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잘 구워진 빵
적당한 불길을 받아
앞뒤로 골고루 익혀진 빵
그것이 어린 밀이었을 때부터
태양의 열기에 머리가 단단해지고
덜 여문 감정은
바람이 불어와 뒤채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제분기가 그것의
아집을 낱낱이 깨뜨려 놓았다
나는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살았다
저 자신만 생각하느라고
제대로 익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속까지
잘 구워진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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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
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
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
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
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
시인은 말했다, 별은 내 눈물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는 신비주의자에게 가서 물었다
신비주의자는 별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
네 안에 있는 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
그 설명을 듣는 동안에
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었다
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
별들을 바라본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인도의 어떤 노인처럼
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만으로
만족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 노인처럼
밤에 먼 하늘을 향해 앉아서
별들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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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등
누가 죽었는지
꽃집에 등이 하나 걸려 있다
꽃들이 저마다 너무 환해
등이 오히려 어둡다,
어둔 등 밑을 지나
문상객들은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 꽃집을 나서고
살아서는 마음의 등을 꺼뜨린 자가 죽어서
등을 켜고 말없이 누워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등 하나가 꽃집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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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쉽게 정주지 마세요
그것이 더 애틋한 것이고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제자리에 있는 나무들과
꽃과 돌을
당신의 자리에 서서
맑게 바라보는 기쁨을 이제는 알듯이
그런 겁니다
쉽게 가까이 가지도
멀리하지도 마세요
맑은 눈으로, 남김없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안을 수 있는
당신의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애틋한 사랑이란 걸
이제는 당신도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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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맹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젊은 사두에게
더 늦기 전에 글을 배울 것을 강조하자,
그는 내게 들으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글을 모르는 것보다 더심각한 것은
영적인 문맹이 되는 일이다.
세상에는 많은 학식을 자랑하지만
영적으로 문맹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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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生活)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門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四方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生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窓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日常의 책장들
良識은 굳은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一部分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自由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내려와
無垢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門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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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 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 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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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뒷짐을 지고
한 짐 그리움을 지고
올라가는
길, 햇빛은 가장 먼 곳에서
죽어 있는 것들 흔들며
내려오고
점점 작아지는 사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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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월
별이 모래 언덕에 스치운다
나그네 하나
그곳에 닿기 전에
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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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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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눈썹
너의 긴 숙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지울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아침을 열고 밤을 닫고 싶어
삶에 지쳤을 때는
너의 눈을 버리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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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화
여기 수선화가 있다.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가
나는 제주 바닷가에 핀
흰 수선화 곁을 지나간다
오래전에 누군가 숨겨 놓고는 잊어버린
신부 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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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법
사랑이 오실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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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숲
나뭇가지 위에 둥지가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시나무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낮에 잎사귀가 넓은 식물들 곁을 지나
아무도 몰래 나무 밑으로 접근했다
새는 그때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언젠가 입은 상처로
나무 둥치에 생긴 흉터자국에 한쪽 발을 걸치고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채
한낮의 고요 속에
마치 금지된 열매를 따려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둥지 밑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한쪽 발로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나뭇가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둥지가 있는 곳까지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빼고 재빨리
둥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빈 둥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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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 박스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그대로
나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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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명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 장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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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아내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푸쉬카프의 노천 찻집에 앉아 여행가이드북을
뒤적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두가 말했다.
"힌두스탄을 여행하면서 그까짓 안내 책자에 의지하지 말라.
신으로 하여금 그대의 여행을 인도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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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수업
"내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북인도 심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묻자,
히말라야 산중의 강고트리로 가는 중인 고행승 사두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들이라는 사실이지.
그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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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침묵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제 내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
내말은 나에게 되돌아 올려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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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랭이꽃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따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밝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에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라고 들어보셨어요?
일생에 한번..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고
가시에 가슴을 찔려서 죽는 새가 있습니다.
이건.. 그 가시나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슬픈 가시나무새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한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는
당신을 사랑하는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언제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는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만 노래하는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당신이 웃으면... 웃고..
당신이 울면... 우는..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어두운 하늘
당신이 돌아가는 밤길에
당신 대신 매에게 날개를 다친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사랑한다 말하면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며
끝내 이말을 못하고 마는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당신이 아파서 누워 있던 날
당신의 둥지에
산열매를 가져다 놓은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매일,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당신의 둥지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하는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듣지 못했던
슬픈 노랫소리가 있습니다.
당신만이 듣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는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 새를 따라 떠날 때도
바보스럽게
그 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하던
새가 있습니다.
너무도 지치고
너무도 초췌해져서 돌아온
당신을 위해
깃털을 뽑아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준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어느 추운 날..
둥지나무 꼭대기에서
당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다
하얀 눈을 붉게 물들인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붉어지는 눈망울과 식어지는 숨결로
당신의 행복을 빌던
슬픈 가시나무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
.....
그 슬픈 가시나무새를 사랑한
가시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나는 ...
가시나무입니다.....
-------------------
+ 비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안개로 만든 집
구월의 오솔길로 만든 집
구름비나무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세상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의 새가 세상의 지붕 위를 날고
비를 내리는 오솔길이
비의 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비의 새가 저의 부리로
비를 물어 나르는 곳
세상 어디로도 갈 곳이 없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
+ 입술 속의 새
내 입술 속의 새는 너의 입맞춤으로
숨막혀 죽기를 원한다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그 입술 속의 새
길고 긴 입맞춤으로 숨 막혀 죽는 새
나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너를 껴안는다
내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삶은 다만 그림자
실낱 같은 여름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
그리고 얼마큼의 몸짓
그것이 전부
나는 고통 없는 세계를 꿈꾸진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단 한번의 입맞춤으로
입술 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숨 막혀 죽는 새
밤이면 나는 너를 껴안고
잠이 든다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온 몸으로 너를 껴안고
내 모든 걸 잊기 위해
-----------------------
+ 늑대들의 태양
덫에 걸리면 너의
발목을 끊어 버려라
너의 머리를 허공에
들이밀어라 뿔을 내밀어라 머리
가죽을 뚫고 구름 너머로 너
그것을 차가운 구멍 속으로
집어넣어라
자아상실 하라 푸른 막을 쑤시고
너 마음대로 솟아올라라
주먹을 쳐들어 그것을
밀어라 비틀어 물
속에 처넣고 부풀어오르는
뇌 세포들을 연주하라
행동반경을 넓혀라 하늘의 등에
낙인을 찍어라 하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물어보라 어디
너 마음껏 들이밀어라 몸통을
길게 둥글게 말아
침을 흘려라 흰 독수리
찢어라 나비의 날개
사랑을 맛보아라 피맛을
본 짐승처럼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내 목을 조르고 싶다
저 모든 섬과
악마들을 뛰어넘어 까마귀의
지붕 위로 올라가라 그래서
까마귀의 몸속에 너의
팔다리를 집어넣어라
=============
+ 별에 못을 박다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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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 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곁에 머무를 수는 없는것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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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왔는가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내가 묻자, 남인도 케랄라에서 만난 사두가 말했다.
"난 아무 데서도 안 왔소. 난 언제나 여기서 있었소.
그리고 난 아무 데로도 가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언제나 여기에 있었따는.....
늘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
그것은 잠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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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의 새
히말라야 기슭
만년설이 바라보이는 해발 이천오백 미터
고지대의 한적한 마을에서
한낮의 햇살이 매서운 눈처럼 쏘아보는 곳에서
나는 보았다
늙은 붉은머리 독수리 한 마리
먹이를 찾아 천천히 공중을 선회하다가
까마귀 몇 마리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원래는 자신의 영토였으나
이제는 까마귀들의 하늘이 된 곳에서
홀로 고독하게 날던 붉은머리 독수리
까마귀들의 집중 공격에 잠시 균형을 잃고
마을의 지붕들 위로 추락할 뻔했다
그러나 붉은머리 독수리는 초연하게 피할 뿐
까마귀들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만년설의 흰 눈을 배경으로
더욱 검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까마귀들은
늙은 붉은머리 독수리를 얕잡아보고
사방에서 겁없이 덤벼들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독수리의 눈빛이 한순간 흰 눈에 반사되는 것을
그러나 늙은 독수리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한 바퀴 공중을 선회할 뿐
까마귀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한낮의 태양이 매서운 눈처럼 쏘아보는 곳
원주민들이 히말라야의 새라고 부르는 붉은머리 독수리는
천천히 만년설을 향해 날아갔다
태양도 눈을 녹이지 못하는 그곳
까마귀들은 더 이상 그를 추적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흰 눈에 눈이 부셔서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
+ 두 사람만의 아침
나무들 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여기 이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대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 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 우리가 물가에서
귀 기울여 주고받던 말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새와 안개가 떠나간
숲에서 나는 걷는다 걸어가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옛날의 불꽃을
본다 그 둘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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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질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무에 앉아
자신이 앉아 있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빨리 톱질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듯이.
그리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떨어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은
톱질을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톱질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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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새 떼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을 신으로 모신 유목민들을 생각한다
별들이 길을 잃을까 봐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을 생각한다
수백 년 걸려
불과 얼음을 거쳐 온 치료의 돌을 생각한다
터질 듯한 부레로 거대한 고독과 싸우는 심해어를 생각한다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과
히말라야 골짜기돌에 차이는 나귀의 발굽소리를 생각한다
생이 계속되는 동안은 눈을 맞을 어린 꽃나무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청보리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
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을 생각한다
새의 폐 속에 들어갔던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를 생각한다
가슴에 줄무늬 긋고서 기다림의 자세 고쳐 앉는 말똥가리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둥근 테두리가 마모되는 동전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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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아닌 것들
여기에 둥근 기둥이 있어 아무도 그것을 둘러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흙 위에 솟아나온 뿌리가 있어
그것은 방향 없는 눈
아무것도 아닌 것
발에 채인다 여기
모든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
빛을 갉아먹는 황금색
벌레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새삼 사랑을 공개할 필요는
없으리라 눈 위에 눈 위의 감시자들에게 새삼
나의 애인을 들추어 낼 까닭은 없다
여기
하늘에서는 조용히 구름이 날고 이미
이전에 왔던 이가 또 소리친다
이제 곧 종말이 오리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있음을
안다
눈 속의 감자들, 감자의 죽은
눈들
우리는 소리 없이, 줄지어
검은 나무들 아래로 지나간다
안개, 기둥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한때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것들,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여기에 멈추지 않는 흐름이 있어 우리와 함께
지나간다
소리지른다, 언제나 들리는
소리들
여기에 우리가 서 있어 아무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찬란한 기둥들이 서 있어 아무것도
우리의 찬양을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
+ 내 안의 물고기 한 마리
나는 내 안에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안의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나는 물을 마신다.
내 안의 물고기를 위해.
내가 춤을 추면 물고기도 춤을 춘다.
내가 슬플 때 물고기는 돌틈에 숨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나를 응시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거.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물고기를 행복하게 하는 일.
나는 내 안에 행복한 한 마리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
+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잇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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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겅퀴풀에게 노래함
그것이 내 안에 있다
어지러운 풀냄새가 나는 것으로
그것을 알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나는 그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일종의 모래 장미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그 무엇
나는 들판으로 걸어갔다 내 현기증이
다만 풀냄새 때문이라고
곧 사라질 것이라고
열에 들떠 내가 손을 뻗자
강 하나가 둥글게 뒤채이기 시작했다
나는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내 안에
더 강렬한 무엇을 느낀다
그것이 나에게 명령한다
나무 아래 양팔을 벌리고 서서
태양을 부르라고
그래서 나무를 불태우라고
들판 가장자리에 더 많은 불꽃이 일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구두는 돌들과 부딪혀
맹수처럼 튀어 오른다
어떤 뜻을 가지고 신이
나를 만들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그것은
확실하다 신의 손이 그것과 맞닿아 있다
옷들을 벗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올라
한없이 투명한 빛과 나는 만난다
내 몸 안에 머리 둘 달린
뱀이 있어
내 두 눈으로 혀를 내 어미는 것 같다
그러자 어떤 힘이 나를 흔들었다
소리쳤으나 그 소리는 소리 나지 않고
나는 공중에서 회전하였다
날개 하나가 천천히 돋아나
불붙는 구름 그 끝없는 들판 위에
나를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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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불꽃을 지나온
길을 걷다가 나무 울타리를 넘어
겨울로 들어섰을 때
눈 속에서 봄을 캐내고 있는
두 마리 새를 보았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은
부리에 눈을 묻히고서 이방인인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 발로 초록을 건드리는
이들은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는
현존
문득 나는 깨달았다 이들을
방해하지 말아야겠다고
태양의 불꽃을 지나온 날개들을
나 또한 가시나무 울타리 너머에서
언 땅을 헤집어
봄을 캐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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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와 그밖의 것들에게
감자에게,
만일 내가 감자라면
그렇게 꽉 움켜쥔 주먹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하진 않으리라
어린 바닷게에게,
만일 내가 바닷게라면
그렇게 매순간 삶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기 몸보다 더 큰 다리를 갖고 있진 않으리라
거미에게,
만일 내가 거미라면
그렇게 줄곧 허공에 매달려
초월을 꿈꾸진 않으리라
벌에게,
만일 내가 벌이라면
그렇게 참을성 없이 순간의 고통을 찌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진 않으리라
언덕에게,
만일 내가 저편 언덕이라면
그렇게 보잘 것 없는 희망으로
인간의 다리를 지치게 하진 않으리라
그리고 밤에게,
만일 내가 밤이라면
그렇게 서둘러 베개를 빼 인간들을
한낮의 외로움 속으로 데려가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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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길 없는
인적 드문 오솔길에 놓인
작은 대나무다리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이제는 한 사람의 무게마저 지탱하기 힘든
내가 자주 가는 산책길
작은 대나무다리
내가 가졌던 모든 것과
가지려고 했던 모든 것 사이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언제나 말없이 놓여 있는
작은 대나무다리
눈바람에 시달리고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자신의 무게마저 견디기 힘든
하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나의 작은 대나무다리
그 위에 서서 내려다보면
아래는 아득한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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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은 우리 집에 와서 죽다
새는 공중을 나는 동안 대기를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월의 하루 동안 새가
우리집 지붕 위를 맴돌다가
갑자기 집 뒤의 빈터로 추락했을 때
나는 지구가 한쪽으로 기우뚱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새를 떠받치고 있던
어떤 손이 치워지기라도 한 듯
새가 수직으로 빈터의 민들레밭에 내리꽂히자
우리집 식탁이 기울고
식탁에 놓인 오후의 찻잔이 기울고
순간적으로 찻잔의 물이 엎질러졌다
죽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하려는 듯
추락한 새의 무게는
우리집 뒤의 민들레밭을 누르고
민들레밭은 다시 도시 전체를 누르고
도시는 또다시 도시들로 가득한 세상 전체를 눌렀다
그렇게 해서 잠시 세상의 무게 중심이
한 마리의 새의 죽음의 무게로 이동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새들이 그날 오후
우리집 빈터에 와서 추락하기라도 한 듯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날개들을 떠받치고 있던
어떤 손이 갑자기 치워지기라도 한 듯
지구의 중심이 우리집
민들레의 빈터로
기우뚱하고 이동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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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에서 잠시 류시화라고 불리웠던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별들이 가득 내린 강을 건너다가
그만 별에 발을 찔렸습니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
그 옛날 내가 떠나온 별에게
긴 편지를 씁니다 어떤 영혼은
별에서 왔다는
별에서 와서 고독하다는
그 말을 내 집 지붕에 얹어둡니다
이 짧은 지상의 삶과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띄운 편지가 그 별에 가 닿았는지
내 집 지붕 위에서 별 하나가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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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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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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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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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께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 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을 저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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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_________ * 45
빵
별
꽃등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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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생활
세월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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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자살
속눈썹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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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법
고요한 숲
뮤직 박스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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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내
인생수업
자작나무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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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새
비로 만든 집
입술 속의 새
늑대들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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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못을 박다
안개 속에 숨다
어디서 왔는가
히말라야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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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만의 아침
톱질하는 사람들
되새 떼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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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한 마리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엉겅퀴풀에게 노래함
태양의 불꽃을 지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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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그밖의 것들에게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
새들은 우리 집에 와서 죽다
지상에서 잠시 류시화라고 불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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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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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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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