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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가 ~

고재종 시 1

+ 광채

석모도 방죽, 그 아득한 억새 밭에 섰더니
일몰에 젖은 네 눈동자는
되레 무슨 깊고 푸른 수만 리로 일렁거렸다
억새 때문만도 아니게 길 하나 보이지 않고
내 눈은 내 눈동자를 보지 못할 때
네 눈동자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는
저 수평선까지를 황홍(黃紅)으로 물들여놓곤
되레 넌 깊고 푸른 네 심연으로 잦아들었다
억새꽃 금발들이 하염없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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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저것 좀 보아 저 아가씨
봉선화 따서 손톱 묶네
저 아가씨 얼굴 좀 보아
홍색 자색 연분홍 드네
가슴 봉긋한 저 아가씨
꽃물 든 손 가슴에 얹네
저 먼 데로 까치발 딛네
말만 한 엉덩이 저 아가씨
어쩌자고 저 아가씨
바알갛게 달아오르네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네
아아, 저 아가씨 눈이슬 짓네
내사 차마는 못 보겠네
진저리 치다 깨어나니
울 밑의 봉선화 비에 젖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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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꺽는 것이다
또 한잔 꺾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싶은 것이다
너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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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나뭇잎 그늘이 일렁일렁
오솔길을 쓸고
오솔길에 무늬를 짠다

나뭇잎 그늘 없는
나뭇잎이 어디에 있는가

나뭇잎 그늘에
누워 마음의 상처를
쓸지만 상처 없이는
생의 무늬를 짜지못한다

아. 사랑의 그늘은
나를 이윽하게 하지
이슥함 없는 봄날은
찬란히 갔지

나뭇잎 그늘이 일렁일렁
내 생의 이정(里程)을 쓸고
그 이정의 무늬를 밟으며

나는 이제 막 중생의
하루를 통과하는데

시방 눈앞에 일렁이는 게
나뭇잎인가 그 그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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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

세상에 아름다운 시신은 없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박혜진 씨는 다만
사회가 외면하는 시신의 침묵을
묵묵히 대변할 뿐이라며 웃는다
부검 날엔 몸에 배는 부패 냄새 때문에
밖에 나가 점심도 먹을 수 없는 그녀가
토막 난 사체의 위장을 가르고
썩어 문드러진 사체에서 피를 뽑고
유괴 후 숨진 아이 부검 때는 펑펑 울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녀가 고독과 죽음을 관통하며
그토록 밝히고자 하는 사인은
저마다에게 어떻게든 있긴 있는 것일까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하인이 없고
공포를 휘두를 제국이 없어서 자신을 증오하는
우리들의 너무도 의당한 천국에서
우리들의 죽음은 스스로 저당 잡힌 게 아니던가
인간에 대한 예의
그 관대한 거짓말 때문에
오월 강변의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보석처럼 짤랑거린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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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바람의 따뜻한 혀가
사알작, 우듬지에 닿기만 해도
갱변의 미루나무 그 이파리들
짜갈짜갈 소리 날 듯
온통 보석조각으로 반짝이더니

바람의 싸늘한 손이
씽 씨잉, 싸대기를 후리자
갱변의 미루나무 그 이파리들
후둑후두둑 굵은 눈물방울로
온통 강물에 쏟아지나니

온몸이 떨리는 황홀과
온몸이 떨리는 매정함 사이
그러나 미루나무는
그 키 한두 자쯤이나 더 키우고
몸피 두세치나 더 불린 채

이제는 바람도 무심한 어느 날
저 강 끝으로 정정한 눈빛도 주거니
애증의 이파리 모두 떨구고
이제는 제 고독의 자리에 서서
남빛 하늘로 고개 들 줄도 알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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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된서리에 배추 속 차듯이 살면
땅 밑의 알토란 무더기 캐듯 할 거라더니,

개평술 몇 잔에 이 집 저 집
상갓집 개처럼 어슬렁거리다간 죽었다.

평생을 리자만 갑다 말았다!
모진 생만큼이나 쓰라린 유서 한 줄 남기고,

서로 외면하는 그의 집에 삭풍만 들락거리며
문에 붙은 조합의 차압 딱지를 추문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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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

나의 사랑은 가령
네 솔숲에 부는 바람이라 할까
그 바람 끌어안고 또 흘려보내며
온몸으로 울음소리 내는 것이
너의 사랑이라 할까

나의 바람 그러나
네 솔숲에서만 그예 싱싱하고
너의 그지없는 울음 또한
내 바람맞아서만 푸르게 빗질하는
그런 비밀이라 할까 우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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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저렇게는 저렇게는
물낯에 꽂히는 빛의 작살 떼와

그 작살 뗄 맞고 번쩍번쩍
물낯 위로 튀는 숭어 떼와

그 또 숭어뗄 채고 채는
하도나 무정한 갈매기 떼여

이런 날엔 이런 날엔
네게 차마 못 닿고 부서지던
서러움, 서러움의 떼까지

이내 까치놀 이는 먼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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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사그락 사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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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월식

이웃들과 아랫마을에 문화예술단 공연 보러 갔다가
공짜 공연 본 죄로 강권하는 만병통치약을 한 박스이고 왔다
수십만 원 되는 외상값 미처 못 갚아서 독촉장 수없이 받았다
붉은 도장 팡팡 찍은 재산 압류 계고장 계속 받고
오밤중이건 새벽녘이건 협박 전화질 받다가
자식 직장 상사까지 알아내 전화질 한 ‘그놈 목소리’ 때문에
자식 앞길 막았다고 순창할매 홀로 제초제를 마셨다

전직 경찰관이라는 그 해결사의 쇠갈고리에 찍힌 삶을
캄캄하게 조문하고 있는 오늘, 개기월식의 지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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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권력

꽃을 꽃이라고 가만 불러 보면
눈앞에 이는
홍색 자색 연분홍 물결

꽃이 꽃이라서 가만 코에 대 보면
물컹, 향기는 알 수도 없이 해독된다

꽃 속에 번개가 있고
번개는 영영
찰나의 황홀을 각인하는데

꽃 핀 처녀들의 얼굴에서
오만 가지의 꽃들을 읽는 나의 난봉은

벌 나비가 먼저 알고
담 너머 大鵬도 다 아는 일이어서

나는 이미 난 길들의 지도를 버리고
하릴없는 꽃길에서는
꽃의 권력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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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죄

산아래 사는 내가
산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인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 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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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랜 사랑

장마 걷힌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 딱 발 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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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

예기치 않은 어느 날 내 앞에서
눈물로 중독된 눈을 하고서는
무언가를 애써 말하려고 더듬, 더듬거리는
그러나 끝내 온몸이 뒤틀려버려 말을 못 하는
너의 얼굴은 내게 계시(啓示)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무력한 네 얼굴로 나는 상처받고
무력한 네 얼굴에 저항할 수 없다

버려진 고아처럼 나는 나를 얼마나 울어야 하나
홀로 된 과부처럼 나는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한밤중 나그네처럼 별의 지도도 없이

예기치 않게 나타난 내 앞의 너는
네가 당하는 가난과 고통으로 나의 하늘이다
나는 너로 인해 죄책 하지도 않고
나는 너를 연민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나는 다만 너를 모실 뿐이다

기막히게는 말할 수 없는 네 뒤로
기막히게는 번지는 밀감 빛 노을을
네가 잃어버린 날에 대한 서러움이라기보단
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차마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중독된 눈물을 잃어버리고
말해질 수 없는 말을 잃어버리고
내 마음을 잃어버리기까지는, 너의 계시
너의 사랑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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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묵언

숲은 아무 말 않고 잎사귀를 보여준다.
저 부신 햇살에 속창까지 길러 낸 푸르른 투명함
바람 한 자락에도 온 세상 환하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 앞에서
내 생 맑게 씻어내고 걸러낼 것은 무엇인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저것이 어치인지 찌르레기인지
소리 떨리는 둥그런 파문 속에서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한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을 흔들어 준다

어제는 산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깊은 골 백도라지조차 흔들어 주니
내 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맑은 꽃 한 송이 우주 속 깊이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눈빛에 취해
면경처럼 환한 마음일 때라야 들려오는 낭랑한 청청한 소리여
이 고요 지경을 여는 소리여

그러면 숲의 침묵이 이룬 외로운 봉우리 하나
이젠 말쑥하게 닦을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내 석삼년 벙어리 외로움일지라도
이 숲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숲은 다만 시원의 솔바람 소리를 들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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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숨어 

외로운 자는 소리에 민감하다.
저 미끈한 능선 위의
쟁명한 달이 불러 강변에 서니,
강물 속의 잉어 한 마리도
쑤욱 치솟아 오르며
갈대숲 위로 은방울들 튀기는가.
난 나도 몰래 한숨 터지고,
그 갈대 숲에 자던 개개비 떼는
화다닥 놀라 또 저리 튀면
풀섶의 풀 끝마다에
이슬농사를 한 태산씩이나 짓던
풀여치들이 뚝, 그치고
난 나도 차마 숨죽이다간
풀여치 들도 내 외진 서러움도
다시금 자지러진다.
그 소리에 또또 저 물싸린가 여뀌꽃인가
수천수만 눈뜨는 것이니
보라, 외로운 것들 서로를 이끌면
강물도 더는 못 참고 서걱서걱
온갖 보석을 체질해 대곤
난 나도 무엇도 마냥 젖어선
이렇게는 못 견디는 밤,
외로운 것들 외로움을 일 삼아
저마다 보름달 하나씩 껴안고
생생생생 발광하며
아, 씨알을 익히고 익히며
저마다 제 능선을 넘고 넘는가.
외로운 자는 제 무명의 빛으로
혹 간은 우주의 쓸쓸함을 빛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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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여자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의 상족암에
때아닌 겨울비 치는 바다,
파도가 고래 떼처럼 몰려온다 말한
그녀는 거기 홀로 견디는 거다.
그녀와 거기서 좀 지체해도 좋았던 그곳엔
백악기 때의 공룡 발자국과
만권서 쌓은 듯한 퇴적암에 층층 새겨진 세월,
그것과 함께 그곳에선
그녀 가슴에 패인 삶의 사랑의 상처도
빗물 고이는 공룡 발자국처럼 오래
가리라는 것을 짐짓 모른 체해야 한다.
몇 번이고 숨이 턱턱 막혀
그 가슴의 울혈, 퇴적암처럼 더께 얹고 나니
고독은 삶에 대한 경건한 수절이 더라며
그녀는 오연한 눈빛이던 거다.
어쩌면 그녀는 일억 년 전까지는 추억되는
무상의 시간들을 보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또 만권서보다 더한 것들을
세월 밖에까지 쌓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바다가
고래 떼처럼 몰려온다고 말한 것도 그녀다.
난 비 아니라도 온통 젖어 그만이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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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의 혀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이 입는 육체는
타는 듯이 취하는 향기와
터진 석류의 신음이 퉁기는 탄금

한 세계를 발사하는 치명의 눈빛과
붉은 입술의 이승저승
출렁이는 파도의 무한을
하루 더 춤추게 할 시간의 깊숙한 창날

차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음부에서
새어 나온 고유의 방언들이
처절하게 미끄러지는
모든 색택과 조형의 전위인 달항아리

막 따낸 수밀도를 베어 물며
달고 탄탄한 모든 것의 목록을 해독하는
미뢰, 에로스의 극히 사적인 혀는

뜨거운 왕국의 첫 글자
추문의 고요라면 더 뜨거울 왕국의 화두

승인하라, 시와 나비의 리듬
질정 없는 연주의 알레그로비바체
아편 먹은 듯 번지는 총천연색의 꽃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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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경배 

나는 가난해서 면서기의 권세도 없이
냉이, 패랭이, 감국, 바람꽃
그 여린 숨탄것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유는 꽃들에게 가서 물으라
다만 그 애젖함에 목이 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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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사람 

길가의 오락기에서 아무리 두들겨대도
한사코 튀어나오는 두더지 대가리처럼
한사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퇴행성 고독의 습관 같은 게 그를 홀로 세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우느냐고 하지 말아라
울 수라도 있다면 왜 기도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데에도 지쳐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게 없는 생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한다던 랭보여
중대장의 명령 하나에 인분을 먹은 병사들의
굴욕 같은 생도 이미 참았으니

다만 오그라지고 우그러지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도사리 같은 것으로
그를 아무도 눈여기지 않는 곳에 홀로 세우는
저주받은 고독의 습관이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 풍찬노숙의 나날을 누구에게 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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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을 위하여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로 흐르는
강물에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 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나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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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에 기대여 


강의 면목이라면 면면한 유수와 범람,
강물 따라 걷는 마음은 넘치고 또 흐르네.
보리숭어며 비오리 떼가 튀고
창졸간의 갸륵한 것들이 좋이 울어도
순간의 꽃보다는 이야기로 더 유장할 터,
금결은결 반짝이는가 했더니 금세
그리움의 파란으로 일렁이는 시간 아닌가.
한때는 한도 없이 파닥거렸던
강변 은백양 잎새와 첫사랑의 흑단머리는
바람의 갈래갈래로 흩어지고
오늘은 강가에 퍼지는 라일락 향기,
강섶을 일구는 고라니며 노인장과 함께
또 무엇, 그 누구로 흘러드는 구름 떼라니!
구름이 깊어지면 강물도 높아져서는
서러움 밖의 그 무엇이라도 소환할 듯한 모색,
서녘 놀이 비쳐 든 갈대밭 속의 연애 너머
썩지 않고 들끓는 고독의 항성으로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그런 유정의
경계 같은 것들을 오늘도 추문하는 것이랴.
흐르는 강에 차마 가닿지 못하고
사소한 마음 하나에도 수만 물비늘을 뒤채는,
지금은 결락한 꿈의 시간에 기대어
제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강의 명색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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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에 대하여 


용구산 아래 있는 나의 오래된 우거는
용과 거북이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사방이
단단한 침묵으로 둘러쳐 있다

침묵은 녹슨 함석대문에 붙어 있고
마당가에 비쭉비쭉 솟은 망촛대로 자라고
침묵은, 재선충병에 걸린 뜰의 반송으로 붉어지고
토방에 벗어 둔 검정고무신으로 암암하다

어느덧 내 몸조차 침묵으로 하나 됐다가
그중 몇 개쯤 파계하여 들고양이로 울다가
때론 용과 거북이가 재림하길 염불 하게도 하는
무자비하고 포악한 침묵이란 짐승은

송송 구멍이 뚫리는 외로움의 골다공증과
사괘가 마구 뒤틀리는 고독의 퇴행성관절염과
바람에 욱신거리는 그리움의 신경통을 앓는
앞집 폐가에 달라붙어 와지끈,
그 근골이 주저앉을 때까지
시간의 공적(空寂)에 대하여 더는 묻지도 않는다

침묵의 폐허를 차마 감추지 못하는 달빛은
이것이 무장무장 은산철벽을 치는 것이어서
용과 거북이의 뿔 자라는 소리 듣다 보면
나는 나일 것도 없다고 할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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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희고 둥근 세계 

나 힐끗 보았네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
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들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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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면함에 대하여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려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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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숫대 높이만큼 

네가 그리다 말고 간
달이 휘영청 밝아서는
댓 그림자 쓰윽 쓰윽
마당을 잘 쓸고 있다
백 리까지 확 트여서는
귀뚜라미 찌찌찌찌찌
너를 향해 타전을 하는데
아무 장애는 없다
바람이 한결 선선해져서
날개가 까슬까슬 잘 마른
씨르래기의 연주도
씨르릉 씨르릉 넘친다
텃밭의 수숫대 높이를 하곤
이 깊고 푸른 잔을 든다
나는 아직 견딜 만하다
시방 제 이름을 못 얻는
대숲 속의 저 새 울음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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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를 시청하다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 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 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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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에 대하여 

들어봐, 저 처서철의 나뭇잎이
저렇게 서걱대는 소리,
풀잎들이 스치는 소리,
시방 달빛은 휘영청하고
앞들의 수숫대는 마냥 일렁이는 소리

들어봐, 저 풀섶의 씨르래기며
귀뚜라미 울어 끓는 소리에
동구밖 느티나무의 잎새들
\바르르 떠는 소리,
그 옆 대숲 위에 부시럭부시럭
참새떼 뒤척이는 소리

외로운 이는 소리에 민감하나니
들어봐, 저기 저렇게
기차 오는 소리,
기적 소리를 들으며 달려와
기차는 또 저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가버리는 소리
그러면 그러면, 그때마다
그 기차 불빛 한 줄기에도 반짝반짝
온 목숨 꽃사래치다간
이제 무척 야위어버린, 저 간이역
코스모스들이 목 늘어나는 소리,
역사 위로는 툭, 툭,
오동잎 아득히 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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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성을 일별하다 

별 볼일 없는 일들 때문에
별 한번 보지 못하고 살다가
추석날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자리 사이
북극성, 당신을 일별 합니다.
늘 저의 일에 관심을 두시고
언제든지 맞아들일 채비를 마친 채
저를 내려다 보시는 당신의
恒心 아래서 저는 떠돌이였습니다.
아주 어릴 적, 제가 사랑하는 소녀와
늦도록 강둑에 앉아 애너벨 리를 읽고
아예 씨르래기 울음을 연주 삼아
당신을 애너벨 리로 명명했지요.
그 호명 이후 늘 당신은
제가 부자될만하면 가난케 하고
제가 날 것 같으면 어깨를 치시고
제가 연애할 양이면 눈멀게 하셔서
쌀싸라기 같은 그때 그 순결을
호젓이 돌아보게 했지요.
제가 헌 상자며 넝마 등을 가득 싣고
좌우로 낑낑대며 비탈길을 오르는
굽은 등허리의 리어카꾼 노인처럼
생을 낑낑대며 끌어대다 돌아와
이제 이렇게 당신께 고백합니다.
애초에 당신을 함께 호명했던 소녀마저
이젠 남의 여자가 된 지 오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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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마당에서 한나절 

하늘은 쪽빛이고 마당은 환하다.
햇병아리 몇 마리가 무언가를 콕콕 찍고
토방의 늙은 개가 그걸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세상 살며
바람에 꾸벅이는 제비꽃이나
처마 밑에 떨어진 참새 주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아진다. 담 너머 대숲의
고요 모르는 수런거림과
사립 옆 윤기 나는 감나무 잎의
반짝거림에, 한때는 목숨이라도 걸 듯
그리움과 노여움을 옹호하기도 했던 것이다.
먹이 모자라던 까치 지난겨울엔
개밥 그덩에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더니
그 까치 시방은 마당을 차고 오르며
흰 무늬 날개 활짝 펴서 대숲 위를 다닌다.
그 부신 꿈의 비상엔 언제나
차고 오를 마당과 몇 알의 밥알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는 시방 생의 어디쯤
어슬렁거리며 날개 짓 해보는 것인가.
마당은 환하고 불혹은 눈앞이다.
헛간의 녹슨 경운기와 담장 밑의 풀덤불이
세월을 가르치고, 장독대의 곰삭은 옹기들은
미륵불처럼 처연하다. 서러운 것들의
모든 가슴이 미륵불 되면 좋으련만
아직도 외양간의 부사리는 영각을 쓰며
마당을 한바탕 뒤흔드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 사랑을 부르는 소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마당 귀퉁이의 참배 꽃은 펄펄
져내리고, 나는 목이 메이는 것도 지쳐
물끄러미 생의 안마당을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우편배달부는 늘 늦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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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화 그 환한 자리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 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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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숭 깊어지는 사랑 

수수 꽃 다리 꽃이
바람에 우수수거릴 때마다
그 청량한 향기가
보이지 않는 사방의
별을 생생히 닦아 내느데요

수수 꽃 다리 꽃을
정 혼자에게 보내선
파혼을 통고했다는 한 여인은
저 꽃을 일러
젊은 날의 추억이라 했다지요

그런 서럽고 서느러운
그늘이 드리워져
수수 꽃 다리 꽃도 우리네 사랑도
아, 연자줏빛으로
웅숭깇어지는 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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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나무 그늘 아래 

느티나무 수만 이파리들이 손사래 치는
느티나무 그늘 소쇄한 정자에
애진 마음이 다 되어 앉아본 적이 있느냐.
물색 푸른 앞들은 가멸지고,
나는 오늘도 정자에 나와선
멍석몰이쯤 당한 삭신이라도
바람의 아홉새베에 씻고 씻어보는 것이다.
느티나무 그늘 암암할수록
그늘 밖의 세상은 아연 환해지는
느티나무 그늘에 너와라도 함께인 듯 앉아,
저 느티나무의 어처구니 둥치와
둥치에 새겨진 세월의 鱗片을 생각하면
오목가슴이 꽉 메여오기도 하는데,
나는 내 사소한 날의
우련 우련 치미는 서러움만
매미 떼의 곡지통에 실어보는 것이다.
이제는 찾는 이도 몇 안 되는 정자에
시방 몇몇의 고랑진 허드레 얼굴들,
그 흙빛 들수록 앞들은 점점 푸르러지는
느티나무 그늘 생생한 정자에서
어제는 하염없던 쑥국새 울음을 듣고
시방은 치자향 아득한 것도 맡아보는데,
딴엔 꽃과 새의 視聽 너머에
더 간절한 바도 있는 것이다.
가령 이 느티나무 둥치 부여안고
흰 달밤, 어느 여인이 목놓아 울고
이 느티나무 둥치 찍어대며
웬 봉두난발이 발분했던가 하는 것들인데,
너는 언젠가 추억되는 것의 아름다움
혹은 슬픔이라고 했던가. 나는
내친김에 실낱 줄기 못 끊는 저 냇물과
그 냇가의 새까만 벌때추니 떼며
겨울이면 마을의 그만그만한 집들과
나뭇가지 끝마다 열리는 별 떼랑
하냥 난장을 트던 것도 되새김하다간,
그 은성했던 육두문자와 파안대소와도
참 서느럽게는 등을 돌린 정자에 앉아
오늘은 다만 성성한 노동과
오늘은 다만 뜨거운 사랑과 휴식의
오늘의 생생한 나라를 묻고 묻는 것이다.
오늘도 간간 쑥국새 울음은 깃들어선
이렇게 두 눈 그렁그렁하게는
흰 구름 저편까지를 바라보게 하는데
그러면 저기, 저 生은 또 어쩌려고
뭉실뭉실 이는 수국화처럼
환한 그늘로 차오르고,
이쯤이면 나도 그만 애진 마음이 다 되어
부쩌지 못하는 걸 너도 알겠느냐.
그러다가도 상처투성이의 느티나무와
그 상처마다에서 끈덕지게는 뽑아내는
푸른 잎새를 헤다보면
그 잎새 하나로 默默靑靑 남은 일도
너무 서러워지지는 않겠다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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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간의 네 속삭임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무어라 무어라, 종일 속삭이는
저 봄비 아득한 숨결은 돌아와
이제 마악 옴짓거리는 살구나무의
어린 꽃망울엔 무슨 구슬이 엉기는지
와르르 무너지는 해동의 담 너머
앞들 메말라터진 보리밭엔
무슨 꿈들이 파릇파릇해지는지
고요하여라, 다만 천지가 속삭이며
서로를 한없이 달래는 소리뿐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그 오랜 지글거림도, 그 지글거림의
내 영혼 속 쓸쓸한 적막산천도
이제는 깨어나 봄비 머금는 시간,
동구밖 당산나무 둥치는
왜 그렇게 부르르 떨어대는지
거기 때까치는 젖어드는 날개를 접고
웬 생각에 골똘히 잠겼는지
나, 무엇을 차마 기다리지 않았지만
내가 그저 살아낸 모든 상처들이
저 봄비 융융한 숨결로 넘쳐나
十方이 촉촉이 젖어든다면
세상 모든 죽은 것들의 흙은
산 것들의 새싹들을 속속 틔우는지
아니 이 고요의 밀림 속, 무엇 하나
속삭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봄비는
내 생의 작은 뜰을 꽤는 적셔볼 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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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렁거림에 대하여 

너를 만나고 온 날은, 어쩌랴 마음에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것 가득 출렁거려서
바람 불어오는 강둑에 오래오래 서 있느니
잔 바람 한 자락에도 한없이 물살 치는 잎새처럼
네 숨결 한 올에 내 가슴별처럼 희게 부서지던
그 못다 한 시간들이 마냥 출렁거려서
내가 시방도 강변의 조약돌로 일렁이건 말건
내가 시방도 강둑에 패랭이꽃 총총 피우건 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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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에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 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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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정지 이 쓸쓸함의 저편 

한때의 푸르른 피를 잘 씻어낸

억새꽃 은발들이 잔광에 반짝인다.
한때의 무성한 살을 잘 비워낸
억새꽃 은발들이 바람에 쓸린다.
이때쯤 개울물 소리는 청천에 닿고
나는 묵정지 서 마지기, 할 말이 없다.
이 저녁까지 나날의 서러움을 잘 부린
머슴새가 시방도 쭉쭉쭉쭉 소를 몬다.
이 저녁까지 나날의 그리움을 잘 빛낸
머슴새가 시방도 그 누굴 호명한다.
이곳저곳 구절초가 속속 듣고
너는 못 뒤엎는 자리, 들을 귀가 없다.
바람은 또 우수수히 풀밭에서 인다.
풀들은 또 소슬하게 그만큼 시든다.
하여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먼가.
꽃도 새도 어둠으로 눕는 자리엔
두루 총총 별이 참 많이는 돋는다.
두루 총총 서리 쓴 들국빛으로 돋아선
너나 나나의 눈물의 사리를 닦는다.
그러면 타는 밭과 빠지는 수렁을 넘던
우리의 외진 사랑과 노래여, 안녕.
이 저녁 아득아득 저무는 길에서도
찔레 열매들 형형, 사상을 묻고
실베짱이 씨르래기 풀무치 한 떼는
시간 너머의 더 높은 꿈을 연주한다.
너와 난들 이 무명을 무얼로 점등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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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 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댓잎은 시퍼렇게 치솟아 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 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 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 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날같은 흰 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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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 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시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세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 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는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갓씨 고추씨 오이씨 죄다 뿌린다네
할매에겐 땅 한 뼘 없어도 걸어댕겨 보면
천지에 온통 오목조목 씨뿌릴 땅이어서
어느 누가 거두어 가든 상관 않고 뿌린다네
누가 됐든 흡족하게 묵으면 월매나 좋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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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백일홍 꽃 그늘에서 보낸 한철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노래한 시인은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고 적었네.
오늘 나는 목 백일홍 꽃그늘에서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고 적어도
나의 큰 죄과는 어쩔 수 없네, 늘 삶의 바깥에
숨은 음모가 있는 거라고 핑계 댔으니
불행은 내가 창조한 신이어서,
저 황홀한 아편 송이송이 같은 색들
아편 맛 같은 색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삼복염천의 호사를 어찌하랴.
회의하다니 몽상하다니, 고통은 여기 있고
우울이라니 동경이라니, 죽음은 내가 원했다.
새 애인을 만나 전 남자의 아이를 지우러 가는
여자가 걷는 길처럼
내가 걷는 길은 언제나 나의 형벌이었으니
삼복염천 개는 제발 목 달지 말고, 피비린내는
참수의 무리가 닥치기 전에
온통 색뿐이어서 색정뿐이어서
천지가 따로 없는 저 황홀로 터지며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 해도, 복날
개처럼 늘어진 환멸 때문에
마냥 긁어대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나는
내 비명의, 송이송이의, 목백일홍만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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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새 꽃 빛 서천에 놀이나 좀 비낄까 

알밤 다 쏟아버린 밤송이 같은
마음의 거처를 찾아
십일월의 억새 밭에 든다.
이 쓸쓸한 봉두 난발의 바람에서
내 어쩌려고 고향을 느끼는 건
내 안에 든 행려나 남루 때문일 터.
먼 데서 아주 먼 데서
내 안으로 속삭여오는 바람은
시퍼런 초록으로 뻗치던 억새 밭에
마른 울음이나 치고, 그 울음에
나도 뭔가 한없이 떨리는 게 있지만
내 몸의 새것들을 누더기로 만들고
나날의 새것들을 흙먼지로 만들고
비로소 눈이 보이는 나는
억새 속에 고개 떨군 귀신이 보인다.
어깨를 들썩이는 망나니를 쓸어댄다.
알밤 다 쏟아버린 밤송이 같은
마음의 거처에 누우면
훗날 거기 바람도 없이 억새도 없이
억새 꽃 빛 서천에 놀이나 좀 비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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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 꽃의 향기에 저승 새가 취하면 

고산의 석남화라 했지요.
네가 석남화 머리에 꽂고 죽으면
나도 석남화 머리에 꽂고 죽는소리에
너와 나 와가 함께 깨어난다고 했지요.
백두산 골짝 암벽에 피는 꽃,
노랑만병초라고도 하는데요.
그 향기가 하도나 좋아선, 네 오랜 체증도
내 밭은 정기도 새삼 새삼 씻는다는데요.
그것이 광대고원을 달리는 바람 향이거나
그것이 감사나운 강풍이 잠깐 비낀 날,
아청빛 하늘의 흰구름 향이거나
그것이 구름 저편에 아스라히 묻힌
시간 밖의 시간을 일깨우는 은하 향이어서
그래요, 석남화 향기 맡으면
묘음조(妙音鳥)라던가 그런 새가 울 것 같아요.
극락정토 설산에 살아서
너무도 춤 잘 추고 너무도 미음을 내어선
네가 병들고 내가 죽을지라도
왜 아니 싱싱하고 왜 아니 생생하도록
그렇게 그렇게 새가 울고 말겠지요.
그러면 석남화주, 내 마시고 너도 마시고
한 오십년 더 우는 거예요, 그 눈물로
꽃향기와 새 노래 듣는 꿈길을
너와 나와는 조금은 닦을 수가 있어서
두발부리 두억시니와 같은 세상의
서러운 사랑들 먼저 걷게 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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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곡

지루하고 지루한 망망대해라든가
부서지고 부서지는 파도 아닌 다른 것으로는
한 번도 존재해 본 적이 없는
선창의 작부 같은 어느 하룻날은,

금어기에 세워둔 배 밑에
제비가 새끼를 치는 바람에
아서라, 새끼가 어서 날아가길 기다리느라
칠월 열나흘부터 팔월 보름까지
오징어잡이 때,
풍어기 한 달을
출항하지 않은 선장의 마음을 몰래 읽어서는
나도 그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삶의 한 자락이라도 있다면

배 지나가자
순식간에 지워지는 뱃길 같은
세월의 길 없는 길을 묻느라
그 길에 그 많은 존재를 흘려버리곤

갈매기 바다 우에 울지 말어요,*
황혼의 해조곡 한 곡쯤은 몰래 부르랴?

* 이난영의 <해조곡> 첫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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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의 꿈

아름다움은 더렵혀지기 위해 존재하는가
막 날아오르려는 흰 비둘기의 꿈도
순백의 웨딩드레스에 만개한 꽃의 노래도
티끌 한 점 없는 아름다움일 때라야
제대로 더럽혀질 수 있다는 것인가
화사한 목련꽃은 이미 추하게 시들어가고
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자던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건각의 아들은
느닷없이, 오늘 일어서지 못한다
아름다움을 더렵힌 후에 오는 기쁨을 맛보려는
누군가의 지팡이에 의해 일격을 당한 듯,
아름다움과 꿈이 크면 클수록
더럽혀지는 것도 그만큼 커진다는 듯,
건각의 아들은 황망히, 오늘 일어서지 못한다
배설물로 가득한 도랑 위로 장미꽃을 던지는
사드의 초상을 그렸던 바타유처럼
고통이 나의 성격을 형성한 건 사실이다
고통 없이는 난 아무것도 아니란 것도 안다
하지만 꿈의 건각이 쌩째로 무너지는 것은
어느 고통에게 달려가 항의할 것인가
그 고통이 내 생의 것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꿈들이 하얗게 닫혀 버리는 이 봄날에
난 연두초록 번지는 잎, 어느 한 점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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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음계

수수밭 수숫잎들 바람에 스적일 뿐이었다. 하늘마
당엔 들어서 늦게 돌아온 어머니가 대숲 울타리 우물가
에서 쌀 씻는 소리를 내는 떼별이었다. 너를 기다리는 수
수밭 속에서 올려다본 하늘마당의 별들이 만들어 내는
음계는 점차, 네가 음악 시간에 다소곳 치던 실로폰 소
리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이내 연보라 수수꽃다림쯤이나
두드리면 꾀어날 향내를 마구 내었다.  너무 좋으면 슬픈
것도 좀 어리는 버릇이던가. 너무 좋아서, 괜히 어려서
부사리 뿔에 받혀 죽은 누이  생각에 눈물 알알 서걱거리
는 별빛의 강물로 젖는 동안, 나는 그만 네가 오는소리
를 듣지 못하고, 날 찾지 못해 낙심천만 돌아가는 너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으로 설레게 되면, 더
더욱 수수밭 수숫잎에 바람 쓸리면, 강변의 조약돌조차
반짝반짝 하늘마다으로 불려 가 죄다 별의 음향을 낸다
는 걸 너는 몰랐던 것, 그 소리에 들리면 어머니가 불러도 모른다는 것, 그날 마을 앞 강물로 별똥별 마구 쏟다
지던 사정을 새벽 젖은 강둑길을 타박일 때까지 나 역시 
종내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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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귀전(新餓鬼傳)

키르티무카, 영광의 얼굴이라는 이 괴물은
사실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은 아귀다, 그처럼
늘 허기져서 피골상접과 봉두난발을 일삼는 그는
오늘은 급기야 골수검사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배가 고프거든 너 자신을 먹으라는 말에
발부터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갔던 아귀처럼
처음에 그는 피부터 뽑았다, 거간꾼의 모사로
철없는 방송에서야 그는 헌혈왕에 뽑히기도 했지만
헌혈 이후 주는 빵과 우유의 그 환장할 맛,
아니 그보다는 국가적으로 피가 모자라는 요즘엔
그 피의 거래로 한 달 이상씩을 버티는 그다.
얼굴만 덩그렇게 남고서야, 삶이 무엇인지
이토록 극명하게 보여준 너를 예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내게 올 자격이 없다고 한 시바 신,
그의 자비를 입은 아귀처럼 왕성한 식욕을 위해
얼마 전에 남에게 신장 하나를 떼주어
자기의 자비를 스스로 완성하고 있는 그인데,
이번골수 거래까지 성공하고 나면 한재산 잡아서
다만 몇 년이라도 허기를 면해볼 참이다.
사실 남의 것을 훔친다거나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날이면 날마다 남을 딛는 일조차 못하여
회사라는 지옥에서 출문을 당한 그로서는
자기가 할 수 있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이
자기를 스스로 먹는 일뿐이라는 悟道가 있었다.
개미조차 남의 산 몸뚱이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
모든 숨탄것의 조건을 깨고 자기를 먹는다는게
사실 신의 자비를 입지 않고 어찌 가능한 일이랴.
그러고 보면 자기의 고독과 연애를 파먹고 사는
시인 또한 키르티무카, 영광의 얼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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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쿼터

작역하는 태양만 이글댄다지. 새벽녘의 추위는 얼음
장보다 강해 인간의 수사 밖에 있다지. 구절양장의 긴긴
협곡과 턱턱 막히는 높이의 沙丘(사구), 사구들을 피해 갈 수
도 없다나. 끝도 갓도 없는 모래와, 까마득 누리를 덮치
는 모래바람의 지옥은, 몇 억겁의 업장이랴. 숨 막힘과
갈증으로 요약되는 천리만리 엠티쿠터엔 아무도 오가지
않는다는 것, 아니 누구도 오갈 수 없다지. 자기 앞에 놓
인 생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확인코자 한, 한두 사람
만이 간난신고 통과했을 뿐, 하찮은 일에도 운명을 느
끼며, 반박할 수 없는 질문들을 또 끌어안고, 이 땅에서
얻고자 하는 것 단 하나도 얻을 수 없는 자들의 엠터쿼
터도 있다네. 그곳에 쏟아지는 별빛인들, 그 별빛 한 점
조차 눈에 담긴 힘든 세상 속의, 사람들 속의, 엠티쿼더
사막으로 사는 이들을 한번쯤 무어라 부를까? 난 종종
페터 한트케의 소설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는 하네.



_________   *48

광채
누님
대설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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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성숙
유서 
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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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첫사랑
개기월식
꽃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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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죄
날랜 사랑
너의 얼굴
숲의 묵언
------------------
달밤에 숨어 
세월의 여자 
에로스의 혀 
즐거운 경배 
--------------------
기도하는 사람 
눈물을 위하여 
시간에 기대어 
침묵에 대하여 
-----------------------
그 희고 둥근 세계 
면면함에 대하여 
수숫대 높이만큼 

고요를 시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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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대하여 
북극성을 일별 하다 
봄 마당에서 한나절 
수선화 그 환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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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숭 깊어지는 사랑 
정자나무 그늘 아래 
천지간의 네 속삭임 

출렁거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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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묵정지 이 쓸쓸함의 저편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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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백일홍 꽃그늘에서 보낸 한철 
억새 꽃 빛 서천에 놀이나 좀 비낄까 
이승 꽃의 향기에 저승 새가 취하면 
해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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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의 꿈
별의 음계
신아귀전
엠티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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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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