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 3 / 김경철
새벽부터
흐려진 하늘에서는
아직도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지만
일찌감치
찾아온 꽃샘추위가
마치
계절의 주인 인양
마새부리고
가끔
불어오는 갈바람에
붉은빛의 단풍잎이
이별을 고하듯
빈 몸의 나무만을 남기고
힘없이 떨어진다
이리저리 뒹굴다
하나둘 모인 낙엽들
헤어짐이 아쉬운지
마지막 체온을 전달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먼 여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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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사인
그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앉아
그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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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수잔
된서리 내린 우리 정원에
향기 자존심에 끝까지 버티던 국화도
파김치 되어 축 늘어졌다
모두가 떠나고 있구려
푸석한 나무토막에 앉아서
떠나는 그들과 무언의
작별을 고하는 설움에
저 멀리 노을빛에
내 그림자가
길고 애처롭구나
짧은 저녁노을 따라
으스스 추운 발길을
나도 한발씩 가고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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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인태
국화꽃잎 따서
소주에 동동 띄우고
애기 단풍잎 띄어
늦가을과 같이
마시게 친구야
높푸른 하늘아래
하얀갈대
흐드러지는 언덕의
혼자서 그리운 마음을
어디에 부칠곳 없어
눈물겹게 아리다
해지는 노을 넘어
늦가을이 사라지면
옷매무새 고쳐가면서
저 훗날의 전설으로
남겨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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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재덕
낙엽이 사락사락
고쟁이 벗는 소리
산 들녘 들쑤시던
갈대의 밀어 소리
단풍이 물들다가 만
가슴앓이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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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정택
서산에
지는 해는
노을을 뿌려놓고
단풍은
낙엽 되어
바람에 흩날리니
밤하늘
기러기떼는
서러움에 눈물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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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김지하
늦가을
잎새 떠난 뒤
아무 것도 남김 없고
내 마음 빈 하늘에
천둥소리만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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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도종환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나 살아야 할 이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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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배갑병
늦어
더 화려하다
왜
눈물이 날까
하여간
속리산 뒤켠
산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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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변용환
가랑잎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오후
시인은 생각 한다
하얀 사발에 불어터진 쌀알이 동동 떠있는 시큼한 동동주와
홀랑 벗고 하얀 밀가루 화장을 하고 누워 있는 뜨거운 파전을
이런 날은 춤을 추고 싶다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탈바가지 쓰고
무명천 바지저고리에 댓님까지 메고
풀쩍 휘청휘청 흐느적흐느적 얼쑤
비틀비틀 머슴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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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용혜원
떠나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손 끝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고
눈빛엔 차가움이 가득합니다
언제나 함께 하여 주고
사랑하여 줄 것만 같더니
훌훌 떠나 버리는 것입니까
봄, 여름날의
그토록 달콤한 사랑도
귓가에서 가슴으로
스며들던 고백도
모두가 다 연극입니까
이 가을이 지나 겨울
다시 고독함으로
홀로 남게하는 이는
미운 사람입니다
떠나버리고 말면 나도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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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1 / 윤순찬
어슴프레한 저녁
햇살 하나
나뭇잎에 깃들어
아이들과
아내와
어머니 아버지
햇살은
손 씻고 발 씻고
옷을 벗어
길고도
고단한 하루와
내일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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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2 / 윤순찬
멀미를 했다.
모든 것이 텅비어
남은 것이 별로 없는
그래서 바람마저 머물 곳이 없어
누구누구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대는 공중에
멀미를 했다.
어미 다 사라져
다이어트를 많이해서가 아니라
못 먹은 이디오피아 한 처녀처럼 깡말라
휘청휘청 걷고
그늘만 많은 햇살이 내리고 있다.
등 두드려줄 아무도 없는
가을에
가슴에 구멍을 숭숭 뚫리어
마음도 사라진 가슴 중에
멀미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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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윤춘순
온통,
불붙은 듯 타는 산허리
제 서러운 걸 모를 일이 있으리오
세월 따라
비껴간 깊은 상혼들
제 생 살타는 줄 왜 모르리오
입술 지그시 깨물며
한 철 사랑으로 단 풍물 들면
황홀한 절경 뉘 네 흉내나 내리오 만
내내 정 주고 사랑 퍼 날라
한바탕 꿈을 꾸듯 지펴버린 만산홍엽
불꽃처럼 사르다 가는 가을,
돌고 도는 세월 속
그 열정 못 잊어 산허리 탄다오
그 사랑 구릉을 넘나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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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원태연
십일 월 초, 내가 또 이상해진다. 노력했던
시간들로 적당해진 생활이 또. 이상해진다
네 시, 다섯 시, 여섯 시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내가 너무 쓸쓸해진다. 사람들을 마나며
나의 일들을 해가며 거리를 걸으며
내가 또 이상해지고 있다
"니가 좀 나를 마나 주었으면 했을 때가 있었다
이런 상황, 저런 상황 다 떠나서 나를 좀
만나주었으면 했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색했을 때 그래서
아무나 만나고 아무 곳이나 헤매이고 있을 때“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이년 넘게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가 오늘
과감히 잘라 버렸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른 머리였고 항상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기에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모습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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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 주응규
가슴에 불타오르는 사랑
느닷없이 들이닥친
시기와 질투의
스산한 바람에
거물거물 춤을 추는
애달픈 사랑이
눈물 속에 아른거려요
낯설게 다가선 초동(初冬)이
서릿발을 치며
갈기갈기 찢긴 가슴에
빛바래진 단풍 사랑을
추억해 놓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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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3 / 홍경훈
오늘 두 얼굴을 가진 산을 보았습니다.
전에 보았던 울울 창창 하던 그 산이 아니었습니다.
정수리는 울긋불긋 물들여 곱게 단장 하고
나무들은 살랑살랑 춤을 추며 걸쳤던
너울마저 하나 둘 떨쳐 버리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모조리 벗어 알몸이 된 나무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강압적으로 누가 시켰거나 스스로를
깨달음의 경지로 가는 의례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문제는 곧 닥쳐 올 엄동설한이지요
코앞에 선 이 겨울을 잘 건널 수 있을까 의문이고
그 많은 나무들이 혹여 고사라도 생긴다면
어쩌나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디 좋은 의견과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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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비 / 경규민
代 이을 씨받이를
순산했다는 마음에
주르르 흐르는 눈물
빛바랜 나뭇잎을 두드리며 흐느끼고 있다
검게 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리라
토실토실하고
때깔 좋고
탐스럽고
옹골찬 내 새끼들
벌써 겨울잠에 들었다
낙엽도 뒹굴면서
덩달아 소리 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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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비 / 오보영
널 보내는 아픔이 크다
조금은 더 누리게 하고 싶다만
함께 어우러져 지내고도 싶다만..
싫든 좋든
때가 되어 오는 님 맞을 준비로
당연히 할 바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러니 다소 서운하드라도
혹여 큰 원망은 하지 말고
미련 없이 떠나가거라
다시 만날 수 있는
내일
소망이 있으니까
기다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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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가을 / 강인호
까마득히 잊고 지낸 이들에게서
바람 한 자락 구름 한 조각으로
어느 날 문득 소식이 찾아온다
어떻게 살았느냐고 별 일 없냐고
조금 쓸쓸하다고 견딜 만 하다고
안부를 읽다말고 돌아다보면
저만치 가는 계절의 뒷모습
가을도 벌써 늦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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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가을 / 김윤진
분연히 일어나 걸어가길
더 높고 푸른 날을 위해
우거진 숲으로 향유하는
활기찬 젊음은
화려한 여름이 지난 후에도
온유하여 찬미 받을 수 있도록
숙연한 가을은
더욱 심오한 뜻으로
심장에 부딪히고
각인 된 겸양(謙讓)의 사슬은
분신처럼 늦은 계절에
자신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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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산길은 / 김덕성
늦가을 산길을 간다
갈바람에 실려 온 들국화 꽃향내
산언저리를 맴돌고
산길에는
산새 지절대고
어쩜 이리도 맑고 깨끗할까?
눈이 맑아진다
사람들 속에 무쳐 살다가
산을 등에 두르니
짓눌렸던 시름 사라지고
영혼이 맑아지며
안식처처럼
감싸주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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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잎 편지 / 김복수
비가 내린다
늦가을 비가 내린다
바람과 어울려 춤추듯 떠나지 못한 이파리마다
툭툭 건반을 두드리며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헤어져야 한다고
어디에선가 당신도 이 비를 보고 계시겠지요
행여 비에 젖은 낙엽을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랑으로 산 날 보다 기다림으로 산 날이 많았던 당신
외로운 사람들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서럽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안부 먼저 눈물을 전하는 가을비가
야속하단 말도 하지 마세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것을
하느님도 아시잖아요
이제 이 비 그치고 나면
첫눈이 내릴 거예요
그리고 긴 겨울 꿈도 꾸겠지요
우리 내년 봄에 다시 만나요
새 이파리 새 얼굴로 다시 만나요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눈물만 보이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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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나무 / 성백군
초록 잎은
폭우에도 여상한데
단풍잎은
실바람에도 떨어집니다
여름 내내 열심히 살았으면
가을에는 그 성과(成果)를 누릴 만한데
나무는 점점 가난해 지고
황금 들녘은 금세 비워집니다
나도 이제 나이 많아
아이들은 떠나가고
수입은 줄어들고
계급장마저 떼어내고 나니
기댈 곳이 없습니다
마음 비워야 하는데
허한 맘 달랠 길 없어
나뭇잎 떨구는 늦가을 나무를 바라보며
빈 마음 되어 봅니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나목이 되어 봅니다
=================
+ 늦가을 단상 / 강한익
산자락 곱게 물들인
갈바람
은빛 물결 억새꽃 품속을 헤집으며
아스라한 추억의 한 조각
가슴에 안긴다.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은
푸르름의 청춘을
앗아 가버리고
길섶에 나르는 낙엽이어라
가슴을 열고
고운 추억 그림 펼치니
국화 향기 그윽한 그리운 얼굴
상긋한 미소를 보낸다.
세월 따라 유유히 흐르는
높은 하늘 양털 구름
어느 곳을 향해 가는지
옷깃 여미고
함께 하여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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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단상 / 권경희
가을비 그친 들녘에
갈색빛 농염한 자태가
성숙한 여인의 뒷모습같이
차분하고 기품이 풍긴다
가을걷이로 비운 자리
참새떼 한 무리씩 푸드덕 거리고
억새꽃들이 갈무리하는 논둑길 따라
노랗게 깔아놓은 은행잎들
아낌없이 내어주는 비단결에
늦가을 단상이 한 폭의 그림같이 곱다
간이역 같은 이별 앞에 서니
내 삶의 계절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조금씩 깨달아지는 삶이
노을 지는 서산마루처럼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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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단상 / 박인걸
길 위에 깔린 낙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간다.
근접 불가하던 명성이
한낱 휴지조각처럼 짓밟힌다.
까마득한 정상에서
세상을 눈 아래에 두고
고고(孤高)한 자존심으로
의연히 지켜온 자리
험악하던 폭풍우와
아사직전의 긴 가뭄과
역겨운 벌레 떼의 습격에도
억척같이 견뎌온 세월
된 서리 내리던 날
헤어져 흩어지는 잎아
세력 잃은 사람 같아
마냥 불쌍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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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단상 / 임석순
화려한 시절, 흥겨운 시절
서로 푸르름을 찬양하는 모습이
세월의 무색함이 느껴지는 계절
추억으로 아름다웠던 지난날
가을날 단풍이 울긋불긋
서러워서 못 가는 마지막 잎새는
지금 후회하려네
나뒹구는 낙엽이 애처로워
내 발길을 돌려보내고 있네
밑거름이 땅으로 세상으로 돌아가니
버티고 버텨서 얻을 게 없으니
편안한 세상 될 거라 확신 들으니
이제,
세월의 흐름을 여유로운 기다림으로
찬란한 저녁노을 맞이하려 합니다.
=================
+ 늦가을 단풍 / 지동근
생생하게 푸르던 잎은
어느새 노랑빨강 색칠하고
이제는 하나둘 떨어져
바닥을 물들이며 뒹군다
조금 지나면 울굿불긋
색칠하던 잎은 하나 둘 떨어져
피어났던 나무 밑거름이 되겠지
화려 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앙상한 몸을 부끄러운 맘으로
세상에 보여 주며 우리에게
걱정 하지마 다시 올게
더 멋진 모습으로 찾아올게 하며
우리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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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문답 / 임영조
그동안 참 열심히들 살았다
나무들은 마지막 패를 던지듯
벌겋게 상기된 이파리를 떨군다
한평생 머리채를 휘둘리던 풀잎도
가을볕에 색바랜 몸을 뉘고 편하다
억척스레 살아온 저마다의 무게를
땅 위에 반납하는 가벼움이다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
억새꽃이 절레절레 제 생을 부정하듯
서릿발 쓴 체머리로 돌아갈 때다
잎 다 진 청미래 덤불 가시에 찢긴
저녁 해가 선혈이 낭자하게 저문다
잡목숲 질러 식은 조각달 물고 가는
저 부리 길고 뾰족한 홀아비 새는
거느리는 식솔이 몇이나 될까
내 빈 속이 문득 궤양처럼 쓰리다
어서 그만 내려가자, 더 늦기 전에
가랑잎같이 따뜻하게 잘 마른
어느 老시인의 손이라도 잡아볼까나
나는 아직 선뜻 내놓을게 없어서
죄송죄송 서둘러 하산하는데 어!
싸리나무 회초리가 어깨를 후려친다
짐스런 생각마저 털고 가라고?
산에 와 깨치는 늦가을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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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바람 / 경규민
곱게 물든 단풍잎에
바람의 심술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인내의 한계를 끝내 넘지 못하고
쓸쓸히 떨어져 쌓이는 낙엽들은
남아있는 가을에 가련(可憐)하게 묻혀간다.
겨울의 첨병(尖兵)인지 들때밑인지
바람은,
오가는 사람들의 원성은 아예 모른 척하고
겨울을 저만치 불러다 놓고는
삭이지 못한 분(憤)을
점점 크게 불려가고 있다
벌써 몸도 마음도 으스스해져
옷깃을 바짝 여민다.
오는 겨울이 걱정이다
* 들때밑 : 세력 있는 집의 오만하고 고약한 하인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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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소묘(素描) / 송문헌
빗방울을 털어 내며 땅거미를 들추고 휘적휘적
낡은 포장마차를 찾아 들던 그 사내,
한숨 같은 어깨 추스름으로 초점 잃은 시선
자주 길 건너 시외 버스 정류장을 바라본다
빈 소주병 속의 공허 만큼이나 길어지는 기다림은 무엇일까
가을비 세차게 포장마차를 양철지붕처럼 두드리며 간다
온기 없는 터미널 대합실, 불 꺼진 난로 옆에
오도마니 쪼그리고 거리에 나뒹구는 바람소리에도
움칠움칠, 오가는 이들을 두리번거리는 그 사내,
그는 또 무슨 기다림일까
이따끔 힐끗거리던 포장마차 속 사내
어쩌다 길 건너 마주치는 시선을 허공에 담배연기처럼 내던지고
자욱하게 흐려지는 어둠만큼이나 발밑에 패잔병처럼 젖어드는
담배꽁초들의 슬픈 반란을 본다.
=================
+ 늦가을 예찬 / 최예은
계절을 밀쳐낸 연겨자 빛 들녘은
황금물결로 갈무리하고
만추의 숨결은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바스락 거린다
젖은 낙엽들 사이로 고요하게
쉬었다 머무는 그림자는
온종일 속삭이듯 따뜻하게
햇살을 쏟아 부으며
세월의 시름도 철(撤)을 넘기고
탐스럽게 영근 씨앗을 떨구어 내는
축제 한마당 환송회는
바람기차로 떠날 준비로 분주하고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잎들은
홍단풍 예복을 갈아입을 때쯤이면
설렘을 안은 부푼 그리움은
눈부신 가을 뜨락에서
수런수런 반갑게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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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이슬 / 김덕성
아침이 차다
이슬은
햇살에 안겨 수정처럼 빛난다
별빛의 흔적인가
영롱한 광채가 찬란하고
방울마다 풀잎위에서
따르륵 구르며 재롱부리는 소리
맑고 아름답다
이슬은 사랑을 먹어서인가
너무 맑다
나도 저리 맑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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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청춘 / 김종철
갈바람이 불어오는 날
해 저무는 창 너머에서
기러기가 날아가는 날갯짓에
홍단풍이 슬퍼하며 떨어진다.
심연(深淵)에 묻어두었던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
철리길 떠나는 저 철새는
여름 내내 외로움으로 말라 버린
아픈 상흔(傷痕)으로
피를 토하는 울음소리 쏟아내며
서리 내린 창공(蒼空)을
찬바람 가르며 날아간다.
쓸쓸한 갈바람이 불어오는 날
다 타지 못하고 떨어져
길바닥에 힘없이 뒹구는
낙엽의 모습은
아무리 잡아도
덧없이 흘러만 가는
내 청춘(靑春) 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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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풍경 / 손병흥
오색단풍들로 화려했던 산자락
온통 황금물결로 넘쳐나던 들녘
비탈길사이로 떨어져버린 나뭇잎
이미 가을걷이 끝나버린 허허벌판
철따라 준 선물 늦가을 산골 풍경
일교차가 심해 찬바람 거세게 부는
마냥 스산하게 저물어만 가는 가을
빈 하늘 떼 지어 나르는 기르기 떼
하얀 억새의 쓸쓸함 바람에 나부끼는
더욱 그리워진 아쉬움 고즈넉한 정취
따스한 가을햇살이 고마워져가는 계절
바스라지고 메말라져만 가는 하늘아래
가을 색으로 떨어져버린 낙엽을 밟으며
청정한 바람 햇빛 가득 받으면서 자라난
머잖아 사라져버릴 야생화 바라보던 그날
쉬엄쉬엄 천천히 숲길을 걸어보는 산책길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 향연
자연과도 절묘한 조화 속에 불태우는 시절
=================
+ 늦가을 햇살 / 백설부
하루 분량의 기운을
다 쏟아부은
늦가을 햇살이
기력을 잃어갈 때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
푸드득 날아와
소나무 가지 위에
잠시 쉬어가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늘 위로가
되는 존재였기에
위로를 받는 일이
낯설기만 하지만
햇살 한 줌은
행복하게 부서지리라
-----------------------------
+ 늦은 가을 날 / 옥윤정
가을
하늘의 비췻빛이 구름을 흘러보내며
마음을 훔치는 순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아름다움
내려놓는 비움을 바라보며
닮고 싶은 마음
낙엽
갈 길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다니는
슬픈 그리움
안식처를 찾아보지만 오리무중
영혼이 자리 잡은 곳
흙으로 남는 행복
모두가 바라는 피안의 삶..
살며시 들어 마쉬는 공기 속에
쓸쓸함이 휘감아 버린다
-----------------------------
+ 늦은 가을비 / 김정남
마지막 가을비가 천둥과 함께
현란한 몸부림으로
겨울의 차가움 속으로 들어간다
기나긴 어둠을 뚫고
먼동 뜬 아침,
여정의 빚을 사모했지만
후드득 쏴아~
떨어지는 빗줄기의 무게,
그 소리에
수다스럽던 그들의 목소리들은
어디론지 다 사라져가 버리고
가을을 순간 잊은 듯
잠시 동안 추위에 한기를 느낀다
가슴 안에 다 담을수 없어
100년도 아닌 또 한 계절의 생명을
이어가는 가을의 짧은 시간이
이리저리 미끄러질 듯 찾아오는 바람 앞에
맥을 잃은 빗줄기의 눈빛으로
오늘 하루도 자연에 맞춰 살라고
내 안에 풍운 (風雲)을 던진다
-----------------------------
+ 지난 늦가을 / 홍해리
마른 꽃대궁에 걸린
아침의 맑은 눈물만큼이나
가슴속에 떠는 순순한 사랑
가을 바다 초록 대문을 열고 아아,
소리라도 칠 일이었지.
취한 번개 젖은 구름도 벗고
꽃밭에나 들었으면
햇살 밝은 바람기나
한밤 깊은 골짝 여울소리에
눈이라도 한 번 맞추어 볼 일이었지.
===================
+ 늦가을 가을비 / 김대식
가을 인가 싶어 단풍구경 할랬더니
어느새 단풍은 빛바랜 마른 잎
성큼 다가온 때 이른 겨울바람
떨고 있던 나뭇잎 우수수 떨어지네.
한 번씩 몰아오는 쓸쓸한 가을비에
내 시린 한기 속에 스며드는 빗방울
오래도록 자리 잡은 가슴속 고독이
쓸쓸한 낙엽처럼 가을비에 젖는다.
----------------------------------
+ 늦가을 여느 날 / 김창환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행운이 있을까
그런 희망을 꿈꾸며 산다
어딘가 아픔을 간직하고 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아프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도 아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으로 생각들이 바뀌어간다
삶에 묻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게 하던 수족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울타리가 되어 열심이던
자신을 돌아보던 여느 날
인생 반환점을 훨씬 넘어버렸음을 안다
젊음의 흔적이
내 외모 어디에도 없고
공허한 가슴속에 흐느끼는 젊음을 보듬고 있다
그 젊음을 달래려
핑크 빛 메모지를 힘주어 하늘에 끼워보는
그 이슬 맺힌 눈동자 얼마 동안 초롱초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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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단상 / 김덕성
화려했던 모든 것 떠나고
그림자만 남은 한적한 늦가을 날
문득 떠오르는 상념
수고한 자가 마시는 물 한잔이
더 단 맛이 나고
밤이 지나야
아침 햇살이 더 밝게 보인다
꽃향기에 찾아 반기는 벌떼들은
좋아라 다시 부를 사랑의 노래 부르고
은은하게 들리는 속삭임은
포근한 임의 숨결
반가운 임을 만나
눈시울을 적시는 이 기쁨은
살아 있기에 얻은 귀한 행복이기에
한 날 한 날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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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상념 / 공석진
밤사이 비바람 몰아치더니
하늘이 뿌연 부유물을 걷어내고
예쁜 미소를 보냅니다
키 높은 구름이 바쁘게 흘러가고
길가 코스모스는 목 아프게
구름을 좇아갑니다
어느새 내 마음도 님에게로 향하고
그렇게 가을은 종종걸음으로
산 중턱을 넘어섭니다
호수알 눈동자
해맑은 미소
보석같은 님의 목소리가 너무 그리워
뼈마디 삭이는 추억으로
입술 깨물며 조촘조촘
늦가을의 상념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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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서정 / 김덕성
닿을 듯
파란 고운 살결
안기고 싶은 만큼 설레는 가슴
사랑일까
어찌할 수 없이
그 하늘을 지붕 삼고
비옥한 땅 대지에
내 평화로운 쉼터를 삼는다
울창하고 청청한 숲엔
산소를 제조해
네 심장에 마음껏 공급해
생기가 중천하고
은색 갈대 춤추는 늦가을
고달팠던 세월
돌이켜보면
희비가 얽힌 인생 무대
비록 석양빛이 드리웠지만
내일을 노래하며
더 멋진 인생으로
꽃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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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서정 / 정찬열
만추 절경 우거진 곳
설렘으로 선운사를 찾는다.
옷을 벗은 은행나무
쓸쓸한 가지 사이로 베푸는 햇빛
단풍나무 붉게 부끄러움 머금었다.
만산홍엽보다
찬란한 인파가 모여들고
선운사 사찰에 단풍은
땡그랑 종소리에 맞추어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진 전경
곱게 빚어진
단풍나무 아래엔
여운을 담으려는 카메라
떨어진 찰나에 낙엽을 담아내려는
가을을 넘보는 그들은 좋은가 보다.
낙엽은 귀찮다 해도
한사코
몰려드는 세월 찾는 여행객
몽환적인 분위기가 좋아서일까
목탁 소리 세월을 잉태할 때에
시냇물 돌 위에도
홀연히 낙화하는 시월의 잎사귀
우리네 인생도
언제인가 떨어져야 할 낙엽
상념의 회심곡처럼 처량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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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이야기 / 김덕성
그리움은 가을
가을은 누군가 그리워지는 계절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며
하늘빛 마음을 담은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가을 풀벌레 소리
감미로운 음악소리 귀를 세우고
명상에 취하고 싶다
가을 외로움을 지우고 그녀와
사랑의 등불을 밝혀 놓고 밤새토록
늦가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늦가을에 흠뻑 젖으며
떠나지 못하게 사랑의 품안에 안겨
포근한 늦가을 정취에
푹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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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회심곡 / 조현석
가느다랗고 여린 늦가을 햇빛 아래
어스름 내리기 전 하늘 끝에
초점 흐린 시선을 두고
전동 휠체어에 앉은 귀머거리 할머니
그 곁에 구부정하게 선 늙수그레한 아들
듣는지 마는지
쉬지 않고 중얼중얼 똑같은 이야기
― 나이 들기 전 재웠어야 할 바람이야, 바람의 꼬리는 계속 자라는 것이야,
빨리 끊었어야 해,
이리 뼛속까지 구멍 숭숭 나고 바람까지 들어 밤마다 눈 뜨고 잉잉거리는 걸
갑자기 더 흐리게 풀어지는 햇빛
붉디붉어지는 구름 한 점
서녘 산 끝에 걸리고
두 사람 곁 스쳐가는
천 년 전의 바람
귀 밑을 스쳐갈 때
어디선가 들리는
목탁소리에 얹혀진 회심곡
할머니 붉어진 눈에 눈물 떨어지고
― 나이 들기 전 재웠어야 할 거인데 바람의 꼬리는 꼬리를 물고 무는 게야,
지금도 늦지 않아 빨리 끊어, 이리 뼛속 구멍에 숭숭 들고나는 바람,
그 마음은 밤에도 자지 않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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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밤의 향수 / 김덕성
저무는 가을
깊어가는 고즈넉한 밤
향수에 젖는다
이도 병일까
예약이나 한 것처럼
고향으로 떠난다
그녀도 떠나가고 아무도 없는
지금은 쓸어져 가는
낡은 빈 집뿐
왜 이리 되었을까
어머님의 품안처럼 따뜻하고
정이 넉넉히 흐르던
고향이었는데
갔다가 끝내 가슴앓이로 돌아오면서도
그래도 가고 싶은 고향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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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비오는 밤 / 김문
어쩐지, 쓸쓸한 마음에
그날 그때의 낭만을 떠올려 주는
사색의 흐름
기러기 낙서한 자리에
그려지는 님의 얼굴
희미한 듯, 역연한 듯 알쏭달쏭
푸름이 퇴색한 자리에
핏빛 아픔이 넘친다
깊게 팬 골마다 이랑마다
저린 듯, 시린 듯
어디선가
내리는 빗속에서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는 그대
아서라, 만삭이면 비워내야 하지 않던가
추적추적 사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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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낙엽은 지고 / 남낙현
찬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늦가을 낙엽은 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다 떨군 나무는
1년 동안 가꾸어온
삶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구나.
이리 저리
발 밑에 구르는 낙엽은
누군가 이승에 벗어놓고 간
햇살 한 줌
그리움 한 줌
슬픔 한 줌
추억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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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단풍 앞에서 / 장광규
새싹이 돋는 봄은 희망의 불씨였고
여름은 찜통더위로 힘을 보탰다
웃음으로 찾아오는 햇빛은 친구가 되고
노래하며 흐르는 물은 보약이었고
바람은 시원스레 불어 지칠 줄 몰랐다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해 갈 때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고운 빛깔에 반해 감탄하지만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매력도 있다
그 느낌 속에는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청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타는 듯 붉게 물든 나뭇잎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이지만
이젠 자연스러운 이별을 위해
부드러운 몸짓으로 움직인다
변함없이 그랬듯이
아름답게 오는 것도
아름답게 가는 것도
가을이 주는 선물이며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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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오후의 단상 / 신창홍
하늘이 내려와 머물던 지평선 끝자락엔
식어가는 화로에 지워지는 화톳불 같이
먼 산등성에 걸린 구름 뒤로
단풍 빛 반사된 미지근한 석양이 걸리고
땅거미 숨 가쁜 숲 속 나무 그늘엔
점점 진하게 자리잡는 어둠이 다가오고
쫓겨난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이
두려운 신음으로 소리 내어 떨고 있다.
가을은 잊었던 기억들을 다시 흔들어 놓지만,
또 하나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그대는
따스한 눈빛 하나 남겨둔 체
이제는 흐릿한 모습마저도 지워지고,
어설픈 치기(稚氣)에 무거운 마음만큼
그리움 간절한 자리엔 낙엽만 쌓이는데
행여 하는 마음에 떠날 수 없어
이 가을 끝자락에 머물고 있네
그리고 가을이 떠나는 자리
겨울 입김에 차갑게 멀어질 기억과
서서히 잿빛으로 묻혀질 소중한 조각들
가을은 늘 독감처럼 마음을 여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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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감나무 아래서 / 김영준
삶의 감이 잡히지 않는 날
감나무 아래 선다
감나무 가지에 눈을 올리면 알 수 있을까
그런 기분으로
늦가을 햇살의 따뜻함도 잠시 젖혀 둔다
비워가면서 채워간다는 홍시 두어 개
그러나 점점 점액질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물인 듯 흘러내려 묵묵히
하강하는 몸짓들 보면
하향하여 묽은 똥이 되어가는 몸짓들 만나면
실은 채워가면서 비워가는 홍시임을 알겠다
그래, 저렇게 소진하는 방법도 있음을
단단하게 익었다가 묽게 물이 되어 흐르고
끝내 거름이 되어가는 일도 있음을
그 몸 하나로 조용히 보이고 있다
늦가을 햇살이
늙은 감나무에 닿아 마음 고즈넉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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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에 서글픈 것들 / 조남명
추수 끝난 텅 빈 들녘
멀리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이 심하게도 파란데
이따금씩 휘돌아 오는 찬바람
뵈는 것마다 서글프지 않은 게 없다
벼는 거둬가고 논바닥에 깔아진 볏짚
일찍 벤 벼 포기에 돋은 철없는 새싹
작신 두들겨 맞고 빈 껍질만 묶여있는 깻단들이 그렇고
논 둑 밑에 햇볕을 의지한 어린 들풀들의 떨림
뚝방 길섶에서 오가는 이를 건드려보는 빛바랜 억새꽃
캐가고 버려진 고구마 넝쿨
뽑아간 무우 배추 구멍자국들
누런 호박을 안고 무서리에 죽어가는 덩굴이 그렇다
햇살에 나약히 반짝이는 들 도랑의 은빛물결
풀 섶 작은 나무에 매달린 빈 새집
내년 봄쯤이나 찾아올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아가 된 흐느끼는 논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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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잎, 바람과 춤을 / 강민경
늦가을 바람에
나무는 나뭇잎의 손을 놓습니다
나뭇잎도 떠날 때를 알고 망설이지 않습니다
나뭇잎과 나무 사이를 맴돌던 바람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
출렁출렁 떨어지는
나뭇잎 붙안고 스텝을 고릅니다
누구라도 같이 춤을 추면 친구요, 파트너라고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알 듯 모를 듯 마음 터 온
우물물 같은 사랑으로 휘돌아 감기는
나뭇잎과 바람의 마지막 댄스
화려하게,
우아하게
서로를 확인하며
나뭇잎, 바람 따라 출렁입니다
무게와 두께를 극복하고
경쾌한 스텝, 골목길 누비어 갑니다
홀로 왔다
홀로 떠나는 인생길과는 다른 길
무람없이* 저물어 갑니다
*(친한 사이나 어른에게) 스스럼없고 버릇이 없다.
예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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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늦가을에 내린 저녁비 / 정세훈
진정 떠났는가.
그리운 목소리
끝잎새 떨군
갈참나무 가지에 매어놓고
떠나는 그 마음
삼베 옷섶에 알뜰히 싸 안고
사뿐히 떠났는가.
하얀 먼지 일으키면
붙잡지 못하는 이 마음
안개처럼 묻혀 버릴까 보아
해몰이 찬바람에
우짖는 갈잎마다
파리한 입술 부벼대며,
눈언저리 속삭임으로
절절한 가슴 후벼파던
아픔 주고 떠났는가.
발병난 세월인 듯,
봄날에 씨앗 뿌리고
가을걷이 못다 한
내 마음밭에
발꿈치 부르트며 달고온
청옥의 하늘을 놓고 떠났는가.
널따란 하늘에
물빠진 외로운 구름 한점
행여, 그대의 하얀 혼백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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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 마경덕
가을나무들 일 년 소득을 계산한다
분수대 옆 은행나무 봉지에 주워 담은 은행알을 세고 빨간 장갑으로 한 밑천 챙긴 단풍나무는 비가 잦아 재고가 많다고 엄살이다 바늘쌈지를 차고앉은 그늘 귀퉁이 소나무 채머리를 흔드는데 아무 데나 바늘 좀 흘리지 말아요 눈을 흘기는 쥐똥나무 송이송이 쥐똥열매를 헤아린다 어디론가 팩스를 전송하는 플라타너스는 새 발자국 탁본으로 소득공제가 늘었다 까치부부는 토지세가 올랐다고 깍깍깍 미루나무에게 항의 중인데 벤치에는 무표정한 얼굴 셋, 말없는 지팡이 둘, 그 사이 흘린 비둘기 울음 한 보따리, 바람이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을나무들 수런수런 연말정산을 서두른다 해거름에 공원을 찾아든 떠돌이 사내만 신문지를 덮고 벤치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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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 강경화
서리내린 저 밭의 배추잎 끝에서
이제 나는 가을 하늘을 볼 테다.
추위가 몰려 오면 흙벽에
제 눈만한 창문을 내고
울며 울리는 사람들.
날 부르는 뜨거운 눈물이 안 보일지라도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
삽날이 밀려와
내 집 밑둥을 자르고
밤마다 흙더미 사이로 별이 보이면
내 사랑은 흐르는 한 줄기 강물
가을 빛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잘 있거라. 누런 들판아, 탱자나무야
속삭이는 낙엽소리와 연기 내음도 두고
캄캄한 땅 속에서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
_______ * 59
늦가을 3 / 김경철
늦가을 / 김사인
늦가을 / 김수잔
늦가을 / 김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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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 김재덕
늦가을 / 김정택
늦가을 / 김지하
늦가을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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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 배갑병
늦가을 / 변용환
늦가을 / 용혜원
늦가을 1 / 윤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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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2 / 윤순찬
늦가을 / 윤춘순
늦가을 / 원태연
늦가을 / 주응규
----------------------
늦가을 3 / 홍경훈
늦가을 비 / 경규민
늦가을 비 / 오보영
늦은 가을 / 강인호
------------------------
늦은 가을 / 김윤진
가을 산길은 / 김덕성
나뭇잎 편지 / 김복수
늦가을 나무 / 성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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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단상 / 강한익
늦가을 단상 / 권경희
늦가을 단상 / 박인걸
늦가을 단상 / 임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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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단풍 / 지동근
늦가을 문답 / 임영조
늦가을 바람 / 경규민
늦가을 소묘 / 송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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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예찬 / 최예은
늦가을 이슬 / 김덕성
늦가을 청춘 / 김종철
늦가을 풍경 / 손병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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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햇살 / 백설부
늦은 가을 날 / 옥윤정
늦은 가을비 / 김정남
지난 늦가을 / 홍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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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가을비 / 김대식
늦가을 여느 날 / 김창환
늦가을의 단상 / 김덕성
늦가을의 상념 / 공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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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서정 / 김덕성
늦가을의 서정 / 정찬열
늦가을 이야기 / 김덕성
늦가을 회심곡 / 조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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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밤의 향수 / 김덕성
늦가을, 비오는 밤 / 김문
늦가을 낙엽은 지고 / 남낙현
늦가을 단풍 앞에서 / 장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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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오후의 단상 / 신창홍
늦가을 감나무 아래서 / 김영준
늦가을에 서글픈 것들 / 조남명
늦가을 잎, 바람과 춤을 /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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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늦가을에 내린 저녁비 / 정세훈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 마경덕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 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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