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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가을

가을 시 모음 3

+ /  허영자

이 맑은 가을날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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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김경동

불타는 노을 한아름
언덕길 숨찬 걸음

오르다 돌이키면
잡히는 허설(虛設)

분노일까
회한(悔恨)이까

발길 돌려 내려오는
가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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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 인지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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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 이문길

지나가는 햇빛을 보려고
나 낙엽 하나를
들치고 나왔네

따스한 햇빛 내리는
바위에 혼자 앉아
젖은 나래를 말렸네

누가 나 이세상
나 여기 산다고 아는 사람 있을까
낙엽 지는 소리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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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 공재동

가을
나무들
엽서를 쓴다

나뭇가지
하늘에 푹 담갔다가
파란 물감을
찍어내어

나무들
우수수
엽서를 날린다

아무도 없는
빈 뜨락에

나무들이
보내는
가을의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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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 이해인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
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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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 / 안도현

보고 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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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 / 이찬용

이제 시작입니다

흙냄새 제법 살갑고
이만큼
고향의 언저리에서

위만 보고
시새워
억척을 떨던

무거운 짐
내려놓으니

바알갛게
화색이 돌고
손 흔들며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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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 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하던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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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볕 / 박노해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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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밤 / 윤석증

문틈에서
드르렁드르렁
"거, 누구요?"
"문풍지예요. “

창밖에서
바스락바스락
"거, 누구요?"
"가랑잎예요. “

문구멍으로
기웃기웃.
"거, 누구요?"
"달빛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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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밤 / 하영순

때로는
죽도록 얄밉고
죽을 만치 그립다

탁 트여
넓고 허한 가슴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침묵 속에

사늘한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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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 / 김근이

세월을 비집고 내려오는
그리움 같은 가을비
젖어오는 촉감이
채찍같이 마음을 깨운다

사랑은
가을빗속을 해매다
돌아오는 나그네

휘휘 바람을 등에 업고
가을을 건너가는
억새꽃 파도 위로
비에 젖은 세월이 건너가는 소리

오랜 세월
그리움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
머물지 못해
떠나고 비워진 빈자리
그 공허함을 적셔주는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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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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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엔 / 추경희

시간이 가랑잎에 묻어와
조석으로 여물어 갈 때
앞 내 물소리
조약돌에 섞여
가을 소리로 흘러내리면
들릴 듯 말듯
낯익은 벌레소리
가슴에서 머문다
하루가 달 속에서 등을 켜면
한 페이지 그림을 접 듯
요란했던 한 해가
정원 가득 하늘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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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 이찬용

코스모스
꽃 흔들며 온다

화안히
웃으니

어쩜
저리 고울꼬

하늘
푸른 숨 돋운다

쑥부쟁이 구절초...
해바라기 접시꽃 ...


밤송이 터지는 소리 ...

마음들
가득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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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잎 / 도종환

가을 가고 찬바람 불어 하늘도 얼고
온 숲의 나무란 나무들 다 추위에 결박당해
하얗게 눈을 쓰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도
자세히 그 숲을 들여다보면
차마 떨구지 못한 몇 개의 가을잎 달고 선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못 버린 나뭇잎처럼
사람들도 살면서 끝내 버리지 못하는
눈물겨운 기다림 같은 것 있다
겨울에도 겨우내 붙들고 선 그리움 같은 것 있다
아무도 푸른 잎으로 빛나던 시절을 기억해주지 않고
세상 계절도 이미 바뀌었으므로
지나간 일들을 당연히 잊었으리라 믿는 동안에도
푸르른 날들은 생의 마지막이 가기 전 꼭 다시 온다고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 잎이 돋고 꽃 피고
설령 그 꽃 다시 진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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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절기 / 강승남

나무는 이제
완연한 가을빛이다
여름 내내 뜨겁게 지켜온
푸른 서슬 잃어버리고
온통 노오랗게 물이 들었다

세상에,
변절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가을빛 물든 거리가 눈부시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엔
나도 그만
나를 배반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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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는 / 강인호

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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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시 / 장석주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주시고
부자들에게선 귀한 걸 빼앗아
재물이 하잖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
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스님과 사제들은
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하거나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
더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
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
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
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
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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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일 / 정일근

풀잎 등에 맺히는 이슬 한 방울이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풀들은 땅으로 휘어지며 겸허해지고
땅은 씨앗들을 받아 품으며 그윽하게 깊어진다
뜨거웠던 황도의 길도 서서히 식어가고
지구가 만든 그림자 속으로 달이 들어와 지워지듯
가을 속으로 걸어가면 세상살이 욕심도 무채색이 된다
어두워지기 전에 아궁이를 달구어놓아야겠고
가을별들 제자리 찾아와 착하게 앉았는지
헤아려보는 것이 나의 일, 밤이 오면
나는 시를 읽으며 조금씩 조금씩 쓸쓸해질 것이니
시를 읽는 소리 우주의 음률을 만드는 시간
가벼워지기 위해 나는 이슬처럼 무거워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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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일기 / 이해인

가을일기
잎새와의 이별에
나무들은 저마다
가슴이 아프구나

가을의 시작부터
시로 물든 내 마음
바라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조용히 흔들리는 마음이
너를 향한 그림움인 것을
가을을 보내며
비로소 아는구나

곁에 없어도
늘 함께 있는 너에게
가을 내내
단풍 위에 썼던
고운 편지들이
한잎한잎 떨어지고 있구나

지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동안
붉게 물들었던 아픔들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려
새로운 별로 솟아오르는 기쁨을
나는 어느새
기다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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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저녁 /도종환

기러기 두 마리 날아가는 하늘 아래
들국화는 서리서리 감고 안고 피었는데
사랑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픔이구나
바람만 머리채에 붐비는 가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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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편지 / 김덕성

지루한 기다림
실바람 가슴을 열며
살짝 다가와 들려주는
바람의 속삭임
-임이 온데요
애타게 기다리는 임이
이제야 오나 보다
밉던 햇살도 마중가려 나서고
깨끗이 길을 닦아 놓고
기다리던 날
가을이 왔다고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전해 주네
가을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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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햇살 / 정연복

파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가을 햇살은

꼭 어릴 적 엄마의
따스한 손길 같다.

춥지 말라고
아프지 말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사랑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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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햇살 / 정연복

바다같이 맑고 푸른
저 하늘에서 오는

밝고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서 있으면

쓸쓸히 어둡던 마음도
금방 환해진다

다림질한 옷같이
마음의 구김살이 펴진다.

나뭇잎을 고운
단풍으로 물들이듯

내 마음도 새 희망의
빛으로 물들이는

가을 햇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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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을에 / 이찬용

가을의 시를 읽습니다
가을의 노래를 뇝니다
추수의 기쁨 뒤란의 가슴이 시린
숨결입니다

그러나
슬픔을
몇 시간을 울어 버리고 난 다음에는
후련하여지기까지 하는 ......
체험해 보셨습니까

가을은

섭리
신비의 카타르시스

어쩌다 울울한 날은
가을의 시를 외우십시오
가을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때로 눈물을 흘리셔도 좋습니다

문득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란
하늘을 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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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일미음 /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축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 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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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래요 / 박목월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이래요
하늘 높고 물 맑은 가을이래요
울타리 수숫대를 살랑 흔드는
바람조차 쓸쓸한 가을이래요

단풍잎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바람은 가을을 싣고 온대요
밤이 되면 고운 달빛 머리에 이고
기러기도 춤추며 찾아온대요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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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오다 / 이하

오동나무 바람에 놀란 남아의 마음은 괴롭다
희미한 등잔불, 베짱이가 쓸쓸히 베를 짜는구나

누군가, 대쪽으로 엮은 이 시집을 읽어주어
화충에게 좀먹혀 가루가 되게 하지 않을 이가

생각에 끌려, 오늘 밤, 창자가 꼿꼿하게 되리!
비가 차가운데, 향기로운 넋이여, 서생을 조상하노라!

가을 무덤에서 귀신은 포조의 시를 읊는다
한 맺힌 피는 천 년 동안 흙 속에서 푸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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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온다 / 박이도

9월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할 심사
중심을 잃고 떨어져갈
적, 황의 낙엽을 찾아
먼 사원의 뒤뜰을 거닐고 싶다
잊어버린 고전 속의 이름들
내 다정한 숨소리를 나누며
오랜 해후를, 9월이여

양감으로 흔들리네
이 수확의 메아리
잎들이 술렁이며 입을 여는가

어젯밤 호숫가에 숨었던 달님
혼삿날 기다리는 누님의 얼굴
수면의 파문으로
저 달나라에까지 소문나겠지

부푼 앞가슴은 아무래도
신비에 가려진 이 가을의 숙제

성묘 가는 날
누나야 누나야 세모시 업어라
석류알 터지는 향기 속에
이제 가을이 온다
북악을 넘어
멀고 먼 길 떠나온 행낭 위에
가을꽃 한 송이 하늘 속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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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옛집 / 박주택

가을의 옛집 저 곳, 구부러진 발톱을 바라보며
스산하게 등을 기대던 가을의 번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흙 틈에 끼어 쓰린 소리를 내며 부서지던 곳
청춘의 집이 그렇게 구부러져 있었으니
낮이 가고 밤이 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다, 어쩔 것인가
누가 저 집의
누룩 슬던 방을 기억할 것이다
아직도 숨골에 오목하게 남아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상처들의 누옥
나뭇가지가 스산하게 그리움을 부추겨 세우는
또 다른 가을의 땅에
아물지 못한 상처들만 모여 검은 잎사귀로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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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유혹 / 박인환

가을은 내 마음에
유혹의 길을 가르친다
숙녀들과 바람의 이야기를 하면
가을은 다정한 피리를 불면서
회상의 풍경을 지나가는 것이다

전쟁이 길게 머무른 서울의 노대에서
나는 모딜리아니의 화첩을 뒤적이며
적막한 하나의 생애의 한 시름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한 순간
가을은 청춘의 그림자처럼 또는
낙엽 모양 나의 발목을 끌고
즐겁고 어두운 사념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즐겁고 어두운 가을의 이야기를 할 때
목메인 소리로 나는 사람의 말을 한다
그것은 폐원에 있던 벤치에 앉아
고갈된 분수를 바라보며
지금은 죽은 소녀의 팔목을 잡던 것과 같이
쓸쓸한 옛날의 일이며
여름은 느리고 인생은 가고
가을은 또다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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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전설 / 이찬용

겨울을 견디고

여름
웃다 보면

바람과 함께
단풍 잎
바알간 열매
가을의 전설은 열린다

고운 이들이
손잡고
흔들며
뜨거운 전설을 날린다

전설은
호 -
소리치는
별이다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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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편지 / 황동규

우리는 정신없이 이어 살았다
생활의 등과 가슴을 수돗물에 풀고
버스에 기어오르고, 종점에 가면
어느덧 열매 거둔 과목의 폭이 지워지고
미물들의 울음소리 들린다

잎 지는 나무의 품에 다가가서
손을 들어 없는 잎을 어루만진다
갈 것은 가는구나
가만히 있는 것도 가는구나
마음의 앙금도 가는구나

면도를 하고 약속 시간에 대고
막차를 타고 밤늦게 돌아온다
밤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서
부서진 얼굴을 만지다 웃는다
한 번은 문빗장을 열어놓고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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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풍경 / 이상화

맥 풀린 햇살에 번쩍이는 나무는 선명하기 동양화일러라
흙은, 아낙네를 감은 천아융 허리띠 같이도 따습어라

무거워 가는 나비 나래는 드물고도 衰하여라
아, 멀리서 부는 피리 소린가! 하늘 바다에서 헤엄질하다

병들어 힘 없이도 섰는 잔디풀 ㅡ 나뭇가지로
미풍의 한숨은, 가는細 목을 매고 껄떡이 어라

참새 소리는, 제 소리의 몸짓과 함께 가볍게 놀고
온실 같은 마루 끝에 누운 검은 괴의 등은, 부드럽게도 기름져라

청춘을 잃어버린 낙엽은, 미친 듯, 나부끼어라
서럽게도, 길겁게 조으름 오는 적멸寂滅이 더부렁거리다

사람은, 부질없이, 가슴에다, 까닭도 모르는, 그리움을 안고,
마음과 눈으로, 지나간 푸름의 印像을 허공에다 그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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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향기 / 김현승

남쪽에선
과수원의 임금林檎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

산 위에 마른 풀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傷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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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하늘은 / 신계옥

물빛 속에 담가놓은
어수선한 상념들이
쪽 빛 맑은 미소를 띠면

하얀 뭉게구름
탐스럽게 올려두고
당신은 내게
슬픔일랑 잊으라 합니다

버석이는 이파리
모서리마다
부서지는 아리움은

가을 하늘
푸른 솔기에 접어둔 채
당신은

젖는 낙엽
스러져 가는 길도
맑고 밝게만 살아가라 합니다

빛 고운 단풍처럼
환한 눈빛으로
아름다운 사랑만 간직하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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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을에 / 강인호

마음 둘 곳 없는 날
내딛는 걸음

가을 안개 사이로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이런 이별 하나가
준비될까

하릴없이 낙엽은
떨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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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 아침 / 김덕성

아침 산책을 나서는데
여보, 가을이 왔나 봐요 쌀쌀하네요
아내의 음성이 들린다
냇가 어구에 서니
뜻하지 않게 홍백색 나팔꽃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하는데
날씨는 차지만 춥지 않다
아내가 고맙다
영롱한 이슬
땡그르르 구르며 재롱을 부리고
오늘을 기다렸는지
가을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
가을인가 봐
시리게 빛나는 가을빛
사뜻하게 물들이는 환희의 초가을
내 마음에도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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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들길에서 / 류정숙

가을 들길을 거닐면
낙일을 등에 지고 거닐면
외로움이 동행이다.

바람으로는 헹궈낼 수 없는
햇살로는 말려낼 수 없는
그리움이 동행이다.

외롭다는 건
동행인이 없음이 아니요
함께할 이를 찾고자 함이라.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가을 들길을 걸어 보면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홀로 거닒은
누구와 함께이기를 원하는지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알기를 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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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원수 같은 / 정현종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이여, 원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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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햇살에게 / 정연복

건조대에 널어둔
가지각색 빨래들을

딱 두어 시간이면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더없이 밝고
따스한 가을 햇살아.

물기에 촉촉이 젖어
축 늘어진 옷같이

회색빛 슬픔과 외로움에
잠겨 있을 때가 많은

나의 가슴 나의 영혼도
환히 비추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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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의 그리움 / 송영아

그대와 매일을 함께해도
잠깐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와도
그대가 보고싶은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그대 생각으로
그대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애닮은 그리움을 아시나요

가을날에 외로움도 그대를 바라보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그대입니다

언제나 따듯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그대의 사랑에 감동에 눈물을 흘립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그대 사랑으로
오늘 하루도 행복한 그리움에 날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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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밤(栗)을 받고 / 이해인

내년 가을이 제게 다시 올지 몰라
가을이 들어 있는 작은 열매
밤 한 상자 보내니 맛있게 드세요’

암으로 투병 중인
그대의 편지를 받고
마음이 아픕니다.

밤을 깍으며
하얗게 들어나는
가을의 속살

얼마나 더 깍아야
고통은 마침내
기도가 되는걸까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그대의 겸손을
모든 사람을 마지막인 듯
정성껏 만나는 그 간절한 사랑을
눈물겨워하며 밤 한 톨 깎아
가을을 먹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그 웃음
아끼지 마시고
이 가을 언덕에
하얀 들국화로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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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사랑했다 / 송영아

고독을 안겨주며
그리움에 몸부림치게 하는
가을에 입맞춤 한다

가슴속에 들어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낙엽
가을을 나는 사랑했다

낙엽 한 잎 주어서
절절한 내 사랑 담게 하고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어 좋았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내 마음 설레여 행복했고
물감도 없이 그림이 되어 좋았다

떠나가는 가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 눈물이 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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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가는 구나 / 김용택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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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나무 한 그루 / 안도현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여야겠다고
가을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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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아름다운 건 / 이해인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이 그리운 얼굴이
봄 여름 헤매던 연서들이
가난한 가슴에 닿아
열매로 익어갈 때
몇몇은 하마 낙엽이 되었으리라
온종일 망설이던 수화기를 들면
긴 신호음으로 달려온 그대를
보내듯 끊었던 애잔함
뒹구는 낙엽이여
아, 가슴의 현이란 현 모두 열어
귀뚜리의 선율로 울어도 좋을
가을이 진정 아름다은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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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빛깔 닮은 커피 / 이해인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잎 두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오

낙엽빛깔 닮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어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우리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 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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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물드는 이유 / 한승수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높아진 하늘만큼
잠자리의 날갯짓이 힘겹다

붉게 타오르며
하루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을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멸의 순간 빛을 발하는가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남은 날들을 채워 가야 한다

잎을 떨구기 전
단풍이 곱게 물드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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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노을 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
+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 이해인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익어서 떨어집니다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을 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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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 김영남

이제 그만 툭툭 자리를 털고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가을이 문턱에서 가볍게 노크해 올 때

대지는 한여름의 열을 뿜고
초록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간에 우리는 벌떡 일어나
풀어놓은 생각들을 서둘러 거두어야 한다

한결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불어와 창들을 끝없이 열어놓고
대문 바깥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출발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들녘도 새로운 손님들을 마중 나가는 시간
이런 시간, 이런 지점에 갇혀 우리는
언제까지 취하여 있을 수는 없다
다음 계절에 지각하기 전에
아쉬운 기억들이 옷깃을 잡아도 우리는
곤충처럼 눈을 부릅뜨고
등불을 하나씩 붙들고
깨어 있어야만 한다

문턱 앞에는 벌써
한 송이 국화가
우리에게
가을을 온몸으로 던져오고 있다


________* 54

감 /  허영자
가을 / 김경동
가을 / 마종기
가을 / 이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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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 공재동
낙엽 / 이해인
단풍 / 안도현
단풍 / 이찬용
------------------
가을날 / 김현성
가을볕 / 박노해
가을밤 / 윤석증
가을밤 / 하영순
---------------------
가을비 / 김근이
가을비 / 도종환
가을엔 / 추경희

가을은 / 이찬용
----------------------
가을잎 / 도종환
변절기 / 강승남
가을에는 / 강인호
가을의 시 / 장석주
-------------------------
가을의 일 / 정일근
가을일기 / 이해인
가을 저녁 /도종환
가을 편지 / 김덕성
--------------------------
가을 햇살 / 정연복
가을 햇살 / 정연복
이 가을에 / 이찬용
추일미음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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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래요 / 박목월
가을이 오다 / 이하
가을이 온다 / 박이도
가을의 옛집 / 박주택
----------------------------
가을의 유혹 / 박인환
가을의 전설 / 이찬용
가을의 편지 / 황동규
가을의 풍경 /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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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향기 / 김현승
가을 하늘은 / 신계옥
어느 가을에 / 강인호
초가을 아침 / 김덕성
----------------------------
가을 들길에서 / 류정숙
가을 원수 같은 / 정현종
가을 햇살에게 / 정연복
가을날의 그리움 / 송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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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밤(栗)을 받고 / 이해인
가을을 사랑했다 / 송영아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단풍나무 한 그루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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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아름다운 건 / 이해인
낙엽빛깔 닮은 커피 / 이해인

단풍이 물드는 이유 / 한승수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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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 이해인
가을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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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 모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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