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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시 모음 2 + 1월 / 신달자 ​때는 새벽 1월의 시간이여 걸어오라 문 밖에 놓인 냉수 한 그릇에 발 담그고 들어오면 포옥 삶아 깨끗한 새 수건으로 네 발 씻어 주련다 자세는 무릎을 꿇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도 환히 미소 지 어리니 나의 두 손은 잠시 가슴에 묻은 채 쉬리라. ​------------------- + 1월 / 용혜원 ​1월은 가장 깨끗하게 찾아온다 새로운 시작으로 꿈이 생기고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올해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기대감이 많아진다 ​올해는 흐르는 강물처럼 살고 싶다 올해는 태양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올해는 먹구름이 몰려와 비도 종종 내리지만 햇살이 가득한 날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일한 기쁨이 수북하게 쌓이고 사랑이란 별 하나 가습에 떨어졌으면 ..
설날 시 모음 2 + 설날 / 김덕성 가뭄에 단비 내려 냇가에는 연둣빛 감도는데 온 가족이 안전한 귀성길이 되었으면 부모님 찾아뵙고 세배드리고 온 가족 모여 앉아 떡국에 먹으며 정을 쌓는 행복한 설이었으면 웃어른 찾아뵙고 세배 올리고 옛 친구만나 회포를 풀며 정 나누며 하늘은총 감사하는 설이었으면 뿌리 찾아 나눈 설 연륜으로 성숙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안전한 귀경길이 되게 하소서 -------------------- + 설날 / 박인걸 ​반갑지 않은 설날이 영업사원처럼 찾아와 떡국 한 그릇에 나이를 강매하니 불쾌하다. 이마에 주름살은 밭이랑처럼 깊어만 가고 이팝나무 꽃잎은 정수리까지 활짝 폈다. ​해와 달도 여전하고 까치 목소리도 쉬지 않았는데 두꺼운 안경에는 안개가 끼고 속내의를 입어도 무릎이 시리다. ​시간의 태엽을 거..
신경림 # 신경림 시 + 길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 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
새해 시 모음 2 + 덕담 / 도종환 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 + 원단(元旦) / 조..
로버트 프로스트 시 # 로버트 프로스트 시 Robert frost(1874~1963) 미국 + 군인 그는 던져진 것처럼 누워 있는 저 쓰러진 창입니다. 그것은 지금 들어 올리지 않고 놓여 있고, 이슬이 오고, 녹슬고 있지만, 먼지를 갈았을 때 여전히 뾰족하게 놓여 있습니다. 세상을 둘러보는 우리가 그것 의 표적이 될 가치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람처럼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넘어지고, 풀을 뜯고, 지구의 곡선을 교차하고, 치고, 그들 자신을 부순다; 그들은 우리를 돌 위의 금속 포인트에 움찔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몸을 확인하고 넘어뜨리고 정신을 쏜 장애물은 지금까지 보여 주거나 빛난 것보다 더 멀리 있습니다. ----------------- + 목장..
문병란 # 문병란 시 + 꽃씨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며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묻는다. ---------------- + 사랑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더욱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
김남주 시 + 고목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싶다 ----------- + 노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 무심..
10월 시 모음 2 + 10월 / 전소영 갈꽃처럼 핀 마음이 하늘에 닿는다 생의 갈피마다 철새들이 내려앉고 또 무리 지은 새들은 멀리 날아간다 청옥 색 풍선들이 가슴을 매달고 자꾸만 날아간다   들판 가득 채운 10월의 빛을 끝없이 쳐다보면서 좋아하는 색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잘 익은 들녘 같은 그림 한 장 그리고 싶다 이 강토에 내리는 시월의 색으로 칠하고 싶다   풀잎 하나 뜯어 그림 위에 얹어 놓으면 풍경 속으로 흐르는 푸른 강이 되겠지 강은 가슴 타고 흐르는 한 줄의 뜨거운 시가 되고 제방 가득 평화와 자유의 강물이 흘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시 계절이 바뀌어도 내 어머니가 가르쳐 준 서글픈 언어로 10월의 색깔이 배여 있는 자유시를 쓰면서, 이 곳 아직 갈라진 한반도에 살고 싶다.   젖내 나는 모..