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한 섬의 보채는 아픔이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에게로 가네.
한 섬의 아픔이 어둠이라면
다른 섬의 아픔은 빛
어둠과 빛은 보이지 않아서
서로 어제는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지었네
지었네,
공기는 왜 사이에 흐르는가.
지었네,
바다는 왜 사이에 넘치는가.
우리여 왜,
이를 수 없는가 없는가.
한 섬이 흘리는 눈물이
다른 섬이 흘리는 눈물에게로 가네.
한 섬의 눈물이 불이라면
다른 섬의 눈물은 재.
불과 재가 만나서
보이지 않게
빛나며 어제는 가장 따스한
한 바다의 하늘을 꿰매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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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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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모기 소리보다도 작게
십이월 햇빛 내리는 소리보다도 작게
낮달 뜨는 소리보다도 작게
노을 지는 소리보다도 작게
그렇게 그렇게
바람 소리보다도 크게
바다 우는 소리보다도 크게
공기의 소리이게
떠돌 곳도 없이 가득 떠도는
별의 소리이게
눈뜨지 않고는 하늘 한가운데 눈뜨는
소리 없는 소리이게
그렇게 그렇게
나를 엎드리게 해 다오
구름 흙 속속
시여
캄캄한 밝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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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
날이 저문다.
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
무한천공 바람 겹겹이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
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
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날이 저문다.
날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여자들은 떨어져 쌓인다.
잠 속에서도 빨리빨리 걸으며
침상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는 끝없고
한 겹씩 벗겨지는 생사의
저 캄캄한 수세기를 향하여
아무도 자기의 살을 감출 수는 없다.
집이 흐느낀다.
날이 저문다.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처럼 흔들린다.
높은 지붕마다 남몰래
하늘의 넓은 시계소리를 걸어 놓으며
광야에 쌓이는
아,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
부서지면서 우리는
가장 긴 그림자를 뒤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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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
장날이었다,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알사탕이 오색의 무지개를 뻗치고 있는 리어카 옆에는, 빛나는 무우 눈부신 시금치, 한 곳에 가니 물고기들이 펄떡펄떡하고 있었다, 거기 돛폭 같은 지느러미 윤기 일어서는 살에선 바다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허연 눈동자가 잔뜩 기대에 차서 장날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녁은 가깝고
아침은 머네
어기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어야디
우리는 그 앞에 섰다, 두 마리를 2000원에 샀다, 그것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었다, 튀어 오르지 않도록 입구를 단단히 묶어 가방 속에 넣었다. 아마 그 녀석은 바다 속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바닷속의 정적과 자유이리라고.
우리는 저물녘에 거기를 떠났다, 한밤 중 가방을 열고 봉지를 풀었을 때 너는 거기에 없었다, 얌전한 죽음 두 개가 비닐의 이불을 덮고 고요히, 누워 있었다.
아침은 멀고
저녁은 가까우네
어기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어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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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
허공에서 허공으로 달리며 그는 말했네
1천 광년이나 1억 광년 저쪽에서 보면
이 부르튼 지구도 아름다운 별이라고
아무도 감동하지 않았지만
나는 감동했네
-뿌연 광대뼈와 흐린 눈의 우리도 뽀얀 살빛의 천사들처럼 저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빛 속에 잠겨 있을 것이네
-이 모오든 시끄러움, 이 모오든 피튀김, 이 모오든 욕망의 찌꺼기들, 눈물 널름대는 싸움들, 검은 웅덩이들, 넘치는 오염들 … 몰려다니는 쥐떼들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허공으로 달리며
우리는 아름다운 별의
한 알의
빛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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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아마, 다이얼을 돌려본 이들은 알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닿지 않는 것을 닿게 하는지를.
뛰뛰거리는 신호음이 들릴 때면, 아 반가움,
그 사람이 뛰어오고 있군요......
가슴을 벌리고, 혀를 움칫거리며,
온몸의 동맥과 정맥 들을 펄럭펄럭,
허파에 산소를 불러들이며......
그러나 오늘은 부재,
저 공중을 건너 저 바람을 건너 저 안개를 건너
건너 아라비아 숫자 여섯 싸늘하게 앉아 있을 뿐,
눈부신 섬, 당신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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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
모래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나는 보았습니다.
파도들이 달려올 때는 옆 파도와 단단히
어깨동무한다는 것을
손에 쥔 하얀 거품이
모래밭을 덮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온몸을 하얀 거품 손에 감춘다는 것을
파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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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잎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 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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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똥별
여기서 해는 서산으로 지는데
붉은 해 등진 큰 벌에서
바리바리 피를 모으던 어머니
좋은 날 좋은 시를 가렸지만
부끄러워라 우리 살은
한 대접 냉수에도 쉬이 풀리는
소금이라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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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 3
문을 열면 모든 길이 일어선다
새벽에 높이 쌓인 집들은 흔들리고
문득 달려나와 빈 가지에 걸리는
수세기 낡은 햇빛들
사람들은 굴뚝마다 연기를 갈아 꽂는다
길이 많아서 길을 잃어버리고
늦게 깬 바람이 서둘고 있구나
작은 새들은
신경의 담너머 기웃거리거나
마을의 반대쪽으로 사라지고
핏줄 속에는 어제 마신 비
출렁이는 살의
흐린 신발소리
풀잎이 제가 입은 옷을 전부 벗어
맑은 하늘을 향해 던진다
문을 열면 모든 길을 달려가는
한 사람의 시야
허공에 투신하는 외로운 연기들
길은 일어서서 진종일 나부끼고
꽃밭을 나온 사과 몇 알이
폐허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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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
나는 한 방울 눈물
그대 몰래 쏟아버린 눈물 중의
가장 진홍빛 슬픔
땅속 깊이 깊이 스몄다가
사월에 다시 일어섰네
나는 누구신가 버린 피 한 점
이 강물 저 강물 바닥에 누워
바람에 사철 씻기고 씻기다
그 옛적 하늘 냄새
햇빛 냄새에 눈떴네
달래 달래 진달래
온 산천에 활짝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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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書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여자를
보아라
종이처럼 그 여자 오늘 구겨짐을
보아라
구겨지며 늘 비 흐름을
비 흐르며 그 여자 길 밖으로 떠나감을
보아라
모든 길 밖에 흐르는 길동무들을
보아라
언제나 싸우고 있는 길의 밤꿈을
보아라
정오엔 많은 바람으로 펄럭이다가
사라지는 그 여자의 꿈속
모든 가을길은 멀어서
마지막엔 그대도 보이지 않는걸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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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날은
흐린 날은 수평선 위에 누워 있는 허공을 바라보며 산다.
FM에서 부드러운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새파란 불빛들이 그 허공 밑 바다 위에 켜지기 시작한다.
새파란 불빛들이 켜지는 배들은 곧,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불의 성(城)이 된다.
허공은 깜깜함으로 변하며 거기 불빛들은 별처럼 박힌다.
나는 어디인가로 통신을 하고 싶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신호를 던지며...
그래서 그 배들의 잔치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어디엔가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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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리처럼 죽는 자에게 영광 있기를!
민들레처럼 시드는 자에게 평화 있기를!
그리고 중얼거려야 하네
사랑에 가득 차서
그대의 들에 울려야 하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노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대신
바람아 먼지야 풀아 우리는 얼마큼 작으냐 하고.
세계의 몸부림들은 얼마나 얼마나 작으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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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꽃, 범어사
내가 못 본 사이에
등꽃은 피어버렸고
내가 못 본 사이에
등꽃은 져버렸네
저문 등꽃 잎 한장
주워 드네
함께 함께 깊은 잠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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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적은
우리의 적은
일 센티미터의 먼지와
스무 시간의 소음과
그리고 다시 밝는 하늘이다
몇 번이라도 되아무는 상처와
서른 번의 숨소리와
뜨거운 손톱
우리의 적은
전쟁이 아니다
부자유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너무 깊이 보이는
그대와 나의 눈
십리 밖에 온 가을도
우리의 눈을 멋을 수는 없다
가을이 일으키는 혁명도
아아, 실오라기 연기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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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를 보며
파도를 본다
도도한 목숨이 추는
어지러운 춤이여
울고 사랑하고 불타오르고 한탄하는
아아 인생은 위대한 예술
그중에도 장엄한
서사시의 한 대목
바라건대 나는
그 어느 절정에서
까무러치듯 죽어져라 죽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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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눈 속으로
여보게, 껴안아야 하네
한 송이 눈이 두 송이눈을 껴안듯이
한데 안은 눈송이들 펄럭펄럭 허공을 채우듯이
여보게, 껴안아야 하네
한 조각 얼음이 두 조각 얼음을 껴안듯이
한데 안은 얼음들 땅 위에 칭칭 감기듯이
함께 녹아 흐르기 위하여 감기듯이
그리하여 입맞춰야 하네
한 올 별빛이 두 올 별빛에 입 맞추듯이
별빛들 밤새도록 쓸쓸한 땅에 입맞추듯이
눈이 쌓이는구나
흰 눈 속으로
한 사람이 길을 만들고 있구나
눈길 하나가 눈길 둘과 입맞추고 있구나
여보게, 오늘은 자네도
눈길 얼음길을 만들어야 하네
쓸쓸한 땅 위에 길을 일으켜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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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층의 햇빛
지금 막 심장에 도착했어
뼈 하나를 지났다구
간을 지나
콩팥을 지나
갈거야, 너의 피로
그림자가 오면 그림자를 기대게 하면서
눈물이 오면 눈물을 기대게 하면서
바람이 오면 바람을 기대게 하면서
햇빛의 금빛 손가락 끝에서 그림자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새까만 그림자의 손톱들이 차가운 벽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갈 거야, 너의 핏 속으로
별이 오면 별을 기대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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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라고 쓸까
무엇이라고 쓸까
이 시대 이 어둠 이 안개
줄줄 흐르는
흘러야 속이 시원한
이 불면.
무엇이라고 쓸까
자유롭기를
기쁘기를
시간은 즐거이 가기를
그리고
그대를 기다리길.
무엇이라고 쓸까
어둠 속에서 어둠이 보이지 않는데
빛이 빛을 덮어
눈물이 눈물을 덮어
죽음이 죽음을 덮는데.
무엇이라고 쓸까
친구야 일어서라
어둠이여 밝아라
죽음이여 저리 가라.
정말 무엇이라고 쓸까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문이 열렸다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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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물이 되어
아주 오래된 이야기
겨울밤 하늘의 달에게
붉은 저녁 너의 무덤가
그 나무에 부치는 노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벽속의 편지... 눈을 맞으며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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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 위, 저녁노을
생선 한 마리가 눈을 든다. 도마 위에서
생선 한 마리가 된 물고기 한 마리 부스스 팔을 뻗친다, 도마 위에서
생선 한 마리가 된 물고기 한 마리 지느러미를 펄럭인다, 도마 위에서
생선 한 마리가 된 물고기 한 마리 심장을 끄집어낸다, 도마 위에서
생선 한 마리가 된 물고기 한 마리 거뭇해진 심장을 푸른 강물에게 던진다.
수도꼭지에서 너털너털 흐르는 푸른 강물에게
저녁노을 비스듬히 눕는다, 창을 건너와 도마 위로
저녁노을의 분홍빛 눈까풀 방울방울 눈물이 맺힌다,
도마 위에서 일어나 식칼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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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된 이야기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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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있는 풍경
벚나무 밑에서
한 젊은 여자가 울부짖고 있다.
제 가슴을 쥐어뜯는다.
얇은 나일론 블라우스가
몰려 서 있는 은빛 안개를 흔든다.
아침이 그치고
여기저기 젖은 창마다
푸시시한 얼굴들이 내걸린다.
기웃거리는 은빛 안개.
젊은 여자가 길고 높은 목소리
벚나무 굽은 가지를 흔들며
젖은 창마다 급히 달려가다가
오만하게 솟은 벽에 부딪혀
부스스 부서져 내린다.
피가 흐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젖은 창들이 스르르 닫히고
여자의 옆에 팽개쳐진 잡동사니 그릇들에
이제 일어선 햇빛
핏빛으로 반짝이며 고여 들뿐,
우리들의 벽은 튼튼하고 튼튼하다.
===================
+ 겨울밤 하늘의 달에게
혼자 오지 않는구나, 너는
오늘도 캄캄한 시간 아래
빛나는 고개 슬피 숙이고
탐스론 눈썹에는 찬 바람 둘러앉혀구나
노을 밴 그늘마나
슬몃 내려앉아서는
앙상한 뼈마디 넘나드는
흉한 꿈들 이으며
굶주림들 이으며
침묵들 이으며
복종들 이으며......
삶은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것
혼자 오지 않는구나, 너는
어제도 오늘도 이 후미진 곳
반짝이는 슬픔으로 오는구나
저리 먼 하늘 곳곳
양털구름떼같이
양털구름 떼같이
한숨 던지며 오는구나
수정별같이
수정별같이
눈물 심으려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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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무에 부치는 노래
그 나무 지금도 거기 있을까
그 나무 지금도 거기 서서
찬 비 내리면 찬 비
큰 바람 불면 큰 바람
그리 맞고 있을까
맞다가 제일 떨어내고 있을까
저녁이 어두워진다 문득 길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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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있다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있다
티브이 다큐멘터리로 안 가본 곳이 없건만
갈수록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못 가본 곳
언제나 첨 보는,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있다
내 집에 있는 그곳
갈수록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언제나 첨 보는,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내 뼈에 있는 그곳
만져도 만져도 또 만져지는
언제난 첨 보는,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강
아직도 못다 들은 비명
떠나도 떠나도 남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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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칼
그 나무 지금도 거기 있을까
그 나무 지금도 거기 서서
찬비 내리면 찬비
큰 바람 불면 큰 바람
그리 맞고 있을까
맞다가 제 잎 떨어내고 있을까
저녁이 어두워진다
문득
길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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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에 대해 생각하다
찬란한 대낮, 계단을 올라가는데 무엇인가 굵은 실 같은 것, 아니 고무줄 같은 것이 반쯤 잘린 채 햇빛을 맞고 있었다. 뭘까, 고개를 수그리고 바라보니 지렁이였다. 누가 밟고 지나갔는지 반 토막만 남은 것이었다. 아하, 어제 온 비에 길로 나온 것이었군, 가엾게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어버렸군, 그냥 지나치려는데 무엇인가가 길을 막았다, 그림자였다, 내 그림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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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숲
시
자전
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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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전화
파도
풀잎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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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 3
진달래
가을의 서
흐린 날은
그대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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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범어사
우리의 적은
파도를 보며
흰 눈 속으로
23층의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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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고 쓸까
우리가 물이 되어
도마 위, 저녁노을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한 여자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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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하늘의 달에게
그 나무에 부치는 노래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에 대해 생각하다
시인 마당/시인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