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새벽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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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부르는 것들이 많아라
부르며 몸부림치는 것들이 많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이 오는 날
눈물 하나 떨어지니
후둑후둑 빗방울로 열 눈물 떨어져라
길 가득히 흐르는 사람들
갈대들처럼 서로서로 부르며
젖은 저희 입술 한 어둠에 부비는 것 보았느냐
아아 황홀하여라
길마다 출렁이는 잡풀들 푸른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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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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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와(望瓦)
한 어둠은 엎드려 있고
한 어둠은 그 옆에 엉거주춤 서 있다
언제 두 어둠이 한데 마주 보며 앉을까
또는 한데 허리를 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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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
이제 눈뜨게 하십시오
눈떠 저희의 손과 발
바람 속에 흔들게 하십시오.
수천 킬로미터의
들판을 지나
들판에 겹겹이 앉아 있는 노을들과
굽이치는 죽음을 지나
당신이시여
검붉은 피 여직 흐르는
슬픈 가슴이시여
여기엔 머뭇거리는 길뿐이오니
여기엔
눈먼 안개와
허우적이는 그림자들뿐이오니
아, 이제 일어서게 하십시오.
일어서 당신의 깊은 가슴속
저희가 헤엄치게 하십시오
저희의 피가 수평선을 이루고
저희의 흐느낌이
함께함께
출렁이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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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이제 내려 놓아라
어둠은 어둠과 놀게 하여라
한 물결이 또 한 물결을 내려놓듯이
한 슬픔은 어느 날
또 한 슬픔을 내려놓듯이
그대는 추억의 낡은 집
흩어지는 눈썹들
지평선에는 가득하구나
어느 날의 내 젊은 눈썹도 흩어지는구나.
그대, 지금 들고 있는 것 너무 많으니
길이 길 위에 얹혀 자꾸 펄럭이니
내려 놓고, 그대여
텅 비어라
길이 길과 껴안게 하라
저 꽃망울 드디어 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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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그대가 밖으로 나가네
등불 하나를 켜네
뒤에서 빗방울이 달려오네
그대를 따라 깊어진 어둠도 밖으로 나가네
문에는 든든한 네 개의 열쇠를 채우고
늙어오는 길과
늙어 있는 길을 지나
그대가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네
등불 둘을 켜네
뒤에서 빗방울이 달려오네
이 다정한 뭍의 死者들
자정엔 헛소리를 꺼내 드는
아, 이 바닥없는 뭇 잠의 추억들
그대가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네
등불 셋을 켜네
뒤에서 빗방울이 달려오네
그대가 돌아오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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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
오늘 아침 그 간판이 떠지지 않는 눈 비비며 미소하는 이유는
그래서 거기 내리는 안개가 세상을 허옇게 칠하며 일어서는 이유는
그래서 바람 한 줌이 바위들의 어깨 위에 냉큼 올라앉는 이유는
그래서 이슬 한 방울이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이유는
부지런히 산을 오르며 모든 풀잎의 뺨을 쓰다듬는 이유는
모든 풀잎의 뺨 위에서 또로로록 빗방울과 손을 잡는 이유는
조만간 황금빛 햇님이 긴치마를 펄럭이며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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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만일
내 만일 폭풍이라면
저 길고 튼튼한 너머로
한번 보란 듯 불어볼 텐데...
그래서 그대 가슴에 닿아볼 텐데...
번쩍이는 벽돌쯤 슬쩍 넘어뜨리고
벽돌 위에 꽂혀 있는 쇠막대기쯤
눈 깜짝할 새 밀쳐내고
그래서 그대 가슴 깊숙이
내 숨결 불어넣을 텐데...
내 만일 안개라면
저 길고 튼튼한 벽 너머로
슬금슬금 슬금슬금
기어들어
대들보건 휘장이건
한번 맘껏 녹여볼 텐데...
그래서 그대 피에 내 피
맞대어볼 텐데...
내 만일 종소리라면
어디든 스며드는
봄날 햇빛이라면
저 벽 너머
때없이 빛소식 봄소식 건네주고
우리 하느님네 말씀도 전해줄 텐데...
그래서 그대 웃음 기어코 만나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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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無事
도시가 풀잎 속으로 걸어간다.
잠든 도시의 아이들이
풀잎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빨리빨리
지구로 내려간다
가장 넓은 길은 뿌리 속
자네 뿌리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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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선
이제는 돌아갑시다
돌아가 깊이깊이
어둠에 얼굴을 담급시다
수만 주름살 가만가만
몸 흔드는 바닷가
철없이 나와 앉은 피안의 등불들
거품으로 거두고
큰 소리 한 번 외쳐 봅시다
부서지는 것은
파도만은 아니리
부서지면서 온전한 것
또한 바다만은
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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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월
담 너머 한 사람이 웃고 있다.
지붕 끝에서 펄럭이던
필생畢生의 바람도 그치고
수레 밖에는
아직 시작되지 않는 싸움
동백 서너 송이가
먼저 시냇물을 건너간다.
너무 늦게 왔는가
그 사람 눈썹에는
마른 풀잎이 가득하고
일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은 여름
입은 옷이 무거워
지하의 저 길도 무너지려 한다.
마지막 수레도 보내고 나면
긴 뜰에는 빈집이 혼자
바람을 기다리고
나의 죽음을 기다리고
아,
사방 일천 리의 하늘을
나보다 큰 인류가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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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 2
밤마다 새로운 바다로 나간다.
바람과 햇빛의
싸움을 겨우 끝내고
항구밖에 매어놓은 배 위에는
생각에 잠겨
비스듬히 웃고 있는 지구
누가 낳익은 곡조의
기타아를 튕긴다.
그렇다. 바다는
모든 여자의 자궁 속에서 회전한다.
밤새도록 맨발로 달려가는
그 소리의 무서움을 들었느냐.
눈치채지 않게 뒷길로 사라지며
나는 늘
떠나간 뜰의 낙화가 되고
울타리 밖에는 낮게 낮게
바람과 이야기하는 사내들
어디서 닫혔던 문이 열리고
못 보던 아이 하나가
길가에 흐린 얼굴로 서있다
--------------------
+ 빈자 일기
-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우리는 언제나 거기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혀와 혀를 불
붙게 하며 눈물로 빛과 빛을 싸우게 하며 다정한 고름 고름 속
에 오래 서 있은 허리를 무너지게 하며, 황사 날아가는 무덤 가
장자리에서.
그곳 천정은 불붙은 태양이었고 바닥은 썩은 이빨의 늪이었다.
싸우는 이마 갈피로 등뼈 갈피 갈피로 언제나 종이 울렸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언제나 종이 울렸다 황혼을 알리는 종이. 언
제나 종이 울렸다 임종을 알리는 종이.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그
보다 먼저 흘러갔다. 늦은 손목 눈짓 사이에서, 번쩍이는 번쩍이
는 허리며, 황금 돛대들 사이에서 흘러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굳은 피 한 점 던질 때까지, 누
군가 쓸데없는 제 죽음 하나 내버릴 때까지, 우리가 헌 그 죽음
입고 검은 종소리 한 겹 듣지 않을 때까지.
아아 돌아오지 말라 사랑하라, 그대 아버지가 그대에게 앵기는
독, 그대 나라가 그대에게 먹이는 독, 물의 독, 공기의 독, 흙의 독.
다만 우리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여기서. 한 고름에 다른
고름을 접붙이며 즐겁게 즐겁게, 할 일은 그뿐, 구걸하고 시들어
구걸하는 일뿐, 그러므로 결코 일어서지 않았다, 잠들지도 않은 채.
---------------
+ 진눈깨비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 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 된 것
부서지며 맴돌며
휘휘 돌아 허공에
자취도 없이 내리네
내 이제껏 뛰어다닌 길들이
서성대는 마음이란 마음들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천국은 없어
몸살치는 혼령들이
안개 속에서 안개가 흩날리네
어둠 앞에서 어둠이 흩날리네
그 어둠 허공에서
떠도는 허공에서
떠도는 피 한 점 떠도는 살 한 점
주워 던지는 여기
한 떠남이 또 한 떠남을
흐느끼는 여기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 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 된 것
그대여
어두운 세상 천지
하루는 진눈깨비로 부서져 내리다가
===============
+ 허총가(虛塚歌) 1
한밤중에 붉은
햇덩이 뜬다.
하늘로 가자
하늘로 가자.
풀 눕고 모래 눕고
새들도 누운 다음
돌아온 강물 끝에 뻘바람에
지붕을 거두어
지붕을 거두어.
우훠넘차 슬프다
어허영차 슬프다.
네 살은 내가 안고
내 살은 네가 업고
청천하늘 밝은 밤
없는 곳 없는 곳으로.
길은 동서남북
길은 동남서북
그림자 되어 너
한 꿈 그림자 되어 우리 함께
오늘도 수만 잠
헛되고 헛되었으니.
------------------
+ 벽속의 편지
눈을 맞으며 비로소
눈을 생각하듯이
눈을 밟으며 비로소
길을 생각하듯이
그대를 지나서 비로소
그대를 생각하듯이
---------------------
+ 순례자의 잠
바람은 늘 떠나고 있네.
잘 빗질된 무기(無機)의 구름 떼를 이끌면서
남은 살결은 꽃물든 마차에 싣고
집 앞 벌판에 무성한
내 그림자도 거두며 가네.
비폭력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은 아침
싸움이 끝난 사람들의 어깨 위로
하루낮만 내리는 비
낙과(落果)처럼 지구는 숲 너머 출렁이고
오래 닦인 초침 하나가
궁륭(穹隆) 밖으로
장미가시를 끌고 떨어진다.
들여다보면 안개 속을
문은 어디서 열리고 있는가.
생전에 박아두었던
곤한 하늘 뿌리를 뽑아들고
폐허의 햇빛 아래 전신을 말리고 있는
눈먼 얼굴들이여
떨어지는 것들이 쌓여서 잠이 들면
이제 알았으리, 바람 속에서
사람의 손톱은 낡고
집은 자주 가벼워지는 것을
위대한 비폭력자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가는 아침
돌아옴이 없이 늘 날으는
바람에 실려
내 밟던 흙은 저기 지중해쯤에서
또 어떤 꽃의 목숨을 빚고 있네.
--------------------
+ 어떤 흐린 날
-바리데기, 가장 일찍 버려진 자이며 가장 깊이 잊혀진 자 노래하다
바람이 얼룩진 접시 위, 물고기 한 마리 누워 있다. 그것
의 살은 다 파헤쳐져 있었으며 잘게 잘게 저며져 있었다.
이런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 온 그것의 눈은 한껏 크게 벌리
고 창 밖의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따뜻하
죠? 라든가 … 라든가 …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끔씩
푸들푸들 경련하며, 어느 한 때 분명 바다 밑을 헤엄쳤을
그것, 어느 한 때 분명 모래 속을 파보았을 그것, 어느 한
때 물풀에게 사랑을 속삭였을 그것의 푸른,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주방 아주머니가 들어와 그것의 너덜거리는 뼈를 꺼
내어 흔들며 바람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에 그림자 없는 것
들은 없어, ‘이 물고기는 매운탕을 끓여야 합니다 ’ 아무
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푸들거린담, 아주머니는
긴 뼈를 귀찮게 흔든다, ‘대가리는 매운탕에 넣어’, 고동
색의 점잖은 빛, 바람 소리에나 귀 기울일 것을, 우리의 다
리는 이제 너무 힘이 없어, 갑자기 접시 위에 눈물이 흐른
다.
아주머니의 손에 떠메어 나가는 물고기의 뼈와 둥글고 울
퉁불퉁한 대가리에 쓰러져 누워 질질 끌려 나가는 지느러
미, 물고기의 눈이 뒤를 돌아본다, 바람벽 같은 상 위에 지
느러미가 검은 돛폭처럼 휘돈다. 놀란 이들이 뼈만 남은 팔
목의 시계를 바라본다.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햇빛은 얼마나 뜻 없는가
-------------------
+ 여름날 오후
어느 여름날 오후, 젖어 있으며 울퉁불퉁한 땅, 빵 한 개가 비에 젖고 있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 한 마리 빵을 살며시 쓰다듬어보더니 어디로인가 급히 간다.
울타리 하나가 고개를 수그리고 빵을 들여다본다.
비에 빵의 살이 풀어진다. 팥고물이 피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안개 뒤에서 태양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 몇 마리 빵을 자르기 시작한다,
어디서 들려오는 너의 소리……
울타리가 빵 위에 엎드린다, 젖어 있으며 울퉁불퉁한 땅, 질척이는 고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돌 하나,
네가 빵 위에 넘어진다, 우리 모두 빵 위에 넘어진다, 멀리서 태양의 비명소리, 기적이 들려온다, 여름날 오후.
=============
+ 상어-거리에서
-상어가 갇혀 있는 걸 보는 건 괴로운 일이야. 당신이 흐린 공기 휘날리는 식탁 위에서 김치조각을 찢고 있을 때
후덥지근한 거리, 배가 고파서 들어선 음식점엔 수족관이 빙 둘러 서 있었지. 무언인가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기척을 느꼈어. 놀라 맞바라보니, 노오란 눈! 수족관 흐린 물에 앉아 수족관 유리벽에 흰 이빨을 대고 나를 바라보는 물고기의 눈, 뿌연 산소 휘날리는 공중에서 우리는 부딪혔어.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 녀석은 꼼짝 않고 나를 보고 있었어. 마치 내 애인처럼, 고요히-슬피. 나는 돈을 치르고 주인에게 물어보았지, 그 녀석이 누구냐고. 상어!,……흰이빨이수족관에갇혀씩웃었어. 그리고 문을 나서는 나를 슬금 따라나섰지. 지느러미그림자 펄럭펄럭, 흰 이빨그림자펄럭펄럭펄럭.
당신도 한번 가봐. 상어가 노오란 눈으로 흰 이빨을 흐린 물에 적시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 당신을 고요히-슬피 바라보고 있을걸.
흰 이빨이 잠시 유리벽에 부딪히는 걸 당신은 볼걸.
당신이 음식점 문을 나올 때 그 녀석도 슬금 따라 나올걸,
그림자 지느러미로 훨훨 날걸.
당신이 붙박이 별처럼 서 있는 이 거리
에서.
----------------------
+ 아침에 관하여
그 여자는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낸다.
그 여자는 낮게 중얼거린다.
나에게 달려온 이 사과
그 여자는 계란 하나도 꺼내어 프라이 팬에 지진다.
나에게 달려온 이 계란.
멀고도 먼 길을 달려
빛과 그늘을 지나 달려
소리와 소리를 넘어 달려
그 여자는 버섯 몇 개도 꺼내어 프라이 팬에 넣는다
지글지글지글
버섯들이 프라이 팬 안에서 고개를 맞대고 수군 거린다
나에게 달려온 이 기름
구름이 힘들게 빛의 날개를 들고 있는
아침.
----------------------
+ 어머니의 말씀
어머니는 멀리서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평양의 눈발이 걸려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6 · 25의 시래기가 걸려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이십 년 전의 좌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아현동 산마루의 찬바람이 아직도 걸려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아현동 시장의 진흙구렁길이 아직도 걸려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멀리서 말씀하신다
근심과 사랑을 걸고 말씀하신다
한강을 넘어, 낙동강을 넘어 푸르게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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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땅 위 거름이란 거름 다 모아
구름송이 하늘 구름송이들 다 끌어들여
끈질긴 뿌리로 긁힌 얼굴로
빛나라 너희 터지는
목청 어영차
천지에 뿌려라
이제 부는 바람들
전부 너희 숨소리 지나온 것
이제 꾸는 꿈들
전부 너희 몸에 맺혀 있던 것
저 바다 집채 파도도
너희 이파리 스쳐왔다
너희 그림자 만지며 왔다
일어서라 풀아
일어서라 풀아
이 세상 숨소리 빗물로 쏟아지면
빗물 마시고
흰 눈으로 펑펑 퍼부으면
가슴 한아름
쓰러지는 풀아
영차 어영차
빛나라 너희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 있는 것들.
----------------------
+ 황혼곡조 2번
잠들면서
참으로
잠들지는 못하고
쓰던 뼈는 다시
불후의 살로 덮고
제 아이는
등뒤에
이슬 묻혀 남겨놓지
그래도 흐린 날은
귀신이 되어 울지
잊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이
================
+ 나무가 말하였네
나무가 말하였네
나의 이 껍질은 빗방울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햇빛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구름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안개의 휘젓는 팔에
어쩌다 닿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
--------------------------
+ 모래가 바위에게
우리는 언제나 젖어 있다네.
어둠과 거품과 슬픔으로
하염없는 빛 하염없는 기쁨으로
모든 세포와 세포의 사잇길을 지나
폭풍의 날개 속으로 스며든다네.
한낮에도 가만가만 스며든다네.
길 막히면 길 만든다네.
바람 막히면 바람 부른다네.
세계의 수억 싸움 속에
세계의 수억 죽음 속에
낮은 지붕 위란 지붕 위
썩은 살이란 살 위
넘치고 넘쳐서
우리는 꿈을 꾼다네.
금빛 바위가 되는 꿈을 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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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리는 늘 분홍색이다
가시금작화가 필 때면 전화가 오긴 했다,
전화를 기다릴 때면 유리창을 닦곤 했다,
유리창에 세상은 더 뽀얗게 보이곤 했다,
유리창을 다 닦으면 커튼을 내렸다,
귀퉁이가 다 닳아진 열쇠를 들고,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쑤셔 박았다,
곧 똑똑 소리, 나는 지나가던 바람의 양귀를 잡아 양탄자처럼 폈다,
지나가던 종소리도 붙잡아 라디오처럼 켰다,
그대가 나를 껴안고 가시금작화 핀 벼랑을 달렸다,
벼랑 밑 어딘가 던져 놓았을 닻을 찾아,
그것은 내가 만진, 만족스러운 최초의 꿈꽃,
가시금작화가 필 때면 거기에서 그것의 숨소리는
분홍색 혀를 달달 떨며 양팔 잔뜩 벌린채 파도 속으로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것이다,
아,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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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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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속의 편지...눈을 맞으며
눈을 맞으며 비로소
눈을 생각하듯이
눈을 밟으며 비로소
길을 생각하듯이
그대를 지나서 비로소
그대를 생각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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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비
동백
망와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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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연애
이유
내 만일
봄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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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십일월
자전 2
빈자 일기
진눈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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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총가 1
벽속의 편지
순례자의 잠
어떤 흐린 날
여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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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거리에서
아침에 관하여
어머니의 말씀
일어서라 풀아
황혼곡조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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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말하였네
모래가 바위에게
그 소리는 늘 분홍색이다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벽속의 편지...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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