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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마 ~

문정희 시 6

+

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
몸을 얽히어
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
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
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
이 몽매한 죄
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
마른 몸으로 귀가하여
도리깨질을 맞는다
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
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
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뒹군다
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딩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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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슬픔
끝내 입 다물고 떠나리
마지막 햇살에 떨고 있는
운명보다 더 무서운 이 살 이끌고

단 한 번의 자유를 위해
머리에 심은 뿔, 고목처럼 그대로 주저앉히고
보이지 않는 피의 거미줄에 걸린
흑인 오르폐처럼 떠나리
어쩔 수 없다
눈에서 떨어지는 누우런 불덩이
저 하늘 이것 하난
용납하시리
실은 이미 순하게 꿈에 들었고
삐걱삐걱 뼈로만 그저 걸어서
한 번 가면 다시는 오기 힘든 곳으로
떠나가는 소야!
여기 나는 어떤 모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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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挽歌)

지금 서울에는 비가 내린다
저 어두운 노래 속을 꿰어 다니는
한 방울의 짧은 죽음

낮설고 흉흉한 처마 밑에
시간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아
흰 이마를 적시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도
끝이 있어서 조금 후면

죽은 시간이 떼 지어 흐르는 소리로
사방은 흔들리고

내가 두고 간 만큼의 그림자를 벗으면
곧 날이 세겠지

신랑이여
너와 나눠 기잘 수 없는
단 한 방울의 죽음을
빛으로 뿌리기 위해

나는 지금
천둥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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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사막을 걸었다

흐르는 모래 위의
달빛에 감기어
끈끈한 비밀들이
몸 비비는 소리

더러는 하얀 빛을
지우지 못하여
지금 모든 뜰의
꽃잎들은 흔들리고 있다

내가 때 묻은 만큼
빛나는 손톱 끝에서
바람이 변하여
비가 내리고

벗어나지 못하는
슬픈 둘레

그 사이에 끼인
뜨거운 하늘을 이고
내가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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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떼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 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 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 가지고
빛으로 포효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올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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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지금까지는 무효다
이 침묵도 무효다

강요당한 침묵의 밧줄
아 아 세상에

봄조차도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없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다

무효다
이 봄은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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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1
나는 밤이면 몸뚱이만 남지

시아비는 내 손을 잘라가고
시어미는 내 눈을 도려가고
시누이는 내 말을 뺏아가고
남편은 내 날개를
그리고 또 누군가 내 머리를 가지고
달아나서
하나씩 더 붙이고 유령이 되지

깨소금 냄새 나는
몸뚱이 하나만 남아
나는 밤새 죽지

그리고 아침 되면 다시 떠올라
하루 유령이 내가 되지
누군지도 모르는
머리를 가져간 그 사람 때문이지

2
사람들은 왜 밤에 더욱 확실해지는가
나는 또 누워서 천 리를 가지
죽은 내 머리 위엔 금관을 씌우고
또 하나의 머리 위엔 날개도 달고
또 하나의 머리 위엔 가와집 짓고
또 하나의 머리 위엔 왕자가 오는 길도 보이게 하고
또 하나으이 머리 위엔 피리도 매달고
찬물도 떠놓고 뱀도 키우고

이렇게 머리는 천 리를 가고
물고기 뼈도 닿지 않는 수십 천 리의 천 리를 가고
밤이면 서러운 몸뚱이만 남지
몸뚱이만 벌겋게 남아 뒤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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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 해서
오해 말라

살肉은 무섭지만
그러나 
말하지 않는 눈은 더욱 무섭다

느닷없이 날아온 활촉에 맞아
뜨건 피로 쓰러지는
여름새 되어

저 방화를 일삼는 하늘 복판의
검은 제왕을 떠받든 채
죽는다 한들
우리의 눈이야 깊이 죽으랴

눈 속의 빛은 싹터서 아이 눈 속의 빛이 되고
그 빛이 아이의, 아이의
아이 눈 속의 빛이 되리니

상방 번쩍이는
빛이 이렇게
너를 끝까지 보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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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

촌장님 용서하셔요
쑥처럼 뻣세져서
산불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역신과 자고 있는 아내를 봐도
무심한 이 눈을
눈을 빼서 꽃씨처럼 종이에 싸서
한 십 년 후에 오는 봄에
뿌리려 함을 용서하셔요

어둠이 쌓이고 쌓여서
새벽을 만든다지요.
"불을 끄라! 불을 끄라!
눈에 켠 불을 끄라!
적이 온다, 중요한 시기다
이때 빠꼼대는 게 그 누구얏!"

촌장님
이때 속노래함을 용서하셔요
"절망을 부끄러워 마라
수많은 잎처럼
쌓이고 쌓여서
썩어 문드러져
호수 속의 노래 되어
졸졸 흐를지니"
아, 울다가 잡혀간 친구를
기다리는 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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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시 1

말로써 우리가 감동되던 시대는 갔다
우리들은 모두 어두움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이 되어
몸으로 울라
몸으로 울라
온몸으로 통곡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감동이다

봄이 오면
내 기다림과 부끄러움을 말하리라
새벽이 오면
나는 꿇어 앉아 기도하리라
손풍금 소리 같은 나이 어린 자유
눈멀고 힘 잃은
걸코 순백해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앞에
바람 따라 쏠려 다니던
죽은 말들의 서러움을
말이 다시 노래가 되고
노래는 흐르고 흘러서
아, 감동의 푸른 나무로 부활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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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내 허리를 휘감아 줄
사내는 없는가

저 야생의 히스크리프처럼 털이 세고
하나밖에 다른 것은 모르는 밤의

다시는 용납할 수 없는
아픔이 땅 위를 뒹굴고 있다

붉은 머리 풀어 헤치고
으르렁거리는

목 아프도록 징그러운
그리움이여

먼 바람 속에서
무덤이 나를 삼키려
달겨든다

죽은 에미의
밥상에서는 그릇이 저 혼자 깨지고

수천 번 쏟아지는
서슬 푸른 기침을 따라

밤새 비단벌레 같은 여자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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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4월에는
비로소 용서하고
가슴을 여는

날개의 몸 짓으로
가득하다

4월에는
어두운 골목에 빛을 뿌리고
침몰한 배에 못질을 치던

젊은 이마가 때리는
종소리로 가득하다

그 후
4월에는
기도처럼 하얀 내 가슴에

뜨겁게 진
그 남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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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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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보며

눈은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다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온다

여기 나기 전에
우리가 흔들리던 곳

빈 그대만이 걸려 있는
고향에서  온다

첫 살에 부서지는 그대 머리칼이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다

한  생애에 돌아오는 목소리이다

우리들의 호기심
우리들의 침묵이 닿지 않는 곳

그렇게 먼 곳에서
눈은 달려와
비로소 한 조각의 빛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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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행방

날을 수 없는 시간의 가지 위
눈멀고 말 못 하고

부호로만 울던 새
어디서 죽나

내 안에서 죽어
시 쓰는 저녁
불로 살아나고

허공 밖의 눈이 되어
아픔으로 서성이고

파도에 씻기고 씻겨서
함성으로 눕는 바다이더니

오늘은 썩은 나무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바람 속에서

생각다 생각다 못해
흰머리가 된
그 젊은 새들의
무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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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일기

비로소 우리들의 침묵이
거짓임을 알았다
매일 저녁 그대가 만취하여
돌아오는 이유도

왜 시가 암호처럼 어려워야 하며
신문은 조석 없이 휴지가 돼버리는가를

사랑하는 어머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애정은
이 어두움과 배고픔을 참는 일이 아니고
그대 품에 온몸으로 쓰러지는 일인가

식어버린 가슴들 부끄러이 깨워
바람 키우는 숲이 되는 일인가
단 두 개를 못 가져서
소중한 목숨

소처럼 굴레 쓰고서
그 목숨의 비밀을 실천할 수 없어
허리 부러진
슬픈 어머니

흐르고 흐르면 큰 강이 된다는
그 평범한 물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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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친구여
나는 시방 답장을 쓸 수가 없다

나라를 떠날 때에
나라 말도 함께 그곳에 두고 왔으므로

펄펄 살아 뛰는 말은
위험해서
골방에 자물쇠로 깊이 잠가두었고

이곳저곳 떠돌아
거품이 된 것들만
편리한 친구들에게 남겨 두었다

친구여
그래서 시방은 답장을 쓸 수가  없다

해 뜨고
새가 나는
이곳에서도

내 말은 모두 그곳에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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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야기

가을, 단풍은
어렵게 고민을 꺼내 놓는다

꽃처럼 잘 익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가지지 못하였다

꽃처럼 인정받지 못하여
풀잎 속에 숨거나
바스락거리며 거리를
배회하는 무력감

향기로 그대를 지켜주는
꽃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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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메시지

그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가벼워
당신을 위해 그 무엇도
해줄 수가 없는데
만 번을 생각해도
당신을 향해 질주하는 순한 열정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그대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옆에서 
뒤에서
있어주는 것 자체가
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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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란다원칙

체포된 자에게 묵비권을
진술한 것이 불리한 증거로 사용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미란다원칙

삶이 하강곡선을 그릴 때
일어설 수 없는 무력감으로 
울적할 때가 있습니다

울적함을 견디지 못해
타인을 가슴에 위로받을
씨앗을 심다 보면 사실과
다른 사실이 옮겨 다닌다

때때로 말은
담아둘수록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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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과 썰물

밀물에거서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메일을 열어보니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가다릴 거죠

썰물이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늦었지만
대답합니다
기달릴 수 없다고
그렇지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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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서

문득, 미열처럼 흐르는
바람을 따라가서

서해 바다
그 서럽고 아픈 일몰을 보았네

한 생애
잠시 타오르던
불꽃은 스러지고
주소도 모른 채
떠날 채비를 하듯
조용히 옷을 벗는 해안선을 보았네

아, 자연
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은
소슬히 잊는 일뿐

더운 호흡으로 밀려오던
눈과 파도와
비늘 같은 욕망을
잊는 일뿐이었네

잊는다는 일 하나만
보석으로 닦고 있다
떠나는 날
몸과 함께 땅에 묻는 일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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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은
고무줄인가 봅니다

희망을 가지면 커지고
절망을 하면 좁아집니다

사랑을 하면 늘어나고
미움을 가지면 줄어듭니다

생각에 따라 변하는
마음 고무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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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의 노래

왠일일까?
이 겨울
만나는 가슴마다 흔들어보면
술병처럼 맑고 뜨거운 물 목까지 차서
조금씩 분해하고
부끄러워하니

브랜디 빛 아름다운 광기를 숨기고
넘치는 유혹, 더운 음모
푸른 술병 속에 감쪽같이 숨기고
모두들 뒷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부딪치면 깨어지는 위험한 몸들
아프게 부딪치어
별을 떨구며
슬픔처럼 독한 술 목까지 채우고
동해 바다 포효를 가슴까지 채우고

입마다 쇠 마개 쓰고
입마다 쇠 마개 쓰고

겨울 거리 어디론가 실려서 간다

==========
+ 쉼표손잡이

반쯤 드신 후 쉬었다 드십시오.
쉼표손잡이라는 라벨을 첨부한
과자가 담긴 케이스에 적힌 문구다

쉼표는 지친 몸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이다

스피드를 고려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디지털시대
쉼표손잡이가 있는
이 과자를 구입할 때마다
숨 가쁘게 보낸 오늘 쉼표는
찍었는지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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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실에서

당신은 추울지 몰라도
에어컨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덮습니다

멀리 있는 당신은
더울지 몰라도
에어컨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은 시끄럽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전해져 오는 느낌이 다르고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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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갈수록

이집트 피라마드처럼
위로 갈수록
줄여야 하는 것은 욕심이다

포도송이처럼
위로 갈수록
늘려야 하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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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전속권

물건은 사고 팔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격
신뢰감
사랑
초상권
그리움
추억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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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교감

교정에 주인을 따라 나온
두 마리의 강아지
장난치며 걷다가 발로 턱을 고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쥐와 고양이라면
어려운 풍경일 것이다
서로 다른 점에 끌려 결혼에
성공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조되는 사람끼리 끌림은
거의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한다
정서적 교감은
만남 속에서 중요한 성립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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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에게

슬픔이 하늘같아도
표정하나 흐트러짐 없이
그 어떤 강한 불에도
적응해 구수한 보리차를 우려내는

그래서 
지상의 부정적인 것들은
너를 비켜가는 줄 알았다

뚜껑을 열고
내려다본 네 속이 소나기 내리는
깊은 밤인 줄 모르고

네 눈물에 키피를 타 마시며
행복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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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실수해도 상관없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인생이니까
실패해도 괜찮은 거야
다시 하면 되는 거니까

멈추거나 그만두지 않는 것
그게 더 소중하잖아

내 의견이 다른 사람과 달라도 괜찮아
정답은 없는 거잖아
법을 위반해도 어쩔 수 없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니까

어떤 시행착오도 괜찮은 거야
다양한 답이 있는 것
그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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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사람

체면의 외투를  입지 않고
전개된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당신
나를 감동케합니다
인연이라는 옷깃을 스친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댄
무더운 날
한줄기 시원한 바람

자존심의 옷깃을 세우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당신
나를 열광케합니다
내 생애 영감을 준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댄
내 최고의 사람
소나기 그친 후
뜨는 무지개 같은

===========
확인과 취소

휴지통 비우기를 클릭하면
모든 메일이 디스크에 삭제되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정말로 비우기를 하시겠습니까

확인 그리고 취소

확인 버튼으로
그대는 최우선적으로
무엇을 비우고 싶은가요

취소 버튼으로
그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간직하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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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서비스

현금자동인출기를 보면
신용카드로 현금을 빌려 쓸 때
누르는 현금  서비스가 있다

사무적인 현실에서
서비스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따듯한 냄새가 나서 참 좋다

생각해 보면 신용카드는
위급할 때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 위한
응급처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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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이 있어야

온도가 알맞은 봄과 가을만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여름은 너무 더워서 밉고
겨울은 너무 춥다고 투덜대며
마음에서 밀어냈다
숯불 같은 더위에
곱게 익은 수박을 먹으면서
얼게도 하고 익히기도 하는
인생에도 굴곡이 있어야
뜨거운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음을
밀어냈던 여름이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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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나는

그대에게 나는
좋은 담배가 되고 싶어
고운 그대 가슴에 안긴 채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다면
그대 고뇌와 슬픈 파편들
걷어낼 수 있다면
기쁘게
한 개피의 담배가 되고 싶어
예쁜 삶이
아픔이나 상처들 태워
그 안에 담긴 교훈의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라면
그대 지친 영혼의 오타를
채집하는 
한 개피의 담배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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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아침

막 시작하는
인생이란 하연 캔버스에
무얼 그릴까
누굴 초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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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사람

남의 일에 관여하는
감초 같은 사람보다 책과 친한
사람이 더 맘에 든다

우회적인 편법에 능한
두뇌 우수한 사람보다
인간적인 사람이 맘에 든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안정을
끼고 판단하는 사람보다
예외라는 파일을 만들어 놓는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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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낮추면

산길 가다
시선을 끄는 도라지꽃
흰색과 청색의 안성맞춤인
사랑스러운 자태에 멈춰 섰다

등을 낮추고
무릎을 낮추면
얼굴을 감싸는 청초한 향기
어느새
마음은 도라지 꽃밭이다

무릎을 낮춘다는 것은
눈빛을 받아들여
영혼을 포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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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비가 사격하듯 내린다
심신을 씻고 싶어서 걸었다

콩은 가스 불 위에서만 볶는 줄 알았다
우산 위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난다

음표는 악보에만 사는 줄 알았다
우산 위에서 멜로디가 흐른다

비 오는 날이면
논리적인 좌뇌는 출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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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면서

인생이란 산행을 하면서

미끄러지지 않고
뒹굴지 않고
붙잡비 않고
주저앉지 않으며
순탄하게 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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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지우개

연필은 지겹도록 쓴다
지우개는 힘들게 지운다

누가 더 행복할까

지워야 쓸 수 있는 연필
써야 지울 수 있는 지우개

미운 정도 많고
고운 정도 깊은 놀라운 사이

오랜 사랑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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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인 약속

나비가 꽃을 만나려 갈 때처럼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약속 날짜를 따로 정하지 않는다

즉흥적인 만남에는
아이쇼핑하면서
특가판매로 마음에서 든 옷을
구입했을 때의 기쁨이 있다

일정표에 메모해 두며
체크하지 않아 자유롭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이 없다

즉흥적인 약속
맨 얼굴인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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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위한 것

휴대폰을 충전하며
내 손안에 있다고
내 소유물인 줄 알고 있었다

받은 문자에 답을 보내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여
상대방 번호를 누르면서 깨달았다

마음의 평온을 집어가고
집중력을 갉아먹는 휴대폰
타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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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 속 연필이

필통 속은 사방이 벽이다
삶은 무료할 수밖에 없는
정형화된 답안지다

하지만 흰 종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때
창작할 때 나를 느껴

칼날에 몸이 짧아지고
목숨이 위험해도
비행을 꿈꿀 때
행복한 나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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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에서

가파른 길 오르내리다 삐끗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벽에 바짝 붙어 있는 카렌다

식상한 듯하면서도
신상품인듯 발설하고 픈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

나약할 때마다 두 손 모다
각오를 다짐하기도 했던 365일

한 권으로 된
전 과목 참고서처럼
문제와 답이 이 안에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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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꽃입니다

양귀비꽃 향기가 난다고 했을 때
그대는 안 좋은 꽃인데라고 했지요
신은 누구에게나
고혹적인 향기를 심어주지 않지요
길들여진 삶에서는
안전선 밖에서
경적을 울리는 추격하는 긴장
불안하고 무서운 방어가 있지 않고서
단속할 만큼 주체할 수 없는
품격 있는 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한번 알면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이름
그대는 결 고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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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다르게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저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얼굴을 갖고 있다
한 몸에는 많은 장기가 있으나
그 가능은 모두 다르다
얼굴과 장기는 다름을 대접받고
지켜지기에 눈부시다
다르게 증여받은 재능은 무시하고
공부가 절대적 최고라는 현실
다른 것을 모두 같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다름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선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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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로 맞이하면

지금 멈출 것 같지 않을 듯
비가 내리지만 잠시 후
맑고 화창한 날이 준비 중입니다

지금 벼랑 끝에 있는 듯
불안하지만 잠시 후
새순 같은 희망이 기다립니다

지금 인정해 주는 이가 없어
고독하지만 잠시 후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대기 중일 것입니다

모든 사건을 미소로 맞이하면
내일은 지금보다 더 
큰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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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발송하자

책을 주문하며
삼일에 주문한  책을
받을 수 있다

메일을 발송하면
그 내용에 맞는 답장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을 믿을 때
우주는 믿는 것을 발송해 주려고
힘쓴다

단, 명확성 없는 주문은 사절
육하원칙에 따라 간단명료하게
믿는 것만이 현실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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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와 핫초코

햄버기와 콜라는
환상처럼 단짝으로 습관처럼
생각하고 있다

겨울의 복판에는
폐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기와 핫초코를 주문해 보라

부드러운 단맛이 어우러진
생소한 맛이 굳은 혀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당연시 되는 것들에
물음표를 수시로 달 때
인생은 더욱 더 달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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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필요합니다

달리는 말은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수가 있어야 합니다

단독으로 설 수 없는 인생
연예인에게는 매니저가
운동선수에게는 코치가 필요합니다

조용한 일상에
태풍이 일어날 때
나만 볼 수 없는 내 모습

제대로 걷고 있는지
지적해 줄 당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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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등 뒤에 있다

학생은 등 뒤에 있는
책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사랑을 배운다

소지품 검사를 할 때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물건은
뒤로 감춘다

나무 뒤에는
생명을 빨아올리는 뿌리가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그대 등 뒤에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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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 쫓기는 소녀*

풀들은 푸들푸들 떨고만 있었다. 치마에서 꽃들이 일제히 튀
어나 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뛰어다녔다. 총도 소녀를 구해 주진
못했다. 햇빛은  사방으로 빠져나가고 소녀는 쪼였다. 오, 열쇠
열쇠, 땀방울들이 소리를 질렀다. 소녀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뚝! 떨어져 나무 끝에 빨갛게 매달려 버렸다. 사방에 흩어지는
깃털, 종이 울리고 긴 강이 흉흉한 걸음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파울 클레의 그림<새에게 쫓기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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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된다는 것은

처음이라는 말에는
놀라운 변화를 겪는 떨림이 있다
그 누군가에게
처음이 된다는 것은
가슴속 에너지로 삼을 수 있는
갓 짜서 담은 녹즙 같아서
싱싱하고 감미로운 느낌을 지배하는
장엄한 순간이 된다
첫 사랑
첫 마음
첫 느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서툴고
놀라운 변화에 허둥거리지만
그 이후에 만나게 되는
그 어떤 일보다 가슴 벅차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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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들은 까다로워

좋은 것들은 까다롭다

포장지 후면에 사망선고일이
기록되어 있는  식품들
상온에 놔두면 그 모습을
잃어버리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돌봄을 소홀히 하면
쉽게 시들해지는 화초
자주
'참 잘했어' 칭찬 도장을
찍어주기를 조르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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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사랑 하나

마늘을 싣고 온 날
차 안은 마늘냄새가 난다
네 개의 차문을 열어 털어보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냄새

바람은
가볍지 않은 것
강렬한 것은 지우지 못했다

만남이 짧다고 해서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긴 만남이라 하여 잊을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바람도 지울 수 없는 사랑 하나
간직하고 싶어다

____ * 57



만가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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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떼
선언
유령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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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
참회 시 1
폭풍우
4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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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눈을 보며
새의 행방
정월 일기
-------------
타국에서
단풍이야기
문자메시지
미란다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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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과 썰물
바다 앞에서
사람의 마음
술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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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손잡이
열람실에서
위로 갈수록
일시전속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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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교감
주전자에게
청소년에게
최고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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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과 취소
현금서비스
굴곡이 있어야
그대에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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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아침
맘에 드는 사람
무릎을 낮추면
비 오는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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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면서
연필과 지우개
즉흥적인 약속
타인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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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 속 연필이
한해의 끝에서
그대는 꽃입니다
다른 것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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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로 맞이하면
주문을 발송하자
햄버거와 핫초코
당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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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등 뒤에 있다
새에게 쫓기는 소녀
처음이 된다는 것은
좋은 것들은 까다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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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사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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