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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관한 시 1 + 늦가을 3 / 김경철 새벽부터 흐려진 하늘에서는 아직도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지만 일찌감치 찾아온 꽃샘추위가 마치 계절의 주인 인양 마새부리고 가끔 불어오는 갈바람에 붉은빛의 단풍잎이 이별을 고하듯 빈 몸의 나무만을 남기고 힘없이 떨어진다 이리저리 뒹굴다 하나둘 모인 낙엽들 헤어짐이 아쉬운지 마지막 체온을 전달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먼 여정에 오른다 ----------------------- + 늦가을 / 김사인 그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 옮겨보는 것..
11월 시 모음 5 + 11월 / 김병훈 너에게 11월은 푸른 이별이다 나에게 11월은 조금 더 깊은 파란 이별이다 우리의 가슴은 야구공에 맞아서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 11월 / 민경대 아무런 일이 없이 이달은 그네 타고 미끄럼 타고 두발로 두 손으로 언덕을 오르다가 다시 오르다가 눈보라 치는 겨울로 가는 다리 장안말 고개를 넘다가 12윌12일이 보이고 가려진 보자기에 최후기록은 내 인생을 막는다 ---------------------+ 11월 / 박동수 집요하게 가슴을 찢어내던 가시 세운 사랑들이 평행으로 세운 11월 두 기둥 사이로 물러가고 잊지 못하여 피 눈물로 고백해야 하는 붉은 잎도 떨어져 간 잃을 것도 없는 홀가분한 나무들 맨몸으로 하늘을 나르며 죽어 널 버려진 갈잎의..
11월 시 모음 4 + 11월 / 김혜선 입술이 갈라져 피가 난다. 공원묘지 가는 길 가로수가 붉어졌다. 죽은 후에도 값이 그대로인 그의 그림이 감기약 봉지처럼 쓸쓸했다. 피가 번지는 영화 장면을 떠올리다 접촉사고를 냈다. 내가 내리고 그가 나온다. 담배를 물고 사진을 찍고. 명함 밖 얼굴을 확인하고 검은 넥타이 검은 선그라스 남자는 화면 속으로 사라졌다. G열 14번 좌석에서 화면까지 붉은 칸나가 일렁인다. 영화는 피로 얼룩진 남자를 화면 밖으로 던졌다. 꽃잎이 날린다 얼굴이 묻은 명함 한 장이 발밑에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죽음은 보험처리 하지요. --------------------+ 11월 / 장석남  이제 모든 청춘은 지나갔습니다 덮고 비린 사랑놀이도 풀숲처럼 말라 주저앉았습니다 세상을 굽어보고자 한 꿈이 잘못이었..
11월 시 모음 3 + 11월 / 김영호 가로수마다 누런 잎새가 한해의 줏어읽은 행간 속의 낱말들을 검붉은 가래로 내뱉고 있다. 그 밑에 기침하는 코스모스 손마다 한 웅큼의 상한 뉴스들이 쥐어 있다. 낮달의 마른 눈이 빈틈없는 사람들 눈에 강물을 찾고 몸 안의 것 다 빠져나간 갈대 마음만 찬바람을 막고 있다. 여름이 철새 깃에 업혀 가고 나무가 늙어간다. 일요일 저녁 언덕의 십자목 목젖이 꽉 메어 있다. ---------------------+ 11월 / 반기륭 일이 두 개 모이면 2가 되는 줄 았았더니 일이 두 개 모이니 11이 되네 산에 가보니 11자로 뻗어있는 나무들이 서로 키재기하며 직립을 하고 있네 평행을 이루며 마주보는 다정함 비바람 몰아쳐도 활처럼 휘어졌다 복원하는 균형감각 일 두개가 합쳐지면 2가 되기도 하고..
11월 시 모음 2 + 11월 / 강은교 ​수많은 눈썹들이 도시의 하늘에 떠다니네 그 사내 오늘도 허리 굽혀 신발들을 깁고 있네 ​이 세상 눈썹들을 다 셀 수 없듯이 이 세상 눈들의 깊이 다 잴 수 없듯이 ​그 계집 오늘도 진흙 흐린 천막 밑에 서서 시드는 배추들을 들여다보고 있네 11월. -------------------+ 11월 / 고재종 ​갱변의 늙은 황소가 서산 봉우리 쪽으로 주둥이를 쳐들며 굵은 바리톤으로 운다 밀감 빛 깔린 그 서쪽으로 한 무리의 고니가 날아 봉우리를 느린 사박자로 넘는다 그리고는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늦가을 저녁이 있다 소소 소 이는 소슬바람에 갈대숲에서 기어 나와 마음의 등불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그때다 --------------------+ 11월 /..
11월 시 모음 1 + 11월 / 고은 낙엽을 연민하지 말아라 한자락 바람에 훨훨 날아가지 않느냐 그걸로 모자라거든 저쪽에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느냐 보아라 그대 마음 저토록 눈부신 것을 ---------------- + 11월 / 노연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얼음이 가득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움츠린 어깨마다 수북한 근심 어둠은 더 빨리 얼굴을 들이민다 종종걸음으로 시간을 뒤쫓아도 늘 손은 비어있다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나무들 제자리 묵묵하게 삶을 다진다 비늘 떨군 담담함으로 12월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란 이름 붙은 것의 앞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거름이라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것 낙엽을 떨구는 몸짓을 사람들도 한다 잠시 어깨 움츠렸다가 눈이 오면 곧 환하게 웃는다 ----------------- + 11월 / 박용화 한..
문정희 시 6 + 콩 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 몸을 얽히어 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 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 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 이 몽매한 죄 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 마른 몸으로 귀가하여 도리깨질을 맞는다 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 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 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뒹군다 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딩군다 ------- + 소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슬픔 끝내 입 다물고 떠나리 마지막 햇살에 떨고 있는 운명보다 더 무서운 이 살 이끌고 단 한 번의 자유를 위해 머리에 심은 뿔, 고목처럼 그대로 주저앉히고 보이지 않는 피의 거미줄에 걸린 흑인 오르폐처럼 떠나리 어쩔 수 없..
문정희 시 5 + 가치 음식값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는 신용카드보다 크기가 더 작았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오는 동안 손때가 묻어 외관은 갈수록 볼품을 잃어갔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때가 묻고 구겨져도 그 가치는 휘발되지 않았다 ----------+ 고백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일회용 컵 같아 자신 없어서 눈빛 마주 보며 고백 못하고 파도만이 알 수 있게 바닷가 난간에 목까지 자오르는 사랑을 적었으리라 "내 꺼니까 손대지 마" ---------- + 노화 노화는 삶의 나뭇가징서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쓸쓸한 거리로 지는 일이다 노화가 정지할 것 같아 낙엽을 책갈피에 끼워두었다 --------- + 동면 자연의 대지가 프로젝트를 완수하여 긴 휴식에 들어가면 나도  그대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