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2)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은 시 4 + 무덤화장하지 않으리 풍장하지 않으리 티베트 아리 됫산 조장하지 않으리 그 누구한테도 늙은 구루한테도 맡기지 않으리 반야심경 사절 내가 씻기고 내가 입히고 내가 모셔놓고 난 뒤 내가 못질하리 내 울부짖음과 내 흐느낌 담아 엄중하게 못질하리 내가 흙 파내여 내가 묻으리 작은 벗들 일깨워 세우리 여기 사랑이 누웠다고 감히 천년쯤 뒤 나비도 강남제비도 이 무덤 속 백골 알 수 없으리 --------------- + 아내의 잠거기 간다 아내의 잠 속 어느 곳 지금의 소쩍새가 아닌 태초의 소쩍새가 운다 지금의 소쩍새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마저 태초인 소쩍새가 운다 사랑은 시원을 시도한다---------------- + 오늘 아침오늘 아침 다 헛되고 싶습니다 진실로 살구꽃 가득히 피었습니다 그대와 함께 살구.. 더위에 관한 시 3 + 더위 / 박경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냉동고에 물수건 넣었다 냉찜질을 한다. 37도 38도 계속 오르는 수은주 선풍기 에어컨 다 동원 올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이다. 겨울엔 핫팩 여름엔 냉팩 물수건을 목에 걸고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죄를 생각해 본다 ----------------------- + 더위 / 정은희 한들 한들 바람도 불지도 않고 습한 공기도 땅 속에 깊이 배인 열기로 숨이 차다 머리 위가 뜨거워서 함박가지 흘리는 땀들로 따가워서 이 더위가 사라지길 뜨거운 하늘을 보다가 눈부신 태양을 만나지고 이 더위를 이길 수는 없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어도 보고 피해 다니고도 보고 더위를 받아 들어야 하니 힘들다 마음으로 외운다 나만의 주문을 걸어본다 이.. 더위에 관한시 2 + 폭염 / 김명철 내 안에서 그가 기둥처럼 넘어진 후 여름내 열병을 앓았습니다 열꽃들 지천으로 꽃잎을 펼쳤습니다 하얗게 들떠다니다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여름도 백 년 동안의 맹독을 뽑아내려는지 신도시 곳곳에서 혈맥을 터뜨렸습니다 사내는 완강한 여름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습니다. 왜에 그랴아? 난 에미 잡아먹구 애비도 쥑인 년이여어 독주를 마시는 사내를 향하여 공사장 밥집 여자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불화살 속에서 ㄷ자로 철근만 구부리는, 허리를 펼 때마다 허공에 지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올리던 사내 그때마다 나도 그의 옆에 꼿꼿이 서 있고 싶었습니다 한밤, 돌아서는 사내의 검붉은 등 뒤로도 여름은 무릎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름 한복판에 난 상처는 다시 오는 여름마다 더 깊고 넓게 번진다고들 하였습니다 겨울.. 더위에 관한 시 1 + 더위 / 김정현 더위 먹은 트럭 한 대 고속도로에 길게 누웠다. 따라 오던 택시도 덩달아 발랑 눕는다. 트럭과 택시가 눈 맞아 세상을 내동댕이쳤다. 잔뜩 실은 짐 길바닥에 부려 놓고 트럭과 택시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구경꾼의 시선도 뜨거워진다. 구급차 지나간 자리에는 트럭도 택시도 주인을 잃고 검은 땀 길바닥에 쏟아 놓는다. 소리 없이 번지는 더위를 따라 ------------------ + 더위 / 심종은 사방 돌아다니며 쪽문까지 열어 젖혀도 해갈되지 않는 찜통 더위라 땡볕에 주춤거리기만 해도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구슬땀. 아무리 서늘한 바람 그리워 길 떠나도 인파에 떠밀리면 더위만큼이나 솟아나는 짜증. 복중에 옷을 낱낱이 벗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자연파괴와 물질 문명.. 류시화 시 4 + 원 사람들은 저마다 자가 둘레에 보이지 않는 원을 그려 가지고 있다 자신만 겨우 들어가는 새둥지 크기의 이 원을 그린 이도 있고 대양을 품을 만큼 흑등고래의 거대한 원을 그린 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 들어올 동심원을 그린 이도 있다 다른 원과 만나 어떤 원은 더 커지고 어떤 원은 더 작아진다 부서져서 열리는 원이 있고 부딪쳐서 더 단단해지는 원이 있다 나이와 함께 산처럼 넓어지는 원이 있고 오월붓꽃 하나 들여놓을 데 없이 옹색해지는 원이 있다 어떤 원은 몽유병자의 혼잣말처럼 감정으로 가득하고 어떤 원은 달에 비친 이마처럼 환하다 영원히 궤도에 붙잡힌 혜성처럼 감옥인 원도 있고 별똥별처럼 자신을 태우며 해방에 이르는 원도 있다 원을 그리는 순간 그 원은 이미 작은 것 저마다 자기 둘레에 원 하나씩.. 류시화 시 3 + 빵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잘 구워진 빵 적당한 불길을 받아 앞뒤로 골고루 익혀진 빵 그것이 어린 밀이었을 때부터 태양의 열기에 머리가 단단해지고 덜 여문 감정은 바람이 불어와 뒤채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제분기가 그것의 아집을 낱낱이 깨뜨려 놓았다 나는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살았다 저 자신만 생각하느라고 제대로 익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속까지 잘 구워진 빵 ------- + 별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 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 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 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 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 시인은 .. 류시화 시 2 +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습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습니다. 내 집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습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 + 눈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류시화 시 1 + 섬 바다에 섬이 있다 섬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고 그 바다로 나가면 다시 새로운 섬 섬 안의 섬 그 안의 더 많은 바다 그리고 더 많은 섬들 그 중심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들면서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또 꿈을 꾸었다 꿈 속의 꿈 그리고 그 안의 더 많은 잠 더 많은 꿈들 ------------ + 나비 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 이전 1 ··· 6 7 8 9 10 11 12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