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2) 썸네일형 리스트형 마종기 시 2 + 산행 2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랴.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 상처 1 1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 젊었던 나이의 나여, 사고무친한 늙은 나를 초라하게 쳐다보는 이여 세상의 모든 일은 언제나 내 가슴에는 뻐근하게 왔다 감동의 맥박은 쉽게 널뛰고 어디에서도 오래 쉴 자리를 편히 구할 수가 없었다. 2 .. 마종기 시 1 + 길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 새 새들은 아침잠도 없구나... 추석 시 모음 3 + 성묘 / 정영숙성묘를 하러 갔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삼십년을 주무십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나를 잘 아신다고 아빠가 말 했어요 내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르면 할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 반갑다고 하십니다 추석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 +송편 / 채린(綵璘) 하얀꽃, 꼬투리에 콩이 숨는다 쑥 더미에 참깨가 숨는다 백년초에 밤이 떼구르르 엉덩방아 찧는다 둥근 달 반달 진주 품은 조개 꿈을 먹은 우리가 솔잎 위에 앉는 추석 전야 오색구름 따라 달타령이 울려 퍼진다 --------------------+ 추석 / 강순옥딩동! 오가는 정이 초인종 울릴 때마다 송편 한 접시 들어온다 스마트폰.. 가을 시 모음 5 + 가을 /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도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 가을날 / 김용호우리가 지난 봄과 여름에 땀과 노력을 버무려 놓은 결과는 만족만이 있기를 이 가을 쓸쓸한 바람은 언제나 우리의 등뒤에서 불고 우리의 얼굴에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따듯한 가을 햇살만이 비치기를 가을날 노모의 주름살같이 쪼글쪼글했던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활짝 펴지고 안온만 있기를 …… 그리고 우리가 우리.. 가을 시 모음 4 + 晩秋 / 이용악 노오란 은행잎 하나 호리호리 돌아 호수에 떨어져 소리 없이 湖面을 미끄러진다 또 하나 ㅡ 조이삭을 줍던 시름은 요즈음 낙엽 모으기에 더욱더 해마알개졌고 하늘 하늘을 쳐다보는 늙은이 뇌리에는 얼어죽은 친지 그 그리운 모습이 또렷하게 피어오른다고 길다란 담뱃대의 뽕잎 연기를 하소에 돌린다 돌개바람이 멀지 않아 어린 것들이 털 고운 토끼 껍질을 벗겨 귀걸개를 준비할 때 기름진 밭고랑을 가져 못 본 부락민 사이엔 지난해처럼 또 또 그 전해처럼 소름 끼친 대화가 오도도오 떤다 ---------------------- + 가을 맛 / 송정숙바람에 낙엽 떨어지니 쓸쓸하더니 연시감 하나에 가을 맛이 달달하니 좋다 내 이름 영롱한 이슬 내리고 찬서리 맞는 나를 국화라고하지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길, .. 가을 시 모음 3 + 감 / 허영자 이 맑은 가을날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 + 가을 / 김경동 불타는 노을 한아름 언덕길 숨찬 걸음 오르다 돌이키면 잡히는 허설(虛設) 분노일까 회한(悔恨)이까 발길 돌려 내려오는 가을 마음 --------------------+ 가을 / 마종기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 인지 사라져 간다. ------------------- + 가을 / 이문길지나가는 햇빛을 보려고 나 낙엽 하나를 들치고.. 가을 시 모음 2 + 가을 / 정진규 풀벌레 울음소리들이 시간을 가을 쪽으로 애써 끌어당긴다 밤을 지새운다 더듬이가 가을에 바싹 닿아 있다 만져보면 탱탱하다 팽팽한 줄이다 이슬이 맺혀 있다 풀벌레들은 제가 가을을 이리로 데려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풀벌레 울음소리들은 들숨과 날숨의 소리다 날숨은 소리를 만들고 들숨은 침묵을 만든다 맨 앞쪽의 분명함으로부터 맨 뒷쪽의 아득함까지 잦아드는 소리의 바다, 그 다음 침묵의 적요를 더 잘 견딘다 짧게 자주자주 소리 내는 귀뚜라미도 침묵이 더 길다 다른 귀뚜리마들이 서로 침묵을 채워주고 있다 열린 온모을 드나들되 제 몸에 저를 가득 가두어 소리를 만든다 나는 이 숨가쁜 들숨을 사랑하게 되었다. ------------------.. 가을 시 모음 1 + 가을 / 강은교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 + 가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섭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 이전 1 ··· 4 5 6 7 8 9 10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