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 / 고운기
개구리가 운다
검은 구름 떼에 밀려 여름 해도
일찍 졌다
나는 어느 산골에 묻혀
담배에 불도 붙여 보고
해 지면 다니기 힘들어
발길을 빨리 거두던 어머니
패랭산 넘어
어두워 캄캄해지기 전
길 모퉁이엔 언제 나타나시나
마음 졸이던 생각도 나는 해 보고
긴 여름해가 지치도록 끝나도
엄마의 모습만 보이며 좋았는데
끝내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있더라
끝내 기다려야 할 것이
내게는 있더라
여름 해 떨어져 어둡고
구름 떼 하늘에 깔렸는데
개구리는 운다
장대비가 쏟아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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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대식
흐리고 해 나고 비가 오기를 반복한 장마가
어느 날엔 무서운 폭우를 쏟아댄다.
하늘엔 웬 물이 저렇게도 많은지
미처 대비하지 못한 물난리에 그 피해 심하다.
어떤 땐 일에 채여 감당을 못하다가
어떤 땐 또 일이 전혀 없어 실업자 신세
이래저래 삶의 고단함은 그칠 줄 모르고
생계의 막막함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삶이란 걱정뿐
순탄할 땐 또 앞일이 잘 안 될까 걱정이고
걱정으로 체념할 무렵엔
덤터기 같은 버거운 일이 터지고
어쩌면 내 인생 같은 장마
맑음과 흐림과 폭우의 인생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막막함
왠지 한숨은 그리 많이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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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명관
7월은
슬픈 하늘을 품고 산다
너를 사랑하고 부터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마음
사랑할수록 커져가는 목마름은
그렁그렁 눈물로 맺히고
눈물방울 떨어진 자리마다
낯선 인연 풀처럼 돋아도
너는 아직도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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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영제
무수한 점들이
선을 만들어
창문을 적시고
하루를 적신다
하루를 적셔 논
꽉 찬 선들이
강줄기 만들어
여름을 적신다
한 달의 긴 우기
촉촉 적신 논과 밭
풍년을 부르고
가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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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영천
내 어린 뼈가
꽝꽝하게 여물어가던 시절,
이유 모를 분노나 슬픔 같은 것들이
회리바람처럼 불어갔었나니
절망도 희망도
번지수를 찾아가지 못하고
내 안 좁은 골목길을
서성거리던,
문득
온 몸 시리게 장맛비가
내리곤 했었나니
터벅터벅 간난의 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풀썩, 주저앉는 골다공증의
내 한 평생이
시퍼렇게 질린 풋가시나의
입술처럼
파르르 떨며
젖은 숲으로 자지러지고 있구나
지운 듯 다시 짙어지는
그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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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주수
사과나무의 사과도 처마의 고드름도 아래로 자라고
산골짜기 폭포수도 우렁찬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진다
심지어 중력의 끝은 지상을 넘어 구름까지 닿아있다
그래서 구름그늘도 늘 지상에 사뿐히 내려와 있는 것이다
머나먼 구름까지 높이 닿아 있는 중력의 손끝에서
무수한 빗줄기가 물빛 화살처럼 쉼 없이 쏟아진다
만유인력 속으로 빗소리가 활기차게 부화하며 퍼져간다
모든 생명의 그림자와 인간의 발자국을 붙잡아주는
자전하는 지구가 빗물에 마음을 한껏 적시는 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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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향숙
국숫집 마당에 젖은 국수가락이
하얀 기저귀처럼 흔들린다
햇볕이 나면 보송보송 말려
시장 골목 구멍가게로 배달한다
국수 값 몇 푼으로 유지하는 가족의 생계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국수가락이 젖는 날에는
아버지의 가슴에도 장대비가 내렸다
한숨으로 허기를 달래고
마르지 않는 궁핍으로 앞치마를 동여맸다
장마가 지면 근심도 길어져
밀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국수를 뽑던 가장의 빈자리에
고단했던 시간들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국수가 길어지던 날 빗물에 풀려 버린 끈
주인 없는 앞치마가
빈 벽에 걸려 비바람에 날리고 있다
하늘에서 가늘고 긴 소면이 내리는 날
물의 가락을 뒷산이 후루룩 말아먹는다
장마 때마다 국수를 드시는 아버지
산소 앞에 식구들을 불러놓고
잔치국수를 대접한다
국수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햇살이
널린 국수 가락 사이를 비집고
숨바꼭질하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국물 위로 떠오르는 밤
눅눅한 국수가락이 기억 속에 출렁이고
퉁퉁 불은 빗소리가 뒤척이는 밤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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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박선경
비는 그렇게 서서
나를 흘려보냅니다
이것은 모두 비의 환상입니다
빗줄기에 매달린 창문들은 인사를 합니다
그는 남은 옷가지와 가방이 정리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죽음으로 잊혀지고
나는 내일 아침 세면대 앞에서
울고 있을 여자와
곧 냉장고 정리와 묵은 빨래를 마저 하지 못한 채
떠날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방안의 온기를 유지하고
세월에 일그러지는 가구의 아귀를 맞추며
비밀번호를 간직한 방의 일부가 되어가는 일
빛바랜 사진 속, 그들의 품에서 풍선을 놓치고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는 이제 없습니다
오래된 흠집처럼 비는 서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나는
지금 내리고 있는 창 밖
비의 환상입니다
============
+ 장마 / 박성규
두어 달 불볕더위 속
간신히 내린 소나기로는
입술 적시기도 부족한 날
감칠맛 나서 욕을 해댔더니
분을 삼키지 못한 구름이
몇 며칠 울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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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송문헌
요란한 빗소리에 선잠이 깼다
무작스레 퍼붓는 소낙비는 찌든
내 속내를 씨어내 주겠다는 듯
달군 쇠막대를 희번쩍 휘두르며
우르르 쾅쾅 세찬 매질을 해댔다
눈을 부라린 누군가 옆에 있을 듯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시간 그
속내로 뛰어들어 허접스레 녹슨
내 몰골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다
유배지 첩첩오지 저 외딴집 한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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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성영희
비 내리는 강가
청둥오리 한 마리 머리를 쳐 박고 연신 자맥질 중이다.
뒤집힌 강물 속에서 무엇을 솎아낸 것일까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꼬리를 삼키고
물갈퀴마다 꽃이 피는 지금은
산허리도 부푸는 장마철
물이, 물의 것들이 날아올라 풀숲에 든다.
물이 쏟아지는 철인데
날아가는 물이 대수롭냐고, 빗줄기에
울음의 곡을 붙인다.
저 장마의 바깥에는
염천(炎天)이 들어앉은 마음들이 또 몇이나
물속을 뒤지고 있을 것인가.
빗물로 와서 강물로 흘러가면 그뿐인
그러나 마음 한번 독하게 먹으면
세상도 발칵 뒤집고 마는
저 작은 빗방울들
슬픔이란 범람과 혼탁을 거쳐
가을 강물 속같이 투명에 이르는 일
쏟아지는 수 억 만개의 과녁을 다 받아내고
짧은 파장으로 범람하는 일
퉁퉁 부운 이름들만 물안개처럼 떠도는
비의 계절을
자맥질로 뒤지는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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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안정순
가문 햇살 아래
바지랑대 끝 널브러진 행주치마
눈물 흥건히 마를 날이 없고
쌀독 빈 종지
달그락달그락 천둥 치니
마른하늘에 쌘비구름 몰려와
응어리진 설움
억수같이 쏟아붓더라
서리서리 업을 엮어
초가지붕 에워 놓고
곰삭은 속 울음 봇물 되어
핏빛 강을 이루니
지붕 위 얼쯤 한 호박꽃
손바닥 내밀어
장대 같은 설움
얼기설기 감싸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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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이용임
창문마다
흰 손들이 어제의 얼굴을 발라놓는다
우리는 저렇게 동글게 앉아 있었지요
몽글몽글
얼굴이 녹는다
일곱 개의 구멍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저렇게 둥글게 앉아
술을 마셨지요
투명한 잔과 손목들의 무도회였지요
(그래서 뭐?)
노래가 사탕처럼 진득거린다
양 귀에서 날개를 펴고
활짝 날아가는 시간을
가는 뼈를 남기고 콧구멍이 사라지자
우리는 모두 하나의 표정이 된다
나는 당신을 그대를 그 골목의 농담(濃淡)을 기억하지 않아요
시간은 차가운 왼뺨만 보이고
스쳐 지나가고
일만 분의 일 프레임만큼 느린
내 눈 속 풍경은 곧 사라질 궤적이고
와글와글 우리는 가라앉았어요 즐겁게
뒤로 감춘 손으로 얼굴을 돌리며
창문은 맑은 뼈를 세우고
당당하게 서 있다 한 면으로
내가 있고 저편으로는
습기로 가득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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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이원문
쓸려 내려가고
무너져 내리고
휩쓸려 온 모래 흙에
논둑만 바뀌었을까
잘려나간 밭 자락
비 더 내릴까 걱정 된다
물 넘치는 앞 냇가
이런 물구경을 어서할까
뻘건 흙탕물 위
나무떼기 호박넝쿨
집안의 살림살이까지
소문에 사람도 떠 내려 갔다 한다
얼마를 더 퍼 부을까
잦아들지 않는 비
천둥 번개까지
하늘이 무섭다
그 가뭄에 비 내리기를
얼마를 기다렸나
바람까지 불어와
처마 끝 뒤집히고
지붕 한 곳 벗겨져
물받이 놓아야 하는 마루
우물도 물 뒤집혀
이웃 우물 물 얻어야 한다
물 구경 이제 그만
이 비 그쳐 날 거둬 들면
그 많은 일 어떻게 해야 하나
삼복에 무더위 땀으로 적실 몸
말복 지나면 씨앗 영글 것이고
계획에 어긋난 가을 추수의 서운함일까
논 둑에 앉아 둘러보니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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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전숙영
그냥, 그냥 좋기만 하더니
여러 날 눌러 앉아
미운털 콕 박혀버렸네
듣기 좋은 풍월도
짖으면 쉰 소리
허구한 날 젖어 있으니
미움이 마를 새가 없지.
가끔은 볕도 쬐어야
고움을 갉아먹는 해충도
바지직 내칠 수 있을 텐데
눅눅하니 자꾸 좀이 쓸었어.
지금 내리는 저 장맛비처럼
그리움도 지나치면 병이 들지.
이 비 그치면
햇살이 더 뜨거워지듯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게 웃는 거야.
이듬해 또 이듬해
비는 또 내리고 몸살은 앓겠지만
삶은 더 많이 빛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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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정진경
링거액이 몸 안에 집을 지어
공중누각들을 무너뜨린다
비밀스런 공사장에서 맞은 망치의 상흔
두꺼운 딱지로 아물었다 생각했는데
몸은 그것을 낙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병원 진단서에 기재된
‘충수염 진공된’
그 망치는 여전히 내 뒤통수를 때려
오장육부 내장 깊숙한 곳에 구멍을 파 놓았다
정처 없이 길 헤매던 보헤미안의 시간
설빙에서 추락하는 헛꿈에 시달린 것은
그 망치질이 원인이다
사나흘 쏟아져 들어오는 링거액이
메마른 나를 통통하게 살 오르게 한다
촉촉한 물풀이 자라자 내 몸은 자꾸
점프,
점프를 하고 싶어 한다
‘고통 없는 세상 저 너머로’
궁핍한 이들의 희망적 메시지가 발돋움한다
이것은 또한 핍박을 제공하는 근원처
세상은 아랫것들이 점프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점프하려 하면 야무지게 꾹꾹 눌러
망치질을 한다
금속성 메스로 몸을 가르고
링거액을 혈관에 들이붓는 며칠 동안
가뭄은 잠시 해소된다
세상에 파종하지 못한 말(言) 대신 몸이 점프, 점프를 한다
가열하던 태양이 잠시 나를 비켜간다
============
+ 장마 / 정진규
비 듣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진종일 귀가 열리고 있다
안이 꽤 깊다 틈서리마다 젖어들어서
불어난 집의 부피와 무게들이 내 마음의 용량위에
푸른곰팡이의 눈금을 하나씩 더 올려놓고 있다
슬픔이 살찐다
다친 다리가 쑤시기 시작한다
감당키 어려운 대목이 이런 날엔
어김없이 응답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새고 있다
집이 새고 있다
그게 모이다
새는 낮게 낮게 뒷산 허리를 날아가고 있다
비리게 속까지 젖어서 높게 뜨지 못한다
새는 어디를 다치셨는가 새도 새고 있다
둥지가 새고 있다
슬픔이 새로 살찐다
한참 비안개 자욱하다
새어서 새어서 너에게서도 새어서
나는 여기까지 왔구나 다친 몸은 정직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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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1 / 정태중
전선이 형성되었다
끔찍한 천둥에 압록강 허물어지고
으스스한 낙뢰에 낙동강은 침몰했다
빗발치는 폭우에 아수라장 된 새벽녘
한강철교는 버거운 물살에 두 동강 났다
비구름은 한반도에 이념의 깃발을 꽂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북상, 남하를 반복하며 소멸하였지만
할퀴어 폐허 된 산하의 슬픈 봄에는
할미꽃 허리를 펴지 못하고
낮이 두려운 달맞이꽃은 밤이 돼서야 피었다
다시 전선이 형성되었다
한강은 유착으로 탁하고
옹골차듯 물이 썩어 가고 있다
천둥 치고
마른번개 날아들어
이념의 깃발 마르기도 전
순간 번뜩임은 비수가 되고
상처로 다시 푸른 초목은
영영 일어나지 못할 용사의 전선,
장대비에 저 몹쓸것 쓸리면 좋으련만
밀려드는 물살이 그날 같아서
철교 아래 비둘기는 흠씬 몸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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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주응규
천근만근 무거워진
검은 근심 덩어리 풀어헤치고
메말라 쩍 벌어진
마른 가슴에 눈물 쏟아부으며
몸뚱어리 빗물에 잠겨 놓는다
오랜 기다림의 한풀이런가
뻥 뚫린 하늘 가슴은
세상을 삼키고 토해낸 자리엔
천지(天地)가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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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최두석
비 내린다. 축축한 헛간에서 염소가 새끼를 낳는다.
빗방울 튀는 소리 거칠게 염소의 콧김 속에 스미고 마침내 모래물이 쏟아져 낳은 새끼 세 마리.
염소의 젖통이 퉁퉁해진다.
새끼들이 젖꼭지를 빤다.
그렇지만 젖은 나오지 않는다.
젖통은 부어 오르고 새끼들은 굶어 죽는다.
구멍도 없는 젖꼭지라니! 비는 내리고 수술을 하기엔 배꼽이 배보다 크다
============
+ 장마 / 최명조
누구의 한이 해마다 그렇게 맺혀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우는지
어머니는 늘 비가 오면
한 맺힌 넋 달래듯 부침개를 부쳐 주셨지
밤새 내리는 빗줄기
화장실 가던 그 길 그 대나무 사이로
하얀 소복 입은 귀신이 볼까
두려웠던 장마
복실이도 불쌍고
야옹이도 불쌍고
늙은 할배마냥 어슬렁어슬렁
두꺼비가 마실 나오던 장마
그래도 비가 오면
그 지겹던 부침개가 항상 떠오럽니다
개울 건너 이쁜 미희집에도 못 가게
돌다리마저 삼켜버리던 장마
질퍽이던 앞마당
기분마져 서럽게 하던 장마
대나무밭
날보던 그 하얀 소복여인은
훨훨 털고 날아갔을까
엄마 가슴에 손 넣고
하루 종일 울고픈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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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최재환
두두둑 두두둑 두두둑
답답한 열도를 지나
찾아온 습한 손님이
옷도 신발도 축축해서 지쳐 울기도
토닥이며 반짝 구름사이로
일곱 빛깔 고운님
해맑음에 웃음 띠우며 스쳐 지난다
깔끔하게 빗질 단장한 풀떼기는
활기찬 모습을 찾기도 금세 금세
숨가품도 이내
빳빳히 긴장이 넘치네
기다림에
하얀 옷 나막신 신고
나풀나풀 오는이 있어
손잡고 그리운 햇볕 마중 나아가
마음껏 팔 벌려
눈부시게 안아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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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홍정숙
갑작스러운 젊은 죽음을 조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자작나뭇잎 한 장이 비에 젖고 있었다
장마철에 단풍이라니
주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에 들었다
녹색 위로 노랑이 번진 그 잎은
염색한 머리를 빗어 올린
영정 속 청년의 심장을 닮았다
저토록 싱그러운 잎을
느닷없이 단풍 들여놓고
오래, 우는 날이 있다
--------------------
+ 장마 / 황정산
떠났던 것들 젖은 채 돌아온다
가벼운 것들 없어진 무게를 지고
한 발을 들고 서 있다
모여 있는 것들 다시 흘러간다
==============
+ 끝 장마 / 이원문
그만 내려도 되렴만
많은 비에 더 내리니
고향 들녘 걱정 되고
태풍에 더 내릴 비
얼마만큼 더 내릴까
세찬 바람까지 불어와
뒤집어놓을 논과 밭
그 시절 옛 바람 처럼
또다시 덮칠까
그 바람 얼마나 무서웠나
날아간 생철 지붕
눕혀지고 쓰러진 곡식
그 곡식은 그만두더라도
뒤집힌 그 초가에
비 들이쳐 젖은 멍석
얼마라도 건져 볼까 일으켜 세울
그 논의 쓰러진 벼의 모습
땔나무조차 젖어들어
문간 바람에 말리지 않았나
곡식 영글리는 논과 밭
아까운 것을 넘어
안탑까웠고
쓰러진 벼에 무너진 풍년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던 날
허무한 꿈의 들녘
그런 끝 장마였었지
------------------------
+ 긴 장마 / 오보영
다 알았으니
이젠 제발 그만해다오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질 않
아
절규하는 처절한 외침이란 걸
아무리 퍼부어도
스미질 않
아
쏟아내는 애절한 눈물이란 걸
알았으니 이제 그만
멈추어다오
옆에 있다 멋모르고
봉변을 당한
순진한 이웃들 좀 헤아려다오
함께 걷다 순식간에
할큄을 당한
상처 난 마음들 좀 다독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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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끝 / 정대구
빨래통속에서 콜콜 냄새 피우는 짜증들
탁탁 털어내어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아침이다
이불속 같은 긴 장마잠에서 깨어나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는 와룡산 와룡이 낯설다는 듯
반갑다는 듯 멍멍이가 내달아 멍 멍 멍
이웃집 아낙네가 이웃집 아낙네 불러내어
벌써 들에 나갈 채비로 들메를 하고
며칠만인가 둥지에서 빠져나온 까치가
깍깍, 곧 날아오를 듯 꽁지를 까딱까딱
다 잘 될 거다
새파란 들판을 건너온 아이들이
오랫동안 집구석에 처박힌 나를 끌어내어
하늘에다 둥둥 띄우고 있다.
헹가래 쳐들어 올리고 있다.
나는 무릎 싸안고 허리 굽으려
둥글게 둥글둥글 ㄱ ㄴ ㄷ ㄹ 서너 바퀴 공중제비 돌고 굴러 떨어진다
쿵, 엉덩방아를 찧어도 나는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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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記 / 장혜원
저기압이 불룩해진 산허리를 돈다
아랫배를 쓸며 구름이 지나가고 퉁퉁 불은 가슴께에는 운무가 자욱하다
우울한 질감,
검은 비닐봉지에 열 개들이 생리통이 흔들린다
적난운(積亂雲)이 고여 있는 웅덩이들을
빗줄기가 터트리고 있다
며칠 욱신거리던 하늘이 낮게 내려오고 터질 듯 잡혀있는 맑은 물집들마다
배부른 하늘이 갇혀 있다
흰색의 꽃들이 오래전 나무에 걸린 구름의 罰같다
붉은색은 다 아래로 진다
높고 푸른 호수의 해발이 넘치고 있다 아니, 푸른 소리들이 계곡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구근들이 숨어서 여물어가고
고구마밭 사이로 발굽의 행방이 새순처럼 산으로 뻗어 있다
이번 月은 유난히 느릿느릿 지나간다
손톱을 보면 모두 열 개의 달이 있고
몸엔 열두 개의 쪽 달이 있다
사르륵, 아랫배에 선염법(渲染法)으로 통증이 번지고 있다
=============
+ 장맛비 / 김기원
장마라서
같은 하늘 아래서도
저쪽 하늘은 비가 온다지만
이쪽 나 사는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낀 그런 비가 장마 비인가
곳곳에 간간히 뿌려지는 비
이런 날에
막걸리와 파전 향기에
가야금 소릭 비 소리인가
그토록 먼 옛날부터
농민 가슴을 애태웠나
나 오늘 여기까지 왔네
너를 만나려고 산을 돌고
여러 마을 지나
그토록 먼 길을 목마른 대지에
너를 만나 쉬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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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 / 김덕성
하염없이 쏟아진다
언제는 그렇게 인색하더니
이젠 나를 닮았는가
지나치게 성심을 쓰는고
누구의 눈물이 그리 많은 건가
세상은 다 그런 건데
참으며 살아가야지
안 그런가
이제 나도 자유롭게 해 주렴
갇혀있는 몸을
외로움이 스며드는 밤
깊어 가는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장맛비는 마냥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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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 / 이고은
어김없이 찾아온 너를 사뿐히 반긴다
이른 새벽에 서둘러 왔나 보다
가뿐하게 내리는 네 모습에 고요히 머문다
숱한 사연들을 내게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너를 등지고
달걀부침 작은 숟가락으로 동강동강 떠서 싹 비우고
녹차 한 모금을 아주 잠깐
입안에 오물오물 머무르게 하다가
상념과 함께 훌쩍 목젖으로 넘긴다
너는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눅눅한 내 마음 푹 적시고 가려나 보다
뽀송뽀송한 해가 기웃기웃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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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 / 임재화
어젯밤부터
장마가 시작되어서
밤새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며
가끔 창문을 두드려
밤잠을 설쳤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온종일 쉼 없이 내리다
저녁 무렵에
잠깐 비 그치니
풀숲에 피해있던
작은 새들이
저녁 식사하려고
포로로 날갯짓하며
바쁜 먹이 사냥에
정신이 하나 없다.
아직도 먼 산 능선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하여
또다시 장맛비를
힘차게 쏟아 볼 태세이다.
아직은 이른 장마인데
벌써 농심은 걱정이 앞서고
주름진 촌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이번 장마에
큰 피해 없으면 좋으련만
장맛비의 피해를 걱정하며
가슴에 근심 가득한
농부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
+ 장맛비 / 장광규
날마다 비가 내려도
짜증 부리지 마라
아침마다 우산을 챙겨야 한다고
귀찮아하지 마라
뜨거운 나라 베트남에는
일 년 중 반년은 우기로 비가 내린다
오랫동안 전쟁을 할 때에도
논밭에는 온갖 곡식이 자라고
들판에는 과일이 풍성하게 열렸다
아프리카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며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비는 번영과 축복의 근원
새벽에 찾아오더라도
바짓가랑이가 젖더라도
오는 비를 반갑게 맞으며
물을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
+ 장마철 / 도현영
출장 갔던 장마철이 돌아오는 칠월
묵직한 먹구름 덩어리가
천둥 번개에 펑펑 울어버린다
그것뿐이겠냐마는
두둥실 설치던 얄미운 솜털 구름
덩달아 콧물까지 질질거리고
세상이 잠길 만큼 서럽게도 울어대며
땅을 치고 통곡하는 먹구름
실컷 울란 듯이 맞장구치는 천둥아!
가뜩이나
코로나에 생채기 난 가슴들인데
철딱서니 없는 천둥 번개가
콕콕 찌릿찌릿 찔러댄다
차라리 저 몹쓸 세균을
영원히 사라지게 했으면 좋으련만
요 며칠 새 빗소리만 우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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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 / 손병흥
여름철 여러 날 동안 비가 계속해서 내리거나
비가 오락가락하며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는 날씨
때로는 시간대에 따라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하고
한해의 강수량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지적인 현상
한반도 북쪽과 남쪽에 있는 고기압의 이동으로 인해
비가 며칠이나 몇 주 동안이나 이어지기도 하는 장맛비
형성되는 장마전선이 이동할 때 생겨난 여름장마 영향
남쪽 열대성기단 북쪽 한대성기단 사이에 형성된 정체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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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장마 / 류인서
꿈에 우산을 쓰고 걸었다
맑은 낮이었다
우산살 끝에
더위가 던지고 간 날짜가 매달려 대롱거렸다
축객령이 머무는 땅인가
소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길 가운데 덩그러니 우체통이 있는
이상하나 낯익은 곳,
부치지 않은 여행지의 그림엽서와
마음에 붙이는 파스라는 말이 스쳐갔다
너를 버리러 너라는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소나기가 있었고
물을 찾아 동굴 속으로 뿌리를 내미는 나무처럼
나는 목이 말랐다
꿈밖에 쪼그려 앉은 배고픈 소년들이
길 끝에 있었다 그들은
잔불을 모아 커다란 거미를 굽고 있었다
거미의 익은 관절부에서
희미하게 휘파람 소리가 빠져나왔다
나는 문득
오래 비워둔 나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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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장마 / 홍수희
가을이 익기까지
비는 내리리라
푸른 잎 붉게 물들기까지
저 비는 내리리라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던 바로 그,
탐스러운 과육이 익기까지
끝내 내려야만 하리라
버릴 것은 버리고
잊을 것은 잊기까지
사람의 마음에도
비는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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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들장마 / 정상만
잿빛 구름 가득 머금은
마음속의 하늘 언저리
세상의 빛깔 스며진
물방울이 아름답게 수를 놓고
물 내음 풀 내음과 어울려
은은한 미소 지으며 흩어집니다
틈새 빛살이 간간이 고개를 내밀고
부채 살빛의 영롱함이
두 눈 가득 담기며
빗물 따라 여여하게 흘러가라 합니다
건들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듯
그렇게 물결 따라 흘러가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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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장마 / 강신애
한 달 알을 먹지 못해
목이 잠긴다
사료와 물만으로 우화를 잊은 철창
폐기된 5000만 개의 알들이
조롱조롱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한 나라의 인구가 물구나무서 있다
닭들이 죽어버린 도시
오리, 메추라기들이 퍼드덕거린다
파묻힌 미물들의 맥박이 창을 두드리는
마른장마 후의 장마
아침에
계란을 깨트리면
당신이 내게 보내준 아른아른한 햇덩이
하양 노랑 찰랑이는 윤곽에 구원의 침이 돌았다
알 하나에
악 하나가 소멸된 줄 알았는데
냉장고에 손에 상처에
진드기들이 우글거린다
나는 얼룩진 헝겊과 치자 잎을 태워버린다
살충제 같은 습기가
지리하게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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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장마 / 문성혜
장마는 장마지요
내 눈 속에서만 비가 억수로 퍼붓는 장마지요
하나도 젖지 않은 구름이고
하나도 젖지 않은 담장이고 백일홍이고
개털이고 한낮이고 내 사랑이지요
당신에게로 흘러가지 못한 내 마음은 흠뻑 젖었지요
먹구름이 둘러 싸인 마음이지요
누르면 뜯어지는 마음이지요
장마는 장마지요
옷장을 구길 만큼 단번에 휩쓸려오는 습기지요 예언이지요
오래 대고 있으면 종이에 구멍이 뚫리는
무서운 혓바닥이지요
닥종이를 덧댄 문 안에서
오늘도 당신은 문고리를 붙잡고 울어요
오늘도 나는 가슴속에 천 톤의 배를 밀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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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소묘 / 최영규
현관 한쪽
배를 내밀며 쓰러진
골판지 박스들,
눅눅한 걸음으로 몰려오는
묵은 습기들의 숨
날쌔게 처마 밑으로 달아난 아이들,
빗발은 그쪽이 더 맹렬하다
귀를 감싸 쥔 빗소리
낮게 가로 걸린 붉은 빨랫줄
팔다리를 늘어뜨린 빨래들이
창문 너머만 멀뚱 거리는 선풍기와
마주 보는 그 사이
잘 빗긴 머릿결 같은
빗물자국을 따라
마당을 빠져나가는 여름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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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부근 / 김화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은행나무 몇 그루 새파란 귀때기 절레절레 흔들며 싹싹, 싸리비로 하늘 쓰는 소리를 냈다 그런 밤에 내려온 별들의 발걸음은 취한 듯 휘청거렸다 극성스러운 녹음의 골목마다 눈물 글썽이는 바람, 검은 봉투 매달린 넝쿨장미도 함께 울었다 유리창 신음 소리 멀리 퍼지면 사람들 젖은 어깨 더욱 낮게 처졌다 베란다까지 길게 몰려온 어둠의 그림자 눅눅히 젖어들고 빈집 겁탈하듯 점령한 기억들 시간의 사타구니 흥건하게 적셨다 거리엔 앵두 같은 알전구 하나 둘 익어 가고 쥐똥나무 꽃 비릿한 냄새 몽환처럼 떠다녔다 텅 빈 마음속 스멀스멀 밀려드는 상념 온몸에 들러붙은 물먹은 휴지처럼 끝내 밀어낼 수 없었다 장마가 북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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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의 딸 / 손유미
장마는 당신
참 예쁜 당신의 이름
넌
내가 낳았을 리 없는 장마의 딸,
너만 오면 예보에도 없던 장마가 시작이 돼.
이불이 마르질 않잖니.
축축한 불행 위에서 자는 건 이제 지겹구나.
흥건한 웅덩이를 보고 질색하는 나의 마미,
이 배꼽이 당신과 닮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나.
장마는 내 의도가 아니에요.
내 말은 듣지도 않는 나의 마미,
변(辨)을 하자면 나는 건조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태생이 질척 질척이지만 배꼽은 잊고
쩍쩍 갈라진 틈으로 살고 싶었어요.
발밑 사탕처럼
반짝,
밟히다
깨지고
부서져
알록달록한 설탕가루로 날아가는
그런 건조함을 매일 상상했습니다.
(오늘은 얼굴이 내일은 이름이
나의 마미, 마침내 당신은 처녀로 돌아가는 거예요.)
장맛비가 요란한 오늘, 우리
주니어의 역사를 새로 쓸까요?
이십 년 전 번개가 내 배로 옮겨 붙던
그날을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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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의 방 / 김재근
여긴 고요해 널 볼 수 없다
메아리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기에
당신의 방은 침묵을 기다린다
시간의 먼 끝에 두고 온 목소리
하나의 빗소리가 무거워지기 위해
빗소리는 얼마나 오랜 침묵을 배웅하는지
몸 안에서 몸 바깥을 들여다보는
고요를 거슬러 오르는 눈동자
아직 마주친 적 없어
침묵은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말없이 서로의 몸을 찾는 일
말없이 서로의 목을 매는 일
빙하에 스미는 물소리처럼
여린 식물의 초록 잠 속처럼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기에
당신의 몸은 빗소리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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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지면 / 윤춘순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곤충들이 더 빨리 감지한다
회색빛 높은 빌딩 창가
방충망에 붙여
사흘 밤낮 미동도 않았다
무섭게 번개 치고
폭우를 맞으면서도…
마지막 날 아침은
말갛게 씻겨진 하늘이었지만
칠 년의 어둠에 갇혔다
허물을 벗고 나왔으니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만도 하지
한철 여름을
원 없이 노래하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죽도록 사랑해야지
그래야만 또다시
암흑 속에서 종족을 번식시켜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후손에게 대물림하겠기에...
그것이, 우거진 나무숲에서
낭창낭창 숨 가다 담는 소리였어
그래. 원 없이 사랑하는 거야
뜨거운 이 여름을
내일모레부 턴 또
장마가 온다는데
그땐, 들풀 누운 곳에
바짝 엎드려 있어야지
지축을 흔들며
땅도 울고 하늘도 우는
장마에는....
------------------------------
+ 장맛비 사랑 / 오보영
소문대로
행여
앞길 가로막는 못된 기운 때문에
사랑하는 당신 못 오시면 어쩌나
거친 방해 헤쳐 나오느라 지쳐
너무 늦게 당도하시면 어쩌나
애타하면서
그리움에
바싹 타들어가는 입술 제대로 침도 못 축이고
메말라 휘청거리는 몸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발 동동 구르며
그저
맘만 졸이고 있었는데..
때에 맞춰 당신
변함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네요
나를 위해서
손꼽아 기다리는 모두를 위해서
촉촉한 사랑
가득
가슴에 품어 안고 오시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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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주의보 / 윤석주
ㅡ山中日記 20
이끼만 속절없이 푸른
빈집 마당에 숙우(宿雨) 하염없다
땡볕에 뼈골 삭은 슬레이트지붕
그 야원 볼을 타고
탄식같이 흐르는 빗물.
동방사니 질경이 강아지풀
하 많은 잡초 속 슬픔 하얗게 베어 문
개망초 젖고 젖으며 울고 있다
생(生)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그것도 모르면서 민달팽이 한 마리
정글 같은 마당 느릿느릿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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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지는 날 / 박정미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개울가 징검다리
빗물에 잠길 듯
출렁이면
작은 송사리 떼
거세진 물살 피해
자갈돌에 몸을 숨기고
들녘 옥수수
기다란 수염 잡고
부슬부슬 하모니카 불면
활짝 웃는 나팔꽃
키 작은 채송화
너울너울 춤췄지
창밖에는 그때처럼
비가 내리고
추억하나 추적추적
빗속으로 걸어오네
==================
+ 장마철 사랑 / 정재영
온종일 검은 구름으로 막더니
하늘이 그럴 줄 알았다
쏟아지는 폭우에 실린
머리 푼 광기
나뭇가지 꺾어내려는 듯
덩달아 몸부림치는 바람의 비정
언제 그랬냐는 듯 간혹
배시시 햇빛 얼굴 보여주어도
덩달아 끈적거리는 속마음은
여전히 폭염의 중탕
잠시 식혀 다독거려 볼까
샤워 꼭지 돌리면
작은 폭우로 쏟아지는 물줄기
얼굴을 온통 막아
숨 쉬지 못하기는
매양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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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장마 / 권윤오
빗물에 젖고 싶다 빗속을 달리고 싶다
빗물을 한없이 마시고 싶다
갈증 난 농민들은
애타게 하늘만 쳐다본다
해마다
찾아오는 6월의 장마 기다린 지 오래다
산천초목과 농심이 타고 있다
아 아 장마철인데
올해는 왜 비는 오지 않노
하늘이 우리를 죽일라 카나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심이 비틀거리며 논 바다에 뒹굴고 있다
곧 비는 오기는 오겠지 장마철인데
푸념 섞인 기다림 속에
하늘이 어두워지며
뇌성벽락이 치고 기다리던
폭우가 쏟아지던 날
흠뻑 젖은 바람이 대지를 더욱 눈부시게 한다
장마는 시작되고
소갈은 풀리고 넘실대는 화금들판이
눈앞을 스쳐간다
희망을 몰고 온 장마
화려한 장마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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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의 기세 / 정종명
언제부터인가 가슴을 누르는
체기를 느낀다
이맘때면 홍역을 치르는 연례행사
자연의 변화무상함에 대처하기란
쉽고도 어렵다
자연 앞에 하나를 메우면 다른
하나가 허점을 보이는 인간의
한계에 완벽이란 미지수다
장마가 그간의 서러움을 빗대
쏟아내는 눈물이 동이로 퍼다
붙는 듯 부모 잃은 설움 같고
식물들도 고개 숙인 체 겸허히
받아들이고 섰다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집채 같은
물 뭉치가 개울을 굴러가는
아우성에 간담이 서늘하다
시작부터 각을 세우는 시위 앞에
별 탈 없기를 바짝 몸을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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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 어느 날 / 정찬경
소낙비에 짓눌린
가녀린 상추잎
흐느적흐느적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밤새도록 숨이 차게
울어대는 맹꽁이
쉰 목소리가 애달프구나
호박넝쿨 기운차게
울타리 기어 넘어가고
나팔꽃 힘들게 따라가다
밝은 햇빛을 그리워한다
===================
+ 장마철의 기원 / 정찬열
넘쳐나면
난리가 나고
부족하면
기원하는 여름날의
무덥고 지긋한 장마철
긴 사마귀 같은
찰거머리
행여나
물난리 속에 기원은
땀만
뻘뻘 흘리면서
넘쳐나면
부족함만 못하는 것은
이래저래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에
장마철은 힘들고 버거워
끝나기만을 기원하고 고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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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의 장맛비 / 김영환
아침은 아직도 먼데 내리는 장맛비
소리가 선잠을 깨우는 새벽입니다
들이치는 비에 화들짝 놀라 열린
창문을 닫습니다
벌써 창틈을 빠져나간 불빛은
아파트 광장 젖은 바닥에서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빈방에 불을 켜면 밤비처럼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른 잎을 적시는 이슬처럼
반가운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날마다 상처받고 살면서
날마다 세상을 치유해 주는 사람
갈대보다 약해도 바람보다 강한 사람
가냘프고 슬퍼도 이슬보다 투명하고
꽃보다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그대 고운 마음이 향기가 되어
내리는 비를 타고 음악처럼
들려오는 밤입니다
아!
이 밤의 굵은 빗줄기가
그대 가는 길에 축복처럼 내리는
아름다운 장맛비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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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시작되면 / 강보철
바지런한 개미들
제 몸보다 큰 등짐 지고
장맛장 긴 줄 만들면
코끝 간질이는 축축한 기운
능소화, 임 소식 그리워
돌담 너머로 붉은 목 내밉니다.
하늘 머문 푸른빛
깨알 같은 산수국꽃
긴 봄 가뭄 마른 목축이고
소가지 부리는 비바람에도
묵묵히 몸 적시며
흔들리는 땅나리
텃밭, 고추 호박 숭덩 썰어
밀가루 반죽에 슬쩍 소금으로 간해
궁금한 입 달래던 시절
잿빛 하늘 품은 창
사선 긋는 장맛비로
그 시절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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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끝난 후에 / 이한명
길고 긴
칠월의 장마가 끝나면
묵혀 두었던
곰팡내 나는 그리움들이
까슬까슬한 기억 더듬어
세상을 나선다
올해의 여름과 지난해 가을
그 경계선에서 두발을 묶어두고
밤마다 일어서던 내 꿈속으로
와서 눕던
강기슭
뻐꾸기 울음 몰려다니던
가난한 골목길엔
길고 긴 여름이 지나도록 푸들푸들한
갈대의 서걱임 소리뿐
예전에 송사리 떼 들고 나던 추억이
그리워
물가로 나 앉았는가
그리움은 낯설기만 하다
펼쳐둔 계절 언저리너머
장맛비 길어 올리던 물소리
이제 들리지 않고
밤마다 깊이깊이 갈아 앉는 마을들만
잠을 설친다
________ *56
장마 / 고운기
장마 / 김대식
장마 / 김명관
장마 / 김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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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김영천
장마 / 김주수
장마 / 김향숙
장마 / 박선경
------------------
장마 / 박성규
장마 / 송문헌
장마 / 성영희
장마 / 안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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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이용임
장마 / 이원문
장마 / 전숙영
장마 / 정진경
------------------
장마 / 정진규
장마 1 / 정태중
장마 / 주응규
장마 / 최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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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최명조
장마 / 최재환
장마 / 홍정숙
장마 / 황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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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장마 / 이원문
긴 장마 / 오보영
장마 끝 / 정대구
장마 記 / 장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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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 김기원
장맛비 / 김덕성
장맛비 / 이고은
장맛비 / 임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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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 장광규
장마철 / 도현영
장마철 / 손병흥
2차 장마 / 류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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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 / 홍수희
건들장마 / 정상만
늦은 장마 / 강신애
마른장마 / 문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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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소묘 / 최영규
장마 부근 / 김화순
장마의 딸 / 손유미
장마의 방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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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면 / 윤춘순
장맛비 사랑 / 오보영
장마주의보 / 윤석주
장마 지는 날 / 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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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사랑 / 정재영
화려한 장마 / 권윤오
장맛비의 기세 / 정종명
장마철 어느 날 / 정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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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의 기원 / 정찬열
축복의 장맛비 / 김영환
장마가 시작되면 / 강보철
장마가 끝난 후에 / 이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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