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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하 ~

홍수희 시 3

+ 5월

시들 때를 미리 슬퍼한다면
장미는 피지 않았을 거예요

질 때를 미리 슬퍼한다면
나무는 초록을 달지 않았을 거구요

이별을 미리 슬퍼했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겠지요

사랑이란 이렇게,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

5월의 장미처럼 나는 그리운 이여
5월의 신록처럼 나는 그리운 이여

당신을 향해 다시 피어나겠어요
당신을 향해 다시 시작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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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내리는 저 비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고통 없이는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버틸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가슴에 궂은 비 내리는 날은
함께 그 궂은 비에 젖어주는 일,
내 마음에 흐르는 냇물 하나 두었더니
궂은비 그리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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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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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먼 길이었네
네게 가는 길
너를 찾아
길을 나설 때마다

늘 낯선 그 길이어서
가는 길
고달프고 외로웠지만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그리움도 내게는
병인 까닭에

열 펄펄 끓는 이마로
너를 찾았네
찾으면
네가 거기 있었네

내 눈 속을
네가 들여다보네
네 눈 속을
내가 들여다보네

거기에서
죽지 않는 사랑을 보네
먼 길이었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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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하나 내게 있으니
때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습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
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니
아직도 내게는
촛불 켜는 밤들이 남아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난초가 곁에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내 안에 찾지 못한 길이 있으니
인생은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내 안에 무엇이 또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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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그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당신이 지나치며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내 영혼 가파른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타들어
오신 길 마저 닿을 듯

아슬한 그리움
문득 철렁이는 아픔
되어도

다시는 그 후
지나치며

투욱,
불씨 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으셔도

그땐 참,
이별도 사랑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그땐 참,
눈물도 꽃잎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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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너만 보면
눈물이 난다

하얗게 시리도록
눈물이 난다

세상일이 모두
꿈결 같아서

오래 아픈 소녀가
너만 같아서

가시덤불 속에
감춰 두었던 날개

행여 꺼내어
푸드덕 깃을 치면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하고

그 꽃자리
너무 외로울 텐데

그림자처럼
하얗게 앉아 있는 너

초록도 너에게는
너무 슬퍼서

너만 보면
그래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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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시

아직은
겨울도 봄도 아니다
상실의 흔적만
가슴께에서 수시로
욱신거린다
잃어버린 사랑이여,
아직도 아파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더 울게 하고
무너진 희망이여,
아직도 버려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쓴 잔을 기꺼이
비우게 하라
내 영혼에 봄빛이
짙어지는 날
그것은
모두 이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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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고해

이 가을 나는 몹시 아프다
사랑도 되지 않고 미움도 되지 않는다

​그대를 온전히 사랑한 적이 없고
그대를 제대로 미워한 적도 없다

​늘 어정쩡한 거리에 서서
곁눈질만 하였다

​나의 삶,
차라리 이 가을
그대를 절실히 미워하다가

​차라리 이 가을 그대의 발을
내 눈물로 씻기고 싶다

​저 지는 낙엽처럼 나도 나에게
이별하여 죽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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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고해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
이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람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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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할 때

말이라는 것,
참 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슬픔 중에 있는 너를 위하여
무어라 말을 해주고 싶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요

말 한마디로
네 아픔을 덜어 줄 길이 없어요

주저주저하는 사이 꽁 꽁 얼어버린
침묵의 강물 위로 오늘은 겨울비가 건너옵니다

마음이 또 서느러워 집니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수화기를 들었다간 다시 놓고 말았어요
참 쓸쓸하게 겨울비만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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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인사

당신이 그리운 만큼
내 인사는 짧아집니다
그 많은 생각과
그 기나긴 기다림과
처절했던 고뇌의 늪을  
지나온 후에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당신을 마주친다 하여도
어깨와 어깨를 스쳐 가는 
그 시간만큼
안녕하세요,
가슴이 시리면 
시리는 그만큼으로

​사랑이란 것이
구구절절이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당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만큼으로 
내 인사는 짧아집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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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시 

어찌 아픔은 아픈 사람에게
거듭되고
어찌 슬픔은 슬픈 사람에게
거듭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
많이 아픈 너에게
많이 슬픈 너에게
안부를 묻고
돌아서서 우는 날
비 젖은 겨울처럼
바람 부는 대숲처럼
그저 왜,라고 묻는 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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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만들기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 

손바닥 하나로 
하늘 가리고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 

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 

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 

네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 

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앓고 나면 앓은 만큼 
더 자라 반짝이는 

내 기다림의 어둠 속에도 
별빛 하나 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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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향기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처럼봄꽃 피어납니다.
오늘 피어나지 않으면
영영 피어나지 못할 듯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앞다투어 피어납니다.

​참 생각도 많았네요,
어떻게 사랑해야 하냐고
저 피어나는 봄꽃만 같아도
후회하지 않을 하루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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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와서

바다에 와서 산을 바라봅니다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듯이 
바다에 와서 산을 바라보는 일은 
액자 속에 당신을 매달아 두고 
유리판 너머로만 만지작거리는 
쓸쓸하고 여전히 외로운 일이지만 
오래 기다리는 이 비통도 
아름다움인 줄을 아는 까닭에 
나, 이대로 사랑이 되기 위하여 
바다에 와서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바다에 와서 산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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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필 때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 일입니다

​자연도 삶도 순환하는 것
이 봄, 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돌아다보면 내 눈물에
이미 봄꽃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을

​어이 그리 투정만 부렸는지요
​시샘만 부렸는지요

​네가 오면 오는 그대로
네가 가면 가는 그대로
웃고 말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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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꽃처럼

길을 가다 문득 
화단 가득히
올망졸망 피어있는
팬지꽃을 들여다본다.

​작디작은 꽃잎마다 
손톱 만한 그늘을
하나씩 드리우고 있는
저들의 세게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에

그 아래 오순도순
길을 나서는 하찮은 
개미들의 행진조차
오늘은 도무지 예사롭지가 않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다 높고 보다 큰 것에
이왕이면 더욱 찬란한 것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인지
낮아지면 낮아지는
그만큼 또렷해지는
진실로 아름다운 얼굴과 얼굴

사랑하는 이여,
우리도 키 작은 팬지꽃처럼
조금만 키를 낮춰준다면
태산 같던 괴롬도 생의 무게도
반반 나눌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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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밭에서

당신의 얼굴이 저만할까요
숨차게 차 오르던 그리움 하나

이제는 대책도 없이
온 세상을 노랗게 칠하고 말았습니다

​어찌 하나요 이제는 당신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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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너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어
전화했더니
지금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은
너에게서 전화받은 날
나도 지금은 바쁘다고 했다
지나고 보면
왜 그리 바쁜 날이 많았는지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도록
왼손에게는 늘
오른손이 바쁘다고 했다
오른손에게는 늘
왼손이 바쁘다고만 했다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거나
너의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스스로 그렇게 바쁘다, 바쁘다,
되도록 이면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
행복한 결핍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하나 내게 있으니
때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습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니
아직도 내게는
촛불 켜는 밤들이 남아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난초가 곁에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내 안에 찾지 못한 길이 있으니
인생은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내 안에 무엇이 또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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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심으며 

희망은 작은 거다
처음엔 이렇게 작은 거다

가슴에 두 손을 곱게 포개고
따스한 눈길로 키워주지 않으면

구멍 난 주머니 속의 동전처럼
그렇게 쉽게 잃어버리는 거다

오늘 내가 심은 꽃씨 한 톨이
세상 한 켠 그늘을 지워준다면

내일이 행여 보이지 않더라도
오늘은 작게 시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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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뒷모습 

떠나는 뒷모습은 아파라
꽃비 흩날리는 봄날이거나

진눈깨비 흩어지는 겨울이거나
낙엽 부서지는 가을이거나

​하루하루 초점을 잃어가는
노모의 방향 없는 시선이거나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태양이거나
허공에 저무는 시간까지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 생애,
떠나는 뒷모습은 아프고 아파라

​사람은 본디 이별을 안고
짧은 인생길 태어났대도

​남겨지는 이는 항상 아파라
갈 줄을 알면서도 아파라

​소름 돋듯 아파라
잊히다가도 아파라
불현듯 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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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낸다는 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가
잘 지낸다는 말,

저무는 해가
가득 담긴
잘 지낸다는 말,

혼자 먹는 밥에
적막 한 줌 새싹 한 줌
고추장 한 줌 넣어
쓰윽 쓱 비벼 먹었다는 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는
너의 잘 지낸다는 말,

안개 낀 차창처럼
뿌옇게 잘 보이지 않는
잘 지낸다는 말,

둥글게 둥글게
잘 지낸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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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하는 기쁨

침묵하는
겨울 산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차디찬
바다 위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하필이면
더 이상은 꽃이 피지 않을 때
흰 눈 나풀거리는 동토凍土에

이글이글
새 해가 떠오르는 건

가장 어두운 좌절 깊숙이
희망을 심으라는 것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숨어있는 평화를 찾으라는 것

희망하는 기쁨,
새해 첫날이 주는 선물입니다



===============        
겨울 숲 아시나요 

잎 지고 새 떠나간 겨울 숲에는
외로움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남아 윙윙 부는
바람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인기척에 놀라 툭,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삭정이만 사는 것도 아니지요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어 꽃씨가 산답니다
파릇파릇 새순이 산답니다

부끄럽게 웃고 있는
꽃 무리도 숨어 살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숨어 살지요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는 말아요

희망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니까요

겨울 숲에는 두근두근
설레는 봄날이 숨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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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밟은 소리에 

후회하는 마음
지금 밟히고 있습니다

색색이 밟히고 있습니다
한 해를 살고 나면

벗어버리고픈 색 바랜 껍질만
온몸에 가득,

​비록 나의 후회들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눈부신 참회는 아닐지라도

​소리 없이 앓아 온 아픈 기억들
나무와 나무 사이

가지런히 놓아보니
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너와 나 외로운 마음
얽히고설킨 게 잘못이라면 잘못,

못나게 사랑하여 미안합니다
눈물 나게 정말 미안합니다

​후회하는 마음
지금 색색이 밟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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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사랑법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요

거짓말이 보일 때가 있지요
거짓말이 보여도
모르는 척할 때가 있지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이면서도 모르는 척

때로는 그것이 사랑인 것을
잘 속아준다는 것,

그것이 사랑인 것을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때가 있지요

거짓말이 쓰러진 진실을
일으켜 세울 때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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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어지면

이제 우리에겐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쯤 조용히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에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쯤 지긋이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소리가 없이도 사랑을 알아듣고

사랑이 깊어지면
몸짓이 없이도 사랑을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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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다는 것  

체온이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따뜻할 때가 있네
손 하나 잡았을 뿐인데

​너의 아픔 너의 외로움 너의 간절한 소망까지도
다 내게로 전해져 와
손 하나 잡았을 뿐인데  

​나의 아픔 나의 고단함 나의 간절한 바람까지도
다 네게로 전해져 가
부디 말이 필요 없겠네
부디 설명이 필요 없겠네

​마주 잡은 손 하나로
너의 생이 나의 고단한 생을 감싸주고
나의 생이 너의 외로운 생을 감싸주고

​손 하나 잡았을 뿐인데
시린 손과 손을 마주 잡았을 뿐인데  



==============
아름다운 발자국 

세상 수많은 발자국 속에
흔들리는 발자국 보입니다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멈추어 서서
방향을 고뇌한 흔적
한참을 선 자리만  지켜보다가
다시 시작한 발자국도 보입니다

​​삶의 무게에 휘둘려  넘어졌다

​일어선 발자국도 보입니다
세상 수많은 발자국 속에
유독 흔들리는  발자국 정겹습니다
세상 직선 위의 발자국 속에 가끔은
뒤돌아본  발자국 아름답습니다
흔들리며 뒤척이며 걸어가는 길,
사랑으로 가는 바로 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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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절망사이  

살다 보면 그런 날 있지 않겠나

다시는 희망이라는 달콤한 입발림에
속고 싶지 않은 날
제 딴에는 철저히 속았다 싶어
절망이여 너와 벗하여
휘청이고 싶은 날
찌그러진 깡통처럼 온전히 으깨지고
망가지고 싶은 날
그런 때 뒤를 돌아보게나
희망조차 나에게는 절망이었다는
야릇한 그거,
희망이라 이름 붙인 그것이 바로 안으로는
절망이었다는 아! 아!
아릿한 그거,
이제 이름을 바꿔보게나
나에게는 절망이 이제 희망이라네
희망이 바로 다정한 절망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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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하나를 위한 기도 

내 영혼의 어둠 속에도 
별 하나 자라게 하소서

그리움을 잃고 헤매이는 
한밤중에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슬픔 속에도 

방향조차 분간 못하는 
초조함 속에도 

별 하나 끝자락에 
도무지 지지 않아서 

길이 아닌 것에 
좀체 흔들리지 않으며 

사랑이 아닌 것에 
마음 두지 아니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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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은
포기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바램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지우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기대가
저 혼자 자라
내 마음의 순수를
갉아먹기 전에

결점이 많은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울고 웃는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 어느 날
기대도 없이 등뒤에
감춰둔 꽃다발처럼

놀라운 선물을
고백하도록 사랑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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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있는 풍경

길이 너를 위하여 있는 것인지
네가 길을 위하여 있는 것인지

하릴없이 기다리다
후여후여 부질없는 허수아비 춤이나
배워 버린 너,

칠 벗겨진 붉은 자전거 하나
휘영청 휘어진 네 허리께에서
곤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

아무도 너의 눈짓을 기억하는 이 없고
버스 정류장 땅거미 쓸쓸히 밀려오는데

부드러운 달빛
마침내 네 창백한 꽃잎에
와서 묻으면,

금세 너는 눈물이 되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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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마
친구
호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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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찔레꽃
2월의 시
가을 고해
겨울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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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할 때
짧은 인사
가장 슬픈 시      
그늘 만들기
꽃들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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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와서
봄꽃이 필 때 
팬지꽃처럼
유채밭에서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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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핍
꽃씨를 심으며            
떠나는 뒷모습            
잘 지낸다는 말           
희망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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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 아시나요         
낙엽 밟은 소리에  
또 하나의 사랑법
사랑이 깊어지면
손을 잡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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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발자국      
희망과 절망사이   
별 하나를 위한 기도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코스모스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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