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인 마당/시인 가 ~

고재종 시 2

+ 江景

황산나루 저녁노을, 구장터 욕보네 집
주모의 눈물로 이렁였으리

위로 아래로 죄다 내주고는
푹 삭은 황산젓갈에 저민 소가지를 하고
투가리 같은 작자만 두엇이나 받던 주모

이글거리는 강물만큼이나
작두로도 못 자르는
그리움 같은 걸 덜어주면서도
덜어낸 만큼의 마투리를 채워주지 않는

황산나루 저녁놀은, 저편의 강둑
갈밭마저 죄 불 지르고 검 기울어간다

------------
경전 

차랑차랑, 순금 이삭 일렁이는

추분의 들판에 서서

먼 곳으로 고개를 드는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나의 경전이다

지난여름 큰비 큰바람에
죄다 꺾인 닷 마지기 논을
죄다 일으켜 세우고
당신의 허리가 꺾이어선
자리보전하던 어머니를 나는 안다

시방 김제 만경 들판에 가보아라
하늘이 어쩌려고
그토록 순금 햇살을 쏟아붓는지
쏟아부어선 따글따글 익히는 게
어머니의 수정 눈물은 아닐는지

지평선을 바라보지 말자
왕배야 덕배야, 내가 가 닿을 곳은
저 논에서 피를 뽑다
피투성이 흙감탱이 몸으로
나를 낳고 낳은 어머니의 환한 품

죽어서 하늘로 가지 않고
저 시리게는 신신한 땅에 묻히는
어머니의 수정 눈물이
추호라도 삼가는 나의 경전이다

 -----------
독거 

가벼이 보지 마라
청둥오리 날아오르는 일

통통통통, 얼음강 차고 솟는
붉게 언 두발 보아라
활활활활, 된바람 불 지피는
겨운 날갯짓이며
청청청청, 찬 하늘 치받아
푸르게 멍든 대가리 보아라

그마저 없다면
저 써늘한 허공을
무엇으로 채우겠느냐 

----------
+ 문득 

노타리 쳐서 물 방방히 실어놓은
내일쯤엔 모낼 논에
어디선가 날아내린 흰 고니 두 마리
그 긴 부리로 무언가를 콕콕 찍어댄다

모판을 나르다 문득
그 광경 바라보고 선 늙은 양주

그 무슨 하늘사자 같은 새의
흰 날개 타고 훨훨 날아가면
아아 거기 꿈꾸던 저승 아닐까, 생각에
시방 그만 눈시울은 젖는가 보다

======
명작 

옻칠쟁이가 있었다네. 옻칠하나 제대로 내기 위하여 일찍이
생의 희비(喜悲)를 반납한 사람이었다네.
철에 맞춰 칠을 따고 칠을 개느라 너무나 피곤하면 찾아오는
온몸의 옻독에 잦은 진저리를 쳤다지.
먼지 한 점 바람 한 올에 행여 다 된 때깔 망칠세라, 대밭 속을 
토굴을 파고 암거를 했다지. 그러고는
생칠을 거르고 정체질을  개어선 무늬칠이건 색깔칠이건 수
없이 반복하는데 그러해도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에라이 손가락을, 손가락을 잘라선 그 피를 칠 속에 쏟아 넣었다
는 옻칠쟁이!

 생의  극점을 녹여 얻는 명작엔 전생(轉生) 활불(活佛)의 숨결이
묻어 있으리.


---------------
세월 

그러니까, 오뉴월 진초록 속을 뚫고
선홍 선홍 선홍빛 석류꽃 피는 일이
저토록 산뜻하고 해맑아서
새들도 꽃가지에서 꽃잎 따물고
저리 우수수 날아오른다면.
그러니까, 그 꽃그늘 새울음 아래
우리 가슴속 꽃 밝히고 새 날리며
우리 서로 얼굴 맞볼 때
네 맑은 눈동자 속에 내 얼굴 잦아들고
내 짙은 눈동자 속에 네 얼굴 젖어든다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윽고는
저기 청산이며 나무들이며 풀꽃들이며
대책 없이 흔들어대는 쑥국새 울음에
뚜욱 뚜욱 뚜욱 석류꽃마저 지는 일이
단 하루라도 한시라도 늦춰만 진다면.

-------------
장엄 

저 순백의 치자꽃에로
사방이 함께 몰린다.
그 몰린 중심으로
날개가 햇빛에 반사되어
쪽빛이 된 왕오색나비가 내려앉자
싸하니 이는 향기로
사방이 다시 환히 퍼진다. 퍼지는
그 장엄 속에선
시간의 여울이 서느럽고
그 향기의 무수한 길들은 또
바람의 실크자락조차 보일 듯
청명청명, 하늘로 열려선
난 그만 깜깜 길을 놓친다.
놓친 길 바깥에서
비로소 破精 을 하는
이 깊은 죄의 싱그러움이여 !

-----------
좌망 

언젠가 그 언젠가
나주군 금천에 가서
배꽃 보다 돌아왔네
때아닌 서설 덮인 풍경의
온 마을의 배꽃바다,
나 아무 작정 없이
연락도 없이
거기서 사라지고 돌아왔네
워매, 바람 좀 자거라
저놈의 배꽃 다 져부네
거기 금천다방의 미스 홍,
그 장탄식, 하얀 정은
꿈이던가 생시던가
한 세상 더듬었네
더듬는 마음마저 아득해지다
나 그 바다 어디쯤에서
한 잎 배꽃으로 날리거나
들고 난 자취도 없이
내 한 서러움 사라지던
어제던가 내일이던가
나주군 금천에 가서
배꽃 보고 돌아왔네
梨花에 月白은 못 보고
그 청초 향기도 못 듣고
나 거기 두고 돌아와
앉은자리
환한 자리,
배꽃바다 없는 자리

=======
청춘 

동백꽃 송이송이가
저렇게는
빨갛게 탐나는
피어나는 시간을
사무치는
사무치는 시간이라 할까.
저 동박새 한 마리
동백가지에 앉아
동백꽃송이송이를
차마 쪼다간
한 번 울고는
먼바다를 바라보는데
목이 메이는
목이 메이는
무엇이라도 있어서일까.
동백꽃송이송이가
빨갛게 무참하게
지는 날에는
저 파랗게 질린 바다도
야심하도록
야심하도록 문창가에
해조음을 밝혀놓고,
너와 나는
홍역을 앓듯
홍역을 앓듯
목놓아 울지도 못하던
자청의 밤이 있었다.

-------------
큰 잠 

저 사람 아직도 저기 있네
감나무 그늘 아래
평상을 펴고
저 무량한 햇살에
윤기 잘잘 흐르는
감나무 잎새 헤아리네

저 사람 아직도 저기 있네
감나무 그늘 아래
큰 대자로 뻐드러져서
저 무량한 바람에
수천수만 살랑거리는
감나무 잎새 헤아리네

텃밭에 참깨씨 마저 놓는 일
잠시 밀쳐두면 어떤가
사람이 잠시 게으르면
감꽃 뚝뚝, 지는 시간도 보고
사람이 스스로 가난하면
소나기 후두둑, 듣는 시간도 잊네

저 사람 아직도 저기에 있네
저 사람 마누라
화급을 다투는 소리 내질러도
밤꽃향기는 풍겨오고
뻐꾹새는 큰 잠을 달래고
하늘은 다시 청정하네

------------
파안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그려! 

--------------
국외자

나는 어떤 출구도 찾지 못해서
담장 위에서 흘러내린 병든 장미향기에 취했다
울부짖을 입은 없는데 귀는 열려 있어서
담장 위 새들의 끝없는 빈정거림을 들어야 했다
나의 임무는 삭풍 속의 미루나무 같은
잔혹한 고독을 경작하는 일뿐
나의 사랑은 황음 속에서만 발기했다
여자들은 암소처럼 큰 음부를 들이대며
나의 영혼을 몽유의 안개처럼 거두어갔다
모퉁이의 오동잎이 떨어지는 건 가장 슬픈 일.
내가 슬픈 시간 속에서 쌓은 것은 세상에서
나의 불행을 가장 큰 걸로 믿는 어리석음 뿐이었다
그 오해가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을
나는 대낮에도 자꾸 봉두난발에 휘감겼다
그렇게 휘감겨 넘어진 우울을 벗고
명상하기 위해 신을 내몰았다는 어느 현자처럼
나는 절망하기 위해 귀찮은 신을 내몰았다
낙엽처럼 가벼운 말엔 넋을 놓고
나무둥치처럼 중대한 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에서, 내 안에 끝없이 지속시켜 온 열정이
내 안을 다 태워버린 후 발견한 문 한 짝,
가만 보니 열쇠는 담장 저쪽에서 잠겨 있었다
나는 어떤 출구도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입구가 막힌 삶을 살았던 것이다

========
독학자 

깬 소주병을 긋고 싶은 밤들이었다 겁도 없이
돋는 별들의 벌판을 그는 혼자 걸었다 밤이 지나면
더 이상 살아 있을 것 같지 않은 날들이었다
풀잎 끝마다 맺히는 새벽이슬은 불면이 짜낸 진액
같았다 해도 해도 또다시 안달하는 성기능항진증
환자처럼 대책 없는 생의 과잉은 끝이 없었다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어쩌다 만난
수수 모감처럼 그에겐 고개 숙이고 싶은 푸른 하늘이
없었다 아무도 몰래 끌려가서 아무도 몰래
그대로 처박힐 수도 없었다 생도막 쳐질 수 없었다
눈물이 굳어서 벌판의 돌이 되고 그 돌들이
그를 처음 보고 놀라서 산맥이 될지라도
오직 해석만이 있고 원문은 알 수 없는 생을 읽고자
운명을 포기해도 좋았다 운명에겐 모욕이었겠지만
미물 짐승에게라도 밥그릇을 주었다가 빼앗지는 말아야
했다 빼앗은 그릇을 모래 속에 처박는 세상이거나
애인을 만나러 갔다가 때마침 도둑을 맞은
애인 집에서 되레 도둑으로 몰린 경우거나처럼
도대체 아니 되는 그 잔혹한 고통의 독재를 밀며
그에겐 인간만 남았다 자신의 불행을 춤으로 추었던
조르바처럼 한 번이라도 춤을 추지 않는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도 되는 것 같아 춤을 멈추지 않는
사람처럼, 벌판의 황량경이 삭풍에 쓸리는 나날을 불러
그는 고독의 신전에 향촉을 피웠다 그처럼
무장무장 단순한 인간만 남아 보리수 아래서 울었다

-----------------
개기월식 

이웃들과 아랫마을에 문화예술단 공연 보러 갔다가
공짜 공연 본 죄로 강권하는 만병통치약을 한 박스이고 왔다
수십만 원 되는 외상값 미처 못 갚아서 독촉장 수없이 받았다
붉은 도장 팡팡 찍은 재산 압류 계고장 계속 받고
오밤중이건 새벽녘이건 협박 전화질 받다가
자식 직장 상사까지 알아내 전화질 한 ‘그놈 목소리’ 때문에
자식 앞길 막았다고 순창할매 홀로 제초제를 마셨다

전직 경찰관이라는 그 해결사의 쇠갈고리에 찍힌 삶을
캄캄하게 조문하고 있는 오늘, 개기월식의 지구라니!

----------------
길의 길 

어둠 속의 길은 흩어져버린 세월과 같다
길들은 내 핏속에서 질풍노도로 일었지만
내가 지나온 길 뒷자리는 늘 폐허였다
나는 길 위에서 또 길을 찾으러 다녔으니
나는 나 자신을 찾으러 다닌 셈인가
아침놀까지 더러워질 만큼의 하늘을 보았으나
악성의 하품 때문에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난장 난 계절의 억새밭을 지날 때
나는 거기 가장 황량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바다는 목쉰 파도로 끊임없이 부서져도
바다의 모든 고통을 아는 자만이 귀 기울였다
누구나 길에 나서나 다 같은 길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되, 우리가 아니어서 배회했다
웃자란 형극 속에서 길을 헤치곤 했으나
나의 어려움은 되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잃어버릴 수도 없는 길을 향해 내가 저지른 죄,
그건 길섶에 핀 산자고를 짓이겨버린 일이었다
근사한 말만 만나면 빛나는 잠언을 쏟아내며
길을 노래하곤 하는 무수한 시인들이여
조주도 물었다,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그것이다, 남전이 답했으나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어서
나는 다시 피에 젖은 흙빛의 길 위에 섰다
길은 항상 저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
봄의 깊이 

묻지 말게나
세상의 날은 저무는데
농약에 절고 금비에 시달려
시어터진 앞들 검은그루에
공동산에서 퍼나른 황토와
저 실내 모둔 쇠똥두엄을 넣고
저기 저렇게 탈탈탈탈
애벌갈이를 하는 이 뉘냐고

묻지 말게나
지난해 돈사지 못한
토방에 섬섬 쌓인 나락가마들
쥐가 뚫고 날짐승이 죄 물어가도
오늘은 다시 찬샘배미에 나가
삼동에 얼부푼 논두렁 다져
거기 눈녹이물 가두는 이
또 웬 하느님이냐고

묻지, 묻지 말게나
우수 지나 동풍은 그예 불어와
그 바람결에 온몸의 신경통 씻고
보리밭에 날선 노염도 녹여내며
안마당에선 호호백발의 저 봄
씨나락을 고르는 때
어디선가 텃밭 귀영치에선
매화꽃도 펑펑 터지고 있잖느냐고

==========
첫 봄나물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 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 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 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환한 마당 

활활거리는 화톳불이 온 마당에 환하다
잘 갔다고 한다, 맏상제도 덩달아서
아침밥 잘 잡숫고는 잠든데끼 가셨구먼, 한다
윷판에선 윷 모 떨어져 환호성 지르고
초경 이경 상여 놀이로 서로를 낄낄거리고
필요도 없이 오래 사는 치도 많은데
잘 갔다고 한다, 마나님도 덩달아서
평생을 흙 파묵고 살았응께
인자 흙밥 되는 게 옳지라우, 한다
텃밭 가에선 초롱초롱 오동꽃도 등 밝히고
내일 발인 날엔 날씨도 화창할 거라 하니
활활 거리는 온 마당에 화톳불이 환하다

그래도, 그래도 쪼끔은 서러워야 한다고
배경음을 깔아대는 저 지랄 불여귀들!

------------------
+ 6월의 동요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 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
+ 늘 새로운 문 

오늘 아침 듣는 까치 소리는
그 목청을 간밤 은하 물에 씻은 듯.
오늘 아침 맡는 대기는
어느 고산의 석남화 밭을 스쳐온 듯.

아침부터 일렁이는 바람아, 넌
한 번도 똑같은 몸짓으로 오지 않아서
아침부터 설레는 잎새들이 있고
나는 내 구규를 열어 너와 썩인다.

어제는 비가 와서 부챗살 햇귀 퍼지자
온 들판이 반짝이는 수정밭인 듯.
오늘은 풋고추 된장에
혼자 먹는 밥도 달아서
만사가 한눈에 열리는 것도 알 듯 알 듯.

거기에 먼 여울물 소리 같은 서러움과
거기 물싸리꽃 위를 나는
빨간 고추잠자리 편대 같은 그리움도

좀 있으면 좋겠다.

보라, 내가 느낄 때 부는 새 바람
내가 우러를 때 열리는 하늘의 문.

============
+ 봄날은 간다 

강변에 참배꽃 피고
강물에 참배꽃 어리니
너를 사랑한 때처럼
일렁일렁, 세상이 환하더니
강변에 참배꽃 지고
강물에 참배꽃 흐르니
네게 닿지 못한 때처럼
울먹울먹 가슴이 미어진다
사랑이 오고 가는 동안
외로움은 이만치에서
그리움은 저만치에서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것
강변엔 또 어쩌려고
능금꽃 자욱히 일고
강물을 차는 해오라기야
차마 또 어쩌지 못하고

-------------------
+ 상처의 향기 

나는 보았네, 지난 봄날 지리산에서
나와 딱 마주쳤을 때 멀뚱멀뚱 거리다간
점점 호동그래지던 고라니의 눈을.
내가 꽃발 꽃발을 딛고 다가가자
순간 후다닥 산정으로 튀는데, 그와 동시에
주위에 아득아득 퍼지던 향기를.
그 날랜 발이 천리향 그루를 건드렸던 것인데
꽃가지가 찢기고 꽃들이 흩어진 나무는
그 향기를 마음속 천리까지 끼치더라니!

계곡에서 일던 생생한 바람이여
상처에서 일던 너의 그리움이여

-------------------
+ 지하생활자 

그에겐 거울 앞에서 수음에 떠는 에곤 실레가 있다
그의 방에는 사방을 둘러보아 창문이 없어서
생이 외부로 확산되는 일이 없이 그는 그 자신이다
그는 인간은 무엇이 잘못되어 나온 아이 같다는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다 표지가 나달 나달 해진
지하생활자의 수기엔 역시 풍경에 대한 묘사가 없다
짓밟힌 쥐가 큰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은 공포의
절규가 아니었다면 석탄빛 어둠 속으로 빨려버렸을
뭉크도 일찍이 그의 계보에 속한다 그런 그를
그토록 지하방으로 숨어들게 한 것은 놀랍게도
어느 날 문득 그가 던져주는 먹이 몇 점에 홀려
뛰어오르고 뒹굴고 아양 떨고 싹싹 비는 애완견이었다
그걸 보고 마치 자신을 보기라고 한 듯 내쳐버렸을 때
당신이 과연 살아야 할 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고 외친 아내는 누구던가 그날로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법을 급격히 잃어버린 그가
모든 인간은 모두에게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외부의 지옥을 버리고 망명한 지하방, 거기엔
끔찍하고 무자비한 케르베로스가 먼저 와 있었다
푸른 안광도 없이 소리도 없이 짖어대는
없고도 있는 그 개는 세계와 교류 없이 살 수 있다는
확신범들을 잠식하는 개였다 그 개에게 먹히기 전에
옥탑방으로 올라가서 찬란한 햇살을 받고 싶지만
벽에다 무슨 둥근 원 하나를 부적처럼 친 그는
다만 그 공(空)을 어처구니처럼 뚫어져라 응시할 뿐
다나에처럼 천장의 황금비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이다

-----------------------
+ 눈물을 위하여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를 흐르는
강물에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 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 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나 되고 싶다

=============
+ 미루나무 연가 

저 미루나무
바람에 물살쳐선
난 어쩌나,
앞들에선 치자꽃 향기.
저 이파리 이파리들
햇빛에 은구슬 튀겨선
난 무슨 말 하나.
뒷산에선 꾀꼬리 소리.
저 은구슬 만큼 많은
속엣말 하나 못 꺼내고
저 설렘으로만
온통 설레며
난 차마 어쩌나,
강물 위엔 은어떼빛.
차라리 저기 저렇게
흰구름은 감아돌고
미루나무는 제 키를
더욱 높이고 마는데,
너는 다만
긴 머리칼 날리고
나는 다만
눈부셔 고개 숙이니,
솔봉이여 혀짤배기여
바람은 어쩌려고
햇빛은 또 어쩌려고
무장 무량한 것이냐.

-----------------------
+ 선운사 가는 길 

마음의 걷잡을 수 없음을 하늘도 안다는 걸까. 비 뿌리다 해 비추다 다시 거센 바람으로 아직 외투 껴입지 못한 우리를 몰아세우는 날씨를 두고 그녀는 호랭이가 떼로 장가가는 날인갑 다고 했다. 사랑 때문에, 정지된 화면처럼 일순 세상이 멎어버리던 시간의 경험을 가진 그녀의 말이 저기 둔덕에 까마득히 꽃사래 치는 억새의 울음을 낳은 걸까. 비산비야를 지나고, 풍천장어를 먹으며, 논에서 살던 것이 먼 필리핀 앞바다로까지 알을 낳으러 가려면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적응기간을 거쳐야만 바다로 들

어도 심장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그 장어의 생리를 이야기했다.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빨 으르렁거리는 파도를 만나버린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적응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 예의 파도며 비바람이며 으르렁거리는 것투성이인 만돌리 그 한적한 바닷가에 닿자마자, 선생은 대뜸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라는 시구절을 읊어댔는데 귀밑머리가 새하얀 그는 학교 강의도 앗세 작파해 버리고 우리를 맞아주었었다. 나이 오십에 아직도 시인지망생이라는 것이 또 수많은 갈매기 울음을 낳게 했으리라. 그때 세상엔 아직도 따뜻한 사람이 많을 거야 하고 말하곤 크 - 하고 울대를 터뜨려버린 김은 얼른얼른 늙어버리고 싶은 깨끗한 절망을 아직도 간직한 친구였는데, 나는 그보다도 손이 너무 차가운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쏠렸고, 그녀는 결국 오소소 떨어대며 내 팔짱을 껴들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한순간 저 앞길에 걸린 찬란한 무지개를 보았지만, 아직도 미궁일 뿐인 하룻길을 안고 저녁 늦게 들어선 선운사 그 적막 속엔 여즉 불이 밝아 있다는 게 무척 다행스럽게만 생각되었다. 아, 그때 우수수 져내리던 잎새들은 또 무엇이던가.

-----------------------
+ 연자줏빛 그늘 

오뉴월 수수꽃다리꽃이
바람에 우수수거릴 때마다
그 청량한 향기가
보이지 않는 사방의
별을 생생히 닦아내는데요.
수수꽃다리꽃을
정혼자에게 보내선
파혼을 통고했다는 한 여인은
저 꽃을 일러
젊은 날의 추억이라 했다지요.
그런 서럽고 서느러운
그늘이 드리워져
수수꽃다리꽃도 우리네 사랑도
연자줏빛으로
웅숭 깊어지는 건 아닐런지요.

------------------------
+ 이심전심의 눈 

눈이 내린다. 날이 정글며 이윽고 하나 둘 밝혀대는 둥불, 그 빛으로 제 이름을 찾는 마을에도 저렇듯 고조곤히 눈이 내려서, 한 폭의 짙은 유화를 친다.

나는 이때쯤 외로 떨어진 주막에서 홀로 내장국에 소주를 마신다. 하마 더욱 커진 눈망울로 저렇듯 푹푹 눈 내리는 밖을 외양간의 황소처럼 바라보며,

이런 날은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마음의 길은 하늘로 열리는가. 제 키의 고독을 기도로 바꾸는 갱변 미루나무의 저 오롯함이라니.

또 나는 하릴없이 슬퍼지는 게 시방 누발 아래서도 지붕 없는 까치집이며 시방 눈 속을 상사말같이 뛰는 굴뚝각시의 맨발 탓이다.

하지만 이런 날, 하염없는 날, 백열등 따순 어느 집에서 늙은 부처가 제 몸을 썩혀 들쿠레한 향기를 만드는 청국장을 끓이리라. 마주 앉으리라.

눈은 내려서, 무장무장 내려서, 이 가난함이랑 외로움도 푹푹 젖어서, 나는 세상의 그리운 것들을 참 많이 헤아리고 마음은 또 뜨거운 것으로 가득해지는 때.

이때쯤 광 속의 씨오쟁이에선 작은 씨들이 서로 옹송거리며 몸 부빌 것도 생각다 보면, 저 눈발 속 이심전심 아닌 건 하나도 없을 듯하다.

뒤란의 대처럼 그 축복의 무게로, 나도 그래 이 저녁은 고조곤히 휘며, 소주 한 잔 더 마시며, 혹여 먼데산의 길 잃은 은빛 여우의 울음도 들을 일이다.

================
+ 초록바람의 전언 

뒷동산 청솔잎을 빗질해주던 바람이
무어라 무어라 하는 솔나무의 속삭임을 듣고
푸른 햇살 요동치는 강변으로 달려갔다 하자.
달려가선, 거기 미루나무에게 전하니
알았다 알았다는 듯 나무는 잎새를 흔들어
강물 위에 짤랑짤랑 구슬알을 쏟아냈다 하자.
그 의중 알아챈 바람이 이젠 그 누구보단
앞들 보리밭에서 물결치듯 김을 매다
이마의 구슬땀 씻어올리는 여인에게 전하니,
여인이야 이윽고 아픈 허리를 곧게 펴곤
눈앞 가득 일어서는 마을의 정자나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 무언가 일별을 보냈다 하자.

아무려면 어떤가, 산과 강과 들과 마을이
한 초록으로 짙어가는 오월도 청청한 날에,
소쩍새는 또 바람결에 제 한 목청 다 싣는 날에.

-----------------------------
+ 꽃빛 꽃빛 복사꽃빛 

꽃빛 꽃빛 복사꽃빛
네 두 볼에 끼친 요런 빛이런가

꽃빛 꽃빛 복사꽃빛
네 땀이슬 맺힌 도도한 가슴의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그 빛이런가.

꽃빛 꽃빛 복사꽃빛
도화수 아직 시린 물가에서
네 치마에 어디에 함부로 쏟는
도화주 후끈한 술이여.

桃色이라고 했거니
자물쓴다고 했거니
그렇게 질탕한 것도 그만
무릉과 이승간의 꽃빛 탓이거니

꽃빛 꽃빛 복사꽃빛의 하룻날,
저렇게 꽃잎은 지고 풀풀 지고
저렇게 나비는 날고 활활 날고

너와 나는 우련 우련하여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곡지통으로
가는 봄날을 말릴 일이거나.
서로를 또 한번 훔친다거나.

------------------------------
+ 구례구역의 사랑노래 

기차는 저녁 일곱 시에 떠나네
이렇게는 일렁이는 강물 다 놔두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노을 다 놔두고

기차는 저녁 일곱 시에 떠나네
저렇게는 우뚝한 산봉우리 다 놔두고
산정 위에 막 돋는 별들 다 놔두고

네가 가고 나는 남는 이 저녁 역에서
외로움은 산 속 깊은 쑥국새 소리
그리움은 강심 깊이 숨어드는 숭어 떼 빛

기차는 저녁 일곱 시에 떠나네
저렇게는 산모퉁이를 도는 기적 소리에
이렇게는 강물도 떨리는 푸르른 저녁

--------------------------------
+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거나 굵은 것이거나 아예 실가
지거나 우둠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 놓는 법이 없
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거리거나 휙휙 후리
거나 모두 다 제 깜냥껏 한 세상을 흔들거리는데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
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이다.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 한 마리
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깜깜한 땅속의 그 중
깊이 뻗은 실뿌리에까지 거기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둠지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여린 것 하나라도 어
떤 댑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았구나!

==================
+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하늘의 정정한 것이 수면에 비친다. 네가 거기 흰구름으로 환하다. 산제비가 찰랑, 수면을 깨뜨린다. 너는 내 쓸쓸한 지경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제 그렇게 너를 꿈꾸겠다. 초로(草露)를 잊은 산봉우리로 서겠다. 미루나무가 길게 수면에 눕는다. 그건 내 기다림의 길이. 그 길이가 네게 닿을지 모르겠다. 꿩꿩 장닭꿩이 수면을 뒤흔든다. 너는 내 외로운 지경으로 다시 구불거린다. 나는 이제 너를 그렇게 기다리겠다. 길은 외줄기, 비잠(飛潛) 밖으로 멀어지듯 요요하겠다. 나는 한가로이 거닌다. 방죽가를 거닌다. 거기 윤기 흐르는 까만 염소에게서 듣는다. 머리에 높은 뿔은 풀만 먹는 외골수의 단단함임을. 너는 하마 그렇게 드높겠지. 일월(日月) 너머에서도 뿔은 뿔인 듯 너를 향하여 단단하겠다. 바람이 분다. 천리향 향기가 싱그럽다. 너는 그렇게 향기부터 보내오리라. 하면 거기 굼뜬 황소마저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아득하겠다. 그 향기 아득한 것으로 먼 곳을 보면, 삶에 대하여 무얼 더 바라 부산해질까. 물결 잔잔해져 수심이 깊어진다. 나는 네게로 자꾸 깊어진다.

-----------------------------
+ 하동 포구에서 굽이굽이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의 새보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빛깔이거나, 강은 도요새 댕기물떼새 흰고니 떼를 속속 날려선, 그것들의 신신하고 유유한 하릴없이 아득한 날갯짓이거나로, 시방 내겐 요렇듯이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다.

강 아래 모람모람 들어앉은 마산면 피아골 화개면 집들, 산 위 구중심처의 화엄사거나 쌍계사 절들을 보면,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피안인지, 나는 다만 봄볕 융융한 그 사이에서 저기 달래 냉이 자운영을 캐는 산사람들 본다. 저기 은어 쏘가리 버들치를 건지는 강사람들 본다. 저들 저렇듯이 산길 물길로 흐르며 마음엔 무슨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새는 날리는지.

나는 다시 꽃구름에 홀리고 새목청에 자지러져선, 우두망찰, 먼 곳을 보며 눈시울 함뿍 적신다. 그러다 또 애기쑥국에 재첩회 한 접시로 서럽도록 맑아져선, 저 산 저렇듯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푸르러지고, 저 강 또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꼭 그렇게 불었던 것을 내 아둔폐기로 새삼 눈치라도 채는가 마는가. 시방은 눈감아도 저기 있고 눈떠도 여기 있는 한 세상 굽이굽이다.

지리산이여, 그러면 우리가 네 노루막이 위 청천에 닿고, 섬진강이여, 우리가 네 자락 끝의 창해에 이르는 길을 찾기는 찾겠는가. 가슴속의 창날 우뚝우뚝한 것으로 스스로를 찔러 무화과 속꽃 한 송이쯤 피울지라도, 가슴속의 우북우북한 것으로 깃을 쳐 죽을 때 꼭 한 번 눈뜨고 죽는다는 눈먼 새 한 마리쯤 날릴지라도, 생의 애면글면한 이 길, 누구라서 그예는 일렁거리지 않겠는가,

--------------------------------
+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사과꽃 환한 길을
찰랑찰랑 너 걸어간 뒤에
길이란 길은 모두
그곳으로 열며 지나간 뒤에
그 향기 스친 가지마다
주렁주렁 거리는 네 얼굴
이윽고 볼따구니 볼따구니
하도나 빨개지어선
내 발목 삔 오랜 그리움은
청천(靑天)의 시간까지를 밝히리
길이란 길은 모두
바람이 붐비며 설렌다네

-----------------------------
+ 소쇄원에 시금을 타다 

소쇄소쇄, 대숲에 드는 소슬바람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한 무리 오목눈이가 반짝반짝 날아오른다

소쇄소쇄, 서릿물 스치는 소리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몇 마리 빙어들이 내장까지 환하다

자미에서 적송으로 낙엽 따라 침엽 따라
괴목에서 오동으로 다람쥐랑 동고비 따라
빛나는 바람과 맑은 달이
飛潛走伏을 다스리면

여기는 꽃이 없어도 되는가
황국 몇 점만 생생하여도 되는가

오늘은 상강, 저 진갈매빛 한천 길엔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기러기며와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푸른 정신뿐
나 본래 가지 게 없어 버릴 것도 없더니
나 여기 와서는 바람 들어 쇄락청청
나 여기 와서는 달빛 들어 휘영청청

===================
+ 흐르는 것들과 함께 춤을 

꾸역꾸역 뿜어대는
격렬한 사정의 용틀임 같은
화개(花開) 십 리, 다하기 전에
우수수 펄펄
이내 바람의 길을 따르는
십 리 낙화(落花)는,
섬진강 물 위에 차마
읽을 수 없는 문장을 수놓고
먼 데서 아닌 데선
늦게야 치명상을 확인한 병사가
홀로 떨구는 고개처럼
구욱우욱 멧비둘기 운다

강변 모래밭에 취한 처녀들이여
오, 춤을 멈추지 말라
꽃잎 맞은 자리마다 화상 입겠다.

-----------------------------------
+ 굴뚝 속의 새를 날려 보내다 

높디나 높은 굴뚝 속에 빠진 새를 구하기 위하여
높디나 높은 굴뚝을 넘어뜨린 시인 부부가 있다
처음엔 굴을 파고 들어간 생쥐인 줄 알았다가
하룻밤이 지나서도 그치지 않는 소리
틀림없이 푸드덕푸드덕, 목숨을 타전하는 소리에
그들의 푸르른 심금은 떨리고 떨렸던 것이다

내게는 아랫마을 방앗간집 아들과 통정했다가
가난하다고 해서 버림받은 누이가 있다
해산 날에 그 집 향해 실려가다가
싸락눈에 삭풍 치는 신작로 한가운데서
제 이빨로 탯줄 끊어 몸을 풀었던 누이,
하지만 그 문전에서 아이만 빼앗긴 채 내쫓겨서
끝내 정신병동에 갇혀버린 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에겐 정녕 바람 불어도 떨리는 게 없어서
등굣길, 청천벽력 같은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어리디어린 순결 앞에서 또 유구무언일 뿐인가

안암팎의 그리움 죄다 곱사등이인 세상에서
둘러보고 둘러보아도 굴뚝 속 검댕일 뿐인
칠흑 절망을 더는 어쩌지 못한 생들이,
그 속에서 자기 날개를 짓찧는 아픔으로 되레
칠흑 고독을 이기려는 생들이, 어찌 새만 못하랴

쓰러진 굴뚝 밑으로 어리벙벙, 마침내 기어 나와
포르릉, 푸르른 자유를 나는 새를 바라보는
시인 부부의 환한 심금에 신의 연주가 있으리

----------------------------------
+ 땅끝에서 폐선을 끌어안다 

예보됐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들
앞을 가로막는 방파제는 꿈쩍도 하지 않듯
아무리 치료를 해도 더 좋아지지 않는 병의 삶이 있다.
물고기를 잽싸게 채어 먼 수평선으로 데려가줄 듯한
갈매기처럼 우리의 뒷덜미난 채어 질질 끌고 가선
급기야 제 뱃속을 채워버리는 희망이야 있긴 있다.
나는 알코올중독자와 어깨 겯고 선창을 떠돌고 싶었다.
차라리 마흔 넘은 퇴물 작부와 밀항을 꿈꾼 적이 있다.
그 흔한 마약과 부랑을 살 만한 배 한 척 내겐 없었기에
생이 우리에게 베푼 모든 개발 가능한 삶의 파랑을
섭렵해 보지 못한 채 죽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을 뿐
나는 갈치잡이 배를 타고 세상을 낚아보지도 못했다.
새벽 어시장의 경매꾼처럼 삶을 흥정해 보지도 못했다.
해지는 바다 위 금결 은결의 비단 피륙 같은
질 좋은 아이들에게만 뽀짝 거려서 외로움을 자초했고
너른 바다 변방을 둘러친 양식장 부표 같은 경계에 갇혀
그들에게 삶의 인용 아상은 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선 죽어가는 알코올 중독자가
끝장난 창녀와 어떻게든 안간힘의 정사를 나누려 하지만
해송은 푸르고 동백은 붉은 이 땅끝에서 나는
소금기, 소금기에 삭은 선창의 폐선이나 끌어안고
방하착. 방하착, 방차학만 뇌뇔 뿐. 파도의
포말 같은 내가 어둠의 해조음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
+ 쓸쓸함이 때로 나를 이끌어 

갱변의 늙은 황소가 서산 봉우리 쪽으로 고개를 쳐들며 굵은 바리톤으로 운다  
밀감빛 깔린 서쪽 하늘로 한 무리의 새떼가 날아 봉우리를 느린 사 박자로 넘는다  
그리고는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늦가을 저녁이 있다  
소소소 이는 소슬바람이 갈대숲에서 기어나와 마을의 등불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이때다

=======================
+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이 있다 

추상 같은 구중궁궐, 종묘 정전(正殿)의 문짝은
일부러 아귀를 맞추지 않았다 한다, 모셔둔
위패의 혼령이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기 위해서란다.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면 다른 나뭇잎이 흔들리고
멧새가 울면 또 다람쥐가 쥐똥만 한 눈을 반짝이듯
서로가 드나드는 것은 애초에 우주의 일,
내가 어머니로부터 배운 말들과
내가 수많은 책들로부터 배운 지식과
내가 이웃들로부터 배운 사회로, 나 아닌 나를 살며
나는 아귀가 꼭 맞는 문을 만들어 닫았던 것인데,
가령 이런 경우가 있긴 있다.
말해질 수 없는 슬픔으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마른 장작개비 같던 네가 어느 날
곱게 갈아 끓인 잣죽같이 저미고 감싸드는 경우
나는 스스로 문풍지 우는 문이 되고 싶었다.
너의 상처가 나를 드나들며 새로운 영토를 만나는
그런 목숨을 꿈꾸어 본 적이 있긴 있는 것이다.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니 다른 나뭇잎은 안 흔들리고
뱀이 지나가자 멧새가 푸나무서리에서 튀듯
내가 애인들로부터 배운 질투와 증오와
내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상처와 추억과
내가 삶으로부터 배운 권태와 환멸과 죽음만으로
문을 닫아걸고선 나의 고독을 우겨댔던 것인데,
추상같은 호령도 꺾지 못한 사당의 혼령이란 것도
사실 버리고는 갈 수 있으나 놔두고는 갈 수 없었던
사무치는 마음 아니겠는가, 그 마음 못 다하여
이 지상의 아귀가 맞지 않는 문으로
가끔씩은 사무쳐서 드나드는 그리움이 아니겠는가.

----------------------------------
+ 두더지도 살고 참깨도 사는 길 

텃밭에 참깨씨를 뿌려놨더니
참깨순 쑥쑥 올라온다. 오르는데
요런 요망한 두더지들이
땅 밑으로 이 길 저 길 내는 통에
참깨순 다 죽는다. 다 죽어선
어디 한번 해보자, 전쟁을 선포하고
그놈들 잡겠다고 골머리를 싸매지만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더더욱 낮만 아니고 밤에도 길을 내니
요령부득이다, 요령부득인데
옆집의 쭈그렁 꼬부랑 할머니
그놈들 지나가 흙 부푼 길목 길목에
대꼬챙이를 박아두란다, 박아두었더니
신기하게도 더는 길을 내지 않는다
하고 희한해서 이유를 여쭈니
그놈들은 눈이 어둡당께
주둥이만으로 길을 뚫는당께,
주둥이가 부딪치니 지가 워쩔 것이여!
그러나 저러나, 그러면 그놈들은
이제 어디로 길을 낼 것인고 했더니
다 저 살 길을 뚫는당께,
저도 살고 참깨도 사는 길을 뚫는당께,
길을 뚫는다고 해서 다 길이 아니랑께!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나보다 먼저
참깨순은 마냥 일렁이는 게 아닌가.

-------------------------------------
+ 오월의 숲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 

비 오고 활짝 개인 날인데도
오늘은 우체부조차 오지 않는
이 슬쓸한 자리보전,
떨치고 뒷산 숲 속에 드니
일렁이는 게 생생한 바람인지
제 금보석을 마구 뿌리는 햇살인지
온갖 젖은 초록과 상관하는 것인데
은사시, 자작나무는 차르르 차르르
개느삼, 수수꽃다리는 흐느적흐느적
왕머루, 청미래덩굴은 치렁치렁
일렁이는 것이 당연할 뿐, 여기서
제 모자란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이여, 나 저절로 일렁이네
오월 숲에선 뻐꾸기 한나절 호곡도
가슴 깊숙이 녹아내릴 뿐
세상은 너무 억울하지도 않네

그렇다네, 세월이 잠깐 비껴난 숲에서
일렁이는 것들이 진저리치다
산꿩의 썽썽한 목청을 틔울 때
사랑이여, 난 이 지상의 외로움
조팝꽃 그 쌀알 수만큼은 녹이겠네
아니 아니 또르르륵 또르르륵 굴리는
방울새는 은방울꽃을 흔들고
핑핑핑 크루루 하고 쏘는
흰 눈썹황금새는 산괴불주머니를 터뜨린다면
다만 이것들의 신기한 재주에 놀라
흐린 눈 동그랗게만 떠보아도
마음의 환한 자리 하나 어찌 못 얻으랴
그 누구라서 농축된 외로움 없으랴만
저 잎새 하나하나로 좀 녹여본다면
계곡의 물소리로 흘러본다면

어느 시인은 저 찌르레기 소리를
쌀 씻어 안치는 소리라 했지
오늘은 이팝나무꽃에다 쏟아붓는군
또 금 주고 사고 싶은 저 금붓꽃의
이파리엔 정녕 어찌하지 못할 뿐
이 오월 숲의 초록 절정,
이 생생한 일렁임과
아득히 젖어오는 그 무슨 은총과
목숨의 벅찬 숨결 한 자락이
쟁명한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순간을
무척은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을 때
사랑이여, 나는 내 생의 죄업을
저만치 밀어둘 참이겠네
그렇다네, 서러울 것 하나 없이
서러움도 가득 일렁이는 오월 숲에서
비껴 난 세월을 다시 깨우치는 물소리에
서러움도 그만그만하게 여겨질 때까지

사랑이여, 나 오월 숲에서
천지를 우러러 사랑의 길을 묻네
사랑이라서 무슨 거룩한 게 아닐 테지만
저 일렁이는 것들이 하루 몽땅 저물어
머루빛 속 은하수로 일렁인다면
나 그만큼은 드높아야 하네
드높아서는 세상의 길 잃은
사랑의 길을 한껏 비추며
그대로 한 번쯤 지워져도 좋을 일이라면
이 설레는 숲에서 저절로 일렁여도
그 무슨 산통 깨는 일은 아닐 테지
저봐, 이젠 어스름 속의 잎새들이
서로의 숨결을 뽑아내 서로를 속삭여주듯
내 아픈 몸의 우선한 것으론
저 무덤 앞 제비꽃이라도 일별 하겠네


--------------------

텅 빈 초상

산전수전 다 겪고 돌아와 이제는
요양원 마루 끝에 앉아서 텅 빈 눈을
먼 데 가까운 데 어디에도 두지 않는
노파의 무관심을 무엇이라고 부르랴
입 주변에 파리가 덕지덕지해도
이미 그 눈에 해골의 공허를 품은  채
인간으로부터 소원해져 버린
노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랴
차라리 마음을 재갈이나 만들 걸,
아무것도 보지 않는 노파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눈을 포착하기 위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응시하는
나의 눈은 더는 구원받을 수 없으리라
세상과의 어떠한 교류도 차단하고
혼자만의 궁륭으로 떠나 버린 노파의
암전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까
생이 삶에서 베푼 마지막 공허를 누리는
노파 앞에서 안절부절, 나의 언어는
마치 한입 먹을거리를 주지 않을까 하고
알랑거리는 작은 애완견처럼
노파를 쏘아보고 쏘아볼 뿐일 것이다

============
고통의 독재

1
우리 고향 아주머니 한 분은, 여름 내내 땡볕에 익은
서방님 몸보신시키려고 싱싱한 낙지 안주에 소주 한잔도
마련했다가, 감나무 그늘도 싱싱한 평상 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죽어 간 서방님을 보아야 했다. 꿈틀거리는 낙지
발이 기도에 봍는 바람에,  숨이 턱 막혀 죽어간 님 때문
에, 온 마당을 떼굴떼굴 굴러야 했던 아주머니, 감나무 
잎새는 마냥 살랑거렸다고 한다.

2
아랫말 아흔일곱 살 드신 할머니의 일흔두 살 자신 딸
이 암으로 죽자, 역시 진갑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시 어머
니를 위로하였다. "아이구  자리보잔하시는 우리 어머님이나 돌아가실 일이제 고모가 어찌 먼저 가신당가요?" 그
러자 귀만은 초롱초롱한 할머니가 듣고는 "아 지 년 지
명대로 살고 내사 내 명대로 사는 것인디 너 뭔 소리
다냐, 너는 내가 죽었으면 그렇게 좋것냐?"고 뻑 질렀다
한다. 뒷문을 기웃거리던 참새가 후드둑 날아갔겠지.

3 불행의 족적을 모두 춤으로 바꾸었던 조르 바여 
살이란 근본적인 오류를 논하기 이전에  죽음으로도, 
그리고 시의 세계로도 교정할 수 없는 저질취미에 속
한다지".

-------------------
+ 도칠의 시간  

도칠이란 고대 중국 때 제사그릇인 청동솥에 주조한
식인괴물이었는데 거칠고, 조잡하고, 사납고, 괴이하고.
흉악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것이렷다! 피와 불의 잔인,
야만, 공포의 위력을 과시코자 한 당시 지배자들의 象徵紋이었으니. 이를 만든 자들은 巫史계급이었다니. 황제
이래 요순시절을 지나 하, 은, 주 고대 중국으로 넘어오
며 차츰 노예, 국인, 귀족, 무사계급의 종법제가 이루어
지거니, 통치자들이 독점한 무사계급은 자기네의 권세
를 위해 '환상'과 '길조'를 꾸며 내는 이른바 제사장들이
었지. 사상이기도 한 이들은 아주 큰 씨족 간의 합명
전과 그에 따른 잦은 육살, 노획, 탈취, 노예화를 찬하여
항용 나서길, 가령 <좌전> 성공 4년의 기록에서 보듯 "나
와 같은 族類가 아니면 그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라는
등의 생심을 끄집어내어 자기 씨족이 아니면 가차 없이
도륙했던 것, 거기에 무시무시한 상징문까지 조작해 내
어 그 이름으로 포로를 잡아 조상과 토템에게 무자비한
살과 피의 봉제사도 했음이니, 도철문은 솥만 아니라 술
잔과 병기 등에도 흔히 주조하여 한마디로 까불면, 설령
씨족일지라도 도철로 하여금 죄다 삼켜 버리게 하겠다는
겁박이렷다!

그 도찰이란 괴물이 4,000년도 더 지난 동방의 한 민
주지국에서 횡행한다는 것이니. 국가조작원의 간계로 뽑
혔다는 통령과 통령집단이 자기들에게 곤란하거나 불리
한 곤경에 처하게 되면 "나와 같은 족류가 아니면 그 마
음이 반드시 다르다"며 시시때때로 들고 나와 전가의 보
도처럼 휘둘러 대는 인간몰이의 병기. 이름 하여 '종복'
이라는 괴물로 변태 했다는  소문이 더라니!

--------------------
마지막 얼굴

갈아 놓은 땅의 고랑은 여러 길이다.
이제 물 들어오지 않는 논에
바람 칠 때마다 흙먼지가 이는데
아직도 새마을모자시던가?
흙먼지에 누렇게 바랜 건 모자만이 아니라
그 아래 누렇다 못해 새까매진 얼굴의
주름 고랑도 여러 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어떤 길도 사라진 지 오래다.
주먹을 부르르 쥐어 보지만
쭈글쭈글해진 호박 같은 주먹임에랴
땅을 박차고 일어서고 싶지만
헐렁해진 바짓단 속의 다리라기보다
흙먼지 속의 장화마저 빼내기 힘들 것 같다
그가 고집하는 논밭 앞에, 그의 고집을
쏙 뽑아 버릴 듯 고층아파트가 선 지 오래,
수확 못 해 썩는 배추처럼 거기 앉아서
그저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인가
더 이상 좋은 소식은 그만두고라도
소식이라면 기다린다는 것인가
이제 그만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이던가

--------------------
평범한 초상

한때 보통사람이 되고자 싶던
한 위정자에 의해
애써 보통사람이라고 불리었던
평범한 사람
마이크를 들이대면 언제나
우리 가족 건강하고 하는 일
이대로만 잘 풀렸으면 한다는
평범한 사람
이만큼 평범한  사람 되기도 힘들어
삶이 무척 고되기도 하겠지만
이런저런 생각할 필요는 없이
안 보이는 기표서에선 안정을 찍는
아주 평범한 사람
이런저런 생각으로
삶의 비밀을 조금은 알아채어서
그것을 조그만 털어놓으려 해도
수백 수천 포박꾼들의 올가마에
꿈속에서마저도 쫓기는
식은땀 흘리는 평범한 사람
그러기에 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긴 대로, 삶 그 자체로 만족하자는
평범한, 행운의 사람
하지만 입 열지 않으면 하도나 괴로워
기어코 입을 열더니
잉꼬부부로 소문난 한 연예인 부부가
작년부터 이혼소송 중이라고
마치 제 일인 양 흥분하며
창 넓은 카페에서 그만 커피잔을
앞지르는  놀라운 사람


______ * 48


江景
경전  
독거 
문득 
--------
명작 
세월
장엄 
좌망 
-------
청춘
큰 잠 
파안 
국외자 
----------
독학자 
개기월식 
길의 길 
봄의 깊이 
-------------
첫 봄나물 
환한 마당 
6월의 동요 
늘 새로운 문 
-----------------
봄날은 간다 
상처의 향기 
지하생활자   
눈물을 위하여 
--------------------
미루나무 연가 
선운사 가는 길 
연자줏빛 그늘 
이심전심의 눈 
--------------------
초록바람의 전언 
꽃빛 꽃빛 복사꽃빛 
구례구역의 사랑노래 
나무속엔 물관이 있다 
-----------------------------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하동 포구에서 굽이굽이 
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소쇄원에 시금을 타다 
--------------------------------
흐르는 것들과 함께 춤을 
굴뚝 속의 새를 날려 보내다 
땅끝에서 폐선을 끌어안다 
쓸쓸함이 때로 나를 이끌어
------------------------------------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이 있다 
두더지도 살고 참깨도 사는 길 
오월의 숲 속에선 저절로 일렁이네 

텅 빈 초상

------------------
고통의 독재
도칠의 시간
마지막 얼굴
평범한 초상

__________

 

고재종 시 3

'시인 마당 > 시인 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조 시 1  (0) 2024.04.17
김현승 시  (0) 2024.04.17
강은교 시 3  (2) 2024.02.08
강은교 시 2  (1) 2024.02.08
강은교 시 1  (2) 202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