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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당/시인 가 ~

김용택 시 모음

김 용택

흔적 ㅣ그랬다지요 ㅣ 빗장 ㅣ 푸른나무
섬진강15 ㅣ 미쳐 하지 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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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고 싶어요 ㅣ 내게 당신은 첫눈같은 이

그대 생의 솔 숲에서ㅣ그리운 꽃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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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ㅣ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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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어제 밤에 그대 창문 앞까지 갔었네
불 밖에서 그대 불빛 속으로
한 없이 뛰어들던 눈송이 송이
기다림없이 문득 불이 꺼질 때
어디론가 휘몰려 가던 눈들

그대 눈 그친 아침에 보게 되리
불빛 없는 들판을
홀로 걸어간 한 사내의 발자국과 
어둠을 익히며 
한참을 아득히 서 있던
더 깊고
더 춥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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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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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서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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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나무 

나도 너 같은 봄을 갖고 싶다
어둔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며
어둔 하늘로는 하늘 깊이 별을 부른다 너는
나도 너의 새 이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
큰 몸과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들이
세상의 어느 곳으로도 다 뻗어가
너를 이루며 완성되는 찬란하고 눈부신 봄
나도 너같이 푸르른 시인이 되어
가난한 우리나라 봄길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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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15 
   - 겨울, 사랑의 편지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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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쳐 하지 못한 말

살다가,
이 세상을 살아가시다가
아무도 인기척 없는
황량한 벌판이거든
바람 가득한 밤이거든
빈 가슴이, 당신의 빈 가슴이 시리시거든
당신의 지친 마음에
찬바람이 일거든
살다가, 살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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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고 싶어요


오늘
가을산과 들녘과 물을 보고 왔습니다.
산골 깊은 곳
작은 마을 지나고
작은 개울들 건널 때
산의 품에 들고 싶었어요, 깊숙이
물의 끝을 따라 가고 싶었어요
물소리랑 당신이랑 한없이

늘 보고 싶어요
늘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에겐 모든 것이 말이 되어요
십일월 초하루 단풍 물든 산자락 끝이나
물굽이마다에서
당신이 보고 싶어서,
당신이 보고 싶어서 가슴 저렸어요
오늘 
가을산과 들녘과 물을 보고 
하루 왼종일
당신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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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당신은 첫눈같은 이

처음 당신을 발견해 가던 떨림
당신을 알아 가던 환희
당신이라면 무엇이고 이해되던 무조건,
당신의 빛과 그림자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슴에 연민으로 오던 아픔,
이렇게 당신께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짐을 나는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사코 거부할랍니다.
당신이 내 일상이 되는것을,
늘 새로운 부끄럼으로
늘 새로운 떨림으로
처음의 감동을 새롭히고 말 겁니다.
사랑이,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이 세상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랑을 이끌어 낼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기막힌 별을 따는 것이 어디 두 번이나 있을법한 일일하구요.
한 번으로 지쳐 혼신이 사그라질 것이 사랑이 아니던지요.
맨처음의 떨림을 항상 새로움으로 가꾸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그것은 의지적인 정성이 필요한 것이지요.
사랑은 쉽게 닳아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대한 정성을 늘 새롭히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 생애에 인간이 되는 첫관문을 뚫어주신 당신이 영원으로 가는 길까지 함께 가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당신처럼 귀합니다.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아픔도, 당신의  소망도, 당신의 고뇌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당신 하나로 밤이 깊어지고 해가 떴습니다.
피로와 일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놓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내게,
아, 내게
첫눈 같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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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생의 솔 숲에서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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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꽃편지1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료.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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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이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도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보면 이슬처럼
반짝떨어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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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림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래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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