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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시 + 강 문득 돌을 던진다 아마 나를 던진 것이리라 그대 뜻이라면 할 수 없지 중얼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물속에 있다는 것을 누가 알랴 -------- + 너 캄캄한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를 만 났을 때도 캄캄했다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났고 캄캄한 밤 허공에 글을 쓰며 살았다 오늘도 캄캄한 대낮 마당 에 글을 쓰며 산다 아마 돌들이 읽으리라 ------- + 닭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통곡이 되기도 한다 아니다 닭은 몰려오는 비행기 저렇게 굶주리는 비행기 하아얀 닭은 하아얀 물고기 하아얀 통곡 온통 고독하다 비행기가 몰려온다 굶주림이 몰려온다 나는 방 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러면 방안에 가득 차는 하아얀 닭 들이 밤새도록 푸드득거리고 나도 덩달아 푸드덕거린다 ------- + 숲..
4월 시 모음 2 + 4월 / 목필균 벚나무 바라보다 뜨거워라 흐드러진 꽃잎에 눈을 다친다 저 여린 향기로도 독한 겨울을 견녔는데 까짖 그리움 하나 삼키지 못할까 봄비 내려 싸늘하게 식은 체온 비벼대던 꽃잎 하르르 떨구어져도 무한대로 흐르는 꽃소식 오슬오슬 열 감기가 가지마다 열꽃을 피워댄다 -------------------- + 4월 / 박인걸 사월이 오면 옛 생각에 어지럽다. 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 연분홍 살구꽃은 앞산 고갯길을 밝히고 나물 캐는 처녀들 분홍치마 휘날리면 마을 숫총각들 가슴은 온종일 애가 끓고 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 뭉게구름은 졸고 동심은 막연히 설레고 반백 긴 세월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앞마당에 핀 진달래 그때처럼 붉다. -------------------- +..
4월 시 모음 + 4월 / 김용전  얼었다 풀리는 노곤한 강물 위엔 아리운 불륜의 욕망이 흐르고 황소 눈물처럼 뚝뚝 지는 하얀 목련 아래 서면 어느 사랑이 영원하랴 문득 미소가 돌아 4월은 눈물 없이도 떠나기 좋은 계절 벚꽃 눈보라 치는 길 위에 서면 서러운 이별조차 눈이 부시어라--------------------+ 4월 /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미각 돋우라 추..
봄 시 모음 3 + 봄들판 / 곽종분 발가벗은 흙을 파고아이들이 봄을 심는다. 흙 속에서 아지랭이 눈빛이 보인다. 비비쫑 종달새 소리가 햇살처럼 쏟아지면 산에서 들판에서 새싹들이 반짝반짝 눈을 뜬다. ---------------------------------- + 봄을 맞는 마음 / 김광협 대지 위로 기름살 같은 햇볕은 고운 꿈을 수놓아라 냉각한 돌담 위 이끼는 또 어제를 가슴에 부여안고 푸른 입김을 몰아 쉬라 저리도 고운 하늘자락이 저토록 웃는 산 모퉁이가 재롱되는 청솔 밑 봄을 부르는 미소들이여 알듯도 말 듯 들리듯 말듯 아슴프시 귓전에 들리어 오는 소리 포시시 애기꽃이라도 한 송이 피는가 도로로 돌돌 이슬 한 방울 구르는가 돌담 밑 쑥이며 무릇 냉이가 돋아날라 ---------------------------- ..
봄 시 모음 2 + ​봄 / 유안진 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홀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 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 운 보랏빛, 돌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랑이야 어쩔 샘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러운 움집에서 다순 손길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1865 - 1939) + 낙엽 가을이 정답던 나무에 왔다 그리고 보리단 속의 쥐에게도 빛이 변하였다 머리 위에 늘어진 마가목나무 잎들 누레지고 축축한 산딸기 잎도 노란빛이 되었다 사랑이 기울 때가 닥쳐왔다 이제 우리의 슬픈 마음은 몹시 지쳤다 헤어지자 지금, 정열이 우리를 저버리기 전에 너의 수그린 이마에 키스와 눈물을 남기고 ---------- + 죽음 두려움도 바램도 죽어가는 동물에 임종하지 않지만, 인간은 모든 걸 두려워하고 바라며 최후를 기다린다. 그는 여러 차례 죽었고 여러 차례 다시 일어났다. 큰 인간은 긍지를 가지고 살의 품은 자들을 대하고 호흡 정치 따위엔 조소를 던진다. 그는 죽음을 뼈 속까지 알고 있다 - 인간이 죽음을 창조..
봄 시 모음 +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 봄 /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 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
3월 시 모음 3 + 삼월 / 공석진 내게 봄은 사랑하는 이 후레지아 꽃향기 한 웅큼이면 족하다 기지개 펴 하품하는 한겨울 내내 잠복해 있던 고독 햇살은 가지런히 나뭇가지 아래 군불 지피지만 응달진 구석에 폐인처럼 망가져 가슴 허하게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가끔 훌쩍이는 화창한 어느 봄날 --------------------- + 삼월 / 권예자 맨 처음 베란다 저쪽 아파트 틈새로 한 조각 푸른 하늘이 보였을 때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움츠려 머뭇대는 사이 너는 한 줄기 햇살을 동백잎 사이로 찔러 넣었고 화분 가득 넘쳐흘러 거실에 자리 잡았다 한 번의 약속 맞을 준비도 한 적 없는데 너는 왔고 나는 맞이해야 한다 골짜기 잔설 위에서 언 발 구르는 산 까치 울음에 발목 잡힌 삼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