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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아 ~

임영준 2

# 임영준 시

 

4월 그러나

활개를 펼치고
저 푸른 하늘을
날아 보겠다고

겹진 가슴에
흰 띠를 두른다고

바람 든 산하에
향기 그득하지만

노을이 검붉다
획이 너무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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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기도

이 햇살이
절실한 이들에게
희망으로 비치게 하소서

민생을
도구로만 여기는
야망으로 뭉친 자들에겐
준엄한 형벌을 내리소서

부디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북녘의 동포들이
속히 해방되게 해 주소서

이 포근하고
아름다운 봄날이
세상에 고루 스며들어
진정한 낙원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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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초대

입석밖에 없지만
자리를 드릴게요

지나가던 분홍바람에
치마가 벌어지고
방싯거리는 햇살에
볼 붉힌답니다

성찬까지 차려졌으니
사양 말고 오셔서
실컷 즐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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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그대
 

흥건한 그대 사랑 때문에
번듯해진 것 같습니다.

눈부신 은총으로
함께 자리한 내가
무척 대견해 보입니다.

갈피마다
농후한 봄빛이 새겨지고
못다 핀 꽃들이
따라 술렁이지만
심지를 세우고
활활 타오르는 그대 앞에선
왠지 투명해지고만 싶습니다
===============
5월의 그대여

그대여
눈부신 햇살이 저 들판에
우르르 쏟아지고
계곡마다 초록선율 넘쳐흐르는데
아직도 그리움에 목말라
웅크리고만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소박한 아카시아도 불붙는 날들인데
가시를 두른 장미도 별이 되는 날들인데
어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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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산이 춤춘다
덩실덩실
앞섶 풀어헤치고
열락에 젖는다

강물 도도하다
미지의 세상으로
거침없이 굽이친다

나는 취했다
봇물 터진 유월에

덩달아 꿈꾸고
곁 붙어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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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꿈


깨물어 볼까
퐁당
빠져버릴까

초록 주단
넘실대고
싱그러운 추억
깔깔거리는데

훨훨
날아보아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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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향기

찬란한 아침이면
족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도
응어리진 채 떠난 수많은 이들에겐
짙은 녹음조차 부끄러운 나날인데
남은 자들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게다가 어찌 모두
빨간 장미만 쫓고 있는가

그래도 묵묵히
황허 한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건
이름 모를 나무와 한결같은 바람인데
가슴을 저미는 것은 풀잎의 노래인데

유월에 들면 잠시라도
영혼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
6월의 그대에게

그대의 갈피사이로
파랗게 끼어들겠습니다
세월을 탓했다면
마음껏 나를 탐하세요
눈물이 말라버렸던가
가슴이 식었다면
더 많이 들이키시고
행장을 풀었다가
다시 추스릅시다
갈 길이 멀고 험한데
잠시라도 흉금을 터놓고
기대어 앉았다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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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땡볕이 외려 즐겁고
너울이 대수롭지 않아

벌어진 틈새로
감로수가 넘쳐흘러

억수 비에 낙담하지만
기다림도 절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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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시

아직은 약간 설익었으니
과하게 누리려 하지 마라
바람의 유혹만으로도
세상을 다 품겠다

무성한 초록의 영지는
노래가 끊이지 않고
호젓한 몸짓만으로도
영감을 투영하지 않는가

잠시라도 손 놓고 있으면
다그치고 지지고 볶아
초라한 냇둑이라도
못다 한 청춘을 우려내겠다

이제 도도한 계곡이 되자
숨 가쁜 바다가 되자
이 여름에 녹아들어
응감의 신전에 들자

음울한 세포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는 너울을 타고
지저귀는 날들이리라
맥을 잇는 진한 열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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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이야

성큼 다가선 태양이
교감을 원한단다
아이야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려가려무나
산이면 산
강이면 강
바다면 바다
모두가 활짝 열려 있지 않니
마음껏 소리치고
들이마시고
청춘을 구가하려무나
아이야
가뿐한 7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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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길목에서

햇볕은 열망을 품고
소나기는 물꼬를 튼다

막힌 여울이 무겁고
기울어진 추상이 늘어져도

일그러진 일상을 두드리고
허술한 노정을 다듬어

알찬 열매가 되리니
넘쳐흐르는 물결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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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이제 또 한 번의 축제가 열리고
신명 나는 뒤풀이가 있겠지

술잔 속에서 출렁이던
수많은 청춘들이
한꺼번에 폭발할 거야

활짝 트인 바다에서
은밀한 계곡에서
비우고 다시 채워지겠지

여태 화려한 방황을 더듬는
뻐근한 가슴들은
식어버린 추억만 쪽쪽 빨면서
내내 감내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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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기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꼭 필요한 곳에만 닿게 하소서

가끔씩 소나기로 찾아와
목마른 이들에게 감로수가 되게 하소서

옹골차게 여물어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소서

보다 더 후끈하고 푸르러
추위와 어둠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소서

갈등과 영욕에 일그러진 초상들을
싱그러운 산과 바다로 다 잡아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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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만 같아라

땡볕에 좀 널었느냐
후덥지근하긴 했지만
구들만 지고 누워
누굴 탓하고만 있진 않았겠지
허접한 나부랭이들에 매여
산천을 외면한 건 아니겠지
상궤를 약간 벗더라도
8월만 같아라
진솔하게 다 토해버려
맺힌 것은 덜하더라
쌓이고 쌓아
복장이 넘치더라도
다시 올 때까지 꾹 눌렀다가
후련하게 환치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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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초상

야금야금 베어먹어도
살금살금 기어 다녀도
청춘은 간다

넘실거리는 바다
흐르는 살별을 따라
영그는 섬

다시 한 번
익을 만큼 익었으니
기다림의 선을 그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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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여정

비울 만큼 비웠으니
욕심 좀 내어도 좋으리

별도 밤도 가까우니
담담히 조우할 수도 있겠지

아무리 매정한 날들도
잠시 묵상에 들지 않을까

향기 고픈 나그네는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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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오면

되돌릴 수 있을까
동구 밖 웅크린 그리움을

뜨거운 열정의 밤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내내 시름하던 추억들이
잘 영글어갈 수 있을까

9월이 오면 우리
보다 깊이 스며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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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혹시
다 마셔버렸나요
빈 잔을 앞에 두고
후회하고 있나요
옆구리가 시리고
뼈마디가 아린가요

차분히 지켜보세요
저 깊은 하늘소(沼)에서
붉은 술이 방울져 내릴 겁니다
다시 잔을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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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러나
5월의 기도
5월의 초대
5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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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그대여
6월
6월의 꿈
6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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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그대에게
7월
7월의 시
7월이야
--------------
7월의 길목에서
8월
8월의 기도
8월만 같아라
---------------
8월의 초상
9월 여정
9월이 오면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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