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마당

(111)
11월 시 모음 3 + 11월 / 김영호 가로수마다 누런 잎새가 한해의 줏어읽은 행간 속의 낱말들을 검붉은 가래로 내뱉고 있다. 그 밑에 기침하는 코스모스 손마다 한 웅큼의 상한 뉴스들이 쥐어 있다. 낮달의 마른 눈이 빈틈없는 사람들 눈에 강물을 찾고 몸 안의 것 다 빠져나간 갈대 마음만 찬바람을 막고 있다. 여름이 철새 깃에 업혀 가고 나무가 늙어간다. 일요일 저녁 언덕의 십자목 목젖이 꽉 메어 있다. ---------------------+ 11월 / 반기륭 일이 두 개 모이면 2가 되는 줄 았았더니 일이 두 개 모이니 11이 되네 산에 가보니 11자로 뻗어있는 나무들이 서로 키재기하며 직립을 하고 있네 평행을 이루며 마주보는 다정함 비바람 몰아쳐도 활처럼 휘어졌다 복원하는 균형감각 일 두개가 합쳐지면 2가 되기도 하고..
11월 시 모음 2 + 11월 / 강은교 ​수많은 눈썹들이 도시의 하늘에 떠다니네 그 사내 오늘도 허리 굽혀 신발들을 깁고 있네 ​이 세상 눈썹들을 다 셀 수 없듯이 이 세상 눈들의 깊이 다 잴 수 없듯이 ​그 계집 오늘도 진흙 흐린 천막 밑에 서서 시드는 배추들을 들여다보고 있네 11월. -------------------+ 11월 / 고재종 ​갱변의 늙은 황소가 서산 봉우리 쪽으로 주둥이를 쳐들며 굵은 바리톤으로 운다 밀감 빛 깔린 그 서쪽으로 한 무리의 고니가 날아 봉우리를 느린 사박자로 넘는다 그리고는 문득 텅 비어 버리는 적막 속에 나 한동안 서 있곤 하던 늦가을 저녁이 있다 소소 소 이는 소슬바람에 갈대숲에서 기어 나와 마음의 등불 하나하나를 닦아내는 것도 그때다 --------------------+ 11월 /..
11월 시 모음 1 + 11월 / 고은 낙엽을 연민하지 말아라 한자락 바람에 훨훨 날아가지 않느냐 그걸로 모자라거든 저쪽에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느냐 보아라 그대 마음 저토록 눈부신 것을 ---------------- + 11월 / 노연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얼음이 가득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움츠린 어깨마다 수북한 근심 어둠은 더 빨리 얼굴을 들이민다 종종걸음으로 시간을 뒤쫓아도 늘 손은 비어있다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나무들 제자리 묵묵하게 삶을 다진다 비늘 떨군 담담함으로 12월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란 이름 붙은 것의 앞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거름이라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것 낙엽을 떨구는 몸짓을 사람들도 한다 잠시 어깨 움츠렸다가 눈이 오면 곧 환하게 웃는다 ----------------- + 11월 / 박용화 한..
10월 시 모음 5 + 10월 / 김현주 하늘은 더없이 맑고 떠도는 구름은 제일 인양 멋을 내고 들판에는 황금빛 노랫소리가 흐르고 바람은 잠자는 그리움 한 움큼 품고 지난 추억 만지작거리면서 홍엽(紅葉)으로 물든 오솔길을 즐긴다 활짝 웃고 있는길가에 코스모스 살빛에 하얀 미소 짓고 있는 구절초 온몸 흔들어 그윽한 향기를 토해내는 국화 짙어가는 가을빛은 우리들의 꽃과 사랑이 되고 하늘을 따서 색칠하는10월이 좋다. --------------------+ 10월 / 문계봉 10월의 속살을 본 적도 없는데 떠나는 10월의 등 뒤에서 만나는 이 아쉬운 표정과 애틋한 마음은 도대체 뭐지 기억하지 못하는 10월 어느 밤바람 속에서 책임지지 못할 마음 한 자락 취중(醉中)에 살짝 건넸던 건 아닌지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순간에 등을 보..
10월 시 모음 4 + 10월 / 박상희 ​별똥별 떨어지는 곳으로 슬픔하나 따라 간다 ​달이 웃고 네가 웃고 생각하면 삶은 보배로운 일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일이지 별이 지고 거울 속 지친 삶 하나 고요히 웃지만 ​풀잎 이슬 내린 아침이면 가을꽃 향기 날리는 들길 진주처럼 빛나는 꿈 하나 살포시 품에 안으리라  --------------------+ 10월 / 박얼서 구절초가 만발한 고향 하늘은 참 건강도 하지 얘야! 그래서 개천절도 여기 시월에 자리했단다 살사리꽃, 해바라기꽃... 만국기로 내걸리고. ---------------------+ 10월 / 박인걸 그해 불던 바람이 가끔 찾아온다. 마른 강 언덕에 섰을 때 사정없이 내 뿌리를 흔들던 젊은 날의 잔혹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그림자들을 몽땅 몰고 와 걸어..
10월 시 모음 3 + 10월 / 김사랑 나뭇잎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그동안 햇살과 바람 그리고 한방울 빗방울에도 감사드려요 저는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그 받은 사랑을  공기로 되돌려 드리려 했었죠 많이 부족함에 반성합니다 10월은 그늘을 찾아드는 햇살과 같이 살게 해주시고 너그러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가슴과 따뜻하게 삶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 시간이 많이 남지않았습니다 더 외로움에 지쳐 방황하기전 저 보다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주십시오 ----------------------+ 10월 / 김영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집을 나서서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바람이 툭 어깨를 친다 무심코 돌아보는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길을 혼자 조..
추석 시 모음 3 + 성묘 / 정영숙성묘를 하러 갔습니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삼십년을 주무십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나를 잘 아신다고 아빠가 말 했어요 내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르면 할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 반갑다고 하십니다 추석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 +송편 / 채린(綵璘) ​하얀꽃, 꼬투리에 콩이 숨는다 쑥 더미에 참깨가 숨는다 백년초에 밤이 떼구르르 엉덩방아 찧는다 ​둥근 달 반달 진주 품은 조개 ​꿈을 먹은 우리가 솔잎 위에 앉는 추석 전야 오색구름 따라 달타령이 울려 퍼진다  --------------------+ 추석 / 강순옥딩동! 오가는 정이 초인종 울릴 때마다 송편 한 접시 들어온다 스마트폰..
가을 시 모음 5 + 가을 /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도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넉이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을 묻고 싶을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 가을날 / 김용호우리가 지난 봄과 여름에 땀과 노력을 버무려 놓은 결과는 만족만이 있기를 ​이 가을 쓸쓸한 바람은 언제나 우리의 등뒤에서 불고 ​우리의 얼굴에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따듯한 가을 햇살만이 비치기를 ​가을날 노모의 주름살같이 쪼글쪼글했던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활짝 펴지고 안온만 있기를 …… ​그리고 우리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