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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A4 용지에다
아라비아 숫자 3을 거푸 쓰니
백지는 그만 하늘이 도디어
새 한쌍이 날아가고 있다
앞서 날고 뒤를 따르는 저 삼삼한 사이가
성급하고 조급해 보여 아무래도 미심쩍다
옳거니, 저 하늘밑 어느 마을에서도, 얼크리 설크리져
사람들은 옥시글옥시글 살아가고, 그 틈바귀에 끼이고
치여 어린 사랑도 아우당 다우당, 애간장 졸이고 달이던
성춘향과 이몽룡이 필시 있었겠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왜 없었을라.
그들 중 한 커풀이 살아서 감행한 무모한 탈출만큼
오랜만에 날씨 한번 쾌청하다
3월 3일 맑은 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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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
가시나무는 제 몸의 가시가 싫었다
뽑아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가시나무이고자 했다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드디어 기어코 해냈다
가시나무만의 빛깔과 모양과 향기의 꽃을
그러나 다들 장미라고 불러버렸다
그리고는 잘라서 꽃병에 꽂아 놓고 코를 벌름거린다
내가 나를 결정할 수 없는 여기를 세상이라고 한다
태어나보니 딸이라고 했다
죽었다 살아나도 딸이 아닐 수 없어
최대한 딸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며느리가 되고 말았다
산 사람보다는 귀신들과 더 자주 밤새우는
제삿상만 책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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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궤양
산 능선 산자락마다 고개마다
꽃대궐 차린 위동 胃洞, 고향마을 간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더불어 꽃잔치판이다
골짜기와 옹뎅이 냇물에도 꽃잎 떨어져 낭자하다
술독이 괴어오르듯 술국이 끓어 넘치듯
봄 축제가 한창이다
속앓이건 가슴앓이건, 평생을 싸운 전쟁은 누구와의
싸움이었을까, 억눌러 외면당한 진정한 '나'들은, 나보다
더 강하고 더 질긴 적敵으로 돌변하여, 완벽하게 무장한
게릴라가 되어서, 작은 기습으로 점령지를 넓혀가며, 어
떤 신무기도 비웃는다 약올린다
더 맵게 더 짜게 더 시게 더 쓰게
더 쓰려라 더 따가워라 더 아파라
내시경이 보여주는 위동의 점령군
결국은 이길 것이다
나는 나를 이기는 그들 편인 까닭으로
내 위선과 허위가 이룩해놓은
나의 가장 큰 업적들인 까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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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건 착각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별 바른 베란다에 도둑이 든 줄 몰랐다
건조대 앞뒤로 하늘거리던 하늬바람이
슬그머니 높새바람으로 심보를 바꾼 줄도
체중을 줄이는 옷가지들을 술렁술렁 흔들다가
숨는 척 엿보며 기웃거리다가
장난처럼 툭툭 치고 건드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슬몃 브라자에 입 맟준 저저저 불한
당놈
또 한놈은 여유롭게 팬티 속을 들락거리지 않은가
벌건 대잦 내 집에서 두 눈 뜨고 당하다니
벌떡 일어서다 말고 주저 않았다
몰랐구나
탐낸 것은 나 아닌 레이스 속옷들인데
오래전부터 나는 그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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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계산법
<" ">표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따옴표 속 거기가 가장 좋은 곳일 것 같아서
<?> 표를 앞세우고 거침없이 휘젓고 싶었다
세상은 의문투성이 나만의 해답들 찾고 싶어서 <,> 표로 물러앉아서 숨 돌리고 싶었다
<.> 표로 마감하여 종적 없이 숨어버리고 싶었다
살아봐도 별수 없는 세상에
불필요한 나 같아서
<!> 표로 순간순간을 감탄하며 살고 싶은
마침내 욕심 가득한 갓 마흔을 넘어섰다
41년생이라서 41세로 살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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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전 창세기
모름지기 시인 정신이란
불완전 더 탐했던 아담과 이브와 배암의
제정신이 아닌 정신었으니
눈먼 행복보다 눈 밝아지는 불행을 갈망했느니
태초의 그이들은, 이상정신異常精神의 참 시인들, 천
사보다 인간이고 싶어, 배암의 잔꾀와 이브의 미각과 아
담의 아둔함이 도모한 탈출 성공, 야훼는 태초에 시인들
을 지으시었느니
때로는 제정신을 잃어야 정상적 시인들
도처에 잠복한 불행이 호시탐탐 노리는
숨겨진 올무 덫에 넘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지는
고통이 살맛을 날라다주는 이곳
잠깐씩, 더러는 한동안 불행해서 번쩍 제정신이 드는
잠깐씩, 더러는 한동안 제정신을 잃어서 물구나무서는
여기가 에던 아닌 인간적인 낙원
태초에 벌써 불구덩 속으로 뛰어들 줄 알았던, 눈 밝은
불나방들, 불행을 더 밝히는 배꼽 없는 그이들은, 문자
아닌 온몸으롤 평생 시를 쓰며 살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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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는 소리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음의 음정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
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
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이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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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가 없다
주어에도 있지 않고
목적어에도 없다
행간에 떨어진 이삭 같은 낟알 같은, 떨군 채 흘린 줄도
모르는, 알면서도 주워담고 싶지 않은, 그런 홀대를 누리
는 자유로움으로, 어떤 틀에도 어떤 어휘에도 담기지 못
하고, 어떤 문맥 어떤 꾸러미에도 꿰어지지 않는, 무존재
로 존재하며
시간 안에 갇혀서도
시간 밖을 꿈꾸느라
바람이 현주소다
허공이 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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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보탑을 줍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 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 차려 다시 보던 빠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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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를 읽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하늘과 땅이 모처럼 한뜻 한 몸이 되는 이런 시간에도
몇 며칠을 땡볕에 몸 달군 아스팔트 바닥에는
읽을 수 없는 요상한 글자들이 난장을 치고 있다
콩 튀듯 팥 튀듯
난리 법석 뛰어다니는 외계어 문장을
속독으로 읽어주는 누군가들의
숨찬 목소리만 쇠귀에 경 읽듯
그 소음이 그쳤는지 길 건너 옥상 위에는
ㅂ ㄴ ㅍ ㅊ ㄴ ㅈ ㅃ
휘어지도록 길게 일곱 줄로 늘어선
한글 자음 글자들
모음 없이도 읽어낼 수 있는
귀가 먼저 알아듣는 내 모국어
심장의 박동 맥박 숨결의
혈연 이상의 혈연으로
하늘과 땅의 약속도 저절로 해독되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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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늘 기다린다
늦은 밤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아이들이 돌아온 다음에도 여전히 기다린다
늦지 않는 밤에도 기다리는 나는
나의 귀가도 기다리는 줄 몰랐다
나는 나를, 너무 자주,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떠나가서,
늦은 나의 귀가를, 너무 먼 나의 귀갓길을, 돌아오지 않
는 나를, 날마다 기다리고 기다려왔다
나는 어딜 가서 무얼 하느라고 늘 늦도록 돌아오지 않
는가, 나를 기다리게 하는 나는, 언제부터 무슨 까닭으로
나를 떠나가서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게 할까
내가 부재하는 어디에도 기다리는 내가 있다, 도대체
나는 어떤 나를 기다리느라, 대문간 골목길 정류장마다
그림자를 걸어두고 귀를 열어둔 채, 안절부절 서성거리
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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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수상하다
치아가 편치 않다
나이가 들쑤신다
아아주 옛적에는 떡이나 과일을 깨물어
치아 자국으로 임금을 뽑았다니
이가 좋아야 임금이 될 수 있어
잇금이다가 이사금이다가 임금이라 불렀다니
나이도 나의 치아, '나의 이'의 줄임말 아닐거나
나이(年齡)라는 한자에 이 치齒를 넣은 중국인들도
'나의 이' '내 이'를 나이로 기준 삼아
연령을 뜻했는가
사과 한쪽을 집으려다 얼른 주춤한다
보기만 해도 시리고 저린 나이
치과 한번 간 적이 없는 나의 이가 쑤신다
정말 이젠 낡은 나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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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를 발견하다
바다가 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옛 시절의 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바닷물이 올라와 강물이 될 수 있다니
밀물 드는 임진강가에서 기적 하나 목도한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세월도 역행이 가능할
수 있는, 저런 예외가 허용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
나는 돌연변이처럼,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배웠으니,
섭리 속에는 더 많은 예외가 기다리고 있는 지도
살다가 저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니
강으로 회춘하는 바닷물처럼
살아버린 삶도 다시 설계 편집될 수 있다고
아득히 떠나가버린, 놓쳐버린 것들
아우성치며 한꺼번에 밀물 차오르는
이 황홀한 만조에 무릎 절로 꺾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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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 학교길
도시 아이들은 별 볼 일이 적어서
별 볼 일이 많은 아이들을 찾아서
유성流星들은 밤마다 시골로 모인다
아이들이 개울물에 다이빙하듯
별들도 다투어 시골로 다이빙한다
아무도 모른다. 밤하늘에서 다이빙한 유성들이 날 새
는 줄 모르고 놀다가 올라가지 못한 줄을, 그래서 아이들
목소리 자욱한 학교길도 코스모스꽃 자욱이 피는 줄을,
별눈 반짝이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교실 밖 꽃
밭에서 까치발 돋우어 함께 학교를 다니며, 교실 밖 꽃
밭에서 까치발 돋우어 공부도 같이 하고, 철붕대 뒤켠에
서 손뻑도 치는 줄을,
밤마다 유성이 모이는 시골도 학교길에
별 볼 일 많은 아이들은 모두가 코스모스꽃이다
그래서 학교길 가을별은 한 촉수 더 밝다
아이들 목소리도 한 옥타브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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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에서 다 안다
현관문을 열자 시커면 함대가 좌초되어 있다
한 척은 기우뚱 또 한 척은 아무렇게나
각자 편한 대로 나자빠지고 고꾸라졌다
발고린내가 진동한다
대한민국 청년 중 어둠의 자식*이
휴가를 나왔다
콧등 젖은 하이힐이 딸애의 하교다
쭈그러져도 늘 정중한 신사화 자리는 비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았구나
군화 두 짝을 일으켜 세워놓고
신을 벗고 돌아다보니 나는 전족纏足이다
현관에 모인 식구별 11번들, 입이 아닌 신발이 식구이
다, 우리 식구들은 식탁에는 안 모이고, 현관에는 다 모
인다. 오후 7시 현재 우리 가족 각자의, 현 위치다, 기분
이다, 성별이다, 연령이다. 성격이다, 기타 등등이다.
*대한민국 청년 중에 군복무면제자는 신의
아들, 방위병으로 빠지면 사람의 아들,
군복무를 제대로 하면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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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아프단다
나는 늘 사람이 아팠다
나는 늘 세상이 아팠다
아프고 아파서
X-ray, MRI, 내시경 등등으로 정밀진단을 받았더니
내 안에서도 내 밖에서도 내게는, 나 하나가 너무 크단
다, 나 하나가 너무 무겁단다
나는 늘, 내가 너무 크고 너무 무거워서, 잘못 아프고
잘못 앓는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피멍 들게 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대적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사랑한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나를 망쳐준 누가 없단다
나말고 나만큼 내 세상을 배반한 누가 없단다
나는 늘 나 때문에 내가 가장 아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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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를 기다리며
벌건 대낮에도 도깨비를 기다린다
하늘 꼭대기까지 사무치고 사무쳐서
도통하게 되면
추위를 누리고 배고픔도 누리고 피눈물까지도 누릴 수
있다지만
싫다
차라리 땅 속 밑바닥.... 암흑까지 사모치고 사모친
완전 비무장지대로 떨어져서
도깨비 김서방을 기다리는 도깨비가 되고 싶다
홀리고 홀린 채로 더불어 킬킬킬 살고 싶다
누가 사람이 더 낫다 했나
꿈만 같은 동화만 같은 그런 일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앉아 기다리는
낮도깨비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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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 갈채를 보낸다
춘설은 차라리 폭설이었다
겨울은 최후까지 겨울을 완성하느라 최선을 다했다
핏뎅이를 쏟아내며 제철을 완성하는 동백꽃도 피다
진다
칼바람 속에서도 겨울과 맞서 매화는 꽃 피었다. 반쯤
넘어 벙글었던 옥매화는 폭설을 못 이겨 가지째 휘어지
다 끝내는 부러졌다, 겨울 속에 봄은 왔고 봄 속에도 겨
울은 있었다
두 시대가 동거해야 하는 불운은 항상 앞선 자의 몫이
었다
정작 봄이 무르익었을 때는 매화는 이미 꽃이 아니다
앞서가는 자는 항상 이렇다
불행하지 않으면 선구자가 아니다
지탄받는 수모없이 완성되는 시대도 없다
춘설도 동백꽃도 꽃샘추위도
제 시대를 완성하고 죽는 후구자後軀者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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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오징어를 다듬다가
네 가슴은 먹장인 줄 미처 몰랐구나
무골호인無骨好人 너도 오죽했으면
꼴리고 뒤틀리던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진
검은 피 한 주머니만 껴안고 살다 잡혔으랴
바닷속 거기도 세상인 바에야
왜 아니 먹장가슴이었겠느냐
나도 먹장가슴이란다
연체동물이란다
간도 쓸개도 배알도 뼛골마저도 다 빼어주고
목숨 하나 가까스로 부지해 왔단다
목고개 오그려 쪼그려
눈알조차 숨겨 감추고
눈먼 듯이, 귀먹은 듯이, 입도 없는 벙어린 듯이
이 눈치 저 코치로
냉혹한 살얼음판을 어찌어찌 헤엄쳐왔단다
비늘옷 한벌 없는 알몸으로 태어난 너도, 나와 다름아
니다. 남의 옷 한가지 탐낸 적 없이 맨몸으로 살았던 너
의 추위 너의 서러움을 나도 안다, 알고 있는 우리끼리
이렇게 마주친 희극적 비극의 비극적 우연도, 어느 생애
지어 쌓은 죄갚음이라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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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하마터면 밟을 뻔한 풀밭 귀퉁이 끝에, 초등학교 적 화
단의 채송화 피었다. 붉고 흰 꽃송이를 정수리 층층으로
피워 올린 접시꽃 발치쯤, 새빨강 벼슬모자 높이 쓴 맨드
라미 뒤꿈치에서, 그냥 잡풀이던 앉은뱅이꽃 채송화가
지상에서 지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땅 위에서 가장 낮
은 자리에, 피었다 빨갛게 하얗게
내가 바로 너다
누가 말했고 누가 들었지?
나의 여기가 너의 고지다
너의 거기가 나의 오르막이다
누가 말했고 누가 들었는지 무슨 상관이야
높아진 적 없을수록 낮은 데가 높은 거지, 하얗게 되기
위해 빨갛게 되려고, 오늘도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너여야만 하는 나를 만나러 성당 뜰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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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는 건축되지 못했다, 그래서
시내에 나갔다가 부석浮石과 마주쳤다. 반공중에 떠
올라 날아다니는 돌들, 새 천년도 여전히 부석기
시대라니
둘이 날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나의 10대 끝,
다들 부석사를 꿈꾸던 4.19 그때, 나는 부석에 겁
먹고 떠돌던 겁쟁이 돌이었다.
돌개바람 내처 불어, 학교 현관까지 돌이 날아다녔던
20대의, 높이 떠올라 멀리 날고 싶던 내 열병은, 허기에
가위 눌러 해열되었던가.
강의실까지 돌이 날아들던 30~40대는, 머리 눕힐 공간
이 두통약이 되어 발길에 채일까봐 납죽 엎드렸다.
채여
도 뽑히지 않는 박힌 돌이 되려고,
어떤 부석사도 세워지지 못한 수도 서울에는, 아직도
돌들이 날아다닌다. 자기만의 부석사도 우리들의 부석사
도 포기될 수 없어서, 밤하늘에서도 곤두박질치는 유성
들, 꿈꾸는 부석들은 밤에 더욱 몸부림친다, 대낮도 밤붕
같은 내 가슴속 캄캄 허공에도, 횃불꼬리 부석 하나 곤두
박질친다. 대책 없는 각성제이다, 살아 있는 자의 허무와
도 같은.
====2>
+ 실언
근무실이 입구이자 출구인 문간체다 보니, 들어오는
이에게 더 신경 쓰여, 나가는 이한테는 소홀해지곤 했
다. 더구나 오랜 습관으로, 나가는 이를 더 단속하라는
근무수칙은 곧잘 잊히기 때문이다
나가는 이 모두가 주인은 아니다
들어가는 이를 단속하면 한 사람이 편안하나
나가는 이를 단속하면 여럿이 편안하다는
평화의 원칙과 사랑을 위해서란다
그러나 어쩌다간 실수도 한다, 순간적인 착각이었는데
월권越權이라는 호통이다, 그럼에도 당황한 주인의 입
가에는, 잠깐이었지만 기묘한 미소, 실수해줘서 좋았다
는 듯 야릇한 그 미소를 읽어낼 수 있게, 문지기 평생의
눈칫밥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나, 혀舌도 가끔은 실수
처럼 실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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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 꽃
세상이 버린 그는
태양과 겨루었다
태양보다 외로운 그의 외로움은
타오르며 일그러지면서 꿈틀거렸다
까마귀보다 깜깜하게 외로웠고, 올리브나무보다 오글
오글 외로웠고, 밀밭보다 싯누렇게 외로워, 마침내는 이
글거리며 타오른 자화상 몇송이로 피어, 씰룩거리고
꿈틀대며 일그러지는 그는 꽃병 속에 갇혀야 했고, 다시
대영제국 박물관 유리장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를 버린 세상 어디서나 핀다
태양보다 태양다운 외로움의 이름
빈센트 반 고흐
는, 해바라기 꽃 이름이다
비 오는 날도 피는 태양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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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외국 동화 「양치기 소년」을 고쳐 쓰다
햄버기 가게에서 햄버거를 샀더니, 집어주는 아가씨는
갑자기 풀향기를 맡으며 타악 트인 풀밭에서, 바람에 그
네 타는 민들레 토끼풀 냉이꽃 강아지풀이 보인다고 했다
모자 가게에서 모자를 고르는데, 웬 누렁이 한마리가
소년의 발치에 엎드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드넓은 풀 언덕에 엎드렸다고 느꼈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의 어린 소녀는
뭉게구름 두웅 둥 떠가는 하늘 아래서
매에 매에 우는 양떼를 쫓아가고 있다고 착각했다
소년은 누구에게도 한번도 양을 치다가 도시 구경 왔
다고 말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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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꺼풀
식순이 다 끝났다. 돌아서 하객들에게 절하는 새 부부
에게,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콩꺼풀이여 벗겨지지 말지어다
흰콩꺼풀이든 검정콩꺼풀이든 씻겨지지 말지어다
색명色盲이면 어때 맹맹盲盲이면 또 어때
한평생 오늘의 콩꺼풀이 덮인 고대로 살아갈지어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일진데
불광不狂이면 불급不及이라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느니
이왕 미쳐서 잘못 본 이대로
변함없이 평생을 잘못 볼지어다
서로에게 미쳐서
행복에도 미칠 수 있기를
빌고 빌어주며 예식장을 나왔다. 기분 좋은 이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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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없는 돌
돌은 입이 없어 먹이사슬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
득한 저 시대에는 돌도 입을 가져 먹고 살았는가, 돌이
먹어 삼킨 수억만년 전의 동식물들이, 소화도 되지 못한
채 미라가 되어, 박물관에 모여 있었다
입을 가진 돌은 아직도 먹어야 사는가, 전시장 수석
에는 먹어온 천둥과 번개 강물과 바닷물, 달과 별빛하
며 눈 서리와 비 안개가 보인다. 물과 바람과 짐승의 소
리까지, 더러는 소화되고 더러는 변형된 채 훤히 내비친
다 얼비친다
온몸으로 삼켜 먹고도, 태연하게 입을 감춘 돌, 보리매
미 울음조차 핥아 빨아 마시고, 시침 떼며 살찐 돌에 자
욱진 문양紋樣, 돌의 몸 돌의 색깔도 그의 식욕이었다.
고요는 아니었다.
----------------
+ 히프의 길
어깨머리 찰방찰방 앞서가는 아가씨들
종다리떼 날아오르는 목청 있지만
실룩거리는 방芳뎅이만 눈부셨다
향기 너무 짙어 코가 아렸다 재채기 연거폈다
장미향 자욱한 큰길에는 방뎅이 실루엣만 물결쳤다
좁은 길로 꺾어들자 앞이 안 보였다. 느린 템포로 흔들
거리는 웅뎅이들, 길을 막고 길은 가는 아줌마들의 응석
받이 악센트가 후덥지근 느끼했다. 중복도
중턱을
오르듯, 따라가는 내내 넘치는 어리광이 사방으로 번지
며 흐르는 듯 마는 듯
경로당은 문이 열려 있었다. 두 분 외에는 모두 여성들,
궁窮뎅이만 끌고 다녔다, 꽃내음 방뎅이, 응석받이 응뎅
이 적을 까마득히 잊은 듯, 일그러 찌부러진 궁뎅이 혼자
서 발과 다리 몫을 대신하느라, 옮겨 앉기도 힘들어했다.
주업을 잃고 궁색해지면 부업이라도 해야 산다고, 누구
든 이 슬픈 순서를 따른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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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천국은
나의 천국은
밤하늘일 게다, 바윗돌 속일 게다, 블록홀 일 게다
까마득한 도착지는 깜깜함뿐일 게다
나의 천국은
너무너무 외로워서 귀신도 못 사는 태평양 한복판, 두
발도 용납 못할 방울섬일 게다, 있어본 적 없어 없는 섬
일 게다, 호이야 호이야~ 목소리만 살면서 울리다가 꾀
이다가 나꿔채는 바람의 손일 게다, 북극의 극점極點, 녹아
서 사라지고 있는 빙산일 게다
바보 멍청이로 살아온, 나의 빛과 어둠과 추위와 더위
와 갈증과 포만과 갈망과 변덕.... 의, 아흔아홉 가지 모
양과 색깔에 안성맞춤인 나의 천국은, 세상의 지식이 못
닿는,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지식이 못
닿는,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있는 곳엔
없고 없는 곳에만 있을 게다.
--------------------
+ 눈 밖에 나다
사람한테서 신적인 것이 저절로 생겨난 잘도 발표
되던 입원실, 초고층 창턱에서 나는 내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고, 고치 속 번데기는 문을 닫아 걸었고, 나 밖의 세
계는 타인들의 것, 머나먼 외계, 가상의 세계일 뿐
내 속에서 내 손으로 문들 닫아걸자, 내가 없어져버렸
고, 누고 싸고 뀌는 가장 동물스런 동물 중 하
나에 불과하다고, 제 발로 떠난 세상, 한번도 눈에 차지
않던 세상이
들으면 소리가 되고, 바라보면 빛깔과 모양이 되던, 잠
결에도 눈에 밟히던 세상이, 나르 제 눈 밖에 내던져버린
것이고, 없어진 내가 너무 그리워졌고, 한번도 내 눈에
차지 못한 내가, 오직 하나뿐인 내가 되어, 우주보다 크
고 무거워졌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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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녀의 선택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고쳐 쓰다
착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날개옷을 내놓자 기가 막혔지
요, 우리가 정녕 부부였다니? 내 남편이 선녀들의 벗은
몸을 훔쳐본 치한이었다니? 끓어오르는 경멸감과 배신
감에, 날개옷을 떨쳐입고 두 아이를 안고 날개 쳐 올랐
지요, 털끝만치도 미안하긴커녕 억울하고 분할 뿐이었
지요
오오 그리운 내 고향! 가슴도 머리도 쿵쾅거렸지요, 큰
애가 아빤 왜 아니 오느냐고 하자, 비로소 정신이 났지
요, 애들이 제 아빠를 그리워한다면? 천륜을 갈라
놓을 권리가 내게 있는가? 아쉬우면 취하고 소용없어지
면 버려도 되는 게 남편인가? 우리 셋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옥황상제님도 잘했다고 하실까? 글썽이는 아
이들의 눈을 보자, 탱천했던 분노도 맥이 빠지고.....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날개옷을 바라보니, 뜻 모를 눈
물이 흘러내렸지만, 분명 나는 웃고 있었지요,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야, 우리집이야, 마당 쪽에서 아이들 웃음소
리가 꺄르르 밀려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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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녀의 조건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을 고쳐 쓰다
간날 갓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하기로, 한번
은 언덕에서 또 한번은 강물에서, 그리고 가위 바위 보로
이긴 자가 정하는 데서
토끼는 언덕 위 꿀밤나무를 돌아 도토리를 주워서 돌
아왔고, 거북이는 강물을 헤엄쳐 갈대꽃을 꺾어 물고 돌
아오다가, 물에 빠진 토끼를 건져와서, 마지막 가위 바위
보를 했으나 거북이가 졌으니, 달려볼 필요도 없이 2:1로
토끼가 이긴 것,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 법칙으로 이긴
토끼는, 만세를 부르며 뽐내다가 우연히 거북이를 봤는
데, 거북이의 웃음은 자랑스러움에 틀림없었기에, 등골
이 오싹해진 토끼는 거북 앞에 무릎을 꿇고,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도 오늘 경기를 발설하지 않기로, 거북은 하는
수 없이 약속해 주었으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은 퍼져
수없이 대물림하면서도 약속은 지켜져, 거북이는 여전
히 빙그레 웃고 살고, 토끼도 굳게굳게 입 다물고 살고
있어, 둘 다 숙녀의 가통을 이어가느라 말 까지
버렸는데, 언제부턴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격언
하나가 생겼답니다.
* 아주 옛날에는 말하는 토끼가 살았다는 설이 있으니, 용불용설 用不用說에 의해
말하는 토끼종이 사라졌다고 추정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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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고등어 한 손
아무리 신선한 어물전이라도
한물간 비린내가 먼저 마중 나온다
한물간 생은 서로를 느껴 알지
죽은 자의 세상도 물간 비린내는 풍기게 마련
한마리씩 줄 지은 꽁치 옆에 짝 지어 누운 간고등어
껴안고 껴안긴 채 아무렇지도 않다
오랜 세월을 서로가 이별을 염려해 온 듯
쩔어든 불안이 배어 올라가 푸르러야 할 등줄기까지
뇌오랗다
변색될수록 맛들여저 간간 짭조롬 제 맛 난다니
함께한 세월이 갈수록 풋내 나던 비린 생은
서로를 길들여 한가지로 맛나는가
안동 간고등어요
안동은 가본 적 없어도 편안 안安에 끌리는지
때로는 변색도 희망도 되는지
등 푸른 시절부터 서로에게 맞추다가 뇌오랗게 변색되면
둘이서도 둘인 줄 모르는
한 손으로 팔리는 간고등어 한쌍을 골라든
은발 내외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반백의 주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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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워서 머나면
번번히 내리고 싶었던 정거장이었다
반드시 내려야 할 것 같은 그런 역이었다
내려서 손차양 얹고 바라다보면
뭔가 모를 뭔가가 알아질 성싶어서
타이르다 강요하는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멀리는 고사하고 더 가깝게 보려고 돋보기를 끼다 마
주치는
낯익은, 낯선 숙적의 무리 에워싼 인민재판장에서
팔뚝춤과 삿대질로 질타하는 조목조목의 목록에서
빠진 사항까지 보태주고 싶어지고
그러느라 더 멀리 지나와 아닌 역에 내려서면
되돌아가 빌고 싶어지는 머나머언
가까워서 한번도 못 내린 머나머언
망원역望遠驛
신神이 계신 그곳이 서울에도 있다면, 필시 망원역에
내려야만 찾아갈 수 있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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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잘라내며
밤중에 일어나 내 손으로 내 시간을 잘라내는 이 버릇,
나를 갉아먹으며 나 모르게 자라난 시간이, 하룻밤새 더
자라 세월이 되기 전에
두어 달 치의 내 과거가 타일바닥에 흩어진다
잘려나간 시간만큼 젊어졌다는 거울 속에는
숨어 자란 시간이 세월이 되어 힐금거린다
눈 아리던 쓰리랑의 순간이 자라
세월로 늙은 줄 몰랐다
가위도 면도칼로 어찌 못하는 희허연 카락들이, 세월
을 지나 네월로 입신하여,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있
다.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너무 멀리 가서, 귀신의 영토에
더 가까운 안전지대에서 웃음마저 자신만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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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본래 없었다
거울 앞을 지나는데
얼핏 나 아닌 누군가들이 보였다
돌아가 다시 보니 아담과 이브였다
알 듯 모르겠는, 닮은 듯 아닌 듯, 조상들이라는 직감이
문득
촌수를 앞지른 유전자의 주인들이, 갸우뚱 흝어보고,
빠얀히 꼬나보다간, 서로들 목청 높여 다투었다. 표정과
말씨, 음색과 걸음걸이에서도 내음새가 풍겨났다. 섬겨
온 종교와 읽어온 책과 배웠던 학교와 스쳐간 사람들의
내음새가, 먹어온 마셔온 것들과 매연까지 합세하여 소
유권을 주장했다
나 직전의 난자와 정자도 내 것이 아니었단다
나는 본래부터 없었단다
정면으로 정색하고 보니
한 뭉치의 유전자들이
떨떠름한 표정하고 곁눈질로 꼴쳐볼뿐
거울 속엔 분명 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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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꾼의 알림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고쳐 쓰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쫓기는 사슴을 숨겨주고도 사냥꾼에게는 못 봤다고 했다
나는 도둑질도 했다
사슴이 일러준 달밤 선녀들의 목욕을 엿봤고, 날개옷
한벌까지 훔쳐와 감추고서도, 두 아이나 낳기까지 부부
로 살았다
나는 겁난다
누가 나를 벌줄까 봐 켕기고 겁나서, 다른 거짓말과 다
른 도둑질까지도 생각해 보게 되는 나에게 너무 놀라서,
내 손으로 이 글을 써서 나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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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가 웁디다
새처럼 우는 불고기가 있습니다
물 없이도 살고 있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귀양 사는 허공에서 헤엄도 칩니다
물고기도 허공에서 새가 되는지, 허공도 그만 물바다
가 되어주는지, 절집 추녀 끄트머리 허허 공공에서, 울음
도 노래도 염불공양 같습니다
백담白潭의 못 속이다가
만해萬海의 바다 속이다가
백담사百潭寺 며칠은 지갑도 빌딩도 부럽지 않습니다
먹물 빛깔 단벌 옷의 물고기가 되는 듯이
등떼기에 옆구리에 지느러미까지 돋는 듯이
기어이 나도 가사장삼袈裟長衫 걸친 물고기만 같습니다
귀양살이 지망한 풍경風磬이 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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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 그리는 술독
어젯밤 골목길에서 술독과 마주쳤다. 얼마나 많은 술
병과 속을 맞바꾸었는지, 몸째로 술항아리가 된, 비틀거
리는 술독을 잽싸게 피해 달아났는데, 달아나도 쫓아오
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바람벽을 안고 서서 벽화를 그리
는 중이었다
있는 욕 없는 욕이 목구멍을 치밀어, 고래고래 소리질
러 욕해주려는데, 문득 허공에서 별똥별 떨어지듯, 귀에
익은 목소리에 많이 들어본 말귀
ㅡ욕하지 마라, 너만이라도 그런 술독일 수 있었더라
면ㅡ
마를 날 없던 두 눈으로, 추상화만 찍어내다 가신 엄니
였다, 내 엄니의 하느님은 바로 없는 아들이었다. 한밤중
남의 집 아무 담벼락에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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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까소 전을 보고
빠블로 삐까소 전을 보고 나오니
얼굴에 자꾸 손이 간다
내 얼굴을 만져도 남의 얼굴 같다
남의 얼굴에 내 얼굴이 덤으로 얹혀
내 행색 위장하며 흉내내어왔는가
누군가가 내 얼굴에 제 얼굴을 포갠다, 밀어내도 어느
새 반토막이 남의 얼굴이다. 진열장에 비춰보니, 나는 없
고 낯선 남자 얼굴에 내 입과 코가 덧붙어 있다
얼른 눈감았다가 다시 떠보니, 백인종인지 황인종인
지, 사람 같으면서도 괴물인 언제 품었음직한 내 심술 심
퉁들이 목청 세워 다투는 소리
하얀색은 노랑보다 가볍단다
노랑은 빨강보다 가렵단다
빨강은 청색보다 더 가볍단다
청색은 검정보다 훨씬 가볍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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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박자로 하는 말
이른 봄 아침부터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선 채로 목탁이 된다
산 하나가 통째로 목탁이 된다
산마을이 그대로 절간이 된다
댕기꼬리 붉은 딱따구리가 돌아왔능갑다, 잠 깨느라
나무들 초록 눈 비비고, 잠 덜 깬 이웃 산 이웃 마을도 부
시시한 목청으로, 잠결처럼 따라 중얼거린다
눈과 비, 바람과 구름, 물과 새,.... 그리고 또 빛과 어
둠까지
나무의 언어가 아닌 말을, 나무의 목청으로
일곱 박자 이상은 필요가 없는 나무의 말귀를
나만 못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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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자八字를 생각하다
이순耳順은 오지 않고
부끄러운만 찾아와 마주 앉는 갑년 생일에
부끄러움에게 부끄러워하다가
갑년까지
그리움, 외로움, 괴로움, 서러움, 노여움, 두려움들에게
미안해지다가
이들 뒤에 가려져 있었을지도 모를 새로움과 놀라움 한
테도 송구해하다가
뼈와 살이었을
피와 눈물이었을
'움'자 여덟이 전부였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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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선생의 미소
바바리코트가 지나가고, 빨강머리 금발머리 젊은 은
발도 지나간 난곡동 육교 아래, 한 뼘 봄볕에 양보한 염치
있는 찬바람의 쉼터, 염치 있게 사느라 가랑잎 된 손이,
어린 봄나물을 아프지 않게 다듬고 있었다
꺼무레한 보자기에 웅크린 세 무더기 쑥 냉이 달래, 찬
바람에도 얌전히 앉아 있는, 어린 봄나물한테 눈길 주는
이 없고, 가랑잎 손만 목도리로 연신 콧물을 닦았다. 무
엇이나 소음이 되고 마는 여기를 지나간, 누비포대기로
아기 업은 중년이 되돌아와, 하루치의 봄을 떨이하자, 육
교 밑의 오늘 봄이 다 팔렸다
봄나물도 추워 비닐봉지로 들어가고, 건네진 천 원짜리
두 장에는, 그네들과 만난 적 없는 이상한 모자 쓴 노인
이, 안도의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자, 노루꼬리 햇발도 마
음 놓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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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의 감옥이다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물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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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도둑질의 증거물
부삽만한 놋숟가락이 이삿집에 끼여 왔다
나 부자 되자고 외가댁에 업혀가 훔쳐왔다는 첫 숟
가락
외할머니가 은근히 눈짓해 줬다는
그 큰 숟가락을 오른손에 쥐여 잡고
밥 먹는 기술을 배웠겠다
먹고사는 세상을 배웠게싸
훔쳐온 그 숟갈로 먹고 자라며, 부모님 지갑에서 푼돈
을 훔쳐 쓰고, 다락방 제사 과일을 훔쳐 먹고, 친구집 분
꽃씨를 훔치고, 남의 밭 수수이삭을 잘라먹고 콩서리 곶
감서리 참외서리...... 서리라는 이름의 좀도둑질에도 가
끔 끼었다가, 아직도 남의 지식을 훔쳐 쓰며 사는가
나 부디 잘살라고, 젊은 엄마가 기꺼이 친정도 배신했
던 그 증거물에는, 녹슨 얼굴들 녹슨 이야기가 아물아물
어리 비쳐, 어머니라는 이름이 세상에 있는 한, 외할머니
라는 이름이 세상에 있는 한, 세상은 따땃하고 정겨운
곳, 말세도 없을 듯 결단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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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선으로 살으리랏다
점과 점 사이의 최단거리를 마다하고
점과 점 사이를 최장 거리로 살으리랏다
옆길로는 옆걸음질, 뒷길로는 뒷걸음질, 오르막엔 솟
구치고, 내리막선 내리꽃히며, 제자리서 비틀거리며, 오
른켠으로 오그라들고, 왼켠으로 외돌다가, 기슭에선 휘
돌고, 소여울에선 소용돌이치고, 절벽에선 꼬꾸리 지며,
검은 세상 어디든 신호를 보내는 반딧불이처럼, 어설프
게 미안해하며, 객쩍게 혼자 웃으란다
예측불허의 방향에 스스로도 가슴 죄며, 마음 가는 대
로 방향은 틀어져, 걷다가 뛰고 뛰다가도 걸으며, 정할
곳 없는 전방위가 향방이라, 무당 손의 신장대같
이, 서낭신의 마음꼴대로 살으리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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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살아 있지 않았다
발자국마다 무덤이었다, 말마다 유언이었다, 그런 줄
을 정말 몰랐다
부음訃音을 듣고서야 나는 살아 있었다. 빈소 영정마
다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이 아이러니의 뒤켠에서, 내가 나인 줄
도, 살아 있는 줄도 잊은 채 허둥거려 왔다,
누가 나를 이
름부를 때는 대답한 입이 나였을 뿐, 내 이름자를 쓴 손
이 나였을 뿐
잊힌 것은 없는 것과 다름 아니라, 내가 나에게서 잊혀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살아 있음도 살고 있
음도 아니다
부음마다 살아 있는 나를 거듭 확인시켜 주지만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줄도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이 더 좋다
살아 있지 않았던 평소가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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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 가을, 샹송의 계절에
세상도 갈색으로 마음 고쳐 먹는 가을
원경에서 근경으로 젖은 바람 불어온다
함께 걸어도 혼자가 되는
갈색 목소리가
외로움의 키가 몸보다 커서, 늘 목이 잠겼던, 목쉰 고독
이 혼자 부르는, 플라타너스 잎잎을 갈색으로 적시다가,
발걸음도 발자국도 다갈색으로 적신다. 바람도 빗줄기도
목이 메이어, 다갈색 골목을 진갈색으로 따라와, 앞장도
서고 나란히도 걸으면서, 낙엽보다 낙엽답게 다 저녁을
밝힌다, 불빛보다 서럽게 저 혼자서 흐느낀다. 밟히는 낙
엽 소리 젖은 촉감까지
다갈색과 진갈색을 섞바꾸는 키 작은 여자의
죽어서도 외로워
잠긴 목이 안 풀린 에디뜨 삐아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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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너무 낭비하지 말자
제발 동창회 그만 좀 모이자
추억 추억 하며 함부로 낭비해 버렸어
호젓한 앨범 갈피 깊숙이 파묻혀
고스란히 한갓 지게 쉬고 싶은 추억도
씹히고 깨물리고 뜯기고 비틀거리는
그리움의 바코드가 다 뭉개져버렸어
일그러지고 바래서 흐리멍텅 흐물흐물, 빳빳하고 칼칼
한 성깔머리 하며, 따스하고 말랑말랑 새콤달콤한 얘기,
겨자씨보다 작고 작은 흉허물 에피소드의, 보랏빛 아지
랑이 꽃구름 피는 고갯길과, 갈랫길로 불러내던 길섶의
풀꽃향기도, 매캐한 매연내음, 누리 뿌우연 황사가 덮여,
추억 아닌 바로 지금이 되어간단 말이야
꿈은 전원電源조차 망가진 채 가출해 버리고
맥 빠지고 지겨워 하품하는 오늘도
단물 빠진 껌 같은 미래가 되어간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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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어린이는
어른 아닌 어른의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입국 비자를 가진 완벽한 자격자*
따라서 어른이 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데
어른이야말로 어린이가 되어야 할
어린이의 아들인데도
힘만 센 어른들은 어린이의 완전함을 구기고 때 묻히며
자유로운 어린이를 틀 속에 쑤서 박아 찌부러트리며, 어
린이는 미성년자라고, 미성년자를 성년자로 키우는 일이
어른의 사명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려 들며
행복한 어린이를 불행한 어른으로 퇴행시키려 들며
어른의 아버지에게 어린이의 아들을 닮으라고 윽박지르는
교육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꾸로 사업.
*영국 시인인 윌리엄 위즈워스의 시
「무지개를 바라보면」 중 한 구절.
*신약 성서 「마태오복음」 19장 14절의
예수의 비유에서.
======3>
+ 야호夜好
밤에 눈뜬다
귀도 열린다
기질로나 체질로나 나는 밤이다
어둠에 생기 도는 밤의 종족이다
캄캄 밤하늘이 어머니였다. 현현玄玄한 먹빛, 문자향
아늑한 밤하늘은
어머니가 읽어주는 동화책이었다. 두 눈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서린 어머니의 자장가였다. 사람이 노래를 부르
지 않고, 노래가 사람을 부르는 오페라, 슬퍼서 감미로운
무궁한 이야기의 음악궁전이었다
벌떼 쏟아지는 소리가 시끄러워
한숨도 못 잔 어머니의 목청으로
낮은 음자리로 내려앉는 소리, 음音
꼬리 긴 유성 몇 개가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내일 반쯤 도착할 8 음계 중 어디 어디일까?
------------
+ 물고기
언젯적부터 신의 사제였을라요
쪽수도 깊이도 짚어낼 수 없는
신의 말씀책 속들 헤엄치는 저이들은
"......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순교 없는 시대를 순교적으
로 살면서, 잘못을 지을까봐 손과 바을 돌려드리고, 혓바
닥과 목소리도 돌려 바치고, 입 하나로 겨우겨우 연명하
며, 말씀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청빈의 저이들은
태어나 처음 입은 배내옷을
그 한벌을 평생 입고 살다가
그 옷 그대로를 수의로 입고 죽는
저 청빈의 사제들 청빈의 수도작들은.
--------------
+ 물공 몸
죽은 나무 군데군데 젖어 있어, 들여다보니 새 촉이 트
고 있다. 어린 촉마다 이마꼭지에 제 몸만한 물방울을 이
고 있다, 눈물의 힘인가
손 뻗치면 닿을 앞뒷산 사이, 계곡물 울어, 어떤 재회
가 희망되는가, 철 따라 눈비 쏟아지고 무지개 뜨고 마른
번개도 쳐, 끝난 우리 사이, 다음을 기대하면 오해가 되
는가, 눈물의 힘을 믿으면 안 되는가
지구도 2/3가 물인 수구, 거대한 눈물바다를 다
섯 개나 품었으니, 여기 몸 붙인 사람도 양수羊水라는
눈물에서 태어나 눈물의 힘으로 살며, 눈물의 의미를 새
겨 곱씹는 작은 물공(小水球) 왜 아니랴, 제 몸만큼 눈무
쏟아 싹 틔운 목숨 왜 아니랴
눈으로 흘러야만 눈물은 아니라고
뼈가 녹아 살이 녹아 물이 된 모든 물은 다 눈물이라고
눈물 없이 태어난 목숨은 없다고, 사랑도 시도 눈물의
자식들
우리 몸의 70% 이상이 눈물, 물주머니 물탱크락
삶만큼 크고 깊은 저수지 댐이라고
수력발전소를 세우라고
새싹들 아우성치며 푸르러가는 봄 봄봄.
------------
+ 미소론
국보 제78호
삼국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한 장 사진만으로
새 정토淨土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아름다운 극치
극치의 신비 신비로운 절대
이 미소 이상은 모두가 게거품이고
이 미소 이하는 모두가 딸꾹질이다
안면근육경련이다.
=======
+ 빨래꽃
이 마을도 비었습니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접어들어도 호젓하지 않았습니다
폐교된 분교를 지나도 빈 마을이 띄엄띄엄 추웠습니다
그러다가 빨래 널린 어느 집은 생가보다 반가웠
습니다
빨랫줄에 줄 타던 옷가지들이 담 너머로 윙크했습니다
초겨울 다저녁 때에도 초봄처럼 따뜻했습니다
꽃보다 꽃다운 빨래꽃이었습니다
꽃보다 향기로운 사람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디선가 금방 개 짖는 소리도 들린 듯했습니다
온 마을이 꽃밭이었습니다
골목길에 설핏 빨래 입은 사람들은 더욱 꽃이었습니다
사람보다 기막힌 꽃이 어디 또 있습니까
지나와놓고도 목고개는 자꾸만 뒤로 돌아갔습니다
----------------------
+ 주생전酒生前
기다리지 마라
단잠은 먼 길을 떠났고
독서도 독경도 외박 중이다
오늘 밤
내 잔을 받아라
나는 길이로되 외길이요 지름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단잠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다시 이르기를,
이는 내 독 중의 맹독이니 들어마시거라
마실수록 초고속으로
숙면의 터미널에 도착하리니
첫닭이 울기 전에 충분하리라
주酒의 간곡한 충고였습니다.
-----------------
+ 구두 무덤
몸을 담아주던 몸을 묻는다
어느 생에 틀림없이 내 속살이었을 그를
영혼을 담아주던 육체를 묻고
영혼 혼자 돌아온 듯 안절부절못한다
내 몸을 위해, 말 갈 데 소 갈 데 안 가리느라. 제 몸을
망친 십수 년 동안, 세 번이나 밑창갈이를 했으니, 더는
어쩔 수 없다지만, 헌신짝 버리듯 차마 버릴 수 없어
내 손으로 내 몸의 몸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진실로 가장 충성스러웠던 내 몸 중의 몸이었는데
몸 잃고 혼자 돌아온 알몸
발 붙일 데 없어 시리다 저리다.
---------------
+ 허수아비
장가든 적도 없는데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이름까지 깨끗한 허수虛手라는 파다한 소문이다
취중에도 결코 실수한 적 없었지만, 심중에는 간절히
바랐던 적 있었으니, 낳아야 자식인가 키워도 자식이지,
키워보면 안다, 기른 정의 바닥 모를 깊이를
나 같은 빈손에게도 자식이 있었다니
들길까지 마중 나와 기다리는
아비가 모르는 외아들을 둔
성 총각聖總角의 애타는 부정父情으로
겨울 들녘 풍경도 오히려 따스하다.
===========
+ 어머니의 물
생수를 마실 때마다 어머니의 물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물은 H2O가 아니었지, 우물 속 용신龍神에
게 예의를 지키느라, 안마당 우물에서도 한밤중 두레박
질은 금하였고, 땅을 판다고 우물일 수 없으니, 마실 만
한 사람이 사는 곳에서만 우물이 생기는 법이니, 먼저 물
마실 자격을 갖추라셨고
때로는 우물가를 정돈하고 발길을 삼가, 고요의 한나
절을 바치기도 했으니, 행여 용신이 떠나가서, 물이 마르
거나 물맛이 변할까 염려하였고, 신새벽 첫 두레박 물은
하늘의 몫이라고 장독대에 울리셨지
'물쓰듯 한다'는 말도 있지만, "생전에 쓴 물은 저승 가
서 다 마시게 된다"시며 물인심이란 필요한 때 필요한 만
큼이라고 노래하듯 이르시며
우물가엔 구기자나 향나무를 심어야, 그윽한 물맛으로
우물과 사람이 함께 편안하다면서, 쓰고 난 물로 토란을
키우섰지
"부모 잃고는 살아도, 물 잃으면 못 산다"면서, 못물 도
량물 냇물조차 섬기며, 물보다 낮춰 사신 어머니의 그 물
도 이젠 다만 H2O가 되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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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책 읽기
뉴스에 새로운 식물이 발견되어
학계에 등록되었다고
새로운 파충류가 남미 정글에서 발견되었다고
그렇다, 반드시 있다 세상의 지도에는, 아무도 가지 않
는 거기에,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거기에, 진실의 땅은 있으니
그래서 지도책知道冊은 언제나
시대와 역사보다 크고 깊은 책
사람의 일생보다 긴 눈길로 읽는 책
그래서 진실의 땅을 그려 넣는 책
그래서 언제나 미완성의 책
그래서 「주역」의 64 괘도 미제未濟로 끝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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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위의 마술
콩이 좋다 하여 콩자반을 올렸다
가느다란 놋젓가락 두 개를 한 손으로 균형 잡아 쥐고
한알씩 낱개로 집어먹도록 일러준다
가난만이 풍요롭던 시절의 이 고정 메뉴는, 젓가락질
로 한알씩 집어먹으면 목구멍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콩
알보다 굵어졌지, 꼬투리 속에서 함께 자란 형제들은 콩
한 개도 나눠먹고, 두 눈에 콩꺼풀이 씌워, 콩밭 비둘기처
럼 구구구 짝을 찾아서, 콩자반 접시만한 사글셋방살이
오글오글 살며, 콩 튀듯 바지런 바지런히 오늘까지
입보다 큰 스푼으로 삽질하는 게 아니다. 젓가락 한쌍
이 한뜻 되어 한알씩만 집어주는 까닭이 있어, 모름지기
보약 되는 것이란, 밥상 위의 마술이라고 서양사람들이
경탄해 마지않던 콩자반 먹는 기법과 같아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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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의 피크닉
밤중 같은 그림 속으로 피크닉을 갔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검은 여자가, 목고개 삐뚜름
꺾은 여자가, 얼굴이 길고 눈이 큰 여자가, 어두
워서 깊푸른 여자가, 별그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의 별들이 풀밭으로 내려와 몸악기를 타주었다
햇볕에도 피지 않던 귀머거리 풀들이 반뜩반뜩 꽃 피
었다
그 바람에 밤중같이 귀먹은 그 여자의 귀도 꽃이 피었다
별그늘에 앉아서 꽃 피고 싶은 밤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으로 피크닉을 간다
젊디젊어서 캄캄한 나는
그녀와 둘이 아닌 하나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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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날 장터에서
볼 장 다 본 사람이
왠지 볼 장 덜 본 것만 같아
기웃거린 병원 대기실
아직도 내게 팔아야 할 것과 사야 할 게 있는가
왜 그만 발길 돌이키지 못하느냐고 자책하다가
실려가는 중환자와 마주쳤다
아직도 모르느냐
장터 아닌 세상이 어디 있으며
장날 아닌 어느 날이 있느냐
가는 날이 장날이고 가는 곳마다 장터인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볼 장 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외미다 그의 비명이 고막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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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잠을 위하여
어떤 자장가도 부르지 마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음이 되지 말고
이산 저산 돌돌아가며 한 생애 메아리칠
한마디로 태어나도록
깊은 단잠 오래오래 누려 재우고 싶어
잠을 자야 함이 크는 말言을 위하여, 입천장에 거미
줄을 자욱하도록 길게 자거라, 동면冬眠으로 독을 키우는
독사처럼, 나방으로 날기 위해 날잠 자는 번데기처럼, 백
년 잠을 깊이 잔 숲 속의 공주처럼, 왕자까지 불러들은 그
마술의 잠을 빌려
한 벽년 만에 깨어나면, 빈 귀에 메아리칠 절명絶命의
단말마 같은, 못 잊을 한마디로 태어날 수 있을까. 입과
손이 침묵의 집, 고요의 집이 된다면 적막의 집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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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도 경전인가
밸이 뒤틀릴 때마다 순대가 생각난다
밸 꼴리는 세상에서
구절양장九折羊腸 인생을 살아내자면
꼴리는 밸을 어찌 저찌 대처했을 돼지가 스승인 듯
순댓집은 늘 북적대는 사람들로
돼지처럼 살아댈 재간을 배우려는 이들로
나도 순서를 기다려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뒤틀린 밸을 펴는
신통술이라도 깨우쳤다는 듯이 웃고들 나간다
순대야말로 먹는 경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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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를 찾아서
두 눈 부릅뜬 돌하르방이
절대로 없다 해도 반드시 있는
사강의 고독과, 까뮈의 실존이, 바람의 목소리와 파도
의 흰 비늘로 기다리고, 있는 섬 이어도 以漁島는, 지도
없어서 없다고 할 뿐인, 그럼으로써 더욱 현실적인 섬인,
그럼으로써 더욱 목마른 섬인
고독한 실존으로 증명되는
고독한 언어가 귀뜀해주는
이어도以漁島를 찾아서 이어도以漁島로 가자고
비린 내음 짠 바람이 머리채를 나꿔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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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면조의 성탄 캐럴
다듬이 소리에는 나도 귀명창이다
잠결에 들어도 어느 집인지, 빨랫감이 홍두깨에 잠겼
는지, 명주인지 무명인지, 두터운지 얇은지, 양손 다듬이
인지 두 아낙인지, 새댁인지 시어머닌지, 방망이가 대추
나무인지 물박달나무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
눈발도 굵은 설밑에 명절옷을 장만하는 아낙의 그림자
창호문에 어리어, 고저장단의 못새 치는 계면조 가락을
베고, 잠들며 깨며 즐긴 내 귀가 누렀던 축복, 십리 밖 예
배당 종소리도 다듬이 소리를 찾아왔다가, 댓돌 위의 내
고무신만 신어보고 돌아서는 바로 그 시간을 맞춰, 아기
예수는 집집마다 외양간에서 새로 태어나셨느니
성탄 캐럴도 다듬이 소리 더불어 들어야 성탄답다
계면조의 1등은 다듬이 소리이고
겨울밤 다듬이 소리야말로 제일가는 캐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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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생이 이루어지는 곳
난생처음 벽제에 갔다. 새장의 새를 날려 보내는, 자궁
이 아기를 출산시키는, 민들레가 제 꽃씨를 날려보내는,
유럽이 신대륙으로 그 식속들을 놓아보낸..... 더 나을
어디로 놓아보내는 모두가 방생 아닌가
형체에서 본질로, 보이는 구속에서 안 보이는 자유로,
육신에서 혼백으로 방생되는 동안, 내가 아는 이름 하나
도, 석자 이름감옥에서 풀려나고 있었으리, 피와 눈물과
살과 뼈에서, 바람과 수증기와 연기와 무엇 무엇들로 놓
여나, 아메리칸드림보다 기찬 꿈을 실현하러, 낯선 세상
산 설고 물 설은 어디로 가고 있었으리
이승의 방생이 이루어지는 벽제 화장장
중국의 물고기를 한국의 강물에 놓아주는 방생보다
진정한 방생이 이루어지는
깨우침도 배움에서 놓여나는 곳
사월 초파일이 방생의 날이라면
화장장은 날마다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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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구름도 먹구름 묵향 진동하고
파도도 추사체로 일어서다 무너지는 먹빛
유배 9년 동안 벼루 씻은 먹물 속에 이냥 뛰어들었다가
신필神筆의 기운 혹시 뻗쳐오르거든
젖은 몸뚱어리 그대로를 동댕이쳐
세상을 그냥 파지破紙 한 장으로 뭉개버리고만 싶어
탱천 하는 분노여
태풍아 몰려와라.
*제주도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9년 유배지. 이곳에서 세한도를
그렸다고 전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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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이슬을 마실 때마다
풀여치였는데
배짱이었는데
방울뱀이었는데
울어본 행복은 언제였을까
빛바래고 메마르고 꺾어져야만,
비로소 향기로운 겨울풋밭처럼
구겨지고 헝클리고 망가져야만
나 같은 진짜 나
오동지 섣달, 저무는 서녘 하늘, 피칠갑 노을 속에 불타
죽고 싶어, 허파꽈리 뒤틀며 목놓아 울다 죽을 업장의 부
우헝! 제 몸보다 더 큰 울음주머니로, 겨울밤이 우는 소
리, 단말마에 목마른 겨울 사랑아, 너처럼 울고 싶다 울
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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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한 이별식
가볍게 몇 걸음 옮기다 돌아서더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한다는 말이
다달이 한두 번씩은 어렵겠지만
라디오 FM에서도 괜찮은 음악을 들어보게 되듯이
마음 내키면 마땅한 때를 골라
바람도 쐬듯 그러게 바람소리 같더라도
사소한 소식이라도
아릿하지만 알음알음으로라도 건네주고 받자고
자발없는 부탁일지 모른다고 윙크까지 결들이고는
차에 오르더니 다시 내다보며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고쳐서는
타다 남은 심지에
파란 불꽃 다시 켜질지 모르지 않는단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궂은비 하늘에다 무슨 고함 발악
질 악다구니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프리모던(premodern)
이 더 인간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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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바다에 와서 바다를 읽어봤다. 바다의, 망망함을 물빛
을 물비늘을 깊이를 수평선을 파도를 해일을...., 물의
변신 물의 언어를, 물에 쓰이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태초의 말씀을, 방대한 바이블을
태초의 언어로 된 태초의 경전
창조신의 말씀책을
알아 못 듣는 목소리로 갈매기가 읽고 가도
알아 못 듣는 목청으로 바람이 읽고 가도
나의 문맹은
어느 구절에다 붉은 줄을 그어야 할지
어느 페이지를 접어두고
어느 대목을 괄호 쳐둘지 몰라
바다에 와서 바다는 못 읽어도, 내가 알아낸 건, 바다야
말로 하늘이라고, 하늘이기 때문에 읽어내지 못한다고,
밤이 되자 바다는 달과 별무리 찬란한 하늘이었으니, 아
무리 올라가도 하늘밑일 뿐이던 그 높이가, 눈 아래 두
발 아래 내려와 펄쳤다니, 가장 낮은 데가 가장 높은 곳
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하나 겨우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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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내가 없어지는 서울
특별시민들이 문맹인지 글자 아닌 삼색신호가 호령하
는 수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세종 임금님과 집현전
학사들께 그지없이 죄송스러워지며, 신호가 심보를 바꾸
기를 기다리는 동안, 소음도 익을 대로 익어 고요가 되었
는지, 갑자기 쥐 죽은 듯 적막해지면서, 온 세상이 깜짝
없어져버렸다.
뎅그마니 나만 보였다, 내 눈으로 나만을 대면해야 하
다니 얼마나 놀랍고 민망스러운가, 어쩔 줄 모르다가 두
눈을 떠봤다. 갑자기 홍수가 왜장치며 달려들었다. 봉두
난발한 세상이 달려들었다,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은 나 혼
자뿐이었다. 내가 통째로 없어져버렸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없어져야 내 마음이 편하다면 남들이 오죽하랴
둘러보니 누구도 나를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있어도 없는 나는 나한테만 있었구나
내가 없는 세종로를
없는 내가 편안한 걸음으로 천천히 건너갔다
신호가 바뀌어도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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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아비도 할아비도 중. 고조 할아비들도, 바다로 살아온
뱃사람들이었느니, 갈릴레아는 바다 이상 그 바다 어부
들이었느니, 찝찌름한 소금물의 혈통대로 갯내음 비린,
시몬 바요나, 그가 바로 갈릴레아 바다이던 큰 어부도
너무 잘 알면 너무 모르게 되는가
그것이 제 자신일 때는 더욱 그러한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찾아내지 못할 뿐
한 생애 허탕치고 나서야 마지막 그물을 던져볼 거기
진짜배기 횡재가 기다리는
바다만 한 상처 하나 찾아내야 한다
더 깊은 상처도 만들어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
만 가는, 단 한 번만으로 운명을 바꿔주는, 다칠까 봐 손해
볼까 봐 계산부터 먼저 하는, 지레 겁먹고 엄살떨며 도사
리던 숙맥일수록, 목숨을 결단낼 상처 하나 키워야 한다.
세상보다 깊고 큰, 목숨보다 오래가는 깊푸른 상처에다,
혼신으로 그물질을 해야 한다고, 성소가 세워질 반석이
된다고, 힘줘 일러주는 루가 선생 만나다.
*신약 성서 <루가복음> 5장 4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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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줄여서 불행감을 줄이자
나이도 가졌고 지병도 가졌고, 비교하기 따라서는 가
난도 필요한 만큼은, 져야 할 책임도 아직 많이 가졌는
데, 가진 것이 많은 나를 왜 뒤쫓을까 희망은, 장 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 경사처럼, 그가 설핏하면 나는 그만 불
행해져
내 힘에는 늘 과적이고 과부하량이라
쓸 만하게 굴러가는 생활의 바퀴는 펑크가 나고
자족의 브레이크도 파열되고 마는데
군침 도는 밤참처럼, 달디단 낮잠처럼, 성남시 모란시
자의 야바위꾼처럼, 유혹을 쉬지 않는 고질병, 어느새 과
식해서 과체중을 더 보태는, 희망을 덜어내어 불행감을
줄이자고, 희망을 줄이는 게 희망은 나의 오오랜 희망 희
망 희망.
______*74
다보탑을 줍다
==1>
33
며느리
위궤양
벌건 착각
-------------
나이 계산법
별전 창세기
비가는 소리
주소가 없다
----------------
다보탑을 줍다
무지개를 읽다
나는 늘 기다린다
나이가 수상하다
--------------------
예외를 발견하다
코스모스 학교길
현관에서 다 안다
내가 가장 아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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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기다리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물오징어를 다듬다가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
부석사는 건축되지 못했다, 그래서
===2>
실언
고흐 꽃
전문가
콩꺼풀
-----------
입 없는 돌
히프의 길
나의 천국은
눈 밖에 나다
----------------
선녀의 선택
숙녀의 조건
간고등어 한 손
가까워서 머나먼
--------------------
과거를 잘라내며
나는 본래 없었다
나무꾼의 알림글
물고기가 웁디다
--------------------
벽화 그리는 술독
삐까소 전을 보고
칠박자로 하는 말
팔자를 생각하다
---------------------
퇴계 선생의 미소
내가 나의 감옥이다
첫 도둑질의 증거물
곡선으로 살으리랏다
-------------------------
나는 살아 있지 않았다
갈색 가을, 샹송의 계절에
추억, 너무 낭비하지 말자
어린이의 아들이 어른의 아버지를 가르치다
====3>
야호
물고기
물공 몸
미소론
--------
빨래꽃
주생전
구두 무덤
허수아비
-------------
어머니의 물
지도책 읽기
밥상 위의 마술
심야의 피크닉
------------------
장날 장터에서
말의 잠을 위하여
순대도 경전인가
이어도를 찾아서
-----------------------
계면조의 성탄 캐럴
방생이 이루어지는 곳
제주 대정 앞바다에서
참이슬을 마실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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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한 이별식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있는 내가 없어지는 서울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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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줄여서 불행감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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