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목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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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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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
아침 햇살이 은사시나무 우듬지에서 파르르 떨고
산골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내 귀에서 맑다
나는 지금 어머니를 따라 산사(山寺)를 찾아가고 있다
어머니 그동안 이 고개를 몇 번이나 넘으셨어요
니가 까막소 간 뒤로 이날 이때까장 그랬으니까
나도 모르겄다야 이 고개를 몇 차례나 넘었는지
옥살이 십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식을 보려
감옥을 찾은 적은 없었으되
정월 초하루나 팔월 보름날 같은 날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절을 찾으셨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두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실은 나도 모를 일이다
자식이 보고 싶을 때
감옥 대신 절을 찾으셨던 어머니의 그 속을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어머니 그 절이 나오지요
그래그래 하면서 어머니는 숨이 차는지
공양으로 바칠 두어 됫박 쌀차둥이를 머리에서 내려놓고
후유 후유 한숨을 거듭 쉰다
니 나왔은께 인자 나는 눈 감고 저승 가겄어야
니 새끼가 너 같은 놈 나오면 그때는
니 예편네가 이 고개를 넘을 것으로 구만
풍진 세상에 남정네가 드나들 곳은 까막소고
아낙네는 정갈하게 몸 씻고 절을 찾아 나서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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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
지상의 모든 부
쌀이며 옷이며 집이며
이 모든 것의 실질적인 생산자들이여
그대는 충분히 먹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입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대는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고 있다
그대는 가장 많이 만들고 가장 춥게 입고 있다
그대는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짧게 쉬고 있다
이것은 부당하다 형제들이여
이 부당성은 뒤엎어져야 한다
대지로부터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부여
바다로부터 고기를 길러내는 어부여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직공이여
광맥을 찾아 불을 캐내는 광부여
돌을 세워 마을에 수호신을 깎아내는 석공이여
무한한 가능성의 영원한 존재의 힘 민중이여!
그대의 삶이 한 시대의 고뇌라면
서러움이라면 노여움이라면
일어나라 더 이상 놀고먹는 자들의
쾌락을 위해 고통의 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빼앗는 자가 빼앗김을 당해야 한다
이제 누르는 자가 눌림을 당해야 한다
바위 같은 무게의 천년 묵은 사슬을 끊어 버려라
싸워서 그대가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쇠사슬 밖에는 승리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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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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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 2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아니 수백만 명이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산악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죽어갔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양분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투쟁의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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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지안에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 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 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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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 1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직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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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 2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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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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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국화
서리가 내리고
산에 들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찬서리 내려 산에는
갈잎이 지고
무서리 내려 들에는
풀잎이 지고
당신은 당신을 이름하여 붉은 입술로
꽃이라 했지요
꺽일 듯 꺽이지 않는
산에 피면 산국화
들에 피면 들국화
노오란 꽃이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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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어머니
그 옛날 제가 외지로 나설 때마다
동구 밖 신작로에 나오셔서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
가가 먼 길 구풋하면 먹어두라고
수수떡 계란이며 건네주시고
옷고름 콧잔등에 찍어 우시던 어머니
이제는 예순 넘은 나이로
끌려간 자식놈이 그리워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챙겨 들고
흰 고개 검은 고개 넘나드시는 어머니
서러워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날 두고 언 놈이 뭔 말을 하더라도
내 또래 친구들 발길 뜸해지더라도
어머니 저를 결정할 사람은 저들이 아니니까요
사형이다 무기다 10년이다
사형 구형 놓기를 남의 집 개이름 부르듯 하는
저 당당한 검사 나으리가 아닌니까요
높은 공부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사슬 묶인 나를 굽어보는
저 준엄한 판사 나으리가 아니니까요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 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
+ 진혼가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꽁구멍이라도 싹싹 핥아 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미군(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삽살개 삼천만 마리의 충성으로
쓰다듬어 주고 비벼 주고 핥아 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唯一)의 확실성(確實性)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나는
--------------
+ 권력의 담
나는 나가야 한다 살아서
살아서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나는 보여줘야 한다 나가서
나가서 더욱 의연한 모습을
나는 또한 보여줘야 한다
놈들에게
감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전사의 휴식처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기를 바로잡기 위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보라 창살에 타오르는 이 증오의 눈을
보라 주먹으로 모아지는 이 온몸의 피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자들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서 나가서 피투성이로
빼앗긴 내 조국의 깃발과 자유와 위대함을 되찾을 때까지
토지가 농민의 것이 되고
공장이 노동자의 것이 되고
권력이 민주의 것이 될 때까지.
------------------
+ 그대에게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 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곁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떼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 농부의 밤
우두둑 우두두두둑
느닷없이 한밤중에 쏘내기 쏟아지고
잠귀 밝은 할머니 젤 먼저 들어
소리친다
비 온다 아그들아 내다봐라
웃통바람 애비는 가래 들고 들로
속곳바람 에미는 멍석 말아 헛간으로
눈 비비고 손주놈은 소 몰아 마구간으로
아 여름밤 쏘내기여 고단한 농부의 잠이여
=========
+ 이 세상에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
+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면서기가 되어
집안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
황금의 갈퀴질한다는 금(金) 판사가 되어
문중의 자랑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런 곳에 있고자 했다
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인간적인 의무가 있는 곳에
용기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근심 걱정 잠 안 오고
춘하추동 사시장철 뼈 빠지게 일을 해도
허리 펴 느긋하게 한 번 쉬어보지 못하고
맘 놓고 허리 풀어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평생을 한숨으로 지새는 사람들과 함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납세고지서 징집영장 밖에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자 했다
--------------------
+ 돌맹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난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고자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고자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이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 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 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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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파리와 인간
똥파리에게는 더 많은 똥을
인간에게는 더 많은 돈을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떼지어 붕붕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시궁창이건 오물을 뒤집어쓴 두엄더미건 상관 않고
인간은 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무리 지어 웅성거리며 산다 그곳이 어디건
범죄의 소굴이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건 상관 않고
보라고 똥 없이 맑고 깨끗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산골짜기 옹달샘 같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떼 지어 사는 똥파리를
보라고 돈 없이 가난하고 한적한 데에 가서
이를테면 두메산골 외딴 마릉 깊은 데라도 가서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무리지어 사는 인간을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내 고장이란 옛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똥파리에게나 인간에게나
똥파리에게 라면 그런 곳을 잠시 쉬었다가
물찌똥이나 한번 찌익 깔기고 돌아서는 곳이고
인간에게 라면 그런 곳은 주말이나 행락철에
먹다 남은 찌꺼기나 여기저기 버리고 돌아서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게 별 것 아닌 것이다
똥파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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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
+ 철장에 기대어
잡아보라고
손목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손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오
옥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이리 꼬시고 저리 꼬시고
별의별 수작을 다해도
입술 한번 주지 않던 사람이
그 입으로 속삭였다오 면회장에 와서
기다리겠어요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15년 징역살이를 다하고 나면
내 나이 마흔아홉 살
이런 사람 기다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일까
5년 살고 벌써
반백이 다된 머리를 철창에 기대고
사내는 후회하고 있다오
어쩌자고 여자 부탁 선뜻 받아들였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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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마을을 지나며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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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목 - 조국과 청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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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는 잎새 쌓이거든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겹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세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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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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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따라 나도 가면서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쟁이의 발 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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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에게 - 조국과 청춘
좋은 벗들은 이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살아남은 이들도 잡혀 잔인한 벽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의 물이 되어 숨죽여 흐르고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하고
그러나 동지, 잃지 말게 승리에 대한 신념을
지금은 시련을 참고 견디어야 할 때,
심신을 단련하게나 미래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의 것이네
이별의 때가 왔네
자네가 보여준 용기를 가지고
자네가 두고 간 무기를 들고 나는 떠나네
자네가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준 말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향한 끊임없는 모험 속에 있다는
투쟁 속에서만이 인간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혁명은 실천 속에서만이 제 갈 길을 바로 간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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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일이면 일로 손잡고 가자
천이라면 천으로 운명을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물이라면 건너주고
물 건너 첩첩 산이라면 넘어주자
고개 넘어 마을 목마르면 쉬어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가시발길 하얀 길
에헤라, 가다 못 가면 쉬었다나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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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서
추수가 끝난 들녘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밤길을 걷는다
마른 옥수수대 사이로 난 좁다란 밭길이 끝나고
어머니의 그림자가 논길로 꺾이는 어귀에서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논가에 쓰러져 있는 흰옷의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절 받으세요
그동안 숨어 살고 갇혀 사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허수아비는 대답이 없다
야야 거그서 뭣하냐 어서 오지 않고
저만큼에서 어머니가 재촉하신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요 어머니
가뭄의 논바닥에 물을 댄다고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이슬잠을 자다가
새벽에 제가 피똥을 싸는 배를 앓았어요
나도 알고 있어야 그해 가을 일은
그때 느그 아부지 놀래가지고 너를 업고
어성교 약방으로 달려가던 모양이 눈에 선하다야
그날 새벽에 니가 꼭 죽는 줄 알았어야
나는 다시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또랑을 건너고 솔밭 사이 황톳길로 들어선다
다 왔다 저기 저것이 느그 아부지 묏등이어야
니가 서울서 숨어 살 때 돌아가셨는디
참 불쌍한 사람이어야 일만 평생 죽자 살자 하고
자식덜 덕 한번 못 보고 저승 사람 됐으니께
느그 아부지가 너를 을마나 생각했는 줄 아냐
너는 평생 돈하고는 먼 사람일 것이라면서
저 아래 징갤 논배니는 니 몫으로 띠어놓으라고 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단다
산언덕바지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무덤은
일곱 마지기 우리 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놈아 니가 그러고 댕긴다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으냐
첫 감옥에서 나와 무릎 꿇고 사랑방에 앉아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하셨던 꾸중이 떠올랐다 가엾은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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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차에 깔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흉기에 찔려 죽고
총기에 맞아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임이다
공부 못해 죽고 대학 못가 죽고
취직 못해 죽고 장가 못가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아이는 단칸 셋방에 갇혀 죽고
에미는 하늘까지 치솟는 전세값에 떨어져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농부는 농가부채에 눌려 죽고
노동자는 가스에 납에 중독되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여름이면 흙사태에 묻혀 죽고
겨울이면 눈사태에 얼어 죽고
날마다 날마다 죽음이다
낮에 죽고 밤에 죽고
아침에 죽고 저녁에 죽고
시도때도 없이 세상을 온통 죽음의 공동묘지
이 묘지에서 고개 들고 죽음이 세계에 항거한 자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최루탄에 가슴이 터져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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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
윗것들은
밑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위협을 받아 재산의 뿌리 권력의 기둥이 흔들리면
민중들을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학살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양반과 부호들이 그랬고
1950년 앞뒤에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이 그랬다
이런 것쯤은 알고 있다 먹물인 나는
시인인 나는 이렇게 노래할 줄도 안다
동전과 권력의 이면에는 조국이 없다고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인천엔가 어디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더라는 소리를 듣고
그런 것은 미국의 식민지에는 으레 있는 것만으로만 알았지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은 차마 몰랐다
그래서 나는 신경림 시인이 ‘민요기행’에다 담은
어느 농부의 노여움을 읽고 그만 화끈 얼굴이 달아올라
얼른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나라 형제 쳤는데
뭣이 신난다고 외국 장수 이름을 절에 갖다 붙이겠소
하기야 인천 가니까 맥아더 동상이 서 있더라만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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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 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이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이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이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그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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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창살에 햇살이(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 고운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 다순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 닿으면
어머니가 씹어주고는 했던
사각사각 베어먹고 싶은
빨간 홍당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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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의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저항하는 피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
_____________________ 36편
고목
노래
무심
민중
-------
자유
전사 2
편지
학살 1
---------
학살 2
사랑은
산국화
어머니
----------
진혼가
권력의 담
그대에게
농부의 밤
-------------
이 세상에
그러나 나는
돌맹이 하나
마지막 인사
-----------------
똥파리와 인간
이 가을에 나는
철장에 기대어
옛 마을을 지나며
---------------------
고목 - 조국과 청춘
지는 잎새 쌓이거든
날 저물어 캄캄한 밤
물 따라 나도 가면서
-----------------------
벗에게 - 조국과 청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서
아이고! I Go!(날마다 날마다)
------------------------------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창살에 햇살이(햇살 그리운 감옥의 창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 노동자 노래단
시인 마당/시인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