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0) 썸네일형 리스트형 3월 시 모음 2 + 3월 / 김태인 아지랑이 밟으며 들로 산으로 뛰놀던 개구쟁이 녀석 때 구정물 뒤집어쓰고 코 풍선 불며 탱자나무 둔덕 잔디에 누워 깜빡 잠들고 가시에 찔려 꼼짝 못 하고 탱자나무에 걸려 있는 봄볕 가시 하나 뽑아 부풀려진 풍선에 심술 지나던 하늬바람 숨어 있던 풍선 속 겨울을 북쪽으로, 북쪽으로 -------------------- + 3월 / 목필균 햇살 한 짐 지어다가 고향 밭에 콩이라도 심어 볼까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 목소리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매지구름 한 조각 끌어다가 고운 채로 쳐서 비 내림 할까 황토밭 뿌리 번진 냉이꽃 저 혼자 피다 질텐데 늘어지는 한나절 고향에 머물다 돌아가는 어느 날 연둣빛 꿈 -------------------- + 3월 / 문인수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면서 누.. 3월 시 모음 + 3월 / 김광섭 3월은 바람쟁이 가끔 겨울과 어울려 대폿집에 들어가 거나해서는 아가씨들 창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랑 문풍지를 뜯고 나들이 털옷을 벗긴다 애들을 깨워서는 막힌 골목을 뚫고 봄을 마당에서 키운다 수양 버들 허우적이며 실가지가 하늘거린다 대지는 회상 씨앗을 안고 부풀며 겨울에 꾸부러진 나무 허리를 펴 주고 새들의 방울소리 고목에서 흩어지니 여우도 굴 속에서 나온다 3월 바람 4 월비 5월 꽃 이렇게 콤비가 되면 겨울 왕조를 무너뜨려 여긴가 저긴가 그리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 + 3월 / 김명희 3월은 느티나무 우듬지로 온다 얇은 햇살도 가지 끝으로 기대어 선다 이직은 잔설이 남아 발이 시리다 나는 가끔 발이 시려 잠을 설치곤 한다 발아래 식구들 모여 살았.. 강은교 시 3 + 섬 -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한 섬의 보채는 아픔이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에게로 가네. 한 섬의 아픔이 어둠이라면 다른 섬의 아픔은 빛 어둠과 빛은 보이지 않아서 서로 어제는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지었네 지었네, 공기는 왜 사이에 흐르는가. 지었네, 바다는 왜 사이에 넘치는가. 우리여 왜, 이를 수 없는가 없는가. 한 섬이 흘리는 눈물이 다른 섬이 흘리는 눈물에게로 가네. 한 섬의 눈물이 불이라면 다른 섬의 눈물은 재. 불과 재가 만나서 보이지 않게 빛나며 어제는 가장 따스한 한 바다의 하늘을 꿰매고 있었네. ------- + 숲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 강은교 시 2 + 별 새벽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 + 비 부르는 것들이 많아라 부르며 몸부림치는 것들이 많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이 오는 날 눈물 하나 떨어지니 후둑후둑 빗방울로 열 눈물 떨어져라 길 가득히 흐르는 사람들 갈대들처럼 서로서로 부르며 젖은 저희 입술 한 어둠에 부비는 것 보았느냐 아아 황홀하여라 길마다 출렁이는 잡풀들 푸른 뿌리. ---------- + 동백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 강은교 시 1 + 꽃 지상의 모든 피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지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보이는 길과 지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길들에게 말해다오 나,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 + 봄 노오란 아기 고무신 한 켤레 한길 가운데 떨어져 있네 참 이상도 하지 자동차 바퀴들이 떠들며 달려오다 멈칫 비켜서네 쓰레기터 옆 버스정류소에는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개나리 꽃망울 터질락 말락 하고 있는데 '그으대에 여어 사아야랑의 미이로오여' 버스에서 내린 한 사람 구르는 돌 하나 냅다 차 던지니 한길 속 거기에 가 서네 참 이상도 하지 햇볕에 젖은 노오란 아기 고무신 누군가 벗어놓은 살처럼 얌전히 꼼틀대는 봄의 깊은 뼈. ---------- + 가을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문정희 시 3 +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 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나는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 흙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 문정희 시 1 + 꿈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아테네 항구에서 바다가제를 먹고 그다음엔 로마의 카타꼼베로! 검은 신부가 흔드는 촛불을 따라 들어가서 천년 전에 묻힌 뼈를 보고 으스스 떨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떠나리. 아! 피사, 아시시, 니스, 깔레...... 구석구석 돌아다니느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지고 발이 부르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끈 시동생이 김찬.. 문정희 시 2 + 노래 나와 가장 가까운 그대 슬픔이 저 강물의 흐름이라 한들 내 하얀 기도가 햇빛 타고 와 그대 귓전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나 그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대 또한 내 꿈을 열 수 없으니 우리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 농담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삶은 순전히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시인이 있고 세상이 메말랐다고 하는데도 유쾌한 사랑 의외로 많다. 시는 언제나 칼이어야 할까? 천도의 불에 연도 된 사랑도 그렇게 깊은 것일까? 손톱이 빠지도록 파보았지만 나는 한번도 그 수심을 보지 못했다. 시 속에는 언제나 상처뿐이었고 사랑에도 독이 있어 한철 후면 어김없이 까맣게 시든 꽃만 거기 있었..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