망울 꼼지락꼼지락
또 그렇게 새봄이 희망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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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남일

오는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보고 싶은 사람은
잊고 있어도 찾아오는데

​문득 바람이 놓고 간
버들잎 편지에

​참았던 꽃망울이 
설렌 가슴 터뜨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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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동순

꽃은 피었다가 
왜 이다지 속절없이 지고 마는가 
봄은 불현듯이 왔다가 
왜 이다지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는가 

내 사랑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다 떠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나를 호젓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만 빈 그림자뿐이려니 
그림자여 
너는 무슨 인연 그리도 깊어 
나를 놓지 못하는가 

이 봄날엔 왜 그저 
모든 것이 아쉬웁고 허전하고 쓸쓸한가 
만나는 것마다 
왜 마냥 서럽고 애틋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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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문자

오늘은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산만큼

​널 사랑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날이다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산만큼

날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은 날이다

​산도 들도
우리 가슴도

​생명의 기쁨으로
출렁이는

​향기롭고 눈부신

​아!
이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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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희숙

햇살 좋은 날
먼 길 돌아온 바람의 전언을 듣다가
시간이 버무려 낸 구름의 연서를 읽다가
실눈 뜨고 오는 봄의 속살을 만지다가
온 우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꽃들의 행진을 본다
이런 날
가만가만 스며드는 봄비처럼
마디마디 매듭 풀고
니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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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 김용택

말이 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는 줄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는 나오지 않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봄빛처럼 야위어가고
말을 잃어버린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봄바람처럼 메말라갑니다. 
이제 내 피는 
그대를 향해 
까맣게 다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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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 오광수

꽃가루 날림에 방문을 닫았더니
환한데도 더 환하게 한 줄 빛이 들어오네
앉거라 권하지도 않았지만은
동그마니 자리 잡음이 너무 익숙해
손가락으로 살짝 밀쳐내 보니
눈웃음 따뜻하게 손등을 쓰다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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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 유승희

봄 앞에서 선 날  
좋은 날만 있어라  
행복한 날만 있어라  
건강한 날만 있어라  
딱히,  
꼭은 아니더라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크게 욕심부리지 않을지니  

​새 봄에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들로 시작되는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매서운 추위 걷히고  
밝은 햇살 가득 드리운  
따스함으로  

​뾰족이 얼굴 내미는 새순처럼  
삶의 희망이 꿈틀거리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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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감기 / 이외수

겨울에 얼어 죽은 가래나무 빈 가지에
겨울에 얼어 죽은 가래나무 새 한 마리
날아와 울 때까지
봄밤에도 몇 번이나 눈이 내리고
더러는 언 빨래들 살을 부비며
새도록 잠을 설치는 소리

황사바람이 불고 흐린 산들이 떠내려가고
다음 날 이마 가득 금줄 무늬로 햇빛 어리어
문득 그리운 이름 하나 떠올리면
살아 죄 없을 사람들은 이미 죽어서 풀잎이 되고
봄감기 어지러운 머리맡
어느 빈터에선가
사람들 집 짓는 소리
집 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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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 권도중

꽃 피는 봄이 와도 변한 게 없다
변한 건 따스운 기운뿐 어려운 세상이다
이 봄은 나중이 아닌 지금이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것 만발하는 날에 여유로울 수 있다면
울타리 너머 만개한 꽃바람 가득해도
뭐 했냐 물으면 할 말 없다 참 열심히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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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 오세영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봄이 오면
잎새 피어난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잎새 피면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 너를 만남으로써
슬픔을 알았노라.
전신에 번지는 이 초록의 그리움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의 그
꽃 그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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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 전진옥

새들의 비상은
훈풍의 바람결 타고
높푸른 하늘을 날고

​나는 꽃바람 싣고 오는 봄
세상도 환희 로우니
님 마중에 나서볼 테요

​그대도 봄
나도 봄
얼마나 환희로운가요

​생각만으로 설레는 한 가슴
마음 활짝 열고
님 오시길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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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 류근택

입춘 추위 지나
골짜기 아래
겨우내 움츠린 눈 녹여
유리창처럼 투명한
얼음장 밑으로
봄의 서곡
물은 생명으로 흘러

​졸졸졸
봄의 소리는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거늘
누구는 듣지 못해
여전히 몸 웅크리고
누구는 들어도 마음 문 닫혀
누구는 가슴 열어
전심으로 듣나니

​뜨거운 가슴은 뜨겁게
차가운 정열은 차갑도록
지난 세월은 보듬어
산의 나무 푸른 숲
새들의 비상

​시간은
열린 가슴 아니어도
반짝이는 눈빛
설레는 희열, 희망의 노래
봄의 함성 울리리니
너와 나
두손 들어 봄맞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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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 오광수

나지막이 누군가 부르는듯하여
마시던 찻잔 놓고 고개를 돌려보니
먼지잼 지나간 작은 화단 속에서
함초롬한 이야기들이 살금 고개를 들고 있네

​반가움에 한발 또 한발 가까이 가니
찻잔 속에 가만히 있던 따스움들도
새물내가 상큼한 하얀 고운 색으로
마당 앞 목련 꽃망울의 옷들을 바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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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 김억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 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들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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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봄 / 이효

담벼락 아래 어린것들
누가 심어 놓았을까

바람도 땅의 통증을 토닥여준다

처마 밑 그림자
서로의 상처에 햇살을 발라주니 
단추만 한 꽃, 오늘을 든다

봄은
피어오르는 것들 
안온한 눈빛으로 읽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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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힘 / 박태강

동장군 위세에
꼼짝 않고 땅속에서
고통 참으며 잠을 자다

​때를 기다려
얼음, 눈 녹이고
고개 들어 밖을 본다.

​바람 녹여 따뜻하게
잠자는 벌레, 나무, 풀 등
어루만져 잠 깨워 눈뜨게 하고

​동장군을 자극하지 않고
봄은 서두르지 않으며
조금 조금 다가온다.

​머잖아 땅에 꽃이 피고
노란 싹이 푸른빛으로
대지에 활기찬 천지가 펄쳐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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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 장진순

해산의 진통이
숲으로 번져가고
어둠을 사르는
취기 오른 진달래
창가 아가씨의 가슴에 불 지른다

어느새 그녀는
화사한 차림으로
꽃비 맞으며 공원을 맴돌고
따라오는 이도 없는데
자꾸만 뒤 돌아본다

도심에 불 켜지고
제과점, 커피 잔 마주앉아
음악에 젖어드는 아가씨

허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핸드백을 침대에 던져놓고
옆에 쓰러져 눕는다.
초점 없이 한곳을 바라보다가
누가 부른 것처럼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본다.

TV를 켰다가
셀 폰을 들었다가
베개를 끌어안고
이유 없이 흐느끼다가
어느새 꿈속을 거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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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봄 / 나호열

소리 없이 진군한 소문은
곳곳에 봄을 퍼뜨려놓고
철없는 아이들처럼
개나리로 피어 있다
소문을 믿고
내의를 벗은 우민들은
무더기로 모여 떨고
정부는 서둘러 독감 주의보를 발표했다
수상한 공기를 조심하시오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시오
덧난 상처들이 부스럼 꽃으로
피어 있는 동안
사람들은 몸속에 머리를 처박고
거북이처럼
터널을 지나갔다
추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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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 / 정태중

누가 그러더라 봄엔 물푸레 가지 흔들거리면
떠난 기억들 다시 온다고

꽃이 피는 이유를 묻거든
어떤 나절의 고통을 나누려는 것이라는데
그러게 말이야
광대나물꽃에 날아든 벌이며 나비며
저들의 날갯짓 조곤히 보면
한평생 광대로 산 내 모습 같아야

솔개 한 마리 높이 날고
종달새 쪼로롱 청보리밭 기웃기웃
그러게 말이야
그리운 봄은 그리움에 갇혀
다시 오지 않아야

누가 그러더라 봄엔 물푸레 가지 흔들거리면
떠난 기억들 봄비로 돌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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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꽃 / 김윤현

추운 겨울이 있어 꽃은 더 아름답게 피고
줄기가 솔잎처럼 가늘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며
작은 꽃을 나지막하게라도 피우면
세상은 또 별처럼 반짝거릴 것이라며
많다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높다고 귀한 것은 더욱 아닐 것이라며
나로 인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
봄을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고 사는 보람이 아니겠느냐고
귀여운 꽃으로 말하는 봄맞이꽃
고독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며
풍부한 삶을 바라기보다
풍요를 누리는 봄맞이꽃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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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경전 / 안경애

풀, 꽃, 나무, 향기 
그리고 바람 

순수한 사랑으로 
짙게 발효시켜 

​고운 봄 길 위에 
내 마음 고요히 
한바탕 나뒹구는 꽃향기 

​노랑, 분홍. 연두, 새순 
그리고 나비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풍경 되어 

​봄 산의 치마폭에 
보드레한 에메랄드빛 찰랑찰랑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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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노래 / 김병근

아지랑이 일렁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오늘이 시작된다.

​차가운 얼음벽을 넘어 따스한
봄바람 속으로 새싹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같이
봄은 또 그렇게
우리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우리들의 얼었던 마음은
눈 녹듯이 싸르르 녹으며
지난날의 힘들고 지친
나의 고된 삶도 흘러내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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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노래 / 용혜원

색깔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초록의
미세한 음성으로
시작하는
봄의 노래는

​목련의 빼어난 독창과
개나리의 행진곡으로
이어져 가며

​미칠 듯이 노래하는
벚꽃과 철쭉의 노래 속에
절정을 이룬다

​봄이 시작되면
우리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시작된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이나
가벼워진 발걸음에
그만큼씩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나서고 싶다

​봄은 꽃들의
노래 속에
사랑의 목마름으로 시작된다

​불어오는 바람이
사랑의 발동을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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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느낌 / 박가월

잡힐 것 같이 이는 생령 
계곡에 움집한 분위기 
봄은 마음으로부터 오고 있다 

​먼 곳에 일렁이는 서기 
하늘과 대지의 속삭임 
봄은 시야로부터 오고 있다 

​차면서도 싫지 않은 바람 
살갗에 부드러운 감촉 
봄은 피부로부터 오고 있다 

​새들의 활기찬 지저귐 
계절 풍향의 생동감 
봄은 소리로부터 오고 있다 

​뛰쳐나가고 싶은 역마살 
춤추는 아지랑이 들녘 
봄은 설렘으로부터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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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미감美感 / 김근이

봄은
추운 겨울을 지난
따뜻한 햇볕같이
조용히 돌아오는
첫사랑

​산자락 끝으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소록소록 피어오르는
속삭임 같은....

​봄은
부푸는 가슴속
울림으로 다가오는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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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소리 / 고은영

흰 눈이 듬성듬성 얼어 있던
유년의 산자락에
삶을 위해 사랑을 위해
환희와 행복을 위해
고고하게 피어있던 노오란 수선화
그 짙은 향기로 여울지던 기억도
추억의 한 장으로 남은
빛바랜 조각이다

이 어둠의 꼬치에서
빛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면
겨울은 세월의 바깥으로 소멸하고
냉기를 앓던 내 가슴에도
부어오른 심장에도 설렘의 밀물로
야금야금 물오르는 소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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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연가 / 박선옥

햇살 가득 품고
연초록빛으로 담쟁이 꽃
하늘 끝까지 간다아닙니꺼

꽃바람에 화르르
떨고 있는 가냘픈 새순
길 가는 나그네 발길 잡으며

수줍은 새악시 마냥
낭군을 애타게 기다리며
아픈 사연 고운 사연

그리움으로 물들어
여울처럼 번지는 봄볕
지나치는 가슴마다
각시처럼 고운 미소
아름드리 피어났다 아입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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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유혹 / 신진식

내 어적에는 겨울이 좋았다
눈밭을 뒹굴고
소나무 다듬어 철사줄 얽어맨
스케이트를 타고 깔깔대며 놀았다
이젠 싫다
마음도 시린데 너까지 추우니

30대 초반에는 여름이 좋았다
이글대는 태양이 좋았고
달 그늘 아래
밤 새는줄 모르고 한없이 나누며
부딪치는 우정이 좋았다
이젠 싫다
끈적거려 싫고
쭉쭉 빠진 여인네의
관능미를 보노라면
시샘이 나서 싫다

50대 초반에는 가을이 좋았다
현란한 다풍이 좋았고
몽실몽실한 열매들이 좋았다
이젠 싫다
떨어지는 낙엽을 붙잡을 수 없으니
늦가을 앙상한 가지들은 더욱 싫다

희끗희끗한 반백이 되니 봄이 좋다
비집고 용트림하는 새싹이 좋고
딱딱한 껍질을 박차고 나오는
숨 막히게 다가오는
잎새의 향기 때문에

뛰어가 나누고 싶은
봄의 유혹

그래서 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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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 / 황인숙

봄은
마술쟁이
봄의
정원에
세상의 정원에
온갖
아름다움을
펼쳐
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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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진통 / 황인숙

봄이 오네 겨우내 언 땅을 녹이고
푸르룸의 촉을 틔우려고
화려함의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고운 향기 풍길 준비를

​엄동설한 길고 긴 겨울 동안
바람이 잔가지 찾아 들어도
하얀 설국이 잔가지에 머물 때는
찢어지듯 찬 서리 몸뚱아리 에이는 듯

진저리 쳐지게 마음이 젖어 들었지
묵묵히 잘 참고
봄날을 꽃피울 준비를
살얼음을 깨뜨리고

​봄의 진통으로
꽃의 향연으로
화려함의 꿈을 펼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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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 김기원

십이 열차 과함 소리 시끄러운 부산쇠마당
해 뜨기 전에 자갈치 아지매는
게기 사라고 달 잡는 목소리 깨깨 지르고
꼬부내이 골목집을 이리저리 너무시 본다

그마 늦잠이 깬다 이 이 그년 이년아
쇠이기 아퍼 아침 나잘에 잠 좀 자뻐잘라 했는데
미천 년아 네년은 잠도 자뻐저 아니자나
새벽 나잘부터 죽는 지상을 하고 개부알 앓는 소리
내 좀 근디리지 마라
입이 꼴려 모독티리 잡아 먹고 싶다

부산 영도 갯가 메려치 뱃고동만 불면
가시나 년은 얼굴 판때기에 분칠 좀하고
궁대만 짤랑거리고
머슴아 새끼는 기가 빠져 말라져 지리 죽겠다
오새 봄날에 머슴아 놈 간 다 녹히고 빼인다

자갈치 아재매야 게기 판때기 몽땅 내다 버리라
누구 먹이 살릴라고 날도 안샌는데 패악을 치노
야, 이년아 가레이 꼬장주 벌릉거리면 호양년 되에
별놈이 인나 쫓방아 잘 징우면 붙어 사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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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 최원정

봄기운이
인절미 콩고물처럼
묻어 있는데 나는,
그리움에 허기진
가슴만 쓸어내리고 있다

​스멀스멀 오르는
이 신열은
달래 초간장에
비벼 먹은 후의 체기처럼
명치끝에서 똬릴 틀고 있지만

​기척만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갈
이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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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김행숙

오른손에 있는 것을 왼손에 옮길 수 있지
우리는 그렇게 흔들흔들 바구니를 손에 들고 산책을 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어
오늘은 4월의 금빛 햇살이 넘실거리네
달걀 껍질 같은 것
막 구운 빵 냄새 같은 것
실오라기가 남아 있는 단추 같은 것, 눈동자 같은 것,
그것은 누구의 가슴을 여미다가 터졌을까
누구의 가슴이든 실금 같은 진동이 있지
오늘 저녁에는 네 가슴에 머리를 얹어봐야지
신기해, 왼손에 있는 것을 오른손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내 손에 있는 것을 네 손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바구니는 넘치는데 우리는 점점 더 가벼워지네
바구니가 우리를 들고 둥둥 떠가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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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따라온 님 / 김종덕

말없이 가을 등에 업혀
기약 없이 가신님

노란 손수건 보면 올 새라
산수유 언덕에 올라 봅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토라진 님의 얼굴과 닮아 있었는데
산수유 꽃술 속에 님 모습 아련합니다

말없이 떠남은
돌아온다는 뜻이었겠지요

산동에는
모두 님 잃은 님들이
님 찾으러 온 것 같습니다

모두
꽃잎에 입 맞추는 눈물 빛이
너무도 고와 보입니다

눈에도 세월이 흘러
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님께서
내 곁에 와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가 있어 행복합니다

* 산동 :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수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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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오는 소리 / 안숙현

사박사박 소곤소곤 
또로록 툭툭 
예쁜 꽃 요정들이 
속삭이는 소리 

​빨리 일어나 
맑고 따뜻한 햇빛에 
일광욕하고 싶다고 
맑고 투명한 이슬로 
샤워하고 싶다고 
꽃 요정들의 
봄을 알리는 소리 

​코 간지러워 
잎이 나고 
귀 간지러워 
꽃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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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듣는다 / 윤무중

지난 밤 만났던 연인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매서운 적막을 날리더니
마음 활짝 열어 미소를 던진다

대지는 촉촉한 기운을 품고
온기가 나무에 스며들며
서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굴 마주하며 눈빛 건넨다

오늘도 산새 한 마리 봄 찾아
둥지 속에 햇살을 가두고
여기저기 움트는 초록빛으로
내 곁에 다소곳한 봄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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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품은 산 / 김근이

비에 젖은 산이  
봄을 품고 성큼 내려 안는다  
입춘을 지난 햇볕이  
아직은 찬바람에 쫓겨  
언덕배기에 몰려 앉아  
겨울과 이별 대화를 나눈다  

​낮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봄을 시샘하는 바람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밀려간다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이  
세차게 봄을 밀쳐 보지만  
계절은 이미  
봄을 품었다  

​산은 기지개를 펴고  
나무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흐름의 원칙을  
따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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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 / 임숙현

따사로운 햇살에
시련을 견디며
피워내는 꽃망울

고통스러웠기에
느낌으로 만나는
사랑하는 마음에

이슬처럼 맑은
사랑의 속삭임
그리움 품고

기쁨이고저
세월의 다리를 건너
한마음 닿으려 하니

마음에서 오는 생각
기쁨으로 이어져
사랑으로 아름다울 수 있기에

초록빛 싹 틔우는 가슴
마음 적셔오는 따뜻함에
조용히 미소 집니다

-------------------------------
새봄의 기도 / 박희진

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그리고 땅속의 
벌레들마저 눈뜨게 하옵소서.

​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새 소리, 물 소리에 귀는 열리게
나팔꽃인 양,
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 하옵소서.

==================
입춘 이야기 / 박얼서

잔설 속에 숨어
밤새껏 몸을 뒤척이던
동백이
복수초가
여기저기서 새봄맞이 길을 닦느라
재잘거리는
입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태동
어차피 잘려 나갈 겨울 긴 꼬리
아직은 좀 이른 셈인데
꽃망울을 붙들고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며
서리꽃 앞다투어
지는 소리를 듣는다

------------------------------------
더디게 오는 봄 / 박인걸

당신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지 않고
여러 번 망설이다.
아주 더디게 다가왔지.

어떤 때는 토라지고
차갑게 냉소 짓다
어느 날은 환한 미소로
내 마음을 흔들었지.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부러 차갑게 대할 때
한 없이 야속했지만

천천히 마음 문을 열고
애태우며 다가온 당신이
결코 얄밉지 않은 건
너무나 아름다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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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그리움 / 박광호

지난밤엔 비바람 몰아치더니
눈부신 한낮,
밉던 먹구름도
창공에 목화송이를 피우고
연초록 살아나는 머~언 산엔
봄꽃들로 얼룩이 더욱 지네...

목련꽃 벚꽃이 펼쳐놓은
꽃잎의 카펫위로
따스한 봄볕이 내려앉는 정원,
긴 삼동의 풍상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피어낸 꽃들과 새싹들

그러기에
품겨나는 향기도 짙은 봄날이
아련한 그리움 보듬는가?

오늘은 그 임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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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속삭임 / 김덕성

많은 것으로  
선물을 안겨주는 봄  
은밀한 봄의 속삭임을 들으며 산다  

​속삭임으로 봄은  
내가 외로울 때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와  
사랑으로 벗이 되어 주고  

내가 우울할 때   
많은 이야기를 안고 온 초록바람  
푸른 꿈을 심어 준다  

​봄날은 그래서 좋다  
상큼한 꽃향기로 가슴에 꿈을 심어주고  
사랑의 꽃을 피우며  
속삭임으로 희망의 날개를 펴 준다

===================
봄빛 창가에서 / 김인숙

따스한 봄빛 내린
창가에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싹틔우고 꽃피운
고운 자리마다
어제 내린 비로
그리움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겨울부터
설레는 봄빛을
품으신 그대
내 가슴속 봄 길로
걸어오시는지

숨 쉴 때마다
그대의 향기 나는 온기가
쓸쓸한 심장 속에
붉은 꽃망울을
톡 톡 터트립니다

--------------------------------
봄이 오는 길목 / 박인걸

아직은 한겨울이지만
가지마다 다보록한 꽃망울은 설렌다.
봄바람은 언 가지를 흔들고
봄꽃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냇물은 얼음장을 녹이고
햇살은 아지랑이를 끌어 올린다.
버들강아지 제일 먼저 눈뜨고
노랑나비 첫 비행이 서툴다.
운무는 산기슭을 서성이고
구름 역시 산등성에서 잠시 쉬며
오후의 고요는 만뢰를 잠재우니
봄의 전령이 초인종을 누른다.
내 가슴은 자꾸만 설레이고
그리움은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그 소녀가 사뿐사뿐 내게로 걸어와
살짝 웃으며 속삭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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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 / 박인걸

고로쇠 나무에 물 오르는 소리
산골짜기에 물 흐르는 소리
진달래 나뭇가지 기지개 켜는 소리
까치가 둥지 짓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까무러치게 춥던 겨울날
으스러지도록 서로를 껴안고
오로지 눈 녹는 날을 기다리며
까치발로 긴밤을 지세웠다.
혹독한 추위의 두려운 밤에도
봄이 온다는 희망 하나에
어금니를 악물고 견디었다.
감당하기 힘든 세찬 바람 앞에
나의 의지가 깃발처럼 펄럭였지만
내 삶에 빛을 안겨 주던
봄이 오는 소리가 늘 들려왔다.
그 소리는 새들의 노랫말로
어떤 때는 빗소리에 섞여 내렸고
귓불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더러는 봄 꿈이 나의 의식을 깨웠다.
소년이 타고 달리는 자전거 바퀴가
봄의 소리를 우렁차게 전하고
산비둘기 두 마리 가지 앉아
작년 봄에 부르던 노랫말에서
봄의 소리는 전령처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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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그냥 지나요 /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들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피어날 거예요 

​생각해 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보면 쓸쓸하고 
달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울면 
밤새워 뒤척여져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더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 
꽃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새 봄이 그냥 가고 있어요 

======================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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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옷 입은 산그림자 / 김용택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기울여 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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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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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 가는 길을 묻다 / 박종영

우수 절기 지나
회색빛 산에 오르면
번들번들한 산동백 푸른 가지마다
붉은 꽃 웃음이 벙글고,

​산골 바위틈마다 차가운 물 내리는 소리
푸른 가슴으로 돌아와 기쁨 넘치고

​겨우내 언 땅을 밀치고
솟아오른 복수초 그 힘찬 기운에
그대의 가슴으로 열리는 따스한 오솔길이
노란 산수유 웃음으로 버무려 지는데,

​오늘은 화사한 봄의 기척을
누구에게 물을까?

========================
저기 저 봄이란 놈 좀 봐 / 오정방

저기 저 봄이란 놈 좀 봐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 모습 좀 봐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돋아난 새싹들 고개 쳐드는 것 좀 봐 

날으는 새들의 날개가 저토록 가볍고 
여인네들의 옷 색깔 화사하게 바뀐 것 좀 봐 

다 죽은 듯한 벚꽃나무에 물이 오르더니 
분홍빛 꽃망울 저렇게 벙그는 것 좀 봐 

미풍이 이렇게 상큼하고 하늘은 맑은데 
봄 속을 거니는 내 마음 싱숭생숭한 것 좀 봐 

------------------------------------------
봄은 어디에서 먼저 오는지 / 하정심

햇살 가득한 날
놀이터에 가 보면
봄이 어디서 먼저 오는지
알게 되지.

봄꽃보다 더 환한
놀이터의 아이들

봄 기운 돌아 촉촉해진 눈망울
마알갛게 피어나는 분홍볼

움츠렸던 어깨 활짝 펴지며
발걸음도 통통 튀어 오르지.

놀이터 봄꽃들도
아이들 웃음소리 따라
꽃망울 톡톡
터뜨려 놓지.

-----------------------------------------
사람을 만나고 싶는 계절, 봄 / 이채

봄은 꽃이 피고
바람이 따스해서 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소박한 삶의 가치를 알고
한줌이라고 진실을 건네고
봄비처럼 촉촉한 미소를 짓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떠나가는 겨울속에
묻어야 하는 하얀 이야기를
잠시라도 그것이 그리워
봄빛에 여린 눈물이 비치는
사람의 가슴에서
초록의 풀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겨울을 떠나 보내고
또 오는 봄을 맞이하고
함께 떠나 보낸 것들을 채 잊기도 전에
바람의 노래에 실려오는 봄
 
산다는 것이 어쩌면
보내고 만나고
그리고 또 보내야 하는
그러나 결국 홀로 남겨지는
쓸쓸한 것이라는 사실에도
새로운 무엇을 만나고 싶어하는
굴레의 반복인지도 모릅니다
 
계절의 꽃이 아름답고 향긋한 것은
보내고 만나는 존재들 사이에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계절이 오는 것이 반가운 것은
떠나고 남겨진 것들 사이에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봄은 꽃이 피고
바람이 뜨스해서 인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자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___________ * 61




봄 / 오세영
봄 / 용혜원
봄날 / 김용호
봄날 / 박효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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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오순화
봄날 / 이남일
봄날 / 이동순
봄날 / 이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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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이희숙
봄밤 / 김용택
봄볕 / 오광수
입춘 / 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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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감기 / 이외수
봄날에 / 권도중
봄날에 / 오세영
봄 마중 / 전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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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 류근택
봄맞이 / 오광수
봄바람 / 김억
봄 봄 봄 / 이효
--------------------
봄의 힘 / 박태강
봄처녀 / 장진순
추운 봄 / 나호열
그리운 봄 / 정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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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꽃 / 김윤현
봄의 경전 / 안경애
봄의 노래 / 김병근
봄의 노래 / 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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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느낌 / 박가월
봄의 미감 / 김근이
봄의 소리 / 고은영
봄의 연가 / 박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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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유혹 / 신진식
봄의 정원 / 황인숙
봄의 진통 / 황인숙
봄이 오면 / 김기원
------------------------
어느 봄날 / 최원정
봄날은 간다 / 김행숙
봄 따라온 님 / 김종덕
봄 오는 소리 / 안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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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듣는다 / 윤무중
봄을 품은 산 / 김근이
봄이 오는 길 / 임숙현
새봄의 기도 / 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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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이야기 / 박얼서
더디게 오는 봄 / 박인걸
봄날의 그리움 / 박광호
봄날의 속삭임 / 김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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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창가에서 / 김인숙
봄이 오는 길목 / 박인걸
봄이 오는 소리 / 박인걸
봄이 그냥 지나요 /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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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봄옷 입은 산그림자 / 김용택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봄으로 가는 길을 묻다 / 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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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봄이란 놈 좀 봐 / 오정방
봄은 어디에서 먼저 오는지 / 하정심
사람을 만나고 싶는 계절, 봄 / 이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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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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