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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아 ~

오규원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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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속에 산소와 수소가
나란히 걸어가고
원자들이
타협적인 눈을 굴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강철 속에
5억 5천만 년 전에 죽은
삼엽충의 발바닥과
대장간의 망치에서 떨어진
오물이
정열적인 포옹을 하고 있다.
그 옆에
결론이 놀고 앉아 보고 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린
강철이 떨고 있다.
살과 살 사이에 뼈와 뼈 사이에
찬 바람이 불고 때  아닌 눈보라가
오관의 뜰에 핀 꽃줄기를 비틀고 있다.
쓰러진 것들이 모두 달려와
질문의 창을 두드려도
거부의 근엄한 표정은, 오 육감을
하나씩 거두어들이고 있다.

수술과 암술이 떠나고 꽃잎과 꽃받침이 떠나고
꽃밭이 떠나고
마지막엔 풀이 흔드는 작별의 손이 보이고
인사도 없이 골목이 떠나고 길이 서 있다.
산소와 수소 사이에 호올로
삼엽충의 발바닥과 오물 사이에서 호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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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관절염을 앓는
늙은 감나무 가지 사이로
엉큼한
서너 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드문드문 누워서
햇빛을 쬐는 무덤에서
김해 김씨의 족보와
창세기 제1장 제2절이
걸어 나오고

먼지 속에 묻어버린
발자국이
매일 풀밭에서 벌어지는
신의 음모에 참석자
기웃둥 기웃둥
가고 있다.

길이 끝난 곳에
산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오, 시간이 외그루 나무처럼 서서
지나가는 사람의
모자를
차례로 벗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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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B

1
당신에게 외면당한 현실의
뒤뜰 구석에는
신의 왼쪽 발
뒤꿈치가 적발된다.
분실한 잠이
몇 송이 라일락꽃이
적발되고
지붕 밑 서까래에서
낡은 돌쩌귀가 적발된다.

당신의 책상 서랍에는
우편요금에게 미안한 얼굴을 하고
봉투가 앉아 있다.
천사가 먹다 남긴
추억의 빵이 몇 조각.
그 옆에
새벽 2시의
음침한 불빛이 들어 있다.

오오 묻지는 말게
그게 뭐냐고

2
시간의 육신이 부서지고 있다.
들쥐들이 갉아 먹은 뜰이
조금씩 간격을 두고
분쟁을 제기하는 나무들이
어둠에 구멍을 뚫고 있다.

신경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오른쪽과 왼쪽에서
버려진 나의 깊은 우물 속을
내려가는
빈 두레박 소리가 빠져나오고
발작국이 큼직큼직한 악몽이
등뼈를 타고 넘어오고 있다.

3
오오 묻지는 말게
그게 뭐나고
수은주 속으로 창백한
바람이 의자 밑에서
쓰러진 시간의 뼈다귀를
추리고 있다.
백지들이
마른 감정의 밑바닥을 핥고
낱말의 궁색한 표정을
창밖의 풍경이 노려보고

내장에 드러누운
불길한 환각을 반출하는 정맥의
발소리가
문지방을 밟고
말갛게 내부를 닦아낸 유리창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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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바람이 불고 긴 그 이튿날
뜰에 나간 나는
감나무의 그림자가 한 꺼풀 벗겨진 걸
발견했다
돌아서는 순간
뜰이 약간 기울어진 걸
발견했다.

뜰 위에는
부러진 아침 어깨뼈의 일부.
부러진 하느님 어깨뼈의 일부.

대문을 열고 출근하는 나의 말에
골목에 찢어져 뒹굴던
산의 외투가 한 자락 걸렸다.
이침을 픽픽 웃는
엊저녁 광대뼈의 표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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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실험
  ㅡ別章

투명한 심상의 바다 속에 사는 낱말은
외로운 몇 사람이 늘 서 있는 그 배경만큼
조용히 사색의 귀를 열고  있다.
나의 가복이 유모차를 끌고
한낮의 거리에서 소외疎外를 밀 동안
낱말의 지친 바람을
가만가만 풀잎 위에 안아 올린다.
환각의 땅 위에는 눈 내리는 겨울방학의
포근한 안정감이 쌓이고
비둘기의 날개가 구름처럼 흐르고
가끔 이유도 두근거리고.
투명한 심상의 바다 속에서는
오늘 저녁에라도 깨어날 몇  사람의 인기척.
낱말은 외로운 그 몇  사람처럼
아직 날지 못하는 새를 기르며
단절한 시간을 한 장씩 넘기고 있다.
공간에 의자를 내놓고 책을 읽으며
때때로 어린 새의 질량을 느끼며
아, 떨리지 않는 건강한 손으로
소멸한 하루의 일정을 거두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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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웃는 집

나뭇가지를 타고
이웃집으로 도주해버린
시간의 신발이
발을 떠나서
거주하는 뜰을

이혼 승낙서를 앞에 놓고
어깨를 나란히한
두 송이 꽃이
웃으며 보고 있었다
곡괭이를 빠져나온 長木 자루가
바보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담 밖을 기웃거리다가
되돌아 들어가곤 하는
그 길에는

집의 도주를 돕는 잠을 자는
사방에
난폭한 벽의 고집이
대못을 꽝 꽝 박아놓고
뒤로 물러서서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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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물과 김씨

김 씨의 웃음은 맹물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환쟁이 친구 녀석의 화폭에는
맹물이 고이지 않고
상수도를 빠져나온 물이
번쩍 
하고 마주친 전등 밑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튿날 방문했을 때
아틀리에에는
나요! 나요! 나요!
손을 든 일만 개의 웃음 사이에
우두커니 선 그의 턱까지
일만 개의 웃음과 웃음을 꿰맨
가붕의 바늘구멍으로 쏟아진 물이
다리를 뻗고 누워 있었다
김씨의 웃음은 그 위에 떠도는
한 송이 꽃같이
바람에 안겨 있었다

그때부터 김 씨의 집에 가도
나는 웃지 않았다
김씨의 집에는
개머루덩굴 하나가
빈 들의 하얀 배경을 갉으며
파란 터널을 만들고
두 쪽으로 깨어진 유리처럼
차츰 파괴되어 가는 하늘을
맹물이 비추고 있었다

얼마 후 그를 만났을 때
녀석도 웃지 않았다
그의 화폭에는
죽음이 뜰에 발가락을 내놓은
갈참나무 한 그루가
햇빛에 산산조각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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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계절

잠 못 이룬 새벽 2시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조그만 집의
조그만 방의 새벽 2시쯤
그때마다
집 옆의 계곡이 밤을 견디며
쿨룩 쿨룩 기침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고
몇 년 만에 下釜한 나에게
당신은 말했다.
나는 그때 당신의 눈이
내 오장을 훑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당신은 담담한 얼굴로
무서운 사실을 얘기하고,
고층 건물의 모진 옆구리에 걸려
기울어진 하늘이나
어딘가 쓸쓸한 도시의 창문들의
어깨를 매일 보는 나지만,
절망이란 말이 쉽지
어디 발에 차이는 돌멩이 같은가.

그리고 매일
바람에 흔들리며 부르르 떨고 있는
나뭇잎의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과연 몇 사람이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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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사건

피곤한 인질의 잠이
소집당하고 있다
탐욕의 어둠 허위의 어둠이
오늘 하루를 이끌고 온 당신의 엉큼한 협상의 눈이
소집당하고 있다
거리에 깔린 불안을 다리로 질질 끌며 이
아름다운 밤의 식탁에 초대되고 있다

주인의 손에는, 완벽한 同意의
빛을 반짝이는 탈색된 표정으로 눈 감고 있는 한 자루의 칼
그 옆에는, 편안히 누워서
안정감을 뒤적거려 보며 해결을 기다리는 접시
밤마다 빠지지 않는, 식탁의 의자와
장롱과 방바닥 방바닥 밑의 그림자

눈을 반쯤 감은 어제의 죽음이
끌려오고
오늘의 거리를 구경한 나뭇잎의 신경이
공포의 그 순간이 끌려오고
주인의 손에서 칼이
식탁과 의자와 장롱과 방바닥이
방바닥 밑의 그림자가 천천히 눈을 뜨고

24시간 1,440분 86,400초가 차례로
검토되고 있다
86,400초의 관계가, 살을 내놓고
옷을 벗는다 그리고 과거가 소집당하고 있다
독립할 수 없었던 미래가, 이 순진한
미래가 체포되어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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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사건

안경 밖으로 뿌리를 죽죽 뻗어나간
나무들이
서산에서
한쪽 다리를 헛짚고 넘어진 노을 속에
허둥거리고 있다.
키가 큰 산오리나무의 두 귀가
불타고 있다.

시간의 둔탁한 대문을
소란스럽게 열고 들어선
밤이
으스름과 부딪쳐
기둥을 끌어안고
누우런 신발 밑에서
향긋한 보리 냄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골목에서
작년과 재작년의 죽음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만나고
그해 죽은 사람의
헛기침 소리 하나가
느닷없이
행인의 뒷덜미를 후려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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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와 사과

한 사내가 슬그머니 사과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무도 없는
응접실의 접시 위  사과가 어슬렁어슬렁 거닐고 대낮의 욕
정이 전신으로 내리 박히어 벌겋게 독이 오른 맨살 밑의 캄
캄한 공간에서 씨방이 분주하게 삽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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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의 마을

      *
마을의 끝에 가면
풀밭 속에
마을의 발이 보인다.
주저앉은 마을의
바짓가랑이 속의
공동과
하얀 한쪽 발이 보인다.
 
      *
나무들이 육체를 떠나
내 손 위에 오른다.
딱따구리들이 일제히
허공을 쪼고 있었다.
딱 딱 딱
깨어지는 하늘 사이로
보이는
뼈가 단단히 여문
대문의 일부.

     *
몇 개의 손가락으로
굳어진 가옥들.
피가 통하지 않는 손톱은
남이
잘라도 아프지 않다.
손톱 밑의 어둠
손톱  밑의 시공
오, 손톱 밑의 천국
그 속에 빠져 뒹구는
유리구슬 하나.

     *
풀 밑에 풀들이 웃을
벗고 놀고 있다.
싱싱한 육체 위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무수히 점프하고 있다.
아ㅡ 아ㅡ 아ㅡ
불타는 음성 속에
뜰의 육체가, 잡목이 불타고
타고 남은 육체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햇빛과 햇빛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미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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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의 주소

1
그 마을의 주소는 햇빛 속이다
바람뿐인 빈 들을 부둥켜안고
허우적거리다가
사지가 비틀린 햇빛의 통증이
길마다 널려 있는
논밭 사이다
반쯤 타다가 남은 옷을 걸치고
나무들이 멍청이 서서
눈만 떴다 감았다 하는
언덕에서
뜨거운 이마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소름 끼치는, 소름 끼치는 울음을 우는
햇빛 속이다

2
행정구역이 개편된
그 마을의 주소는 허공 중이다
목마른 잎사귀들의 잔기침 소리로
종일 어수선한 하늘 속이다
갈 곳 없는 목소리들은 나뭇가지에
모여 앉아
편애의 그물을 짜고
그 위에서 나른한 잠을 즐기던 유령들이
시나브로 떨어져 죽는
편입된 하늘의 일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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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땅 언덕 위

1
죽은 꽃들을 한 아름 안고
문 앞까지 와서
숙연해지는 들판.
그 언덕 위에
건장한 남자들이 휘두른
두 팔에
잘려진 채
그대로 남아 있는
목책.

홀아비로 늙은 삼식이의
초가집
뜰이
풀잎 위에 떠 있다.
드문드문 떨어져
나직하게

오보에를 부는 나무들이
요즘도 살고 있는 골짜기로
올해 들어 첫 번째로
하늘의 일부가 열리고
종종종......
고전적으로 내리는 비.

그때 10년 만에
부스스 눈을 뜨고
한 발로 파도를 누르는 산.
그때 10년 만에
처음으로 잠드는 바다.

2
언덕 위
비극의 내 생기.
나의 과거를
부르는 놈은
숲에서 뛰어나온
나체의 산이다.
옆집 창문으로 들어온
산돼지다.
뜰의 나무 잎 뒤에서
방의 벽지  뒤에서
노려보는 놈은
꽃이 될 비극이다.

글쎄, 당신은 모른다니까
내가 무슨 노래를 하는지.
글쎄, 이빨 사이에 끼인
죽은 바다는 빼냈다니까.

3
건넛마을의 김 씨가 찾아왔다
김 씨를 만나면
그의 살 속 여윈 뼈가 보인다.
얼굴의 광대뼈가
빌딩의 사각창보다
외로운 각도다.
김 씨가 오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가 있는 곳은 여름
여름 속의 양철집.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상처를 입은
바람.
그가 오면 햇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햇빛 속에 사는 나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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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의 나무들

1
나의 음성들이 외롭게 나의 외곽에 떨어지는
따스한 겨울날.
골격뿐인 서쪽 숲의 나무들이
환각에 젖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있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너도밤나무도 모르게
동쪽과 서쪽 사이에 이론이 생기고
어쩌다가 잠 깬 시간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했다.
심심한 바람은 공간에 먼지를 쌓고
17세기 외투를 입은 산비둘기는
그해의 마지막 획득처럼
차이콥스키 교향곡 몇 소절을 울었다.

2
순례를 마친 나무들이
가만히 지층으로 뿌리를 뻗는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오고
山幕에 잠든 목신이 기침을 한다.
관목 숲에서 확대경을 끼고
밤의 배경을 뒤지는 달빛.
마을은
자물쇠를 튼튼하게 채우고
후방의 스산한 가장무도회에 떠났다.
단수로 남은 가복家僕들을 
흔드는, 흔드는 등피,
태아들은 혼례가를 부르며 밤마다 숲으로 간다.


=====2>
대낮

환상의 마을에서
살해된 낱말이
내장을 드러낸 채
대낮에
광화문 네거리에 누워 있다.

초조한 눈빛을 굴리는
약속이
불타는 西市의 거리를 지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그 위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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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월에 신은 남쪽
물결을 타고 온다.
봄에 일할 家僕들을
양 허리에 끼고
해변의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의 서류를 갖춘다.
결재가 날 동안
나무들은 예산을 끝내고
들은 목책을 헐고
부드러운 바람은 방목한다.
아, 배태의  순간은
뜰 위에 방학이 내려와 노닥거리는
학동의 마을이다.
신이 웃고 있는 곳에
심상이 간지러운 보슬비는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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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날마다 아침은
구름 아래로 깔리는
삼월의 뜰에서 서 있곤 했다.
밤새 앓던 심한 편두통을
잠시 잊고
시중에 나와
가등처럼 잠깐 떨며 가는
사방을 
전송하곤 했다.
버스는 붐비고 출근은 서둘러도
몇 사람은 좀 더 당황하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고
환상의 문이 되고, 빗장이 되고.....
졸던 바다가 깨어날 동안
산속의 너도밤나무처럼
귀를 세우고 서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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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밤

갈참나무 떡갈나무 물오리나무
상수리나무 잎사귀들이
두 손으로
움켜쥔 어둠이
닳아빠진 말발굽 소리를 내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서해에서
맨발로 달려온
허기 찬 한 사내가
닳아빠진 말발굽 소리를
먹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으으으
신경이 떨리는 소리에
달이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지고
지층에서 얘기하던
소극적인 사람들의 말소리가
밤의 한쪽에
바늘 한 한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보이기 싫은
세계의 눈물이 한 방울
뚜욱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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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곡

조용히 걸으면서
바람이
나뭇잎을 희롱하는 모습을 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지나간 뒤
정적 속에 박혀 있는
나뭇잎을 본다.

나뭇잎은 꼼짝도 않고
주변의
풍경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걷는다.
나뭇잎이 다시 흔들리고
풍경이
뒤로 물려서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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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등나무 잎 사이의 바람이 일어나
혼자
아침 산책을 하고 있다.
온몸운동을 하며
잠 깬 숲의 나무들과
자욱한 안개로 밀고 있다.
브라질에 이민 간 친구의
적적한 서너 마디의 안부도
잡풀 속에서 말없이 일어서고
물빛보다 연하게
리듬을 퉁기는 먼 나라의 아침.
도마 위에
감각이 신선한 야채의 이미지가 놓인다.
현관에서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기웃거리고
방구석의 휴지들이 부스럭거리고
깊은 잠 속에 다시 한번
잠들어 닿는,
잠 깨지 않는 마을의 강이
몸을 뒤채며 돌아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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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季의 시

빗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지금
네가 남긴 한 짝의 신발에
안개가 괸다.
눈을 감고 기억을 밀며
안개가 괸다.
나는 젖은 사방.
나는 오로지 기간에 기대어
따끔씩 상실과 획득 그 사이
뚜욱 뚜욱 떨어지는 빗방울의
중량을 받는다.
구속에서 가능했던 너의
자유의 땅, 가운데서 나는 있다.
그곳을 덮은 우거진 숲인 나,
가지 끝에 미명을 사르던
잎새들의 통합을 조용히 받는다.
붉디붉은 입술로 햇살의
投情을 빨던 꽃나무들이
하나의 기호로 무르익은 것
던져진 육신을 받는다.
계절은 지난날 치다꺼리던
그 시간들을 석방했다.

잃어버린 의미 속에서 混性을
그냥 웃어버린 일월이 덮친다.
스물네 개의 허이연 이빨이 열린다.
빗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비 젖은 둘레에서 한갓 사실로 돌아온
생명의 무게를 나는 주워든다.
아니 너의 한 짝 신발을 든다.
한 짝 신발에 괸 강우량
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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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덩글

사랑하는 것들의 눈뜨는
소리와
사랑하는 것들의 눈 감는
소리
사이로 뻗어 있는
싱싱한 포도 덩굴.

마른 미류목 잎들이
풀, 돌멩이. 토끼똥.....
이런 이름들과
가볍게 내통하는 길 옆에

우리의 귀를 간지럽히는
것들의 말소리와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의
눈 사이로
뻗어 있는
싱싱한 덩굴을 흔드는 포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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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상실험

1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의 모자다.
늘 방황하는 기사
아이반호의
꿈 많은 말발굽쇠다.
닳아빠진 인식의
길가
망명정부의 청사처럼
텅 빈
상상, 언어는
가끔 울리는
퇴직한 외교관댁의
초인종이다.

2
빈 하늘에 걸려
클래식하게
서걱서걱하는 겨울.
음과 절이 뚝뚝 끊어진
시간을
아이들은
공처럼 굴린다.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 않는 전차다.
추상의 
위험한 가지에서
흔들리는, 흔들리는 사랑의
방울 소리다.

3
언어는, 의식의
먼 강변에서
출렁이는 물결 소리는
차츰 확대되는
공간이다.
출렁이는 만큼 설레는,
설레는 강물이다.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광장에는 나무들이
외롭기 알맞게 떨어져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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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나그네

지난겨울도 나의 발은
발가락 사이 그 차가운 겨울을
딛고 있었다.
아무 데서나
심장을 놓고
기웃둥, 기웃둥 소멸을
딛고 있었다.

그 곁에서
계절은 귀로를 덮고 있었다.
모음을 분분히 싸고도는
인식의 나무들이
그냥
서서 하루를 이고 있었다.

지난겨울도 이번 겨울과
동일했다.
겨울을 밟고 선 내 곁에서
동일했다.
마음 할 수 없는 사랑이여, 사랑....
내외들의 사랑을 울고 있는 비둘기
따스한 날을 쪼고 있는 곁에서
동일했다.

모든 나는 왜 이유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웃둥, 기웃둥 하며
나는 획득을 딛고
발은 소멸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축복.
떨어진 것은 恨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일월이여.
모두 떨어져 덤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 나가고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 나가고.

서서 작별을 지지하는 발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바람을 흔들며 선 고목 밑
죽은 언어들이 히죽히죽 하얗게 웃고 있는
겨울을,
첨탑에서 안식일을 우는 종이
얼어서 얼어서 들려오는
겨울을.

이번 겨울도 나의 발은
기웃둥, 기웃둥 소멸을 딛고
일월이 부서지는 소리
그  밑 누군가가 무게를 받들고....

-------------------
몇 개의 현상

1. 빛

1
떨어지는 순간
빛은
하얀 공간에
꽃병도 없이 어딘가 꽂힌
꽃이 된다.
낱말도 없는
문장에
꽂힌
한 송이의
꽃이 된다.
고층의 건물이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중풍에 걸린
개를 타고 돌아다니는
어느
삭막한 나라에는
신의
손에서 풀려 나오는 순간
빚은
미친 듯이 확확 타는
꽃이 된다.

2
그는
알 수 없는 종교가 되어
공중에
빛나고 있다.
그는
변신하여
떨어진다.
땅 위에서
반짝이는 사람의 눈과 눈 속에
조용히 쉬며
빛나고 있다
알 수 없는 낱말과 눈짓이
출렁거리고 있다.

2. 환상의 땅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 뜰의
달콤한 구석에서
언어들이
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들 중의
몇몇은
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 죽고
나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도
뚜욱 뚜욱
언어들이 죽는다.
건강한 언어의
아이들은
어미의 둥지에서
알을 까고,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에
새가 되어
내려와 쉰다.
의식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쉰다.

------------------
사랑이야기

유리처럼 새벽에 깨끗이 부서지는
밤, 그 밤의
깨어지는 소리 속의 쟁한 메아리와
무엄하게
사어들의 기침 소리를 캐내던 사내가
신에게 적발되어 신국의
말뚝에 매여 있네

마을의 판자벽을 울리며
들판에 깔린 가을의 羊毛를 차례로
벗겨가는 소리.
그 소리를 남몰래 쥐었다가
하늘을 한 꺼풀 벗기는 소리에
돌돌 말려간 여자가
공중에서
구름과 구름 사이에
끼여 있네
그 사이를 오르내리는
몇 개의 길이
굽은 허리를 펴며 투덜거리네
생목들의 잎은 거울이라서
잘 부서진단 말이야

===========
인식의 마을

인식의 마을은 회오리바람이더라 흔들리는 언어들이더라
무장한 나무들이더라
공장에선 석탄들이 결사적이더라
인식의 마을은 겨울이더라 강설이더라
바람이 동상에 걸린 가지를 자르더라
싸늘한 싸늘한 적설기더라 밤이더라

-------------------
주인의 얼굴

독신을 즐기는 쌍문들 종점. 독신을 즐기는 주인의 하숙
집 귀를 사정없이 자른 인물은  옆집 아가씨의 구두에 차인
돌멩이다. 어린애들이 휘두르는 장난감 칼에 두 동강이 난
전쟁이다.

매일 종점의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몰고 있는 주인, 그
를 영원히 외출시킨 인물은 꽃집 속의 장미다. 혼자
살다 어제 죽은 뒷산 인동초 한 그루다.

주인이 없는 방 벽에서 흔들리는 옷가지. 주인이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앉은 불빛. 주인이 없는 방 앞에서 돌아서는
바람, 오, 주인이 없는 방 안에서 사는 죽은 주인의 얼굴.

-----------------------------
루빈스타인의 초상화

명동 뒷골목에서 1권에 일금 70원을 주고 사온 낡은 『새
티데이. 리뷰』지의 루빈스타인 초상화가 나의 생계를 굴려
보고 있다. 주먹 쥐고 실력을 발휘한 무수한 시간의 흔적 그
여유만만한 주름살 위에 출렁출렁 넘치는 웃음이 글쎄 넌
모른다니까 왜 백지 위에서 나의 현실을 멋대로 이저리 굴
리는지 습관처럼 명동 뒷골목서 나는 오늘 또한 싸구려로
남들의 생애를 훔치지만 글쎄 넌 모른다니까그래 70원의 배
경을 점검하는 루빈스타인 초상화가 오 내일은 나의 전 생
활조차 도둑질해 가고 남은 나는 빈손으로 앉아 있을 것을




________*30
분명한 사건
===1>

들판
현황 B
그 이튿날
------------
현상실험
꽃이 웃는 집
맹물과 김 씨
무서운 계절
---------------
무서운 사건
분명한 사건
사내와 사과
육체의 마을
---------------
그 마을의 주소
정든 땅 언덕 위
서쪽 숲의 나무들

====2>
대낮
삼월
아침
맑은 밤
----------
즉흥곡
서쪽 마을
우계의 시
포도 덩굴
------------
현상실험
겨울 나그네
몇 개의 현상
사랑이야기
--------------
인식의 마을
주인의 얼굴
루빈스타인의 초상화



_________
오규원 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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