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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마 ~

문정희 시 1

+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끈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 부근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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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

저물녘 석모도 앞바다에 떠 있는 
저 물새는 한채의 암자 같다 
깊고 푸른 멍 같은 바다를 깔고 앉아 
가파른 물살을 잠재우는 것을 보라 

쉴 새 없이 기우뚱거리는 마음 
차가운 심연에 담그고 
부르튼 발로 자맥질하여 
물 위에 암자를 세운 저 새는 누구일까 

바람의 발목을 잡고 출렁이는 
생이란 끝없는 물음인지도 모른다 

고달픈 아랫도리 물에 담그고 
문득 좌선에 든 저물녘나인지도 모른다 
산허리를 돌아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날개로 허공을 밀며 천리를 달려온 저 새는


지금 움직이지 않고 
홀로 또 천리를 가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생이란 물 위에 뜬 하루라  
물 위에 뜬 암자를 향해 
나는 조바심처럼 돌을 들어 
힘껏 화두 하나를 던진다 
바다의 살점이 불끈 고통처럼 치솟는다 
날개를 펼치고 암자는 
불현듯 먼 하늘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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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

오늘도 세상에 기쁜 일은 많다
어느 집에는 아기가 태어나고
누구네 꽃밭에는
간신히 실눈 뜨고 꽃도 피었다


시간이 이글거리는 창가에서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새로 사랑을 시작하고


새벽녘에 마른번개가
잠시 쳤던 것은
밤새 고통하던 시인이
드디어 그의 새 시편에
뚝! 하고 마침부호를
찍는 소리였다
오늘도 이렇게 기쁜 일은 참 많다


천길 낭떠러지
짐승들 우글거리는
이곳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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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고향이 멀어 
슬픈 사람들에겐 
뜻 없이 눈부신 신록의 날씨도 

칼처럼 아프다 
채찍처럼 무겁다 

고향은 만리 밖 
노자는 없는데 
뜻 없이 계절은 신록이어서 
미치도록 푸르게 소리 지르면 

고향에 못 가 
슬픈 사람들은 
온몸에 푸른 멍든다 

풀 길 없는 강물에 
두 눈 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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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기도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내 잃어버린 시간에 
쓰러지는 눈빛으로 
당신의 내의를 마련합니다.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머뭇거리며 

저만치서 
눈 감은 사랑 

밤새도록 용납한 
꿈이었다가 

산이 되어 
내 이름을 부르시는 

아아 한 생애에 돌아오는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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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가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만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리 늘 말을 잃어 갔다. 
남한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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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사람들은 모두 
푸른 옷자락 휘날리며 저만치 가고 

나 홀로 
노란 햇속에 떠 있다. 

너 언제부터 날 기다렸느냐 
참 낯익은 노을 

내 아버지의 허망이 나를 만들어 
내 어머니의 수치가 나를 만들어 
내 피는 캄캄하구나 

살점을 저며내는 살얼음 위에 
숨만 크게 쉬어도 
하늘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 

나는 
그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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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당신이 사방에 서서 
눈이 부신 오후가 되면 

나는 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지난가을 찬바람 불 때 
낙엽과 함께 묻어버린 눈빛 

그때부터 나의 동면은 시작되었건만 
오늘 당신 앞에 다시 살아나 

헝클어진 머리채 잘라버리고 

처음인 듯 조용히 기대어 
울고 싶은 건 
무슨 일인가요 

사랑이란 장애를 만났을 때 
더욱 무성히 자라는 법이지만 

오늘 긴 머리채를 잘라버리고 
다시 불같이 사랑하고 싶은 것은 
이 무슨 찬란한 망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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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가을산은 한 척의 보물선이다 
어제의 그가 아니다 
풀들마저 돌연히 황금으로 둔갑한 
가을산 어딘가에 
애꾸눈 선장이 숨어 있으리라 
열매들은 깜깜한 씨앗 속에다 
가장 소중한 것을 숨기었다 
흔히 아름다운 산일수록 가파르다고 충고하지만 
알맞게 드러누운 시간의 벼랑 
황금으로 불타는 난파선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야호! 외친다 
키 큰 나무와 기운찬 바위들이 내뿜는 
거친 숨결을 따라 산정에 오르며 
영롱한 구슬땀을 사리처럼 쏟아낸다 
황금을 발로 밟는 가을 산행의 
오오, 이런 기막힌 은유라니 
한 척의 보물선, 가을산에서 
나는 서늘하게 서늘하게 해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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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꽃

새벽 두 시인데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나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아요
저녁때 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를 묻는 노인에게
그만 봉은사거리를 가리키고 말았어요
그 노인은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요

청담사거리를 찾다 지쳐
수천 마리 귀뚜라미들을 데리고 쓰러져 있을까요
외줄에서 떨어진 줄광대처럼
산발한 어둠 속에 떨고 있을까요
정육점의 불빛처럼 충혈된 밤
사방에서 컹컹 내지르는 짐승소리를 들으며
모래바람 날리는 자동차들 속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성직자처럼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죽어서도 석남꽃 머리에 꽂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온 신라의 남자처럼
벌써 죽어 아름다운 관에 누워 있을까요

내 불면의 가지 끝에 검은 눈썹달이
갈매기처럼 끼룩거리고 있어요

세상에는 왜 이리 길을 묻는 사람이 많을까요
여보, 나침반과 지도는 모두 어디에 있지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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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 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하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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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겨울 안개 길고 긴 터널 
모든 것이 무사해서 미친 중년의 오후 
전조등 하나 없는 회색 속을 걸어간다 
가방에는 몇 개의 열쇠가 들어 있지만 
진실로 갖고 싶은 열쇠는 없다 
기적이란 신의 소유만은 아니었구나 
지나온 하루하루가 모두 기적이었다 
돌아보니 텅 빈 무대 아래 
반수면 상태로 끝없이 삐걱이는 의자들 
저기가 진정 내가 지나온 봄의 정원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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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우 

내 허리를 휘감아줄 
사내는 없는가 
저 야생의 히스크리프처럼 털이 세고 
하나밖에 다른 것은 모르는 밤의 
다시는 용납할 수 없는 
아픔이 땅 위를 뒹굴고 있다. 
붉은 머리 풀어 헤치고 
으르렁거리는 
목 아프도록 징그러운 
그리움이여 
먼 바람 속에서 
무덤이 나를 삼키며 
달겨든다. 
죽은 에미의 
밥상에서는 그릇이 저 혼자 깨지고 
수천 번 쏟아지는 
서슬 푸른 기침을 따라 
밤새 비단벌레 같은 여자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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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4월에는 
비로소 용서하고 
가슴을 여는 
날개의 몸짓으로 
가득하다. 
4월에는 
어두운 골목에 빛을 뿌리고 
침몰한 배에 못질을 치던 
젊은 이마가 때리는 
종소리로 가득하다. 
그 후 
4월에는 
기도처럼 하얀 내 가슴에 
뜨겁게 진 
그 님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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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트

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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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상처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 
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 
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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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잎에게

가을 첫날엔 
누구도 
갈잎이 되고 싶으리. 

빨갛고 
가슴 버스럭이는 
소롯 한 갈잎. 

하늘이 
환각제를 섞어 뿌리는 
이런 칼날엔 

젊은 가을 사람은 
외출해선 안 되리. 

갈나무에 매달려 
조용히 흔들리며 

그냥 그대로 
색 바래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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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는

꽃밭에는 
철마다 약속이 피어난다. 

너는 봄에 피는 꽃 
(봄꽃들은 어김없이 봄에 핀다.) 

너는 폭양을 이고 
여름을 사는 꽃, 또는 

시인처럼 가을길에 
서 있는 꽃, 너는 

그렇지, 건초들과 함께 
떠나가는 꽃, 너는 
(갈꽃들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우리처럼 버티는 일 하나도 없는 
아, 아름다운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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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선언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성(性)을 사용할 것이며
국가에서 관리하거나
조상이 간섭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상이 함부로 손을 넣지 못하게 할 것이며
누구를 계몽하거나 선전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정녕 아름답거나 착한 척도 하지 않을 것이며
도통하지 않을 것이며
그냥 내 육체를 내가 소유할 것이다
하늘 아래
시의 나라에
내가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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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래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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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사랑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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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일기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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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학교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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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시인

도산공원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이
불현듯 흰나비 한 마리 차 안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신화를 쓰는 존재?
허공에다 알을 낳으려는 시인처럼
그는 어린 날개로 허공을 밀며
혼신을 다해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다
언어의 탑을 쌓았다가
가벼이 무너뜨릴 줄도 알았다
신이 보낸 우표?
멀고 신비한 주소로부터
떠나간 이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그는
가만히 보니
저승의 언어를 알아듣는 긴 수염도 가졌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나비를 따라 두 번쯤
천년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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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시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아름다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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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슬 


지난밤 무슨 생각을 굴리고 굴려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영롱한 한 방울의 은유로 태어났을까 
고뇌였을까, 별빛 같은 
슬픔의 살이며 뼈인 생명 한 알 
누가 이리도 둥근 것을 낳았을까 
고통은 원래 부드럽고 차가운 것은 아닐까 
사랑은 
짧은 절정, 숨소리 하나 스미지 못하는 
순간의 보석 
밤새 홀로 걸어와 
무슨 말을 전하려고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맑고 위태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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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노래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듯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가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 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에 사랑을 하고 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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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연인아, 여름이 오면 
손잡이가 빨간 가위 하나 들고 와 
함부로 뻗친 가지 척척 잘라다오 
부질없는 내 열망을 잘라다오 
수북이 땅 위에 나뭇가지 쌓이면 
그 가지로 허공에다 새집 한 채를 지어다오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며 
노래를 알처럼 까는 
새 한 마리 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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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도시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발밑에서 새의 깃털 소리가 났다
하얀 손을 가진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적도 없지만
역사상 어떤 만장일치로 세운 정부보다 빠르게
눈부신 풍요를 온 도시에 선물했다

그러나 이 꿈의 도시는
짧은 생몰 연대를 기록하고
미완의 혁명으로 곧 사라질 거라는
댓글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기도 전에
화려한 몽상은 벌써 실체를 드러냈다

이 도시의 율법은 백지, 그러므로
누구도 법을 어길 일이 없어 좋았다고
아쉬워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보기 좋게 나자빠져도 법이 없으므로
죄도 벌도 없었다

제 길을 제가 만들어 가면 그뿐인
이 설국을 구상한 이는
정치가가 아니라
분명 시인이었을 것이다

조급증처럼 자동차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유언비어 사이를 질주하는가 싶더니
하얀 풍요의 도시를 순식간에 파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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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우체국

가을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인보다 때론 우체부가 좋지 
많이 걸을 수 있지 
재수 좋으면 바닷가도 걸을 수 있어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 
시인은 늘 앉아만 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뚱뚱해지지 
가을 우체국에서 파블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시인이 아니라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크고 불룩한 가방을 메고 
멀고 먼 안달루시아 남쪽 
그가 살고 있는 
매혹의 마을에 닿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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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노래

바람밭이로다. 

죽은 여자의 흰 머리칼 
흐느끼는 소리. 

은비늘 쏟아지는 거울을 들고 
어디선가 
한 무리의 추운 신발들이 가고 있는데 

미친바람을 끌어올리며 
시리운 노래가 나를 흔드네. 

이렇게 눈물 나도록 간절한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아픈 은혜로움에서가 아니라 

햇빛이 화살로 꽂혀오는 
등어리의 무력과 
권태에서가 아니라 

그대 이마에 다룽이는 
주름살의 서러운 
인기척에서가 아니라 

비둘기 구구 우는 소리 같은 
내 가슴의 
공규空閨 때문에서가 아니라 

바람밭이로다. 

다만 허허벌판에 
새들은 먼 하늘로 흘러가고 

내가 만든 바람 
그 넓고 싱싱한 울음이 
나를 흔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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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프라하 

햇살이 금화처럼 굴러다니는
연금술사의 골목
죽은 오빠의 시집을 팔고 있는
누이의 서점으로 들어선다
머리가 긴 사내가 하프를 안고 서 있다
창 밖에 은빛 나무들 우거지고
멀리 백조들이 은방울처럼 떠 있다
활처럼 걸린 다리 위로
구리 옷을 입은 성자들이 걸어 나와
가등마다 푸른 점등을 한다
해가 지기도 전에
붉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저녁 강물
나도 그 위에다 자유를 위한
악보 하나를 그리고 싶다
연금술사가 어느새 내 뼈에다 광채를 입혔을까
온 생이 불현듯 환해진다
오늘 밤 나 기꺼이 망명시인이 되어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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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서

문득, 미열처럼 흐르는 
바람을 따라가서 

서해바다 
그 서럽고 아픈 일몰을 보았네. 

한 생애 
잠시 타오르던 
불꽃은 스러지고 
주소도 모른 채 
떠날 채비를 하듯 
조용히 옷을 벗는 해안선을 보았네. 

아, 자연 
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은 
소슬히 잊는 일뿐 

더운 호흡으로 밀려오던 
눈과 파도와 
비늘 같은 욕망을 
잊는 일뿐이었네. 

잊는다는 일 하나만 
보석으로 닦고 있다 
떠나는 날 
몸과 함께 땅에 묻는 일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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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가을 

나의 신은 나입니다.
이 가을날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입니다
별과 별 사이
너와 나 사이 가을이 왔습니다
맨 처음 신이 가지고 온 검으로
자르고 잘라서
모든 것은 홀로 빛납니다
저 낱낱이 하나인 잎들
저 자유로이 홀로인 새들
저 잎과 저 새를 언어로 옮기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이 가을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듭니다
새, 별, 꽃, 잎, 산, 옷, 밥, 집, 땅, 피, 몸, 물, 불, 꿈, 섬
그리고 너, 나
이미 한 편의 시입니다
비로소 내가 나의 신입니다, 이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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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기숙사

기숙사 뒷숲으로 가을이 오고
새들은 가을을 쪼아대며 울었다 
세계에서 온 시인들은 모두
새가 노래한다고 즐거워했다
코리아에서 온 나 혼자만
새가 운다고 했다

가을 더 깊어지니
풀숲의 벌레들이 따라 울었다
시인들은 풀들과 벌레들과 새들이
합창을 한다고 야단이었다 

저 산에 나뭇잎들 훌훌 옷 벗으면
제각기 세계지도 속으로 떠나
낯선 별이 되어 흩어지리라
짧은 햇살 문득 그려보다가
먼 산 바라보다가
아, 낙엽 지는구나 내가 탄식하자
세계의 시인들은 일제히
오, 드디어 색깔이 바뀌는구나
마술 보듯 신비하게 가을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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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추억

외출해서 돌아온 
내 가슴에는 
언제나 가시와 화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옷을 벗으며 
가시를 뽑아내며 
화살촉의 뜨거운 피를 훔쳤다. 

쓰러지며 그 전리품을 
벽에 걸었다. 

하늘은 늘 푸르렀고 
음악이 있었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지만 

벽에는 
화살과 가시가 
무성키만 했다. 

가슴은 끝내 방패가 되지 못했다.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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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앞에서

새로 핀 수련 앞에서 무슨 말을 하랴 
그래도 이 눈부신 것들을 
가만히 두는 것은 
시인의 수치 
만져도 안 되고 
입술 닿아도 안 되고 
겪으면 더욱 안 되니 
두 눈에 이슬 맺히도록 
푸른 하늘이 쩡쩡 흔들리도록 
나도 찬란한 한 송이 미소가 되어 
활짝! 대결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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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치는 밤

가슴 속엔 검은 안개 
눈엔 죄의 피 
바람 휘감기는 다리로 

허물 벗지 못하고 
날지 못하고 

돌 맞고 
피 흘리며 
미끄러지며 

이렇게 
미치게 사랑하다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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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누이에게

누이야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디지오로 
낙엽이 지는데 

이 세상 
어느 슬픈 시집에도 없는 
희망 없는 사랑을 앓고 있는 
나의 누이야 

지금은 밝은 가을 달밤 
네 사랑이 
뜨락 가득히 쌓여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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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속으로

저 산맥들은 
무슨 커다란 그리움 있어 
이렇듯 푸르름을 사방에다 풀어놓았을까 
바람 속에 쑥부쟁이 냄새 나는 
그리운 고향에 가서 
오늘은 토란잎처럼 싱신한 호미를 들고 
진종일 흙을 파고 싶다 
힘줄 서린 두 다리로 땅을 밟으며 
착하고 따스한 눈매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겨드랑이에 정직한 땀냄새가 풍겨 
수줍음 타는 처녀가 되고 싶다 
그 처녀를 사랑하는 
말 못 하는 그대를 만난다면 
반가움에 떨며 속으로 조금 울먹이리라 
아, 바람이 푸르른 공후를 켜는 날 
나는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솔 향내 나는 그리움 속으로 떠나고 싶다 
오랜만에 옥양목 저고리 풀먹여 입고 
그리운 얼굴들을 만난다면 
내 신발은 얼마나 가벼울까 
오늘은 빠르고 번쩍이는 것들 죄다 치워 놓고 
온갖 슬픔을 접어 두고 
푸루른 그리움 속으로 떠나고 싶다 
두고 온 고향의 옷깃을 부여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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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나무에게

나무야, 너 왜 거기 서 있니? 
걸어 나와라 
피 흘려라 
푸른 심장을 꺼내 보여다오 
해마다 도로 젊어지는 비밀을 
나처럼 언어로 노래해 봐 
네 노래는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너무 아름답고 무성해 
나의 시 속에 숨어 있는 슬픔보다 
더 찬란해 
땅속 깊은 곳에서 홀로 
수액을 끌어올리며 부르던 그 노래를 
오늘은 걸어 나와 
나에게 좀 들려다오 
나무야, 너 왜 거기 서 있니? 

----------------------
+ 초여름 숲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 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
나무가 바람에게

어느 나무가 
바람에게 하는 말은 
똑같은가 봐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바람불면 몸을 흔들다가 
봄이면 똑같이 초록이 되고 
가을이면 조용히 단풍 드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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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와 시계 사이

 이 아침 고장 난 시계 속에 눈을 뜬다
고장 난 시계가 이를 닦고
고장 난 시계가 밥을 먹고
고장 난 시계가 나이를 먹는다
그래도 어딘가 맞는 시계가 있으리라
나는 그런 시계를 하나 갖고 싶다
나는 CNN을 본다. CNN은 당황하여
고장 난 시계가 있는 곳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꼬리를 잘 흔들고 손을 싹싹 비비고 눈치를 살핀다
고장 난 시계에다 총구를 갖다 댄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대화라든가 외교라는 말로 보도한다
결국 모두가 제 힘으로 살다 가는 것
세상의 모든 시계를 똑같게 고칠 수는 없나 보다
너와 나 사이에는 어차피 시차가 있다
고장 난 시계로 길을 걷다가
교차로에 서서 시계탑을 본다
나의 시계가 맞는지 교차로의 시계가 맞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시계는 나이가 없다
제각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
제비를 기다리며

제비들을 잘 돌보는 것은 우리 집 가풍 
말하자면 흥부의 영향이지만, 솔직히 
제비보다는 박씨, 박 씨보다는 
박 씨에서 쏟아질 금은보화 때문이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가풍을 잘 이어가는 착한 딸 
처마 밑에 제비들을 두루 잘 키우고 싶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남에도 
제비들이 좀체 나타나지 않아 
지하철역에서 복권을 사서 
주말이면 허공으로 날리기도 하고 
참다못해 빈 제비집에 손을 넣었다가 
뜻밖에 숨은 뱀에게 물리기도 한답니다 
포장마차에서 죽은 제비다리를 구워 먹으며 
시름을 달래며 
솔직히 내가 기다리는 것은 
박씨거나 박 속에서 쏟아질 금은보화가 아니라 
물 찬 제비! 
날렵하게 사모님처럼 허리를 감고 
한 바퀴 제비와 함께 휘익! 돌고 싶은 것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  

----------------------------------------
과거 진행형으로 우는 음악

'부르흐'를 듣는다. 
'부르흐'속에서 사랑을 꺼낸다. 
그렇게 아팠었구나 
음악이 과거 진행형으로 울고 있다 

나의 그 어느 기도가 하늘에 닿아 
너를 내 앞에 갖다 놓았을까 
시작하고 부서지고 돌아오지 않는 … 
'부르흐'는 나를 피도 없이 
피 흘리게 한다.

____ * 46

꿈      
물새
소식
신록
첫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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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 
표류
햇살     
가을산
석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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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우울증
폭풍우     
4월에는
가을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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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상처
갈잎에게
꽃밭에는
꽃의 선언
겨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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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사랑
겨울일기
나무학교
나비 시인
사람에게
----------- 
아침 이슬
알몸 노래
연인에게
폭설도시
가을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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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노래
겨울 프라하
바다 앞에서
사람의 가을
새와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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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추억 
수련 앞에서
폭풍 치는 밤
가을 누이에게
그리움 속으로   
----------------       
시가 나무에게
초여름 숲처럼
나무가 바람에게 
시계와 시계 사이
제비를 기다리며
------------------------------ 
과거 진행형으로 우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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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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