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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마 ~

문덕수 시

+ 벽(壁) 1

벽을 타고 올라가는 한 사나이
쇳덩이처럼 찰싹 붙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딛고 오를수록
벽도 그만큼 높아만 가고
짙푸른 하늘도 그만큼 높아만 가고,
한 번 숨을 크게 몰아쉬고서는
메뚜기처럼 벌떡 일어나 뛸 듯이
그렇게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온몸은 찢겨 떨어지는 살점.
햇빛이 찌르는 한낮, 눈 닦고 보니
벽을 붙어 올라가는 수천의 사나이
짐승처럼 찰싹 달라붙은 수 천의 사나이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은 고여서
마침내 냇물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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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여(缺如) 

나는 겨우 몇 발짝 뗄 수 있는 내 앞밖에는 보지 못한다. 그 앞도 시력이 끝나는 지평 밖은 암흑이다. 뒤를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뒤로 돌려야 하는데, 그때는 조금 전의 그 앞이 새로운 뒤로 바뀐다. 사람은 그 뒤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 뒤는 암흑세계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도 돌릴 수 있으나, 그래도 좌우는 언제나 남아서 암흑세계다. 이런 암흑 속에서도 나는 무사하다.

나는 삼수 끝에 겨우 운전 면허증을 땄다. 운전대에 앉기만 하면 손이 떨린다. 앞차의 꽁무니만 보고 열심히 따라간다. 후면과 좌우는 암흑이다. 좌우로는 살벌한 차량들이 엇갈리고, 뒤로는 덤프, 택시, 버스들이 덮칠 듯이 바싹 붙어서 밀려온다. 그래도 나는 용하게 살아남아서 달린다. 누가 이 암흑, 이 결여(缺如)를 보충해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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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계단으로 굴러내려 가는 돌들이
한동안 찢어지는 아픈 소리로 울부짖다가
깊은 물 속에 빠진 듯 잠잠해진다.
계단으로 굴러내려가는 돌들이
나뭇가지처럼 길쭉하게 뻗다가는
달빛에 살기 띤 날을 세우고
가끔은 모난 루비로 빛난다.
돌들이 굴러내려가는 맨 끝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사나이가 있다.
스치고 부딪칠 때마다 발을 찍히고
돌무더기를 꽃잎처럼 안고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서곤 하는 사나이도
인제는 돌이 되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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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꽃망울이 트이듯
한동안의, 그 바람의 몸부림만큼의
내 곁의 빈 空間./ 鍾路 二街쯤을 걸어왔을까 
문득 에워싸는, 나의 앞뒤의
내 키 만큼한 숱한 空間들.
그 空間 속의 부릅뜬 눈망울,
웃음과 손짓, 굽이치는 江물의 얼굴,
그러다간 자라나는 나무
아아, 한 그루의 暗黑.
순간순간 죽어가는
나의 存在 만큼의
餘白이 눈을 뜨듯 뚫리는,
끝내 내가 묻힐
한 동안의, 성난 鳳凰의 몸부림만큼 의 그냥 남아 있는 빈 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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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앞차가 서면 나도 서야 한다. 내 뒤차도 따라 설 것이다. 그리고 그 뒤차도 그 뒤차의 뒤차도―차례로 서는
동작이 한동안 아니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앞차와 내 차 사이에 범할 수 없는 공간이 생긴다. 내 뒷차와의 사이에도, 그리고 그 뒤차와 뒤차 사이에
도―그리하여 빈 상자(箱子)와 같은 공간이 열을 지을 것이다. 그것은 안전을 지켜주는, 구슬을 꿴 줄같이 
아름답다.
앞차가 떠나면 나도 뒤따라 떠난다. 내 뒷차도 나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차도, 그 뒤차의 뒤차도―그
리하여 좁혔다 넓혔다 하는 공간이 일렬로 늘어서서 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들 중에서 어느 한 공
간이 죽을 때, 오, 그 순간의 충돌, 비명, 유혈……, 그러나 다만 한동안의 파문(波紋) 일뿐, 그 공간들은 여전히 일렬로 늘어서서 달릴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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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아침나절에 소나기 개다
갈릴리 호수를 걸어오는 예수의 맨발가락이 보이고
보리수 밑의 싯다르타의 알몸 가부좌 위로
툭 떨어지는 노란 망고 열매가 아프다 

북한산 양로봉 턱밑 푸른 능선을 오르는
한 여류시인의 등산모 차양에
오전의 다이아몬드 빛 부스러기들이 내려와 박히더니

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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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
손을 잡고 흔든다, 웃으며.
그러다가 한동안 나란히 걸어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걸어간다.
그것은 강물이다, 바다다.
두 사람은 빙그레 웃는 듯 노려본다.
빛이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홱 돌아서고
멈칫 물러서더니
주먹으로 맞붙어 치고받는다.
꽃처럼 난만한 상처
이윽고 서로 끌어안으며
뺨을 부빈다.
하늘은 맑고 냇물은 옥을 굴린다.
두 사람은 냇가로 갈라선다.
냇물은 점점 벌어져
바다가 된다.
갈매기만 날으는 세월이 흘렀다.
바다는 꽃송이처럼 오므라들었다.
두 사람은 물가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손을 잡고 흔든다.
앉았다 일어섰다 춤을 추다가
다시 별 하나를 찾아 나서듯이
숲 속의 나그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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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바위를,
오늘은 철쭉꽃이 보고

그 철쭉꽃이 시들어 이운 지
천 년이 지난 오늘엔
그 절벽의 소나무가 보고,

그 소나무가 말라죽은 지
또 천 년이 지난 오늘엔
낙락(落落) 가지를 찾아온 학(鶴)이 보고,

그 학이 자취를 감춘 지
다시 천 년이 지난 오늘엔
먼바다 끝을 넘어온 갈매기가 보고,

그 갈매기가 돌아간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난 오늘엔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고 있는
바위가 스스로 제 모습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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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

도시는 빌딩의 숲이다 빌딩의 계곡이다 치솟는 빌딩은 탑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콘크리트의 서랍이다 성냥갑처럼 차곡차곡 포개 올린 서랍이다 사람들은 표본상자 속의 벌레, 그 서랍 속에서 눈을 뜬다 날이 새면 서랍 속을 빠져나오나 이내 다른 서랍에 갇힌다 지붕도 땅도 없이 대낮은 더욱 어둡고, 천장은 그 위층의 영원한 어둠의 밑바닥이다 지옥으로 가는 골목처럼 복도는 빠끔히 트이나 만나는 눈초리는 언제나 낯이 설다 엘리베이터는 조그만 죽음의 곳간, 분주히 오르내리면서 순간마다 계단의 꿈을 죽이고 있다 빌딩과 빌딩은 깎아내린 아슬한 절벽이다 어린 나비들이 떨어져 죽는다 그 절벽의 틈새로 굴 속 같은 길은 뚫려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나, 나의 길은 없다 로터리를 몇 바퀴 돌아도 나의 길은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붐비는 저녁 버스의 출구에서 하루의 문이 닫힌다 낯설은 강을 건너듯 어제와 오늘이 이어진다 하늘은 구름과 별의 무덤이다 도시는 언제나 잿빛 천막으로 덮여 있다 그것은 죽음의 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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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안개들이 道路 위로 기어 올라아서는 눕는다.
안개들이 개천 바닥에서 엎치락뒤치락 논다.
안개들이 工場 굴뚝을 안고 오른다.
안개들이 車를 계속 몰고 온다. 
안개들이 아침햇빛을 온통 먹어 버린다.
안개들이 산 위에서부터 서서히 내려온다.
사람이나 꽃이나 짐승이나 실은 모두 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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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풀이라곤 다 말라죽은 불모의 들판에 피골이 상접한
한 흑인 여인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숯덩이 같은
두 아이를 치맛자락으로 더 이상 감쌀 힘이 없다
그 자리에 그대로 픽 쓰러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멍하니 서 있는 세 모녀의 몰골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오늘의 거울이다 그 곁의 금방 딴 능금을 가득히 담은 함지를 인 여인이
저고리 섶 밑을 밀고 풍만한 乳房이 삐죽이 내민 채
등에는 토실토실한 갓난 애기를 업고
좌우에는 연신 재잘거리는 오뉘를 거느리고 있다
나는 이 두 그림 사이의 거리를 끝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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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1)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벌
컥벌컥 마시다 한여름의 불볕을 안고 모하비 사막을
앗! 뜨거 앗! 뜨거 맨발로 메뚜기처럼 뛰다 알몸으로
갠지스강을 건너 녹야원 보리수 꽃숲 속에서 알거지
님을 만나다 이런 것 저런 것 보고 듣고 마시고 먹고
다 거두어 들여도 나는 항상 빈 자배기다,

늙어 바스러진 등 곶감 한 접 지고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한 알씩 빼어 먹는 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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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1  

저 소리 없는
청산이며 바위의 아우성은
네가 다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겹겹 메아리로 울려 돌아가는 정적 속
어쩌면 제 안으로만 스며 흐르는
음향의 강(江) 물!

천년 녹슬은
종(鍾) 소리의 그 간곡한 응답을 지니고
황홀(恍惚)한 계시(啓示)를 안은 채
일체를 이미 비밀로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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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르비아꽃을 짓이겨선 기둥을 세우고 연(蓮) 꽃을 짓이겨선 기와를 굽고
국화꽃을 짓이겨선 벽을 만들고
천축모란(天竺牡丹)으로 가락지 같은 문을 짜서
그 만년의 꽃집 속에 꿈이 살고 
그 속에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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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二五 1 

내게만 보이는 것일까.

길바닥 여기저기
뽑힌 발톱이 흩어져 있고
잘린 목은
어디로 갔는지,

한 웅큼 머리칼이
길바닥을 곱게 쓸고 있다.
한 남자가
그때 내가 본 이 길바닥에서
지금도 맨발로 걷거나
알몸으로 뒹굴고 잇다
피를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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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六·二五 2 

그 차돌 같은 발바닥
억센 발목이
그립구나,
외짝 군화.

포화 속
갯벌을 뛰고
가파른 언덕 기어오르며 
탄환처럼 돌진하던
외짝 군화,
잡초 속에 누웠구나.

바닥은 뚫리고
발등은 찢긴 채
휴전선 달빛 속에/ 그날을
홀로 증언하고 있구나,
외짝 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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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六·二五 3 

칼이 파르르 떨면서
일어선다.
선 채로 꼿꼿이 뛴다.

부러진 칼날
사금파리 같은 쇳조각이
떼 지어 잉잉거리면서
날벌레처럼 날아다닌다.

벽에 꽂히고
문틈에 끼이고 
창문을 뚫어
그리고 가슴이고 눈이고 허벅지고
가리지 않는다

녹슨 고철무더기들이
들썩들썩
모두 일어선다
수천의
칼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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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슬을 던지면
푸른 품속을 한없이 여는
당신은
하늘이다

반지를 던지면
바닥 없는 수심을 한없이 여는
당신은
호수다

그러나 어느 날
번개 쳐 하늘이 갈라지고
호수 메마를  때
당신은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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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실

신발 밑바닥을 털지 않아도 신장은 투덜대지 않는다
낡은 TV만이 한 대 오롯이 앉은 거실의 벽시계 밑을 탈 없이 지나서
내가 없는 내 방을 들어간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천장은 어제 그대로의 높이여서 안전하고
벽은 10년 전의 그 높이로 날 안아준다 등산모 운동모 맥고모자는 모자걸이에 걸려 있고
오늘은 벗어 걸 아무것도 없다
내 생일 선물의 빨쁘레질리 카운티스마라도 있지만
사흘 전의 구겨진 와이셔츠도 그대로다 침대 머리맡 탁자 위의
그리스도의 비밀, 붓다의 입문
아직 못 읽은 신간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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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랗게 수면을 파면서 수만 개의 자잘한 물기둥으로 다시 솟는다 그 물기둥의 목이 石筍처럼 똑똑 잘리면서 눈깔사탕만 한 투명한 구슬방울이 된다 어떤 건 포물선형으로 휘늘어진 풀잎을 뛰어넘고 어떤 건 줄기에 매달려 미끄러지고 그냥 수직으로 玉碎한다 빗줄기 틈새로 놀란 개구리, 곤충 한 마리 빗줄기 치는 잎사귀 밑에 거꾸로 붙어서 소나기를 피한다 빨간 딱정벌레가 풀잎 위로 기어가다가 휘어져 튕기는 바람에 굴러 떨어진다 개미 대여섯 마리 歸巢 도중에 신호체계가 무너졌는지 길을 잃고 방황한다 소나기 뒤에 연못에는 평화처럼 맑은 허무가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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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건

누가 떨어뜨렸을까 구겨진 손수건이
밤의 길바닥에 붙여 있다
지금은 지옥까지 잠든  시간
손수건이 눈을 뜬다
금시 한 마리 새로 날아갈 듯이
발딱발딱 살아나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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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설 

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 세상을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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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인조수지나무에 종이컵이
난쟁이의 고깔처럼 조랑조랑
과일들 맺어 풍성히 영글면 다 따서 담아 주스라도 빚을 듯이 
종이컵 하나 따서 길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꾹 밟고 눌러본다
빈 알루미늄 깡통처럼 쭈그러지면서 한마디 꽥소리 없다 
이리저리 굴리고 뭉쳐 손아귀로 꼭 쥐어 본다
오렌지 커피 녹차 혹은 그런 갈증과
아예 관련이 없다 
이 빈 기도 속에
지구 만한 풍선꿈이 들어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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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언어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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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바다  

많은
태양이
죄그만 공처럼
바다 끝에서 튀어 오른다.
일제히 쏘아 올린 총알이다.
짐승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는
몰려간다.
능금처럼 익은 바다가 부글부글 끓는다.
일제사격(一齊射擊)
벌집처럼 총총히 뚫린 구멍 속으로
태양이 하나하나 박힌다.
바다는 보석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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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나라 

모란 순(牡丹筍)이 새의 몸짓을 하고
시냇물이 새의 울음을 운다.
모두가 새를 닮아간다.
큰 별이 하나
꽃밭 같은 은하수를 밀고 가다가
새가 되어 날았다.
행방불명이 된 누나와
빌딩과 수상(首相),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의 빈 리어카.
누구는 역전(驛前)의 육십 계단(六十 階段)을 오르다가
누구는 무교동 사잇길을 걷다가
공작이 학(鶴)이 비둘기 제비 멧새가
되었다는 얘기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일 년쯤 늦게사 돌아온 석조(石棗) 꽃.
나무도 사람도 차(車)도
날아오르고 싶으면
모두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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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설화

그땐 나는 강아지였지.
목화(木花) 송이 같은 한 마리 복술강아지였지.
그땐 당신은 목련(木蓮)꽃이었지.
그땐 구름도 당신을 닮아 목련꽃으로 피고
맑은 냇물도 목련꽃 빛으로 흐르고 
죽은 바윗돌에선 목련꽃의 싹이 트고
나는 목련꽃 빛의 복술강아지였지. 
그땐 나는 온몸이 달아
쇳덩이도 녹일 듯이 온몸이 달아
꽃나무를 위성(衛星)처럼 한 천 번쯤 돌다가
미친 듯이 문득 날아오를 듯
솟구치곤 하다가 떨어져 떨어져
꽃나무를 안은 채 타서 죽었지.
목련꽃같이 핀 이승의 당신 
먼 전생의 전생 때부터 
나는 당신을 찾아 헤맨 짐승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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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 장 

죽음과 삶의
사이에
잎사귀처럼 돋아난
흰 종이 한 장
무슨 예감처럼
부들부들 떠는 성난 종이의
언저리에 불이 붙고,
말씀이 삭아서 떨어지는
십육(十六) 절지 반(半)의 백지.
죽음과 삶의
사이에
잎사귀처럼 돋아난
흰 종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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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하늘이 편안해서
天安인가 보다

신호등 앞에서 
덜커덕 머뭇거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이내 제 선로를 찾는다
급행열차
위로,

무사한 고층아파트 工事와/ 폭우에도 비 한 방울 새어들지 않을 듯한
녹색 텐트 같은 풍요의 포도밭
위로

천안의 하늘은 
주름살 한 올 없다

교각 곁에서/ 불법 아닌 듯이 무사 태평인
駐車 위의 견고한 고가도로
그 위로,

재회의 기약인지
역 광장을 사뿐사뿐 빠져나오는 
젊은 여인이 받쳐든 그 양산/ 위로

天安의 하늘은
구김살 없는 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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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잎 소곡

내사 아무런 바람이 없네.
그대 가슴속 꽃밭의 후미진 구석에
가녀린 하나 풀잎으로 돋아나
그대 숨결 끝에 천 년인 듯 살랑거리고
글썽이는 눈물의 이슬에 젖어
그대 눈짓에 반짝이다가
어느 늦가을 자취 없이 시들어 죽으리.
내사 아무런 바람이 없네.
지금은 전생의 숲 속을 헤매는 한 점 바람
그대 품 속에 묻히지 못한 씨앗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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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차단기가 내려진다
세계가 갈라지듯 단호하다
바쁜 걸음들이 서고 
혹은 한두 발짝씩 물러선다
열차는 언제쯤 지나갈는지
가쁜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먼저 보낼 것을 보내도 
또 다음 차단기가 내려지리라
권력도 영광도 분노도 
여기서는 지푸라기다 
조용히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든지
혹은 하늘의 구름도 보면서
모두들 기다려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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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노끈

길 잃은 노끈이
한 밤의 창틈을 엿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어둠 속에서
돋아난 한 줄기 넝쿨이다. 
이브를 꾀어 낸 사탄의 머리칼이다.
어머니의 목을 조른 치마끈이다.
버림받은 娼女의 陰毛다.
一家를 묶어 물에 던진 밧줄이다.
언젠가는 地球를 채어 갈 끈인지도 모른다.
빨간 뱀의 혓바닥처럼
한밤의 房 구석을 샅샅이 핥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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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수난 

비실비실 포도를 가로질러 가는
연둣빛 어린 나비,
신(神)이 찢어버린 한 점의 색종이다.
느린 시내버스의 옆구리에 부딪힐 듯
날쌔게 몸을 빼는 택시의
그 소용돌이치는 기류 속에 휩쓸려
치솟을 듯이 몸부림을 치다가
간신히 빠져나온다.
이윽고 뒤쫓는 까만 세단의 앞유리에 걸려
그대로 절벽에 떨어지듯 멀리 밀려갔다간
놓여나 한숨을 돌린다.
휘말려가고 끌려가고 부딪히는
연둣빛 어린 나비,
신(神)이 찢어 보낸 한 점의 색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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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람같이

매달릴
당신의 빈가지를 찾아

헤매는 
허공 속,

오직 당신에게만 울릴
내 영혼의

그 먼
흐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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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대하여 

네 품 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족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 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휘어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三角)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 서는 이 사각(四角)에서 놓아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안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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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나무 

나무는 어딘지 먼 길을 가고 있다
가다가 가만히 머뭇거리며 고독을 느낀다
가지를 흔든다 무엇인가 골똘히 사유한다
보이지 않는 지맥(地脈)에까지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전한다
안으로 지닌 생명의 그지없는 중량을 가뜩이 느껴 본다
받들어 숨 쉬는 하늘과 구름과… 산새의 무게를 균형(均衡) 해 본다
먼 불안의 방황에서 돌아오듯
이제 숨 막히는 긴장을 푼다
한 잎 두 잎 목숨을 떨어뜨린다
가볍고 서운한 안으로 충만해 오는 희열(喜悅)이 있다
가지를 휘감아 올리는 비상(飛翔)의 흐느낌이 있다
발가벗은 채,
나무는 귀를 기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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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圓)에 관한 소묘(素描)

한 개의 원(圓)이
굴러간다.
천사의 버린 지환(指環)이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水蜜桃)만 한
세 개의 원(圓)이
천 개의 원(圓)이
굴러간다.
신(神)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圓)이
팔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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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1

선(線)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線)이
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빛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線)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線)이
뛰 쫓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 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網紗) 위에
동그만 우주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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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2

영원히 날아가는 의문의
화살일까.
한 가닥의
선(線)의 허리에
또 하나의 선(線)이 와서
걸린다.
불꽃을 뿜고
얽히는
난무(亂舞),
불사(不死)의 짐승일까.
과일처럼 주렁주렁 열렸던
언어(言語)는 삭아서
떨어지고,
일체가 불타버리고 남은
오직 하나
신비한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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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3

은(銀) 빛 실낱을 뽑으며
그물을 짜는
한 올의 바람,
이윽고
환상처럼 걸리는 조롱(鳥籠)
천사(天使)의 손도 얼씬 못하는
조롱(鳥籠),
그 속에
지구는 무한의 구석 끝을 울리는
쓸쓸한 새.

금(金) 빛 구름을 뿜으며
그물을 짜는
한 가닥의 지푸라기,
이윽고
허무의 가지 끝에 걸리는 초롱,
신(神)의 눈도 얼씬 못하는
초롱,
그 속에
우주는 영감의 모서리를 밝히는
호젓한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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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4

그것은
십팔 세기(十八世紀)의 내장 속을
기생하는, 한 마리
세균.
그것은
벽(壁) 뒤로
폭동과 군중을 거느린
하나의 점(點).
그것은
침묵의 축축한 밑바닥을
핥는
파편(破片).
그것은
실패한 지도(地圖)의 꿈,
아니
지구를 둥근 삼각형으로
변조하려다
들킨
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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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시속 80킬로의 지하철 선반에 알록달록 배낭 네 개가 눕고 기대고 포개져 떨어지지 않다 뭔가 오순도순 속소리로 속삭이다 선반 밑에는 서른을 갓 넘은 아빠 엄마 사이에 낀 맏딸은 씨걱거리며 살 세게 달리는 깜깜한 땅굴이 무서운 듯 연신 고개를 돌려 힐끗거리다 둘째는 머슴애, 엄마의 오른손을 꼭 잡고 휘둥그레 세상을 익히는 눈치다 천 원 한 장에 두 켤레라고 꼬두기면서 목이 쉬어버린 요술장갑장수가 그 앞을 막 지나가다 아뿔싸, 집을 나설 때 나는 약을 먹으라는 아내의 말을 깜박 잊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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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만큼의 공간

두 개의 손바닥이 이렇게 가까이
두 개의 잎사귀가 이렇게 가까이
한 뼘만큼의 공간을 두고 가까이 왔다.
한쪽이 한 치쯤 다가서면
한쪽은 또 그만큼 물러서고
그렇게 서로 영원히 마주 보면서
한 뼘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 한 삶인 것처럼.
한 나무를 떠난 천 년 뒤의 해후,
한 영혼을 떠난 만 년 후의 대면,
헤매다가 헤매다가 마침내 찾았으나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는
더 이상 붙을 수도 없는
한 뼘만큼의 절대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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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딩에 관한 소문

빌딩이
빌딩을 막아선다.
일언반구의 이유도 없다.

앞뒤 죄우로 하나같이 꼭 같은 규격
비슷한 각도로 바싹바싹 다가와 붙기도 하고
내려 누를 듯이 치솟기도 하고
조금씩 밀어내기도 한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방향을 잃고 
논란 바람이
근대화의 낯선 거리를 헤맨다.

비둘기들이
잔인한
삭막한
새 도시에 길들기 위해
빌딩들의 높낮이를 점검하며 비상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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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에 관한 소문 1 

눈 한 번 끔벅하면 
빌딩이 선다.

손 한 번 들면
35층이다.

종일 모가지를 빼고
눈이 통방울로 튀어나온 채
몇 층 몇 동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 캐비넷 금고를
염탐하면서 돈다.

찌그덕 찍 찌익 찌잉 균열이 울고 
우르릉 우르릉 몰려다니면서 서로 부딪치고
쿵쿵 밟으며 츠으층을 오르내리는
밤의 불길한 굉음,

때로는 왈칵 의심이 나서
꼭대기에서 밤을 새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벽을 더듬어 내려가서는 
성냥갑처럼 쭈그러뜨려
냉큼 떼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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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라국의 목걸이

안라국의 궁터 가야 도항리 33호 고분에서
2천 년이나 잠자던 목걸이가 지렁이처럼 눈뜨고 나왔다
불그레한 마노는 왕후의 목덜미빛이요 토기 굽다리에 뜨거운 무늬를 뚫은 불꽃이다
파란 유리구슬은 안라국 어린 공자님 눈빛이요 
왕궁 지붕마루에 내려와 앉은 하늘이요 여덟 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장수말이 마신 물이다
저 자잘한 비취빛 수정알의 바늘귀에는 지금도 후기 가야 여러 나라 맹주의 숨길이 흐른다
아라가야 궁터 도항리 33호 고분에서 
2천 년이나 꿈꾸다 눈을 뜬 저 목걸이는 지리산 숲 속에서 구불구불 흘러내려 안라 땅을 적시는 남강이요
한티 재를 넘어 마산 남쪽 바다로 통하는 바람길이요
여항산 멧부리 남동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다
아라가야를 지금도 두르고 있는 무성한 성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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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줄이면서

잔고(殘高)를 조금씩 줄이면서
석류알처럼 눈뜨고 싶구나.

그동안 흐드러지게 꽃 피우거나
나비 벌들 떼 지어 윙윙 몰려와
제풀에 뚝뚝 떨어져 묻히는
꿀단지 하나 그득히 빚은 일도 없으나,

잎사귀를 한두 잎씩 떨어뜨리고
곁가지 곁 넝쿨도 조금씩 쳐내고
몰아치는 성난 돌개바람이나
괴어서 소용돌이치는 물줄기도 돌려서,
겨우내 개울 둑에 알몸으로 홀로 서서
이브처럼 눈뜨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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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선생에게

아내에게 대구탕보다 천 원이 더 싼
오징어 뽂음을 주문한다/ 마을의 쌈지공원 
온몸 돌리기 파도타기 줄 당기기 하늘 걷기... 그때
벤치에 편안히 앉은 두 할머니들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있으면 물고 가"
그 앞을 지나면서 나는 허리를 굽히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이 사람은 호랑이 띠야. 양띠인 나와 함께 치악산에 가서
나란히 바위에 앉았는데, 호랑이가 무서워 못 오는 거야. 임자는 무슨 띠야?"
"제 아내는 용띠예요"
"용은 호랑이 보다 두 살 아래지"
그때 해일이 밀려와 휘어 감고 흔드는 우리 집 
기둥의 바닷물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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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어떤 이는
내게 가까이 오면
새까만 벽만 세워 놓고 그 뒤로 숨는다.
어떤 이는
계단 같기도 하고 사다리 같기도 한 것을
내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 놓고 
그 밑에서 한 계단씩 기어오르려고 한다.
어떤 이는 내게 가까이 와서는
나를 저쪽 강가에 세워 놓고서는
나룻배로 저어 건너오려 하거나
혼자서 외나무다리 같은 것을 놓으려고 한다.
어떤 이는 내게 손을 내밀다간
바람처럼 사라지고
사라진 그 자리엔 꽃만 한 송이 피어가을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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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관한 소묘 5 

한 가닥
선이
여윈 내 손목을 묶어 보고, 
몇 번이고 내 모가지를 묶어 금빛으로 
졸라 보고,
벽 못에서
풀려 내려온 노끈이
누나의 모가지를 졸라 죽였다.
그 때의 눈알
그리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창녀의 치마끈이 되었던
한 가닥
선이,
경부선(京釜線) 레일로
시장댁(市長宅) 뜨락의 살의(殺意)의 나뭇가지로
십 년 전의 누나 얼굴로 돌아갈 수 없는
한 가닥
선이,
지중해 연안(沿岸)을 구석구석 더듬은,
내 누나 같은 
낫세르 중령(中領)의 눈동자 속에
지중해의 윤곽으로 들어앉아/ 쉬고 있었다.


________ *50

벽 1
결여
계단
공간
-------
공간
금관
만남
무제
--------
소묘
안개
의문
작품(1)
---------
침묵 1
행복 
六·二五 1 
六·二五 2
-------------
六·二五 3 
당신은
내 침실
빗방울
----------
손수건
인연설
종이컵
꽃과 언어
--------------
새벽 바다  
새의 나라
전생설화
종이 한 장
--------------
천안에서
풀잎 소곡
건널목에서
길 잃은 노끈
-----------------
나비의 수난
실바람같이
원에 대하여
생각하는 나무
--------------------
원에 관한 소묘
선에 관한 소묘 1
선에 관한 소묘 2
선에 관한 소묘 3
----------------------
선에 관한 소묘 4
지하철 안에서
한 뼘만큼의 공간
빌딩에 관한 소문
-------------------------
빌딩에 관한 소문 1
안라국의 목걸이
조금씩 줄이면서
프로이트 선생에게
---------------------

관계

선에 관한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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