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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바 ~

박두진 시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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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아득히 내 첩첩한 산길 왔더니라. 인기척 끊이
고 새도 짐승도 있지 않은 한낮 그 화 안 한 골 길을 다
만 아득히 나는 먼 생각에 잠기여 왔더이라

백엽 앙상한 사이를 바람에 백엽 같이 불리며 물
소리에 흰 돌 되어 씻기 우며 나는 총총히 외롬도
잊고 왔더니라


살다가 오래여 삭은 장목들 흰 팔 벌리고 서 있고 풍
운에 깎이어 날 선 봉우리 훌훌훌 창천에 흰 구름 날
리며 섰더니라

쏴아 - 한종일 내 - 쉬지 않고 부는 물소리 안은 바람
소리... 구월 고운 낙엽은 날리여 푸른 담 위에
흐르르르 낙화 같이 지더니라.


어젯밤 잠자던 동해안 어촌 그 검푸른 밤하늘에 나
는 장엄히 뿌리어진 허다한 바다의별드르이 보았느니.

이제 나의 이 오늘 밤 산장에도 얼어붙는 바람 속
우러르는 나의 하늘에 별들은 쓸리며 다시 꽃과 같이
난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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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밭에 누워

바람에 쓸려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
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
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
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
그 깜빡이는 물기 어림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
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
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 적의 옛날
소년 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
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
외로움 일지 서러움 일지 분간 없는 시름
죽음 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
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
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 지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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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바라 보는 언덕의 풀밭

벚꽃이 조금씩 제절로 흩날리는
바다가 바라 보는 언덕
풀 밭에 잠자는 꽃에 물든 바람 이어.
아직은 땅 속에 잠자는 폭풍 이어.
그, 비둘기는 깃 죽지, 작은 羊은 목 줄기에서
지금은 죽음,
소년과 아낙네와 젊은이의 피 뿌림의
꽃잎보다 더 고운 따스한 피의 소리.
그 위에 무성하는
풀뿌리 밑의 울음소리. 가는 넋의 소리.
간간한 사투리 소리.
그 풀 언덕 바다가 바라 보는
조금씩 흩날리는 꽃이 흩는 풀밭 속에
지금은 죽음,
손으로 눈을 가린
봄. 햇살.
날아올라보고 싶은 비둘기여.
뛰엄뛰고 싶은 羊들 이어.
살고 싶은 소년 이어.
울어보고 싶은 아낙네여.
말해 보고 싶은 젊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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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은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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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물이 글 성대면,
너는 물에 씻긴 흰 달.
달처럼 화안 하게
내 앞에 떠서 오고,

마주 오며 웃음 지면,
너는 아침 뜰 모란꽃,
모란처럼 활짝 펴
내게로 다가오고,

바닷가에 나가면,
너는 싸포오
푸를 듯이 맑은 눈 퍼져 내린 머리털
알 빛같이 흰 몸이 나를 부르고,
달아나며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푸른 숲을 걸으면,
너는 하얀 깃 비둘기.
구구구 내 가슴에 파고들어 안긴다.
아가처럼 볼을 묻고 구구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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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무로 자라

바다로 돌담을 넘어
장미가 절망한다
이대로 밤이 열리면
떠내려가야 할 끝
그 먼 마지막 언덕에 닿으면
꽃 등을 하나 켜마.

밤 별이 총총히 내려
쉬다 날아간
풀 향기 짙게 서린
바닷가 언덕
금빛 그 아침의 노래에
하늘로 귀 쭝기는
자유의 전설이 주렁 져 열린 나무 아래
앉아 쉬거라.

사랑이 죽음을
죽음이 사랑을 잠재우는
얼굴은 꿈, 심장은 노래
영혼은 기도록 가득 찬
또 하나 바벨탑을 우리는 쌓자.

파도가 절벽을 향해
깃발로 손짓하고
사랑이 나무로 자라
별마다 은빛 노래를 달 때
그 커다란 나무에 올라
비로소 장미로 지붕 덮는
다시는 우리 무너지지 않을
눈부신 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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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람에

칼날 선 서릿발 짙푸른 새벽,
상기도 휘감긴 어둠은 있어,

하늘을 보며, 별들을 보며,
내여 젓는 내여젓는 백화(白樺)의 손길.

저 마다 몸에 지닌 아픈 상처에,
헐떡이는 헐덕이는 산길은 멀어

봉우리엘 올라서면 바다가 보이리라.
찬란히 트이는 아침 이사 오리라.

가시밭 돌바닥 찔리는 길에,
골마다 울어요는 굶주린 짐승

서로 잡은 따사한 손이 갈려도,
벗이여! 우린 서로 부르며 가자.

서로 갈려올라 가도 봉우린 하나.
피 흘린 자욱마단 꽃이 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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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너는 오너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 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자두 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설운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의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 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뽀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두둥실
붕새 춤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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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철쭉 꽃이 필 때면,
철죽 꽃이 화안 하게 피어날 때면,
더욱 못 견디게
아버지가 생각난다.

칠순이 넘으셔도 老松처럼 정정하여,
철쭉꽃이 피는 철에 철죽 꽃을 보시려,
아들을 앞세우고
冠岳山,
서슬진 돌 바위를 올라가셔서,
철쭉 나물 캐어다가
뜰 앞에 심으시고
철죽 꽃이 피는 것을 즐기셨기에,
철죽 나물 캐어 드신
흰 수염 아버지가
어제같이 산탈길을 걸어 내려오시기에,

철쭉 꽃이 피는 때면,
철죽 꽃과 아버지가
한꺼번에 어린다.

물에 젖은 둥근달
달이 솟아오르면,
흰옷을 입으셨던
아버지가 그립다.
달 있는 川邊길을
늦게 돌아오노라면
두진이냐?
저만치서 커다랗게 불러 주시던
하얗게 입으셨던 어릴 때의 아버지

四月은 가신 달,
아아, 철쭉 꽃도 흰 달도
솟아 있는데,
손수 캐다 심어 놓신
철죽 꽃은 피는데,

어디 가셨나
큰기침을 하시며,
흰옷을 입으시고
어디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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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정)  

그때 처음 열리던 하늘의 응결된
푸른 정기 처음 숲의 초록 바람
처음 바다 처음 강의 파도 소리 여울 소리
네게서 들린다.

그때 처음 태양의 금빛 촉감
처음 타오르던 지열
처음 만발한 꽃들의 향기,
처음 울음 울던 맹수들의 포효
처음 지저귀던 새소리 네게서 들린다.

그때 처음 헤엄치던 물고기의 비늘무늬
처음 걸리던 하늘의 무지개
처음 밤의 별빛 달빛, 그때
처음 사람들의 입맞춤의 첫대임
첫 번째 황홀의 울음 울던 부끄러움
처음 타오르던 노을빛 네게서 어린다.

그때 처음 사람들의 첫 낱말
처음의 오해 처음의 노여움
처음 사람의 첫 증오 피 흘림
처음 만나는 죽음의 두려움과 서러움
네게서 보인다.

너는 지금 나의 창가 오월
바람이 뜰의 그 신록의 잎새 사이 먼
천산 산맥의 청청한 햇살에 젖어
불어와 서성대는 책상에
그러나 의젓이 그러나 잠잠하게 볕살 속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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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내게로 오너라.
어서 너는 내게로 오너라.
불이 났다.
그리운 집들이 타고,
푸른 동산, 난만한 꽃밭이 타고,
이웃들은, 이웃들은, 다 쫓기어 울며 울며 흩어졌다.
아무도 없다.
이리들이 으르댄다.
양 떼가 무찔린다.
이리들이 으르대며, 이리가 이리로 더불어 싸운다.
살점들을 물어 뗀다.
피가 흐른다.
서로 죽이며 자꾸 서로 죽는다.


-------------------------------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빛이 싫여 달빛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빛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뉘 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위 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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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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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 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 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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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

소나무와 갈나무와
사시나무와 함께 나는 산다

억새와 칡덤불과
가시 사이에 서서

먼 떠나가는
구름을 손짓하며

뜻 없는 휘휘로운
바람에 불리며

우로와  상설 에도

그대로 헐벗고

창궁과 일월과 다만
먼 그 성신들을 우러르며
나는 자랐다

봄 가고
가을 가는 도안
뻐꾹새며 꾀꼬리며
두견이도 와서 울고
다람쥐며 산토끼며
사슴도 와 놀고 하나

아침에 뛰놀던 어린 사슴이
저녁에 이리에게 무찔림도 보곤 한다

때로 ---
초부의 날 선 낫이
내 아끼는 가지를
찍어가고

푸른 도끼날이
내 옆에 나무에 와 번뜩인다

나가 이 땅에 뿌리르 박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날까지는

내 스스로 더욱
빛내야 할 나의 세기

푸른 가지는
위로 더욱 하늘을 받들어
올라가고

돌사닥  사이를 뿌리는
깊이 지심으로 지심으로
뻗으며

언제나 트일
그 찬란한 크나큰 아침을 위하여

일월을 우러러
성신을 우러러

다만 여기 한
이름 없는  산기슭에

퍼지는 파문처럼
작은 내 고원
연륜은 늘어 간다

_____* 16

 

꽃  

별  

별 밭에 누워     

바다가 바라 보는 언덕의 풀밭   

--------------

도봉   

너는
사랑이 나무로 자라   

새벽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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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너는 오너라  

아버지   

精(정)  
푸른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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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하늘  

청산도    

연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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