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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가 ~

김소월 시

# 김소월 시 

초혼 ㅣ 님의 노래 ㅣ 산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ㅣ 못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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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 덤불 ㅣ 동경하는 여인
먼 후일 ㅣ 개여울ㅣ 가을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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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디 ㅣ 고적한 날 ㅣ 님에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ㅣ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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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ㅣ엄숙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ㅣ접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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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ㅣ왕십리
팔베개 노래 ㅣ 풀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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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ㅣ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가는 길 ㅣ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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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려는 심사 ㅣ 가는 길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ㅣ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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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ㅣ 바다 ㅣ 찬 저녁
무심 ㅣ 우리 집 ㅣ 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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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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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 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잊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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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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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적적히
다만 밝은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 알 사람이 없겠습니다마는,
어두운 밤에 홀로이 누웠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 알 사람도 없겠습니다마는,
탓을 하자면 무엇이라 말할 수는 있겠습니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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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오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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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 덤불

산에 가시나무
가막덤불은
덤뿔 덤불 산마루로
벋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는 혼잣몸의
홑옷 자락은
하룻밤 눈물에는
젖기도 했소

산에는 가시나무
가막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벋어 올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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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여인

너의 붉고 부드러운
그 입술에 보다
너의 아름답고 깨끗한
그 혼에다
나는 뜨거운 키스를......
내 생명의 굳센 운율은
너의 조그마한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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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의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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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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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 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 놀이 잦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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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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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한 날

당신님의 편지를
받은 그 날로
서러운 풍설이 돌았습니다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하라는
그 말씀인 줄 압니다
흘려 쓰신 글씨나마
언문 글자로
눈물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흘리며,
마음 곱게 읽어달라는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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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 모를 딴 세상의 네 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들에 헤메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 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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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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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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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 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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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빛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받은 맘이여.
맘은 오히려 저리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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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밟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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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나라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 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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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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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라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상 마루에 걸려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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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베개 노래

김소월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되지요.

날 긇다 말아라
가장 님만 님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 붙이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 그늘엔
칠십 년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드라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룻밤
빌어 얻은 팔베개.

조선의 강산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 서도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 집 가문에
시집가서 사느냐.

영남의 진주(晋州)는
자라난 내 고향
부모 없는
고향이라우.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相思)의
거문고 베개라.

첫닭아 꼬끼요
목놓지 말아라
품속에 있던 님
길채비 차릴라.

두루두루 살펴도
금강 단발령 (金剛 斷髮嶺)
고갯길도 없는 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의 진주는
자라난 내 고향
돌아갈 고향은
우리 님의 팔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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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따기

우리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 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남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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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누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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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좀 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 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나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득어득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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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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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
만나려는 심사

저녁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없는데,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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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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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사람은
아주 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맘이
떠나지 못할 운에 떠난것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
+ 술

술은 물이외다, 물이 술이외다
술과 물은 사촌이이다. 한데,
물을 마시면 정신을 깨우치지만서도
술을 마시면  몸도 정신도 다 태웁니다

술은 부채이외다, 술은 풀무 외다
풀무는 바람개비외다, 바람개비는
바람과 도깨비의 우우름 자식이외다.
술은 부채요 풀무요 바람개비외다.

술 마시면 취케 하는 다정한 술,
좋은 일에도 풀무가 되고 얹짢은 일에도
매듭진 맘을 풀어 주는 시원스런 술,
나의 혈관 속에 있을 때에 술은 나외다.

되어 가는 일에 부채질 하고
안되어 가는 일에도 부채질합니다.
그대여, 그러면 우리 한잔 드세, 우리 이 일에
일이 되어 가도록만 마시니 괜찮을 걸쎄

술은 물이외다, 돈이외다.
술은 돈이외다, 술도 물도 돈이외다.
물도 쓰면 줄고 없어집니다
술을 마시면 돈을 마시는 게요, 물을 마시는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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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의 뻗은 가지에
전에 없이 흰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 하늘 아래서 평화롭건만

새들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써 오는지 종경 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일러라

보래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 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이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 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러운 머리카락들은
걸음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
+ 바다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아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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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저녁

퍼르스럿한 달은, 성황당의
군데군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널리웠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긔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 녹아 황토(黃土) 드러난 멧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 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 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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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시집와서 삼년
오는 봄은
거친 벌 난벌에 왔습니다

거친 벌 난벌에 피는 꽃은
졌다가도 피노라 이릅디다
소식 없이 기다란
이태 삼년

바로 가던 앞 강이 간 봄부터
구비 돌아 휘돌아 흐른다고
그러나 말 마소, 앞여울의 
물빛은 예대로 푸르렀소

시집와서 삼년
어느 때나
터진 개 개여울의 여울물은
거친 벌 난벌에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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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이바로
외따로 와 지나는 사람 없으니
밤 자고 가자 하며 나는 앉아라.

저 멀리, 하느편에
배는 떠나 나가는
노래 들리며

눈물은 
흘러나려라
스르르 내려 감는 눈에,

꿈에도 생시에도 눈에 선한 우리 집

또 저 산 넘어 넘어
구름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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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걸어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없구나

밤마다 닭 소리라 날이 첫시면
당신의 넋맞이로 나가볼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가리 차릴 때외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가면서 함께 하던 말씀은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죽기 전 또 못 잊을 말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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