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 / 강희창
바깥은 온통 빗금 투성이다
뜨거운 욕망을 숨긴 울매미처럼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채 은신처로 빨려 들어갔다
전선은 종잡을 수없이 이동 중
막하 섯부른 선택은 금물임
비는 앙가픔이라도 하듯
본디 욕심 이상 쏟아부었다
반발하는 우울 두분자 분노 한 방울
낮은 곳을 찾아 어디든 강림하사
쓸어가야 할것은 모두 쓸어 가야지
터전을 잃고 쓰린 가슴속 까지도
비는 이미 분별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시계추는 물을 먹은듯 무거웁다
나름의 기대치는 승산이 없지
갈증은 습습한 틈바구니에 웅크린 독버섯처럼
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모든 인내는 전선 뒷전에서 종종 걸음중
은신처에 탕난 욕망들은
쨍하는 햇살이 장막을 가르자
원래 모습으로 단숨에 복귀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과장은 심해지고
아무리 잃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아무도 못 넘볼 배짱 한 움큼이라도......
하지만 벌써 모두 잊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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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진학
비 내리는 날은 몹시도 서러워
몇 날이 지나도 그치지 않고
한나절이면 지겨울 그 햇볕 그리네
비 그쳐도 그날이 그날인 것을
그래도 비 내리면 몹시도 서러워
빗물에 고개 숙인 꽃들을 보네
가버리면 그만인 초라한 삶에
무슨 연유로 한(恨)은 또 생겨
나도 가면 볼 수 있을 비오는 하늘 위
그곳이 그리운 건 너 때문인가
망할 놈의 장마는 땅에만 지지
무슨 죄가 많아 가슴엔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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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김형술
곧 하늘이 무너지리라는
소문은 하수구를 넘쳐 거리를 떠돌고
꽃들이 떠내려 왔어
마지막 그리움마저 앗겨 버리고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이 도시의 가장 낮은 곳 쓸쓸한
이름들
화급한 발자국 소리를 지우며 자꾸만
내려오는 검은 커텐
죽음처럼 무거운 잠 속에서도
지붕은 새고
별들은 젖고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꽃들
어두운 눈빛에 시달리다
쫓기듯 집을 나섰지 나의 맨발은
부끄러움처럼 창백하더군
불길한 싸이렌 소리
완강히 닫혀 있는 문들
"잠들지 마
눈을 감으면 안 돼"
두터운 폭우의 벽을 헤치고
호외처럼 번개는 지상으로 날아와 꽂혔지만
누구도 아는 척 않아
비바람에 휩쓸려 가는 세상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길을 이끌고
혼신으로 걸어오는 이를 만났어
눈물 글썽이는
해맑은 눈빛의 가로등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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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류경태
꼭 비가 내리진 않아도
눈물을 가득 머금은 공기는 무겁다.
가뜩이나 뜨거운 태양은
눈물에 머물러 더 뜨겁다.
잠잠히 다가가는 나
요란하게 멀어지는 너
네가 두고 간 한숨이
내가 들고 온 한숨이 무겁다.
눅눅한 침묵을 깨고
며칠 씩 계속될 눈물의 풍요가
몇 개의 가호를 삼키고
몇 개의 큰 둑을 넘나들겠지만
높이 솟은 이 슬픔은
수 십일의 폭우도 넘지 못하리라.
꼭 비가 내리진 않아도
널 상실한 내 마음은 언제나 장마다.
============
장마 1 / 박순옥
지나가겠지
언제 걷힐지 모를 어둠
다시 볼 수 없으리라던
돌아섬
다시 오겠지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히며
그 파란 하늘
젖어서 돌아오는 네 웃음 피하지 못해
젖은 것들의 허물 갈아입히면서
무너질 나의 용서
다시 쌓을 일 없을
너와의 담장에 기대어
소리내어 크게 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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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2 / 박순옥
처마 없는 베란다 유리창엔
억수로 비가 퍼부었다
흐르고 흐르는 빗줄기
창문을 흔들며
쏟아질 듯 밀려드는 물소리
몸을 무겁게 적셔놓고
말 한마디 할 수 없게 적셔놓고
마른 꿈을 꾸게 한다
젖지 않고 꾸는 꿈은 비겁하다
바라는 것이 없다
그냥 비를 바라보라 한다 더 멀리
내리누르는 잿빛 바위
구름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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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3 / 박순옥
젖은것은 젖게 내버려 두자
아니라고 아니라고 덮어버린 아픔
소중하게 묻어둔 추억들이
맨살로 드러나 비를 맞는다
들리는가
빗줄기에 뒤척이던 잎새
젖을 대로 젖어 떨어지는 소리
오늘 바다에는
아무도 건져줄 수 없는 섬 하나 잠기고
먼 훗날 그 자리에서
매몰된 바람 한 줄기
인양될 것이다.
----------------------
+ 장마 4 / 박순옥
비게이면
삽질소리 들렸다
무너진 돌담
굴러 내린 돌멩이들
흙이 마르기 전에
다시 쌓았다
무너진 곳만 늘 무너져
무너지고 나서야
안도했던 우리
소란을 한바탕 쌓아 올리며
담장은 점점 낮아져 갔다
=============
+ 장마 / 백창우
1
오늘은 어느 누굴 찾아가 볼까
광화문 네거리를 서성이는데
이런 제기랄, 비가 내리네
터덜터덜 걷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지났구나
국수 한 그릇 먹었으면
사람들은 어딜 그렇게들 바삐 가는지
거리는 온통 비닐우산의 행렬인데
나는 갈 곳이 없구나, 이렇게 외로운 날
호주머니엔 담배도 떨어지고
마음은 괜히 울적한데
............
이제 장마가 시작되려나
2
신문 한 장 사 들고 찻집에 들어가
커다란 종이 비행기를 접다가
문득 떠오른 너의 얼굴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존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있을까
낡은 책더미에 기대 앉아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들 살아가는지
저마다 몇 개씩의 슬픔을 갖고
매일 되풀이되는 익숙한 몸짓 속에
나날이 작아지는 가슴으로
다들 어떤 꿈을 꾸는지
.............
그래,
큰 비나 내렸으면
----------------------
+ 장마 1 / 손석철
코딱지 만한 아가 개구리부터
천덕꾸러기 황소 개구리까지
너도나도 도로변에 우르르몰려나와
우왕좌왕 설왕설래
울고 불고 난리났네
뭔 일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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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2 / 손석철
유유히 노닐던 고만고만한 구름들이
뭉개 뭉개 고운 얼굴 시커멓게 찡그려
무섭도록 화내고 해님 등졌네
애꿎은 인간 향해 소리소리 지르고
문 꽝꽝 닫아대고 울고불고 난리 났네
뭔 일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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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 안성길
어둡다
어둡고 습한 구석을 골라 물바람 수런수런 떨어져 쌓이고
깔깔한 혓바닥 혹은 물곰팡내 같은 비의 내력
젖지 않은 장작은 깡그리 끌려가고
매스껍다. 건너편 신호등은 푸른빛으로 갈리고
번들거리는 속력의 차량들이 황급히 가라앉고
나는 부르르 몸이 떨려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물색 창유리의 어느 편에서도
우리가 팔매질하던 손 거두어 문 열면
방안 그득히 떼로 몰켜들던 푸른 목울대의 그리움들
벌써 몇 년째 예행 연습처럼 고단한 모습으로 정박 중인
사우디산 원유 실어 나르기로 한 유조선 두 척이
비에 젖고 있다. 화면에는
이라크의 전폭기 편대가 성내골 산 꼭대기 불도저의 삽날에
내장이 터진 바라크처럼
급속성의 파열음 까랑까랑 씹어 죽이며
황망히 사라지고 어디론가
다시 지난 오월 스무 하루 들판마다
찔레꽃 우우 불똥처럼 익을 때
초대형 유조선 전망대를 수리하던 최씨 아저씨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내리고
인내천 인내천 인내천
참으면 참을수록 성욕은 떨어지고
이환 실루엣보다 곱고 검은 살결의 여자가
밤새 수위실 부근 담벼락에 기대어 풀처럼 잠들었다
강물은 제 수위를 무시한 지 오래고
비는 만장처럼 우울한 소음을 내지르며 질퍽하게
그녀를 적시고, 젖은 그녀의 어기찬 손아귀 죄 풀어헤쳐
속이 드러난 산재 보상금 내력서마저 비에 젖는데
물은 기어이 뚝방을 기어올라 횡단보도를 갈아엎고
콘크리트로 아스팔트로 산지사방 칼문 이빨 희게 드러내고
인내천 인내천 인내천
젖으면 젖을수록 참나무 연기는 맵다.
============
+ 장마 / 이성희
우우雨雨 쫙쫙
사선의 긴 행렬
앞마당이 흐른다.
도로가 떠간다
강물이 흐른다.
오만 잡것이 떠간다.
힘차게 거세게
낮은 곳에 임한다는 핑계
지하나 낮은 곳에
사는 사람만
물고 늘어지고
가난한 산동네 축대만
물고 늘어진다.
어제 낮은 곳에
임하지 못한 빗물이
골목길로 역류하여
전기 감전으로
몇 사람이 삶을
떠나버렸다.
우우 몰려다니는 근성
항상 지나침은
안한 것만 못하여라.
-----------------------
+ 장마 / 이승협
하루종일을 비가 내린다
하늘이 젖고 공기가 젖고 나무가 젖는다
우산이 젖고 술잔이 젖고
빨래를 널지 못하는 아내의 걱정이 젖는다
분홍 장미 연속무늬 벽지가 젖고
원목 책장이 젖는다
야, 우리들의 천국이야, 비닐장판 아래
음습한 벌레들의 번식은 이미 시작됐다
창 밖 저편의 세상이 흐려진다
발을 헛딛고, 풍덩,
우울의 흙탕물에 빠진다
발이 젖고 무릎이 젖고 가슴이 젖는다
목소리 따라 젖고
두개골이 마저 젖는다.
하루종일을 비가 내린다
무지무지한 갈증이 내린다
물속에 갇혀서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
비는 점점 높은 곳으로 흐른다
물이 높아질수록
몸은 더욱 깊이 가라앉는다
이대로 둥둥 떠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어부의 그늘에 걸리지만 않고
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까지 갈 수 있다면
하늘로도 올라갈 수 있겠는데……
퉁퉁 불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문득
아무 움직임 없이 편히 잠들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내리던 비가
이틀 사흘 더 내린다
한 달 두 달 더 내린다
지금까지도 계속 내린다.
----------------------
+ 장마 / 이재기
하늘마저 맑지 않은 오늘
무심히 떨어지는 빗방울이
창백한 볼을 타고 구르고
어디론가 내딛는 발걸음 또한
그리운 마음만큼이나 무겁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새파란 나뭇잎을 지나
남쪽의 붉은 장미향기를 싣고
전신을 녹이듯 달콤한 내음이 스민다
깃털만큼이나 부드러운 향기는
지쳐 가는 피부를 지나
가쁜 심장의 맥동으로 전하고
순간 겨울 밤 하늘 별을 보며
밤이슬을 삼킨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졌고
감았다 뜨는 눈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보고픔이
그리움이
사랑함이
비로 내린다면
오늘도 비 오는 장마철이다
내일도 떨어지는 비를 봐야 하나보다
-----------------------
+ 장마 / 임명자
1
비는 꽃이 되어 나를 안고 달린다
비 개인 오후
산은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살아 숨쉬는 싱싱함이
저만치서 떨고 있다
2
강가로 나갔다
강물에 비친 그림자에 놀라 …
맑은 날엔 울고 싶다
고요뿐
나를 가릴 아무것도 없다
3
건너면 타인 같은
강을 건너
돌처럼 구름처럼
어둠이 차지한
그 자리에는
꽃 한송이 놓여 있는가
빈 들녘
============
+ 장마 / 전병철
모든 것이 지겨움에
하늘을 올려다 보며
끝나기만 기다리는
해바라기 신세가 되어
눅눅하고 칙칙한 삶
훤히 그치는 날이 될 때까지
아예
무거운 나래를 접어둔 채
활동을 줄이면서
외면해 버렸다.
-------------------------
+ 장마 / 전홍준
하늘에서 총알이 쏟아진다
인두겁을 쓴 도시가 즉사한다
꿈자리에서 내장이 튀어나온다
보리 까끄라기 같이 강퍅한 심장
진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는 모든 길
그 위로 까마귀 떼 낮게 활강한다.
-----------------------
+ 장마 / 정해철
낮게 드리운
잿빛 하늘
드문드문
인적 끊어진 거리
가끔
쌍쌍이 받쳐든
원색의 우산
긴 여운으로
여름을 재촉하는 비.
-----------------------
+ 긴 장마 / 목필균
산에 가려는데 발이 묶였다. 비안개 가득한 하늘에 꾸역꾸
역 밀려오는 상실감, 발 묶일 일이야 어디 비뿐이랴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그리움의 저 편, 창문 가득 몰려드는
인기척들. 차마 말하지 못할 그 많은 이야기들, 부옇게 흐려
진 창안에 가두어 놓고 소리 없이 내려놓는 마음에 짐 하나.
다 접어두지 못하는 내 안의 흑백 사진들
가지 못한 산 속에 몸 불은 계곡물소리로 들려오는 그대
의 목소리가 온종일 나를 서성거리게 한다
==============
+ 장마기 / 구중회
수증기와 편승하는
물방울들은
구름만 되면
이미 소나기로 쏟아진다.
자갈밭에 자라는 들풀
황톳물로 뿌리 채 뽑아
싣고 떠나간다.
물방울들은 바다에 가도
왜 바다가 못 되는가.
또 수증기로 피어오른다.
-----------------------
+ 장마비 / 김강태
너는 용광로 속 쇳물인가
어둠에 바라보는 장대빗날의 끓기
섭씨 60도 혹은 70도쯤
어떻게든 수직에 가까웁게
누운 몸이 패일 때까지
불질한다 화냥질을
쏘시개면 어떠랴
한밤에 쇳물을 떠나 뜻 모를 불나비로
마냥 미쳐 날아다니기만 할 뿐
15도 혹은 10도의 틈을 비집고
불칼 몇 점
나의 한잠 칠흑 중심에 꽂으니
기웃대던 새벽이 찬찬히 깨진다
과녁이다 나는,
무수히 쓰러지기만 하는
-----------------------
+ 장마비 / 양채영
장마비가 쏟아지면 막막하다
두려울 것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혼자인 것 같아 서럽다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누군가 거침없이 떠나가려나
강둑이 터지고 산사태 무너지고
가슴을 치며 호곡한들 이메일도 끄고
핸드폰도 접고 전화선도 끊고
둥둥 강물에 휘말려 떠나가려나
밤새 뜬눈으로 빗줄기를 세어도
장마비는 퍼붓고
천둥번개는 막무가내로 내려친다
벼락 치듯 누군가 배반하려나
이 무서운 검은 적막에
나도 빗줄기처럼 퍼붓는다
----------------------
+ 장마비 / 조에린
저 칠월 장마비는
무엇을 적시려고
저리
오는가
젖은 가슴
곰팡이꽃
이미
찬란한데
아으 동동다리
무엇을 적시려고
님 생각
내 눈물은
이리 오는가
==============
+ 장마비 / 최다원
밤새워 소낙비가 장대처럼 내렸다
선잠을 깨우던 시원스런 빗소리는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와
가슴을 풀어 주고
더위를 가져가고
번개를 데려와 폭죽처럼 하늘을 가를 듯 번쩍인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우요일의 한가로움
헤이즐넛 향기를 입안 가득 채우고 음미하며
밀린 독서를 모처럼 즐기겠다
며칠 전 집 전체에 방수공사를 했으니
빗물이 들어오진 않을 것이고
틈새를 노려 스며들던 화실 외벽마저
코킹으로 모두 발랐으며
화단 가득 심어둔 꽃들이
타던 목을 축이겠구나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안면 가득 담아 보던 순간
장마 비에 둑이 무너져
살던 집들이 잠기고
하우스가 무너지고
우사와 축사가 쓰러져 모두 달아나 버렸다는
기사가 생각이 나서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은 경계경보가 발령 중인 우기인데
빗소리를 가슴에 담고 시나 쓰려고
안간힘을 쓰다니
-------------------------
+ 장마비 1 / 홍경임
꺼져가는 내 영혼을 부르는 소리 있어
그제는 장마비를 마중하며
북한강과 남한강이 상봉하는
꿈속에서만 키워오던
내 마음의 고향 양수리에 갔습니다
어제는 연일 내리는 장마비에도
메말라붙은 한 줌 내 마음 적시어주려
내 몸 같은 그이는 나를 태우고
강변마을 샛터를 몇 번인가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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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 2 / 홍경임
어느 시인의 숨결이 나를 부르는 소리 있어
오늘도 계속되는 장맛비에
46번 도로 물안개를 날리며
한참을 달려 둘이 당도한 곳은
파가니니 영혼을 담은 바이올린 선율이
잔잔히 부서지는 무너미 카페
둘이 주인 백발의 시인과 마주하여
꽤나 한참을 머물러 담소할 때
카페의 음악은 바뀌어
정신적 배가본드 내 영혼에도
나를 사랑한 덕에 구멍 난 그의 가슴에도
생애 어느 세월 20년 절필하여
허스키해진 노시인 마음에도
비발디는 우리의 주치의가 되어
서로의 영혼에서 영혼으로
사계 중 여름이 조용히 흐른다
그이와 난 치유된 가슴을 안고
둘만이 충만한 귀향을 서두른다
흩뿌리는 장마비로 얼룩진
101번 도로에 들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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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들장마 / 박용래
건들장마 해거름 갈잎 버들붕어 꾸러미 들고 원두막
처마밑 잠시 섰는 아이 함초롬 젖어 말아 올린 베잠방이
알종아리 총총걸음 건들장마 상치 상치 꽃대궁 백발의
꽃대궁 아욱 아욱 꽃대궁 백발의 꽃대궁 고향 사람들 바자울 세우고 외넝쿨 거두고.
================
+ 마른장마 / 조재영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한 여자 길을 떠난다
닳은 구두 뒤축을 끌면서
한 여름 긴 낮을 간다
옷자락에 묻어온 마른풀 떼며
휘청휘청 파밭을 지난다
파꽃에서 파꽃으로
깊은 여름에서 깊은 여름으로
길이 휜다
햇빛 따가워 가는 눈 뜨고
기대 쉴 나무를 찾아보지만
가끔 만져도 보지만
너무 뜨겁고 너무 눈부신
이승의 손바닥 안에서 잠시
꿈꾸어 보는 서늘한 평화
찾지 않으리 쥔 손마저 놓아버리리
한 줌의 안식 한 뼘의 그늘이
이 무지막지한 햇볕의 허구를
그 세월을 짊어질 수 없으니
허공으로 손을 가벼이 들었다 내리면서
이마를 훔친다
입 안이 마르는 길고 긴 낮을
펴 본 일 없는 녹슨 우산 들고
여자가 간다
한 숲에서 다른 숲으로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간다
------------------------------
+ 장마斷章 / 이상홍
장마라는데,
한자로 어떻게 쓰던가?
아니 장마가 한문인가?
또, 얕은 물살로
생각을 괴고 있는데,
창문에 굵은 빗줄기가
후죽후죽 주르르 우리말로
인사를 한다. 헉,
그는 늘 이렇게
재치 있고
상큼하시다.
----------------------------
+ 장마예보 / 김수우
표시 나지 않게 웃는다 복숭뼈에 튀는 빗방울. 우산
을 접었다 꽃이 두근거린다 아니 두근대는 건 꽃을
안은 가슴, 우산을 폈다 문방구에 들러 두꺼운 노트
를 산다. 일기를 새로 쓸 거야. 우산을 접었다 잎차 향
기가 들새의 눈물처럼 흔들린다. 우산을 폈다 수화기
를 들고 물안개 목소리로 안부를 전한다. 깨어진 유
리컵. 우산을 접었다 맹꽁이 울음이 심심한데 빈 의
자 같은 얼굴 하나. 우산을 폈다 철조망 감아 오른 호
박줄기 그 손짓에 속살대는 개망초. 우산을 접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미워한다. 뱀딸기 같은 몽상의
파편. 우산을 폈다 코끝이 시리다 오늘부터 장마래지
뭉게구름처럼 사치스러울 수 있을 거야. 타박거리며
현관문에 키를 꽃다가 어머나 택시 안에 우산을 두고
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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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유감 / 김명배
비 오는 날, 그대
보내 놓고,
어느새 돌아보는 그대
그냥 보내 놓고,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그대
찾아 나섰더니,
오라는 비는 오지 않고
날벼락만 치더라.
각시 하자 어미 하자 하는 말
부정해서
돌아와 문 꼭 걸어 잠그고
외짝 귀신 되었더니,
해마다 그맘때쯤 되어서는
비는 왜 자꾸 올까.
억울한 건 하나 없지만 그대
불 꺼진 이 가슴에
비 되어 내리면 무엇하리,
장마비 되어 내리면
무엇하리.
================
+ 장마 이전 / 윤성택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산다 여점원은 시든 안개꽃처럼
말랐다 그녀에게 따귀를 맞아도 변한 것 없는 세상은 퉁명스
럽게 햇발을 끌어내린다 마을버스 뒷좌석에 몸을 접어 넣는
다 비어있는 자리는 좁고 다리가 저리다 정류장 푯말이 지나
치는 몇 점 풍경에 스트로우를 꽂는다 그때마다 몇몇이 앞문
으로 빨려 들어온다 북상 중인 비구름은 오후쯤 서울에 도착
할 것이다 내가 보냈던 편지는 어느 하늘쯤 가다가 수취인불
명으로 되돌아온 것일까 기우뚱 차가, 차창밖 하늘이 돌아눕
는다 기점과 종점이 맞물린 하루가스트로우 끝에서 그르릉
그르릉 빈 바닥을 헤집는다
-----------------------------
+ 장마 이후 / 임명자
비 개인 길목
흐드러진 풀꽃이 고개를 들고
바람이듯
구름이듯
살아가는 이승
범람하는 강물을 건너야
다른 마을로 가는 길이
이어지는데
나룻배는 아직도
언덕 위에 튼튼히 묶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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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일기 / 임두고
무엇이 그리워
그대는 그렇게 열병을 앓고 있나요
마냥 수박 속 같은 기쁨으로
영글 줄 알았는데
강둑 위에 널린 빛바랜 꿈들을
속속들이 삼키며
우루루우루루 수화로 흔들리는 시야
내 심장의 부싯돌마저 젖고 있어요
사방은 온통 그대 부피로 밀폐되지만
그 안에 가슴 아픈 사랑의 공명은 빗소리
가닥가닥 땅의 건반을 두드리는
그대 여윈 손가락의 자유는 무엇을 그리워하나요
그대 노랫가락이 길고 깊어질수록
그림자마저 잃은 고독으로 낱낱이 흔들리며
힘없이 주저앉는 아랫도리들
나도, 뼈마디마저 흥건히 젖은 채
사랑을 달래고 싶어요
각혈로 쏟아지며
끝내 그대 열병은 씻겨 갔지만
서걱이는 물풀들이
팍팍한 모래알들이
그리움의 생채기로 남아 있어요
가만히 들어 보고
가만히 만져 봐요
암처럼 돋아 있는 사랑의 밀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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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전선 / 이외수
흐린 날
누군가의 영혼이
내 관절 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
내게서 버림받은 모든 것들은
내게서 아픔으로 못 박히나니
이 세상 그늘진 어디쯤에서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가
저린 뼈로 저린 뼈로 울고 있는가
대숲 가득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
+ 장마 개이고 / 추명희
장마 개이고
창 밖으로 엿장수 가위소리 지나가는
주일 아침
멀어져 가는 가위소리를 부르며
팔아 버릴 물건을 찾아
마음의 곳간을 열어 봅니다.
올해도 지난해도
거지로 살았습니다.
뒤꿈치 다 닳은 나의 사랑.
꺼져 있는 등불
내 헛간과 벽장과 광마다
그득그득한 고집도
몽땅 들어내 팔아 버리고 싶습니다.
강냉이 한 사람 대신
세상 처음 만나는 햇살이나
하나 가득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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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개인 날 / 이용악
하늘이 해오리의 꿈처럼 푸르러
한 점 구름이 오늘 바다에 떨어지련만
마음에 안개 자욱히 피어오른다
너는 해바라기처럼 웃지 않아도 좋다
배고프지 나의 사람아
엎디어라 어서 무릎에 엎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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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끝나고 / 최진연
장마 시작 전에
어사화(御使花)처럼 피어난
난초 꽃 세 송이
한 달 장마가 다 지나도록
그 자태 그대로 섰더니
장마 끝난 오늘 아침에는
창호지보다 하얀 햇볕 한 장
내 작은 책상 가득 펴놓고
그 위에 난향(蘭香) 같은
글을 쓰라네.
내 머릿속은
장마보다 오래 버려져서
눅눅한 헛간 호미처럼
벌겋게 녹슬고 있는데,
창 너머 기웃거리는 흰 구름도
장마 끝의 밭고랑 쇠비름처럼
생명으로 번들거리는
글을 쓰라네.
이 아침 아내와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의 평화
방안 가득한 난향과 녹차향
여기에 향기로운 글 한 수(首)라
들풀의 생명을 더할 수 있다면
내 다시 풀무질을 시작해야겠네.
장마에 녹슨 호미라도 벼를
시뻘건 불을 지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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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앞에서 / 고정애
저기압을 끌어 모으고 있다
비구름이 한 덩이로 뭉치고 있다
사지문지 덩치 크고 힘센 무리들이
재빠르게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다
넓고 두터운 스크럼으로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밀리면 끝장이야
먹구름으로 바리케이드를 친다
연중 가장 큰 저기압 종친회가
번개와 벼락과 물벼락을 마련하고 있다
장대 같은 빗줄기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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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월 늦장마 / 김순진
팔월이 되자 끈적한 공기가
근심을 파리처럼 빨아대더니
상념의 소용돌이 열흘 밤낮
쏟아지는 원수 같은 빗줄기들
산사의 염불 소리를
집어삼킨 수마가
사람들이 토해 내는
온갖 속어들 마저 뼈 째 삼키고
우중(雨中)의 설법 보다
더욱 씨알 멕히는 간계와 저주가
명아주 지팡이 든
노인들의 귓전에 경을 읽는다
전장(戰場)의 비극보다
더욱 처절한 문둥이 비
비에 드러난 죽은 자들의 묘비명이
수련 꽃 보다 더 섧게 운다
생의 고비에서 들리는
복구 현장의 기곗소리
칭가칭가 엥가엥가
해골 눈 보다 움푹하다
목숨을 넘실대는 야광충은
유영하는 아린 언어들을
회심곡 보다 애잔한 노랫말로
폐허 위에서 살풀이 춤을 춘다
억지로 목숨 건진 이
찝찌리한 까마중 따 입에 넣으며 독백
이 눔의 비 그만 좀 오지
자벌레 한 마리 근심을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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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뉴월 장마비 / 강세화
오뉴월 장마비가 몸을 풀어 내린다
옹졸아 마른땅에 작정하고 내린다
부옇게 흐린 하늘도 씻어주며 내린다.
타는 풀잎 꽃대궁에 초록으로 내린다
답답한 가슴에도 다정하게 내린다
어디나 촉촉 적시며 느긋하게 내린다.
걸음걸음 돌아보며 차근차근 내린다
주룩주룩 느릿느릿 눈감은 듯 내린다
똘똘한 낙숫물 소리 절절하게 내린다.
마음을 비우고 나면 따스하게 내린다
서로가 조금씩 져주면서 내린다
세월아 환해져라고 열두 번 소망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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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뒤 타는 놀 / 천숙녀
들창을 두드리는 사나운 비 울음에
소란스럽던 긴 밤 꿈 조각들 깨부수어
먼동을 끌어안으면 약동하는 아침 찬가
어제는 주름살로
펴지 못한 바장 걸음
문턱까지 차오르던
장마비 걷어 말릴
따가운 불볕을 당겨
빨랫줄에 너는 일상
보듬은 생리의 줄기 무릎에 개고 포개
하교에서 돌아오는 발자국을 캐 담으면
지하 방 몸살 달래는 노을은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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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물소들이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예전보다 더 낭랑해지고
나는 또다시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사귀어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지나간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 켠에서부터 이미
벽돌 한 장, 한 장,
새로운 도시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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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비 줄기에 / 오보영
줄줄
쏟
아
지
는
장마
비 줄기에
머릿속 모두를
씻어내고 싶다
가슴속 모두를
퍼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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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와 소나무 / 김순진
이 사람아, 비 내리는 밤이 좋다고 하더니만
칠월 장마의 밤을 좋아하는지 몰랐군.
한가윗날 광명의 밤보다도
섣달그믐 소록 눈 내리는 밤보다도
그렇게 좋더란 말인가.
좋으면 나랑 같이 새워 볼 일이지
홀로 망상의 허리를 쥐고 앉아
반딧불이 소곤대는 하늘나라 얘기를 듣다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하늘나라로 가는 지름길인 줄 알았나.
목에 건 전투화 줄이
겨우 소나무 가지에 걸렸는데
그곳이 하늘나라인 줄 알았겠지.
보게나
자네의 발끝이 땅 위에 닿았네.
비 내리는 밤이 좋다고 그랬지만
결국 외로운 생각이 들 걸세.
명년 칠월 장마엔
땅 위의 발끝을 들어 올리고
후년 칠월 장마엔 하늘나라에
터 좀 닦아서
잘 살게나.
그렇지만
자네네 나라엔
비는 억수같이 내려도
소나무는 없을 걸세.
그래서
여기 자네가 올라간 소나무를 베어 왔네.
여기
이 소나무에 기름을 붓고
한 가치의 성냥을 그어대네.
이 불길의 자네에게로 닿거들랑
불꽃이랑 연기랑 모아
소나무를 만들게
그 소나무는
칠월 장마 지는 어느 날 밤
또 필요할 거야
자네가 날 부르면
칠월 초복의
태양이 사정없이 쬐는 날
자네가 올라갔던
그 소나무 그루터기 옆의 소나무에
살진 개 한 마리를 목매어 올려 보내겠네.
그 개를 보내면 제발 좀 묶어 기르지 말게나.
그 개는 자네와 친구가 될 걸세.
여기 자네의 제사상 앞에 향을 피우고
재배를 하네
그리고 밥풀강정 한 개를 먹으며
대신 쐬주 한잔 부어 놓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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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와 어머니 / 신지혜
여러 갈래의 몸으로 서있다 어머니 잿빛 치마폭 같은 바람 속,
줄무늬눈물 서있다 때로 어머니 구멍 난 가슴 열쇠처럼 햇살
꽂힐 때까지, 어머니 주룩주룩 무너진다 세상을 덮는 비애
의 조각조각 꿰매진 일명 퀼트, 바느질 가게에도 빗줄기 여
윈 다리를 꺾어 문턱을 넘는다 어둠이 딱딱하여 부술 수 없
는 밤에는 어머니, 낡은 상처 한 장씩 꺼내 안감과 속감 두
텁게 누비며 탈주의 길을 만든다. 길 안과 밖, 무겁고 은밀한
기억까지
저 아득한 하늘 어떻게 다 가둘 수 있을까 이불 위로 삐뚤
삐뚤 절망의 실이 풀린다 저잣거리 잡상인으로 머리칼 다 빠
지도록, 생목숨 둥글려 만든 똬리 위에 무거운 근심을 얹고 또
그 위에 허공을 얹고 어머니, 허리춤에 매달린 전대 속에서 묵
직한 어둠이 절랑거리고 허기처럼 솥뚜껑을 두들기는 한여름
기인 장마, 生의 장작불이 생각의 조각조각을 태워버리면 빗
속에 흩어지는 風磬소리처럼 번져가는 물방울의 시간
어머니 각진 시간들 모아 모서리를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시푸른 강 하나 바늘귀를 통과한다 어머니 발자국 지워가는
물줄기, 낡은 지붕 처마 끝에 매달려 환히 빛나는 수 천의 몸들.
은뿌리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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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와 장마 사이 / 박진성
장미가 시들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졌다 추악하게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장미가
저기압의 구름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28번을 타보면 안다 우이동에서부터
강남 일대까지 장미 軍團이 서울을 점령했다
오월의 겨드랑이나 허벅지 같은 곳 이를테면
홍릉 수목원 버드나무 아래에서 연인들은 키스를 해댔다
이파리에서 가시로 점프하는 벌레, 어머니는
김치를 가방에 담아서 올라왔다 등이 굽은 노인이
느릿느릿 걸어가고 아이들은 철수 바보, 영순이 병신
이런 글자들을 벽에 陰刻했다 어떤 절실함도 없이
애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새벽
측백나무 뾰족한 가시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장미, 장미, 장미의 계절, 공중에서 부유하는
날벌레 떼가 가로등에 모이기 시작했다
반지하 창문 아래에 누워서 빗소리를 들어도
뿌리까지 젖지는 못했다 나무의 뿌리 깊이에서
다운받은 음악 파일을 밀어 올려도
옆집 여자는 카드 빚을 진 아들과 자꾸만 싸웠다
장마가 올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습기가 파고들겠지 어서 오시라
모든 것이 부패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
방부제처럼 나는 혼자서 싱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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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을 나는 법 / 문숙
"얘야, 잘 여문 곡식도 장마철엔 벌레 슨다
바깥공기 들지 않도록 잘 묶어라
차고 서늘한 곳에 두는 것도 잊지 말고
자칫 구멍 나면 다 버려야 한다"
어머니는 오늘도 전화로
나를 보관하는 법 조용히 일러주신다
귀 닫고 입 닫고 제 숨통 틀어막고 버티는 일이
온전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숨이 막히고 가슴이 끓어도 어머니가 계시는 한 나는
내 삶의 봉지를 구멍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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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 고추잠자리 / 김내식
언제 멈출지 모르는 장마
오던 비가 잠시 그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고추잠자리 떼
가만가만 뒤를 따라가 보니
그들의 집은 비 맞는 풀잎이다
비가 퍼 부울 땐 잎새 밑에 매달리고
약하게 내릴 때는 위에 앉아
얼굴이 거울 되어 하늘을 보며
부르르 물기를 털어낸다
이따금 빗방울이 뜸해지면
연한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며
수재민들이 펼친 가재도구 위로 날아
밝은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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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비 내리는 날이면 / 남경식
입영통지받고 군에 입대하던 날
한여름의 장마비는 그리도 속절없이 쏟아져
오직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를
하염없이 실신시켰다
어렵고 고단하던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 후 혼란한 세상에
오로지 남편만 의지한 채 살아온 어머니는
한국전쟁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들려오는 마을의 전사자 소식에 가슴 철렁하며
결국엔 시동생의 전사소식까지도 접한다
떠오르는 두려운 생각은 남편의 안위였다
인민군의 남하는 아버지의 고향에까지 미치어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피난을 떠나야 했고
다시 돌아온 시댁엔 어린 누나들의 죽음이 기다리고
전쟁은 끝났으나 아버지는 부상을 입은 채 돌아오셨다
살기 어려운 시절인지라
할머니의 생각을 따라
아버지가 완쾌되신 후 숟가락 하나만 챙겨 고향을 떠나
아버지 외가가 있는 오산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내가 태어나고 동생들이 태어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렇게 이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자식들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 그녀의 아들이 장성하여 군에 가는 것이다
남편을 보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식을 보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평화시대에도 어머니는
한국전쟁의 두려움이 다시 생각나
소중한 아들이 걱정인 것이다
비는 하루종일 내리고
어머니의 슬픔을 뒤로하고
나는 기차에 올라 입대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어머니를 뵙게 되었을 땐
뇌경색으로 투병하시는 어머니의 가련한 모습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십여 년 더 고생하시다가 아버지를 따라
당신들의 유택에서 해후하셨다
장맛비 오는 날이면 가슴저미게
어머니가 생각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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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에 비쳐진 어머니 / 유일하
먼 하늘에
강물이 범람하여
푸른 산자락을 적신다
울 어머니 가슴에
맺힌 폭풍의 한을
아는지 지겹도록 퍼붓는다
열기를 뿜어대던
담벼락의 장미들이
하나, 둘 흐트러져
빗물에 피를 토하고 있다
어머니도 우릴 키우며
저토록 하혈을 하고
피눈물을 머금고
사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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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여름장마는 길었다 / 송경동
그들의 싸움은 장마처럼 길었다
와? 와아? 와아? 하며
뱃일을 다니는 사내가
밑도 끝도 없이
세간살이 하나하나를 깨나 갈 때마다
부둣가 다방엘 다니는 동거녀는
썰물에 씻기는 모래알처럼 쓰러지며
와아? 와아? 와 그라는데 하며 흐느꼈다
나는 그들의 옆방
월세 10만 원짜리 생활 속에
텅 빈 소라껍질마냥 기구하게 누워
불도 켜지 못한 채 서러웠다
모든 건, 이 지긋지긋한 장맛비 때문이라고
위안해 보지만
떨쳐지지 않는 기억들
아버지는 내게
끈질긴 미움과
풀어지지 않는 말들의 매듭과
쟁그랑 깨어지는 가슴을 물려주었다
폭풍우에 휩쓸려 온 해초들마냥
파도처럼 우악스러운 손아귀 속에서 쥐어뜯기던 어머니
퍼런 멍으로 보이던 달
새벽이면 어시장 주변을 배회하던 개들
몇 도막난 생선처럼
도매금으로 뭉툭뭉툭 잘려 나가던 젊음
왜? 왜?
왜 그랬는데?
물어도 물어도 서로 대답 없는 뭍처럼 파도처럼
끊이지 않는
이 싸움은 언제나 끝나련가
먼동이 터오는 새벽
밤샘 폭풍우 잦아들고
이제 그만 와와? 와와? 쉬고 쇤 목소리들도 잔물결마냥 잦아들어
그때야 슬며시 나와 보니
깨진 그들의 한칸짜리 방 창문 너머로
기울어진 두 사람 마주 앉아 있다
어이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하랴
저기 멀리 다시 하루의 해가 떠오르고
시원한 새벽바람이 부니
다행이라고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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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그리고 폭우 너 정말 / 나상국
제발 제~`발! 이제 그만
너와는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반갑지도 반기지도 않는 너는
스토커처럼
왜 이리도 자꾸만
후덥지근 끈적거리며 쫓아다니는지
정녕 알 수가 없구나
차라리 네가 오지 않기를 바랄 걸 그랬어!
숨쉬기조차 힘든 불볕더위에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널 기다렸는데
이제는 네가 지겨워졌어
이제 제발
내 곁을 떠나 주면 안 되겠니
괜스레 설레이던 마음
이젠 이제는
공허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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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이면 난 행복하다 / 신형식
장마철이면 난 행복하다.
후텁지근한 가슴속에
자존심처럼 간직했던 일들
우르르 쾅쾅
눈물로 쏟아버릴 수 있어
난 행복하다.
그리움이 먹구름처럼 끼고
사랑도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장마철이면
들고나갔던 우산을 잊어버려도
핑계가 있어 난, 행복하다.
그러다 가슴속까지 흠뻑 젖어도
난 행복하다.
울다가도 웃는 세상.
참 지조 없는 세상.
그래서 난, 행복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그런 핑계를 댈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그대의 세상에서
웃고, 또 울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장마철이면
그대가 있어서 난 행복하다.
장마철이면
그대가 없어도 난, 마음껏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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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에 커가는 것들의 소리 / 조찬용
장마 빗소리가 며칠 째 축축하다
창 밖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빗길을 뛰던 여자아이의
빗길도 이내 풍경에서 사라지고
창문을 닫고 방안에 있어도
촉촉이 구석으로 물길 닿는 소리가 들린다
천 장을 붙들고 어둠을 기다린 형광등도
천둥 번개가 지나간 탓인지
그 후유증으로 깜박깜박 앓고 있다
창문을 닫으면
금방이라도 잊을 것 같던
소리의 물방울들이
발끝에 걸리거나 마음에 떠다닌다
햇빛 밝은 날에
너무 밝히고 산 날들 때문이다
종일
뽀송뽀송한 햇빛을 긁어모아도
소리들은 진딧물처럼 몸에 붙어
물방울의 알을 까고 있다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몸을 비틀면
흙탕물처럼 번져 나오는 소리들
빛이 없는 낮은
눅눅한 물방울 소리들로
어둡고 물에 떠 있다
__________* 56
장마 / 강희창
장마 / 김진학
장마 / 김형술
장마 / 류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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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1 / 박순옥
장마 2 / 박순옥
장마 3 / 박순옥
장마 4 / 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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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백창우
장마 1 / 손석철
장마 2 / 손석철
장마 / 안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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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이성희
장마 / 이승협
장마 / 이재기
장마 / 임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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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전병철
장마 / 전홍준
장마 / 정해철
긴 장마 / 목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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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 / 구중회
장마비 / 김강태
장마비 / 양채영
장마비 / 조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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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 최다원
장마비 1 / 홍경임
장마비 2 / 홍경임
건들장마 / 박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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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장마 / 조재영
장마斷章 / 이상홍
장마예보 / 김수우
장마 유감 / 김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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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이전 / 윤성택
장마 이후 / 임명자
장마일기 / 임두고
장마전선 /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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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개이고 / 추명희
장마 개인 날 / 이용악
장마 끝나고 / 최진연
장마 앞에서 / 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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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늦장마 / 김순진
오뉴월 장마비 / 강세화
장마 뒤 타는 놀 / 천숙녀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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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줄기에 / 오보영
장마와 소나무 / 김순진
장마와 어머니 / 신지혜
장마와 장마 사이 / 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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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을 나는 법 / 문숙
장마철 고추잠자리 / 김내식
장마비 내리는 날이면 / 남경식
장마에 비쳐진 어머니 / 유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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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장마는 길었다/송경동
장마 그리고 폭우 너 정말/나상국
장마철이면 난 행복하다/신형식
장마에 커가는 것들의 소리 / 조찬용
시마당/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