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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겨울

설날 시 모음 3

+ / 강신갑

​백의 입고 흰 떡국에
하얀 마음 담아 올립니다

​온갖 사나운 것들이
연에 실려
아득히 사라지고

​그리운 이여!
보고 싶어요
사랑이 널을 타고 도약합니다.

​이야, 첫도는 약도다!
아랏차, 모다 모야, 모가 났네. 모 오로구나!
윷놀이 함성에 조리도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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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김덕성

​가뭄에 단비 내려 
냇가에는 연둣빛 감도는데 
온 가족이 안전한 귀성길이 되었으면 

​부모님 찾아뵙고 세배 드리고 
온 가족 모여 앉아 떡국에 먹으며 
정을 쌓는 행복한 설이었으면 

​웃어른 찾아뵙고 세배 올리고 
옛 친구 만나 회포를 풀며 정 나누며 
하늘은총 감사하는 설이었으면 

​뿌리 찾아 나눈 설 
연륜으로 성숙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안전한 귀경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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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박동성

​내가 그리워하는 설날은
아이들 웃음소리
꽃처럼 피어나는
페리도트빛 하늘.

​날 그리워하는
너의 그리움과,

​널 그리워하는
나의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나니,

​설날 오는 날에
너와 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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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박인걸

​반갑지 않은 설날이 
영업사원처럼 찾아와 
떡국 한 그릇에 
나이를 강매하니 불쾌하다. 
이마에 주름살은 
밭이랑처럼 깊어만 가고 
이팝나무 꽃잎은 
정수리까지 활짝 폈다. 

해와 달도 여전하고 
까치 목소리도 쉬지 않았는데 
두꺼운 안경에는 안개가 끼고 
속내의를 입어도 무릎이 시리다.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감아 
첫 설날로 돌아간다면 
정밀한 프로그램으로 
후회 없는 설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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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김은영

​설 쇠러 가네
친척들 만나러 가네

​​어서 가서
사촌들 보고 싶은데

​길이 막혀
차들이 설설 기네

​자동차에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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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유국진

​내 눈에 익은 이 길 다시 돌아왔네
지나가는 사람들 아는 이 없고
저 산 이 산만 한가로이 그대로네
설날이라 때때옷을 입고
한 끗 자랑하는 어린아이들
어느 집에는 윷놀이가 한창이라
웃음소리가 햇볕을 타고 반짝이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넘든 다리 너머엔
예처럼 등댓불이 반짝이고
바다 향기가
내 몸을 파랑새로 만드네
찬바람을 뚫고
내 눈에 익은 이 길 다시 돌아왔네
화전 길을 돌아 아지랑이를 보네
멀리멀리 해원의 무정 너머
아버지의 허연 도포자락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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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 정호승

​의자에 쓰러질 듯 앉은
아흔 노모에게 마지막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지 못했다
나는 아직 세뱃돈을 받고 싶은데
이제 아무한테도 세뱃돈을 받을 데가 없다
아파트 앞마당
산수유 붉은 열매를 쪼아 먹는
새에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산수유나무 아래 아이들과 신나게 세워둔
눈사람한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줄 것인가
새해 아침에 함박눈은 자꾸 내리는데
세뱃돈을 받으러
어머니가 가신 먼 눈길을 걸어가는 내가
눈보라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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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 / 강형철

​이제 체면도 없다
새해 첫날 서슴없는 인사말로 당당하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부우자 되시고

말하는 나도, 듣는 사람 그 누구도 모두 웃고 대답한다

​​부자 되라고

​이제 모두 뻔뻔하게 해치운다
전화기에 메모로도 남기고
휴대폰의 녹음기에도 남긴다

​돈 많이 벌고 부자 되라고
지긋지긋한 가난뱅이는 되지 말라고
복권 주식 채권 호박 건어물 컴퓨터 어떤 것이든 사서 대박 터뜨리라고

​​개발 예정지 미리 사서 튀겨지라고 재개발 아파트 사서 몇 배로 튀어 오르라고
자본주의의 나날은
겁도 없이 염치도 없이
내 살 속으로 들어와
유쾌하게 자리 잡았다

​​엉겁결에 나도 덕담 한마디

​자본주의여
이제 부자 되셔서
차암 좋 컷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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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김길남

​겨울이 오면서부터
기다려지는 명절 설날
그때는 그리 기다렸었지요
어렸을 적 이야기
좀 색 바랜 옷 벗고서
새 옷 입고 의기양양
밖에 나갔더니 모두 다가
새 옷 자랑
동네 어른들께 세배하려
몰려간다
주머니엔 세뱃돈이 듬뿍
행복이 한가득한 얼굴들이다

​지금은 옛날 기억하며
손들에게 돼 갚는 시절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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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손정모

​자오선이 평소에 어디를 지나건
솔바람 소리에 깨어나는 산울림처럼
천체는 동에서 서로 기울기 마련이리라.
졸면서도 되풀이되는 타성의 발자취에
결코 이대로 둘 순 없다며
선조들, 지혜의 칼날 갈았네.

​정월이 하필이면 겨울인 것은
춘삼월의 환희를 기약함일까?
강가에 드리워진 물안개처럼
내막 알 수 없을지라도
날 잡고 마음 가다듬어 여는
새해의 첫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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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양광모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이 세상 가장 신명나는 축제

​삼천리 방방곡곡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윷놀이를 벌이면
눈은 차가웁게 쌓여 있어도
마음에는 성큼 봄이 찾아와

​새해에는 더욱 아름다우세요
새해에는 더욱 활짝 피어나거라
이 세상 가장 따뜻한 기도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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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윤제림

​부산 고모가 안고 온 갓난아기는
세배도 안 하고 잠만 잡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시끄러운데
세상모르고 잠만 잡니다

​먹을 것도 많은데
잠만 잡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잠만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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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이정숙


새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해의 첫날
설날은 하늘과 땅도
더욱 새롭다

​아이들은 어르신께 세배하며
세뱃돈에 설레고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잘 되거라, 건강하거라
덕담하는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윷놀이도 하면서 모두가 함께
화애락이로구나

​새해의 삶은 어찌 펼쳐질까
설날은 이래저래
가슴 설레는 날

​인생의 나이테도
또 하나 새겨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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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 이문조

​까치설날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내려준
신의 은총

​헐벗은 착한
나무들에게
입혀준
눈부신 새하얀
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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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 김경숙

​댓돌 위에 신발이 늘어갈수록
신명 나서 분주해진 어머니는
불혹을 넘긴 딸들 아랫목에 앉히고
준비하신 음식 내오기 바쁘시다
혼자 지내신 외로운 나날들
그동안 하고픈 말 어찌 참으셨는지
손주들 알아듣지 못하는 구수한 사투리로
지난 일들을 생중계하신다
먼 친척 애경사며,
동네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
서울에 살고 있는 옆집 아무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대서사시는 밤을 밝힌다
이 밤 지새우고 나면
댓돌 위에 신발들 모두 떠나고
한 켤레 빈 공간 넘나들며
기약 없는 날을 세고 계실 텐데
밤새 내린 눈은 어머니 마음 아는지
댓돌 위에 소복이 쌓여
서둘지 말고 떠나라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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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 허윤정

​설날 가족이 다 모여서 차례를 지났다
남자들만 한복을 차려입고 며느리들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제사를 모신다.

​서로 건강히 만나 아이들 세뱃돈도 주고
세뱃돈도 받고 받은 세뱃돈으로
두 며느리에게 세뱃돈 인심도 쓰고 우리의
초하루 설날은 행복하게 지나간 셈이다

​밀물처럼 밀려와 북적대던 가족은 모두가
떠나고 집안은 겨울바다 빈 모래밭처럼
썰렁하다. 곧바로 대구 아들은 떠나가는
귀갓길에 남양주 자기 아빠 묘소로 가서
참배를 했다.

그곳 남양주 양지바른 계곡의 잔디 위에
놓아둔 임종의 새가 그대로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들은 그 새를 차 거운 땅속에
묻어주겠다고 한다. 그곳 통나무집의 문 위
지난봄에 새끼를 부화해간 새의 오두막이
비어 있으니 그곳에  놓아 주고 가라고 했더니 
무슨 이유인지 엄마 말을 안 들어준다

​저 예쁜 새는 할아버지 생전 아침마다 새들을 불러
모이를 주실 때 그 모이를 먹고 자란 새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먼 곳까지 할아버지를 찾아온 새가
아닌지 손녀딸 소영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 편히 그곳에 묻어주어야
한다고 아이들은 우긴다.  임종의 새는
큰 나무 밑에 수목 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오늘 슬픈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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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 문재학

​오랜 전통에 빛나는
민족 고유의 대명절
새로운 희망을 여는 설날

​그 옛날
설빔의 감미로운 추억도
어른 공경(세배)의 미풍양속도
세월 따라 바래어 가지만

​바쁜 일상. 만사(萬事)를 접어두고
훈훈한 고향에서 가족과
만남의 기쁨. 행복을 나눈다.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리면서
근심 걱정 없는 한 해
만사형통의 새해를 다짐하고.

​나라에는 안녕과 평화
국운융성(國運隆盛)의 한 해가 되고
각 가정마다 늘
건강과 행복이 충만한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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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월치 / 김기홍

​설날을 되찾은 사람들이
죽어 숨 쉬는 조상을 찾아가다
벼랑에 선 소나무를 보았다.

​깨어낸 바위 부서진 돌가룰랑
태풍이 쓸어가고
쓸어간 그 자리에 눈이 내려 얼어붙어
거친 흙 한 주먹도 쥐기 힘든 암벽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 아니었다.
셋이 아니었다.

​폭정에 지친 농사꾼이 이렛날 이레 밤을 숨어서 넘고
권세에 쫓긴 양반이 보름밤을 재촉하던 고개
조선 매국인 앞세워 밀려오던 일본군 까부수려
죽창 들고 돌멩이 싸고 우리 머슴들
청보리 가슴으로 울며 지키던 고개

​끝내는 일본군이 조선 장정 총알받이로 끌어가고
인민군 막힌 데도 없이 잘도 넘고
요새는 작전으로 다 중장비로 까문대 놓고
미군들 찦차 타고 잘도 넘는 이 고개 벼랑에

​수천의 소나무가 잘려가도
수천의 소나무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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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뿔싸 / 오탁번

​까치설날 아침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 세배를 한다
5만 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 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세배를 하면
5만 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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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누이 / 이덕규

​간신히 중학교 나와 맨발로 논두렁 밭두렁 두리반에 밥이나 퍼 이어 나르다가
남대문 시장통 먼 일가붙이 내의(內衣) 가게 점원으로 간 어린 누이가 적금 타서 집에 오던 날
까마득한 참죽나무 위에서 까작까작
너희들이 우는 소릴 처음 들었더란다

​반창고 칭칭 동여맨 얼음 박인 손가락을 어머니 손에서 자꾸 빼돌려 감추며
얘야 서울엔 자장면이 흔터란다
언젠가는 꼭 너를 그곳에 데려가겠다던 누이가
그해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반송된 편지 우표처럼 빛바랜 얼굴로 돌아온 날

​수수깡 울타리 밑
양 무릎에 얼굴 묻고 웅크린 아버지 야윈 가슴을
너희는 또 그렇게 까작대며 후벼팠더란다

​옆집 삼촌들 뒷집 누이들 떼거지로 몰려오던 설날
우리 집 울대 측백나무 가지 위
훌쩍 날아와 울던 낯익은 네 울음소리에 나는 단숨에 행길로 뛰쳐나갔더란다
막차는 이미 떠났고
생각해 보니, 올 사람 하나 없는

​동구 밖엔 송이송이 함박눈만 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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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아침 / 김복수

​개다리소반이 놓여 있던 자리
두레 밥상이 놓이고

​기침소리 들리던 곳에
아이들 웃음소리 때굴때굴 굴러다닌다

​눈 비빈 아침 해가
오두막 봉창을 기웃거리고

​오랜만에 오두막이 쌈지를 끌러놓고
부처처럼 앉아서 넙죽넙죽 세배 공양을 받는다

​참! 아름다운 새날 새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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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설날 / 박인걸

​이제는 하나도 기다려지지 않는다.
나에게 설은 많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강매당할 때
몇 개 남은 곶감이 꽂이에서 사라지듯
바들바들 남은 나이를 붙잡는다.
수명(壽命)이 귀한 것을 이전엔 잘 몰랐다.
뭉텅이 돈을 빼내 쓰듯 허비했다.
화장터로 죽마고우들이 불려가던 날
내 차례가 온다는 것을 의식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설날을 기다리며
눈썹이 샐까 봐 날밤을 지새우고
세뱃돈 받을 꿈에 가슴 설레던
동심(童心) 시절이 천국이었다.
새파랗던 시절 동행서주(東行西走)로
오직 꿈을 위하여 앞만 보며 달렸다.
어느 날 존재를 의식하던 날
생(生)의 종착역이 저기 보인다.
당장 불려가도 아쉬움은 없지만
추한 모습으로 끌려가는 건 아주 싫다.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가고 싶다.
설날이 싫지만 멈추게 할 순 없으니
오늘부터는 남은 설날을 계수(計數)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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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 김득수

​정월을 맞는
둥근 해는 소망으로 가득하고

​때때옷에
꼬까 신 신고 눈길 나들이는
뽀드득 대고 설날 아침은
세상 모두 즐겁다.

​공주님들
색동저고리에 예쁜 댕기 머리
흔들대고 깔깔거리는
모습은 참으로
귀엽다.

​세배 가는
마을 길목에 까치 노랫소리
정겹게 들리고 오고 가는
가족들 모습은
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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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 서지월

​얼음 꽁꽁 언
시냇가 논둑에서 연 날리던 시절
가고 없어도
세배하러 새벽부터 일어나
아버지 어머니께 절 올리던
대청 마룻바닥
얼음장같이 발 시리긴 해도
그때 그날들이 그리운 것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알겠네

​장롱에서 몇 번씩이나 꺼내 입어보던
때때옷과
설 전날 밤 자면 눈썹이
흰 눈 내린 먼 산처럼 허옇게 센다는
어른들의 말씀 감쪽같이 속았어도
신기하기만 하던 그때 그 시절,
되돌릴 순 없어도
생각하면 명경처럼 늘 맑고 환하게
비쳐오는 어린 날의 아버지 어머니
잊을 수가 없네

​지금은 먼 산자락
차거운 흙 속에 계시고
아이들이 줄줄이 아빠 엄마 하며 따라도
다가오는 세상은 더 무섭기만 하고
매냥 눈 내리는 설날이 와도
자식보다 이승 뜨신 부모님 생각에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나는 알겠네

​=================
설날의 기도 / 김덕성

​우리 고유의 설날
새 아침 태양은 솟는다
근엄하게 떠오르는 태양빛
이제 마음에서 빛나게 하소서
구태를 벗어버리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수정같이 삶이 되게 하소서
어떤 일에도 비굴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며
살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사는
건강한 삶이 되게 하소서
사랑으로 여는 희망의 해
알차고 보람 있는 삶으로
큰 뜻을 품고 떠나게 하시고
유종의 미를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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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애상 / 김덕성

​설날 자식들이 돌아간
후 떵 빈 거실에 앉아 있노라니

​세배를 받으면서 떠올랐던
어머니 문득 떠오른다

​공간을 뚫고 오시는 어머니
나는 두뇌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자주 하얀 백지장에
그 고운 얼굴을 그린다

​그 그림은 지금까지도
어느 여인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잔잔한 호수처럼 사랑을 띄운 미소

​잘못 투성인
나를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며

​기도해 주시던 인자하신 어머니
너무 그리워 눈물 흘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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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이면 / 오애숙

​새해엔 너도나도 의례의식 인사말은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말하던가
"떡국을 한 그릇 드셨나요" 묻는 반면
타지서 사는 이들은 전 신정을 지내요

​성탄절 새해를 도매금으로 인사하고
신정 땐 구정을 보낸다 하고 구정 때엔
신정을 보냈다며 방콕이나 하고 산다
구정을 해피하련가 고유 명절인데도

​​가족과 떨어진 후 마음에서 없앤 명절 
하지만 그리움이 밀려왔던 그 서글픔
꼬가 옷 복주머니 찬 세뱃돈 추억 너울
아련히 덮쳐오기에 고유 명절 서럽소

​예전에 부모님이 이민 먼저 가셨기에
모처럼 한국에서 쉴 수 있던 학원 운영
그 기억 아련하게 밀려왔던 심신 안정
하지만 여건상 고향 못 찾기에 아쉬워

타향의 이역만리 그 그리움 밀물처럼
스며와 맘에 머문 우리 얼이 담긴 설날
서로의 정 오가면 이 얼마나 멋진 건가
다시금 생각에 잠긴 애달픈 맘 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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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추억 / 강순구

​뽀얗게 모락모락 오르는 굴뚝 연기
쿵덕쿵 떡메 치던 장단이 들려오고
삐거덕 싸릿 문짝을 밀치고서 들어선다

​깡통을 잘라만든 이동식 아궁이에
솥뚜껑 올려놓고 배추전 부치는 엄마
고소한 기름냄새에 침이 괴어 흐른다

​마루에 큰상 펴고 콩고물 묻혀 가며
인절미 만드시며 쫄깃쫄깃 웃으시는
할머니 따스한 사랑 배어든다 가슴속

​따뜻한 어머님 품 같았던 고향 뜨락
아릿한 풍경들이 세월에 흘러가고
할머니 떠나신 자리 내가 부모 되었구나

​그리워 눈 속 가득 담겨진 설날 풍경
그 추억 마냥 어린 내 모습도 변했구나
세월은 흘러서 간다 훠이훠이 빨리도.

​=================
설날의 추억 / 민미량

​까치 까치 설날
올해도 찾아온 설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잠시 생각해 본다

​일 년 동안 기다렸던 설날
맛있는 아침상이 차려지고
서울에서 오신 형제자매들이
한 상에 모이던 설날 아침

​아침 식사 마치면
마을을 돌며 동네 어른들께
세배 올려 드리고
점심때쯤이면 눈이 녹아
새 옷에 흙탕물 튀지만
먼 길 친척 집에 찾아가
세배 올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제 남은 시간
쌀쌀한 날씨에 해는 거의
산 위로 접어들고
동네 꼬마들은 옹기종기 모여
새 옷들을 자랑하며
마당에서 뛰노는 어린 꼬마들이
떠드는 시끄러운 소리도
설날만큼은 어른들께서
허락하시던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 9시 완행열차 타고
서울로 먼저 올라가는 형제자매도 있고
하루 이틀 더 남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형제자매도 있으나
3일째 되는 날이면 사람도 떠나고
맛있는 음식도 떨어졌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설날에 입은 예쁜 옷과 선물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
어린 꼬마 나에게는 한동안
기쁜 마음을 가져다주었었다

​이제 나이 들어 추억을 먹고 사는 나는
다시 돌아 보아도 60년대 한국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있었던 설날
지금은 옛 추억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해마다 설날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추억의 이야기되어
때로는 마음 설레이게 하고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작년 설날 아침에
전화 뒤편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  
내가 어려서 잘 먹던 쑥떡을 지금 살고 있는
미국에까지 전화로 전해 주시겠다는
93세 되신 나의 어머니 웃음소리
그렇게 나의 설날은 전화로
잠시 동안 웃음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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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정 / 김덕성

​오려낼 듯 추위도
이제 그만 봄 내음 코끝에 머물고
친근감을 느끼는 정情이 흐르며
사랑의 향기 내린다

​설 명절 아쉽게 지나가고
온기가 느껴지는 봄이 오는 듯
새 움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소식이 전해 온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情으로 모여 사는 단일의 우리
상처받으면 함께 아파하며
끈끈하게 살아온다

​부모님께 세배 올리는 
예부터 내려오는 설날 어디 갔는고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가니
이러다 설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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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리움 / 박인걸

​떡방아 찧는 소리
암반에 떡 매질하는 소리
앞산 뒷산에 메아리쳐오고
술 익는 향기는 언덕을 넘었다.
굴뚝마다 설 연기 피어오르면
처마 밑 산새도 신나게 날고
설음식 짙은 향기 바람 타고 날면
동네 강아지들도 떼 지어 뛰었다.
윷놀이 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동심의 양어깨에 날개가 달리고
설빔 세뱃돈 아이들 가슴은
풍선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날았다.
고깃국 한 사발에 두 팔에 힘이 솟고
고무신 한 켤레에 몸은 허공을 걸었다.
동심의 설날은 생일보다 즐거웠고
이유 없는 행복감이 가슴 깊이 스몄다.
꿈결같이 빠른 세월은
낯선 땅에 나를 태워다 놓고
주름 깊은 눈꺼풀 사이에는
그 시절 그리움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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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목의 설날 / 서정주

​바다는 
얼지도 늙지도 않는
울 너머 누님 손처럼
오늘도 또 뻗쳐 들어와서,

동지 보리 자라는
포구 나룻목.

두 달 전의 종달새
석 달 뒤의 진달래 불러
보조석 공 아이는
돌 막을 빻고

배 팔아 도야지를 기르던 사공
나그네의 성화에 또 불려 나와
쇠코잠방이로
설날 나그네를 업어 건넨다.

십 원이 있느냐고
인제는 더 묻지도 않고
나그네 배때기에
등줄기 뜨시하여
이 시린 물 또 한 번 업어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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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을 먹으며 / 양광모

​먹기 위해 사는 게 인생은 아니라지만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 어디 또 있으랴
지난 한 해의 땀으로
오늘 한 그릇의 떡국이 마련되었고
오늘 한 그릇의 떡국은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든든함이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설날 떡국을 먹으면
희망처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아물지 않은 상처마다 뽀얗게 새살이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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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기하여 / 임영준

​그나마
원단(元旦)을 디디는 여명(黎明)이
풀뿌리를 어룬다

​깃털 하나쯤 남았는지

​예정된 수순일지라도
변환점인 것을

​못 이기는 척 따라야 하는
마지막 행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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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준 봉투 / 김덕임

​동그란 얼굴 항상 웃던 헤보
빌려오라는 심부름은 절대 못하는

​늘 형에게 뺏기고 양보하는
마음 약한 아이

​이제 불혹의 나이기 되어
잘나가는 기업의 팀장이 되었다

​날마다 바쁘다고
설날에도 오지 못하였다

​엄마 만나러 집에 왔다
웃음을 잃어버린 낯선 모습

​이마에 굵은 주름 덥수룩한 수염
사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어머니 축하해요
꽃다발 속에 들어있는 봉투

​아들아 고맙다
힘들게 번 돈 아까워서

​문갑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다
신사임당도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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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붕 위에 /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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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사랑길 / 김덕성

​곧 귀성이 시작되지만
고향 길이 코로나 새 변이로
설 귀성을 자제하는 많은 분들이
아픔을 겪는다

​사무치게 기다린 설날
장사진을 친 차량의 행렬로
고생을 마다하며 즐겁게 가던
그리운 고향방문

​설에 부모 만나 뵙고
큰절로 감사드리는 귀성이었는데
만나 뵐 수 없으니 보고 싶어 하는
부모의 서운함은 어떻게 하랴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어서 자유롭게 고향 가는 길
그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하늘을 우러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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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설날의 전설 / 김영언

​세월두 참, 

​그전 같으면 온 동리가 시끌벅적 헐텐디 흰 두루마기 정갈허니 차려입고 집안 맨 웃어른 앞장서고 식솔들 내리 줄지어 해뜨기 전에 제일 먼점 조상님네들 산소 갔다 오고 노인네들 계신 집마다 정초 문안 여쭙는 세배꾼들이며 집집이 돌며 덕담 나누는 술꾼들 무리 옥빛 남빛 곱살스레 바지저고리 차려입고 신작로마다 발자국들 왁자허니 줄 이을텐디 인젠 설두 설같지두 않구 그나저나 이놈의 동네가 어디 사람 사는 디 같어야지 육지대로 떠나 버린 빈집들만 여기저기 음산허고 그나마 남어있다는 건 죄다 꾸부정헌 늙은이들뿐이니 게다가 해마다 하나둘 세상 뜨다 보니 명절이라구 도회지 나간 자식새끼들 내려오는 집두 두서넛뿐이고 에이구 설두 이젠 다 옛날 얘기지 늙은이가 뒤주 위에 메 한술이라두 떠놓는 게 어디 여간 애성스런 일이어야지 세상두 참 요상허지 철두 제대루 모르는 예닐곱에 시집와서 이렇다 하게 부쳐먹지두 못 헐 오죽잖은 땅뙈기나마 후벼파고 철철이 산으로 갯기슭으로 기대질치며 극매느라 손톱 한번 제대로 자랄 틈 없이 허구헌날 고단허니 엄동설한 같은 시부모 모시고 온갖 시집 다 살면서두 그래두 하나 믿고 의지할 건 올망졸망한 저 자식새끼들뿐이라고 입은 거 벗어 내주고 입안에 든 것이라도 단것이면 뱉어 내 먹이며 길러 너희들만큼은 절대로 이 지긋지긋헌 세상 대물림하지 말고 남대두 좋은 세상 떵떵거리며 살아야 한다고 가슴팍 살점 도려내듯 도회지로 살림 내주었더니 이제 와서는 며느리 시집이라니 참말 거꾸로 흐르는 세월이여 한해를 통털어 고작 서너번 무슨 일 때나 잠깐 다녀가는 요샌 며느리가 며느리가 아니라 손님이라고는 허지만 애들 사는 도회지는 밤낮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지 회사에갑자기일이생겨서애기아빠가비상근무래요너무서운해하지 마 세 요 어머니 서운허긴서운허긴뭐다괜찮다세월이그런걸 어 쩌 겠 니 자식들마저 안내려오니께 그 흔허던 술꾼 하나 언뜻도 않네 허긴 예전 같으면 보리막걸리나마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내던 열 말은 실히 넘을 저 큰 술독 거미줄 친지 오래건만 아니할아배는왜저기전화기옆에꺼내논새한복두루마기안입었어요설에입으라고지난번에올라갔을때큰애가해준건데새옷은입어뭐해눈이나좀치울까웬눈은이리도많이쌔이나아올사람도없는데눈은치워뭐해요그래두혹누가오기라도하면……

​아무도 오지 않은 그해 설날
단단히 얼어붙은 신작로를 따라
마당 가득 전설 같은 함박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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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이 불었다 / 김길남

​설날 아침에
자식들
그리고 조카들이 우르르 몰려 와
세뱃돈을 뿌렸다
날이 바뀌고
제자랑 후배들이 몰려와
세뱃돈을 놓고 간다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 행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난 제자랑 후배들께
풍족한 지식을 옮겨 주지도
못했는데 ...........
어허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뱃돈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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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눈 새벽 기도 2 / 이영지

​흰 눈을 소록소록 손으로 섣달그믐
오묘한 당신을 만나러 검은 밤
요정의 별들 흰옷으로 설날에만 뿌리며
이 아침 백합화 양손으로 상큼상큼 안으며 
나에게 맵디맵다 매운 얼 내림 되는 거
하얀 설 오 천 해 이슬 은 바다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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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명절 설날 아침에 / 허윤정

​뜨락의 새소리에 봄이 오는 기척이 선연하다 
낯선 그리움의 시간은 흘러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음력 설날의 1월 1일 아침이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모였다  선조의 차례도 지내고 삶의 본원인
가정과 가족을 만나는 시간은 반갑고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다

​큰 며느리는 종일 자기 집에서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고 작은며느리는 대구서
올라왔다. 함께 준비해서 커피까지 타 와
소리 없이 아버지 차례상은  준비 끝이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남양주 아버지
묘소에 먼저 절을 올리고 왔다 
어머니인 나에게 모두 함께 세배를 한다.
그리고 차례를 지났다.

​누가 정해준 법도도 아닌데 그렇게 진행되는
우리 집의 새해맞이 절차다. 그러면서 작은
일까지의 예도도 공부를 해서 가정의
차례 문화를 정립하자는 아이들의 제안이다. 

​제일 우선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배례가 최우선 순위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과 사랑으로 새해라는
첫날을 웃음으로 맞는 것이다.

​이웃에 가까이 살기에 딸네 가족도 저의
차례를 마치고 모였다
현대판 TV 영상으로 가족 촬영도 하고
즐거운 덕담의 시간을 잠시 나누고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그들의 처가댁 세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만남의 아쉬움을 남긴 채 모두 떠나고 다시
빈집이다. 밤이 깊었다 다시 아들은 엄마와
함께 잔다고 왔다.

​'설날' 이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설다
낯설다 하는 설에서 대강 그 유래라고 한다. 
설 역시 처음 맞이하는 낯설 은 말로 서럽다는
뜻의 섧다에서 왔다고도 한다. 한 해가 지남으로써
세상의 부모들은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가끔
서글퍼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라는 우리 고유
명절의 설날, 그렇게 새해맞이 큰 행사는 끝났다
창밖의 새소리가 나의 아침을 화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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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큰 명절 설날 찬가 / 정행호

​덩더꿍덩더꿍 두메산골
마을마다 집집이
떡방아 찧는 소리가 그윽하다

​힘겨운 몸동작에 심박 수가
턱 끝을 향하여 뜀박질하건만
절굿대를 높이 치켜들어
절구통 속의 찹쌀을 향하여
냅다 내려치시던 어머님 모습을
어디에서 찾을 거나

​두 발을 모아 종종거리며 걷는
까치의 축가에 설레는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기다린다

​아름다운 미풍양속
큰 명절 설날이 주는
그지없는 교훈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던 유년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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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 기념 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 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 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태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 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 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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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2 / 이동순 

​한 해가 갔다 
연극의 한 토막이 끝났을 때처럼 
막간엔 잠시 불이 들어오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부신 우리들은 
한 치 앞을 못 보는 청맹이 되어서도 
보이지 않는 앞을 줄창 바라보면서 
어디선가 제야의 종이 우는소리를 들었다 

​주위의 사물들이 은은히 밝아올 무렵 
다시 불은 꺼지고 
끝없는 암담한 우리들의 눈앞에서 
새해의 막은 소리 없이 올라갔다 

​아니 팡파르가 요란하게 들린 것도 같았다 
무대 위에선 낯익은 배우들이 
인간의 거짓 사랑을 진실처럼 꾸미기 시작했고
그의 머리 위에는 스티로폼을 부수어 만든 
그해의 첫눈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배우들이 자리를 옮겨 다닐 적마다 
내려도 녹지 않는 화학제품의 그 눈들은 
짜증스럽게 따라가서 펑펑 퍼부었다 

​그날 밤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며 
눈조차 녹지 않는 시대의 봄이 
그 언제쯤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쯤 도오랑을 대충 지우고 
막 잠자리에 든 배우들의 중얼거리는 잠 속에도 
피곤한 눈은 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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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기 쉬운 설날이 왔다 / 정영숙

​여동생의 아들이 결혼 한 지 7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얼마나 기다리든 손자인지 말로 다 글로다 표현할 수
없이 자랑스러운데, 그 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아들은 수의사인데 요즘 구제역으로 인하여 바빠서
힘이 들고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설은 왔다.
손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절 한 번 하면 만 원을 받았다.
설 다음 날, 여동생의 손을 잡고 슈퍼에 간 손자가
놀이 카드를 살려고 하니까 손자 보고 말하기를“집에
카드가  많이 있는데  왜 또 살려고 하느냐 요즘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아빠를 봐라!”고했다. 손자가
조르며 대답하기를 “할머니, 요즘은 돈 벌기가 파리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쉬워요. 파리는 잡으려고 하면 금방
도망을 가는데 돈은 절만 한번 예쁘게 하면 주는데 뭐가
그리 어려워요”라고-. 아침에 전화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에는 시집에 금년에는 친정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외손자 이야기도 하며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했다.
아이들에게 설은  1년 중 돈 벌기 가장 쉬운 날이다.
이렇게 순진 난만한 아이도 철들면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을 날이 올 것이지만, 세뱃돈 받는 이 때가 행복이요
미래의 추억거리다.
우리도 어릴 적 그랬으니까 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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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고은영

​온동리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들이
온 마을을 휘돌아 내리고
그해 섣달그믐에는 싸락눈이 내렸지요

​새로 사 온 빨강 모자 달린 나일론 외투에 
새 바지, 그리고 까만색 새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믐밤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동네 어귀마다 싸락눈이 밤새 사락사락 내렸지요
가슴 저미는 기억의 들창으로 
동트는 아침은 잎 떨 군 보리수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이 짹짹 노래하고 
마당엔 밤새 소복이 싸락눈이 쌓이고

​내 기억의 아름다운 창가에
환희로 당도하는 설날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나의 눈물에 피어납니다
세월의 저편으로 사랑을 놓고 떠나간
내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유수(流水) 같이 흐르고
그 시절 내가 내 어머니의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 외롭게 서성대는 
아, 건널 수 없는 나의 유폐된 고립

​죽도록 그립다고 죽어도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홀로 외로운 섬으로 남아
눈물 젖은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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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소년의 설날 / 강효수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부침개 뒤집는 뒤집개가 된다
북어포 자르는 톱이 된다
과일 깎는 과도가 된다
접시가 된다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허리 아픈 며느리가 된다
갈 곳 없는 노숙자가 된다
약오른 노모의 샌드백이 된다
눈물이 된다
도망 다니는 쥐가 된다

​아주 오래된 소년은
설날엔
아무래도 좋단다
좋다고 희희낙락 거린다
떡국도 잘 처먹는다
하늘에 연이 된단다

​혀차는 노모는
저거 언제 철들려나 한다



​________ * 47



설 / 강신갑
설날 / 김덕성
설날 / 박동성
설날 / 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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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김은영
귀향/ 유국진
눈길 / 정호승
덕담 / 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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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김길남
설날 / 손정모
설날 / 양광모
설날 / 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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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 이정숙
축복 / 이문조
설날에 / 김경숙
설날에 / 허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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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 문재학
운월치 / 김기홍
하뿔싸 / 오탁번
까치 누이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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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 김복수
노인의 설날 / 박인걸
설날 아침에 / 김득수
설날 아침에 / 서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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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기도 / 김덕성
설날의 애상 / 김덕성
설날의 이면 / 오애숙
설날의 추억 / 강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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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추억 / 민미량
잃어버린 정 / 김덕성
그 시절 그리움 / 박인걸
나룻목의 설날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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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을 먹으며 / 양광모
설날을 기하여 / 임영준
아들이 준 봉투 / 김덕임
작은 지붕 위에 / 전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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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사랑길 / 김덕성
그해 설날의 전설 / 김영언
세뱃돈이 불었다 / 김길남
설날의 눈 새벽기도 2 /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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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절 설날 아침에 / 허윤정
민속 큰 명절 설날 찬가 / 정행호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1 / 이동순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2  / 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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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기 쉬운 설날이 왔다 / 정영숙
섣달그믐, 그 아름다운 기억 / 고은여
아주 오래된 소년의 설날 / 강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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