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
나와 가장 가까운 그대 슬픔이
저 강물의 흐름이라 한들
내 하얀 기도가 햇빛 타고 와
그대 귓전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나 그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대 또한 내 꿈을 열 수 없으니
우리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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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삶은 순전히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시인이 있고
세상이 메말랐다고 하는데도
유쾌한 사랑 의외로 많다.
시는 언제나 칼이어야 할까? 천도의 불에 연도 된
사랑도 그렇게 깊은 것일까?
손톱이 빠지도록 파보았지만
나는 한번도 그 수심을 보지 못했다.
시 속에는 언제나 상처뿐이었고
사랑에도 독이 있어 한철 후면 어김없이
까맣게 시든 꽃만 거기 있었다.
나도 이제 농담처럼 가볍게
유쾌하게 하루 해를 보내고 싶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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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네가 울고 있다.
오랫동안 걸어 둔 빗장
스르르 열고
너는 조용히 하늘을 보고 있다.
네 작은 몸 속 어디에 숨어 있던
이 많은 강물
끝도 없이 흐르는 도끼 소리에
산의 어깨도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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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길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발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신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 를 발음해 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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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떼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가지고
빛으로 포효(咆哮)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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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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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벽(海壁)
눈물이 우리들 첫 숟갈의 밥이었던 것은 알지만
그것이 바다가 되어
지상을 칠 하고도 반이나 덮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가슴마다 물결인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저 많은 눈물을 누가 다 흘렸을까
한껏 차오르다 기어이 무너지는 낮과 밤
밀려가고 밀려오는
미친 술병들의 바다
거대하게 떠밀리는 언어의 물거품들
어느새 다 마시고 어디로 떠났을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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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
샛별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날에도
내 어깨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손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이름이 덧없음을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젊음은
그 지느러미 속을 헤엄치는
짧은 감탄사였다
온몸에 감탄사가 붙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 잎사귀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광풍의 거리
꿈과 멸망이 함께 출렁이는
젊음은 한 장의 플랜 마드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서 너와 함께
낡은 어둠이 되고 싶었다
촛불밖에 스러지는
하얀 적막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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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꽃길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명교리에 가보리라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면
이 세상 끝에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
내 이름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
어린 시절 오줌을 싸서
소금을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
내 수치와 슬픔 위에
은빛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
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
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
차가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서
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
넘실대는 여름바다에
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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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의 창
나는 내 몸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젊은 날엔 내 몸 안에
기운 센 짐승 한 마리 살고 있어
느닷없이
밤에도 울었는가 하면
사흘 낮 사흘 밤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아
우르르 모닥불로 타올랐는데
오늘은
누워도 누워도
더 눕고 싶은
피가 삭은 도사 하나 들어앉아
뜻 없는 눈물이 나
쫄쫄 떨구고 있으니
나는 이제 내 몸을
믿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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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소식
아버지, 저 여기 살아 있어요
그날 제 품에 숨긴 칼로 낙랑의 북을 찢을 때
제가 찢은 것은
적이 오면 저절로 운다는 자명고가 아니었어요
제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손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찢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선명합니다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후들거리며
맹목 속에 온몸을 던진
저는 그때 미친 바람이었어요
호동은 달처럼 수려한 사내
하지만 북을 찢고 제가 따른 건 호동이 아니었습니다
제 사랑은 전쟁의 아찔한 절벽에 핀 꽃, 세상에
파멸밖에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니요
검은 보자기 홀로 뒤집어쓰고
손에 쥔 칼 높이 들어 북을 찢을 때
하늘의 별들 우르르 떨던
그 캄캄한 절망만이
온전히 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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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호텔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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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 사랑
어디에서 이토록 뜨거운 생명을 만나랴
참혹한 추락이 예비되었지만
불이 있어
지상은 늘 아름다웠다.
감히 수천의 날개를 파닥이며
별을 떨어뜨리며
저 무상을 향해 무릎을 펴는
불이여, 네 이름이 아니라면
어찌 영원과 초월을 꿈꾸랴
네 심장으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파멸과 맞서는 사랑을
우리가 감히 떠올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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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신고
사랑은 자주 불법 위에 터를 닦고
행복은 무허가 주택이기 쉽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철거반이 오기 전에
마치 유목민의 천막처럼
이내 빈터만 남으니까
가끔 불법 유턴을 하여
위반과 비밀 위에 터를 닦지만
사랑을 신고할 서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진실로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문득 이 도시의 모든 평화가 위조 같다
어떤 사랑으로 한번
창렬하게 추락할 수 있을까
맹목의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볼까
사람들이 가끔
목젖을 떨며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 진정한 고통, 진정한 희망은
어떤 서류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오늘 밤 그런 생각을 해본다
-----------------
+ 손의 고백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의 손이 언제나 욕망을 쥐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거짓임을 압니다
솨아솨아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무엇을 쥐었을 때보다
그저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음을 압니다
처음 다가든 사랑조차도
그렇게 흘러 보내고 백기처럼
오래 흔들었습니다
대낮인데도 밖은 어둡고 무거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
숨죽여 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욕망도 없이 캄캄한 절벽
어느새 초침을 닮아버린 우리들의 발걸음
집중 호우로 퍼붓는 포탄들과
최신식 비극과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매장된 동물처럼
일어설 수도 걸어갈 수도 없어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솨아솨아 흘려보낸 작은 오솔길이
와락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 지금은 밤
사랑이여
지금은 밤
바람이 흔들더라도
입다물기예요.
그냥 무성하기예요.
멀리 보면
서로가 별이 되기예요.
-------------------
+ 길을 떠나며
너희들 멀어져라
등 돌려라
고뇌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허허로운 불모의 땅으로
홀로 가리라
유리 조각 날카로운 모래의 나라
십 년 전인가 십오 년 전인가
단 한 번 비가 쏟아졌다는
그 꽝꽝한 땅에 가서
배가 고플 때마다 목이 탈 때마다
모래를 파먹으며
천 년 수심을 찾아가리라
눈뜰 수도 없을 만큼 캄캄한
절벽을 맨손으로 두드려
대지의 숨결소리를 들어 보리라
사막을 뚫고 나오는
푸른 별 하나를 만날 때까지
그 별이 내 가슴에 숨결로
살아오를 때까지
너희들 가까이 오지 마라
행여 내게 한 잔 물을 주지 마라
철저히 홀로가 아니면
이곳엔 쥐똥나무 한 그루 살지 못하리니
--------------------
+ 눈물 흘리기
항아리에 받았더라면
열두 번 머리를 감고
열두 번 목욕을 하고도 남았을
나의 눈물을
오늘은 키 큰 나무 무성한 잎에다
알알이 매달아 두리
바람 불면 후드득 떨어져
풀들의 발가락 하얗게 씻어주리
그 힘으로 풀들이 일어서고
땅속 깊이 새로 강이 태어나고
지난해던가 떠나버린 봄도 돌아오리
지상에 세운 누구의 집이
풀잎 아닌 것이 있으랴
이 절벽이 끝나고 너 떠날 때
헛발 딛지 않도록
나의 눈물을 키 큰 나무 무성한 잎에다
알알이 매달아 두고
바람 불면 후두둑 허공을 두드리리
지상에 초록길이 열리게 하리
--------------------
+ 돌아가는 길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란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
+ 목숨의 노래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
+ 물 젖은 엽서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다신 껴안구 싶었어요.
발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두근거리며
만져 보고 싶었어요.
하늘로 칫솟아오르는
수천 방울의 파도로 부서지며
꿈꾸고 싶었어요.
바다 끝에서
죽고 싶었어요.
------------------
+ 아름다운 곳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 잊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
--------------------
+ 화로운 풍경
대낮에 밖에서 돌아온 한 남자가
넥타이를 반만 푼 채
거실 소파에서 졸고 있다.
침을 조금 흘리며 가랑이를 벌리고
나와 같은 주걱으로 밥을 퍼서 먹은 지
20년이 넘은 남자
가끔 더운 체온을 나누기도 하지만
여전히 끌려온 맹수처럼
내가 만든 우리 주위를 빙빙 도는 남자
비가 오는 날엔 때로
야성의 습성을 제 새끼들을 향해
으헝으헝 내지를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나는 다소 위선으로 살기로 했다.
증류수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적당히 불순한 것도 좋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숱한 모반으로 저녁밥을 지었다.
그 남자가 조금 후 오후 1시가 되면
어떤 젊은이의 결혼식 주례를 설 것이다.
결혼은 두 남녀가 한 개의 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상징을 써서
축복할 것이고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점잖게 훈계할 것이다.
한 남자가 대낮에 들어와 넥타이를 반만 푼 채
침을 조금 흘리며 소파에서 졸고 있다
-----------------------
+ 그대 만난 이후
날 흔들지 마세요
사랑은 노동 중에서도 중노동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그 참혹한 소모를 아시잖아요
나도 이제 세상 사람들처럼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어요
그대 만난 이후
내가 마신 건 공기가 아니었어요
숨쉬기가 너무 아팠어요
끝없는 고통을 끝없이 기뻐하는
참혹한 상승과 몰락이 거기 있었어요
----------------------
+ 꼬리를 흔들며
비밀이지만 나의 엉덩이에 꼬리가 하나 생겼네
이렇게 고백하면 사람들은
당신도 이젠 기교가 제법 늘었다고
말하겠지만
엉덩이를 직접 보여드릴 수도 없고
안 보이는 것은 그냥 믿어주는 게 상책이지
결국 날개는 안 생기고 꼬리가 생겼네
나는 이 꼬리가 싫지 않네
은근히 한 번씩 건드려보기도 하지
날개는 위험하지만
꼬리는 잘 흔들면 출세도 한다지 않는가
꼬리라는 말이 우선 맘에 드네
꼬리 꼬리 하고 입술을 자꾸 오므렸다 펴면
매우 인간적인 재미에다
꼴찌나 밑바닥이 주는 안도감마저 있어
본질에 닿은 듯
패잔병의 흉터 같은
아니 귀여운 여우 같은 꼬리
사랑하는 이 앞에서 슬쩍 흔들면
이 꼬리 붙잡으며 제발 떠나지 마라
애원해 줄까
오, 비너스에게도 없는 꼬리
나에게 생겼네
이제 이 꼬리 흔들어 당신을 잡아볼까
=============
+ 벌레를 꿈꾸며
한번쯤 벌레를 꿈꾼 적이 있다면
이제 책벌레보다 애벌레가 되고 싶네
검은 활자를 갉아먹고
홀로 꿈틀거리며
집 한 채도 짓지 못하는 책벌레보다
휘청거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초록 잎을 뗏목 삼아
하늘을 기어가는 애벌레가 되고 싶네
돈벌레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겁이 나고
열매란 열매는 죄다 먹어치우고
모든 곳에 구멍을 뚫어놓는
식욕도 두려워
한 번쯤 벌레를 꿈꾼 적이 있다면
이제 애벌레가 되고 싶네
결국 사랑하는 이의 심장 속에 사는
작고 아름다운 각시별 같은
----------------------
+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은
창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오래오래 홀로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합니다."
풀꽃처럼 작은 이 한마디에
녹슬고 사나운 철문도 삐걱 열리고
길고 긴 장벽도 눈 녹듯 스러지고
온 대지에 따스한 봄이 옵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것입니다
-----------------------
+ 흐름에 대하여
바다에 가서
바다가 되고 싶다.
참으로 흐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흐름의 숨결로 키워낸 진주는
왜 슬픔처럼 영롱한 것인지
알고 싶다.
하늘은 왜 우리에게
햇살과 함께
자유를 주었는가.
우리들은 왜 흐르는가.
바다에 가서
바다가 되지 못하고
날개가 되지 못하고
왜 약속처럼 산으로 가는가.
산으로 가는가.
한 벌 죽음으로 자유와 햇살 빼앗기고
다만 혼자 제 목숨 갖고 가는가.
--------------------------
+ 땅에서 나온 사랑
아들아, 너를 어이 땅에 묻으리
꽝꽝한 땅에다 네 맑은 눈을
아침 햇살 빛나던 은구슬 치아를
벌써 책장 넘기던 의젓한 일곱 살
아까운 내 보배를 어이 묻으리
하늘이 가라앉고
땅 위의 모든 온기가 사라졌도다
이 목숨 끊어지는 날까지
다시는 입을 일 없는 아비의 비단 도포
언 땅에 깔고
올올이 애통한 어미의 속저고리 벗어
너를 싸노니
너 죽인 병도 여기까진 따라오지 못하리
어미 아비 검은 숯이 되어
천 길 절벽 굴러 떨어질 때
해와 달도 함께 꺼져버렸으니
시간이 어디 있어
내 아들을 범접할까
--------------------------
+ 우리들 마음속에
빛은 해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대 손을 잡으면
거기 따뜻한 체온이 있듯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사랑의 빛을 나는 안다.
마음속에 하늘이 있고
마음속에 해보다 더 눈부시고 따스한
사랑이 있어
어둡고 추운 골목에는
밤마다 어김없이 등불이 피어난다.
누군가는 세상은 추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은 사막처럼 끝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무거운 바위틈에서도 풀꽃이 피고
얼음장을 뚫고도 맑은 물이 흐르듯
그늘진 거리에 피어나는
사랑의 빛을 보라
거친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보라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하늘
해보다 눈부시고
따스한 빛이 아니면
어두운 밤에
누가 저 등불을 켜는 것이며
세상에 봄을 가져다주리.
================
+ 지는 꽃을 위하여
잘 가거라, 이 가을날
우리에게 더 이상 잃어버릴 게 무어람
아무 것도아무것도 있고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 다 버리고 집 떠나
고승이 되었다가
고승마저 버린 사람도 있느니
가을꽃 소슬히 땅에 떨어지는
쓸쓸한 사랑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른 봄 파릇한 새 옷
하루하루 황금옷으로 만들었다가
그조차도 훌훌 벗어버리고
초목들도 해탈을 하는
이 숭고한 가을날
잘 가거라, 나 떠나고
빈 들에 선 너는
그대로 한 그루 고승이구나
----------------------------
+ 지울 수 없는 얼굴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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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밤에 시인들은
을밤에 시인들은
깊은 잠을 자도 좋다
머리맡에
하얀 원고지를
기도처럼 펼쳐 놓고
깊이 잠들면
밤새
누군가 조용히 찾아와
낙엽 같은
시구 하나
떨구어 놓고 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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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시간을 꽂고
시간은 뙤약볕처럼 날카로웠다
두렵고 아슬아슬하게
맨 살 위에 장대를 꽂기도 했다
그래서 삶은 때때로 전쟁을 연상시켰다
하늘아래 허리를 구부리는 것은 굴욕이 아니다
이 빗발치듯 내려 꽂히는 시간 속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로 이마를 맞대고
생명과 생명은 이어져왔다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나가고
또 가을이 오고, 봄이 오고
그러므로 우리가 허리를 구부려 줍는 것은
차라리 영원한 허기인지도 모른다
허기가 바다를 다시 채운다
허기가 지상에 가을을 불러온다
마치 병정들처럼
시간이 맨살 위로
장대를 들고 다가드는 시간
문득 발아래 깔리는 무수한 별들을 본다
-----------------------------
+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
+ 잘 가거라 나비야
아파트 그늘 아래
떨어져 누운 나비를 본다
아름다운 나비
노란 날개로 푸른 하늘을
가득히 끌어안으려고 했던 꿈
죄 하나 없이 썩어가는 것을 본다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행여 금빛 날개가 썩을까 봐
너와 나의 사랑이 썩을까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러나 사랑하는 나비야
썩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잘 썩어 흙이 된다는 것은 눈부신 일이다.
저 차가운 비닐조각처럼
슬프고 섬뜩한 플라스틱처럼
영원히 썩지 않는 마술에 걸려
독 묻은 폐기물로 지상을 나뒹구는 것
너무도 두려운 일이 아니냐
따스한 햇살 아래
언젠가는 썩을 수 있는 것으로
생겨난 것은
아무래도 잘한 일이다
잘 가거라 나비야
살아서는 더운 피로 사랑하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가슴 벅찬 축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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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사는 문화인
말라비틀어진 소말리아 아이들이
저녁 텔레비전 속에서 무더기로
나의 안방으로 기어 나온다
배가 툭 튀어나온 아이가
비비 꼬인 다리로 쭈그리고 앉아
달려드는 파리를 쫓으며
흰 죽을 받아먹는다
그런데 저 죽그릇은 ……! 피카소의 그림 속이던가
뉴욕의 어느 뮤지움에서 본
바로 그 아프리카 토산품 아닌가
그것 하나 뺏어다 꽃꽂이하면
참 멋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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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불이 아님을
사랑은 불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잎새에 머무는 계절처럼
잠시 일렁이면
나무는 자라고
나무는 옷을 벗는
사랑은 그런 수긍 같은 것임을
그러나 불도 아닌
사랑이 화상을 남기었다
날 저물고
비 내리지 않아도
저 혼자 흘러가는
외롭고 깊은
강물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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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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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밀림의 노래
백화점마다 모피 세일을 한 후
거리에는 때아닌 짐승들이 밀려 나와
소란을 떨었다.
빌딩 사이로 밍크가 재빨리 사라지는가 하면
지하실에는 양 한 마리가 석간신문을 사고 있었다.
오리들은 남의 이불속까지 숨어들었다지.
아이고 재미있어라, 심지어 악어들조차
젊은 계집애의 겨드랑이에 끼어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뱀들은 요즘엔 주로 살찐 사내들의 허리를 노린다는군.
비야 오지 마라.
이 도시가 무서운 밀림이 되고 말리라.
나이 어린 여우 두 마리가 열렬히 교미를 하며
호텔문을 나서는 것을 보아라.
네거리에 멈춰 선 자동차 안에도
신호등을 노려보는 낙타의 검은 눈이 있다.
주름살 수술을 하고 돌아가는 중년여자의
목을 애무하는 살쾡이들.
쥐 나 토끼들도 털을 세운 채
택시를 기다리는 청년의 호주머니를
슬슬 덮치고 있다.
그렇잖아도 짐승이 많아 늘 체증이던
이 도시엔 백화점 세일 후 퍼져 나온 짐승들로
더욱더 스산해지고 있다.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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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행열차를 타고 가며
갈라진 논바닥에서
힘줄 선 아버지의 다리를 본다.
바람이 이우는
산모롱이쯤에선
흰 수건 쓰고 땅에 엎디인
어머니를 만난다.
저 쌀과 저 콩들이 나를 키웠다.
그러나
아직도 쭉정이 비린 콩 내 가득한
말[言]밖에 가진 것이 없는 나는
무엇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감추어진 힘줄, 부드러운 흰 손으로
나는 누구를 만날 것인가.
두근거리며 두근거리며
끝없이 남행열차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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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숨죽여 홀로 운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마지막처럼 고백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두려워하며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소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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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사방에 피어나는
저 나무들과 꽃들 사이
푸르게 솟아나는 웃음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게 만드셨다
새로 건 달력 속에 숨 쉬는 처녀들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저절로 솟게 만드셨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으로
그윽이 떠오르는 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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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을 바라보며 밤마다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밤마다 부뚜막에 찬물 떠놓고 빌던
그 조왕신이 살고 있나 보다
사발마다 가득히
한 세월의 피와
한 세월의 기도를
그 빛나는 말들로 채워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그 물들이 모여
그대 안에
번쩍이는 비늘을 단
용과도 같은
거대한 것으로 살아 숨 쉬고 있나 보다
그래서 그대 안에
우리의 조급한 욕심과
시커먼 거짓과
저 서구의 쇳물이 서릴 때는
어린 물고기들이 흰 배로
까무러치고
심청이의 옷자락과도 같은
수초들이 썩어내려
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대를 바라보며
먹탕물 같이 진한 한숨을 뱉었나 보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것들에게
가혹한 짐승의 숨소리를 들려줄 수가 없듯이
번드르르한 비단 홑껍데기 이불을
씌워 줄 수가 없듯이
참으로 물 밑바닥이 말갛게 내비치는 하늘과
그 수심만을 남기고 싶었듯이
모든 아닌 것들을 아니라고
속시원히 말하고
너의 힘찬 물살에
자유로이 헹구어
번쩍이는 비늘을 단
용과도 같은
거대한 것으로 살아 숨 쉬는
말간 천년의 내면을 보고 싶었다
남한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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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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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 힘든지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들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힘들지
여성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핑계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여?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는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 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드리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____ * 46
노래
농담
눈물
먼 길
새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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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해벽(海壁)
젊은 날
파꽃길
나이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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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소식
러브호텔
불의 사랑
사랑 신고
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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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
길을 떠나며
눈물 흘리기
돌아가는 길
목숨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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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젖은 엽서
아름다운 곳
화로운 풍경
그대 만난 이후
꼬리를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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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꿈꾸며
사랑하는 것은
흐름에 대하여
땅에서 나온 사랑
우리들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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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을 위하여
지울 수 없는 얼굴
가을밤에 시인들은
바다에 시간을 꽂고
한계령을 위한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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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거라 나비야
내 안에 사는 문화인
사랑은 불이 아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즐거운 밀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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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열차를 타고 가며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남한강을 바라보며 밤마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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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 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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