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올해엔 말이지,라고 쓰면
그 두 마디가 흰 팝콘이 되어 종이에서 튀어 오르는 거지
때죽나무 흰 꽃으로 퐁퐁 피어날 때도 있어
언제나 돈이 모자란 아내가 돌아앉아 한숨을 쉬면
순간 나는 담모퉁이로 날아가 시치미를 떼지
중년의 모과나무가 되지 오랫동안 점잖고 향기롭게.
아이들이 지쳐 돌아오면
겨울비 속을 터덕터덕 걸어
나무인 나 평화시장 앞까지 나아가네.
신호대기 붉은 등이 바뀌는 순간
숨죽였던 퀵서비스 오토바이 부대는
갈매기 떼가 되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우도나 지도까지의 저 우아한 활강
기분 좋은 날은 대마도 근처까지 스윽 한 번 다녀오기도 한다네.
부은 발 어루만지던 노숙자는
갈매기에 놀라 지하도 벽을 쿵 들이받고, 순간
등 검은 신사고래가 되어
유유히 심해를 미끄러지네
쿠릴 열도 돌아
희망봉까지.
올해엔 말이지, 라고 적어보네
흰 팝콘이 튀어오를 때까지
갈매기와 고래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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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섯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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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미
모과나무 우듬지에 매미 하나 붙어 운다
끝나지 않을 오포(午砲)소리같이 캄캄하다.
길게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 뒤로
살색 흰 여자가 떠나고
눈을 훔치는 손등에도 땡볕 캄캄하다.
굴속 같던 울음이 찌르찌르 개자
잠시 세상이 밝아진다.
더위에 지친 머위잎들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저물기를 기다린다.
어두운 부뚜막과
생솔가지 매운 연기의
멀건 호박풀때의 저녁이
천천히 그 위로 내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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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도 안 고프고, 몇 날을 나도 힘도
안 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 개뿐허요, 그저 좋아 자꾸
콧노래가 난다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 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운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허요. 좀 웃는가 싶으며,
세상이 봄날같이 환해져라우, 그 길로 그만 죽어도 좋을 것
같어져라우, 남들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
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믄 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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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펜
볼펜이 자빠져 있네.
다 쓴자지 같네.
썰은 과매기 토막 같네.
나는 왜 저 볼펜이 시무룩하다고 생각할까.
볼펜은 그 여자의 하이힐 소리와 냄새와 작은 손등과 푸
른 실핏줄을 기억할까.
펄쩍 뛰어라도 봐 볼펜!
논두렁의 개구리처럼 괜히 한번
털렁거려봐 볼펜!
시골길 쇠불알처럼 천연덕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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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
문 앞에서 그대를 부르네.
떨리는 목소리로 그대 이름 부르네.
나 혼자의 귀에는 너무 큰 소리
대답은 없지 물론.
닫힌 문을 걷어차네.
대답 없자 비로소 큰 소리로 욕하네.
개년이라고.
빈집일 때만 나는 마음껏 오짖지.
차가운 문에 기대앉아 느끼지.
계단을 오르는 그대 발소리
열쇠를 찾는 그대 손가락
손잡이를 비트는 손등의 융터
문 안으로 빨려드는 그대의 몸, 잠시 부푸는 별꽃무늬 플
레어스커트
부드러운 종아리
닫힌 문틈으로 희미한 소리들 새어 나오지.
남아 떠도는 냄새를 긴 혀로 햛네.
그대 디딘 계단을 어루만지네.
그대 뒷굽에 눌린 듯 손끝이 아프지만
견딜 수 있지 이 몸무겍 그리고 둥근 엉덩이
손이 떨리네 빈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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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 娑婆.)
이것으로 올해도 작별이구나
풀들도 주섬주섬 좌파늘 거두는 외진 길섶
어린 연둣빛 귀뚜리 하나를(생후 며칠이나!)
늙은 개미가 온 힘을 다해 끌고 간다.
가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아직 산 놈이면 봐주는 게 어떻겠는가, 하자
한사코 죽은 놈이다 우긴다.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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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선생님 저는 작은 지팡이나 하나 구해서
호그와트로 갈까 해요.
아 좋은 생각,
그것도 좋겠구나.
서울역 플랫폼 3과 1/4번 홈에서 옛 기차를 타렴.
가방에는 장난감과 잠옷과 시집을 담고
부지런한 부엉외와 안짱다리 고양이를 데리고
호그와트로 가거라 울지 말고
가서 마법을 배워라.
나이가 좀 많겠지만 입학이야 안 되겠니.
이곳은 모드 머글들
숨 막히는 이모와 이모부들
고시원 볕 안 드는 쪽방 뒤로
한 블록만 삐끗하면 달려드는 '죽음을 먹는 자들'.
그래 가거라
인자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주근깨 친구들
목이 덜렁거리지만 늘 유쾌한 유령들이 사는 곳,
빗자루 타는 법과 초급 변신술을 떼고 나면, 배고프지 안
는 약초 욕먹어도 슬퍼지지 않는 약초 분노에 눈 뒤집히지
않는 약초를 배우거라. 학자금 융자 없애는 마법 알바 시급
올리는 마법 오르는 보증금 막는 마법을 익히거라. 투명 망
또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그곳이라고 먹고살 걱정 없을까마는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저 흑마술을 잘 막아야 한다.
그때마다 선량한 사냥터지기 해그리드 아저씨를 생각
하렴.
나도 따라가 약초밭 돌보는 심술 첨지라고 되고 싶구나
머리 셋 달린 괴물의 방을 지나
현자의 돌에 닿을 때까지,
부디 건투를 빈다
불사조기사단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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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탈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 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 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별 기우는 초저녁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 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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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차
차라리 귀가 없었으며 싶었다.
동틀 녘 바람 맵고
턱이 굳어 말도 안 나오며
두산 삼거리
언 발로 얼음을 구르며 차를 기다렸다.
광목 수건을 꽁꽁 동이며
젖이 분 새댁은 주막집 부엌에 들어가
울며 아픈 젖을 짜내고
흐른 젖에서는 김이 오르고
김치 그릇 미끄러지는 밥상을 든
어린 식모는 손등이 터졌다.
내다보는 눈이 아릴 때까지
보은 가는 첫차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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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분(草墳)
나 죽거든 애인아
바닷가 언덕에 초분 해다오.
바닥엔 삼나무 촘촘히 놓고
솔가지와 긴 풀잎으로 덮어다오.
저무는 바다에
저녁마다 나 넋을 놓겠네.
살은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지고
먼 곳의 그대 점점 아득해지리.
그대도 팔에 볼에 검버섯 깊어지고
시든 꽈리같이 가슴은 주저앉으리.
대관절 나는 무엇으로 여기 있나,
곰곰 생각도 다 부질없고
밤하늘 시린 별빛에도 마음 더는 설레지 않을 때
어린 노루 고라니들 지나다가 캥캥 울겠지.
오요요 불러 남은 손가락이라도 하나 내주며 같이 놀고
싶겠지.
버리고 온 자동차도 바람에 바래다가 언젠가 끌려가겠지.
비라도 오는 밤은 내 남은 혼
초분 위에 올라앉아 원숭이처럼
긴 꼬리 서러워 한번쯤 울어도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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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설거지를 마치고
어린 섬들을 안고 어둑하게 돌아앉습니다.
어둠이 하나씩 젖을 물립니다.
저녁비 호젖한 서호시장
김밥 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
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
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 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
들께서도
억세고 정겨운 통영 말로 봄장마를 고시랑고시랑 나무라
시며
흰 뼈들 다시 접어
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
저로 말씀드리면, 이래 봬도
충청도 보은 극장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
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흘려서
앳된 보슬비 업고 걸려 민주지산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
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
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
어진 막내처제가 있어
형부! 하고 좇아나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입니다.
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엽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가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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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선
한번은 터지는 것
터져 넝마 조각이 되는 것
우연한 손톱
우연한 처마 끝
우연한 나뭇가지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모퉁이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많이 불릴수록 몸은 침에 삭지 무거워지지.
조금 질긴 것도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네.
모퉁이를 피해도 소용없네.
이번엔 조금씩 바람이 새나가지.
어린 풍선들은 모른다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뿜내고 싶어 지지
더 더 더 더 커지고 싶지.
아차,
한순간 사라지네 허깨비처럼
누더기 살점만 길바닥에 흩어진다네.
어쩔 수 없네 아아,
불리지 않으면 풍선이 아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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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
빈 들 너머
버스는 달려가고 물방개처럼
추수 끝난 나락 대궁을 나는 뽁뽁 눌러 밟았네
피는 먼지구름 위로
하늘빛은
고요
돌이킬 수 없었네
아무도 오지 않던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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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처마 밑에 쪼그려
소나기 긋는다
들오와 노다 가라
금칠가을 하고 앉아 영감은
열궂게 눈웃음을 쳐쌌지만
안 본 척하기로 한다
빗방울에 간들거리는 봉숭아 가는 모자지만 한사코 본다
텃밭 고추를 솎다 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빨래를 걷던
옛적 사람 그이의 머릿수건을 생각한다
부연 빗줄기 너머
젋던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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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서소
연필심 맛을 기억하시나 몰라
지리한 대서소의 맛
갈탄 난로가 인색하게 타면
유 서기의 검정 토시
반들거리던 고르뗑 바지 무르팍의 맛
한옆에 팔장을 끼고 서서
생쥐처럼 눈이 작던 그 아내
공책도 팔고 과자도 팔던 그 아내
월남치마 밖으로 비어진 엑스란 내복 낡은 끝단의 맛
여름에는 냉차도 팔고
슬하 삼남매
지지리도 인물 없던
그 지리한 맛.
=========
+ 둥근 등
귀 너머로 성근 머리칼 몇을 매만 저 두고
천천히 점방 앞을
천천히 놀이터 시소 옆을
쓰레기통 고양이 곁을
지난다 약간 굽은 등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가만히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천천히 걸어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둥근 봉분 하나
철 이른 눈도 내려서 가끔 쉬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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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포 1
담배 문 손등으로 비가 시린데 말이지.
갯가로 시집간 딸아이 웅크린 등에도 이 찬비 떨어지겠
고 말이지.
쉐타 팔짱 너머, 널어놓은 가재미 도다리나 멀거니 내다
보겠지.
터럭도 사나운 다리를 승승 걷골랑,
토수(土水) 질 간 사위 놈은 말이지,
지집 우흐로 용을 쓰던 그 딴딴한 아랫배 장딴지로,
재 너머 고래실 흙반죽이나 찌거덕찌거덕 밟아쌓겠지,
비는 그새 굵어지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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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포 2
할멍구는 망할 망구는 그 무신 마실을 길게도 가설랑 해
가 쎄를 댓발이나 빼물도록 안 온다 말가 가래 끓는 목에
담배는 뽁뽁 빨면서 화투장이나 쪼물거리고 있겠제 널어논
고기는 쉬가 슬건 말건 손질할 그물은 한짐 쌓아놓고 말이
라 칼칼 웃으면서 말이라 살구낭개엔 새잎이 다시 돋는데
이런 날 죽지도 않고 말이라 귀는 먹어 안 듣고 처묵
고 손톱만 가는 할미는 말이라 안즐뱅이 나는 뒷간 같은 골
방에 처박아놓고 말이라
올봄엔 꽃잎 질 때 따라갈 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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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k
48년 9개월의 시간k가 엎질려 있다.
코를 골며 모로 고여 있다.
한사코 고체로 위장하고 있다.
넝마의 바지 밖으로
시간의 더러운 발목이 부어 있다.
소주에 오래 노출된 시간은 벌겋다.
끈끈한 침이 얼굴 부분을 땅바닥에 이어놓고 있다.
시간 k는 가려운 옆구리와 가려운 겨드랑이 부위가 있다.
긁어보지만 쉬 터지지는 않는다.
잠결에도 흘러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더러운 봉지에 갇혀 시간은 썩어간다 비닐이 터지면
힘없는 눈물처럼 주르르 썩어간다 비닐이 터지면
시큼한 냄새와 함께
잠시 지하도 모퉁이를 적시다가
곧 마를 것이다. 비정규직의 시간들이
밀걸레를 밀고 지나갈 것이다
허깨비 시간들, 시간 봉지들
=========
+ 엉덩이
영주에는 사고도 있지
사광에는 사과에는 사과만 있느냐,
탱탱한 엉덩이도 섞여 있지
남들 안 볼 때 몰래 한입
깨물고 싶은 엉덩이가 있지.
어쩌자고 벌건 대낮에 엉덩이는 내놓고
낯 뜨겁게시리 뜨겁게시리
울 밖으로 늘어진 그중 참한 놈을 후리기는 해야 한다네
그러므로,
후려 보쌈을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영주에서는
업어온 처자 달래고 얼러
코고무신도 탈탈 털어 다시 신기고
쉴 참에 오줌도 한번 뉘고
희방사 길 무쇠다리 주막 뒷방쯤에서
국밥이라도 겸상해야 사람의 도리!
고개를 꼬고 앉은 치마 속에도
사과 같은 엉덩이가 숨어 있다는 엉큼한 생각을 하면
정미소 둘째 닮은 하여벌건 소백산쯤
남들 안 볼 때 한입 앙,
생각만 해도 세상이 환하지 영주에서는
---------------
+ 옛 우물
늙은 거미처럼이라고 적는다.
버려진 집에 뒹구는 이 빠진 종지처럼 이라고
서리 덮인 새벽 둑방 길처럼
섣달 저녁의 까마귀처럼이라고 적는다.
폐분교의 엉터리 충무공 동상처럼
변두리 차부의 헌 재떨이처럼 이라고
찾는 이 없는 옛 우물
오래전 버려진 그 곁의 수세미처럼
문을 닫고 힘없이 돌아서는 처용이처럼이라고
적는다.
선득 종아리에 감기다 가는 게 개 울음소리처럼
혼자 깨어 누는 한밤중의 오줌처럼이라고 적는다.
외롭다고 쓰지 않는다 한사코.
---------------
+ 총알값
열아홉살 카베 알리포어, 귀가 도중 테헤란 시내 교차로
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2009.6.20)
총알값 삼천 딸라 가져와야 아들 시신 내준다! 전재산 털
어도 그렇게 안된다고 가난한 아버지 울고불고 사정하다
시신 인수를 포기하자, 시내 밖에서만 장사 지내면 총알값
을 빼주겠다!
결혼식을 한주일 앞둔 총각이었네.(인살라!)
얼씨구나 절씨구 여기도 총알 저기도 총알 일 나가서는
아버지도 한대 빵, 빨래하는 엄마도 피곤하신데 한대, 양젖
짜는 누나도 한방, 학교 가기 싫던 차에 에라 나도 한대 빵,
싼값일 때 한방씩 고루고루 한방씩
삼천불도 헐값인데 말 들으면 공짜라네.
창고정리 대방출 눈물의 부도 쎄일
포털 검색에는 오늘의 총알 시세
총알이 날아오면 일단 피할 것. 오늘의 시세를 확인한
다음
값 좋을 때 달려나가 듬뿍 맞을 것.
물대포도 그래
샤워장비 사용료에 물값에 인건비
곤봉도 수입목, 수고료는 또 어떻고,
시위도 돈 있어야 하느 건 이제 글로벌 상식
총알값도 없는 주제에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데모는 무슨!
집회시위 신고 총알값 물값 기타 인건비 공탁 걸어야 해.
확성기에도 돈 매겨야 돼. 불특정 다수 청각신경 무단학
대료, 그로 인한 인근 사무원들 업무지체 손해배상, 그로 인
해 예상되는 정신적 충격과, 또 그 뭣이냐, 과민성 후유장애
대비 보중보험료, 그 보험료를 위한 또 보험료.
그래서 문제야, 이란은!
먼데로 좀 떠메고 나간다고
총알값이 면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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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얼빠진 집구석에 태어나
허벅지 살만 불리다가 속절없이 저무는구나
내 새끼들도 십중팔구
행랑채나 지키다가 장작이나 패주다가 풍악이나 잡아주다가 행하 몇 푼에 해해거리다 취생몽사 하리라.
괴로워 때로 주리가 틀리겠지만
길은 없으리라
친구들 생각하면 눈물 난다.
빛나던 눈빛과 팔다리들
소주병 곁에서 용접기 옆에서 증권사 전광판 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져
눈도 감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불쏘시개.
오냐 그 누구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는 어디서 무심히도 풀무질을 해대는 거냐.
똑바로 좀 보자.
네 면상을 똑 바로 보면서 울어도 울고 싶다.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다.
=========
+ 후일담*
구장집 셋째 아들은 봄바다 속으로 가고 말았네.
부잣집 과부 일은 알 수 없지만
남대문 시장 사장 노릇 얼마 하다가
갓 마흔 IMF에 부도를 맞고
몹쓸 약 삼키고 떠나갔다네.
시내버스에서 양말 팔던 우스개 좋던 둘째도
머리 좋던 맏이도
뒤따라 제 손으로 세상 버렸네.
무슨 놈의 스토리가 늙은 두 양주
온 동네 쏫다니는 노망난 아내를
등 굽은 영감이 종일 거두며 따라다니네.
밥그릇 들고 따라가며 거둬 먹이네.
다음 생엔 어느 집에 태일 것이냐
구장집 잘도 났던 셋째 아들아
한심한 불알 두쪽 셋째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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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길
지나는 사람 없고
시든 엉컹퀴 대궁만 멀춤할 때 늙은 호박 엉덩이 무거워
져 이제 혼자는 못 일어설 때
늦은 봉숭아 꽃잎 몇날과 쉰 고구마줄기와 아주까리, 한
사코 감고 오르는 까끄랭이 환삼과 개미들과
먼 데 누워 계시는 윗대 어른들 생각과 다시 콩밭과
잘 벌은 깻잎과 고추밭과 열무 배추와 불쑥한 토란대 몇
뿌리와 순간 까투리 푸다닥 날고, 문득 아픈 아내 생각과
밭둑 수숫대와 영글어가는 나락들과 엉뚱한 흑장미 한 그
루와
처서 백로 자니 오오 바람도 흙도 풀도 볕에 잘 마른 것,
개미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들로 나는
두루 그득해져
자불자불 졸리면서
전주 이씨네 산소 치장이나 한번 볼까 길을 바꿔 잡으며
어머니 비석에는 남원 양 아무게 여사라고 써볼 생각과 그
럼 학생부군 아버지는 뭘라고 하나 싱거운 생각도 들다가
이 별의 한 모퉁이에 나도 머무는 데까지 잘 머물다가 어
른들 가시는 것 봐드리고, 장인 장모님도 잘 배웅해 드리고,
친구들과도 오명가명 지내다가. 세금이나 과태료 같은 거
밀린 것 없이 있다가, 아이들 짝 만나 서로 돌봐가며 지내
는 것 잠깐 보다가, 좀 아파보니 아파서 죽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아내 말마따나 너무 많이 앓지는 말고, 그
만할 때쯤 내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여뀌풀꽃 분홍 수줍고
배추잎 하나가 우산만 하고
다만
고요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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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여객
창틀에 먼지가 보얗던 금남여객
대흥동 버스 차부 제일 구석에나 미안한 듯 끼여 있던
회남행 금남여객
관암동 세천 지나 내탑 동면 오동 지나 몇 번은 천장을 들
이 받고 엉덩이가 얼얼해야 그다음 법수 어부동
'대전 갔다 오시능규, 어쩌구 하는
데 냅다 덜커덩거리는 바람에, 나까오리를 점잖게 들었다
놓아야 끝나는 인사 일습 마칠 수도 없던 금남여객, 그래도
굴하지 않고 소란통 지나고 나면 다시 '그래 그간 별고는
읎으시구유' 못 마친 인사 소리소리 질러 기어이 마저 하고
닳고 닳은 나까오리 들었다 놓던 금남여객
보자기에 꽁꽁 묶여 머리만 낸 암탉이 난감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던 금남여객
하루 세차례 오후 네시 반이 막차지만 다섯 시 넘어와도
잘하면 탈 수 있던 금남여객
장마철엔 강물 불어 얼씨구나 안 가고 겨울에는 길 미끄
럽다 안 가던 금남여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리던 금남여객
쿠당탕 퉁탕 신작로 오십 리 혀도 깨물고 반은 얼이 빠져
강변에 닿으면
섹시처럼 고요하게 금강이 있지
사람은 차 타고 차는 배 타고 배는 다시 사람이 어여차
저어
강 건너에서 보면 그림같이 평화롭던 금남여객
벙어리 아다다처럼 조신하게 실려가던 금남여객
보얗게 흙먼지는 뒤집어쓰고
------------------
+ 무릎꿇다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
+ 미안할 일
개구리 한 마리가 가부좌하고
눈을 부라리며 상체를 내 쪽으로 쑥 내밀고
울애를 꿀럭거린다.
뭐라고 성을 내며 따지는 게 틀림없는데
둔해 알아먹지 못하고
나는 뒷목만 긁는다
눈만 꿈벅거린다
늙은 두꺼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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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사막*
눈부신 가을볕 더는 성가셔 슬쩍 피해 가셨던 말이지.
헌 우체부 자전거는 훔쳐 타고
달밤 무지개 길을 씽씽 달려
(야호! 엉덩이 높이 들고 오두방정 떠시면서)
술벌갱이라고들 소문이 도는 하늘님 영감네 동네로 마실
가셨던 말이지.
볼록볼록 보드라운 보도볼록 길 걸어
흰 구레나룻으로 한몫 먹고 드는 그 심술 영감한테로
내기 장기나 한판 두러 가셨던 말씀이지.
달무리 같은 터번을 쓰고 어린 하마와 고슴도치와 염소
와 늙은 낙타를 업고 걸리고
그대는 왕자같이 잘도 가셨나 본데,
가을햇살 속은 조용히 환한데,
(귓속말인데, 김종삼 천상병 박용래 같은 프로들은 거기
다 계시지요? 한편 부러워요 혹 채광석 박영근 같은 이들이
왈왈거리며 말 트자고 덤비더라도 속상해 마세요 괜히 그
러지 속은 여린 사람들이에요 하기야 튼튼한 이문구 성님
이 통반장 한 구찌쯤은 말아보고 계시겠군요.)
그런데 누구일까 저 백수광부
앞자락 풀에 헤치고 광화문 네거리 둥둥 떠 흘러가는 저
사내.
검붉게 술에 탄 얼굴 다복솥 머리 헐렁한 바지
이 슬픈 시간에.
* 2019년 10월 16일(61세) 세상을 떠난 신현정 시인의 네 번째 시
집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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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호
여섯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
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
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커다란 여섯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
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
해는 저물어가고
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
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아버지가 사무실로 불려 간 뒤
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
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
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
핼쑥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어두운 역사를 빠져나갔네.
밤길 오십 리를 더 가야 했지.
아버지는 젊은 서른여덟 막내아들 나는 홑 아홉 살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
설 쇠고 올라오던 경부선 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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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포일(北京好日)
J는 신이 났다.
한 번씩 엉덩이를 치켜들고 씽씽 구른다.
때는 8월
시커멓게 흔들리는 백양나무 잎새들
땀 밴 젊은 등이 눈부시다.
뒷자리에 모로 앉은 처녀도 모란처럼 활짝 핀다.
사요징 다리 아래 신문지를 깔고
P는 맛있게 낮잠을 잔다.
차들이 씽씽 지나지만 내 알 아니고
어젯밤 판은 한 바퀴만 더 돌았으면
동풍 깡이 난 거라고 입맛을 다시며
사추리께를 긁는다.
못살게도 구는군.
아침부터 마누라는 사납게 울러 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C는 돌아앉아 요지부동
세숫대야를 끼고 앉아 연장들만 매만진다.
아침이면 나도 사루마다 바람으로 창문을 열고
떠우장 장수를 부르곤 했다.
아직도 있나 몰라
북경 서쪽 만풍로 광안로 길
고향 사람 이름만 같던 김명순철공소
다들 정겹게시리 웃통을 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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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우 무렵
서리태 한두홉을 냄비에 볶습니다.
서리태를 볶아 와
팔순의 아버지와 작은아들 나와 손녀아이가 둘러앉아
콩을 먹습니다.
어머니는 가시고
장맛비가 오는데
갓 올린 봉분 안부를
아무도 묻지 않고
오독오독 콩을 깨뭅니다.
콩그릇 곁으로 삼대가 둘러앉아
찧고 까부르는 테레비,
테레비만 멀거니 건너다봅니다.
*삼우제(三虞祭):장사 마친 뒤 세 번째 날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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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시장
굴 한 다라이를 서둘러 마저 까고
깡통 화톳불에 장작을 보탠다.
시래기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우며
테레비 쪽을 힐끗 흘긴다.
누가 당선되건 관심도 없다.
화투판 비광만도 못한 것들이 뭐라고 씨부린다.
판은 벌써 어우러졌다.
추위에 붉어진 코끝에 콧물을 달고
곱은 손으로 패를 쥔다.
인생 그까이꺼 좇도 아닌 거,
옛다 똥피다 그래, 니 처무라
아나 고맙데이 복 받을 끼다
겹겹이 쉐타를 껴입고 질펀한 욕지거리에 배가 부르다.
진 일로 뭉그러진 손가락에 담배를 쥐고
세상 같은 것 믿지 않는다.
바랜 머리칼과 눈빛뿐
믿고 자실 것도 더는 없는 일
인생 그까이꺼 연속극만도 못한 거
고등어 속창보다 더 비린 거.
-------------------
+ 성 베두인
능소화빛 하늘
모랫길은 금빛
흔들흔들
거품을 흘리며
늙은 낙타는
집을 찾아가고
따라 흔들리며
어린
압둘은 눈을 빛낸다.
작은 손으로
지무는 모래산을 가리킨다.
아빠, 나는 저 산을 올라가 보고 싶어요.
저 산도요.
오냐,
오냐,
(총을 메고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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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유사(五月遺事)
팔공년 봄 광주에서 일 당한 사람 중에는, 쩌그 장흥 무안 구례 곡성 같은 디서 유학 와
자취하던 중고등학생 대학 초년생들이 많았는데 어째 그런가 허먼,
계엄령 터징게 놀란 가게들 다 문 닫고, 사방으로 교통은 다 막히고, 양석도 다 떨어지고, 아는 사람은 읎고,
그러니 어찌 항가
효동국민학교 앞 같은디 나가 밥솥에 불도 때며 '기동타격대 취사대'라고 옆댕이 완장도 차고 함시러 있으면, 밥도
묵고 삼립보름달빵도 묵고, 파고다빵은 목이 메어 못쓰고,
오란씨 킨사이다도 얻어 묵고, 또 시민군들 피 모자르다 허먼 헌혈도 허고, 그렇게 있으면 자취방 보담 든든허고 맘도
뿌듯허고, 또 숨어 눈치만 보는 주인집에 얻어다 노나주기
도 할 수 있고 하던 것이제
학생만 그랬간, 지방서 올라와 방 하나 얻어 살던 노가다들, 하루 벌어 하루 먹던 대인동 처자들도 다 똑같았제라.
인제 생각허먼, 계엄입네 빨갱입네 을러대던 쪽은 말할 것도 읎고, 혁명입네 해방입네, 물어보도 않고 아무한테나 열
사다 뭐다 갖다 붙이던 짓도 다, 실은 겁도 나고 애삭해서
하던 좀 거석한 노릇 아니었을게라.
삶과 죽음이 그렇게 밥 먹듯 물 마시듯 자연스레 흐르던
끝의 일이라는 것, 단맛에 잡혀 오란씨 한모금 더 넘기듯
삼립빵 한입 더 베물듯, 삶도 죽음도 본래 그쯤은 허물없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 그러니 삶이 꼭 죽음 앞에서 미안키만
하잘 일이랴
이것, 이 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뜻밖에 오월의 한 속
살, 육이오의 비통한 속살, 갑오동학의 한 인간적 속살이
라는 것은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온갖 아비규화 뒤
에 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 웃음기 도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왜 이렇게 나는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섧은지 모르겠다
안 그런가? 당신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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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에서
잎 넓은 감나무 가로수길 되도록 천천히 걸어
바람과 초가을볕에 흠뻑 젖을 일.
읍사무소 뒤켠 그늘 얌전한 아무 식당으로나
슬쩍 스밀 것.
객방은 정갈하고
다만 올갱잇국,
햇정구지도 향기로운 올 갱잇국을 한그릇 주문하는 것.
먼저 내온 버섯무침을 맛보며
올갱이 잘 줍던 평복이 누나 영숙이 누나,
푸근하던 웃음과 눈매 떠오르고, 올갱이 줍던 그 희고 퉁
퉁하던 종아리들 생각나고,
저녁상 물린 뒤 삶은 올갱이 옷핀으로 빼먹던 생각나고
이빨로 올갱이 꽁지 뚝 뗀 다음 단번에 쭉 빨아먹던 형
님들 생각나고
나도 따라 해 보다가 이 아파 쩔쩔매던 생각도 나다가
올갱잇국 오고
그 쌉싸름한 맛에 마음 다시 아득해져
꼬지지한 염생이 수염 몇 올과 통방울눈의 윤 아무개가
있어
막걸리라도 한잔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창밖으로 문득 눈이 가는데,
감들은 나무에 편안히 잘 달려 계시고
길 건너 자전거 안장 위에 초가을 햇살도 순하고 다복하
시고
간간히 지나는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다 조금씩 먼저 간 그를 닮았다는 것,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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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통신
ㅡ에스컬레이터에서
이렇게 살이 쪘군요 나도 그대도
어디에서 어긋났던 걸까요
아득한 은하
이별로 흘러와
질척이는 뒷골목을 악몽처럼
삼십 년
사십 년
아니, 오십 년을!
ㅡ 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요
사열식의 우로봐 시간 같은 낯선 고요 속에서 생각해요.
살찐 그대의 낡은 외투 끝과 바깥이 닳은 구두굽을
살찐 내가 아프게 보네요.
무엇이 우리를 데려와 이렇게 볼품없이 풍선 부는 걸까요.
불다 팽개쳐 쭈그러뜨리는 걸까요.
ㅡ 당신은 그 별에서 어떤 소년이셨나요
또 다른 당신이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묻네요.
전에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요
우리를 싣고 오르는 이 기계도 말 못 하는 외로운 짐승이
군요.
잠시 후 지상에 닿으면 또 바삐 흩어지겠지요.
질척거리는 뒷골목으로 돌아가
침 묻혀 지폐를 세는 아버지이겠지요.
허겁지겁 국밥을 넘기는 늙은 아버지이겠지요.
기억 못 하겠지요. 그대도 나도
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
두고 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 할 거예요.
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
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
어떤가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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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야?
가슴이 철렁한다.
눈치챈 건 아닐까, 내가 깡통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조차 잊고
언제부턴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걸.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차를 타고
모르는 내색을 아무도 않지.
어게 뭐야?
여기 어디야?
아이가 물으면
집에 갈래, 울먹이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뜨거워지네.
이건 강아지 이건 나무 이건 칫솔 그렇게 일러줄까 허둥지둥
구파발이라고 우리나라라고 지구라고 하면 되나.
강아지가 뭐야, 지구가 뭐야, 다시 물으면?
무서워라
-걱정 마, 좋은 데 가고 있어
-다 와가, 가보면 알아
나도 잘 모른단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왔는지, 저건 무언지
나도 실은 모른단다.
무서워서
입을 닫고 있단다.
내가 누군지도 사실은 모른다고
고백해 버릴 것만 같네.
참아온 울음이 터질 것 같네.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란다 여기선
일러주는 이름이나 외고 있다가
코밑이 시커메지면, 겨드랑이에 털이 돋으면
낮은 돈에 취하고, 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뻘밭에 쓰러져 눕는 거란다.
눈에는 핏발이 오르고
더러운 냄새를 입에 풍기며
제 말만 게워내는 어른이 되지.
모를 것도 물을 것도 더는 없어져
날개옷이 있어도 소용없다네.
떠날 날 문득 닥치면
또 무섭고 서러워 눈물 흐르지.
이곳 어디였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쓰던 몸 놓고 어디로 가자는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으므로.
나도 두렵단다, 여기는 어딘지
나도 모른단다, 아아 아가들아
네가 누군지
나는 또 무엇인지.
---------------------
+ 이대로 좀
금 간 브로크의 키 낮은 담
삐뜰삐뜰한 보도블록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거리고
귀가하던 늙은 내외가 구멍가게 바랜 파라솥 아래 앉아
삶은 달걀과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곳.
우편함 위에는 포장이사 열쇠수리 딱지들 옹기종기 붙어
있고
반쯤 열린 철대문 안쪽으로
문간방 새댁네의 부엌세간들이 비치기도 하는 곳 얌전
한 곳,
직장 없는 안집 둘째가 한 번씩 청바지에 손을 꽂고 골목
이쪽저쪽 훑어보다가 침을 칙 뱉고 다시 들어가는 곳,
스티로폼 상자에 파와 고추 두 그루씩과 상추 몇 포기가
같이 사는 곳.
떨어진 자전거 바퀴 하나가 몇 년째 모셔져 있는 곳.
몽당비가 잘 세워져 있는 곳.
이 하찮은 곳을 좀
부다 하잖은 대로 좀.
====================
+중과부적(衆寡不敵)
조카 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대출할부금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하던 고모 부고 온다. 문상
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젓가락은 두 자루, 펜은 한 자루..... 중과부적!
이라 적고 마치려는데,
다시 주차공간미확보 과태료 날아오고
치과 다녀온 딸아이가 이를 세 개나 빼야 한다며 울상이다.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
------------------
+ 지전 석장
꼴좋다 아큐(阿Q)여
그 잘난 나라여.
반만년이 다더냐 조상의 빛난 얼이라더냐.
오냐 민족중흥이겠구나.
나라여
오냐 나여.
가는 세월 원통하구나.
제가 떠난 것이냐 누가 떠난 것이냐.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았구나.
더럽게 남았구나.
지전 몇 장에 팔려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백주대낮에
눈 뜬 채 코를 털렸으니
우스꽝스러운 피칠갑을 아무도 동정하지 않겠구나.
낄낄 웃겠구나.
손톱 젖혀지도록 할퀴어 잡으며 세월 가는 동안
공포와 비명으로 흘러가는 동안
물에 젖은 오만 원짜리 석장!
꼴좋다 나여
아직도 꼭 쥐고 있구나
국민소득이라고? 집값이 어쨌다고?
똥개야, 조느니 차라리 나라도 물어라.
이따위를 적고 있는데 내 손목이라도 물어라.
종이나 울려라 개떼처럼 왕왕왕
입춘대길 만사형통
때늦은 입춘방이나 하나 그려
네 이마빡에 여덟 팔자로 붙여주마.
오냐 나여, 그래도 잠은 또 오겠구나.
배는 또 고파지겠구나 버러지처럼
오냐 나라여.
---------------------------
+ 화양연화(花樣年華)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흥 머리핀처
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
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멀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
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
를 맞당겨주지 앉지 어느 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
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라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걸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 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
+ 그대의 이름
ㅡ미국에게
그대를
불러
보려고
가위가 놀리거나 멀거나
간에 그대를!
간신히라도
발음해
보려고
내 입으로,
소리를 이루어보려고
그런데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그대 이름
실은 모른다는 것, 나
알았던 적 없다는 것 한 번도!
뭐라고건 불러야
되는데
눈이
뒤집히는데
디뎌야 하는데, 나 어디든
디디고 서야 하겠는데
실은 내 이름도
모른다는 것
이 강산 캄캄한 낙화유수여
기구한 봄날의 매화타령이여
=============
+ 먹는다는 것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
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
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
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
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
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
+ 미루나무 길
설겅주 넘으면 새별 병숭이네 갑윤이네
까치고개 넘어 방앗간, 공동묘지 상엿집 지나 종수 승표네 뒤끝
어디론가 더 가면 하늘에서 물고기가 쏟아지는 으싱이
현식이네 으싱이
뒷동수 널다리 건너 늘 게미 웃말 아랫말 태영이 숭택이에
느름상이 삿갓논 팥밭 한 뼘 비도 끝
신작로 따라 정문거리 고개 넘어 사당마루, 사당마루 지
나 거떠리, 거떠리 너머 거쿠리
그 맞은편 사실, 경범이네 택수네, 고개 넘어 시승골 소리
곱던 화순이 그 오빠 화석이 글 잘 쓰던 인자네
쇠실 지나 더더 가면 가래로 달리기 잘하던 기순이 힘 좋
던 종관이
내 살던 영당은 어디에 있나
내 동무 원대가 토끼풀 뜯으며 강의록 외우던
이발소집 새끼 돼지들 예쁘기도 하던
하늘만 빠끔한 면 소재지
사자를 강 건너 대전 오십 리
피발령 고대 넘어 청주 칠십리
첩첩 고갯마루 굽이굽이 여울들
학교 다리 건너 바탕뫼, 더 가면 양중지 살목 염상굴
바탕뫼 넘어 분저실
강 건너 서다편 그림 같던 백사장
산 넘고 물 건너면 송포 은운 지경말
더 가면 흙먼지
당당 멀었지 키 큰 미루나무
콩자루 이고 가던 먼먼 신작로
-------------------
+ 불길한 저녁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내리네.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네.
그러면 그렇지 이 나라에
‘요행은 없음’
명패를 붙이고 밤이 내리네.
유서대필 같은 비가 내리네.
죽음의 굿판을 걷자고 바람이 불자
공안부 검사 같은 자정이 오네.
최후진술 같은 안개 깔리고
코스모스 길고 여린 모가지 흔들리네
별은 뜨지 않네.
불가항력의 졸음은 오고
집요한 회유 같은 졸음은 오고
피처럼 식은땀이 끈적거리네.
슬프자, 실컷 슬퍼버리자.
지자, 차라리
이기지 말아 버리자.
----------------------
+ 소주는 달다
바다 오후 두 시
쪽빛도 연한
추봉섬 봉암 바다
아무도 없다.
개들은 늙어 그늘로만 비칠거리고
오월 된볕에 몽돌이 익는다.
찐빵처럼 잘 익어 먹음직하지
팥소라도 듬뿍 들었을 듯하지
천리향 치자 냄새
기절할 것 같네 나는 슬퍼서.
저녁 안개 일고 바다는 낮 붉히고
나는 떨리는 흰 손으로 그대에게 닿았던가
닿을 수 없는 옛 생각
돌아앉아 나는 소주를 핥네.
바람 산산해지는데
잔물은 찰박거리는데 아아
어쩌면 좋은가 이렇게 마주 앉아
대체 어쩌면 좋은가.
살은 이렇게 달고
소주도 이렇게 다디단
저무는 바다.
============
+ 에이 시브럴
몸은 하나고 맘은 바쁘고
마음 바쁜데 일은 안되고
일은 안되는데 전화는 와쌓고
땀은 흐르고 배는 고프고
배는 굴풋한데 입 다실 건 마땅찮고
그런데 그런데 테레비에서
<내 남자의 여자>는 재방송하고
그러다보니 깜북 졸았나
한번 감았다 떴는데 날이 저물고
아무것도 못한 채 날은 저물고
바로 이때 나직하게 해보십지
'에이 시브럴--'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갓댐에 염병에 ㅈ에 ㅆ, 쓸 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 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않은 '에이 시브럴--'
마감 날은 닥쳤고 이런 것도 글이 되나
크게는 못하고 입안으로 읊조리는
'에이 시브럴--
-------------------
+ 일기장 악몽
또 잡아갈라 또 탈탈 털어가서는
시월 이십구일 다섯 시부터 일곱 시 사이에 뭘 했는지
시월 한 달 뭘 했는지 하나도 빼지 말고 전부 쓰라고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육하원칙대로 다 쓰라고
속을 들여다보는 눈빛을 하고 다 안다는 눈빛을 하고
때가 되면 육개장을 된장국을 먹어가며 을러가며
다시 쓰라고
또다시 쓰라고
콧속으로 물이 입으로도, 비병을, 숨이... 비명을'''
컥!
칠성판에 묶여 개구리처럼 빠등거리다
넙치처럼 도다리처럼
오줌을 싸며 기절하는 거 아닐까
모를 리 없다고 모를 리가 없다고
잘 생각해 보라고
친구 꾐에 빠졌을 뿐
너는 억울한 줄 우리가 잘 안다고
그러니 솔직히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
그놈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말해보라고
식은땀 흘리며 벌떡 깨네 벌써 삼십 년
말발카 살발타!
----------------------
+ 중국집 전 씨
가령 그토록 빠르게 면발을 뽑아내는 일
훔쳐보는 코흘리개들 쪽으로 큰 눈 찡긋 우수 어린 웃음
지어주는 일
앞으로 목을 빼고 큰 키 휘청휘청 걸어가는 일
더러운 앞치마는 뭉쳐 시답잖다는 듯 홱 구석으로 던지
는 일
기묘한 악센트로 말하는 일 중국집 全 씨처럼.
장래희망으로야 대통령도 장군도 싫지는 않았지만
돈 많은 사장이나 비행기 조종사도 꼭 싫지는 않았지만
눈부셨지 껌 씹던 중국집 全씨
입을 움직일 때마다 따닥따닥 소리가 나던
휘파람을 불면
지나는 처녀들이 어김없이 킬킬거리던
뱀 모가지를 맨손으로 눌러서 잡던.
어느 가을 옷말 누구한테 얻어맞고
코피를 흘리며 울던 홀아비 全씨
다 찢어진 난닝구 서러운 갈비뼈처럼은 아니고 싶었으나
기둥 뒤에서 섦게 따라 울던 그이 아들처럼은 아니고 싶
었으나
(나도 슬퍼 조금은 따라 울었지만)
벚꽃 질 무렵
어린 아들 데리고 사라진 중국인 全 씨
아모레 아줌마하고라던가
가게 안집 큰누나하고라던가
그 길로 제 별로 돌아간 걸까.
그곳에서 다시 중국집을 내고 난닝구 바람에 껌을 씹으며
멋지게도 면발을 뽑고 있을까
어린 날의 내 우상 중국집 全 씨.
____________________ *51
꿈
공부
매미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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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빈집
사바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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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탈
첫차
초분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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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가을날
극락전
대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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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등
삼천포 1
삼천포 2
시간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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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옛 우물
총알값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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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고요한길
금남여객
무릎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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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할 일
바보사막*
비둘기호
북경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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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 무렵
서부시장
성 베두인
오월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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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에서
은하통신
이게 뭐야?
이대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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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과부적
지전 석장
화양연화
그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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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는 것
미루나무 길
불길한 저녁
소주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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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시브럴
일기장 악몽
중국집 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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