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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하 ~

홍수희 시

+ 4월

화선지 위에 어둠을 그린다
그만 문은 닫히고 만다
아무리 많은 색깔을 늘어놓아도
그릴 수 없는 내 속의 캄캄한 어둠
어둠은 또 다른 어둠을 부르고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느닷없는 돌개바람의 미친 자기 분신,
당신은 나에게는 지나친 백야!
부활의 4월은 내게 부활을 주지 않고
내 영혼의 무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단단하고 거대한 바윗덩이는
끝끝내 움직여 흔들릴 줄 모른다
어찌하여 바위는 구르지 않는가
시지프가 굴리고 굴리던 바위, 어찌하여
4월의 부활은 내 영혼의 부활을
흔들어 깨울 줄을 모르는가
마침내는 나만이 홀로이 책임져야 할
나의 원죄를 묵상하는 밤,
나의 어둠은 비로소 시작된다
피투성이 부활은 어렴풋 기지개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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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에 쓴 시

지금쯤 어딘가엔 눈이 내리고
지금쯤 어딘가엔 동백꽃 피고
지금쯤 어딘가엔 매화가 피어

지금쯤 어딘가에 슬픈 사람은
햇살이 적당히 데워질 때를 기다려
눈물 한 점 외로운 벤치 위에 남겨두고서

다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겠다
다시 어디론가 길을 뜨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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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꽃밭에 꽃이 피면
내 마음 그 찬란한 꽃잎이 아닌
꽃대궁을 받쳐든 말없는 그늘이게 하소서

당신의 뜨락에 새가 울면
내 마음 소리 높여 지저귀는 노래가 아닌
그 음계를 받쳐든 잔잔히 술렁이는 가지이게 하소서

어두움이 깊어갈수록 빛깔이 짙어지는 별빛처럼
실눈을 뜰수록 거울을 닮아가는 둥근 보름달처럼

고개를 숙이고야 숙인 만큼 더욱 붉어지는 노을처럼
내가 작아지는 만큼 점점 커져 오르는 그리움처럼

사랑은 비로소 가진 것을 한없이 내어줄수록
더욱더 차 오르는 요술 항아리

사랑은 마침내 고독의 겨울을 사르고서야
눈부시게 도착하는 하느님의 봄빛 연서

그러하오니 주여,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가장 초라한 손을 내가 먼저 따뜻이 잡게 하시고
가장 누추한 가슴을 내가 먼저 설레며 방문하게 하시어

이 세상 가장 슬픈 귓가에
먼저 가 닿는 나 은은한 종소리가 되게 하시고

이 세상 가장 음습한 골짜기에
먼저 가 닿는 나 넘치는 햇살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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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당신의 눈빛이
내 마음에 꽂히자마자
퍽, 소리가 났습니다
내 안의 것들이 한꺼번에
풀썩 주저앉는
소리였어요
어떻게 알았지요?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찬찬히 읽고 있었습니다
감추고 싶었는데
다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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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무렴
잘 있겠지 하면서도
자꾸 맘이 켕긴다
한마디
소식 없이 지내면서도
행여 외롭지는 않을까
시선은 자꾸
너의 마음 밭을 서성거린다
물론 네게는
나보다 가까운 사람
곁에 있지만
이래도 저래도
생각 키우는 건
네가 너무 여린 가슴을
지녔기 때문,
부디 행복하여라
언제나
봄날처럼 환히 웃기를
나는 이 쪽
반대편 별 끝에 서서
너를 위해
불 하나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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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너는 또 어드메 깊은 골짝에서
보이지 않는 손 그토록 숨기었다가
자꾸만 흔들며 다가오는가

온 여름을 거부 하여도
그저 느즈막한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가슴 속
차가운 눈물로 찾아오는 이

지나오면 회한은 그 어디에서나
비릿한 흰 앙금으로
슬프게만 맺혀져 오는 것인가

어찌하란 말이냐,
내 좁은 혼(魂) 속엔 다 담지 못할
이다지도 서글픈 그리움이여

움켜쥐기엔 너무 멀어진 기억
나 그대 이토록 아프게 놓아
보다 큰 자유를 불러 보거늘

거부할 길 없는 너는,
어이하여 또 다시 희디흰 두 손
나를 붙잡아 흔들고야
흔들고야 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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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편지

꽃 피더니 꽃이 집니다
산에도 마을에도 꽃이 집니다
강가에도 철길에도 꽃이 집니다
그리운 내 맘에도 꽃이 집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다고
보지 않으면 잊혀지다가
불현듯 또 그렇게 생각나다가
잊어지다가 쓸쓸히 지워지다가
다시 또 잠 못 드는 날 있겠거니
꽃 진 자리에 꽃 피겠거니
보고픈 정 어찌 다 지워지겠는지요

지는 꽃 내 마음에 거두지 않고
오셨던 그대로 놓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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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섬

울고 싶다고
다 울겠는가
반쯤은 눈물을 감추어두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사는 것이
바다 위의 바위섬처럼
종종 외롭고도
그렇게 지친 일이지만
가끔은
네 어깨와 내 어깨를
가만히 대어보자
둘이다가도 하나가 되는
슬픔은 또한 따스하다
울고 싶다고
혼자 울겠는가
반쯤은 눈물을 감추어두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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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고해

이 가을 나는 몹시 아프다
사랑도 되지 않고 미움도 되지 않는다

그대를 온전히 사랑한 적이 없고
그대를 제대로 미워한 적도 없다

늘 어정쩡한 거리에 서서
곁눈질만 하였다
나의 삶,

차라리 이 가을
그대를 절실히 미워하다가
차라리 이 가을
그대의 발을
내 눈물로 씻기고 싶다

저 지는 낙엽처럼
나도 나에게
이별하여 죽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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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비

슬픔도
적당할 때 눈물이 난다

태풍의 눈 속인가
너무나 고요한 내 마음이여

그대와 나 사이
이다지도 깊은 심연을 두고

하루는 너무 조용히
왔다가는 내게서 멀어져간다

그리고 내일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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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봄은 온다
서러워 마라
겨울은
봄을 위하여 있는 것

잿빛으로 젖어있던
야윈 나뭇가지 사이로
수줍게 피어나는
따순 햇살을 보아

봄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것
불러주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야

사랑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 것
인내하며 가꾸어야
꽃이 되는 것이야

차디차게 얼어버린
가슴이라면
찾아보아 남몰래
움트며 설레는 봄을

키워보아 그
조그맣고 조그만 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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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

하루종일 어두웠다
한낮에도 나는 내 안에 불을 켜지 못했다
어두운 내가 어두운 내 안에서 나와
어두운 하루종일 어둠을 만지작거렸을 뿐이다
역시 어두운 저녁 어두운 여덟 시
여전히 어두운 TV화면이 입을 열었다
마침내 하늘이 단비를 뿌렸습니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던 서울에서는
궂은비가 이어진 가운데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특히 강풍특보가 내려진 해안지방에는
최고 초속 30미터가 넘는 돌풍도 불었습니다
비바람에 암흑현상까지 나타나
차량들은 한낮에도 전조등을 밝혀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하늘이 단비를 뿌렸습니다
그제야 환하니 내 안에 불이 들어온다
가뭄으로 쩌억쩍 갈라지던 내 마음의 풍경에도
단비 내리려 하루 종일 어두웠구나
오늘 뒤집힌 우산 아깝지 않구나
세상 버릴 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랬구나 참말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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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편지

어딘가 허술하고
어딘가 늘 모자랍니다

하루나 이틀
꽉 채워지지 않은
날수만 가지고도
이월은 초라합니다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 틈새로 가까스로
걸려 있는 날들이여,

꽃빛 찬란한 봄이
그리로 오시는 줄을
알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일 년 중에
가장 초라한 2월을
당신이 밟고 오신다니요

어쩌면 나를 가득 채우기에
급급했던 날들입니다

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더라도
조금은 부족한 듯 보이더라도

사랑의 싹이 돋아날
여분의 땅을 내 가슴에
남겨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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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동행

오늘은 나뭇가지 끝에 바람이 매서워요
그 매서움 끝으로 시퍼렇게 날을 세운 슬픔이
가슴께를 콕콕 쑤시고 지나가요

별보다 멀리 사는 그대여,
그대가 거기서 아프면 내가 여기서 아프고
내가 여기서 흐뭇하면 그대가 거기서 흐뭇해요

카시오페이아자리보다도 페가수스자리보다도
머나먼 곳에 사는 그대여, 아프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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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맨발바닥에 닿는 싸늘한 감촉,
바닥인 줄 알았는데 바닥이 아니었다.

바닥의 바닥에
그 바닥의 바닥의 바닥에
맨발바닥 닿았는데도
거기도 바닥이 아니었다.

바닥의 심연,
그 심연의 바닥에 이르기까지
나는 나를 찾을 수 없겠다.

바닥의 심연,
그 심연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가 아니겠다.

산다는 것이
내 영혼의 바닥을 향해
삼가며 삼가며 거듭 삼가며
순례하는 길이란 것을

바닥의 바닥에
바닥의 바닥의 바닥에 이르고서야
더듬어 만져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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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주고서 받을 셈은 잊게 하시고
더 주지 못한 아쉬움만
갖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받고 싶은 한 마디는 잊게 하시고
주어야 할 한 마디만 내내
기억하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창가에는 불빛 하나 걸어두게 하시고
문 두드리는 소리 행여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현란한 겉치레의 행적보다는
관심의 작은 몸짓 하나가
부디 기적의 시작임을 알게 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격식이나 체면에는 덤덤하게 하시고
진실로 서야 할 자리를 분별하는
견고한 지혜를 허락하소서.

내게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오늘이 곧 영원으로 이어진 길 위에
놓여 있음을 알게 하소서.

새해에는 사랑만 남게 하소서
사랑만이 삶의 이유가 되게 하시고
오직 사랑만이 내게는 하루의
목적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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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편지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놓고
섬진강에 와서 울었다
땡볕 아래
꽃길도 지쳐 지쳐
흐느적 휘청일 때에
단숨에 달려와 바라보는
애잔한 섬진강의 잔물결이여
사랑이
어찌 저절로 되겠는가
상처마저 축복의 붕대로
감싸주어야 하리
다시는 추억도 않으리라
다짐해 놓고
오래오래 너를 위해
기도하리라
섬진강에 와서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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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지기 전에

사람 속으로 들어갈수록
외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오히려
낯선 얼굴일 때가 있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내 마음이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여

문밖에서 오랫동안
쓸쓸하게 서성거리는 날은

키만 멀쑥이 커버린 가로등도
골목에 부끄럽게 숨어버리고

내가 사는 마을에 어둠이 와도
불 밝혀줄 점등인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잊는 일보다 더 어려워

풀잎처럼 파르르 흔들거리는 날에
별빛 하나 추억처럼 깜박이는데

벗이여, 저 별이 지기 전에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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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아래서

고독과 고통을 음미하라!
아주 천천히

그리하여 그곳에서
마침내 단맛이 나게 하라!

그때 비로소,
고독은 기도가 되고
고통은 은총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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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물

내 삶에 그대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자주 만나진 비록 못하여도
못 견디게 외로웁거나
때로 기쁨으로 가슴 벅찰 때
전화를 걸면
언제나 거기 있어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

한숨을 지으면
한숨을 짓는 대로
웃음을 웃으면
웃음을 웃는 대로
물어보지 않고도
느끼는 사람
보지 않고서도
나눌 수 있는 사람.

삶이란 그렇게 울고 웃으며
함께 걷는 것이라고
나란히 말할 수 있는
그대는
나에게 소중한 선물...

그대가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
슬픔이 지나가네

꽃이 피면
지어야 할 때를
꽃이 알듯이

바람이 불면
잦아들 때를
바람이 스스로 알고 있듯이

우리들 사랑도
머무를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알고 있다면

희망이여,
무에 슬픔이고
좌절이고 있겠습니까

있으라 하면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물러나 있으라 하면
물러나 있을 그 자리에

제 자리를
흐뭇이 지키겠으니
조금의 여유인들
부리겠으니

당신은
언제나 내 것,
슬픔은
저만치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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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가는 편지

완행 열차처럼
가을은 천천히 지날 일이다

엄지와 검지사이의 여유도 없이
지나쳐버린 계절속에는

잃어버린 표정과 잃어버린
순수가 버려져 있다

슬프면 울기 기쁘면 웃기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워하기

풀벌레가 앉았던 화단가
돌멩이에도

이 가을에는
멈추어 웃음짓는 간이역이길

틈새가 있어야 정이 흐르고
틈새가 있어야 사랑이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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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늘도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나의 하루
지치고 고달펐거늘
그대 생각에 조금은 행복했노라
보지 않아도 내 마음 거기 있노라
꽃은 지고 다시 피나니
이제 기척 한 번 주시기를
나 여기 있다
한 말씀 하여주시기를
때로는 투정 섞어 적어보지만
끝내 부치지 못하는 편지
내 마음 이미 그 곳에 있어
계절의 오고 감이 그저 섧거늘
행여 연약하다 책망하실 까
쓰고서도 부치지 못하는 편지
행여 가벼웁다 눈 흘기실 까
목메어도 부치지 못하는 편지
내 마음 한 켠엔 수북이 쌓여만 가는
그대가 읽어야 할 편지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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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  아시나요

잎 지고 새 떠나간 겨울 숲에는
외로움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남아 윙윙 부는
바람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인기척에 놀라 툭,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삭정이만 사는 것도 아니지요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어 꽃씨가 산답니다
파릇파릇 새순이 산답니다

부끄럽게 웃고 있는
꽃 무리도 숨어살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숨어살지요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는 말아요

희망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니까요

겨울 숲에는 두근두근
설레는 봄날이 숨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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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가 있는 풍경

흔들거리지 않는 그네는
쓸쓸하다

외롭고 고단한
우리 가는 이 길에
누군가 등 좀 밀어줬다고
허공에서 그대
잠시 즐거웠단 들

너무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너무 나무랄 일도
아닌 것이다

허공에서
뒤척여 보지 않고서야
어찌 낮은 데의 평화를
알 수 있으랴

바람 속에 퍼덕퍼덕
휘둘려 보지 않고서야
어찌 한 길을 가는
잔잔한 행복을
알 수 있으랴

움직이지 않는
그네를 보면 나는 오늘도
뜨거운 손으로 높이
높이 올려주고만 싶다



================
+ 그렇게 2월은 간다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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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잔이 넘치나이다

때로는 당신의 사랑이
나를 힘들게 하시었네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당신이 불어주던 휘파람 소리

그 길이 아니면 아니 된다고
나를 인도하시었네

어찌 편한 길은 그대로 두고
비탈진 그 길로 인도하 시었네

사랑의 언덕은 높고도 험해
십자가 없이는 오르지 못하리 당신이 두 팔 벌려 서 계신 그곳

그곳에 나 다다를 때까지 임이여, 휘파람을 불어 주소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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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은
포기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바램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지우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기대가
저 혼자 자라
내 마음의 순수를
갉아먹기 전에

결점이 많은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울고 웃는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 어느 날
기대도 없이 등뒤에
감춰둔 꽃다발처럼

놀라운 선물을
고백하도록 사랑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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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가야 할 이유

슬픔을 뒤집어 보니
거기 기쁨이 있더군요

기쁨을 뒤집어 보니
거기 아픔이 있더군요

다시 아픔을 뒤집어 보니
거기 감사가 있더군요

이렇듯,
삶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생각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리 보이기도 하지요

희망마저
잔인해 보일 때,

그래도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래도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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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나에게 건네준 말

어느 날
차창에 낙엽 한 잎
노란 몸짓으로 날아오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건네주는 말
생각해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뭐겠니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네
어느 익숙한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아니면……
머뭇거리는 나에게
낙엽이 가만히 속삭이는 말
생각해 봐,
내가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받아 줄 사람이 거기 없을 때
가슴 저미는 일이야
두 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 일인 거야
바람만 불어왔다 불어가 버리는
혼자 남은 괴로움이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주어진 기회를 붙잡으렴


____________


4월
2월에 쓴 시
기도
눈빛
인연
--------
입추
꽃 편지
바위섬
가을 고해
내일은 비
-------------
봄은 온다
오늘은 비
이월 편지
머나먼 동행
산다는 것이
----------------
새해 아침에
섬진강 편지
별이 지기 전에  
십자가 아래서
아름다운 선물
----------------------
슬픔이 지나가네  
가을로 가는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겨울 숲  아시나요
그네가 있는 풍경
-----------------------
그렇게 2월은 간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그래도 살아가야 할 이유
낙엽이 나에게 건네준 말


___________

홍수희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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