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담 / 도종환
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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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담 / 오혜령
올해는 덕담 한 가마 반
작년보다 무게 더 나갔다
세배 온 영성 손주 손녀
딸 아들 사위들에게
모조리 풀어먹이다
이뤄 지이다!
뿔뿔이 흩어져 간 다음
내 입에서 나간 덕담 반추하며
큰 소리로 되풀이한다
이뤄 지이다! 이뤄 지이다!
오늘은 세배 받으러 뜨락으로 행차한다
울 안 가족 모두에게
해마다 꼬박꼬박 세배 받는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21년
한 가족 된 후 공동체 일원으로
그들 향한 나의 절원
날마다 사무치고 있다
단체 세배들 하시게
나무들에게 호령한다
세뱃돈 준비하지 못했네만
그 대신 덕담 선물하겠네
이 나무 저 나무 세배 끝나자
단숨에 덕담 줄줄이 잇다
벌레에게 먹히우지 말고
이파리 푸르르고 무성하시게
열매 달고 통통하시게
꽃망울 크고 영롱하시게
낮에도 꽃 피고 밤도 밝히시게
이슬 머금고 청초하시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마시게
영양 넘쳐 튼실하시게
휘지 말고 곧으시게
섭리에 순응하시게
온 세상에서 가장 말 잘 듣는 나무
온 땅에서 제일 옷 잘 벗는 나무
온 숲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나무
온 세계에서 제일 헌신적인 나무 되시게
한숨 돌린 후 신신당부한다
몸으로 때우고 몸으로 말하기
몸 내어주고 몸 바치기
몸인생 큰 본 되기
그대들에게 간절히 바라네
1년 내내 서로들 사이좋게 지내기
한 해 내내 나와 대화하기
사계절 내내 임 매만지신 손길 보여주기
열두 달 동안 생명력 증거해 주기
365일 동안 수용과 겸손 나타내기
모두 고개 끄덕끄덕할 때까지
같은 덕담 세 번씩 되풀이한다
21년 동안 나무들과 대화 시도했고
20년 만에 그들의 말 듣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교감한 오늘
한 10년은 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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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담 / 이시영
이호철 선생 댁 세배를 다녀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마포 김민숙 집에 들러 차례상에 나온 대구 찜을 발라 먹다가 젊은 송기원이 덕담이랍시고 불쑥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놈은 똥을 누고 난 뒤돌아서서 제 똥에다 침을 뱉는 사람이더라." 김민숙도 나도 송도 한참이나 배꼽을 쥐고 웃었지만, 아침이면 서울의 달동네 공중변소마다 아랫배를 움켜쥔 사람들이 줄느런히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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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 구상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
내가 새로워져서 인사를 하면
이웃도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새로운 내가 되어 거리를 가면
거리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지난날의 쓰라림과 괴로움은
오늘의 괴로움과 쓰라림이 아니요
내일도 기쁨과 슬픔이 수놓겠지만
그것은 생활의 律調 일 따름이다
흰 눈같이 맑아진 내 意識은
理性의 햇발을 받아 번쩍이고
내 深呼吸 한 가슴엔 사랑이
뜨거운 새 피로 용솟음친다
꿈은 나의 忠直과 一致 하여
나의 줄기찬 勞動은 고독을 쫓고
하늘을 우러러 소박한 믿음을 가져
祈禱는 나의 日課의 처음과 끝이다
이제 새로운 내가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生涯,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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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권영우
뒤뜰 청솔 더미에서 목욕한 해묵은 석양이
동쪽 하늘 붉은 때때옷으로 치장하고
대청마루에 새해 복(福), 한 광주리 걸어 놓는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
오늘 아침은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가득가득 안겨온다
섣달 그믐 묵은 때를 열심히도 벗기시던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극 정성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설빔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지 않으려 용쓰다 깜박 잠든
새해 새 아침 설날 어둑새벽
개구쟁이 동생이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 세배를 드린다
큰누나가 지어준 색동 주머니에
깜박깜박하시는 할머니의
손때 묻은 무지개 알사탕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오늘은 설날이다
소식 없는 대처의 둘째 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정성이 담긴
떡국 한 그릇
삼신할미에게 공양되는 오늘은 설날이다
동네 어귀를 들어오지 못해 망설이던
떠돌이새가
하얀 눈밭에 걸린 청솔가지에서 밤새 울다가,
일 년 365일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 치마폭에 용서를 비는 오늘은 설날이다
그렇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모든 걸 용서해 주고 용서받고
그리운 가족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겨운 희망의 닻을 올리는 오늘은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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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김선규
오늘은 우리도 따뜻한 쌀밥 먹자.
부침개 부치고 숙주나물도 만들고.
지난가을 큰애가 잡아다 말린
넙치와 가오리는 큰 몫을 했다.
절편과 인절미는 만들지 못했구나.
엿 고는 남의 집 연기를 막내는
어제 종일 기웃기웃한 것 같다
그런 다음 와서 만져본 찬 굴뚝
그러나 느이들 굴뚝도 오늘은 따뜻하다.
상봉댁 며느리가 들고 온 시루떡
방앗간 일하고 받은 가래떡도 있다.
과식은 하더라도 체하지 말았으면.
세배 갈 곳 어디든 없으니
애비 묻힌 산이나 보겠느냐.
청대 콩밭으로 멀리 아카시아 숲으로
몰려가는 저 눈발을 걷어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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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으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석 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고운 세 살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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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박성렬
함박눈 내리는 마을 어귀에
반가운 자식들 미소로 반기며
조용하던 집안은 손주들 재롱에
왁자지껄 웃음바다
할머니 품에 안기고
형제들 이야기꽃 피우며
고부간 정겨운 옛이야기
시간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데
귀경길에 눈물 훔치며 쌈짓돈
손주들 건네주면서
두 손 꼭 붙잡고 놓지 못하는 할머니
처갓집 마당은 조용하고 창밖은 다시
찬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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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박해옥
1
바람이 쿨룩대며
골목을 쓸고 다니는 설 밑
가장 깊은 곳에 똬리 한
고만고만한 그리움들이
노랗게 싹을 틔워 마음 설렐 때
조그맣게 울고 웃던 아이들이
집 짓기를 익혀 돌아드는 고향
쥐불 맞은 논둑 같은 얼굴로
어머니,"춥지 야" 하시며 손안아 주시는 곳
2
설이 돌아오면
소라고동처럼 귀가 길어져
먼뎃소리도 다아 들린다
눈 감고도 뛰 다니던 마을 길도 훤하고
마음을 건너 질러검게 출렁거리며 강물이 흐른다
그러다간 하 기막혀 내 설움에 울고 나면
생피를 다 쏟아 낸 심장이
몇 날 며칠
침묵의 드라마를 쓰면서... 설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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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손광수
어흠
손주 놈 등짝에 둘러 붙이고 읍내는 도착했으리
아니야 고개를 넘어오고 있으리라
몇 번이고 쌈짓돈을 세고 또 세고
어정어정 마당을 쓸고 또 쓸며
시집간 딸년이야 설 이라도 지나야 올 거제
아침나절부터 들락거린 기다림에
고갯마루는 벌써 평지가 되고 있다
일이 있어 못 뵐 것 같아요
지난해처럼 설 장 보따리 못 풀까
시커먼 전화통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님
빈 방 아궁이에 타고 있는 장작불 너머로
자망 자망 걸어오는 손주 놈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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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지 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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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이상례
어떤 이는
대학에 붙어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취직하여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시집 장가들어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용돈 두둑
부모님 효도하고
이도 저도 아닌 나는
가슴으로
효도할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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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 채린
예쁘게 머리 빗고 할머니 댁 갑니다
아이구 내 새끼 부둥켜 입 맞추어요
삣쭉삣쭉 만두 오빠가 만들고
동글동글 만두 내가 만들어요
주머니 세뱃돈 만지작거리고
집 앞 저수지 알록달록 웃음꽃
아아 오늘은 설날이래요
까치야 너도 오렴 썰매 타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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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 최명란
친척들이 모여서 제사상을 차립니다
제기 위에 놓인 떡이 맛있어 보입니다
제사를 지내기도 전에 동생이 먼저
어른들 몰래 하나를 집어먹습니다
그래도 조상님께서는
아무런 꾸중도 안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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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 백무산
눈 오는 아침은
설날만 같아라
새신 신고 새 옷 입고
따라나서던 눈길
어둠 속 앞서가던 아버지 흰
두루막 자락 놓칠세라
종종걸음 치던 다섯 살
첫 기차 가던 새벽처럼
눈 오는 아침은
첫날만 같아라
눈에 젖은 대청마루
맨발로 나와
서늘하게 앉으니
가부좌가 아니라도
살아온 시간도 흔적도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흰 눈송이 같은데
투둑, 이마를 치는
눈송이 몇
몸을 깨우는 천둥소리
아, 이대로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
이 몸 밖 어디서 무얼 구할까
천지사방 내리는 저 눈송이들은
누가 설하는 무량 법문인가
눈 오는 아침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첫날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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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래떡 / 이정희
가래떡을 뽑으러 방앗간에 갔다.
설날을 앞둔 설렘이 길게 줄을 섰다.
한 칸 한 칸 기다림은 더디기만 했다.
방앗간 주인의 걸음은
바쁜 마음을 쫓아가지 못했다.
드디어 내 차례
기계가 크르릉 소리를 지르며
하얀 쌀가루가 광목천처럼 흘러내리고
찜통으로 들어가 김이 올랐다.
통째로 쏟아붓는 한 말
작은 절굿공이는 구멍으로 떡을 밀어 넣고
두 줄기 구멍에서 김이 술술 나는
가래떡이 쏟아졌다.
남의 떡 꼬리를 이어받은
말캉한 두 줄기 흰떡
우리 집 가래떡도 꼬리를 남기고
누군가의 시작이 되었다.
꼬리에 꼬리가 이어지는 동안
각자의 나이를 들고 설은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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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길 / 손병흥
추워도 마냥 설레는 마음 가득해지는 시절
더없이 맑고 깨끗해진 순수함 가득 지닌 채
온 가족 함께 준비하여 즐거이 맞이하는 설날
더욱 그립고 정겨운 돌담길 옛 터전 시골 풍경
정갈한 음식 흰 떡국 끓여 모여 앉아 먹는 명절
늘 따뜻한 부모님 품속만 같은 아늑한 고향산천
삭막하고 팍팍한 대처 살이 설움 모두 물리고서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리워 고향 집 찾는 나그네
연신 뒤돌아보며 고샅길 동구 밖 떠나오던 날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을 지켜주던 정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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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에 / 안윤주
새해에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햇살의 눈부심은
분명 새로운 희망을 심으라는 알림이리라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 되돌아 후회하지 말고
새해 첫날이 주는 희망의 선물 품어 보리라
나이 한 살 더하는 설날에
세상을 향해 돌팔매질하지 않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여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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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에 / 양애경
모두들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 것 같아
떠내려가는 옆 사람을 부를 여유도 없이
그래서 넋을 놓고 있다 보면
섬 기슭 여기에 하나 산 너머 저기에 하나
모래톱에 밀려와 있는 거지
서로 만날 수조차 없는 거지
누군가 다감하고 기운 있는 사람 하나 있어
봐요 이쪽이에요 이쪽으로 손 내밀어요
하고 잡아 끌어올려 주진 않을까?
같이 흘러가주진 않을까?
새해 첫날 그런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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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은 / 김덕성
설날은
새것이 아닌
그냥 어제 그대로지만
새 마음으로의 시작하는 날
마치 대나무처럼
한 마디 만들고
또 한마디를 만들려는 마음가짐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지 말고
뜨겁게 떠오르는 첫 빛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원망하지도
불평하지도 말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더 예쁘게
삶을 새롭게 꾸미면서
또 한 마디를
함께 만들어 가는 날
==============
+ 설날은 / 윤보영
설날
오늘은
세뱃돈을 받고요
설날
오늘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요
설날
오늘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요
설날은
내가 주인공
내가 가장 행복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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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맞이 / 구재기
여울목의 물고기는
거슬러 오르는 재미로 살아간다
거슬러도
거슬러 올라가도
결국에는 제 자리
그것을
모르는 재미로
살아간다
새해 설날이
버얼써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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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 / 강은혜
우리의 고향 어머니
그 치마폭은 넓은 바다
때론 파도도 치고 풍령도 있지만
언제나 그리운 당신
지금은
늙고 병들어
그 치마폭은 다 닳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도
보듬어 안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당신은 내 고향
나도 이제 늙어 당신의 마음이 되니
이제야 그때가 생각납니다
너도 늙어봐라
곧 늙는다
속을 썩일 때면 하시든 말씀
힘없고 돈 없고 젊음이 없으니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의 마음
이젠 의사 불통
말씀도 못 하시고 걷지도 못하시고
앉지도 못하시는 당신
이 모든 것이 자식들 키우느라 병들고
약해졌지만 어느 자식 하나 그 맘 알아주는지
어머니 올해도 명절이 찾아왔어요
만두며 떡국도 끓여 주시든 어머니
이젠
눈만 마주치는 당신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어머니
당신의 손은 거북등 같고
마음은 바위처럼 굳었고
목소리도 안 나오지만
말씀하시네요
잘들 살아라
형제 우애해라 건강해라
내 걱정은 말아라
라고
눈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불효 자식을 용서하소서
그래도
어머니 사랑하지 않은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가슴에 계시면서 용기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바다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모두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신 큰 바다
어머니
목이 메어 불러보지만
지금은
대답이 없으신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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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이다 / 윤보영
설설설설
행복이 다가오는 설이다
기쁨이 다가오고
웃음이 나오는 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되돌아보며
미소 짓는 설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리에도 설설설
집안에도 설설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얼굴마다 설설설
마음 가득 설설설
설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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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장 / 김남조
설날 첫 햇살에 펴 보세요
잊음으로 흐르는 강물에서
옥돌 하나 정 하나 골똘히 길어내는
이런 마음씨로 봐주세요
연하장
먹으로 써도 채색으로 무늬 놓는 편지
온갖 화해와 함께 늙는 회포에 손을 쪼이는 편지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글씨는 없이 목례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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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설날 / 이정록
까치설날 아침입니다.
전화기 너머 당신의 젖은 눈빛과 당신의 떨리는 손을 만나러 갑니다.
일곱 시간 만에 도착한 고향, 바깥마당에 차를 대자마자 화가 치미네요.
하느님, 이 모자란 놈을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선물한 점퍼로 마당가 수도 펌프를 감싼 아버지에게 인사보다 먼저 핀잔이 튀어나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내가 사준 내복을 새끼 낳은 어미 개에게 깔아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개만도 못해요?
악다구니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파리 목숨이 뭐 중요하다고 손주 밥그릇 씻는 수세미로 파리채 피딱지를 닦아요?
눈 치켜뜨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옷 벗다 쓰러졌잖아요.
어머니, 꼭 목욕탕에서 벗어야겠어요?
구시렁거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트에 지천이에요.
먼젓번 추석에 가져간 것도 남았어요.
입방정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루 더 있다 갈게요.
아니 사나흘 더 자고 갈게요.
거짓부렁 하게 해 주십시오.
뭔 일 있냐?
고향에 그만 오려고 그러냐?
한숨 내 쉴 때, 파리채며 쥐덫을 또 수세미로 닦을까 봐 그래요.
너스레 떨게 해주십시오.
용돈 드린 거 다 파먹고 가야지요.
수도꼭지처럼 콧소리도 내고, 새끼 강아지처럼 칭얼대게 해 주십시오.
곧 이사해서 모실게요.
낯짝 두꺼운 거짓 약속을 하게 해주심시오.
내가 당신의 나무만이 아님을 가르쳐 주었듯, 내 나무그늘을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대대로 건네받으셨다는 금반지는 다음 추석에, 그다음, 그다음, 몇십 년 뒤 설날에 받겠습니다.
당신의 고집 센 나무로 살겠습니다.
나뭇잎 한 장만이라도 당신 쪽으로 나부끼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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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주머니 / 함동진
설날 아침
엄마 아빠께서 주신 덕담
네 마음속에
평생 사랑 주머니 달고 다녀라
언제나 따스한 사랑 가득 채우고
사랑에 주린 사람 만나거든
나누어주거라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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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가까이 / 전상순
그립다 하니
숨지 못하고
보고 싶다 하니
친구 새털구름이라도 내 보내고
이미 고랑 패도록 바라만 봐도 좋다 하니
조금만 스쳐도 환한 빛 띠는 저 대지 위해 하나 떠 있다.
한파를 피해 움푹 팬 논에서 친구 동네로 설 떡 하러 간
엄마 오기를 기다리던
겨울이어도 봄 같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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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결의 / 박인걸
그 사이 한 해는 가고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
연력의 첫날에는
새 마음을 결의하련다.
나뭇결처럼 쌓여가는
짧지 않은 연륜의 무게만큼
경망한 행위를 뉘우치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련다
격조 있는 언어와
바르게 판단한 지혜로
상식을 벗어나지 않아
면안을 돋보이게 하리라.
눈에는 사랑을 가득 담고
가슴에는 영롱한 별을 달고
영혼을 맑은 숲으로 가꿔
흠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순리가 일상이 되고
비우고 내려앉음으로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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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기침 / 정우영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까치야, 까치야, 새 이 다오. 목청껏 외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목울대를 넘어온 말들은 입을 벗어나는 순간, 가래 끓는 소리가 되어 흩어진다. 김노인은 천장 밑에 바짝 달라붙은 지하 창 위를 쳐다보며 망연히 누워 있다. 저런 망할 놈, 슬날 아침에 먼 지랄로 성깔을 부린댜? 그는 깜짝 놀란다. 분명 돌아가신 어머님 목소리다. 두리번거리는 마음속으로 정경 하나가 툭 불거진다. 그는 장날 아버지가 사다 준 검정 고무신이 맘에 안 들어 앞니로 물어뜯고 있다. 눈물 글썽이며 질겅질겅 씹고 있다. 갑득이는 씨이, 희컨 운동화 사줬다는디, 울컥 싸한 전율이 스치더니 곰팡내 나는 방안을 환하게 감싼다. 그래, 그는 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육친의 그림자 너울거리는 세상 껴안을 수 있는 추억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저 멀리서 울리던 까치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오늘 내게도 뭔 손님이 찾아들라나. 싸늘하게 굳어가는 볼을 타고 받은 기침 한 방울 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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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아침 / 윤보영
설날 아침입니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내린 순이 세상을 덮었듯
오늘 받은 복도
내 일상을 덮었으면 좋겠습니다
덮인 복이
조금씩 조금씩
일 년 내게
조금씩 조금씩
웃음을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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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아침 / 이시영
겨울 강 물살 위에 오리 한 마리 없다
목이 흰 고니 한 마리 없다
저 건너 당인리 발전소만이 나와 함께 유구하게 서서
건들거리며 머리 위로 힘찬 연기 날리고 있다
=============
+ 설날 아침 / 이해인
햇빛 한 접시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빠도 엄마도
하늘에 가고
안 계신 이 세상
우리 집은 어디일까요
일 년 내내
꼬까옷 입고 살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식구들 모두
패랭이꽃처럼 환히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네요
---------------------------
+ 설날 아침 / 최진연
마당가 감나무 꼭대기를 비추는 햇살
그 햇살 쬐고 앉은 까치 한 마리
깍, 깍, 깍, 깍
꽁지 까딱이며 깃을 털 때마다
떨어지는 발간 햇살 부스러기들
깃털 무늬 아롱진 축복의 씨앗들.
까치와 새해 인사를 나누려는지
설빔을 차려입은 한 아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본다.
동그래진 눈 속으로 빨려 드는
하얀 봉당 끝, 하얀 마당
무럭무럭 김을 뿜으며 소죽을 먹는
외양간 지붕에도 소복 눈 덮인 풍경들
까치는 그 새 어느 집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날아가고
새파란 하늘을 인 앞산 머리 위로
아침 세수한 해가 솟아오르는데
앞집은 아직도 떡국을 안 먹었을까?
용마루가 묻힌 그 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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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에는 / 전숙
무장 무장 뜨거워지는 것이다
양팔에 출렁 그리움을 안고
오매불망 당신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곰팡이 하얗게 핀 메주 냄새,
골방에 엎어져 후욱 들이키고
정자나무 헐벗은 등짝도 투욱 건드려보고
굴뚝에서 폴폴 거리는 매콤한 연기와
샅바 매고 엎어져 질금거리는 눈물자국
손등으로 쓰윽 닦고 싶은 것이다
소꿉동무 얼싸안고
이놈아 잘 살았더냐’욕깨나 퍼주고 싶은 것이다
빙글빙글 휘어 도는
고샅 막바지의 당숙 댁에도 덕담 올리고
선산에서 기도 중인
봉분들께도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은 것이다
때때옷 지어 입혀주던
여윈 그 몸에 때때옷 입혀드리고
맛난 음식 해주던
합죽한 그 입에 맛난 음식 올리고 싶은 것이다
마이너스통장도, 대출이자도
깨진 장독에 숨겨두고
'으앙'하고 나 첫울음 울 때처럼
천둥벌거숭이로 달려오는 햇덩이를
빈 가슴에 꼬옥 껴안으면
발가락마다 얼음 든 차디찬 세상도
구들장 눌어붙은 안방처럼 뜨거워지리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설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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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오후 / 남호섭
설날인데
앞집 할아버지 화났다.
아들이 주고 간 용돈
그새 어디 둔지 몰라 찾고 있는
할머니한테도 화나고
또 까먹고 간
손자 장난감에도 화나고
고속도로 꽉 막혔다는
뉴스에도 화나고
세배 마치자마자
텅 빈 집 안,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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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봉서(封書) / 김남조
설날엔 오세요
열린 대문으로
바람 먼저 들어설 때
바람 입고 다니시는
당신도 오세요
서른 해
타관살이
어느 길목 어느 땐들
내 가슴 위가 아닌 흙이야 밟으셨나요
설날엔 오세요
세배 손님 주안상에
낡은 문갑 곁들이어
그 안의
옛날 봉서
호호백발 누웠는 거
인젠 펴보셔도
괜찮겠지요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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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파스 / 최명란
설날이다
친척들이 많이 왔다
빽빽하게 누워 잔다
촘촘 비좁다
크레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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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국의 설 / 오보영
설이
설로서 다가오지 않음은
떠나 있어서라
정겨운 고향
푸근함이 덜한
낯선 풍경 때문이라
찾아주고
반겨 맞는 모습들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받을 마음도 줄
마음도
아예
깊숙이
넣어두고 있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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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쓴 일기 / 강정연
내일은 설날이라
큰집에 간다
큰집 형들과 노느라
일기를 못 쓸까 봐
미리 써 두었다.
형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고
세뱃돈도 많이 받았다고.
미리 쓴 일기대로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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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국 한 그릇 / 박남준
섣달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 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그믐 대목 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 보며
두부 전, 명태 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 보이신다고
땅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 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 보따리 싸 들고 오길 바랐었나
일 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 허고 떡국이나 해 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신다
목이 메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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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아침에 / 박노해
설날은 해가 뜨지 않아도 좋다
집집마다 가슴마다
해가 솟아날 테니
설날은 까치가
울지 않아도 좋다
골목 마가 새해 인사
울려 퍼질 테니
설날은 발갛게 꽁꽁 추워도 좋다
이웃들을 돌아보는
인정이 따뜻할 테니
설날은 새 옷이 아니어도 좋다
묵은 옷 빨아 입고
새 뜻 새 희망이 푸르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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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배 가는 길 / 유용주
차가 수유리에 접어들자
화계사 계곡물 흐르는 소리 낭랑하게 들립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길은 곧 지워지고 뼈만 남겠지요
오랫동안 걸어본 사람만이
길의 정체를 알고 무릎 또한 튼튼하리라 믿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투명 겨울길,
살얼음 복병의 눈매로 반짝입니다
사람이 흙을 닮으면
뼈는 나무로 남는가 봅니다
꿈결처럼 웃으시며
비수를 꺼내시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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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의 설레임 / 신경희
밤이 깊도록 한입 가득
만두 속을 채우며 만두를 빚으시던
이른 새벽부터 마음은 벌써
동구밖에 나와 서 계실 어머니
주름진 얼굴 위에 엷은 미소
설레이는 마음
기다림이 익숙한 날 속에
설날만큼은 기다림이 즐거워라.
묵묵히 마당 한가운데를
싸리 비질하시며 헛기침하시는
벌써부터 마음은
동구 밖으로 달리고 계실 아버지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자식들
그저, 무언의 바램은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기를 기원하는 마음
까치가 울어대는 아침이면
행여 출가한 자식에게 소식이 있을까
사랑 긴 마음 동구 밖을 달린다.
얼굴만 보아도 행복한
나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날의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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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설날 / 이효녕
유년의 세월 앞에 두고 떠나온 고향
귀향 열차 기적소리 들길 걸어오면
마음으로 타오르는 그리움 불길 지펴
객지로 떠나보낸 자식 기다리시는 어머니
이마의 주름은 세월의 강입니다
삶의 변방에서 자식들 돌아온다는
설레는 마음에 며칠 밤 지새우며
세월로 스쳐간 기억만큼 풍성하게 차린
자식들 많이 먹이려 마련한 설날 음식
돌아보는 기쁨이 마음을 흔들던 어제의 설날
그러나 이제는 숨 쉬는 것마저 힘든
어머니 몸에 엉킨 매듭입니다
가벼워진 몸 이불자락에 의지하면서
물끄러미 물밑 내려다보시는 어머니
자식들 얼굴조차 희미하기에
이제 바깥 거동은 조금도 못하시지만
내 사랑의 자리는 삶의 강물로 흐르다가
설 차림 상위에 올라앉아 계시는 어머니
아직 생전에 계신 얼굴 들어
앞으로 떠나가실 하늘 바라보는 모습
빨래하시던 강을 건너려
강가의 매어 놓은 작은 노릇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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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고향 가는 길 / 오광수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 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없이 찍혀 있을 종종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 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고요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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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에 대한 소묘 / 송용일
달을 우러러
여백을 찾는 가파른 생의 숨 고르기
뿌리에 情을 두르는 하루입니다
지난 사람에게도 삶의 무게를 아뢰고
음덕을 빌어
무게를 나누고 싶은 날입니다
너를 보고 나를 보이고
우리들을 보는
삶을 다독이는 교차로입니다
모천이 주는 활력을 느껴
하늘 높이 鳶을 날려氣를 세우며
우주를 유영하는 윷말, 별을 해입니다
삶의 매듭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니
오늘의 회귀는 歸天의 나들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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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새해 강림 / 박노해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들
장작불에 데운 물로 목욕을 시킨 후
문기둥에 세워놓고 키 금을 새기면서
봐라, 많이도 자랐구나
어서어서 자라나거라
함박꽃처럼 웃으며 기뻐하셨다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를
깨끗이 빨아 다린 설빔으로 갈아입힌 후
둥근 상자에 앉혀놓고 떡국을 먹이며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일해서 모아낸
저축통장을 펴 보이며 봐라
우리 집 희망통장이 많이 늘었단다
올해도 열심히 공부해 진학하거라
햇살처럼 웃으며 기뻐하셨다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형제자매에게
키가 얼마나 더 자랐는지 키 금을 재지도 않고
돈을 얼마나 더 모았는지 통장을 펴보지도 않으시네
올 설날 아침에도 둥근 상에 모여 앉아
떡국을 나누어 먹이시며
올해도 많이 웃고 건강하거라
욕심내지 말고 우애를 키우며 겸손하거라
옆도 보고 뒤도 보며 화목하거라
또 한 해를 살아갈 강령을 선포하시네
이제 어머니는 내 키가 한 뼘 더 컸다고 하면
기쁨이 아니라 병원부터 가보라 하실 거고
대박 터진 통장을 내밀며 자랑하면
근심 어린 얼굴로 걱정부터 하시리라
이만큼 어른이 되고 밥 먹고살면서도
오직 성공과 부자와 경제성장에만 매달린다면
사랑도 행복도 영혼의 키도 줄어드는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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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섣달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고은영
온 동리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세상에 거 가장 맛있는 냄새들이
온 마을을 휘돌아 내리고
그 해 섣달그믐에는 싸락눈이 내렸지요
새로 사 온 빨강 모자 달인 나일론 외투에
새 바지, 그리고 까만색 새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믐 밤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동네 어귀마다 싸락눈이 밤새 사락사락 내렸지요
가슴 저미는 기덕의 들창으로
동트는 아침은 잎 떨 군 보리수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이 짹짹 노래하고
마당엔 밤새 소복이 싸락눈이 쌓이고
내 기억의 아름다운 창가에
환희로 당도하는 설날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나의 눈물에 피어납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랑을 놓고 떠나간
내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유슈 같이(流水) 흐르고
그 시절 내가 내 어머니의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 외롭게 서성대는
아, 건널 수 없는 나의 유폐된 고립
죽도록 그립다고 죽어도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홀로 외로운 섬으로 남아
눈물 젖은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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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여서 만두 빚을까요? / 유병록
만두피에 소를 올린다
포개서 가장자리를 꾹꾹 누르고 끝을 이어 붙인다
만두 한 알이 완성된다
능숙한 손에 몸을 맡기면
이렇게 그럴듯한 만두가 태어나는 법
사람 일도 마찬가지
차근차근 배우고 조심조심 따라 해서 나쁠 것 없는데
실패하지 않으면 더 좋은데
세상 제멋대로인 사람들 많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귀 모양을 닮은 만두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만두야, 그렇지 않니?
너도 나도 기왕이면 속이 안 터지는 게 좋지 않겠니?
내가 나 좋으라고 이야기하니?
만두를 빚으면
국 끓여 먹고 튀겨서 먹고 쪄서 먹을 수 있지
남의 말 안 듣는 인간들은 어디 써먹을 데가 없지
도대체 왜 그렇게 막무가내일까
그들은 이미 틀려먹었다
빚고 또 빚어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만두 모양이 제멋대로다
자꾸 속이 터진다
오만 생각 다 그만두고
그래, 만두 빚을 때는 만두를 빚자
빚을 수 있는 것은 만두뿐이다
________* 50
덕담 / 도종환
덕담 / 오혜령
덕담 / 이시영
새해 /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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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권영우
설날 / 김선규
설날 / 김종해
설날 / 박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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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박해옥
설날 / 손광수
설날 / 윤극영
설날 / 이상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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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채린
제사 / 최명란
첫날 / 백무산
가래떡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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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길 / 손병흥
설날에 / 안윤주
설날에 / 양애경
설날은 / 김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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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 윤보영
설맞이 / 구재기
설 명절 / 강은혜
설이다 / 윤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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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장 / 김남조
까치설날 / 이정록
복주머니 / 함동진
설 가까이 / 전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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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결의 / 박인걸
설날 기침 / 정우영
설날 아침 / 윤보영
설날 아침 /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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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 이해인
설날 아침 / 최진연
설날에는 / 전숙
설날 오후 / 남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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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봉서 / 김남조
크레파스 / 최명란
타국의 설 / 오보영
미리 쓴 일기 / 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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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한 그릇 / 박남준
설날 아침에 / 박노해
세배 가는 길 / 유용주
설날의 설레임 / 신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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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설날 / 이효녕
설날 고향 가는 길 / 오광수
설날에 대한 소묘 / 송용일
어머니의 새해 강림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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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고은영
우리, 모여서 만두 빚을까요? / 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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